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303화 (303/450)

303.

-띵동.

“네에!”

내게 전화를 받았다가 끊었던 직원이 저 사람인 거 같다.

빠르게 나와 문을 열고 인사하는 여직원.

“아, 안녕하세요. 저희 코코 엔터테인먼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준비한 멘트 같은데 국어책 읽듯 어색하게 해서 조금 민망하다.

“하하. 그렇게 너무 긴장 안 하셔도 됩니다.”

“아! 네네. 아, 안으로 오시겠어요?”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살짝 배가 나온 40은 넘어 보이는 후덕한 아저씨가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코코엔터 대표 노혁민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성민입니다. 어제 통화했었죠?”

“네네. 감사합니다. 정말.”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뭐가 그리 고마운 걸까?

거의 절하다시피 고개를 숙인 대표님 때문에 조금 민망하다.

“하하. 너, 너무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아!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긴장하면....”

또 말이 길어질 느낌이 들어 살짝 말을 끊었다.

“잠시만요.”

“네?”

“음, 저분은 매니저님?”

“마, 맞습니다.”

옆에 멀뚱히 서 있던 여성이 내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네. 반가워요.”

그나마 제일 정상적인 인사.

후우, 한숨 돌렸다.

“대표님. 조금 정신 좀 차리세요. 호호. 작곡가님 엄청 당황하셨잖아요.”

매니저가 대표를 다독이며 분위기를 푼다.

확실히 제일 노련한 사람 같다.

꽤 나이가 있는 누님 같은데.

부부인가?

뭔가 다정한 느낌이 잘 어울리는 거 같기도 하고?

“두 분은 무슨 사이세요?”

“아, 제가 친누나예요.”

“아! 남매 사이셨구나.”

부부냐고 물었으면 큰일 날 뻔.

“자, 그럼 애들 보러 가실까요?”

“네.”

대부분의 일은 매니저 누님과 처리하게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저 여직원은 뭐지?

내가 살짝 고개를 갸웃하자 내 생각을 읽었는지 매니저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호호. 제 딸이랍니다. 닮았죠?”

“아, 그렇네요.”

듣고 보니 꽤 닮았네.

저렇게 과년한 딸까지 있다니. 누님 나이가 생각보다 더 있을 수도 있겠네.

상당히 동안인 매니저 누님이다.

그래도, 딸도 있는 유부녀를 건드릴 생각은 없으니 넘어가자.

사무실 안에 있는 회의실.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섯 명의 여인들.

“안녕하세요.”

내가 들어서니 다섯이 함께 일어나 인사한다.

딱히 밝은 분위기는 아니다.

나쁜 분위기도 아니었지만, 내 예상과는 분위기가 좀 달랐다.

뭔가 축 처진 느낌과 긴장해 굳은 느낌이 동시에 느껴지는 게 새로웠다.

왜 이렇게 쳐졌어?

“으음, 안녕하세요.”

“호호. 애들이 긴장을 많이 했네요.”

“좀 처져 보이기도 하는데요?”

불쾌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냥 감상을 사실대로 말했다.

문제가 있다면 내가 알고 있는 게 좋으니까.

“후우, 그게 얘네의 가장 큰 문제에요.”

“문제요?”

“네. 긴장만 하면 이렇게 축 처진다니까요.”

“으음. 그래서 과한 상큼함을 컨셉으로 잡았나?”

무심코 혼잣말이 나왔다.

“아, 그, 그건.”

많이 당황해 보이는 사장님.

“왜 그러시죠?”

“호호,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사장님 취향이 그쪽이라....”

매니저 누님이 사장님의 당황을 설명한다. 뭐,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겠다.

으음, 모든 엔터 대표들은 비슷한 생각을 하겠지.

나도 곧 내 취향대로 만들 걸그룹을 준비하고 있으니까.

아마 아까 만난 코코엔터 사장님도 비슷한 느낌이었나 보다.

생각만큼 상큼한 애들을 모으기 힘들었나 보네.

어쩔 수 없이 있는 멤버로 취향에 맞는 무대를 만든 거고.

“그 컨셉 꼭 유지할 생각이신가요?”

“호호. 사실 저희도 컨셉을 바꾸기로 했는데, 새로운 곡을 구하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더라구요.”

“그래요?”

곡을 구하는 건 쉽다.

지금 당장 인터넷 공고 하나만 올려도 작곡가 지망생들이 수많은 곡을 보내올 테니까.

단지, 괜찮은 곡을 얻는 게 힘들 뿐.

아마 코코엔터도 꽤 인지도 있는 작곡가에게 곡을 받고 싶어서 열심히 해봤겠지.

그 냥반들은 콧대만 높아서 곡은 안 줬을 테고.

“그랬군요. 그럼 지금까지의 곡은?”

“아! 사장님이 직접 작곡하셨어요.”

“아. 작곡하셔요?”

고개를 끄덕이며 사장님을 바라보는 매니저 누님.

사장님이 어버버 하는 새에 나는 그냥 멤버들을 둘러 봤다.

“후우, 긴장을 좀 풀 필요가 있을 거 같은데 일단 식사 먼저 할까요?”

“호호. 제가 모실게요.”

매니저 누님의 안내로 도착한 곳은 꽤 고급 중식집.

하긴 여러 명이 조용하게 음식을 먹기엔 프리미엄 중식집만큼 좋은 곳도 없지.

먼저 내게 자리를 권하고 모두가 알아서 자리에 앉았다.

사장님도 꽤 긴장했는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신다.

간단한 담소를 나누며 자리에 앉아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고, 나온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눈다.

음식은 꽤 괜찮았고. 나는 멤버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딱히 좋은 효과를 발휘하진 못했다.

“흐음, 혹시 사무실 내 연습실은 따로 있나요?”

“아, 하하. 사무실엔 없고, 근처 연습실을 따로 대여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으음. 지금 쓸 수 있나요?”

“네. 혹시 몰라서 미리 빌려뒀습니다.”

으음, 연습실이 없는 건 좀 그렇네.

임대해서 항상 쓸 수 있는 거도 아니고.

쓸 때마다 대여해서 쓰는 거 같은데.

평소 연습은 어떻게 하는 거야?

뭐, 내가 신경을 좀 써줘야겠다.

회사에 있는 작업실과 연습실은 여전히 비어 있으니 조금 빌려줘도 되겠네.

나중에 말해봐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도착한 연습실.

연습실 환경은 꽤 열악했다.

단순히 넓은 공간에 전신 거울이 있는 벽면도 한쪽 면뿐이다.

음향기기는 따로 없고 CD 플레이어를 직접 가져와 사용하는 모양.

으음, 영세기획사의 현실을 보고 있으니 조금 불안하기도 하네.

“음, 잠시 소화도 시킬 겸 좀 쉴까요?”

“하하. 네.”

연습실에 준비된 플라스틱 의자가 꽤 여럿 있어서 그냥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으음, 곡을 줄 생각을 하긴 했는데 내 덕에 코코걸스가 떴다고 생각해 본다.

과연 지금 회사가 코코걸스의 인기를 감당할 수 있을까?

사생팬이라도 생기면 방법이 없을 거 같은데?

“멤버분들은 숙소 생활을 하나요?”

“아니요. 저희는 다 따로 집에서 출퇴근해요.”

으음, 그러면 스토킹 같은 문제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겠네.

숙소 생활을 하면 한 번에 다 관리할 수 있지만.

따로따로 다니면 한 명 한 명 따로 관리해야 하니까 힘들다.

내가 내 여인을 한 집에 다 모은 이유도 어느 정도 이런 이유가 있다.

땡중 쪽 세력이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는 데 다 따로 있으면 기동성에서 밀리는 내가 불리할 수밖에.

한곳에 모아서 보호하는 게 당연히 더 좋을 수밖에 없다.

이따가 제대로 한 번 얘기해 보긴 해야겠다.

으음, 멤버들이 들어서 좋을 거 같지 않으니 사장님, 매니저 누님 두 분이랑 따로 말해야지.

잠시 생각한 거 같은데 시간이 꽤 지났다.

“으음, 아까 긴장해서 별로 먹지도 못 하신 거 같은데. 지금 춤출 수 있어요?”

“네!” “할 수 있어요!”

코코걸스를 보며 물었고 그들은 활짝 웃으며 답했다.

긴장이 조금 풀리긴 한 거 같은데.

여전히 많이 경직됐고, 축 처졌다.

일단 무대를 보고 생각하자.

평소엔 저래도 무대에 올라가면 달라질지 또 모르니까.

코코걸스 멤버들이 일어나 준비를 마치니 매니저 누님이 곡을 튼다.

딱 직캠 영상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무대.

그래도 무대에선 분위기가 변하긴 하네.

“후우, 후우.”

마지막 엔딩 포즈와 함께 끝난 무대.

“한 곡 더 해볼까요?”

“네.”

무대를 하니까 멤버들이 긴장을 푸는 거 같아 일부러 한 곡 더 들었다.

으음, 딱히 실제로 본다고 해서 영상으로 본 무대화 큰 차이는 없었다.

멤버 셋은 내 생각대로 노래를 꽤 했고.

춤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댄스 브레이크에 혼자 춤을 춘 멤버는 팀에 폐는 안 끼칠 노래 실력이었고.

내 눈에 띈 비주얼 센터 멤버는 음.

실제로 보니까 더 못해서 깜짝 놀랐다.

아무래도 마이크 없이 육성으로 해서 그렇겠지?

“후우, 후우.”

“잘 봤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CD 플레이어 쪽으로 걸어갔다.

다행히 준비한 유에스비로 곡을 틀 수 있는 플레이어였다.

유에스비를 꺼내 꼽는다.

“제가 준비한 곡을 들려 드리죠.”

“헙.”

몇몇 숨넘어가는 소리와 경직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뭐, 그건 노래가 알아서 풀어주겠지.

밤새 여러 곡을 만들었지만. 이 그룹에 가장 잘 어울릴 노래 한 곡만 가져왔다.

노래가 끝나고 고요한 연습실.

“와.”

멤버 한 명의 탄성을 시작으로 모두가 정신이 돌아왔다.

“어떤가요?”

“이, 이 곡이?”

“네. 여러분이 부를 노래예요.”

“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르네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멤버분들은 잠시 대기해 주시고 두 분 저랑 얘기 좀 하시죠?”

“네? 네.”

“알겠습니다. 회의실로 갈까요?”

일단 모두 함께 회사 건물로 이동했다.

코코걸스 멤버들은 회사 안에서 기다렸고 나와 두 사람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노래는 어떠셨어요?”

“저, 정말 좋았어요!”

“허허, 작곡을 그만두길 잘했다 싶은 노래였습니다.”

“그만두셨어요?”

나는 놀란 얼굴로 사장님을 바라봤다.

“허허, 저는 비슷한 곡밖에 못 만들겠더군요.”

원래 작곡가들은 대부분 비슷비슷한 곡을 만든다.

내가 특이해서 이런저런 곡이 많은 거지.

이 사장님 곡도 톡톡 튀는 상큼한 느낌이 꽤 좋았는데.

“으음, 아쉽네요. 상큼한 곡 잘 만드시는 거 같았는데.”

“그, 그런가요?”

기대감 잔뜩 담긴 목소리.

흐음, 이러면 일이 다르게 풀릴 수도 있겠는데?

다시 작곡하고 싶은 열망이 느껴졌다.

일단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제가 보기에 몇 가지 문제가 있어 보여서 두 분을 따로 불렀습니다.”

“문제요?”

“흐음, 아무래도 역시 그렇죠?”

뭐가 문제일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사장님과.

고개를 끄덕이는 매니저 누님.

역시 실세는 저 매니저 누님이었던 걸까?

“제가 곡을 주면 어떻게든 이슈가 되고 바빠질 겁니다. 감당될 거 같으세요?”

“으음, 지금 당장은 힘들겠죠.”

“아.”

답하는 매니저 누님. 어벙한 소리를 내는 사장님.

뭔가 작곡하니까 그냥 사장 자리 앉혀놓고 매니저 누님이 다른 일은 다 처리하는 건가?

“그래서 제안을 하나 드리죠.”

“제안이요?”

“네. 저희 회사로 들어오시죠. 사장님은 작곡가로. 매니저님은 그대로 매니저 일 해주시면 됩니다.”

“흐으음.”

두 사람이 고민에 빠진다.

시간을 충분히 주기 위해 잠시 말을 참고 기다렸다.

“저희끼리 얘기할 시간이 좀 필요할 거 같네요.”

“물론이죠. 아! 밖에 계시던 직원분도 원하시면 자리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갑자기 사장님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저희한테 왜 이런 제안을 해주신 건가요? 딱히 특별한 아이들도 아닌데.”

“아! 그걸 말씀 안 드렸네요.”

하긴 코코엔터 입장에선 엄청 뜬금없는 일이었겠네.

“으음, 그건 멤버들이랑 다 같이 있을 때 말씀드리는 게 좋겠네요. 불러 주시겠어요?”

“아, 그러죠.”

매니저 누님이 나갔고 그동안 사장님에게 물어 컴퓨터를 켠다.

그래도 회의실이라 피피티를 할 수 있는 장비는 다 있었다.

모든 멤버가 들어와 자리에 앉았을 때 유에스비를 꽂았다.

“코코걸스 팬인 거 같은 분이 제게 유에스비 하나를 주셨습니다. 이게 그 유에스비구요.”

나는 안에 있는 파일을 하나하나 돌아가며 보여준다.

사장님은 꽤 놀란 얼굴로 화면을 뚫어지게 봤고, 매니저 누님은 입을 막고 눈물을 참는 표정이다.

이미 멤버들은 중반부터 울기 시작했고.

“보다가 관심이 생겨서 어울리는 곡을 만들어 봤고. 이렇게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호, 혹시 인상착의를 기억하시나요? 사례라도 하고 싶은데.”

사장님이 말하고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으음, 이게 이렇게 감동적인 일인가?

하긴, 망해가는 걸그룹에선 꽤 감동적인 일이겠다.

팬도 많지 않으니 대충 말하면 누군지 알겠네?

“음, 안경 쓰고 꽤 통통했던 분입니다. 피부는 하얀 편이었고요.”

“아!”

“옵틱님인 거 같지?”

“이 정도 자료는 옵틱님 말고 없긴 하지.”

이 정도만 듣고 바로 누군지가 나오네.

아마 꽤 이들과 자주 보는 찍덕인가 보다.

“제가 할 일은 끝난 거 같네요.”

유에스비는 그냥 두고 밖으로 나간다.

안에서 할 말이 많을 거 같아서.

감정도 좀 추슬러야 할 거 같고.

“후우, 뭔가 뿌듯한 기분이네.”

시작을 슈가 페어리로 해서 그럴까?

망한 그룹을 리부트하면 꽤 뿌듯한 느낌이 드는 거 같다.

“후우, 집에나 가자.”

여러 복합적인 감정을 누르며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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