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329화 (329/450)

329.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정장을 입은 아저씨와 인사하고 앉았다.

뭐, 한국으로 치면 국장급 인사지만.

미국은 직위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니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 저도 반갑습니다.”

대충 인사치레를 끝내고 바로 본론을 꺼낸다.

바쁘다는 인상을 주기 위함이지.

“제가 시간이 많지 않아서 그런데. 어떤 연유로 보자고 하셨는지요?”

“허허. 바쁘신 분을 너무 오래 잡을 순 없죠. 이번에 저희 신규 프로그램에....”

대충 섭외 제안이구나?

날 뭘 믿고 섭외하는 거지?

대략적인 프로그램 설명이 시작됐다.

음? 그냥 신인 발굴 오디션이네?

뭐, 딱히 특별해 보이는 건 없었다.

프로듀서 몇몇이 나와 오디션 참가자를 심사하고.

각자 몇 명씩 뽑아 팀을 만들어 싸우는 내용.

이거 더 보컬이랑 비슷하지 않나?

얼굴을 보고 뽑는 거랑 안 보고 뽑는 거만 다르고 거의 똑같아 보이는데?

“조금 더 고민해 보고 연락 드리겠습니다.”

“네. 모쪼록 긍정적으로....”

뭐, 할 생각이다.

내가 곡을 주면 질 수가 없을 테니까.

저쪽에서 얼마나 쟁쟁한 프로듀서를 준비했을지 모르겠지만.

날 위한 방송이나 다름없는 거 같으니까.

“후우, 또 스케쥴 가야지?”

“응. 바빠지네.”

내일 드림 스테이지 미국판 시즌 1의 결승 무대가 있다.

오늘은 그 무대 점검을 가는 날.

오디션의 특성을 살려 리어설 없이 진행하지만.

그래도 사전 답사는 필요하다.

내가 직접 갈 필요는 없지만, 한나가 오는 만큼 제대로 준비할 생각.

도착하니 익숙한 얼굴들이 먼저 보였다.

장비를 설치하는 회사 직원들.

오늘도 회식비 정도는 챙겨 줘야겠다.

뭐, 한국과 달라서 어디 단체로 가서 놀기는 어렵겠지만.

충분히 집 안에서 파티하고 놀 수는 있으니까.

다들 타지에 함께 와서 지금쯤이면 꽤 친해졌을 거 같다.

이거, 여기서 커플 나오는 거 아니야? 라고 하기엔 여직원이 몇 없어서 조금 아쉽다.

아니, 내가 아쉬워할 일은 아니지.

“안녕하세요.”

“아! 오셨어요.”

직원들과 인사하고 기다리니 시설 담당자가 나왔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악수 후 명함을 받아 넣고 시설에 관한 설명을 잠시 듣는다.

딱히 중요한 건 아니니 대충 흘려 넘기고 직원들이 일하는 걸 지켜본다.

감시하러 온 거 같아 보일 수 있겠지만.

그런 건 아니고 최종적으로 담길 모습을 확인하기 위함.

리어설 없이 진행하기로 했기 때문에 촬영하는 카메라가 많다.

언제 어느 각도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담을 수 있도록 할 계획.

뭐, 편집자들이 고생하겠지만.

다른 곳에 비하면 월등한 돈을 받으니 불만은 없을 거다.

“후우, 이 정도면 됐겠네요.”

“무대를 찍는 카메라만 6대입니다. 심사석은....”

현장 담당자인 직원이 내게 다가와 말을 꺼낸다.

“잘 부탁드려요.”

“네. 모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갑을 꺼내 가지고 있던 현금을 꺼냈다.

봉투라도 가져올걸.

“급하게 오느라 봉투를 준비 못 했네요.”

“아휴, 괜찮습니다.”

“이걸로 저녁에 파티라도 하셔요. 술은 적당히 아시죠?”

“물론이죠.”

내일 촬영에 지장 가면 안 되니까.

그렇게 준비하는 모습을 꼼꼼히 확인한다.

내일 직원이 다른 사람들에게 또 설명하겠지만.

그걸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건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으니까.

내가 많이 알고 있을수록 돌발상황에 대처가 쉽다.

“흐음, 다 끝난 건가요?”

“네. 설치는 그리 오래 걸리는 게 아니니까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부사장님. 들어가세요.”

인사하고 현장을 나왔다.

“후우, 조금 떨린다.”

“뭐가 떨려?”

아인이 운전을 하며 내게 묻는다.

앞자리에 타서 아인의 허벅지를 주무르며 가고 있다.

미국은 뭐 이리 땅덩이가 넓은지.

1시간은 가까운 거리고 기본 2시간은 이동해야 뭐가 있는 거 같다.

뭐, 내가 큰 집 구하느라 조금 외지로 빠진 거도 있지만.

“미국에서 완전 신인이나 다름없는 사람한테 내 곡을 주는 거잖아.”

“뭐, 한국에서도 그랬었잖아.”

“그때도 떨었던 거 같은데.”

“그래? 넌 안 떠는 줄 알았는데.”

손을 조금 더 깊숙이 넣었다.

“하으, 위험해.”

“다 왔는데 뭐.”

여기부턴 차도 잘 안 다니니까.

“나도 떨지. 그래서 정비서가 가슴 만지게 해주고 하잖아.”

“호호. 내일도 만지게 해줄게.”

“고맙네. 지금은 어때?”

“집에 가서?”

아인이 살짝 설레는 표정으로 말한다.

매일 울면서 섹스하는 건 참 좋아한다니까.

아니, 내가 그렇게 만든 건가?

“하으으, 다 왔는데.”

“그러게. 빨리 온 거 같다.”

확실히 아인이가 리액션이 좋으니까.

만지면서 다니면 시간이 금방 간다.

뭐, 운전 중에 위험할 거 같은 일은 하지 않지만.

집에 들어오니 세 여인이 반겼고.

반가운 얼굴이지만, 지금은 조금 덜 반가운 한나가 보였다.

“한나. 여기까지 어쩐 일이에요?”

“어떻게 사는지 보러 한 번 들렀다. 불편한 건 아니지?”

“한나는 언제나 환영이죠.”

그렇게 그날 밤은 아인이만 데리고 들어와서 부드럽게 한발 뽑고 안고 잤다.

한나가 와서 아인이만 좋았네.

“하으으, 좋은 아침.”

“그래. 유난히 좋아 보인다.”

“누가 어제 아주 기분 좋게 해 줬거든.”

“후후, 어차피 함께 있을 날은 기니까.”

내 장난스러운 웃음에 아인이 입을 삐죽 내밀며 말한다.

“어제만 같으면 매일도 할 텐데.”

그럴 거면 너랑 매일 안 할걸?

입 밖으로 꺼내면 상처받을 거 같아 가만히 아인의 머리를 쓰다듬고 꼭 안는다.

“그래도 가끔 그렇게 해줘야 더 기분 좋지.”

“흐음, 뭐, 일단 씻자.”

“그래.”

같이 씻으려다가 한나의 눈치를 좀 볼 필요가 있어서 따로 씻었다.

뭐, 한나도 우리들의 관계를 대충 알고 있긴 하지만.

한국인인 나는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

“잠시 와보겠니.”

“네.”

한나에게 다가갔다.

한나는 편집된 2차 오디션 영상을 보고 있었다.

“이 참가자는 왜 떨어....”

궁금하신 게 많았나 보다.

프로그램에 관한 얘기가 얼추 끝나니 한나가 날 보며 일어났다.

“녹음할 준비가 된 것 같단다.”

“오! 그래요?”

“들어 볼래?”

“네. 좋죠.”

한나가 노래를 시작했다.

아니! 그 사이에 실력이 더 늘어난 거 같다?

한나는 나이가 꽤 많아서 더는 늘 거 같지 않았는데.

내가 마기를 사용하는 거도 아니고.

“흐으음, 어때?”

살짝 긴장한 표정.

천하의 한나도 프로듀서 앞에서 노래를 검사받을 땐 저런 표정을 짓는다.

이게 권력의 맛이려나.

“뭔가 더 좋아지셨는데요?”

“그렇지? 나도 이 곡이 잘 맞아서 그런가 싶어.”

“그래요?”

듣는 귀는 귀신같은 한나.

자신의 실력이 늘어난 걸 분명 나보다 더 확실하고 명확하게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흐음, 다른 곡도 더 좋아지셨어요?”

“아니, 이것만 이래.”

“제 곡이 잘 맞으셨나 보네요.”

“그런가?”

한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겠지.

아마도 마기가 어떤 작용을 한 거 같다.

-그녀의 늙은 몸에 잠시 기운을 북돋을 힘을 노래에 넣었다.

‘그런 거도 가능했어?’

-넌 날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으음, 고민이 조금 필요한 문제인 거 같다.

-깨달았으니 됐다.

‘그래. 고민 좀 해볼게.’

마기가 스스로 도우니 효율이 많이 높아졌다.

직관에 의지해 사용하는 거보다 적은 양으로 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으니 마기 소모가 많이 줄었다.

-앞으로 사용할 일이 많을 거다. 더 모아야 한다.

‘그래.’

이번엔 좋게 넘어갔지만, 저쪽에서 포기하진 않겠지.

싸움에서 이기려면 전쟁 물자가 중요하다.

그 물자가 마기니까 마기는 많을수록 좋다.

“바로 녹음해도 되겠는데요.”

“그래. 오늘 할까?”

“촬영 전에 하시죠?”

“그러자.”

급하게 녹음실에 들어와 준비한다.

한나의 녹음은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가기 전에 충분히 끝날 수 있겠지.

녹음만 끝나면 부수적인 작업은 여유롭게 하면 되니까.

“자, 불러 보실게요.”

반주를 틀고 한나의 노래를 듣는다.

중간중간 욕심에서 나온 요구를 정확히 캐치해 바로 적용하는 한나.

확실히 대단한 가수다.

으음, 곧 한나만큼의 경력은 없어도 이런 대단한 가수를 몇 명 더 보겠지?

아! 기대된다.

“좋았어요. 한나.”

“후우, 금방 끝났구나.”

“다 한나가 잘한 덕분이죠.”

“호호. 가자.”

한나를 에스코트해 차로 모셨다.

으음, 지루한 길이 되겠네.

차 안에 내 여자가 넷이나 있는데.

아인은 운전 중이라 빼도 멀뚱히 있는 여자가 셋이다.

그런데 이렇게 가만히 가야 한다니.

미국 도로는 한적해서 경치 구경할 거도 별로 없단 말이지.

지금도 한 20분째 같은 경치라 너무 지루했다.

스마트폰으로 뭐라도 할까 했지만.

여자와 음악 말고는 딱히 즐기는 게 없어서 마땅히 할 게 없다.

“와썹! 브로!”

음?

갑자기 카디가 작게 말하는 게 들려 쳐다봤다.

스마트 폰을 보고 말하는 카디.

“방송?”

“예아! 친구들 오랜만이야. 너무 지루해서 잠시 켰어.”

나는 놀라서 한나의 눈치를 봤다.

으음,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는 한나.

이런 게 흔한 일인가?

보통 켜기 전에 동의라도 구해야 하는 거 아냐?

“지금 내가 누구랑 있는지 알아?”

빠른 속도로 카메라를 돌리는 카디.

보이지도 않겠다.

뭐, 안 보여 주려고 저런 거 같긴 하지만.

“후후, 보면 깜짝 놀랄 만한 슈퍼스타가 함께 있다고!”

“뭐? 나보다 더한 슈퍼스타가 없다고?”

“보면 깜짝 놀랄걸?”

한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나름대로 즐기고 계시는 거구나.

“안녕!”

“아니! 나도 스타야!”

줄리가 갑자기 끼어들어 얘기를 시작했다.

하긴, 매일 같이 다니니까 슈퍼스타 얘기하다가 줄리가 나오면 조금 김빠지긴 하겠네.

“친구들. 오늘 말한 건 줄리가 아니야. 리사도 여기 있어.”

“하이!”

리사가 시크하게 인사한다.

“누구냐고?”

“후후, 알려줄까 말까?”

장난스럽게 말하는 줄리.

따로 보면 줄리만 텐션이 엄청 높은 느낌인데.

셋이 함께 뭘 하면 전부 줄리의 텐션을 따라가는 느낌이다.

재미는 있는데 조금 정신이 없다.

“후후, 먼저 공개할 사람은. 다들 어떻게 알지?”

내 얘긴가?

“브로. 인사 좀 해줘.”

“헬로.”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뭐야? 게릴라 방송인데 시청자가 뭐 이리 많아?

거의 20만 명이 보고 있는데?

뭐, 카디의 팔로워가 몇천만 명이 넘으니 알람 보고 바로 온 사람이 꽤 있긴 하겠구나.

그래도 좀 부담스러운데.

“다들 우리가 하는 드림 스테이지 아메리카 봤어?”

“오늘 결승전 녹화하러 가는 길인데, 다들 기대돼?”

“우승자 예측해 보자고? 에이, 안 돼. 심사에 영향이 갈 수도 있잖아.”

카디가 나름 소통을 잘 하네.

나랑 있을 때는 작고 귀엽고 소중한 애완동물 같은 느낌인데.

팬들이랑 있으니까 카리스마 장난 아니다.

줄리랑 리사도 에너지에서 조금 밀리는 감이 있네.

“으음, 브로. 특별 심사위원 여기서 공개해도 돼?”

“물론이지.”

“오우! 방금 허락받았다. 아까 말했지? 엄청난 슈퍼스타가 함께 있다고.”

채팅창이 보이긴 하는 건가?

너무 막 올라가서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영어라 읽는 속도가 느려서 더 그런가?

아니, 간간이 한국어랑 중국어? 일본어? 온갖 언어가 올라오고 있다.

“오! 한국 분들도 있네요?”

“아뇽하쎄요?”

카디가 귀엽게 한국어를 한다.

방금까지 카리스마 쎈언니가 귀엽게 한국말을 하니 그 차이에서 오는 매력이 상당하다.

“하하하. 카디 귀여워.”

“헤헤.”

카디가 귀엽게 웃는다.

채팅창이 폭발한 거 같지만, 뭐 괜찮겠지?

뭐, 설마 이런 거로 오해하진 않겠지?

카디랑 나는 조금 조심할 필요는 있다.

키스했던 일도 있고 사람들이 우리가 연인 사이였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해서.

다시 논란이 생기거나 괜히 조아가 피곤해질 수도 있으니까.

“바로 공개할까?”

“좋아! 오늘의 특별 심사위원. 스타 중에서도 슈퍼! 스타!”

카디가 카메라 무빙으로 한나를 아래서부터 위로 천천히 비춘다.

“한나 메리!”

“모두 안녕?”

어우, 항상 인자한 어머니 느낌의 한나를 보다가 음악이나 방송에 관련된 일을 할 때 한나를 보면 그 괴리감이 엄청나다.

카디도 이 정도는 아닌데.

뭐랄까? 아우라가 나온다고 해야 하나?

표정이나 자세 어투나 눈빛 뭐 하나 크게 바뀐 거 같지 않은데.

분위기가 아예 다른 사람이다.

방송에서 한나를 본 사람이 실제 한나를 보면 못 알아볼 정도로 다르다.

“호호. 모두 잘 부탁해.”

“봤지? 엄청난 스타라고 했잖아!”

네비를 보니 공연장에 거의 도착했다.

슬슬 방송 끌 타이밍이다.

그래도 카디 덕분에 재밌게 온 거 같다.

다음화 보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