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350화 (350/450)

350.

“자! 이번엔 에스민 프로듀서가 드디어 나왔네요.”

“하하. 오래 걸렸네요.”

룰렛이 4번 돌아가는 동안 존과 신디만 2번씩 걸렸다.

두 사람은 무난하게 한 명씩 이름을 쭉 붙였다.

대결은 총 네 번.

VS가 쓰인 왼쪽에는 차례로 벨, 존, 나, 신디가 붙어있다.

“으음, 보고 싶은 대결이 있네요.”

나는 웃으며 벨의 사진을 들었다.

그대로 존의 사진 옆에 붙였다.

“이로써 정해진 첫 대결은 벨 프로듀서와 존 프로듀서의 대결이네요. 크으, 경험 많은 두 프로듀서 간의 대결. 벌써 긴장되는 거 같습니다.”

벨은 날 보며 피식 웃었고, 존은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자! 벨 프로듀서님 첫 대전 상대가 정해졌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으음, 존은 훌륭한 프로듀서죠. 긴장되네요.”

“약한 소리를 하시네요? 하하. 그렇다면 존! 존은 어떤가요?”

“저 역시 벨 선배를 평소....”

존의 긴 소감.

진행자가 타이밍 좋게 존의 말을 끊는다.

“존 프로듀서도 많이 긴장한 거 같네요. 하하. 그럼 다시 룰렛을 돌려 볼까요?”

다음으로 나온 건 벨이었다.

으음, 이거 벨이 나 뽑을 거 같지?

“후후, 도발의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네.”

역시. 벨이 자신의 사진을 내 옆에 붙였다.

으음, 내 첫 상대는 벨이네.

저 대진 순서가 라운드 순서이기도 하다.

첫 라운드에서 벨과 존이 붙고.

삼 라운드에 나와 벨이 붙는다.

남은 사진은 나와 신디.

남은 자리는 신디의 상대와 존의 상대다.

“자! 에스민 프로듀선님 아까 질 자신이 없다고 하셨는데 여전히 같은 생각이신가요?”

“하하하. 아까는 재미를 주기 위한 농담이었고. 저도 많이 긴장됩니다.”

“갑자기 약해지셨는데요? 그럼 벨 프로듀서님 에스민 프로듀서를 선택한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진행자의 말에 벨이 날 보며 웃는다.

“에스민 프로듀서는 농담이었을지 몰라도 저는 진심이었으니까요. 경험의 무서움을 깨닫게 해드리죠.”

하긴, 벨이 보기에 내 경험은 미천한 거나 다름없지.

“하하. 이거 살 떨리는데요? 자! 그럼 마지막 룰렛을 돌려 보겠습니다!”

룰렛이 돌아간다.

선택된 건 신디!

신디가 여기서 운이 좋네.

“흐으음.”

고민에 빠진 신디다.

지금까지 신디만 유일하게 대전 상대가 없다.

“아! 방금 제작진에서 연락이 왔네요. 남은 자리가 하나뿐이라고.”

“그렇네요.”

고민하던 신디가 고개를 끄덕인다.

4라운드에는 이미 신디가 붙어있다.

남은 사진은 나와 신디 둘.

신디가 신디와 붙을 수는 없으니 2라운드는 자연스럽게 존과 신디가 붙고.

4라운드는 신디와 내가 붙는다.

“이렇게 대진이 완성됐습니다. 그럼 신디 프로듀서의 소감을 들어 볼까요?”

“아으, 벨 프로듀서와 경쟁하지 않은 건 좋은데. 그렇다고 다른 프로듀서랑 붙는 게 좋다는 건 아니고....”

제대로 말 못 하고 긴장해 횡설수설하는 신디.

진행자가 그런 신디를 귀엽다는 표정으로 보다가 말을 끊었다.

“그냥 잘 모르겠다는 거죠?”

“네? 아! 헤헤. 그렇죠.”

신디도 많이 떨고 있네.

“자! 그럼 다음 주에 있을 대결을 기대해 주세요!”

촬영이 끝났다.

내 상대는 벨과 신다.

나갈 팀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우리 팀 중 어떤 팀을 어느 프로듀서와 대결시킬지는 프로듀서의 재량.

고민을 좀 해봐야겠네.

그 전에 모든 팀원과 진행팀이 제공해준 근처 연습실로 함께 이동했다.

스튜디오 촬영은 끝났지만, 촬영이 다 끝난 게 아니니까.

우리 팀의 곡을 정하고 연습하는 모습을 찍을 예정인 거 같다.

뭐, 방송에는 짧게 나가겠지만, 그렇다고 안 찍을 순 없겠지.

“자! 곡이 정해진 세 사람 먼저 볼까요?”

“준비됐습니다.”

“아직 가사를 완성하지 못했어요.”

“아! 가사 쓰고 있어요?”

루 밀러가 내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아마도 자신에 맞게 새로 가사를 쓸 모양.

당연히 대환영이다.

“그럼 일단은 원래 가사로 불러 보고 가사가 완성되면 제게 보내 줄래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원래 가사를 외우진 못해서 보고 해도 될까요?”

“당연하죠.”

다른 여인들도 스마트 폰으로 가사를 검색해 들고 노래를 한다.

신나는 분위기의 힙합곡이지만, 따로 춤을 출만한 곡은 아니다.

힙합에 댄스가 잘 어울리기도 하지만, 이 노래는 춤을 추기보다 멋이게 돌아다니는 게 더 좋은 노래.

세 사람은 나름대로 방방 뛰며 무대를 했다.

나쁘지 않네.

넬의 랩이 수준급이라서 두 사람의 보컬이 잊히는 게 흠이지만.

두 사람도 넬의 실력을 알기에 일부러 이렇게 한 거 같다.

나름 전략적으로 잘 짰네.

그래도 너무 묻히면 위험하니까 두 사람의 기량을 올려줄 필요는 있겠다.

“넬은 빠르게 가사 완성해요. 연습 들어갈 때 알려 주시고. 두 분은 내일 연습실로 와 주세요. 트레이닝이 필요할 거 같네요.”

“알겠습니다.”

두 여인을 보며 말했고, 넬에게는 가사를 먼저 완성하라는 말만 해뒀다.

뭐, 넬은 따로 볼 마음이 들지는 않으니까.

카디가 시간 날 때 한 번 소개는 해야지.

미국인 3인방이 활동 시작하기 전에 한 번 부르긴 해야겠네.

“자! 그럼 세 분은 돌아가도 좋아요. 두 사람은 내일 봐요.”

“네. 내일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가사를 최대한 빠르게 완성해 보겠습니다.”

“그거 좋네요.”

세 명이 연습실을 나갔고 나는 남은 두 여인을 봤다.

“자! 그럼 뭐가 문제였는지 말해 볼래요?”

“그, 딱히 문제는 아니고.”

“문제가 아니라니! 맞지! 이런 건 프로듀서의 도움을 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그, 그렇지.”

으음. 벌써 두 여인의 성향이 완전히 달라 보였다.

“자! 말싸움은 됐고 이유나 말해봐요.”

“저희 둘의 보컬이 너무 안 맞습니다.”

릴리가 진지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곡을 정하려면 한 명이 희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흐음.”

릴리의 목소리는 가늘고 약간 우울한 정서가 있는 알엔비에 특화된 목소리다.

반면의 루의 목소리는 밝고 신나는 톤에 살짝 허스키함이 담겼다.

교태 넘치는 목소리라 노래할 때도 나오는 교태가 있다.

릴리에게 어울리는 우울한 노래에는 교태가 들어가면 안 되고.

교태 넘치는 신나는 곡에는 릴리가 어울리지 않는다.

그건 처음 팀을 짤 때 예상하긴 했다.

하지만, 교태 있는 보컬은 조금만 손 보면 아련한 슬픈 보이스로 바꿀 방법이 있다.

루가 그걸 모르는 거 같지만.

뭐, 드림 스테이지에 나왔던 흥 넘치던 남성 참가자처럼.

루의 몸에도 흥이란 게 박혀 있는 거 같으니까.

아니, 루는 흥 보다는 애교에 가까운 거 같다.

뭔가 귀여우면서도 살짝 색기가 흐르는 루.

그런 애가 우울한 노래를 부르면 안 어울리긴 하지.

내가 두 사람에게 시킬 노래는 섹시한 알엔비다.

남성을 유혹하는 느낌의 노래를 시킬 생각.

루는 뭐 내가 잡아먹은 다음에 교태를 업그레이드시키면 충분할 거 같고.

릴리는 그런 곡은 상상도 안 해본 거 같은데 또 시키면 곧잘 할 거 같다.

우울해서 나오는 소리와 섹시하게 나오는 소리는 비슷한 계열이니까.

두 사람에게 하나의 곡을 추천한다.

“으음, 이걸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저! 이 곡 알아요!”

루는 신나서 곡을 흥얼거렸고 릴리는 살짝 어색한 얼굴로 날 봤다.

자신이 섹시한 건 못 할 거로 생각하는 걸까?

조금 긴장한 거 같은 모습.

살짝 부끄러워하는 거도 같고.

흑인이라 볼이 붉어져도 티가 안 나니까 잘 모르겠네.

“일단 내일모레까지 연습해 봐요.”

“네!” “후우, 해보겠습니다.”

두 사람은 모레 연습실에서 보기로 했다.

모두 다 모아서 연습해도 되겠지만, 아까 둘과 비교하면 이번 두 사람은 조금 더 시간을 줘서 자신이 뭐가 부족한지 알아야 하니까.

미리 답을 듣고 문제를 풀기보다는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도움을 받는 게 훨씬 도움이 되니까.

흐으음, 그럼 내일 이쁜이들을 어떻게 요리할지 고민 좀 해야겠는데.

그 전에 어떤 팀을 어디와 붙이는 게 좋을까?

솔직히 말해서 신디네 팀은 어려운 상대는 아닐 거 같다.

벨은 확실히 어려운 상대고.

벨에게 도발 당한 만큼 이기고 싶긴 하지만.

안전하게 가고픈 마음도 없지 않다.

그래. 릴리랑 루의 무대가 어떻게 변할지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

조금 시간을 가지고 지켜보자.

다음날 오전.

연습실에 도착해 새로 생긴 휴식룸을 보고 있다.

카디네 회사 연습실이지만, 카디는 따로 연습실을 가지고 있어서 별로 신경 쓰지 않던 공간.

그 안에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몇 가지 다과를 먹을 수 있는 탕비실 비슷한 공간이지만, 내가 우겨서 커다란 소파를 넣었다.

물고 빨고 엎치락뒤치락해도 될 만큼 좋은 소파.

당연히 사장은 내 의도를 알아챘고, 탕비실에는 방음을 위한 설비와 밖에서 보이지 않는 인테리어를 채택해줬다.

지금 보니까 방수 커버까지 씌워놨네.

역시 사람은 이렇게 센스가 있어야 한다.

뭐, 그러니까 카디가 계속 같이 데리고 가는 거겠지.

“여기는 이 정도면 됐고, 슬슬 올 시간이 된 거 같은데.”

두 사람을 한 번에 부르지 않고, 오전에 한 명 오후에 한 명 불렀다.

그래야 여로모로 작업치기가 편할 테니까.

미리 관계를 맺은 사이도 아닌데.

섹스 하고 올 테니까 기다리라고 할 수도 없으니까.

“후우, 왔구나.”

연습실 문이 열리고 몰 바튼이 쭈뼛거리며 들어왔다.

“왔어요? 이리 와요.”

“아, 안녕하세요.”

작고 귀여운 몰 바튼.

방송이 없어서 수수한 모습으로 온 거 같은데 그 모습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박시한 티셔츠에 트레이닝복 바지.

티셔츠가 거의 무릎까지 내려와서 귀여움을 한껏 부각하는 거 같다.

“물 드릴까요?”

“네.”

긴장했는지 쭈뼛거리며 말하는 모습도 사랑스럽다.

내가 요즘 욕구가 늘었나?

왜 이렇게 발정이 났지?

별거 아닌 모습에도 자꾸 아빠 미소가 새 나오는 거 같단 말이지.

이게 몰 바튼의 매력인 건가?

양손으로 물통을 받아 조심스럽게 마신 몰.

나는 의자를 가져와 앉으며 몰에게 말을 걸었다.

“선곡을 정한 이유는 알 거 같은데 아쉽지 않아요?”

“그래도오. 이기는 게 먼저니까요.”

성격도 조금 소심한 거 같지?

아마도 곡 선정할 때 아무런 의견도 못 내고 옆에서 고개만 끄덕였을 거 같다.

안 봐도 뻔했을 모습이 상상이 간다.

“그럼 한 번 불러 볼래요?”

“네!”

노래는 먼저 시켜봐야지.

목을 가다듬은 몰 바튼은 본인의 음색을 살려 신중하게 노래했다.

으음, 역시 마지막에 뽑힌 참가자 답게 노래는 조금 부족하네.

“어, 어땠나요?”

“많이 부족하네요.”

“흑.”

내 혹평에 충격을 받았는지 잔뜩 긴장해 몸을 굳히는 몰.

“걱정 말아요. 제가 그걸 해결하기 위해 부른 거니까요.”

“네.”

부드럽게 말했지만 몰의 긴장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으음, 잠시 이쪽으로 올래요?”

“네.”

몰을 데리고 휴게실로 이동한다.

커다란 소파에 몰을 앉히고 옆에 조금 거리를 두고 앉았다.

“몰, 본인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해요?”

“어, 으, 음, 그, 그게.”

총체적 난국이라 그런가?

본인도 본인의 문제가 뭔지 모르는 거 같다.

“호흡, 발성, 리듬감, 음정, 박자. 하나도 잘 하는 게 없어요.”

“아으.”

울 것 같은 얼굴로 내 말을 들은 몰.

“가수가 하고 싶어요?”

“네! 꼬, 꼭 하고 싶어요.”

“왜요?”

“으으, 그, 그게.”

몰은 어떤 얘기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노, 노래가 너무 좋아요. 이왕이면 제가 부르고 싶어요.”

딱히 사연은 없는 거 같다.

“좋아요. 제가 도와줄게요. 그럼 노래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요?”

“감정이요?”

“감정?”

신선한 대답이네.

감정이 중요하긴 한데, 그건 지금 레벨에서 할 얘기가 아니긴 하다.

“감정이 담긴 노래는 조금 못 부르더라도 무, 뭔가 와닿는 거 같아요.”

그것도 맞지.

그러나 감정을 잘 살려 부르려면 노래 실력이 받쳐줘야 한다.

못 부른 노래에 감정을 싣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건 가르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노래에 감정을 담으려면....”

내 생각을 진지하게 말로 전하자 몰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했다.

“너무 어려운 얘기였나요?”

“아, 아뇨! 조, 좋은 말씀이었어요.”

이론적인 얘기는 빼고 슬슬 몰이랑 섹스 각이나 잡아보자.

나와의 섹스는 가수에게 있어서 만병통치약이나 다름없으니까.

어떤 이론과 연습을 때려 박는 거보다 훨씬 효과 좋은 수업이지.

“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지금 몰에게 가장 필요한 건 뭘까요?”

“저한테 필요한 거요?”

몰은 불안한 표정으로 눈알을 굴렸고, 나는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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