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344화 (344/450)

344.

“노래를 듣고 어떤 감정을 느꼈죠?”

“오우! 엄청 고통스러웠다고. 아프고! 절망적인 느낌이었어.”

“근데 왜 노래에서 그걸 하나도 표현하지 않았나요?”

“표현하려고 노력한 건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모든 고통과 절망은 슬픔에서 시작된 겁니다. 그런데 당신은 전혀 슬프게....”

신랄한 비평.

내가 느낀 문제점을 돌리지 않고 조목조목 설명했다.

“오우. 너무 어려운걸.”

“어렵죠. 노래를 잘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렇지.”

“그럼 당신이 가진 문제점이 뭐라고....”

그렇게 한 시간에 가까운 설교가 이어졌다.

나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지만.

이 정도로 말하지 않으면 설명하기가 힘들다.

“느낌은 조금 알 거 같아!”

“느낌이라도 잡았다니 다행이네요. 다시 불러볼 수 있을까요?”

“시간을 좀 줘.”

“얼마든지.”

남자는 옆으로 빠져서 홀로 연습했다.

그러길 30분.

“나 조금 느낌이 나는 거 같아.”

“그래요?”

그렇게 혹평과 설교를 들었는데 여전히 텐션 좋은 남자.

계속 텐션이 좋으니까 괜스레 심술이 나는 거 같다.

뭐랄까? 골려주고 싶달까?

그렇다고 방송에 나올 건데 아무 말이나 던질 순 없어서 참는다.

후우, 무대만 잘 하면 되지 뭐.

골려주려는 마음을 숨기고 최대한 노래를 봐준다.

“지금도 너무 가벼워요. 으음, 우리 이렇게....”

슬픈 경험을 한 적 있는지.

어떤 감정이었는지 감정적인 부분을 건드린다.

이것도 다 유티비 각이지.

사연 없는 참가자도 있겠지만.

대부분 사연 하나씩은 있지 않겠어?

물론, 사연이 너무 기구해서 뽑힐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최종 선택은 내가 한다.

사연빨로 뽑힌 참가자에게 내 곡을 넘겨줄 생각 없다.

무조건 실력이지.

“으음,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아버지는....”

꽤 진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미국에서 가난한 흑인으로 어린 시절을 버텨낸 이야기.

한국에서 자란 나야 많은 공감을 하긴 힘들겠지만.

미국인들은 좀 다르겠지?

잘 편집하면 꽤 눈물을 짜낼 얘기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럼 아버지를 생각하며 노래....”

격해진 감정에 내가 원하던 감정선이 나왔다.

그대로 시켜본 노래.

“워우우, 우우.”

얘는 글렀다.

그 아프고 힘든 사연을 말하고 부른 노래에도 기본적인 흥이 있다.

으음, 이게 흑인 특유의 흥은 아닌 거 같은데.

내가 아는 흑인 보컬 중에 가슴을 베는 듯 슬픈 노래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 친구는 그냥 노래에 버릇이 안 좋게 든 거 같다.

그래도 여기서까지 비평하면 내가 사이코패스같이 나오겠지.

그냥 말을 아끼자.

그렇게 연습을 끝내고 참가자를 보냈다.

딱 맞게도 드림스테이지나 프로젝트 S나 참가자가 10명이다.

10일이 지나고 모든 참가자의 레슨이 끝났다.

“후우, 힘든 나날이었다.”

매일 연습실로 출근해 연습을 봐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3일 후면 모든 영상이 공개되고, 거기서 2일만 더 지나면 결과가 나오겠네.”

코안이 어떤 자극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해 드림스테이지 참가자들을 갈궜다.

새로 올라온 무대 영상들의 반응은 엄청났고.

내가 보기에도 훨씬 좋아졌으니까.

이대로만 해준다면 모두 본선 무대에 설 수 있을 거 같다.

그리고 3일이 더 지났다.

“후우, 두 명 탈락이네.”

“조금 아쉽다.”

“그러게.”

최후에 레슨을 받은 두 사람의 반응이 꽤 안 좋았다.

내가 보기에도 태도가 너무 불량했다.

내가 뭘 아냐는 식으로 레슨을 듣던게 생각나 기분이 좀 안 좋다.

조금 심하게 갈구긴 했는데.

뭐, 그래도 틀린 말 하는 건 아니니까.

본인이 인정하고 바뀌었다면 더 좋은 가수가 됐겠지만.

여전히 자신이 짱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 같다.

그 결과는 우리가 정하기 전에 시청자들의 평가에서 이미 나타났다.

우리는 커뮤니티에 모든 참가자 이름을 걸고 투표를 했다.

1만 표.

우리가 내건 조건은 1만 표였다.

1만 표를 넘지 못한 참가자는 단 두 명.

뭐, 본인들은 영상이 나중에 공개돼서 불리하다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공개된 영상의 조회 수는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댓글만 봐도 상황을 알 수 있고.

칭찬이나 기대된다는 평이 가득한 다른 참가자에 비해.

조금 아쉽다거나, 본선에 오를 실력은 아닌 거 같다는 평이 대다수다.

뭐, 본인들이 인정 안 하면 어쩔 건데.

이미 우리가 탈락시켜서 무대에 안 올리기로 했는데.

“그럼 여덟 명 공연이네. 그 전에 한 번 모아야겠다.”

“또?”

“나도 최선을 다해야지.”

프로젝트 S도 방영을 시작했다.

슬슬 다음 촬영도 시작된다.

넌지시 다음 미션에 관해서 피디님께 물어봤지만.

비밀로 하는 게 딱 내 생각과 일치할 거 같다.

팀 내 대결로 몇 명 떨구고 가겠지.

흔한 클리셰니까.

프로젝트 S의 열 명 참가자는 내가 따로 건드리지 않았지만.

팀 내 대결이 끝나면 본격적인 트레이닝에 들어갈 생각이다.

몸으로 하는 트레이닝.

크으, 벌써 자지가 껄덕이는 게 꽤 기대된다.

이래서 책임감 없는 자리가 참 좋다.

“후우, 그럼 가볼까?”

“그래.”

오늘 하루는 꽤 빡빡한 스케쥴이 있다.

원래 한국에 가려고 뺐던 스케쥴이 꽤 있는데.

한국에 안 가게 돼서 며칠간 스케쥴을 몰았다.

인터뷰를 가장한 내 홍보용 스케쥴.

여러 매체의 인터뷰와 토크쇼 하나에 출연한다.

이번 토크쇼는 사실 내가 메인이 아니고 토리스가 메인이다.

토리스의 권유로 함께 출연하게 된 꽤 커다란 토크쇼.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토크쇼 3개를 찍어 보라고 하면 꼭 들만한 그런 쇼다.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오늘은 정말 기대 이상의 손님이 방문해주셨는데요.”

익숙한 얼굴의 진행자가 쇼를 진행한다.

오늘 내 역할은 많지 않으니 마음이 편하다.

“긴장을 하나도 안 했군.”

“하하. 제가 긴장할 자리가 아니니까요.”

“그런가? 하하. 오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르는데?”

“제가요? 에이, 주인공은 당연히 토리스죠.”

대기석에서 잡담을 나누다 보니 입장 시간이 왔다.

토리스가 먼저 입장을 했고 몇 가지 토크가 진행된다.

그 후로 토리스가 초대한 손님으로 내가 입장을 했다.

어떤 생각을 하면서 곡을 썼냐.

처음부터 토리스를 염두에 두고 쓴 곡이냐.

다음 활동은 어떤 계획이 있냐.

여러 가지 예상했던 질문들이 나온다.

프로젝트 S와 드림 스테이지.

멜스의 신곡과 줄리, 카디, 리사 3인방의 프로젝트 음원이 나온다는 홍보를 한다.

코안의 얘기도 살짝 꺼낸다.

“밴드 앨리스와도 진행 중인 이야기가 있어요.”

“오우! 코안은 게으르기로 유명한데 그를 유혹할만한 노래를 만든 건가요?”

“하하. 저도 코안의 게으름을 이기진 못했습니다.”

“유감이네요. 하하하.”

즐거운 분위기의 토크쇼가 끝나고 토리스의 사무실에서 차를 한 잔 마신다.

토리스가 요청한 자리.

“으음, 자네에게 이런 부탁을 하기엔 조금 미안한 거 같지만, 어디 딱히 말할 곳이 없었네.”

토리스가 미안한 기색을 비치며 말을 꺼냈다.

나한테 부탁을?

“내가 곧 앨범이 나오지 않나.”

“그렇죠. 엄청 기대하고 있어요.”

“거기에 문제가 생겼네.”

“문제요?”

토리스가 표정을 구긴다.

“다음 타이틀로 쓰려던 곡이 있었다네.”

“네.”

“그 곡이 표절로 밝혀졌네.”

“헐.”

아무래도 가수에게 표절은 민감한 사항일 수밖에 없다.

직접 노래를 만드는 작곡가에게 더 민감한 사항이긴 하지만.

가수는 이미지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다.

본인이 만든 곡도 아닌데, 단지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여러 문제가 생긴다.

그 곡이 표절곡인지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표절곡을 부른 가수의 이미지는 좋을 수 없다.

그렇기엔 토리스급 정도의 대스타는 표절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 토리스가 앨범을 내기 직전에 표절을 알아냈다니, 꽤 표절을 잘 했나 보다.

“한 번 들어보겠나?”

“네? 그러죠.”

표절곡을 왜 나한테?

토리스가 폰으로 노래를 틀었다.

크으, 노래는 진짜 잘 한다.

근데 표절?

음? 뭐지? 뭐야? 왜 이래?

“이건.”

“그래. 자네 곡을 표절한 거 같지 않나?”

“으음. 애매하네요.”

아리송할 정도의 표절이다.

아니, 표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도 알고 있네. 뭔가 이상한 느낌 정도지 정확하게 표절이라고 하기 힘들다는 걸.”

“그렇죠.”

“그런데 미리 공개한 자네 곡이 있는데, 자네가 쓴 곡과 비슷한 느낌의 곡. 그것도 다른 사람이 쓴 곡을 다음 곡으로 하자니 조금 마음에 걸렸다네.”

내가 한국에서 낸 곡이다.

상대적으로 미국에는 덜 알려졌겠지만.

아는 사람은 알겠지.

나름 한국에서는 꽤 유명했으니까.

이대로 낸다고 해도 토리스에게 문제는 별로 없을 거다.

아마 내가 표절이 아니라고 인정할 테니까.

그래도 서로 간의 예의? 그런 게 있다.

내 곡이 마음에 들었던 토리스는 이 곡을 그냥 넘길 수 없었겠지.

“그래서 제게 하실 부탁은 뭔가요?”

“으음, 곡을 하나만 더 써줄 수 있겠나?”

“제 곡이요?”

나야 토리스가 다음 활동까지 내 곡으로 해준다면 완전 땡큐다.

“회사에서 논의한 결과 자네와 다음 곡도 함께 하는 것이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네.”

“아직 곡도 안 들어보셨는데요?”

“자네가 지금껏 써온 노래들을 들어봤지 않나.”

“으음. 그건 그렇죠.”

내 노래가 토리스에게 이 정도의 믿음을 줄 수 있다니 놀라웠다.

하긴, 음악으로 경지에 오른 사람은 내 곡이 얼마나 특별한지 다 알겠지.

곡을 잘 만들었다, 못 만들었다는 문제가 아니다.

특별한 기운. 마기의 존재를 느끼는 거다.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은 다들 몸에 마기 비슷한 기운이 들어 있으니까.

내 곡에 성공의 기운이 느껴지는 거지.

감으로 이 곡은 될 거 같다고 본능적으로 느낄 수밖에.

“힘들겠나?”

“요즘 제가 좀 바쁘게 지내서 곡을 많이 못 썼거든요. 아마 지금부터 작곡에 들어가야 할 텐데 말이죠.”

“얼마나 걸릴 거 같나? 아! 그걸 알 수가 없겠지?”

작곡가의 곡은 빠르면 몇십 분 만에도 나오고, 몇 년이 지나서 완성되기도 하니까.

“그게 문제죠. 아무튼, 빠르게 곡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으음, 사실은.”

토리스가 머뭇거리며 내 눈치를 본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래?

“이번 드림 스테이지 예선을 유티비에서 봤네.”

“아! 그래요?”

“그 곡이 탐난다네.”

“네?”

으음, 이건 얘기가 달라지는데.

“사실 이번에 심사위원 자리를 못 하게 된 게 새로운 곡을 구하기 위함이었다네.”

토리스가 천천히 차를 한 잔 마신다.

“마음에 드는 곡을 구하진 못했지만.”

토리스 마음에 드는 곡이 뚝딱 하고 나오진 않을 테지.

뭐, 지금까지 그래서 꽤 바빴겠네. 내가 드림 스테이지 스케쥴을 연기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심사는 못 했겠지.

지금은 미뤄져서 어느 정도 시간이 난 거고.

“그래서 궁금증에 자네 유티비를 봤다네.”

“아.”

대충 알 거 같다.

유티비를 보고 이번 드림 스테이지 노래를 들었다.

근데 완전 마음에 든다고?

“으음, 이거 좀 곤란하네요.”

“한 번 들어보겠나?”

“으음, 아니요. 마음이 약해질 거 같아서 안 들을래요.”

“단호하구먼.”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이미 방영된 방송이 있다.

열 명의 참가자가 유티비에 개인 무대까지 올리며 이슈 몰이를 했다.

그런데 인제 와서 토리스에게 그 곡을 준다?

그건 너무 배신하는 느낌이다.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얼마든지 생각하게.”

아니, 이 자리에서 말고 며칠 시간을 달라는 거잖아.

“으음, 오늘은 말고 다음에 다시 뵙죠.”

“긍정적으로 생각해줬으면 좋겠군.”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토리스와 얘기를 마치고 나왔다.

가볍게 차나 한잔하는 자리에서 꽤 어려운 숙제를 받아버렸다.

“후우.”

“왜? 무슨 일 있어?”

차에 타서 아인이에게 있었던 일을 쭉 읊었다.

“으음, 가서 다 같이 고민해볼 문제네.”

“회사에는 일단 알려야겠지?”

“알린다고 해도 뾰족한 수는 없겠지만.”

“그건 그래.”

그래도 회사에 문자로 상황을 전달했다.

뭐, 회사에서 내게 이래라저래라 하진 않지만.

어떻게 행동하는 게 좋을지 합리적으로 분석해 주는 편이니까.

시간이 많지 않았다.

드림 스테이지의 본선 무대는 이제 2일 남았으니까.

그때까지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으음, 이건 어때?”

“어떤?”

줄리가 의견을 하나 냈다.

“토리스가 할까?”

“물어나 보는 거지. 싫으면 말라고 하고.”

“으음. 조금 미안한 기분인데.”

“에이, 우리가 미안해할 게 뭐 있겠어.”

하긴, 토리스가 먼저 요청한 일이니까.

우리는 선택권을 줄 뿐이다.

토리스에게 연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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