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297화 (297/450)

297.

대기실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여기는 CCTV까진 없지만, 그래도 조금 꺼림칙한 장소니까.

이젠 조심할 필요가 있는 몸이다.

며칠 뒤 연애 기사 나가는 데.

그 전에 다른 여자랑 뭐라도 하는 모습이 들키면 큰일.

언제 어디서 땡중 세력의 마수가 뻗칠지 모르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

요즘 기술이 너무 좋아져서 100배 줌도 있고, 초소형 몰래카메라도 있으니까.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니 조심할 수 있을 땐 하는 게 좋다.

마기 토템이 지금 함께 있다고 해도, 그 전에 무슨 짓을 해뒀을지 모르잖아.

여기 카메라가 있을지 어떻게 알아?

뭐, 아까는 얼결에 조아와 키스했지만.

연애 기사 대상이 조아니까 괜찮겠지.

아, 눈을 감고 있어서 그런가?

잡생각이 너무 많았다.

이젠 콘서트만 생각하자.

콘서트부터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생각해도 되는 일들이니까.

“후우, 두 사람은 뭐 해?”

“헤헤. 피디님 따라 해요.”

“전 명상 중이요.”

시연이는 귀엽게 말하며 내게 다가왔고, 민하씨는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음, 민하씨가 명상한다니까 뭔가 있어 보이네.

확실히 뭐든지 잘하는 사람이라 뭐만 한다고 하면 잘 해 보이는 느낌이 있다.

이래서 이미지가 중요하지.

“피디님.”

“응.”

“저 잘 할 수 있겠죠?”

“물론이지. 내가 힘 팍팍 줬잖아.”

시연이 배시시 웃었다.

말은 걸고 싶은데 딱히 할 말은 없어서 아무 말이나 꺼내는 거지?

“헤헤. 힘 또 받고 싶다아.”

“여기선 안 돼. 이따 집에서.”

“약속하신 거예요?”

“그럼. 오늘은 특별한 날이잖아?”

시연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기대하는 표정을 짓는다.

으음, 예상했던 일이긴 하지만 오늘 허리를 꽤 쓰겠구나.

슬슬 밖으로 나가서 상황을 좀 봐야겠지?

이제 전체 리허설 할 시간이 됐으니까.

밖으로 나가니 오늘 출연하는 모든 출연진이 객석에 나와 앉아있다.

공연 때는 대기실에서 기다리겠지만, 지금은 계속 대기실에서 대기하기 심심할 테니.

나와서 구경하면 좋지 뭐.

와! 이렇게 보니까 나 좀 쩌는 듯?

화장과 헤어, 메이크업을 마친 예쁜 여자들이 온통 내 여자라니.

“모두 이쁘네요. 형님도 여전히 멋지십니다.”

“하하. 나이가 오십인데 뭐.”

여기선 승철 형님이 제일 큰 형님이니까 먼저 인사를 드린다.

다음으로 현정 누님을 보고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다 같이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했다.

“이거, 제가 낄 자리가 없는데요?”

“하하. 그래도 오래 활동하셔서 다들 알고 있지 않아요?”

“그건 맞죠.”

유일하게 나와 인연이 짧은 해인만 살짝 뻘쭘하게 쭈뼛거린다.

으음, 이런 성격 아닌 거 같았는데.

뭐, 대부분이 후배고 선배들도 해인과는 꽤 친해 보이니 문제는 없을 거다.

“자, 전체 리허설 준비할게요.”

“네에!”

해인이 혼자 바로 무대로 올라갔고, 나와 레돈도 스탠바이했다.

리허설 막바지.

“자! 아쉽게도 준비된 무대는 모두 끝났어요.”

“으음, 꽤 풍성한 구성이었는데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 거 같네요.”

“하하. 그래도 즐거우셨죠?”

마무리 멘트를 해인과 주고받는다.

뭐, 이쯤에서 앵콜이 나와서 다 같이 무대에서 뛰놀 거지만.

“음, 이대로 가기엔 좀 아쉽지 않아요?”

해인이 살며시 웃으며 분위기를 띄운다.

“여러분? 아쉽지 않아요? 그럼 외쳐야죠?”

해인의 말에 객석에 있던 여인들이 앵콜을 외치며 무대로 올라왔다.

공연 때는 무대 뒤에서 나오겠지만, 지금은 앞에 있었으니까 그냥 올라온다.

무대만 마치고 먼저 갈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다시 나와서 함께 무대를 꾸릴 예정.

마지막 곡은 내 앨범에 있지만, 공연 중에 부르지 않은 우리 회사 단체 곡과.

내가 편곡해서 조금 더 함께 부르기 좋게 만든 유티버, 가수 단체 곡까지.

총 세곡을 앵콜로 부르고 막을 내릴 생각이다.

앵콜곡이지만, 미리 준비한 무대답게 잘 끝나고 조명이 꺼졌다.

-짝짝짝!

“와!”

공연을 마치고 돌아가는 승철 형님과 현정 누님만 객석에서 손뼉을 쳐 주셨다.

“감사합니다. 하하.”

민망하게 웃으며 리허설을 마치고 대기실로 들어간다.

잠시 무대 정리를 끝내면 이제 진짜 관객이 입장한다.

“후우, 이거 갑자기 두근두근한대.”

“호호. 귀여운 면이 있으시네요?”

“그런가요? 하하. 첫 콘서트는 누구나 떨걸요?”

“그건 맞죠. 그래도 함께하는 사람이 많아서 좀 낫지 않아요?”

고개를 끄덕인다.

나 혼자 다 준비해서 하는 무대였다면 부담감이 더 심했겠지?

예전엔 내가 잘 한다고 잘 되는 게 아니라 불안했는데.

리허설하며 모두의 무대를 보니까 엄청 든든했다.

오히려 내 생각보다 더 좋은 무대를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고맙달까?

콘서트 끝나고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

“흐음, 그럼 밥 먼저 먹을까요?”

“먹어야죠.”

배가 든든해야 긴 시간 공연도 버틸 수 있지.

나름 돈을 써서 꽤 고가의 도시락을 시켰는데.

퀄리티는 좋았지만 역시 가서 먹는 것만은 못했다.

“어떻게 도시락은 입에 맞으세요?”

“엄청 맛있네요. 도시락 퀄리티가 예술이에요.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시다니. 역시 에스민이네요.”

“하하. 너무 띄워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같이 엠씨를 봐서 그런지 해인과 같은 대기실을 썼는데.

해인 누나는 보면 볼수록 사람이 참 좋은 거 같다.

매력 있는 사람이네.

뭐, 그렇다고 건드릴 생각은 없다.

정말이다.

얼마 전에 연애 발표했으니까.

남의 여자를 이유도 없이 뺏는 취미는 없다.

“성민씨는 연애 안 해요?”

“하하. 비밀입니다.”

“어? 설마?”

“음, 아마도 곧 알게 되실 거예요?”

해인이 음흉한 미소를 띠며 이런저런 질문을 했지만, 웃어넘긴다.

“슬슬, 메이크업 수정하고 올라갈 시간이에요.”

“아, 화이팅이에요?”

“네! 화이팅.”

서로를 마주 보고 화사하게 웃으며 화이팅을 외친 우리.

대기실을 나서니 나보다 먼저 무대에 오를 레돈이 기다리고 있다.

“다들 아주 멋지네!”

“하하. 형이 제일 멋져요.”

“거짓말은. 하하. 가자.”

무대 뒤에서 기다린다.

공연 시간이 길어서 따로 사전 엠씨를 두진 않았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해인의 목소리와 커다란 함성이 들려왔다.

“그럼 오늘의 주인공....”

빠르게 무대 아래로 가 리프트에 몸을 올리고 쭈그린다.

-빰! 빠밤.

레돈의 춤이 시작됐다.

-푸쉬이익!

연기가 무대를 채우며 리프트가 확 올라온다.

점프해 뛰어 무대 위로 탁! 착지.

“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

함성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한다.

노래는 거의 레돈이 다 부르지만, 내 파트도 조금 있다.

노래를 끝내고 막내와 함께하는 댄스 브레이크.

“머시따아아아아!” “사랑해요오오오!” “오빠 날 가져요오오오.”

나한테 소리 지는 걸까? 레돈한테 지르는 걸까?

생각보다 여자 팬 목소리도 많이 들려서 놀랍네.

“와아! 피디님이 이렇게 춤을 잘 추시는지 몰랐네요?”

“후우, 후우, 왕년에 아이돌 연습생 좀 했으니까요. 하아아, 물 좀 마실게요.”

물을 마시고 무대 위로 선다.

관객 때문에 그런가? 훨씬 더 흥분이 올라와 연습 때보다 숨이 많이 찼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에스민으로 활동하는 성민입니다.”

“꺄아아!” “와아악!”

함성이 조용해지고 준비된 멘트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소개하고 공연을 본다.

뭔가 음악 프로그램 엠씨가 된 기분.

관객과 호흡하며 함께 무대를 즐기고 즐겁게 소통하다 보니 1부가 벌써 끝나간다.

1부는 대부분 조용하고 실력이 살짝 부족한 여인들의 무대였으니까.

덕분에 현정 누님만 엄청 돋보이겠네.

뭐, 다른 애들은 다른 매력이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현정 누님의 공연이 끝나고 무대에 불이 꺼진다.

긴 시간을 고려해 중간에 쉬는 시간을 배치했다.

15분간 쉬고 2부가 시작된다.

2부의 시작 무대는 아효.

물론 나도 함께한다.

음악이 흐르고 켜지는 조명.

아효와 나 둘이서 무대 중앙에 포즈를 잡고 서 있다.

-빠밤. 빰!

먼저 춤을 시작한 아효.

나는 박자를 맞춰 몸을 움직인다.

“웃으면서 가는 거야!”

아효의 노랫소리.

가볍게 몸을 튕기며 아효와 찐한 무대를 만든다.

“오어어어아!” “꺄아아!” “둘이 사겨라!”

무대가 끝나고 나와 아효가 서로를 안은 채 조명이 서서히 줄어든다.

아효가 나와 포즈를 풀고 씽긋 웃으며 노래를 하나 더 하고 들어갔다.

물론, 나는 첫 곡이 끝나고 해인이 대기하는 장소로 이동해 숨을 돌렸다.

아! 1부도 이런 구성으로 시작할걸.

아까는 무대 끝나고 흥분을 삭힐 시간이 없어서 더 힘들었잖아.

지금은 이렇게 쉬니까 너무 좋다.

“슬슬 올라가요.”

“네. 하하.”

확실히 베테랑인 해인이 리드해 주니까 훨씬 편한 거 같다.

“와아! 역시 섹시의 대명사 아효씨의 무대였어요!”

“저도 한 섹시 하죠?”

아까 췄던 안무를 하며 너스레를 떨고 웃음을 좀 뽑은 뒤 다음 무대를 소개한다.

이제부터는 정말 실력파 가수들이라 아까보다 풍성한 무대가 됐다.

1부의 무대를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클래스가 있으니까.

2부의 메인은 역시 쭉 이어지는 리사와 줄리, 카디의 무대.

카디가 관객들의 흥분을 엄청 끌어 올렸다.

이쯤에서 3부를 위해 잠시 흥을 식힐 시간이 필요하지.

그래서 마지막에 승철 형님이 올라와 발라드를 부른다.

유일하게 홀로 무대에 서는 남자.

나와 레돈도 무대에 서긴 했지만.

승철 형님의 무대와는 조금 결이 다르니까.

멋지게 발라드를 두 곡 부른 승철 형님이 초대해 줘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퇴장한다.

이쯤에서 다시 쉬는 시간.

화장실을 다녀올 시간을 15분 준다.

생각해보니 공연인데 쉬는 시간만 총 30분이네?

스케일이 너무 컸던 거 같다.

3부부터는 신나게 노는 무대.

다들 체력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또 한국은 흥의 민족 아니냐?

다들 마지막까지 잘 즐겨 주겠지?

“후우, 이제 3부가 시작됐어요.”

“네네. 사실상 메인 이벤트죠?”

“어머, 그러면 앞에 무대 했던 분들 서운해요.”

“아니, 무대 얘기가 아니잖아요!”

나와 해인이 빌드업하기 시작했다.

관객들도 슬슬 기대하겠지?

“호호. 피디님 콘서튼데 이분이 제일 주목받겠어요.”

“프로듀서는 자기보다 자기 가수가 주목받길 원하는 사람이니까요.”

“와! 이건 좀 멋있었다.”

“하하. 저는 원래 멋있습니다만?”

해인이 표정을 찌푸리며 말을 돌렸다.

“이제!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S의 정체를 공개할 시간입니다!”

“아! 저도 아직 못 봐서 너무 궁금한 거 있죠!”

거짓말이다. 리허설 할 때 다 봤다.

엄청 놀라워했으면서 또 이렇게 능청맞게 연기를 다 하네.

“하하. 보시면 아마 깜짝 놀라실 거예요?”

“아! 누굴지 너무 궁금해요. 근데 사실 얼굴이 안 알려진 가수니까 다들 처음 보는 거 아니에요?”

“후후, 그건 이따 보시면 알겠죠.”

나와 해인이 씽긋 웃었다.

드디어 시작된 세린의 얼굴 공개 타이밍.

조명이 꺼지고 핀 조명 하나가 한 여성을 비춘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여성.

옷은 살짝 노출 있는 드레스를 입고 있다.

확실히 세린이가 관리를 하더니 몸매가 진짜 보기 좋아졌어.

운동하던 사람이라 딱 각 잡힌 몸이 드레스와 아주 잘 어울렸다.

흘러나오는 구슬픈 선율.

마이크를 잡은 세린의 입에서 한 음 한 음 한 서린 노래가 나온다.

어우! 내가 만든 노래지만, 분위기는 진짜 장난 아니네.

우중충한 분위기로 한 서린 노래를 마친 세린이 멈춰 서 다음 곡을 기다린다.

절망을 이야기하는 ‘붓꽃’이 끝나고 높이높이의 반주가 나왔다.

희망을 말하는 노래답게 밝아진 분위기.

노래를 듣고 울던 사람들도 씽긋 미소짓기 시작했다.

세린은 무대가 처음인데도 장악력이 장난 아니다.

하긴 세린의 목소리는 마력이 있으니까.

높이높이를 열창한 세린.

공연장 전체가 조명을 껐다가 확 밝아진 것처럼 우울했던 분위기가 밝고 희망차게 변했다.

진짜 조명을 몇 단계 키우긴 했지만, 그보다 노래의 에너지에 밝아진 게 맞겠지.

두 번째 곡도 끝나고 고요해진 콘서트장.

“어! 와! 와아아!”

-짝짝짝!

한 사람씩 박수와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마치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흘러가는 것처럼 고요했던 공연장이 박수와 함성으로 가득 찼을 때.

세린이 마이크를 내려 두고 뒤로 돌았다.

천천히 가면을 벗고 머리를 손질하는 세린.

무대 조명이 꺼지고 어두워졌다.

방금까지 밝은 무대였기에, 지금은 아무것도 안 보이겠지.

-두둥. 빠아암!

웅장한 음악이 깔린다.

오늘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세린의 신곡.

홀로 깨달음을 얻어 만들었던 한 서린 음울한 곡.

세린이 자꾸 이런 이미지로 굳어지는 걸 원치 않아 다른 가수를 찾아봤지만.

결국, 세린이만한 가수를 찾지 못했다.

세린의 노래가 시작되고 조명이 점점 켜진다.

“어?”

“저, 저.”

“고세린?”

하나둘 세린의 얼굴을 알아보는 관객들. 세린은 노래에 집중해 객석 반응을 못 보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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