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
그래도 아이돌 할 거라서 그런지 딱히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빼는 거 없이 노래를 찾는구나. 기본은 됐다.
적당한 곡을 선택한 신정.
집에 가장 넓은 공간에 적당히 서서 포즈를 잡는다.
“프, 플레이 좀 눌러 주시겠어요?”
“그래. 하나, 둘, 셋!”
셋을 세고 스페이스 바를 눌렀다.
음악과 함께 열정적으로 춤을 시작한 신정.
꽤 빠르고 역동적인 춤이었는데.
내가 춤은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잘 추는 거네.
내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는 건 꽤 한다는 뜻.
못 하는 건 귀신같이 티가 나거든.
내가 잘 모르겠는 춤은 기본 이상한다는 의미다.
게다가 내가 원하는 모습이 좀 나와서 더 좋았다.
카리스마 있는 모습이랄까?
춤을 시작하고 바로 돌변하는 표정. 수줍음이 바로 사라지고 당당하고 멋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조금만 더 다듬으면 진짜 좋을 거 같네. 랩도 잘 했으면 좋겠다.
“흐음, 좋네. 나중에 초유 누님한테 레슨받으면 되고, 이제 랩 할 수 있겠어? 준비된 거 있어? 아니면 기성곡?”
“두, 둘 다 해도 돼요?”
고개를 끄덕여준다.
으음, 자작곡, 기존곡 둘 다 하면 나야 판단하기 더 좋으니까.
먼저 유명한 여성 래퍼의 곡을 하는 신정.
음, 톤 좋고, 발성 나쁘지 않고.
가사야 원래 있는 거니 넘어간다고 치고, 플로우나 박자감이 나쁘지 않았다.
카디에 익숙해진 내 귀에 그럭저럭 들어줄 만한 랩을 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이 정도면 아이돌 래퍼 수준은 아닌데?
그냥 힙합씬에 떨어져도 밥벌이는 할 수준이다.
게다가 외모도 이쁘니 랩으로 먹고살 순 있겠네.
“으음, 자작곡도 해볼까?”
“네. 무, 물 좀 마시고 해도 될까요?”
“그럼,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천천히 해.”
“네. 헤헤.”
멋있게 랩을 끝내 놓고 수줍게 부끄러워하며 물 마시는 신정.
어우, 진짜 이 차이가 엄청 매력적이다.
멋진 무대 덕에 수줍어하는 신정의 모습이 더 귀여워 보였고.
평소의 수줍고 귀여운 모습 덕에 무대는 더 멋지고 카리스마있어 보인다.
으음, 이런 컨셉 유지하는 거도 꽤 좋을 거 같다.
“흠흠, 준비됐습니다.”
“그래. 비트는 있어?”
“네. 하, 항상 가지고 다니는 비트가 있어요.”
폰을 꺼내는 신정.
나는 폰을 컴퓨터에 연결해 비트를 틀어줬다.
“아아, 흠! 샤라웃 더 에스민! 호호.”
내게 존중을 표하고 살짝 웃는 신정.
마이크만 잡으면 다른 사람 같네.
카디는 여성 래퍼지만 묵직하고 둔탁한 랩을 한다면.
신정은 날카로운 하이톤에 또박또박 발음하며 때려 박는 랩을 한다.
으음, 이거 잘 하면 힙합으로 미국에서도 먹히겠는데?
동양인이라고 차별받는 시대는 이미 지난 지 오래니까.
나중에 솔로 힙합 앨범을 한 번 준비해도 되겠다.
“잘 하네.”
“저, 정말요?”
감동한 표정.
어우, 무대 할 때 당당한 모습은 어떻게 나오는 거지?
음악이 끝나니까 귀신같이 조신해지네.
뭐, 생긴 게 조신한 편은 아니라 조신한 느낌이 많이 살진 않지만.
상당히 귀여웠다.
왜 남자들은 그런 거 좋아하잖아.
청순하게 생긴 걸레라던가.
의외로 순정파인 양아치녀라던가.
그런 갭에서 오는 매력에 정신이 혼미하다.
“발성 공부는 따로 했니?”
“아, 아니요.”
“으음, 타고난 발성이 좋구나. 그럼 발성에 대해서 아는 게 좀 있니?”
“그, 그냥 유티비 보고 주워들은 정도예요.”
아마 롤모델로 삼은 래퍼가 있겠지.
그를 따라서 만든 랩인 거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한 사람 떠오르는 래퍼가 있었으니까.
“가사 쓰는 능력도 조금 기를 필요가 있겠다.”
“아, 그, 그렇죠.”
“평소에 책은 좀 읽어?”
“하, 한 달에 한 권 정도요?”
으음, 가사를 쓰려면 그거보다는 많이 읽어야 하는데.
본인도 조금 부족한 독서량을 느끼는지 고개를 푹 숙인다.
“뭐, 더 읽으면 좋지만, 그게 아니라도 방법은 있으니까.”
“바, 방법이요?”
또 약을 팔아볼 시간이 왔다.
“뭐, 네가 사회 비판을 하는 컨셔스 랩을 할 건 아니니까. 중요한 건 느낀 감정을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고, 결국엔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가 중요하지.”
“가, 감정이요.”
“응, 연애는 해봤니?”
떨리는 눈으로 동공을 떠는 신정.
오? 설마 처녀인가?
“안 해봤어?”
“네. 죄, 죄송해요.”
“아니, 그게 죄송할 일은 아니야.”
“그, 음악에 빠져 살다 보니까 시간이 부족했어요.”
변명할 필요 없다.
나야 오히려 좋으니까.
그리고 음악에 빠져 사는 사람 중에서도 할 거 다 하는 사람 꽤 많다.
내가 아는 이들만 해도 몇인데.
“괜찮아. 걱정할 거 없어.”
“네.”
“어쨌든 지금 한국 음악 시장은 온통 사랑 노랜 건 알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신정.
“사랑, 이별, 썸 등. 남녀 간의 관계를 노래하는 게 대부분이죠?”
“그래. 우리는 그걸 거스를 생각이 없고. 그럼 그런 경험이 없는 네가 그런 곡을 소화할 방법은 뭐가 있을까?”
“지, 지금이라도 연애를 해야 할까요?”
많이 당황한 모습으로 말을 꺼내는 신정.
귀여운 모습이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하하. 그러다 나중에 데뷔하고 기사라도 나면 어떡해.”
“아, 그, 그렇죠. 그, 그럼 전 어떡해야 하죠?”
“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랑 의심받지 않게 연애하면 돼.”
“의심받지 않게요? 으음, 믿을 수 있는 사람도....”
고개를 갸웃하고 묻는 신정.
나는 씩 웃으며 가볍게 말을 꺼낸다.
“네가 단둘이 있어도 의심받지 않을 남자가 누가 있을까?”
“으음, 아버지?”
“아버지를 남자로 느끼면 안 되지.”
“아! 그, 그럼.”
생각에 잠기는 신정.
으음, 생각보다 애가 맹한데?
도도하게 생겨서 논리적인 성격이 아닐까 했지만, 생각만큼 말을 잘 하지도, 생각이 깊지도 않았다.
제일 언니라 리더 시키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으으, 어, 없는 거 같은데요?”
“그래? 지금 우리 단둘이 있는데. 사람들이 의심할까?”
“에이, 피디님이랑은 의심 안 하겠죠. 사제지간이니! 아!”
말하다가 혼자 깨닫고 갑자기 긴장한 신정.
“하하하, 안 잡아먹으니까 긴장할 건 없고. 게다가 누구보다 네 성공을 바라니 믿을만한 사람이기도 하고.”
“하으으, 네에.”
떨리는 숨을 뱉은 신정이 더 긴장한다.
긴장 풀라니까 더 긴장하고 있네.
“자, 그럼 나랑 연애해볼까?”
“여, 연애요?”
장난스럽게 말하며 신정에게 다가갔다.
“응, 일단 겪어봐야 하니까. 오늘부터 시작하면 되겠네?”
“그, 자, 잠시만.”
신정의 어깨에 손을 턱! 하고 올렸다.
“하읏!”
“아으, 너 이래서 아이돌은 어떻게 하려고 하냐. 하하.”
장난이었다는 듯 어깨를 살짝 토닥이며 말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당황에서 벗어난 신정.
“너, 너무해요.”
“뭐가 너무해? 진짜 사귈까?”
“그, 그건.”
아직 연애 기사가 안 나가서 다행이다.
그걸 얘가 봤으면 지금 상황이 또 달랐겠지?
“오늘 느낀 이런 감정들이 네게는 큰 자산이 될 거야.”
“그, 그렇겠죠?”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래도 많이 진정됐는지 차분해진 신정.
이제 다시 진도를 나갈 타이밍이지.
그 전에 밥부터 먹고.
둘 다 배고플 시간이니까.
“나가서 먹긴 좀 그래서 좋아한다는 닭고기 시켰어.”
“아! 그래요?”
타이밍 좋게 배달온 음식은 찜닭.
치킨을 먹으려다가 밥이 당겨서 찜닭을 시켰다.
살짝 매콤한 맛과 함께 퍼지는 달콤짭짜름함. 찜닭을 먹으면 신정에 관해 조금 더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본다.
“평소 쉴 때는 뭐해?”
“으음, 그냥 유티비나 드라마 같은 거 봐요.”
“평범하네.”
“헤헤. 딱히 모난 걸 좋아하진 않아요.”
힙합하는 사람들과는 느낌이 꽤 다르구나.
보통 힙합 한다는 애들은 특이해지고 싶어서 난린데.
랩 하는 거 치고 꽤 평범한 삶이다.
그래서 아이돌에 지원한 건가?
적당히 배를 채우고 다시 신정을 본다.
“그럼 드라마 보면서 설레고 하는 감정은 느껴 봤겠네?”
“으음, 그렇죠?”
“어땠어?”
“어, 으으.”
설명이 어려운지 잘 말하지 못하는 신정.
그걸 말할 수 있어야 가사를 잘 쓸 수 있는데.
“하으, 모르겠네요.”
“흐음, 그걸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간접 경험이라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감정이 진하지 않아서 그런가?”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다시 연애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흐음, 내 경험이라도 말해줘야 하나.”
“아! 피디님도 곡을 쓰시니까 경험이 많으시겠죠?”
“적진 않지.”
“우와.”
부러워할 건 아닌 거 같은데?
“어쩔 수 없네.”
“네?”
신정의 근처에 앉아 살며시 이야기를 꺼낸다.
“내 노래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들어?”
“으음, 뭔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있어요.”
오! 그래도 마기에 꽤 민감한 편인가?
“대부분 곡이 분위기가 다른데, 사람들이 내 곡은 귀신같이 아는 거 같지 않아?”
“마, 맞아요. 피디님 곡은 그 특유의 느낌이 있어요!”
“그걸 넌 간질간질하다고 느끼는 거구나.”
“으음, 사실 잘 설명이 안 돼요.”
내 곡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사실 성적 흥분에 가깝다.
그렇게 만들어진 마기니까.
“으음, 그 느낌이 사랑의 느낌과 가까운 거 같지 않아?”
“흐으음.”
고민에 잠기는 신정.
“아직 잘 모르겠니?”
“네. 조금 어렵네요.”
“흐음, 그럼 사랑에 빠진 이후 알콩달콩한 커플이 나오면 느낌이 어때?”
사랑을 시작하는 설렘도 강렬한 감정이지만.
사랑하는 동안 나오는 달달한 느낌도 못지않게 커다란 감정이다.
“아으, 잘 모르겠어요.”
짧은 시간으로 알기 힘든 감정이긴 하다.
“쉽게 알 수 있는 감정은 아니지.”
“흐음.”
살짝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신정.
생긴 거랑 다르게 표정이 참 다채롭다.
도도하게 무표정으로 있다가 한 번씩 씩 웃는 모습이 떠오르는 얼굴인데.
다채로운 감정을 표정으로 잘 표현한다.
으음, 이건 아이돌에겐 꽤 큰 장점이다.
짧은 시간 임팩트 있는 표정은 아이돌 최고의 무기지.
“후, 어쩔 수 없겠다.”
“그런가요? 죄송해요.”
“무슨 뜻인 줄 알고 죄송하다고 하는 거야?”
“아, 저, 그게.”
사과가 입에 밴 스타일인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인지도 모르겠다.
“후우, 일단 상황에 몰입해 보자. 네가 드라마 여주인공이고. 내가 남주라고 생각해봐.”
“아! 네.”
“보통 어떤 대사를 하지?”
몰입하기 전에 신정이 좋아할 만한 기본적인 대사는 알고 가면 좋으니 살짝 물어봤다.
“으음, 그 제가 좋아하는 대사가 있는데요. 나 너 좋아하냐? 라고...”
“아, 그거.”
취향 참 독특하네.
뭐, 그래도 엄청 히트한 드라마니까.
나는 저 대사가 도무지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고, 여자들이 왜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잘 생긴 남자가 말해서 그런 거 아닐까?
잘 생기면 아무 소리 씨불여도 그럴듯하게 들리잖아.
“으음, 나 너 좋아하냐?”
“풋, 꺄흐으으, 아, 그게 뭐예요.”
“이, 이상했어?”
“아으, 너무 웃겨요.”
음, 나름 진지하게 한 건데.
역시 내 얼굴로는 안 먹히는 대사다.
“좀 더 평범한 대사로 가는 게 좋겠다.”
“하으, 네. 그, 그래요.”
터진 웃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감정을 잡는 신정.
오! 나중에 연기해도 괜찮겠는데?
드라마를 많이 봐서 그런지 몰입하는 게 수준급이다.
대충 남주가 할만한 대사가 뭐가 있지?
“나 사랑해요?”
“응.”
내가 잠시 고민하니 신정이 먼저 말을 꺼냈다.
무난한 대사.
“우리 이제 만난 지 이틀째인데. 너무 가볍지 않아요?”
“으음, 지금 사랑한단 말이 가벼우면 언제 얘기해야 해? 키스하고? 같이 자고? 좋은 마음으로 자고 난 다음에도 사랑한단 말 하면 안 돼? 그럼 도대체 언제 해?”
음, 기억나는 드라마가 있어서 대사를 기억나는 대로 비슷하게 말했다.
“으음, 아무튼 지금은 너무 빨라.”
“그래. 그러면 사랑한다고 안 할게.”
신정이 묘한 표정으로 날 본다.
이거 딱 키스 타이밍인데.
신정에게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가까이한다.
지그시 눈을 감는 신정.
이건 몰입한 걸까? 해도 된다는 신호일까?
“여기까지.”
“아!”
내가 키스하지 않고 귓가에 말을 하자 그제야 몰입에서 나와 날 보는 신정.
“어땠어?”
“으으,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려요.”
“키스까지 했으면 어땠을 거 같아?”
“으으, 그건 정말 모르겠네요.”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하는 신정.
나는 씩 웃고 신정을 봤다.
역할에 몰입해서 하는 거보다 이런 갑작스러운 키스가 진짜.
“흡!”
신정의 뒷덜미를 잡고 그대로 입술을 맞댔다.
-츕, 츄르릅. 츕.
눈을 부릅뜨고 놀라던 신정.
내가 계속 부드럽게 입술을 비비자 서서히 힘을 풀고 눈을 감는다.
그 모습을 본 나도 눈을 감고 부드럽고 낭만적인 키스를 이어갔다.
“하아아. 처, 첫 키스였는데.”
“이게 키스야. 어땠어?”
나랑 처음 해서 아쉬운 건가?
키스가 끝나서 아쉬운 건가?
살짝 아쉬움 담긴 표정으로 자기 입술을 매만지는 신정.
키스도 했으니 이제 다음 진도로 나가는 건 더 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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