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311화 (311/450)

311.

“일단 두 사람이 마트에 도착할 때까지는 위치가 공개될 수 있어 잠시 가리고.”

“그때까지 저희 둘이 뭐 해요?”

나는 민하씨를 보며 물었다.

민하씨가 씩 웃으며 말한다.

“뭐든 덤벼 보쉴? 설욕전 함 가야죠.”

“으음, 조금 쫄리는데.”

“쫄?”

“살짝?”

-형 그거 떼.

-근데 민하눈나는 좀 어렵긴 함 ㅇㅇ.

-이건 쫄 인정이지.

-아니! 이걸 참는다고?

민하씨가 강적이긴 한 거 같다.

지금 민심도 둘로 분열돼 열심히 싸우고 있다.

“으음, 그래도 이대로 소통만 하긴 아쉬우니 간단한 거라도 할까요?”

적당히 민심을 반영해 게임 하나를 찾아본다.

“좋죠! 음, 플레이 타임 20분 내로 짧은 게 뭐가 있으려나.”

“아! 미니카라이더 어때요?”

“오! 자신 있으세요?”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좀 합니다.”

예전에 많이 했었으니까.

“가죠. 그럼.”

“네!”

그렇게 처참히 발리는 시간이 지나갔다.

“상처만 남은 게임이었다.”

“후후, 더 강해져서 돌아와라.”

내게 따봉을 날리며 말하는 민하씨.

조금 얄미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때맞춰 타이밍 좋게 켜지는 시연의 방송.

“아! 마트에 도착했나 봐요.”

두 사람이 카트를 밀고 천천히 마트를 걷는다.

“자, 여러분 이제 중계를 시작해 볼 건데요. 과연 두 사람이 사는 재료를 보고 작곡가님은 음식을 맞출 수 있을까요?”

“아! 제가 맞춰야 하는 거예요?”

민하씨가 찡긋 윙크한다.

“으음, 그냥 맞춰보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조금 더 재밌게 가볼까요?”

“어떻게요?”

“프로듀서님이 맞추시면 저도 함께 먹는 거로 하죠.”

“정말? 무조건 콜! 못 먹어도 콜!”

민하씨가 씩 웃는다.

으음, 본인만 손해 보는 제안을 할 사람은 아닌데?

“대신!”

역시 뒷말이 있었구나.

“못 맞추시면 그릇만 남게 싹 비우셔야 해요.”

원래도 몸이 거부반응만 일으키지 않으면 최대한 비울 생각이었다.

“당연하죠!”

“자! 그럼 볼까요?”

“네. 일단 면을 집었네요? 파스타면 같은데요?”

일부러 저쪽 소리는 송출하지 않았다.

“파스타 종류도 맞춰야 해요.”

“어렵지 않죠.”

“으음, 채소를 좀 사네요. 양파랑 마늘? 양식이니까 당연한 거고, 흐음.”

시연이가 적은 종이를 보며 하나하나 재료를 가져와 담았다.

“양송이에 베이컨까지 담는 걸 보니까 베이컨 오일 파스타네.”

잠시 후 시연의 손에 우유와 생크림이 잡혀 있는 모습을 포착했다.

“오! 크림.”

“호호. 이건 너무 쉬웠나? 뭐, 메뉴가 하나가 아니니까요.”

“여, 여러 가지 해요?”

“당연하죠.”

으음, 조금 당황스럽다.

하나도 다 먹기 힘들지도 모르는데, 여러 가지 음식을 먹어야 하는 거였다니!

어쩐지 내기를 제안하는 민하씨 표정이 심상치 않더라니!

이렇게 된 거 무조건 요리를 다 맞춰서 셋이 먹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으음, 고기도 가져왔고, 새우? 아까 마늘을 많이 사던데, 감바스?”

빵까지 사는 모습에 다음 메뉴까지 확실해졌다.

베이컨 크림 파스타에 감바스 알 아히요.

으음, 메뉴가 하나 더 있는 거 같은데? 시연이가 요를 세 개씩이나 한다고?

“시연이한테 요리 3개는 무리 아닐까요?”

“호호, 보조가 있잖아요.”

“재료 손질만 돕잖아요.”

“어머, 요리는 재료 손질이 거의 다예요.”

그건 맞지.

재료 손질만 빨리하면 요리는 뚝딱 나오니까.

근데, 그 뚝딱을 하는 사람이 시연이라 불안하지만.

“으음, 일단 마지막 요리까지 맞춰보죠.”

“호호. 여기에 준비된 재료도 있답니다.”

식탁 위에는 갖은 양념과 조미료. 다진 마늘에 쌀도 있었다.

“쌀? 갑자기 양식에 쌀? 필라프나 리조토?”

아까 소고기 등심을 좀 사던 것 같은데.

“으음, 버섯도 조금 많이 샀지.”

음식이 세 가지라면 등심이 스테이크용이 아니라는 뜻이 된다.

파스타, 감바스, 스테이크 일 줄 알았는데.

한 번 더 꼬였네.

“호호.”

얄밉게 웃는 민하씨.

“후후, 알 거 같네요.”

일부러 더 얄밉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오! 그래요?”

“네. 양식은 제 전문이죠.”

딱히 가리는 음식은 없지만, 양식을 좋아해서 대부분의 조리법을 알고 있다.

한식이나 잘 모르는 요리를 했으면 위험할 뻔했다.

“맞춰보실래요?”

“하나는 제일 확실한 감바스 알 아히요.”

“네. 다음은?”

“베이컨 크림 파스타!”

민하씨가 예상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자! 마지막 메뉴는 뭘까요?”

그래도 음식 가짓수를 말해줘서 다행.

“소고기 버섯 리조또겠죠.”

“오!”

“맞죠?”

민하씨가 살짝 놀란 얼굴로 날 본다.

“피디님 매일 사드시는 줄만 알았는데, 요리 좀 하세요?”

“요즘엔 할 일이 없지만, 자취할 땐 요리를 좀 했죠.”

채팅창 반응도 우호적으로 변했다.

“정답이에요. 와.”

“후후, 그럼 민하씨도 같이 먹겠네요.”

“호호. 오늘은 괜찮을 거 같아서 일부러 쉬운 문제를 드린 거랍니다.”

“그래요?”

민하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호호, 제가 시연이 요리 특훈을 시켰으니 먹을 수 있는 게 나올 거예요.”

“으음, 그거 괜찮은 거 맞죠?”

“제 요리 솜씨 못 믿으세요?”

민하씨 요리는 항상 믿고 먹지.

단지 시연이의 손을 못 믿을 뿐.

“재료를 다 산 거 같네요. 아! 방송이 꺼졌습니다. 그럼 저희는 두 사람 올 때까지 게임을 이어가 볼까요?”

“아으, 또요?”

발릴 게 뻔한데.

“흐음, 그럼 뭐 하면서 기다려요?”

“소통해요. 소통.”

“그럴까요?”

-게임 하면서 소통해도 되는데요?

-쫄았쥬?

-아까 발려서 하기 싫쥬?

도발성 채팅이 많이 올라왔지만, 넘어가 줄 생각 없다.

“응, 쫄았어. 응. 아까 발려서 하기 싫어. 이제 민하씨랑 게임 안 할 거야.”

채팅 하나하나에 유치한 반응을 보이며 잠시 소통을 하니 두 사람이 도착했다.

“히잉, 무거워요. 피디님.”

“와. 이 언니 보소.”

내게 봉지를 건네며 앙탈을 부리는 시연.

귀여운 모습에 절로 미소가 났다.

빠르게 다가가 봉지를 받으니 민주가 입을 삐죽인다.

“요 앞까진 아무렇지 않게 들고 오다가 갑자기? 와 이게 여우 짓인가? 저도 좀 배워야겠어요.”

“히잉. 여우 짓 아니에요. 계단을 올라오니까 정말 무거웠어요!”

시연이가 곰 같아 보여도 여우긴 하지.

“괜찮아요. 시연이 매력이 이런 거니까.”

봉지를 내려놓고 시연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어머, 어머, 두 사람 분위기 수상해?”

“뭐야뭐야?”

민주랑 민하씨가 죽이 맞아 우리 모습을 놀린다.

채팅창에도 미음이응이 마구 올라왔다.

저거 뭐야뭐야라는 뜻이지?

“하하. 사제지간입니다. 사제지간.”

“사제지간이라기엔 나잇대가 호호. 원래 선생님이랑 결혼하는 로망 있는 여학생들 좀 있는데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고 좋네. 호호.”

“아이, 자꾸 몰아가지 마세요.”

“와! 우리 시연이가 싫은 거예요?”

민하씨가 짓궂게 날 몰아간다.

“임자 있는 몸입니다.”

“네?”

“대박.”

“여러분! 특종이요!”

시연, 민주, 민하씨 순서의 반응.

놀라는 척 한 시연과 계속 대박을 외치는 민주.

알고 있었으면서 연기를 잘 하네.

뭐, 방송에서 공개할 줄은 몰랐겠지.

“하하. 곧 기사로 찾아뵙겠습니다.”

“아아, 배신감.”

시연이가 가슴을 잡고 살짝 표정을 찌푸린다.

“우리 시연이 가지고 논 거예요?”

“아니! 제가 뭘 가지고 놀아요. 시연이가 장남감도 아니고.”

“아! 시연이는 그냥 장난이었다?”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한차례 몰아가기 폭풍이 지나가고 조금 지친 상태로 자리에 앉았다.

“아우, 진이 다 빠진 기분이네요.”

“와! 지금 실시간으로 기사가 나고 있는데요?”

“으음, 상대의 정체도 공개됐나요?”

“그건 아직 이요.”

하긴, 조아를 유추하긴 힘들겠지, 아직 중국 진출이 딱히 공개된 건 아니니까.

“일단! 넘어가죠. 우린 할 일 해야죠.”

“아, 이렇게 빠져나간다고?”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상대방도 있는데, 서로 논의도 하고 그래야 할 거 아니에요.”

“아! 그건 맞지. 그럼 일단은 넘어가죠.”

그렇게 내 연애 떡밥은 마무리되고 요리를 시작한다.

“후우, 잘 할 수 있따아.”

“있다!”

시연이가 귀엽게 화이팅을 외쳤고, 민하씨가 옆에서 거들었다.

요리를 열심히 가르쳤으니 수제자 보는 느낌이려나?

민하씨랑 시연이 재료를 씻고 손질하기 시작했다.

민하씨의 정교하고 일정한 칼질과.

시연의 투박한 칼질.

“으음, 시연아 손 조심해.”

“헤헤. 안 다쳐요. 걱정하지 마셔요.”

불안했지만, 지켜볼 수밖에.

“자! 요리할 동안 지켜보기만 할 순 없죠?”

“그래요? 저흰 뭐 할까요?”

“후후, 아까의 한을 좀 풀어볼까?”

“한이요?”

나는 컴퓨터를 보면서 씩 웃었다.

민주는 게임 잘 안 하니까 이길 수 있겠지?

“민주씨 미니카라이더 좀 해요?”

“아! 미니카 할 줄 알아요.”

“좋았어! 지는 사람이 많이 먹는 거예요.”

“오! 콜! 후후. 실력을 좀 보여 드리죠.”

나와 민주는 컴퓨터에 앉아 요리될 동안 게임을 했다.

요리하는 모습을 찍는 캠과 우리를 찍는 캠.

게임 화면까지.

총 세 개의 화면이 나갔고, 시청자들은 취향에 맞게 즐기고 있다.

덕분에 채팅창이 엉망이지만, 지금은 게임에만 신경 써야지.

“아니! 이게, 억!”

“호호. 먼저가요오!”

민주 한테도 졌다.

발린 수준은 아니지만, 실력 차이가 꽤 난다.

사실, 나 게임 못 하는 걸지도?

“호호, 이따가 맛있게 팍팍 드세요.”

“그, 그래.”

어벙한 표정으로 화면만 본다.

“슬슬 요리가 어떻게 돼가는지 볼까요?”

“가보자.”

내가 많이 먹을 요리다.

게임 하는 동안 재료 손질은 모두 끝났는지 민하씨는 뒤에서 시연이를 지켜보고 있다.

“어? 양파가 원래 이렇게 까매지나? 여, 연기가 많이 나네? 원래 안 그랬는데.”

시연이의 손길이 닿은 요리는 왜 다 타는 걸까?

불의 축복이라도 받았나?

“으으.”

앓는 소리를 내는 민하씨. 나와 민주도 표정이 죽었다.

“머, 먹을 순 있겠지?”

“암 걸리고 싶지 않은데.”

“설마, 한 번 먹는다고 암까지 걸리겠어?”

웍에 쌀과 양파, 고기를 넣고 볶는 시연.

까맣게 탄 양파를 보며 그냥 육수를 붙는다.

양파는 좀 빼도 되지 않았을까?

“와! 탄 애들은 위로 떠요.”

“후우.”

한숨을 쉬는 민하씨.

요리 훈수는 일절 금지기에 입이 간질간질했다.

위로 뜨면 그거라도 건져낼 생각이 없니? 시연아? 내 마음을 읽어 줄래?

“호호. 이건 이제 졸아들면 완성이고.”

그냥 다음 요리로 넘어간다.

미리 끊여둔 물에 파스타 면을 넣고 팬에 양파와 베이컨을 볶는 시연.

면이 다 익자 면과 우유, 생크림을 넣고 간을 맞춘다.

오! 그래도 크림 파스타는 먹을 만 하겠는데?

“어? 이게 왜 이러지?”

“아으, 그, 흐으.”

답답한지 가슴을 치는 민하씨.

불이 너무 쎘다.

크림 파스타가 무슨 순두부를 푼 거처럼 몽글몽글하게 올라온다.

분리됐구나.

그럴 수 있지.

그래도 저건 못 먹는 건 아니니까.

“으음, 괜찮겠죠? 조금 더 끓여볼까?”

더 끓이면 더 분리된단다. 빨리 불을 끄고 섞는 게 그나마 좋단다.

훈수 금지가 이렇게 힘든 거였구나.

“헤헤. 이제 마지막 요리에요.”

팬에 마늘과 자른 방울토마토를 듬뿍 넣고 오일을 꽤 많이 채운 시연.

불을 올리고 마늘이 익기 시작하니 새우를 넣는다.

으음, 새우는 더 나중에 넣어야 하는데.

기름이 충분히 우러나고 새우를 넣어야 새우가 너무 오래 익어 질겨지는 걸 막을 수 있다.

그래. 거기까진 바라지도 말자.

“이제 살짝 매콤하게.”

페페론치노가 있었어?

매운 고추를 손으로 찢어 넣는 시연.

근데 몇 개를 넣는 거니?

“이 정도면 청양고추 한두 개쯤 되겠지?”

아니! 그건 훨씬 맵다고! 작다고 얕보면 안 되는데.

저건 지옥에서 온 감바스가 될 거 같다.

“파스타랑 감바스를 놓고, 빵도 좀 구워야지. 흐으응.”

혼자만 신나서 콧노래 하며 요리하는 시연.

나와 민주, 민하씨는 죽상이다.

“아, 맞다 리조또가 쫄면 버터랑 치즈를 넣어야지.”

-치이익!

리조또를 주걱으로 젓는 시연.

바닥이 눌어붙어 까맣다.

으음, 육수가 졸면 좀 저어 줬어야 했는데.

“어? 이게 왜? 으음, 더 맛있겠다. 헤헤.”

우릴 보며 민망하다는 듯 웃는 시연.

“으음, 일단 빨리해. 더 타기 전에.”

“응!”

민주씨가 말했고, 시연이 빠르게 버터와 치즈를 넣는다.

완성된 음식들.

유지방 분리가 일어나 새하얀 알맹이가 촘촘히 박힌 파스타와 거무죽죽한 리조또.

감바스만 그나마 볼만한 모양이다.

잠깐 사이에 빵도 태웠어?

왜 빵 겉면이 까맣지?

“헤헤. 맛있게 드세요.”

“맛있는 걸 줘야 맛있게 먹지.”

“언니 정말 너무해요.”

“하하. 잘 먹을게 시연아.”

떨리는 손으로 포크를 집는다.

으음, 저 감바스는 분명 엄청 맵겠지?

일단 그나마 정상적인 파스타를 먹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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