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331화 (331/450)

331.

우승한 두 사람과는 바로 만났다.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고 싶으실 텐데 이렇게 불러서 죄송하네요.”

“하하, 아닙니다.”

“아니에요.”

정중하게 인사하는 남자와 수줍게 웃는 여자.

여자 참가자의 이름은 멜스 막로디.

남자 참가자의 이름 따위는 기억하지 않는다.

“조금 더 부르는 사람에 맞게 살짝 편곡할 생각이에요.”

“영광입니다.”

“호호. 좋네요.”

두 사람 성향이 확실히 갈리네.

개성 넘치는 무대를 보여줬던 멜스는 그만큼 자유분방한 느낌으로 대화를 이어나갔고.

남자는 정석적인 무대를 보여준 만큼 각 잡히고 예의 바른 느낌이다.

으음, 비주얼만 보면 형 같은데?

이력을 한 번 보긴 해야겠다.

아니지, 미국에선 형 동생 문화가 그리 없으니 중요하지 않겠다.

“먼저 불러 보실까요?”

남자 참가자 먼저 시켰다.

“잠시 앉아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네. 얼마든지요. 와! 이런 구경은 흔치 않잖아요! 너무 신기해요.”

엄청 밝은 친구네.

분위기가 살짝 위축될만한 느낌도 없지 않아 있는데.

확실히 이 남자는 부스에서도 꽤 위축된 모습이니까.

밝은 표정으로 신기한 듯 바라보는 그녀의 푸른 빛 눈동자가 보석같이 아름다웠다.

“눈이 참 이쁘네요. 하하. 앞으론 자주 보게 될 거예요?”

“앗! 헤헤. 감사해요.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살짝 상기돼 말하는 멜스.

으음, 날 자주 보고 싶다는 건지 음악 작업을 자주 하고 싶다는 건지 잘 모르겠는 묘한 모습이었다.

뭐, 둘 다겠지.

“그럼 잠시.”

“네. 쉿! 하고 있을게요.”

“너무 그럴 건 없어요.”

딱히 작업하면서 예민한 편은 아니니까.

“자! 일단 한 번 불러 볼까요?”

오늘은 녹음이 목적이 아니니 보컬을 혹사할 생각은 없다.

노래를 들으며 편곡 방향을 정하고 노래가 끝날쯤이면 대충 가닥이 잡힌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네!”

힘차게 답한 남자 참가자.

그를 두고 빠른 속도로 곡을 수정한다.

이미 알려진 곡이기에 많이 바꿀 생각은 없다.

이질감을 느끼면 대중이 의아해할 수도 있으니까.

약간의 차이로 부르기 더 쉽게.

보컬이 곡에 더 잘 어울리게 바꾸는 정도.

오 분도 걸리지 않아 편곡이 완성됐다.

“자, 한 번 들려줄게요.”

“알겠습니다.”

편곡을 끝내고 그를 보며 말했다.

긴장한 표정.

뭔가 대단한 게 나올 거 같은 표정이라 조금 장난이 치고 싶었지만, 딱히 장난칠 거리가 없어 아쉬웠다.

새로 편곡된 곡이 끝나고 남성의 표정은 모호했다.

“불러 보면 뭐가 다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음악에 지식이 많은 참가자는 아닌 거 같네.

“와아.”

뒤에서 멜스의 감탄이 들려온다.

“왜요?”

“신기해서요.”

“뭐가요?”

“으음, 말로 설명은 못 하겠는데 기성복을 개인에 맞춰 수선한 느낌이랄까요?”

음, 정확하네.

“자! 불러 볼게요.”

“네!”

반주를 틀었다.

집중해서 노래하는 남성 참가자.

확실히 전보다 듣기 좋아진 곡.

노래가 끝나고 남성 참가자는 꽤 흥분된 표정이다.

“지, 지니어스.”

“하하. 땡큐.”

놀라움에 감탄하는 참가자에게 밖으로 나오라는 말을 했다.

“편곡한 반주 드릴 테니까 연습해 오세요.”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진짜 군기 바짝 든 신인 가수 보는 거 같다.

아! 신인 가수구나.

“이제 가보셔도 돼요.”

“알겠습니다.”

조금 더 남아서 구경하고 싶은 눈치 같은데 내 말에 거역할 수 없는지 아쉬움이 묻어나는 걸음걸이로 밖으로 나간다.

그가 나가고 나는 멜스를 봤다.

“이제 제 차롄가요?”

“그렇죠. 들어가 볼래요?”

“네! 저 너무 기대돼요. 아! 떨려라.”

“떨면 안 되는데.”

씽긋 웃는 멜스.

나중에 농담하면서 티키타카 하면 재밌을 거 같은 성격이다.

친화력도 좋은 거 같으니 금방 친해질 수 있겠네.

뭐, 내가 여자와 친해지는 건 주로 침대에서지만.

반주가 나오고 멜스가 노래를 부른다.

으음, 확실히 독특한 분위기다.

남자 참가자보다 훨씬 편곡할 게 많은 거 같은데.

노래를 들으며 편곡 방향을 정하는데 쉽지 않았다.

“으음.”

“왜요?”

“잠깐 나와 볼래요?”

“아! 네.”

워낙 유니크한 느낌이 강해서 여러 가지 느낌을 살리고 싶은데.

그러자면 곡이 너무 변하는 거 같고.

그렇다고 조금만 바꾸자니 유니크함이 덜 사는 거 같아서 싫다.

이럴 땐 보컬의 의견을 들어보는 게 좋지.

“멜스. 당신의 보컬은 꽤 유니크해요.”

“네. 그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

“고민이 있는데....”

곡이 조금 달라지더라도 본인의 매력을 더 살리고 싶은지.

아니면 원곡의 느낌을 최대한 가져가면서 가능한 최선의 다해 본인의 매력을 살릴지를 묻는다.

“곡이 달라지면 아무래도 대중성은 떨어질....”

이건 취향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

전자는 대중성을 조금 포기하고 취향에 맞는 충성 팬을 늘리는 방향이고.

후자는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방법이다.

“으음, 아까 저 아저씨가 대중성은 저보다 더 잘 잡을 거 같네요.”

“그건 맞죠.”

정석적으로 노래를 잘 하는 참가자였으니까.

“그럼 저는 저만의 팬을 거느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자기주장이 확실한 성격이네.

난 우유부단한 성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그런 편이라 둘 다 우유부단하면 여러모로 고민이 길어지니까.

멜스는 오래 고민도 안 하고 상황을 파악해 정리했다.

꽤 마음에 드는 모습이다.

“그럼 그렇게 하죠. 조금 기다릴 수 있죠?”

“그럼요. 전 오늘 지인도 안 왔는 걸요.”

몰랐던 사실이네.

“왜요? 많이 바빠요?”

“헤헤. 아뇨. 멀리 있어요.”

“멀리?”

곡을 편곡하며 대화를 나눴다.

멜스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목소리 톤에 거의 모든 감정이 담긴 거 같아서 안 봐도 표정을 유추할 수 있을 거 같다.

“가족들은 일본에 살고 있어요.”

“일본? 혼혈이에요?”

“아뇨. 저도 부모님도 조부모님도 모두 미국에서 나고 자랐어요.”

“근데 왜 일본에?”

약간 서운한 목소리로 말하는 멜스.

“아버지가 회사를 운영....”

사정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가 확장을 위해 일본에 진출했고 그 때문에 온 가족이 일본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외동딸이라 아버지가 일을 돕길 원했고 가업을 이어가길 원한다고.

아버지가 반대를 심하게 하고 있어 미국에서 음악 활동에 아무런 지원을 못 받고 있단다.

“꼭 성공해서 아빠의 고집을 꺾고 싶어요.”

“좋은 기회가 되겠네요.”

“그렇겠죠?”

후로 이어진 이야기는 신세 한탄.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음악만 할 수 없었고.

아르바이트하며 음악을 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시간도 돈도 없어서 친구도 별로 사귀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 이 기쁜 소식을 전할 곳이 없네요.”

“으음.”

뭐라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그렇다고 뭘 같이 하자고 하기도 이상한 느낌이다.

딱히 말을 하지 않고 편곡에 집중했다.

내가 조용해지니까 옆에 있던 멜스도 조용해졌다.

“와아.”

“프로그램 볼 줄 알아요?”

“네. 조금요.”

“작곡도 해요?”

아까부터 내 의도를 알아채는 거도 그렇고 작곡에 지식이 꽤 있는 거 같은데.

“조, 조금요.”

“오! 만들어둔 곡 있어요?”

“부, 부끄러운데.”

생각해보니 멜스는 작곡을 할 수밖에 없었을 거 같다.

어디서 공짜로 곡을 얻을 수 있는 거도 아닌데.

본인의 스타일이 확고해서 아무 곡이나 부를 수도 없다.

맞춤형 작곡을 의뢰해야 할 텐데 그러면 가격이 꽤 오르겠지.

자연스럽게 스스로 작곡하게 됐겠네.

“들어보고 싶은데.”

“나, 나중에요.”

“그래요.”

조금 시간이 걸려서 편곡이 끝났다.

“와! 정말.”

“대단하죠?”

“호호.”

내 너스레에 멜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메일로 보내줄게요. 연습해 봐요.”

“네. 그럼 저도 가면 되나요?”

“으음. 잠깐만요.”

“네?”

인사하려는 그녀를 잡는다.

“동정하는 건 아니고 저도 오늘 딱히 할 일이 없어서요.”

멍한 표정으로 날 보는 멜스.

“같이 저녁이나 먹을래요?”

꽤 늦은 시간이지만 촬영 후 곡 작업까지 나와 멜스 모두 밥을 먹지 못했다.

“배고프지 않아요?”

“좋아요! 맛있는 식당을 알아요.”

“으음.”

맛있는 식당에 같이 가면 좋긴 하겠지만.

보는 눈이 많을 거 같아 꺼려진다.

“별로인가요?”

내 표정을 살피던 멜스가 조심히 물었다.

“아무래도 노출된 장소는 조금 꺼려지는 게 있죠.”

“아! 제가 거기까지 생각을 못 했네요. 으음, 그럼 어디서 먹죠?”

지금 있는 장소는 촬영장 근처 녹음실.

바로 편곡할 생각이라 근처 작업실을 돈 주고 빌려놨다.

그래서 여기로 바로 왔던 건데.

밖에 아인이 있나.

“잠시만요.”

아인에게 전화를 건다.

“밖이야?”

“응. 기다리고 있지, 차에서.”

“오케이.”

전화를 끊고 멜스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연히 예스라고 하겠지만 분위기가 중요한 거니까.

“우리 집에서 함께 먹을래요?”

“와! 프로듀서님 집이요? 완전 영광이죠.”

내 생각보다 더 좋아하네.

하긴, 미국에선 집으로 누굴 초대하는 게 꽤 흔한 일이니까.

“가죠.”

밖으로 나가니 아인의 차가 바로 있었다.

“음? 손님?”

“응. 가족이 멀리 있어서 오늘 축하해줄 사람이 없다길래 같이 저녁 먹으려고.”

“어서 와요.”

“네. 안녕하세요.”

대충 상황을 파악한 아인이 살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밝게 인사를 받는 멜스.

그렇게 아인과 함께 집에 도착했다.

“허니. 식구가 늘었네?”

“브로.”

집에서 기다리던 세 여인.

“한나는?”

“피곤하다고 먼저 가셨어.”

“이런 인사도 못 드렸네.”

“호호. 그런 거로 섭섭해하지 않는 분이시니까.”

그건 맞지만 그래도 전화 한 통화 해야겠다.

“아무튼, 축하 파티를 하자.”

“파티?”

“응. 시즌 하나가 끝난 거니까.”

“파티 좋지!”

아인이 리사와 차를 몰고 식재료와 술을 사러 나갔고.

줄리와 카디가 파티 준비를 시작했다.

그 모습을 멀뚱히 보는 멜스.

“정신 차려요. 멜스.”

“아! 호호. 너무 비현실적인 광경이라.”

“하긴 그건 맞네요.”

집에 초대받아 갔는데 카디와 줄리가 있으면 나 같아도 당황스러울 거 같긴 하다.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고, 고마워요.”

그녀가 친구가 없다는 얘기에 여기 있는 여인들을 소개해줄 생각도 있었다.

줄리랑 죽이 잘 맞을 거 같기도 하고.

멜스가 조금 더 정상인 느낌이긴 하지만,

대충 준비를 끝낸 카디와 줄리가 다가왔다.

나는 두 사람에게 찡긋 인사하고 자리를 피해줬다.

뭐, 셋이 얘기는 재밌게 하는 거 같은데?

방으로 들어와 곡 작업을 조금 하다 보니 시간이 꽤 지났고 리사와 아인이 돌아왔다.

부산스러운 소리에 살짝 밖으로 나가 본다.

“와우! 요리 잘하는데?”

“말했잖아. 주방에서 일한다고.”

벌써 친해졌는지 줄리와 멜스가 열심히 떠들고 있다.

으음, 멜스는 손님으로 왔는데 왜 멜스가 요리를 하고 있냐?

리사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어떻게 된 거야?”

“응? 뭐가?”

“왜 멜스가 요리를 하고 있어?”

“아! 요리를 잘하니까?”

흐음 나도 구경이나 해볼까?

확실히 재료 손질이나 요리 스킬이 남달라 보이긴 한다.

뭐, 여깄는 여인들이 딱히 요리를 잘하진 않지만.

한나의 요리를 어깨 너머로 배운 리사가 가장 잘 한다.

“와아!”

“이러면 맛도 살아나지만....”

설명과 함께 요리하는 멜스.

으음, 외모에 어울리는 모습은 아닌데 또 음악학 때보다 프로패셔널한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묘했다.

“아? 나오셨어요?”

요리하던 멜스가 날 발견했다.

“네. 요리 잘하시나 봐요?”

“얘기 안 했었군요. 제가 아르바이트를 주방에서 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니! 저런 외모면 서빙이나 카운터를 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

가게 매상 쭉쭉 올려줄 미모인데?

“호호, 허니 표정에서 다 나타나.”

“응? 뭐가?”

“방금 멜스를 서빙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지?”

“어? 어.”

오래 함께 지내서 그런지 내 마음을 귀신같이 읽는다.

“요리에 관심이 많아서 멜스가 주방일을 지원했데.”

“아! 그래?”

“응. 사장님이 계속 카운터만 봐도 된다고 꼬시고 있데. 호호.”

“아니, 그 정도는 아니에요.”

부끄러워하는 멜스 표정 개꼴려.

그렇게 요리 시간이 지나고 조촐한 파티가 시작됐다.

맥주와 와인으로 시작해 음식을 먹으며 배를 채웠고.

점점 도수가 높은 술이 나온다.

“위스키 좋아.”

“나도!”

줄리와 멜스는 오늘 처음 만난 아니, 처음은 아니지만 어쨌든 오늘 처음으로 사적인 자리를 함께하는 건데 엄청 친해진 거 같다.

“브로.”

카디가 멜스의 눈치를 보며 내 옆에 살짝 붙었다.

으음, 카디가 술이 꽤 올랐네.

이거 위험할 수도 있겠는데?

살짝 노골적인 손짓으로 내 허벅지를 쓰다듬는 카디.

멜스가 분위기에 너무 잘 녹아나서 그런가?

평소 모습이 나올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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