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313화 (313/450)

313.

박 희성이 죽었다는 기사가 났다.

하연에게 전화를 받고 딱 12시간 지난 시간에 나온 기사.

기사 내용은 박 희성의 사망 소식과 자살로 밝혀졌다는 내용.

작곡을 배우던 문하생들이 시신을 발견해 신고했다는 사실만 적혀 있었다.

아마도 그 문하생 중에 하연도 있었던 거 같고.

“일단 장례식에 가야겠네.”

“같이 갈까?”

“아냐. 넌 집에 있어.”

곁에 있던 조아가 일어나려는 걸 말리고 혼자 준비한다.

장례식장은 어딘지 알고 있으니 빨리 가봐야지.

씻고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뒤 아인을 불렀다.

“갈까?”

“으음,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일단 장례식장에 가면 뭔가 알 수 있는 내용이 있을까?

절대로 자살은 아닐 거 같은데.

타살이라고 해도 그걸 내가 알 방법은 없겠지?

시신이 있다면 마기가 뭘 알아낼 수 있나?

마기야 뭐 없냐?

-으음, 저쪽에서 손을 썼다면 알 수 있다.

오! 그것만 해도 다행인데. 시신이 있을지도 미지수네.

장례식장에 시신이 있는 게 보통이지만, 저쪽은 워낙 이상한 사람들이라 또 모른다.

시신이 있으면 박희성인지 알 수도 있지?

-물론이다. 기억하고 있다.

오케이.

일단 그것만으로 됐다.

어차피 다른 걸 알 수 있는 내용이 없을 테니까.

아인의 차를 타고 도착한 장례식장.

일단 입구부터 기자들이 꽤 많았고, 익숙한 얼굴이 꽤 보였다.

기자들이 찍든 말든 말을 걸던 말던 일단 걸어서 들어간다.

장례식에선 이게 국룰이니까.

박희성 가족 관계가 어떻게 되더라? 본인 얘기는 엄청 숨기는 사람이라 잘 모르겠다.

으음, 가족이 없는 거 같은데?

상주로 있는 건 자주 보던 매니저뿐.

“으음, 안녕하세요?”

“네. 오셨어요. 일단 절부터.”

“네.”

두 번 절하고 상주를 보니 그냥 다가온다.

“식사라도?”

“아뇨. 그냥 좀 있다가 가죠.”

“그렇게 하셔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으음. 선배가 가족이 없었나요?”

머쓱한 표정으로 말하는 매니저.

“저도 잘 모르겠네요. 말씀하신 적이 없어서. 장례를 치를 사람이 없어 제가 하는 겁니다.”

“고생 많으시네요.”

“고생은요. 그래도 마지막 의리죠.”

으음, 이 남자 좀 수상한데?

그러고 보니까 마약을 가져오는 거도 이 남자였잖아?

뭔가 캐볼 게 있을까?

딱히 하연을 붙일 명분도 없고 지금은 생각나는 방법이 없다.

일단 마기가 시체를 찾아볼 시간을 좀 벌어 볼까?

가만히 앉아서 아는 사람들이랑 인사나 좀 해야지.

“선생님.”

“오셨군요? 후우,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그러게요. 후우.”

선희 선생님이 앞에 앉아 계셔서 가장 먼저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손녀도 옆에 있네. 따님은 안 보이는 거로 보아 둘이 오셨나 보다.

“저 뮤지컬 오디션에 자꾸 떨어지네요. 후우.”

“아, 오디션 쉽지 않죠.”

“얘! 너는 여기서 그런 말을 하니.”

“흐이잉. 죄송해요. 저도 너무 답답해서.”

내게 허튼소리를 하고 혼나는 조은영.

흐음, 조금만 더 이뻤어도 내가 어떻게 도왔을 텐데.

으음, 그냥 우리 배우 엔터도 시작하니까 말이라도 꺼내볼까?

내가 뭘 하진 않겠지만, 우리 회사에서 일하면 조금 환경이 나을 거 같은데.

그래도 지금은 말고 나중에 얘기나 해보자.

“아! 형님. 오셨어요?”

“어, 그래. 누님 안녕하세요.”

“그래. 왔구나.”

내 뒤를 이어 승철 형님이 들어왔다.

반가웠지만, 분위기상 반갑게 인사는 못 나눴다.

적당히 얘기하며 시간을 보내고 하연이 앞에 보여 다가갔다.

“마하연씨? 안녕하세요?”

“아! 작곡가님. 안녕하세요.”

얘는 연기는 글렀다.

반가운 모습이 너무 티가 나네.

나도 살짝 웃음이 났지만 참으며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인지 알아요?”

“후우, 저도 상황을 모르겠어요.”

하연도 따로 아는 건 없나 보다.

으음, 전화를 왜 급하게 끊었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그건 여기선 좀 그렇겠지?

“이따 집으로 와.”

“네.”

지나가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시간을 좀 보내고 마기를 기다린다.

-시신은 찾았다.

그래? 어때? 뭐가 느껴져?

-별다른 특징은 없다.

흠, 그럼 왜 죽은 거 같아?

사인도 중요한 정보니까.

-나는 모르겠다.

그래? 자살로 특정할만한 특징이 없어?

-으음, 모르겠다.

약물 같은 거로 죽은 거도 몰라?

-일반적인 약물은 알 수 없다.

으음, 그렇구나.

딱히 물리적인 사인은 없는 거 같다.

으음, 기사로는 알코올과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한 거로 뜨던데.

원래 술을 좋아하던 양반이긴 했지만, 수면제는 먹지 않는 거로 알고 있다.

으음, 유서 같은 건 발견되진 않았다고 한다.

단지 술과 수면제로 보아 자살로 추정할 뿐.

가족이 없기에 따로 부검을 원하는 사람이 없어 부검은 안 했고 그대로 수사가 마무리된 느낌이다.

으음, 유명인이 아무런 징조 없이 죽었는데 수사를 너무 대충 한 느낌.

외압이 있었나?

의심하기 시작하니 끝이 없구나.

일단 추정은 그만하고 조금 더 상황을 봐야겠다.

내가 혼자서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은 많지 않으니까.

“후우, 일단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요. 저도 이만 가야겠네요.”

“같이 갈까?”

“네. 형님.”

나와 선희 선생님, 승철 형님은 적당히 자리를 지키다 나왔다.

선희 선생님의 손녀가 무언가 말을 하려는 거 같았지만, 나는 모르는 척 승철 형님과 빠르게 이동했다.

“흐음, 자살할 양반이 아닌데.”

“그러니까요.”

“조심히 들어가.”

“네. 형님, 들어가세요.”

승철 형님을 배웅하고 나도 집으로 왔다.

땡중 쪽에서 희성을 죽였다면 왜 죽였을까?

뭔가 알면 안 되는 사실을 알았거나, 조직의 의견에 반해서?

으음, 딱히 조직과 척을 질 사람은 아닐 텐데.

아무래도 무언가를 알게 됐거나 쓸모가 다 해서인 거 같지?

전자라면 나도 뭔가를 찾아볼 수 있겠지만.

후자라면 헛걸음이다.

하연이가 오면 조금 더 이야기해봐야겠네.

“후우, 조금 기다릴까.”

하연이 올 때까지 다시 곡 작업이나 하자.

-지이잉. 지이잉.

“누구지?”

전화가 와서 봤는데 경호팀장이었다.

“네. 팀장님.”

-네. 사장님. 손님이 왔습니다.

“아! 하연인가요?”

-아니요. 저번에 본 스님이 오셨습니다.

음, 무슨? 땡중이 지금 나한테 왜 와?

“음, 일단 제가 나가겠습니다.”

-네. 잠시 기다리시라고 안내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밖으로 나간다.

“허허, 시주 오랜만입니다.”

“여긴 또 왜 왔지?”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지만, 그 말은 틀린 거 같다.

스님 행색에 맞는 자애로운 미소지만 내게는 역겨워 보였다.

“허허, 시주 우리 과거의 정을 생각해 함께 하는 게 어떻습니까?”

“당신과 함께할 생각은 없어.”

“말을 끝까지 들어 주세요. 시주.”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여는 땡중.

딱히 듣고 싶은 말은 없는데.

“잠시 자리를 옮길까요?”

“그럴 필요 없을 거 같은데.”

“후우, 그렇다면 할 수 없군요.”

스님이 어울리지 않게 스마트 폰을 꺼내 내게 내민다.

-하읏, 흐으응, 흣! 피, 피디님.

“뭐, 뭐야!”

익숙한 신음이 들렸다.

스님 손에서 하나의 영상이 플레이됐다.

“시, 시연이? 이, 이걸 어떻게?”

“허허, 저희는 여러 가지로 가진 게 많습니다.”

과거에 시연이와 찍었던 영상이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걸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이 영상이 퍼지면 남자들은 아주 좋아하겠군요.”

“일단 자리를 옮기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시주.”

후우, 시연이 영상을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어떻게 보관했길래 이 영상을 저쪽 손에 들어가게 한 거야?

“허허. 궁금하신가 보군요. 클라우드 서비스에 아주 고이 모셔놨더군요. 많이 사랑하나 봅니다.”

“후우, 일단 가지.”

그걸 그런데 두면 어떡하냐 시연아.

이미 넘어간 거 어쩔 수 없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말없이 스님을 따라갔는데 갑자기 풍경이 변했다.

“여긴?”

“놀라실 거 없습니다. 앉으시죠.”

예전에 본 거 같은 풍경의 집이다.

여기도 나중에 사라지려나?

“후우, 내게 원하는 게 뭐지?”

“허허. 급하시군요.”

“당신과 오래 얘기하고 싶지 않으니까.”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자.

“허허. 아시다시피 저희는 예술인 지원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약쟁이를 만드는 게 지원이라고?”

“허허. 약물 검사에 절대 걸리지 않으면서 영감에 도움을 주는 약! 부작용도 없죠. 모든 예술가가 꿈꾸는 약 아니겠습니까?”

순수한 의미로 그런 약을 준다면 몰라도 중독시켜 마음대로 사용할 패를 만들려는 게 뻔히 보인다.

하고 싶은 작업을 할 수 없는 예술가라, 퍽이나 꿈꾸는 약이겠네.

“허허. 약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하시는 거 같지만, 시주도 이미 사용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나는 그런 거 안 쓰는데?”

“약의 정체를 아시지 않나요? 가지고 계신 기운과 같은 겁니다만.”

마기? 으음, 마기를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다.

“모든 예술가에게 그런 기운을 보급하는 것. 어찌 보면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순수하게 보급한다면 말이지.”

자꾸 논점을 흐리는 거 같다. 무슨 이유에서 예술가들을 중독시키는 거지?

“왜? 예술가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렇게 하는 거지?”

“허허. 대중을 움직이는 건 예술인들입니다. 단적으로 시주만 해도 엄청난 영향력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뭘 하려는 건데?”

“거기까진 말씀드리기 어렵군요.”

그래. 어찌 됐든 저쪽도 영향력이 늘어날수록 기운을 모으기 좋은 건 마찬가지니까.

예술인만큼 기운을 모으기 쉬운 존재도 없겠지.

“나보고 박희성처럼 브로커 짓을 하라는 건가?”

“허허. 시주는 훨씬 더 고급 인력이지요.”

“원하는 게 뭔데?”

땡중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고, 나는 눈을 흘기며 땡중을 봤다.

“시주가 가진 기운을 조금 제공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마기는 줄 수 있는 게 아니야!”

“가져가는 건 저희가 알아서 하죠.”

-더는 들을 필요 없다.

하지만 저들이 영상을 가지고 있는걸.

-저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너무 위험하다.

“내가 당신들을 어떻게 믿지?”

“허허. 믿을 수밖에 없을 텐데요?”

“고작 영상 하나로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거라 믿는 건가?”

“영상이 하나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그 외에 영상을 찍었던 건 선애 뿐이다.

걱정돼서 바로 삭제했고.

설마 영상이 더 있겠어?

“마기는 줄 수 없어.”

“흐음, 그럼 어쩔 수 없군요. 대신 후배 양성에 힘을 쏟아 주실 수는 있으신지요?”

결국, 브로커 짓을 해야 하는 건가?

-필요 없다.

그래도 영상을 가지고 있는 이상 무언가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닐까?

-저들은 점점 빌미를 만들어 어떻게든 파고들 거다. 이참에 완전히 적으로 돌리는 게 낫다.

“브로커 짓 말고 원하는 건 없어?”

“허허, 지금 저희가 부탁하는 처지가 아닌데 말이죠.”

땡중이 슬슬 본성을 드러내는 거 같다.

시종일관 짓고 있던 미소를 잃은 땡중.

“협상은 결렬이야.”

“후회하실 텐데요?”

“그래도 너희에게 협력하고 싶지 않아.”

“안타깝게 됐습니다.”

어떻게든 방법이 있겠지.

시연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당분간 집에서 홀로 지내게 하면 된다.

방송을 안 한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니까.

스님을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알아서 열리는 문.

밖으로 나오니 집 근처였다.

“후우, 잘한 거겠지?”

“허허. 후회되시면 아직은 되돌릴 수 있답니다.”

언제 왔는지 내 뒤에 있는 땡중.

“아니, 차라리 후회하고 말겠어.”

“이런.”

마지막 말을 남기고 땡중이 사라졌다.

-잘 했다. 괜찮을 거다. 나의 기운이 담긴 너의 작품은 그리 녹록지 않다.

“그래. 정 뭐하면 중국에라도 가지 뭐.”

중국은 영상 같은 거 떠도 여러모로 처리가 쉽지 않을까?

으음, 조아의 아버지가 실망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과거라고 생각하고 그냥 묻어 두겠지?

조아랑 얘기 좀 해봐야겠네.

“아! 주인님.”

“여기 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조심해야지.”

“헤헤.”

집 앞에서 하연을 마주쳤다.

“근데 박희성은 원래 수면제를 먹었어?”

“으음, 저는 한 번도 못 봤어요.”

“그래? 일단 들어가자.”

“네.”

하연과 집으로 향했다.

“이제 여기서 지내.”

“헤헤. 너무 행복한 날이네요.”

“그래.”

지금은 머릿속이 좀 복잡하다.

그래, 일단은 시연이한테 가야겠다.

시연이를 잠시 불러서 앞으로 있을 일을 미리 알릴 필요가 있다.

“쉬고 있어.”

“가시게요?”

“응. 할 일이 좀 있어.”

“네. 주인님. 언제나 여기서 기다릴게요.”

순종적으로 차분하게 말하는 하연.

순간 하연에게 좀 끌리긴 했지만, 성욕에 잠식될 때가 아니다.

“그래.”

-츄르릅, 츄릅.

하연을 한 번 안아주고 키스를 한 뒤 3층으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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