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
“아니, 너희 컨셉은 걸크러쉬가 아닌데? 왜 이름을 걸크러쉬로 가는 거야?”
내가 혜인과 얘기하고 있을 때 해인도 누군가의 종이를 보며 말했다.
으음, 그러고 보니 혜인과 해인이 이름이 똑같구나?
예와 애가 다를 뿐. 밝음은 비슷하다.
헷갈릴 수도 있겠네.
뭐, 둘이 이미지가 전혀 다르긴 하지만.
“아무튼, 이건 좀 그래.”
“히잉.”
혜인이 쓴 이름은 메가 시크 레이디즈였다.
요즘 시크, 걸크러쉬가 대세긴 대세지만.
다들 그런 이름을 정하는 건 좀 아닌데.
나는 첫 곡을 걸크러쉬나 시크 이미지로 잡지 않았다.
“으음, 이름이 그룹 컨셉과 매치가 안 되게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여러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건지 해인이 먼저 말했다.
“만약 걸크러쉬같은 이름을 달고 귀엽고 상큼한 무대에 서면 이상하잖아요? 여러분은 한 가지 컨셉만 할 건가요?”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적었던 걸 지우고 있다.
“으음, 그랬구나.”
혜인이 슬며시 시크만 지운다.
메가레이디즈? 그건 또 뭐냐?
큰 여자들은 좀 그렇지 않니?
“흐으음.”
나는 혜인이만 집중 마크해야겠다.
나머지는 해인에게 맡겨야지.
“혜인아.”
“네?”
“그냥 너는 하지 말자.”
“히잉.”
몇 가지 이름을 써 내려가는 혜인.
폭풍 상큼 레몬 레이디즈까지 보고 혜인을 막았다.
아니! 걸그룹 이름을 누가 이렇게 짓냐고!
“으음, 걸그룹 이름들을 생각해 보면 네가 지은 이름이 좀 이상하지 않니?”
“헤헤. 세상에 없던 이름을 만들어야죠!”
“그, 그래 그건 좋은데. 정도라는 게 있지 않을까? 왜 아무도 그런 이름을 안 했을지는 생각 안 해봤니?”
혜인이 동공이 마구 떨린다.
“와! 대박.”
“왜?”
혜인이 씨익 웃으며 이름을 또 적는다.
“아니!”
“헤헤. 이게 진짜죠!”
세상에 없던 걸그룹 이름이지만 정도를 지킴.
자신과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적은 혜인.
“그, 가요프로에서 소개할 때 세상에 없던 걸그룹 이름이지만 정도를 지킴이 부릅니다. 하면 좀 길지 않을까?”
“에이, 요즘엔 다들 줄여 부르잖아요. 세업정지? 오! 입에 착착 붙어요.”
그래. 난 그 입을 착착 때리고 싶다.
혜인이가 가지고 있던 펜과 종이를 뺐었다.
“오, 이건 좀 괜찮네?”
“헤헤.”
다람이가 밝게 웃는다.
와! 다람이가 진짜 많이 변했다.
화사한 얼굴에 절로 아빠 미소가 났다.
아, 너무 사심을 비추면 안 되지.
“흠, 다람이가 아이디어가 좋네?”
“감사합니다.”
다람이가 쓴 이름은 판타지드림과 핑크버스터.
무난하니 어디 하나쯤 있을 거 같은 이름이지만.
이런 이름이 후보에 있는 게 내 마음이 편할 거 같다.
제작진이 준비한 후보군 총 다섯과.
멤버들이 적어낸 이름 중 선택받은 셋.
총 여덟 개의 이름이 후보에 올랐다.
“후보가 모두 정해졌네요.”
“네. 저기서 에스걸즈만 빼면 딱인데.”
“아니! 에스걸즈 좋다니까아!”
“네. 여러분 옛날 사람이니까 이해 부탁드립니다.”
해인이 내 팔뚝을 꼬집는다.
“아악!”
“옛날 사람이라니! 이렇게 트랜디한데! 어! 내가 어린애들 만난다고 오늘 의상도 으! 말을 말자 휴.”
“이거 찐텐인데요?”
“방방봐 하세요.”
해인이 숨을 깊게 쉬고 웃으며 말한다.
나도 일부러 크게 리액션을 했지만, 해인은 진짜로 짜증 냈던 거 같은데?
방송이겠지? 나중에 조금 두려운 일이 생길 법도 하지만 일단은 넘어가자.
“자! 그럼 이름을 정하기 위해 필요한 게 뭘까요?”
“이름을 찾는 건 보물을 찾는 거나 다름없죠.”
“그래서?”
“오늘 할 건 보물찾기입니다!”
벙찐 표정의 아이들.
“이 넓은 스튜디오에 제작진이 미리 이런 모양의 쪽지를 숨겨뒀는데요.”
내가 쪽지를 해인에게 건넸고, 해인이 쪽지를 연다.
“아, 꽝이네요?”
“네. 이건 꽝이죠. 몇 장의 종이에만 당첨이라고 적혀있답니다.”
“그걸 찾으면 되는 건가요?”
“네. 당첨된 종이를 뽑은 사람은 후보 중 하나를 제외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긴장한 게 눈에 보였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제한시간은 삼십 분! 그 안에 그룹명을 제외하지 못하면, 선택권은 제게 넘어옵니다!”
“아, 성민씨가 선택하면 에스걸스는 답이 없는데요?”
“하하. 그래서 특별히 해인씨도 종이를 찾을 수 있게 해드렸습니다.”
“아니! 찾는 게 쉽냐고!”
그건 나도 모르지 이양반아!
제작진이 숨겼다니까!
“아! 몰랑! 그럼 시작!”
“아니! 이렇게 갑자기 시작하는 게 어딨어요?”
“저기 전자시계 보이시죠?”
“시계요? 아, 저기 있네요.”
시계의 숫자가 30:00에서 29:59로 바뀐다.
“저게 제한시간입니다. 아! 줄기 시작했네요.”
“아잇!”
해인도 신나서 종이를 찾으러 돌아다녔다.
그동안 나는 의자에 앉아 열정적으로 스튜디오를 뒤지는 아이들을 구경했다.
“와!”
“오! 당첨인가요?”
“네네!”
가장 처음 당첨을 찾은 아이는 우연.
그 뒤로도 하나둘 당첨 쪽지가 나온다.
아니, 제작진 양반들 이거 너무 쉬운 거 아니오?
당황스러운 얼굴로 보고 있으니 해인도 씩 웃는다.
“뽑은 종이는 가지고 계시면 됩니다.”
남은 시간은 1분.
지금까지 당첨 종이는 다섯 장 나왔다.
“으음, 더는 못 찾겠는데요?”
“어쩔 수 없네요.”
몇 초 남기고 해인이 옆으로 왔고 다시 진행을 시작한다.
“자! 제한시간이 모두 끝났네요.”
“아!”
아쉬워하던 아이들이 내 앞으로 보인다.
“자! 당첨 쪽지를 얻은 사람은 앞으로 나와주세요.”
“헤헤.”
해인도 당당히 아이들과 합류했다.
진짜 40살 아줌마가 20대의 파릇파릇한 아이돌 사이에 있는데 어떻게 안 꿀리냐?
관리가 이렇게 중요하구나.
나도 피부 관리 좀 열심히 받아야겠다.
아니, 이게 아니고 이제 이름을 정해야지.
“자! 한 분씩 떨어트리고 싶은 이름에 당첨 쪽지를 붙이시면 됩니다.”
“호호, 전 이거요.”
해인이 먼저 나서서 이름에 쪽지를 붙였다.
해인이 쪽지를 붙인 이름은 판타지드림.
“이거 너무 올드한 느낌이에요!”
“으음, 올드한 사람이 올드한 느낌이라고 하면, 취향이라는 말! 아악!”
“자꾸 나이로 놀리지 마요!”
“하하. 네네. 아, 아파요. 아으.”
이번엔 진짜 아프게 꼬집혔다.
나이는 인제 그만 놀려야겠다.
“자! 다음은 우연씨.”
“으음, 전 이거요.”
“오! 저도 그거 탈락시키고 싶었는데.”
내 말에 우연이 씽긋 웃었다.
우연이 탈락시킨 이름은 팡팡레몬.
이후로 아이들이 하나씩 이름을 제거해갔다.
마지막에 남은 이름은 에스걸즈와 핑크버스터.
“으음, 다람양이 낸 이름과 해인씨의 이름 두 개만 남았군요. 당첨 쪽지는 더 없는 거죠?”
나는 씩 웃었다.
“크큭, 훗, 후하하하하.”
갑자기 사악하게 웃기 시작한 해인.
“아, 설마? 진짜? 아, 아니죠? 아이, 왜 그래요?”
“지금 제 손에 종이 한 장이 있는데요.”
갑자기 종이를 꺼내든 해인.
“아, 진짜 이거 아니잖아요. 꽝이죠?”
“후후, 뭘까요?”
아주 천천히 종이를 여는 해인.
이응 받침이 보였다.
꽝이네. 근데 이응이 조금 앞에 있는 거 같은데?
아? 당? 옆으로 슬쩍 네모가 보인다.
“아, 이거 잠깐만요.”
“왜요? 쫄?”
“아니, 쫄이 아니고! 에스걸스 진짜 이상한데.”
“응. 바꿔줄 생각 없어 돌아가.”
해인이 종이를 펼쳐 당첨 글자를 보이며 이름이 적힌 패널 앞으로 갔다.
“안돼!”
내 절규에 굴하지 않고 핑크버스터에 쪽지를 붙인 해인.
결국, 쪽지가 안 붙은 이름은 에스걸즈만 남았다.
“이, 이런 게 어딨어요! 제작진이 너무 쉽게 숨겼네! 이건 무효야. 다시 해!”
“응, 이미 끝났단다.”
내게 다가와 씽긋 웃으며 어깨를 토닥이는 해인.
“하아, 이걸 어쩌죠?”
카메라를 보며 처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 오늘도 즐겁게 시청하셨나요?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주에 만나요.”
“아니! 잠깐만! 이건 아니죠? 설마 피디님? 왜 장비를 접는 건데요!”
그렇게 촬영이 끝났다.
멍한 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에스걸즈, 에스걸즈, 에스걸...”
“괘, 괜찮아?”
“서, 성민씨? 에스걸즈가 그렇게 싫었어요?”
“아니에요.”
내 얼굴을 본 피디와 해인이 미안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진짜 괜찮은 이름이라니까?”
“네네. 이미 정해진 거 어쩔 수 없죠.”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질 않는 걸까?
뭐, 처음부터 부른 에스걸즈가 모두에게 익숙하고 좋긴 하겠지.
근데, 새로 나오는 걸그룹 이름으로 하기엔 아주 올드한 느낌이다.
90년대에 있었을 거 같잖아.
“하아.”
“괜찮아. 어차피 잘 될 거잖아. 지금 시청률도 대박인데.”
“네. 그렇죠. 하아.”
입에서 한숨이 빠져나가질 않네.
“수고하셨습니다.”
제작진에게 인사하는 아이들.
나는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모두 잠깐만.”
“네.”
내게 집중하는 열 명의 여인들.
“정말 에스걸즈 괜찮겠어?”
“저흰 좋아요.”
“피디님이랑 연결 고리가 더 견고해진 느낌이라 좋아요.”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요?”
음, 얘네들까지 이런 반응이면 방법이 없다.
나의 패배다.
“그래.”
나는 뒤로 돌아 터벅터벅 걸었다.
대기실에 혼자 앉아 살짝 멍 때렸다.
“선생님.”
“음? 다람이?”
“헤헤.”
자신의 가슴을 자극하며 환하게 웃는 다람.
크으, 다람이의 미소는 확실히 위로된다.
“하으으, 저 촬영하면서 자꾸 자극했더니 아래가 너무 간지러워요.”
“흐음, 그래도 여긴 안 되지. 오늘 숙소 가기 전에 잠깐 볼까?”
“헤헤. 혜민 언니도 불러올까요?”
“으음, 그게 좋겠지. 둘 다 잠깐 면담 좀 하자.”
다른 애들이 질투하거나 편애한다고 느낄 수 있으니 둘과 오늘 면담하고 한 명씩 면담을 또 해야겠다.
둘 빼고는 내 여자들이 아니라 그룹 안에서 약간 문제가 생기면 골치 아프다.
확 다 따먹어서 내 여자로 만들면 다루기야 쉽겠지만.
그럴 마음이 들진 않았다.
내 능력을 이용하는 거도 좋지만.
그대로도 매력적인 아이들이다.
내가 바꾸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굴러가게 두고 싶은 마음이랄까?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게 좋겠네. 같이 가자.”
“네. 헤헤.”
다람이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어 주고 여자들이 모인 곳으로 갔다.
해인 누나는 퇴근했나 보네. 안 보이는구나.
“모두 모여봐.”
“네!”
내 말에 다 모이는 여인들.
“음, 이제 슬슬 데뷔 윤곽도 보이고, 이름도 정해지고 했으니 한 명씩 나랑 면담 좀 하는 게 좋겠다. 매번 촬영 때마다 한 둘씩 면담 좀 하자.”
“네.” “알겠습니다.”
답하는 아이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혜민을 본다.
“그래. 오늘은 다람이랑 혜민이. 다음 주는 또 그때 봐서 정할게. 숙소로 들어가.”
“네.”
다람과 혜민이 남고 모두 차를 탔다.
“우리도 가자.”
“네.”
흐음, 어디로 갈까?
혼자 지내는 집에 데리고 갈까?
으음, 아니다. 얘네도 나중엔 어차피 집으로 들어올 텐데.
미리 방을 정해두는 거도 나쁘지 않겠다.
“다람이 오랜만이네.”
“헤헤. 안녕하세요.”
아인과 인사하는 다람.
아인은 얘네 나왔던 오디션에 과몰입했기에 모든 여인을 좋아한다.
그만큼 아이들도 아인을 좋아하게 됐고.
촬영 때 잠깐 보는 건데 언제 다들 그렇게 친해졌는지.
아인을 언니언니하며 잘 따르는 거 같다.
얘가 나름 카리스마가 있나?
내가 보기엔 그냥 애 같은데.
“집으로 가자.”
“그래. 출발할게.”
내 양옆으로 혜민과 다람이를 앉힌 뒤 도란도란 얘기하며 집으로 이동했다.
물론, 손은 바쁘게 두 여인을 만졌고.
“하으으, 다 왔네요.”
“응. 두 사람도 나중에 여기로 들어와.”
“네에. 알겠어요.”
“좋아요. 헤헤.”
흥분해 다른 말도 없이 수락하는 두 여인.
나는 둘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간다.
“문 앞에 명패 있지? 이름 안 적힌 곳이 빈 곳이야.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봐.”
말하고 집 내부 시설을 하나하나 구경시켜준다.
3층 방송 방과 지하 연습실.
거실과 부엌, 화장실까지.
“와! 연예인에겐 꿈의 하우스네요.”
“그래?”
혜민이 눈을 반짝이며 좋아했고 다람이는 그냥 묘한 미소만 짓는다.
“다람이는 어때?”
“헤헤. 선생님이랑 같이 산다니 좋네요.”
“그럼 방을 정해볼까?”
두 사람은 같은 그룹 멤버여서 그런지 나란히 옆방으로 방을 정했다.
명패에 이름을 적어 주고 내 방으로 둘을 데리고 왔다.
가구가 미리 준비돼 있긴 하지만.
안 쓰던 방이라 조금 부족하니까.
“자, 다람이는 오늘 액세서리 잘 찼나 볼까?”
“하으응.”
다람이의 상의를 벗긴다.
브라 앞으로 살짝 튀어나온 액세서리.
부드럽게 브라를 벗기니 큰 가슴이 출렁였고 액세서리가 보였다.
“내가 준 게 아니네?”
“헤헤. 저도 알아보고 이것저것 사 봤어요.”
내가 준 거보다 자극이 강해 보이는데?
액세서리를 살짝 당겨본다.
“흣, 흐으으응!”
“호호. 다람이 너무 귀여워요.”
혜민도 반대쪽 가슴에 있는 액세서리를 당긴다.
다리를 부들대며 떠는 다람이.
나와 혜민은 씩 웃으며 다람이를 침대에 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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