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
“그래서 어떤 방송을 하려구요?”
“으음, 딱히 생각한 건 없는데요.”
민하씨에게 메이크업을 받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
“헤헤. 피디님.”
“응?”
시연이는 아까부터 날 안고 몸을 비비고 있다.
이러다 흥분하면 이따 방송 때 어떡하려고 저러나 몰라.
“그때 못 한 거 해요!”
“못 한 게 있었나?”
“게임! 방송이요!”
“아, 게임.”
못 했다는 뜻이 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 실력이 못했단 소리지?
민하씨의 겜 실력은 넘사벽이니까.
“호호. 절 이길 수 있겠어요?”
“으음, 새로운 방법이 필요할 거 같아요.”
“새로운 방법이요?”
“네. 저랑 시연이가 아무리 노력해도 민하씨는 못 이기니까, 아예 다른 방식으로 해야죠.”
민하씨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떤 방식이요?”
“음, 협동하는 게임이나, 아!”
“왜요?”
“우리 공포겜 하나 할래요?”
“흐익!”
민하씨는 살짝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시연이는 고개를 마구 흔들며 날 더 꽉 안았다.
“고, 곰보겜 안대여. 흐으으.”
“시연아?”
“호호. 저번에 한 번 했었는데 시연이가 글쎄.”
“어, 언니!”
민하씨가 씩 웃으며 내 귓가에 속삭였다.
“방송에는 안 나갔지만, 오줌을 지렸지 뭐예요.”
“정말?”
시연이를 보면서 물었다.
울먹이는 얼굴로 고개를 젓는 시연.
“아, 아니에요!”
“호호. 농담이에요. 프로듀서님.”
“그렇죠? 후우, 어린애도 아닌데 설마 무서운 거 봤다고 지리겠어요?”
“흐에엥!”
시연이 우는 소리를 냈다.
“하하하. 농담이야 시연아. 이리 와. 나는 오줌 지리는 시연이도 좋아.”
“하읏, 아, 안 지렸다구요옷!”
“그래그래.”
“흐으응, 마, 만지지 마세욧!”
오! 시연이가 단단히 화가 났나 보다.
처음으로 내 손길을 거부했다.
“하으응, 하으.”
그래도 계속 만지니까 굴복하긴 했지만.
“미안해. 안 놀릴게. 반응이 귀여워서 그랬어.”
“히이잉.”
눈이 붉어진 시연.
너무 귀여운 모습이라 볼을 살짝 꼬집었다.
“방송 전에 울면 안 돼. 키스해 줄까?”
“네. 헤으응.”
내 키스 얘기에 금방 또 좋다고 표정이 풀린다.
-츄르릅, 츄릅.
키스하며 시연의 등을 몇 번 쓰다듬어 줬고, 민하씨를 봤다.
“그래서 할만한 공포겜 아는 거 있어요?”
“흐음, 저번에 했던 거 두 번째 시리즈가 나왔다던데. 해볼까요?”
“지금 깔아보죠.”
“호호. 제가 하고 있을게요. 시연이 좀 달래 줘요.”
응? 민하씨와 대화를 마치고 시연이를 보니 벌써 귀신을 본 거처럼 몸을 달달 떨고 있다.
“많이 무서워? 하지 말까?”
“아, 아니에요. 하, 할 수 있어요!”
“이리 와.”
시연이를 부드럽게 안고 토닥였다.
천적을 만난 작은 짐승처럼 몸을 떠는 시연.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귀여운 모습에 자지가 서버렸다.
으음, 시간이 얼마 없으니 참아야 하는데.
얘는 왜 이렇게 꼴리게 하고 그러냐.
“헤헤. 피디님.”
“응?”
“딱딱해졌어요?”
“네가 너무 이뻐서 그래.”
배시시 웃는 시연.
내가 세우니까 기분이 좋아졌는지 떨림이 멎었다.
다행이다.
“그럼 방송하러 갈까?”
“으으. 네에에.”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한 시연이 내 손을 꼭 잡고 방음 부스로 들어왔다.
“왔어요?”
“네. 게임은 깔았어요?”
“시간이 좀 걸리네요. 뭐, 소통 좀 하다가 시작할 거니까 괜찮겠죠?”
“그럼요. 저는 조금 이따가 등장할까요?”
민하씨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공포겜 한다는 걸 밝힐 때쯤 등장하는 게 좋겠어요.”
“그렇게 하죠.”
개인 방송은 아무래도 나보다 민하씨가 잘 하니까.
으음, 이참에 민주도 부를까?
사근사근 탈퇴하고 개인 방송을 시작한 민주.
우리가 조금 도와주고 있긴 한데 아직 방송이 잘되는 편은 아니다.
으음, 노출을 더 해야 잘 될 거 같은데 말이지.
또 그렇게 말하긴 싫고.
이럴 때 한 번 돕는 거지.
“민주도 불러서 2대 2로 할까요?”
“오! 그거 좋네요. 일단 방송 켤 테니까 불러오시겠어요?”
“네. 그럴게요.”
나는 민주가 있는 방으로 걸어갔다.
“흐으음, 이걸. 이렇게? 아닌가?”
“민주야?”
“앗! 오빠! 헤헤.”
날 보며 반갑게 웃는 민주.
“영상 편집?”
“응. 나 유티비도 올려 보려고.”
“열심이네. 편집자 붙여줄까?”
“에이, 돈도 못 버는데 무슨 편집자야! 내가 하면 돼! 시간도 많은데 뭐.”
마음씨가 참 이쁘네.
민주의 머리를 쓰다듬고 말을 꺼낸다.
“지금 민하씨랑 시연이랑 나랑 합방 하나 하자.”
“어떤?”
“공포게임 방송할 거야.”
“흐익! 고, 공포?”
민주는 살짝 표정을 굳히고 물었다.
“응. 싫어? 싫으면 안 해도 돼.”
“아, 아니 하, 할래. 조, 좋은 기회잖아.”
“좋은 기회는 다시 만들어 줄 수 있어. 나중에 해도 돼.”
“으으응! 할 수 있어!”
눈을 빛내며 주먹을 말아 쥐는 민주.
뭐,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사실 민주는 내가 꼬셔서 여기로 넘어온 거나 다름없으니.
어지간하면 편하게 살게 해줄 생각인데.
운동해서 그런지 나름의 승부욕이 있어 스스로 뭔가를 하려고 하는 거 같다.
“그래. 그럼 가자. 준비시간 필요해?”
“화장만 고치고 바로 갈게. 20분 안에 가.”
“오케이!”
민주를 부르고 방음 부스로 다시 들어갔다.
“그래서 말이죠!”
“오늘은!”
이미 방송을 켜고 소통을 진행하는 두 여인.
“어마어마한 컨텐츠가 있다 이 말이야!”
“이 말이야!”
민하씨가 말하고 귀엽게 끝말을 따라 하는 시연.
나도 모르게 입에서 미소가 나온다.
확실히 시연이가 방송에서 꽤 귀엽다.
평소엔 조금 조용한 느낌이 강한데 방송에선 말을 많이 해서 그런가?
조금 의식해서 더 귀엽게 말하는 거도 있겠지?
“저번에 시연이 울먹이던 영상 클립이 1등 했었죠? 그때 우리가 뭘 했었죠?”
“으으. 너무 무서운 거시와요. 하와와.”
채팅창이 폭주한다.
-곰보겜!
-곰보겜 가나요?
-와! 오늘 또 레전드 찍나?
다들 시연이가 무서워하는 모습을 좋아하는 거 같다.
“다들 너무해요!”
“호호. 재밌겠죠?”
“나만 빼고 다 재밌지? 아주!”
조금 더 소통을 진행하니 민주가 조심히 부스 안으로 들어왔다.
그걸 알아챈 민하 씨가 슬슬 빌드업을 한다.
“오늘은! 특별히!”
“특별히!”
“게스트와 함께 하는 공포게임입니다!”
-오! 게스트!
-큰 거 오나요?
-이쁜 눈나 나옴?
“이쁜 눈나는 여기 있잖아?”
“큰 거도 있고!”
둘이 죽이 잘 맞네.
꽤 오래 같이 방송을 진행해서 그렇겠지?
“게스트가 누군지 밝히기 전에!”
“전에!”
“오늘 컨텐츠 설명이 있겠습니다!”
민하씨가 화면을 컴퓨터가 보이게 바꾼다.
“여기 보이죠?”
마우스 포인터가 가리키는 아이콘.
오늘 할 공포게임인 거 같다.
“평균 플레이 타임 1시간 13분!”
“헤헤. 짧아서 좋네요.”
“과연 그 시간 안에 깰 수 있겠어?”
“호,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요?”
민하씨가 씨익 웃는다.
“둘이 하지만, 사실상 혼자 하는 거나 다름없는 룰인데?”
“헤헤. 언니이.”
“응. 안 통해! 게임 방식은 2:2 팀전으로 각각 15분씩 돌아가면 게임을 합니다!”
“아아.”
시연이 살짝 머리를 쥐어뜯는다.
“그럼 게스트를 소개해 볼까요?”
“안 하면 안 돼요?”
“안 돼요!”
“흐잉.”
시연이 너무 귀엽다.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다.
“자! 이젠 거의 반고정 게스트나 다름없죠?”
“그러기엔 요즘 너무 뜸하셨어요! 자주 좀 와 주시지이.”
“호호. 그건 맞지! 자! 또곡가님 모시겠습니다.”
“아니! 제가 언제 또곡가가 된 거죠?”
내가 그리 많이 나온 게 아닐 텐데.
매번 새로운 사람을 바라는 시청자들은 내가 질리나 보다.
“아무튼!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저 콘서트 하는 거 아시죠?”
시작부터 홍보 방송 같으려나?
뭐, 사실 홍보 때문에 말한 건 아니다.
이미 매진에 암표도 엄청 비싸게 팔리고 있으니까.
“뭐, 이제 아셨다고 해도 오실 방법은 없지만요.”
“아니! 왜 시청자를 놀리고 그래요!”
“또곡가라잖아! 이 사람들이 말이야! 내가 얼마나 자주 나왔다고!”
“호호. 그건 프로듀서님만 여러 번 나와서 그렇죠.”
음, 그건 맞지.
내가 이 방송에 제일 많이 참여하긴 했지.
나머지는 다들 한두 번 나오고 말았으니까.
“그래도 또곡가는 너무 했다. 인정?”
“헤헤. 인정!”
시연이만 내 편이지.
부드럽게 시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헤헤.”
-두 사람 뭐야뭐야?
-매번 분위기가 수상해.
-머리 쓰다듬는 건 청혼이나 다름없는 거 아니냐구?
-헐! 둘이 결혼함?
“여러분 꼬우시면 아시죠?”
-아니! 이걸 이렇게?
-개부럽. 나도 시연이 쓰다듬고 싶다. 머리말고, 읍, 읍,
“저놈 쳐내!”
나도 오랜만이라 즐겁게 소통하며 잠시 시간을 끌었다.
게임 플레이 타임이 길지 않을 거 같아서 소통 시간을 많이 둔 거 같다.
“자! 이쯤에서 한 분 더 소개해야죠.”
“아! 제가 오랜만에 나와서 너무 들떴네요.”
“헤헤. 맞아요. 피디님 너무 오랜만에 왔어요.”
“미안미안. 그래서 다음 게스트는 누구?”
-큰 거 오냐구!
-여자?
-이쁨?
“아휴. 하여간 남자 들이란! 나랑 시연이로는 만족 못 하는 몸이 돼 버렸지?”
“하하. 시연이 만큼은 아니어도. 큰 거 온다. 형들. 기대해!”
나는 살짝 웃으며 시청자를 자극했다.
-오오!
-큰 거!
-츄릅.
“침 흘린 놈 나가잇!”
-미안. 생리 현상이라.
“생리 현상이니까 봐준다. 그럼 바로 소개할까요?”
“네! 유명 헬스 유티버에서 이젠 홀로서기 중이신 분이죠?”
“우리 피디님 엄청 운동시켰던!”
“이제는 민주로 활동하고 계신 전 대흉이. 민주 씨를 모시겠습니다.”
우리는 짧게 손뼉을 치며 민주를 불렀다.
웃으며 들어오는 민주.
“여러분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자기소개 해주실래요?”
“민주로 방송 시작한 신입 비제이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여러분!”
“네. 여러분! 민주씨 방송도 즐겨 찾기 해 주실 거죠?”
간단한 소개가 끝나고 본격적인 토크에 들어갔다.
“민주씨는 공포게임 좀 해요?”
“무, 물론이죠. 저, 저는 공포를 느끼지 아, 않습니다.”
“근데 왜 이렇게 더듬어요?”
“손까지 떠시는 데요?”
민주는 시연이보다 더 떨고 있었다.
“그, 그건 방송이 처음이라서.”
“거짓말하지 말구요. 이 중에서 제일 오래 방송하셨으면서.”
“호호, 저, 정말 저는 공포를 느끼지 않아요. 많이 놀랄 뿐이에요.”
“우리는 그걸 공포를 느낀다고 하기로 약속했어요.”
그렇게 게임 얘기가 지나갔다.
아무래도 민주랑 시연이가 못 하는 거 같으니까 나와 민하씨가 갈라지는 게 맞겠네.
“팀은 어떻게 할까요?”
“으음, 저랑 프로듀서님이랑 가위바위보 하고, 시연이랑 민주씨랑 가위바위보 해서 이긴 사람끼리 진 사람끼리 어때요?”
“좋아요.”
그렇게 빠르게 팀을 정했다.
민하씨와 시연이가 이겼고, 민주와 내가 졌다.
“자! 투 컴으로 빠르게 진행합니다. 15분 타이머가 울릴 때마다 선수 교체하시면 돼요!”
“사실상 저와 민하씨의 대결이네요?”
“후후. 그럼 제가 이기겠네요?”
“으음. 민주 씨가 잘 해줘야 해요!”
벌써 겁먹어 사색이 된 민주.
“저 민주씨 방송할 수 있는 상황 맞죠?”
“호, 호호, 그, 그럼요. 고, 공포겜 하나도 안 무서워요. 호, 호호.”
“정신이 나갔는데요?”
“시연이도 비슷해요.”
시연이는 이미 반쯤 쭈구리가 돼 있었다.
“시연이 괜찮아?”
“흐힉! 아! 괘, 괜찮아요!”
“아니 아직 켜지도 않았는데 둘 다 왜 이렇게 긴장했어?”
“피, 피디님은 안 무서워요?”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보다 무서울 게 뭐 있겠어?
“사람이 제일 무서운 거란다 어린 양들아.”
“맞지. 맞지.”
내 생각을 민하씨가 말해 줘 고개만 끄덕이며 긍정했다.
“어쨌든! 빠르게 시작할까요?”
“으으. 하기 시러어.”
“저두요오.”
시연이랑 민주가 죽이 잘 맞는다.
“초반이 덜 무서우니까 민주씨가 먼저 해요.”
“그럴까요? 하으.”
자리에 앉는 민주.
민하씨도 같은 생각인지 자리에 시연을 앉혔다.
“꺄악!”
“히에엑!”
오프닝만 보고 소릴 지르는 민주.
민주 비명에 같이 지르는 시연.
혼돈의 카오스 같은 상황이 펼쳐졌다.
“소, 소리 지르면 놀란다고요.”
“제, 제가 지르고 싶어서 지르는 게 아닌데요.”
“히야악!”
“꺅!”
시연이가 민주를 보다가 모니터를 봤고 다시 본 오프닝 화면에 비명을 질렀다.
역시, 민주도 따라 지른다.
“봐, 봐봐요. 지를 수밖에 없죠?”
“흐에엥. 이거 꼭 해야 해요?”
“으음. 조금만 해 보자. 응?”
시연이를 달래기 시작한 민하씨.
나는 강하게 키워야지.
“자! 시작해요. 뭐 하고 있어요?”
“너, 너무해.”
민주가 시작 버튼을 눌렀다.
약간 머리 쓰는 방 탈출 퍼즐 비슷한데 공포 요소가 들어간 게임.
“앞으로 가야지?”
“하으으.”
민주가 신음을 흘리며 멈춰버렸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