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
넬은 가사를 새로 쓸 예정이지만, 아직 써둔 가사가 없어서 원래 가사로 진행했다.
실력 하나는 확실한 넬.
카디의 조언까지 받아서 무서운 기세로 랩을 했다.
저번의 실수도 있어서 그런지 독기까지 보이는 넬.
“힘을 조금 빼도 될 거 같아요.”
“아! 네.”
“실수한 걸 너무 담아두면 안 돼요.”
“알겠습니다.”
딱히 조언할 게 없었다.
“가사 완성되면 보내 주세요.”
“네.”
그렇게 넬이 지나고 시작된 루의 노래.
자기와 딱 어울리는 발랄한 곡을 선택한 루.
분위기가 확 살아나며 즐겁게 들을 수 있었다.
“으음, 그대로 하기엔 너무 올드하네. 이건 제가 조금 편곡하면 될 거 같네요.”
“헤헤.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그래.”
루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카메라가 있음을 기억하고 멈췄다. 바로 몰의 노래를 듣는다.
몰은 유명한 팝 발라드곡을 골랐다.
원래의 몰이었다면 소화하기 힘든 곡이었겠지만.
내게 마기를 받은 몰은 각성했다.
꽤 듣기 좋은 노래.
편곡 적으로는 제일 건드릴 구석이 없을 거 같다.
“좋네요.”
“감사합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보는 몰.
머리 쓰다듬어달라고?
기대하는 눈빛이지만, 카메라를 보고 고개를 살짝 저었다.
“헤헤.”
내 뜻을 알았는지 가볍게 웃는 몰을 두고 입을 열었다.
“오늘은 이쯤하고 최대한 빠르게 편곡해서 보내 줄게요. 넬은 빨리 가사 먼저 쓰구요. 그럼 해산!”
“해산!” “가사는 오늘 중으로 써보겠습니다.”
루가 내 말을 따라 귀엽게 외쳤고, 아빠 미소를 짓는 내게 넬이 말했다.
“편곡 전에만 완성해도 돼요. 너무 부담 갖지 말아요.”
“네. 그럼.”
세 여인과 인사 후 헤어졌다.
“후우, 편곡 빨리 끝내고 좀 쉴까.”
“저녁에 스케쥴 있잖아.”
“아! 맞네.”
깜박했다. 오늘은 코안과 만나기로 했다.
코안은 내 곡을 약간 수정해 자신의 그룹에 맞게 편곡했다고 한다.
수정할 부분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코안이 했다니까 꽤 기대된다.
오늘 저녁에 그 노래를 들어볼 예정.
아인과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코안의 작업실에 도착했다.
“아! 왔어?”
“네. 코안.”
활기가 도는 코안의 모습.
이런 모습은 또 처음 보네.
“오랜만에 노래하니까 나도 흥이 나는 거 같아.”
“그거 다행이네요.”
“그럼 바로 보여줄까?”
“네.”
시간을 오래 끌 생각은 없으니까.
녹음된 곡을 듣는 자리라 다른 멤버는 보이지 않았다.
코안의 아내만 소파에 누워서 손을 까딱이며 인사했고 나도 눈인사로 인사를 대신했다.
“일단 한 번 들어봐.”
“네.”
코안이 노래를 튼다.
아직 보컬은 녹음 전.
가사도 코안이 쓸 예정이라 내가 건드릴 건 더 없다.
“거의 변한 게 없지?”
“그래도 느낌이 좀 달라졌네요.”
“응, 그건 이 부분이랑....”
코안과 곡에 관한 의견을 나눈다.
내가 만든 곡은 조금 더 대중적인 스타일이었다.
코안은 조금 더 매니아틱하게 편곡했고.
뭐가 더 좋다고 할 수 없는 차이고, 사실 두 곡을 시차를 두고 차례로 들으면 같은 곡이라고 착각할 정도의 변화다.
“으음, 이 편곡에는 어떤 의미가 있죠?”
말을 하고 보니 살짝 공격적인 느낌인데, 순수한 궁금증으로 물었다.
오해가 없도록 설명을 하려는데 코안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입을 연다.
“자네는 노래를 안 하지?”
“네? 그렇죠.”
“무대에서 제대로 노래해 본 경험이 없으니 이 차이가 작게 느껴질 수밖에 없네.”
으음, 아직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흐음, 뭐 후배의 궁금증을 직접 풀어주는 거도 나쁘지 않겠군.”
“잘 보게.”
코안이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편곡하기 전 곡을 먼저 틀어 보게.”
“네.”
헤드폰을 끼고 말하는 코안.
나는 바로 반주를 틀었다.
시작된 노래.
크으, 미쳤다. 진짜.
강렬한 싸운드에 얹어지는 코안의 보컬.
이런 게 찰떡이다 싶은 노래.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한 노래.
굳이 편곡이 필요했던 걸까?
노래가 끝나고 코안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어땠나?”
“완벽했어요. 정말 죽여주는데요?”
“하하. 그럼 내가 편곡한 곡을 틀어 보게.”
“네.”
기대감과 궁금증을 가득 담은 채 코안이 편곡한 곡을 틀었다.
강렬한 소리에 코안의 보컬이 얹어지고 도입부는 비슷하게 흐른다.
어? 이게 뭐야?
다르다. 설명할 수 없지만 묘하게 다르다.
뭔가 더 폭발력 있어 보인달까?
코안이 더 강하게 부르는 게 아니다.
아주 약간의 변화였지만, 확실하게 변했다.
뭐지? 어떻게 된 거지?
나는 곡을 만들 때 분명히 보컬이 들어올 부분을 생각하며 만든다.
보컬도 하나의 악기로 보고 곡을 만든다는 의미.
그렇기에 한 사람에게 맞는 편곡도 가능하고.
가수들이 내 곡을 편하게 부를 수 있도록 해왔다.
코안의 노래가 끝났다. 부스를 나와 나를 보는 코안.
“어땠나?”
“달랐습니다.”
“그렇지?”
“네. 왜? 왜 이런 차이가?”
코안이 씩 웃으며 내 어깨를 토닥인다.
“그건 자네가 알아볼 일이지.”
“네? 아! 그렇군요.”
서운한 목소리가 나왔지만, 코안의 뜻을 따르는 게 좋겠지.
“하하. 주인에게 버림받은 강아지 같은 표정이군.”
“제가 그랬나요?”
살짝 서운한 정도지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힌트를 하나 주지.”
“네. 경청하겠습니다.”
“자네는 보컬을 하나의 악기로 생각하고 곡을 만들지?”
“그렇습니다.”
코안이 유에스비에 방금 부른 두 곡을 옮긴다.
“그게 힌트라네. 자! 집에 가서 열심히 들으며 분석해 보게나.”
“네? 네.”
내 손에 올라온 유에스비.
도무지 뭐가 힌트라는 건지 모르겠다.
몇 번 더 들어보면 답이 좀 나오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 오늘은 이만 가게. 녹음이 끝나면 다 같이 한 번 보지.”
“좋네요.”
“피자집은 너무 머니까 근처에서 보기로 하지.”
“알겠습니다.”
코안과 인사하고 헤어졌다.
차로 걸어가는 내내 생각에 잠겨 걸었지만, 빠르게 답이 나올 문제는 아닌 거 같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코안이 숙제를 내줬어.”
“숙제?”
“응. 집에 가서 들려줄게.”
아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운전을 시작했다.
내 생각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조용한 분위기가 유지된 채 집에 도착했다.
나 혼자 고민해서 답을 찾는 거도 좋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는 거도 좋다.
마침 오늘은 카디, 줄리, 리사가 함께 있으니 다 같이 들어보자.
“허니!”
“브로!”
“민!”
집에 도착하니 편한 복장의 세 여인이 내게 달라붙었다.
“셋 다 잘 있었어?”
“물론이지!”
텐션 좋은 줄리와 부드럽게 웃는 카디.
살짝 개구진 표정으로 내 옆구리를 찌르는 리사까지.
오랜만에 이렇게 모이니까 기분이 좋다.
세 사람의 복귀 날이 잡혔다.
오늘은 그걸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
나를 비롯해 세 사람 모두 유명인이라 어디 나가서 놀지는 못하고 집에서 간단한 파티를 하기로 했다.
뭐, 파티라고 해봐야 맛있는 음식 차려 두고 얘기 좀 하다가 섹스나 하겠지만.
복귀가 얼마 남지 않아서 술은 맥주만 마시기로 했다.
그마저도 인당 2캔으로 제한했고.
내 의견이 아니라 리사의 의견이라 나머지 두 여인도 동의했다.
“자! 그럼 성공적인 민초의 데뷔를 위하여!”
“위하여!”
우리는 맥주캔을 부딪치고 쭉 들이켰다.
아! 그룹명이 민초인 이유는 내가 민트초코를 좋아해서는 아니고.
내 선택이라는 의미다.
min’s choice 의 줄임 말 min cho.
처음에는 내가 반대했지만, 세 여인이 완강히 밀어붙여 확정된 이름이다.
한국인들은 오해할지도 모르지만.
미국은 괜찮다.
미국에서 민트초코는 불호가 거의 없는 맛이니까.
미국 아이스크림 선호도 조사를 보면 민트초코가 4위에 올라있다.
1, 2, 3위는 각각 바닐라, 초콜릿, 쿠키엔 크림으로 무난한 맛인 걸 볼 때 민트초코도 비슷하게 무난한 맛으로 여겨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민초로 그룹명을 정하면 약간 오해의 여지가 있을 거 같아서 말렸는데 세 사람은 오히려 좋다며 끝까지 양보하지 않았다.
나는 그룹 이름 짓는 데에는 뭔가 마가 낀 게 분명하다.
에스걸스도 그렇고 괜찮은 그룹 이름이라곤 슈가 페어리 뿐이다.
생각하니까 보고 싶네.
프로젝트S 끝나고 빨리 보러 가고 싶다.
“아까 들려준다던 건 뭐야?”
“아! 맞다. 깜박했네.”
아인이 넌지시 내게 질문을 던져왔다.
세 여인의 시선이 모이는 건 덤.
나는 아까 받은 유에스비를 꺼냈고 컴퓨터를 켰다.
“코안이 내 곡을 살짝 편곡했는데 일단 들어봐.”
“오! 코안!”
카디가 기대하는 표정을 지었고, 리사나 줄리도 흥미롭게 본다.
시작된 노래.
첫 번째로 편곡하지 않은 내 곡을 들려준다.
“와우! 지져스!”
줄리의 격한 반응. 당장이라도 음악을 틀고 춤을 출 기세다.
살짝 미소를 지으며 줄리를 말린다.
“다음 곡이 코안이 편곡한 버전이야.”
“흐음, 허니 보다 잘 하는 프로듀서는 없겠지만, 코안은 또 궁금하네.”
줄리가 기대하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다시 시작된 노래.
도입부가 지나가고 노래가 점점 절정에 달할수록 네 여인의 표정이 변해간다.
노래의 하이라이트가 지나고 그 후로는 비슷한 전개로 끝난다.
“어땠어?”
편곡 전의 버전을 들었을 때와는 다른 묘한 정적.
그 정적을 참지 못하고 내가 감상을 물었다.
“역시 코안도 천재네. 거기에 경험이 더해지니까 진짜 괴물이다.”
리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고, 카디가 동의한다는 듯 ‘몬스터’라고 한 단어를 말했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거야? 뭐가 달라진 건지 잘 모르겠는데.”
리사가 의문 가득한 눈으로 내게 묻는다.
“일단 이 곡인데 여기랑....”
컴퓨터로 원곡을 띄우고 코안이 편곡한 부분을 보여준다.
리사는 천재니까 뭘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줄리는 혼자 생각에 잠겨 있어 말을 걸기가 어렵네.
“흐음, 난 모르겠다. 이건 거의 똑같은 거나 다름없는데.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거지?”
“그러게. 브로! 코안이 더 힘줘서 부른 게 아닐까?”
“보컬만 떼서 보면 거의 똑같아.”
엠알 제거 버전을 들어보면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다.
물론, 진짜 엠알 제거 버전을 들은 건 아니지만.
그 정도 능력은 여기 있는 모두, 아니, 아인만 빼고 다 있다.
“흐음, 대충 감이 잡히는 거 같은데?”
“줄리?”
사색을 마친 줄리가 묘하게 웃으며 날 본다.
“음, 뭐랄까 정확히 이거다는 아닌데, 으, 설명하기 어려워.”
“천천히 생각해 시간은 많으니까.”
“나는 노래뿐만 아니라 춤도 추잖아.”
“그렇지.”
줄리는 보컬리스트라기보다는 퍼포머니까.
“허니의 노래는 정말 좋은데 그게 문제야.”
“음? 곡이 좋은 게 문제라고?”
“응. 무대에 서서 허니 노래를 부르면 내가 아니라 곡이 주인공이 된 거 같아.”
“주인공?”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는 문제다.
가수가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른다.
그럼 주인공은 무대에 선 가수일까? 가수가 부르는 노래일까?
지금까지 내가 만든 노래를 생각해 보면 내 답은 후자에 가까웠던 거 같다.
부르는 사람의 보컬이 완전히 노래에 녹아들어 가수가 노래 일부가 되도록 했으니까.
“나야 춤을 추면서 무대를 채우니까 내가 보이긴 하겠지만, 노래만 하는 가수들은 조금 다를걸? 어때 리사?”
줄리가 리사를 보며 묻는다.
카디는 랩을 하니까 내 노래가 확실히 보조의 느낌이 강해서 모르겠지만.
리사는 가만히 서서 노래만 하는 보컬리스트니까 줄리가 말한 느낌을 알 거 같다.
“그렇네.”
“그래?”
답을 한 리사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나는 도움을 줄 수 없는 부분이네.”
카디도 내가 생각한 바를 아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리사의 생각이 정리되길 기다렸다.
괜찮다는 의미로 카디를 살짝 안고 토닥인다.
“헤헤. 난 괜찮아.”
“알지. 그냥 내가 만지고 싶어서 그래.”
“그럼 더 만져줘.”
“그래. 하하하.”
웃으며 카디의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확실히 알겠다.”
“그래?”
시간이 조금 지나고 맑은 표정으로 입을 뗀 리사.
“민은 가수를 하나의 악기로 보지?”
“응. 그렇지.”
코안이랑 똑같은 소리를 하네? 역시 리사도 천재가 맞다.
“그래서 가수가 노래하면 그 보컬도 곡 일부가 되는 거야.”
“그렇지 그래야 곡이 완벽해지니까.”
“근데 그렇게 되면 가수의 보컬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그런가?”
아니라고 생각해왔는데.
가수가 곡에 녹아들어 완벽하게 균형이 잡힌 곡을 부른다.
당연히 듣기에 좋고 자연스럽게 그 가수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될 줄이야.
“뭐가 다른지 알겠어?”
내가 생각에 잠기니 리사가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말한다.
“약간? 감은 잡히는 거 같아.”
“흠, 이건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야. 민은 천재니까 곧 깨닫겠지, 뭐.”
“하하. 그건 좀 부담스럽네.”
어느 정도 문제가 해결된 거 같다. 아니, 해결보다는 감은 잡은 거 같다.
그런 분위기를 읽었는지 카디가 다시 야한 손짓으로 내게 얽혀왔다.
그럼 다시 파티를 즐겨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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