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317화 (317/450)

317.

“잘 다녀왔어?”

“응. 집 앞까지 잘 모셔다드렸지.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데?”

“하하. 그건 어쩔 수 없지.”

“으휴, 진짜.”

아인을 살짝 안아 토닥이며 말한다.

“고생했어? 정비서도 못 걷고 싶어?”

“오늘은 좀 쉴래. 피곤하네.”

“그래?”

“응. 그날이기도 하고.”

몰랐네.

여자가 많으니 다들 생리하는 시기가 달라서 헷갈린다. 뭐, 그냥 기억을 안 하고 있는 거도 맞고.

“그럼 푹 쉬어야겠다. 호박죽 사다 줄까?”

“괜찮아. 민하가 해줘서 먹었어.”

“그래. 민하는 정말 엄마 같다니까.”

“호호. 그럼 난 좀 쉰다.”

아인을 방으로 보내고 작업실로 향한다.

그래도 뒷정리는 좀 해야지.

적당히 정리를 끝내고 컴퓨터를 켰다.

뭔가 오랜만에 새로운 여자와 섹스로 영감이 떠올랐다.

예전처럼 멜로디가 들려오는 건 아니지만.

뭔가 곡을 만들고 싶은 느낌이다.

물 흐르는 대로 만들어진 곡.

시간도 2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오! 꽤 좋은데?”

만들어진 곡은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기분 좋게 잠시 웹 서핑을 하다가 메일로 들어갔다.

“음?”

공개된 메일이기에 온갖 음악인 지망생들과 어디 어디 회사의 메일이 많은데 그중 이상한 메일이 하나 보였다.

“이건?”

제목은 영상을 지키고 싶지 않으신가요? 시주.

땡중이 보낸 메일인가?

바이러스 같은 건 없겠지?

메일을 열어보지 않고 창을 닫는다.

“으음, 가까운 곳에 좀 다녀와야겠어. 도와줄래?”

“그래요? 알겠어요.”

피곤한 아인을 빼고 민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무슨 일이에요?”

“음, 천천히 알려줄게.”

“그래요. 급해요?”

“응. 빨리 가줘.”

민하씨가 운전하는 차로 전자제품 판매장으로 와 노트북을 하나 산다.

바로 켜서 별다른 설치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처리된 노트북.

집에서 여는 것도 불안해 노트북을 들고 회사로 향한다.

늦은 시간이라 대부분 퇴근해 비어있는 회사.

민하와 회의실로 들어와 노트북을 켠다.

“저도 봐도 되는 거예요?”

“흐음, 그래. 같이 보자.”

뭐, 민하가 보면 충격을 좀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시연이 일을 안 알려줄 수도 없지.

메일은 별다른 내용 없이 여러 장의 사진이 들어있는 압출 파일과 동영상이었다.

“뭐지? 뭐가 더 있나?”

“무슨 사진이랑 영상인데요?”

말없이 압출을 푼다.

금방 풀리는 압출 파일.

미리 보기로 보인 사진이 심상치 않다.

“으음.”

“헙!”

민하가 놀라 입을 막고 날 본다.

“옛날 작업실이네.”

“이, 이게 어떻게?”

“날 노리는 세력이 있어. 거기서 옛 작업실에 몰카를 설치했던 거 같아.”

“허어.”

민하씨는 손을 떨며 내 팔을 잡았다.

“괘, 괜찮을까요?”

“후우, 나도 이 정도까지 영상이 있을 줄은 몰랐네.”

사진에 나온 내 여인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내 예전 작업실에 카메라를 며칠이나 설치해 뒀는지 초유, 시연, 선애, 민하, 아효, 선유, 마하연, 미리, 민주와 섹스한 모습이 찍혔다.

더불어 슈가 페어리는 밖에서 하고 들어왔는지 나체로 넷이 함께 들어와 자는 모습이 찍혀있다.

영상은 안 봐도 알겠다. 이 사진들이 나온 원본 영상이겠지.

“으음.”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

내 이미지보다 내 여인들이 걱정인데.

가장 문제가 될 이미지는 성공을 위해 몸을 판 것처럼 비치는 거다.

연예인에게 있어서 창녀 이미지가 생긴다는 건 망했다는 말과 다름없다.

게다가 소문 정도가 아니라 실제 영상이 있다?

이건 끝났다.

-그렇다고 그들의 의견을 들어줄 순 없다.

문제네. 문제야.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민하는 옆에서 굳어 움직이지 않는다.

“저도 있네요.”

“응. 괜찮아?”

“후우, 어쩌죠?”

“고민 좀 해야 할 거 같아.”

민하도 고개를 끄덕인다.

으음, 아빠는 주무시고 있으려나?

급한 일이니까 일단 깨우자.

“잠깐만.”

“네.”

민하를 두고 전화를 건다.

-어. 아들.

“아빠 일이 좀 심각한 거 같아.”

-그래? 영상?

“응. 지금 회사로 올 수 있어?”

아빠의 알았다는 대답 뒤에 전화를 끊는다.

“후우.”

잠시 기다리니 회의실로 들어오는 아빠.

늘 입던 단정한 차림이 아닌 편한 복장 그대로다.

아빠도 급하게 오셨나 보다.

“이걸 좀 봐봐.”

“그래.”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단지 노트북을 돌려 보여줬을 뿐.

“으음.”

심각해진 아빠의 표정.

“민하씨.”

“네?”

“먼저 집으로 가 계시겠어요?”

“아, 알겠습니다.”

들어도 상관없겠지만, 민하가 있으면 정확한 이야기를 하긴 힘들지.

아빠가 민하씨를 먼저 집으로 보냈다.

“후우, 저쪽 요구 사항은 그대로야?”

“으음, 영상만 보내고 다른 말은 없었어.”

내가 마기를 제공하거나 마약 브로커가 되는 것.

마기를 넘길 순 없으니 한다면 마약 브로커가 되는 것뿐이다.

근데 브로커 일을 한다고 해도 저들이 영상을 가지고 있는 이상 나는 계속 약자일 수밖에 없다.

한 번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다음 요구도 계속해서 들어줄 수밖에.

그렇게 될 바에는 차라리 영상이 풀리는 게 낫다.

내가 내 여인들을 사랑하고 아끼지만 나보다 우선시하는 정도는 아직 아니다.

내 여인들의 지금 인기도 내가 없으면 유지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으음, 그건 모르는 일이니까 넘어간다고 해도 내가 없이 그녀들이 행복할 수 있을까?

뭐, 이런 생각은 넘어가자.

나는 이기적인 쓰레기고 계속 그렇게 살 생각이니까.

“흐음, 어떡하지.”

“아직 시간은 있는 거 같으니까 고민 좀 해보자.”

“응.”

아빠와 만났지만, 딱히 방법이 없다.

아빠는 먼저 밖으로 나갔다.

이 영상을 회사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없으니 노트북은 버리자.

으음, 혹시 모르니 정보를 포맷하고 뒤쪽 나사를 조금 풀어 헐겁게 했다.

“이걸 물에 담가 버리면 되겠지.”

화장실로 향해 준비된 양동이에 물을 받고 노트북 전원을 켠다.

부팅되는 노트북을 그대로 물속에 담근다.

“뭐, 이 정도면 확실히 고장 났겠지?”

10분 정도 노트북을 멍하니 보다가 건져 올렸다.

“태울까?”

개인이 소각할 방법을 알아본다.

으음, 가지고 있다가 태우러 가야겠다.

회사 회의실에 앉아 잠시 눈을 붙인다.

머리가 혼란스러워 아무것도 하기 싫다.

-지이잉. 지이잉.

“네.”

눈을 감은 채 누군지 확인도 안 하고 전화를 받았다.

-안 들어와요?

“아, 가야지.”

민하의 걱정스러운 목소리.

-제가 데리러 갈까요?

“그래 줄래?”

-네. 지금 출발할게요.

“응.”

잠시 민하를 기다렸다.

“가요.”

“그래.”

민하가 도착해 회의실로 들어왔다.

물에 젖은 노트북을 챙겨 차에 탄다.

으음, 이거 집에 두기 좀 그런데.

“잠시만.”

“네.”

개인 불법 소각은 걸려도 과태료가 100만 원 정도다.

그냥 내가 태우자.

“잠시 사람 없는 곳으로 좀 가자.”

“네.”

민하가 알아서 어딘가로 차를 몬다.

이런 장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도착한 곳은 폐공장이었다.

공장 앞을 보니 불에 그을린 드럼통이 하나 보인다.

“저기서 태우면 되겠네.”

“탈 것 좀 구해올까요?”

“아, 그 생각을 못 했구나.”

노트북에 그냥 불을 붙인다고 타진 않을 텐데.

근처 편의점에서 운 좋게 번개탄과 숯을 구할 수 있었다.

밖에 놓여있던 박스 하나도 챙겼고 라이터도 샀다.

우리 표정이 너무 안 좋으니 편의점 직원이 조금 신경 쓰는 거 같지만, 사는 데 문제는 없었다.

“후우.”

대충 드럼통에 가져온 물건들을 잘 때려 박고 불을 붙인다.

불이 커지고 노트북을 넣어 태운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 딱히 들킬 거 같진 않다.

뭐, 어차피 퍼질 영상이라지만 그래도 안전을 기하긴 해야지.

“흐음, 이 정도면 잘 녹았으려나?”

20분은 불을 보며 멍하니 있었다.

위험하니까 불을 끄고 노트북의 상태를 본다.

내부까지 다 녹아 형태도 알아보기 힘들어진 노트북.

매캐한 검은 연기가 많이 올라갔지만, 뭐 한밤중이고 여기를 볼 사람은 없다.

주변에 카메라도 없었고.

마지막까지 노트북의 잔해를 꺼내 땅에 묻었다.

“가자.”

“네.”

조용한 분위기에서 이뤄진 일련의 행위는 꼭 노트북의 장례식을 하는 것 같았다.

“후우.”

“어떡해요?”

“아직 잘 모르겠어. 생각 좀 해봐야지.”

“하으.”

괜히 민하랑 같이 봤나?

모르고 있는 게 나았을 수도 있겠다.

“일단 다 불러야겠다.”

“네.”

때마침 오늘 모두 집에 있었기에 자는 걸 깨워 한곳으로 모았다.

물론, 영상이 없는 여인들도.

으음, 지인이랑 지애 누나는 외국에서 활동 잘 하고 있으니까 나중에 알려도 되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문자 정도는 보내두자.

대충 안 좋은 일이 생겼다.

문제 생기면 말해라. 무슨 일이 벌어져도 너무 놀라지 말라는 문자.

지인이에게 답장과 전화가 왔지만, 그냥 나중에라고 미루며 받지 않았다.

“후우, 다들 모였네.”

잠시 문자를 보내니 영상에 등장한 여인들이 다 모였다.

그 외에도 집에 있던 여인 대부분이 왔다.

“안 좋은 소식이 있어.”

집중하는 여인들.

그래도 머리를 맞대면 조금 나아지겠지?

나는 하나하나 설명을 시작했다.

“내가 전에 마약 카르텔 잡았던 건 알지? 그쪽에서....”

약간 각색해 설명했다.

촬영팀으로 몰래 잠입해 예전 작업실 침대에 몰카를 설치했다.

그래서 영상이 찍혔다.

영상이 찍힌 사람은 누구누구누구다.

내 말이 하나하나 지나갈 때마다 점점 표정이 굳는 여인들.

말을 끝내니 정적이 시작됐다.

여기 없는 여인들 에게도 대충 문자를 보내둔다.

지인이에게 보낸 내용과 비슷하게.

여기 있는 여인 대부분은 직접 관련이 있으니까 대충 넘어갈 순 없어서 다 말했다.

“저만 있는 게 아니었어요?”

“그러게. 나도 몰랐네.”

“히잉.”

시연이는 이미 겪어 봤기에 다른 여인들의 눈치를 본다.

“후우, 다들 시간이 좀 필요하지 다시 자러 갈래?”

“어떻게 그래. 으음.”

초유 누님은 역시 강한 사람이라 그런지 바로 말을 꺼낸다.

“후우, 뭐 고민한다고 마땅히 방법이 나올 상황이 아닌 거 같네.”

“그렇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온 초유 누님.

“으음, 철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럴 땐 이만한 게 또 없어.”

“자, 잠깐.”

초유 누님이 내 바지를 자연스럽게 내린다.

멍한 표정이던 여인들 몇몇이 눈을 빛냈다.

“일단 오늘은 잊자. 잊고 편히 자자.”

“고, 괜찮겠어요?”

“싫은 사람은 계속 고민하라고 두고 우린 위로가 필요한 거 같아.”

으음, 그놈의 위로는 왜 항상 이런 식인 거지?

뭐, 내가 위로할 방법이 그것 뿐이기도 하고 이만한 위로가 없긴 하다.

“어쩔 수 없네요.”

“그래. 잘 생각했어.”

나도 지끈거리는 머리를 조금 진정시키고 싶다.

“하읏, 흐으응.”

하나둘 달려들어 옷을 벗는 여인들.

자던 중이라 다들 편한 옷으로 왔기에 금방 알몸으로 변해 다가왔다.

내 옷도 자연스레 벗겨졌고, 격렬하면서도 낭만적인 난교가 시작됐다.

다들 말을 최대한 줄이고 격정적으로 움직인다.

꼭 내가 아니어도 서로서로 몸을 핥고 주무르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하나둘씩 지쳐 쓰러져 나가는 여인들.

“후우, 얘기 좀 할까?”

“그래.”

마지막까지 참여하지 않고 옆에서 지켜보던 조아.

조아와는 해야 할 얘기가 많을 테니까.

조아는 괜찮을지 몰라도 조아의 아버지는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조아와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어떡해?”

“나도 모르겠네.”

“으음, 하필 이때 이런 일이 생기는 건 나 때문도 있겠지?”

“너는 아무 잘못 없어.”

시무룩한 조아를 살며시 안아준다.

괜히 본인이 죄책감 느낄 이유는 없다.

“그래도 나랑 기사 안 났으면 나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 하지 말래도.”

“일단 아빠한테 알려야겠지?”

“으음,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조아도 고개를 끄덕인다.

“내일 전화 드리자.”

“응.”

아효도 그렇고 중국 진출 계획을 꽤 세워뒀다.

여기서 사이가 나빠지면 계획에 차질이 많이 생기니 최대한 잘 얘기해 볼 수밖에.

그렇게 조아와 밤을 보내고 하루가 지났다.

살짝 이른 아침 조아가 전화를 건다.

중국어를 할 수 없으니 내 얘기와 아버님의 얘기를 조아가 번역해준다.

“알겠습니다.”

통화가 끝났다.

다행히 과거는 신경 쓰지 않으니 둘이 잘 지내라는 말로 끝난 통화.

생각보다 쿨한 분이라 다행이다.

“잘 넘어간 거 같네.”

“응. 아빠도 관련해서 깨끗하진 않으니까.”

“후우, 이제 고민 좀 해야겠다.”

“응. 나는 가볼게.”

나가려는 조아를 뒤에서 안았다.

“왜에? 같이 있어 줘?”

“마음대로 해도 괜찮아. 근데 정말 괜찮아?”

“응. 나는 아무렇지 않아.”

“괜히 죄책감 느끼지 말고.”

조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몸을 돌려 내게 입을 맞추는 조아.

-츄릅, 츄르릅.

키스 후 조아를 보내줬다.

-지이잉! 지이잉!

“네.”

-그때 스님이 또 오셨습니다.

“나가죠.”

내가 메일 확인한 걸 알았겠지.

일단 땡중을 만나러 밖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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