361.
공연이 끝나고 바로 투표하는 방식에선 첫 순서가 가장 중요하다.
보통은 처음 공연을 기준으로 다음 공연을 판단하기 때문.
물론, 중간에 너무 잘한 참가자가 나온다면 얘기가 또 달라지겠지만.
내가 보기엔 참가자들 수준이 고만고만하다.
그래서 프로듀서의 능력이 더 필요한 거도 같고.
편곡 하나로 많은 부분이 바뀌니까.
“네! 에스민 프로듀서는 3, 11, 15번을 뽑았습니다.”
이 번호가 순서는 아니다.
프로듀서마다 1부터 16중에 남은 참가자 숫자만큼 번호를 뽑고.
순서는 로또 추첨기 같은 기계로 정한다.
물론, 프로듀서는 뽑은 숫자를 하나씩 참가자들에게 나눠준다.
나는 넬에게 3번, 루에게 11번, 몰에게 15번을 쥐어 줬다.
탁구공 같은 게 드르륵거리며 돌아가다 숫자가 하나씩 나오는 기계가 들어왔다.
“자! 처음으로 공연하게 될 참가자는 어떤 팀의 참가자일까요?”
진행자가 나름대로 분위기를 만들며 숫자를 하나씩 뽑는다.
“자! 처음 나온 숫자는 12. 다음으로는 3번이 나왔습니다.”
넬이 두 번째로 무대에 서게 됐네.
나는 넬과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 하고 오라는 무언의 표시.
넬은 바로 무대 뒤로 향했다.
첫 무대를 마치고 투표가 끝나면 바로 올라가야 하니까.
“자! 순서가 다 정해졌습니다. 이거 기대가 되는데요.”
진행자가 적당히 멘트를 치고 진행팀에서 사인이 왔다.
무대가 시작된다는 얘기를 끝으로 진행자가 잠시 옆으로 빠진다.
조명이 꺼진 무대.
첫 무대는 벨 팀의 참가자.
벨의 특징인 트랜디함과 신나는 음악.
과거의 음원을 재탄생 시키는 미션은 벨에게는 조금 어려운 미션이라고 생각했는데.
첫 참가자의 곡은 꽤 트랜디하게 변했고.
나름 괜찮은 무대를 선보였다.
인성은 모르겠지만, 실력 하나는 확실한 벨이다.
곡 진짜 잘 편곡한 거 같네.
그래도 첫 무대가 너무 대단한 무대는 아니어서 다행.
딱 기대한 정도로 적당히 잘 한 거 같다.
벨은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나와 신디, 존은 다 좋은 무대라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후, 그래도 이 정도면 다음 넬 무대가 더 좋게 들릴 거 같다.
힙합도 흥이라면 뒤지지 않으니까.
넬이 잘 해주면 좋겠는데.
넬의 무대가 시작되기 전 첫 무대가 끝나고 투표하는 시간.
나는 뒤에 있는 두 여인을 바라봤다.
“혹시라도 넬이 또 실수할 수 있어. 무대에 서게 되면 너무 동요하지 말고. 준비한 거만 잘하면 돼. 알았지?”
“네! 걱정 말아요!”
발랄하게 외치는 루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몰.
뭐, 이런 반응이면 걱정은 안 된다.
아무래도 유일하게 위기를 겪어본 팀이 우리 팀이라 그런지 돌발 상황이 오면 제일 대처를 잘 할 거 같다.
“자! 그럼 다음은 에스민 프로듀서 팀의 넬 테나 참가자의 무대입니다.”
조명이 켜지고 심호흡을 한 번 한 넬.
분위기는 나쁘지 않은 거 같다.
“예예!”
낮은 목소리로 입을 뗀 넬이 비트에 맞춰 몸을 살짝 움직인다.
오! 느낌 좋은데?
좋은 느낌은 공연이 지나갈수록 나쁘게 변했다.
딱히 실수는 하지 않았지만,
힘이 너무 들어갔다.
랩은 힘이 들어가면 티가 많이 나는 장르 중에 하나다.
넬은 강력한 톤과 유려한 플로우를 가지고 있어서 그 간극에서 오는 매력이 상당하다.
그러나 너무 힘이 들어간 넬의 랩에는 유려한 플로우가 없었다.
강한 톤과 강한 플로우.
오로지 강함만이 존재하는 랩 무대.
이런 음악은 잠깐 듣기엔 좋지만, 끝까지 들으면 지쳐버린다.
그다지 좋은 평이 나오기 힘들 거 같은데.
그래도 실수 없이 끝까지 무대를 마친 넬.
본인도 힘이 너무 들어갔음을 알았는지 무대가 끝나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 망했네.
저번에도 말해줬는데.
무대에 있을 땐 실수를 하던, 무대가 마음에 안 들던 티 내지 말라고.
아직 아마추어라 마인드 세팅이 부족했다.
저렇게 한숨을 쉬면 누가 봐도 무대가 별로였다고 생각될 테니까.
이거 넬 탈락할지도 모르겠는데?
“흐음, 두 사람 괜찮지?”
“물론이죠!”
“네!”
다행히 몰과 루는 다음 미션에도 남을 거 같다.
그래. 그걸 위안으로 삼자.
넬은 언젠가 분명히 잘 될 랩퍼지만.
아직은 아닌 거 같다.
멘탈도 다시 잘 잡고.
조금 더 여유를 찾은 다음에 데뷔하면 잘되겠다.
뭐, 내가 할 건 아니지만.
이 정도의 기회를 줬는데 못 잡은 가수라면, 내 여자가 아닌 이상 신경 쓸 생각이 없다.
내가 그리 한가한 거도 간절한 거도 아니니까.
뭐, 그래도 성공을 빌어주긴 하겠다만.
넬의 무대가 끝났고, 자리로 돌아온 넬은 의자에 앉아 축 처졌다.
나는 넬에게 다가갔다.
“넬.”
“네.”
“무대가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건 알아요. 그렇지만 다음에 무대에 서는 팀원들 생각도 좀 해주겠어요?”
“아! 죄, 죄송합니다.”
그렇게 쳐져 있으면 루나 몰이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다.
무대에 서기 전, 가뜩이나 예민할 텐데 눈치까지 보게 만드네.
“흐음, 대기실로 가 있을래요?”
“네. 그러겠습니다.”
넬의 눈에 살짝 눈물이 고인 걸 보고 내가 대기실로 보내 버렸다.
여기서 울어버리면 진짜 분위기를 완전히 망치니까.
후, 저렇게 멘탈이 약해서야 이 바닥에서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하나.
떠나는 넬을 안쓰럽게 보는 둘.
나는 둘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말을 걸었다.
“루, 저번에 내가 얘기했던 건....”
카메라와 마이크가 있으니 개인적인 이야기는 할 수 없다.
내가 했던 조언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시간을 가진다.
루는 여전히 발랄하고 교태 넘치게 내 조언을 받았고.
몰은 귀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크으, 이 모습이 방송에 나가면 꽤 좋은 얘기가 나올 거 같은데.
둘 다 어쩜 이렇게 이쁘고 귀엽지?
나오려는 미소를 안간힘을 다해 참는다.
넬에게 축객령을 내렸는데 웃고 있기는 조금 그렇잖아.
“자! 투표 마감합니다.”
“다녀올게요.”
아! 벌써 몰의 순서가 왔구나.
다다음 무대는 몰이고. 그 다다다음 무대가 루다.
다행히 두 사람은 중간 순서로 뽑혔다.
첫 순서도 중요하지만, 이런 경연에서는 무대를 뒤에 할수록 불리할 확률이 높다.
관객이 지치는 게 가장 큰 이유고.
여러 무대를 보면서 표본이 많아지면 점점 채점이 꼼꼼해지는 거도 한몫하니까.
이어지는 몰의 무대.
딱 연습한 만큼의 무대가 나왔다.
그래 이 정도면 선방했네.
적어도 9등 안에 들 수 있을 거 같다.
조금 지나 루도 무대에 올랐다.
발랄한 에너지를 폭발시킨 루.
내가 바랐던 무대와 꽤 흡사한 수준의 무대였다.
루가 꽤 잘 했네.
이거 잘 하면 1등도 노려봄 직하겠는데?
뭐, 이젠 남은 무대를 마음 편히 감상하기만 하면 되니까 감상하면서 평가해 보자.
“후우우, 저 잘 했어요?”
무대를 끝마치고 온 몰은 조용히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자리에 앉아 쉬었는데.
발랄한 루는 그 기운을 숨기지 않고 흥분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응, 완벽했어.”
“헤헤.”
내 칭찬에 기분이 좋은지 활짝 웃으며 자리에 앉는 루.
아! 저렇게 웃으니까 좀 꼴리네.
발랄함에 섞인 교태는 정말 치트키다.
1등이라도 하면 정말 일대일로 진하게 섹스해 줘야겠다.
“자! 준비된 모든 무대가 끝났습니다. 방송에는....”
오늘 녹화는 16일 후에 방송에 나간다.
보통 2주 정도 텀을 두고 나오는데.
우리는 촬영에 여유가 있는 편이라 며칠 시간이 더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2패를 하는 방송은 이제 9일 뒤에 방영된다는 뜻.
으음, 그때 어떤 얘기가 나올지 벌써 떨린다.
나도 욕을 좀 먹겠지만, 넬이 엄청 욕먹을 거 같은데.
저 멘탈로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관객이 모두 퇴장한 무대.
참가자들 전부가 다시 모였다.
“자! 기다리던 결과 발표의 시간인데요.”
진행자는 또 쪼는 맛을 위해 인터뷰를 진행한다.
팀에서 몇 명이 살아남은 거 같냐는 질문이나.
누구 팀에서 가장 많은 탈락자가 나올 거 같냐는 질문.
나는 가감 없이 우리 팀은 둘이 살아남을 거 같고, 신디네 팀은 조금 위험한 거 같다는 말을 했다.
물론, 신디의 눈치를 보며 살짝 눈인사로 사과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친해서 그래. 만만한 거도 신디 뿐이고.
벨은 거침없이 우리 팀을 지목했지만.
아무리 봐도 이번에 몰과 루는 떨어질 거 같지 않으니까.
“자! 그럼 투표 순위를 공개하겠습니다. 순위는 9위부터 공개됩니다.”
투표가 공개되는 순서는 아주 요상했다.
9위 다음 16위가 공개됐고. 8위, 15위, 7위.... 3위까지 공개됐다.
남은 순위는 1, 2위와 10위.
슬프게도 넬은 이미 순위가 나왔다.
14위라는 처참한 순위.
고개를 푹 숙이고 훌쩍이는 넬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였다.
다행히 몰은 6위로 안전하게 안착했다.
넬의 눈치를 보느라 마음껏 기뻐하지 못 하는 몰.
나는 몰에게 다가가 수고했다고 말하며 어깨에 살짝 손을 올렸다.
내게만 보이도록 조심스럽게 기쁨을 표현한 몰.
나는 나오려는 미소를 애써 참고 다음 발표를 기다린다.
“자! 이제 마지막 탈락자인 10위를....”
다들 예상하는 10위 참가자가 있어서 그런지 딱히 동요하는 기색이 없다.
아직 이름이 나오지 않은 참가자는 총 셋.
존 팀과 신디 팀에 한 명씩.
우리 팀의 루가 남았다.
루는 1, 2위 중 하나일 테고.
루와 1위 경쟁을 할 참가자는 아무래도 신디 팀의 참가자일 거 같다.
아직 이름이 나오지 않은 존 팀의 남자 참가자.
주먹을 꽉 쥐고 슬픈 표정으로 화면을 본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고 다른 팀원들이 그를 위로한다.
나름 잘 했는데, 운이 없었다.
꽤 괜찮은 무대가 두 번 연속으로 나왔고, 그다음으로 무대에 선 참가자.
뭐, 본인이 부족한 거기도 하지만, 8위나 9위 참가자와 순서를 바꿔서 출전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확률이 꽤 높다.
“탈락자는 모두 발표됐네요. 자! 그럼 아직 호명되지 않은....”
루와 신디 팀 참가자에게 인터뷰하는 진행자.
뭐, 누가 일등일 거 같냐는 진부한 인터뷰였고.
루와 경쟁자 모두 겸손하게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무대였다는 답을 했다.
“자! 그럼 1위는!”
진행자의 입에서 먼저 호명되는 이름.
“루 밀러. 축하합니다!”
“와우! 헤헤.”
환호성을 지르고 환하게 웃는 루.
신디 팀의 참가자도 2등에 만족하는지 환하게 웃는다.
웃다가 넬의 눈치를 조금 본 루지만, 기쁨을 주체할 수 없는지 내게 쪼르르 달려온다.
“프로듀서님! 저 1등이에요!”
“잘 했어요. 뭐, 상이라도 드려야겠네요.”
“상이요?”
“후후. 기대해도 좋아요.”
야한 분위기를 풍길 순 없었지만, 루는 알아서 알아먹었는지 볼을 붉히며 뒤로 물러났다.
그 후의 루와 나의 소감 인터뷰가 있었는데.
루는 너무 흥분해서 제대로 말도 못 했고.
나는 이번에는 그냥 겸손하게 순서가 좋았고, 루도 열심히 해줬다는 얘기로 끝을 맺었다.
그 후 탈락자들이 무대에 모두 올라갔다.
넬은 터덜터덜 걸어 무대로 갔고.
인터뷰가 있었지만, 또 아무 말도 못 했다.
으음, 저거 안 좋은데.
뭐, 이젠 나와 상관없는 일이니까.
알아서 잘 헤쳐 나가야겠지.
카디 회사 사장님께 추천이나 해볼까 했지만.
카디가 활동을 시작하면 바빠질 테니 그냥 말았다.
뭐, 무대가 아니라 카디와 연습하던 모습이 방송을 타면 그 잠재력을 보고 어디 기획사에서 데려가겠지?
모든 인터뷰가 끝나고 탈락자들은 그대로 퇴장했다.
이렇게 그냥 보내네? 촬영이 더 남았나?
“자! 다음 미션을 바로 공개하겠습니다!”
엄청 큰 촬영이 남아 있었구나.
다음 미션은 중요하니까.
우리 팀은 2명이 남았고, 신디네 팀도 2명이 남았다.
벨의 팀도 똑같이 2명이 남았고.
존의 팀만 3명이 남았다.
팀 미션 때도 그렇고 존 팀이 강자의 위치에 자꾸 서게 되는 거 같다.
존 프로듀서 사람 보는 안목도 좋고 사람도 좋은 거 같은데.
실력도 좋네.
본받을만한 선배인 거 같다.
나중에 밥이라도 한 번 같이 먹자고 해야지.
뭐, 신디랑도 한 번 밥이나 먹으러 갈까?
“지금 가장 많은 팀원이 남은 존 프로듀서.”
“네.”
“다음 미션을 뭐일 거 같나요?”
“으음, 예상이 안 가네요.”
나도 마찬가지다.
간간이 하는 추가 촬영을 제외하면, 이제 남은 촬영 횟수는 총 5회.
마지막 촬영은 결승이 될 테니까 4번의 촬영 동안 몇 명이 어떤 방식으로 대결해 떨어질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번 미션은 팀 미션입니다.”
팀미션? 저번에 했잖아?
그때 했던 걸 또 한다고? 아니겠지?
이름은 같아도 룰은 다르게 할 거 같다.
어떤 걸 시킬지 벌써 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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