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
오늘 할 촬영은 콘서트랑은 관련 없고 오디션에서 데뷔조로 확정된 아이들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안녕하세요.”
“아! 오셨어요?”
오랜만에 보는 김 피디님과 악수를 하고 촬영 컨셉을 듣는다.
“아이들에게 하나씩 미션을 주면서 그 미션을 성공할 때마다 곡을 조금씩 공개하는 컨셉이에요.”
“신선한 거 같네요.”
미리 컨셉을 듣긴 했지만 제대로 완성된 시놉을 보니 꽤 재밌는 촬영이 될 거 같다.
일단 프로그램의 목표는 아이들이 데뷔곡을 얻는 과정이 1부.
그 데뷔곡을 연습해서 첫 무대에 서는 과정이 2부다.
1부는 내가 진행자 비슷한 역할로 아이들에게 미션을 주고 곡을 공개하는 역할로 나온다.
2부부터는 내 분량은 거의 없고, 다른 트레이너 선생님들이 주가 되어 나올 거다.
초유 누님은 촬영을 쉬신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로 구했다.
그래도 효정 누님이 가끔 촬영해 주신다고 하니 다행이다.
효정 누님 앨범 준비한다고 하던데 감사의 의미로 곡 하나 드릴까?
효정 누님이 나이에 맞지 않는 동안에 한때 섹시디바였던 만큼 섹시한 몸매를 유지하고 계시지만, 딱히 사심은 없다.
발정 난 짐승처럼 아무 여자랑 하던 나는 이제 없다.
확실히 집에서 여럿과 함께 살다 보니 여자를 늘리는 데 있어 조금 경계를 하게 되는 거 같다.
뭐랄까 여기서 더 늘면 정말 복상사할 거 같은 느낌이랄까?
뭐, 그래도 매력적인 여성이나 필요한 여성은 계속해서 들일 테지만.
남자가 좆을 뽑았으면 백 명의 처첩은 만들어야지 않겠어?
“자, 그럼 슬슬 촬영 들어갈까요?”
“애들은 어딨어요?”
“아! 저쪽이요. 제가 깜박했네요. 가실까요?”
김피디님이 아이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날 데리고 갔다.
“얘들아 프로듀서님 오셨다.”
“안녕하세요!”
다 같이 열심히 인사하는 아이들.
“그래. 다들 잘 있었지?”
“네. 그럼요!”
데뷔조로 뽑힌 애들과 간단한 대화를 나눈다.
방송이 아니기에 조금 살갑게 반말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음, 아무래도 리더는 예진이가 하는 게 좋겠다.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애들이 예진이 눈치를 보네.
“자! 그럼 다들 오늘 촬영 힘내자! 너희는 내가 프로듀싱하는 첫 걸그룹이니까 잘 돼야 해!”
“네!” “호호!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이들의 밝은 분위기에 나도 텐션이 꽤 올랐다.
“바로 가실까요?”
“그러죠.”
김 피디님도 내 텐션이 오른 걸 봐서 바로 촬영을 시작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S.Min 성민입니다!”
오우! 아무도 없이 혼자 오프닝 하니까 조금 어색한데?
“드디어 제가 기획하는 첫 걸그룹 데뷔조가 결정이 됐는데요! 멤버들은 다 아시죠?”
앞에 프롬프터에 있는 대본을 읊는 거지만, 너무 국어책 읽듯 하면 안 되니까 더 힘든 거 같다.
“오늘부터 그 아이들이 데뷔하기까지 준비 과정을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갈....”
마지막으로 진행자를 소개한다.
“자! 그럼 저와 함께 선배로서 아이들을 이끌어 나가며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줄 진행자를 소개하겠습니다!”
나도 꽤 자주 출연하며 진행을 돕겠지만, 역시 메인으로 혼자 진행하기엔 무리가 있다.
“나와주시죠.”
“안녕하세요!”
“걸그룹 출신! 아직도 많은 인기를 끌고 계신 아이돌계의 시조새!”
“아익! 시조새라뇨!”
씽긋 웃으며 소개를 마저 한다.
“요즘 예능에서도 맹활약 중이시죠? 바로 해인씨!”
“안녕하세요. 해인입니다!”
다소곳하게 서서 인사하는 해인.
아이돌 출신답게 마르고 비율 좋은 몸이다.
꽤 과거의 아이돌이라 노래는 좀 못 하지만, 그만큼 끼가 있어서 요즘 예능 치트키라 불리는 사람이다.
40에 가까운 나이지만 여전히 인기 많은 슈퍼스타로 나오는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항상 보장되고,
장신구든 옷이든 입었다 하면 완판이라 그녀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나도 깍듯하게 인사했다.
“아! 너무 그러면 나이 들어 보이잖아요! 편하게 해요! 편하게!”
“어떻게 대! 선배님께 편하게 하겠어요. 전 이게 편합니다.”
“아익! 진짜! 이거 나 멕이는 거죠?”
재밌게 티키타카하면 서로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간다.
“그럼 이제 주인공들을 모셔 볼까요?”
“그래야죠. 아직 그룹 이름이 없으니 그냥 s걸즈라고 부르죠?”
“아니! 작명 센스가 그게 뭐예요?”
“그럼 생각해둔 그룹 이름 있으세요?”
변순데?
아직 없는데?
근데 여기서 이름을 정해서 부르면 그 비슷한 이름으로 데뷔가 픽스될 거 같다.
잘 정해야 할 거 같은데?
아니, 그냥 나중에 바꿔도 상관없으려나?
“고민하는 거 보니까 없네! 그럼 에스 걸즈 좋네요. S가 뭐 약자로 붙이기 좋아. 스페셜도 있고, 슈퍼도 있고, 센세이션도 있고. 그냥 가죠?”
“아! 그, 그럴까요?”
해인의 페이스에 말려 버렸다.
“자! 그럼 에스 걸즈! 들어 오세요!”
“박수!”
얼결에 진행해 버렸다.
으음, 진짜 에스 걸즈로 내보낼 순 없으니 나중에 잘 생각해 봐야지.
아니! 아예 이름 정하기 미션도 만들까?
괜찮은데? 김 피디님도 있겠다 얘기 좀 나눠봐야겠다.
사실 김 피디님은 이번 촬영의 메인 피디는 아니다.
물론, 총괄 피디로 함께하긴 하지만, 워낙 바쁘신 몸이라 첫 촬영만 촬영장에 나오셨고.
앞으로는 다른 피디가 촬영하고 김 피디님은 촬영장엔 나오지 않고 다른 업무를 담당할 예정.
“자! 시청자 여러분께 인사!”
“안녕하세요!”
“아! 너희는 아직 멘트 없지?”
“네!”
해인이 알아서 진행을 잘 한다.
“아니! 그 촌스러운 멘트 안 하면 안 됩니까?”
“에이! 그래도 해야 사람들한테 기억되기 쉬워요! 슈가 페어리도 달콤, 읍!”
해인의 입을 막았다.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자! 그럼 오늘 뭘 하면 되죠?”
“맞아요! 피디 양반. 알려주지도 않고 이런 고급 인력을 부르고 말이야!”
다 알고 있지만, 너스레를 떠는 거다.
피디와 출연자 간의 티키타카도 요즘은 재밌는 방송 거리니까.
“여러분은 이제부터 에스 걸즈의 데뷔곡을 얻기 위한 여정을 떠날 겁니다.”
“응? 데뷔곡은 성민씨가 주는 거 아니었어요?”
나는 씩 웃으며 제작진 쪽으로 한 걸음 이동했다.
“제가 써 주긴 하죠. 하지만! 맨입으로? 그냥 드릴 순 없죠!”
“저희가 드리는 미션을 클리어할 때마다 데뷔곡의 한 파트를 드립니다!”
제작진과 합을 맞춰 말하는 나.
“와! 스파이었어!”
“스파이라뇨. 제작자로서 아이들을 키우는 마음으로 하는 일인데.”
“얘들아 너희 아빠가 박쥐란다!”
“아니! 박쥐는 너무 갔다!”
또 티격태격하며 말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래서 제작자 양반. 곡은 어떻게 잘 뽑혔나?”
“후후. 제가 누군지 잊으셨습니까?”
한마디에 해인이 깨갱 하고 물러난다.
“빌보드를 씹어 잡수신 작곡가님이시지! 그럼 곡은 오늘 공개 하나요?”
“전부는 아니지만요.”
“아! 설마 요번 미션을 성공하면 얻을 수 있는 파트를 공개하고 그런 거예요?”
“오! 예리하시네요? 역시 시조새. 짬밥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악!”
그녀가 내 팔을 꼬집었다.
“자꾸 나이로 놀리지 마요!”
“하하! 그럼 바로 공개하겠습니다.”
아이들의 눈이 커졌다.
해인도 나름 기대가 되는지 바로 집중해 귀를 쫑긋한다.
들려오는 노래.
특별히 전주와 함께 첫 소절을 들려줬다.
“와! 전주만 들었는데 벌써 좋다.”
“첫 소절까지 들려 드렸는데요. 아! 가이드는 제가 애정하는 걸그룹 슈가 페어리가 도와줬답니다.”
틈을 봐 슈가 페어리 홍보도 한 번 했다.
또 가이드를 슈가 페어리가 했다는 사실을 어필함으로 이 프로그램에 슈가 페어리 팬들을 끌어들이는 역할도 하는 거고.
아무래도 내 가수 노래라면 듣고 싶을 거 아냐.
그만큼 얘네들한테 내가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럼 첫 번째 미션은 뭔가요?”
내가 피디님을 보며 말했다.
사실 나도 미션을 모르거든.
“이제 막 그룹을 결성해 아직 친해지지 못한 여러분들을 위한 미션입니다.”
아! 단합 대회 뭐 이런 건가?
“저희가 제시한 단어에 열 명 모두 같은 동작을 취하면 성공! 첫 번째 소절을 얻게 됩니다.”
“아! 뭐야. 쉽네.”
“음, 쉬워요?”
해인이 쉽다며 너스레를 떨었고 나는 꽤 어려울 거 같아 해인을 보며 말했다.
“생각해 봐요. 같은 꿈을 가지고 비슷한 나이의 소녀들이 모였어요. 생각하는 게 빤하지 않겠어요?”
“으음, 그럴까요?”
동시대를 살았다고 해도 생각하는 건 다 다르니까.
“일단 해 보죠!”
“그게 좋겠네요.”
아무래도 오늘은 첫 방송 녹화라 조금 빨리 끝날 수 있는 간단한 미션을 준 거 같다.
하긴 내가 먼저 나와서 이런저런 얘기도 했고, 해인을 소개하고 애들도 소개하고 했으니 시간이 꽤 지났겠지?
이번 편성은 한 편이 꽤 짧은 시간이니까.
편당 광고 제외 40분씩 주 1회 방영된다.
사실상 앞에서 20분 넘게 사용한 거 같으니 미션은 금방 끝낼 수밖에.
다음 미션부터는 2회분 촬영도 있을 테니 더 어려운 미션이 주어지겠지.
제작진으로부터 대본을 하나 받았다.
“자! 제 손에 미션 문제가 들어왔는데요.”
“같이 봐요. 저도 진행자거든요!”
“하하. 알겠어요. 가지고 계셔요.”
“으음, 막상 받으니까 이거 짬처리?”
“어허. 아이돌 방송에 짬처리가 무슨 말입니까?”
나는 중간중간 웃음을 위해 해인과 티키타카 하며 촬영을 이어간다.
사실 아이들이 주가 되는 프로그램이지만, 쟤네는 아직 생신인 이라 재미 요소를 뽑아내긴 힘들다.
아마, 그런 건 미션으로 뽑아내겠지.
그렇기에 초반 재미 요소는 나와 해인이 뽑을 수밖에.
“자! 문제를 듣고 제가 3초를 세면 모두 포즈를 취하면 됩니다. 당연히 말하면 안 되는 거 아시죠?”
“네!”
활기차게 답하는 아이들.
벌써 눈빛에 결연함이 감도는 게 금방 끝날 거 같다.
“첫 문제 나갑니다. 제시어는!”
“제시어는!”
내 말을 따라 하며 분위기를 만드는 해인.
확실히 잘 한다니까.
“슈가 페어리!”
“와! 이걸? 자! 삼! 이! 일! 아아.”
“실패!”
으음, 이번 건 좀 어려웠다.
슈가 페어리가 가장 성공한 곡은 정규 앨범의 후속곡 구슬.
그 곡에 포인트 안무를 따라 한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몇몇은 이번 내 앨범에 들어있는 신곡 안무를 보였다.
“아니! 슈가 페어리 선배님 하면 구슬 아니야!”
“그래도 프로듀서님이 앞에 계시는데 프로듀서님 앨범 노래를 해야지!”
“아이! 싸우지 말고 다음에 잘 하면 돼!”
아이들도 촬영의 재미를 위해 과몰입해 열심히 말한다.
그래 카메라에 잡히려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 한마디라도 더 하렴.
“얘들아 쉽게 생각하고 가자! 알겠지?”
“네!”
예진의 정리 한 번에 조용히 준비하는 아이들.
“과연 이번엔 잘 할 수 있을까요?”
“아! 이번 문제 좀 어려운데요? 제가 낼까요?”
“그래 주실래요?”
다음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인에게 넘겼다.
“자! 문제 나갑니다! 문제는 에스민! 삼! 이! 일!”
“아아. 실패. 아니 피디님 이건 너무 어렵잖아요.”
내가 실패를 말하며 피디를 본다.
“쉽게 얻으면 의미가 없으니까요?”
“얘네들 여기까지 쉽게 온 게 아니거든요?”
내 이미지 관리를 위해 아이들을 위하는 척 피디님과 실랑이를 마치고 아이들을 봤다.
나와 관계된 곡도 너무 많았고, 내가 딱히 특징 있는 모습을 보여준 게 없어서 힘든 단어였다.
“근데 왜 미션이 다 저 관련된 거죠?”
“하하. 성민씨 그래야 재밌죠.”
“으음. 다음 미션은 해인 선배님으로?”
“오! 그냥 한 번 내볼까요? 성공하면 인정해 주시나요? 피디님?”
“너무 쉬운 문제 아니면 인정해 드리겠습니다.”
해인이 눈을 빛낸다.
“자! 제군들! 내가 누군지 잘 생각하고 동작을 해주길 바라!”
“힌트 금지입니다.”
“아이! 피디님 너무 각박하시다.”
“하하.”
해인이 나름 애교를 부리며 피디님을 구슬린다.
옆에 아내분이 계신 데 저래도 되나 몰라?
하긴 피디님 나이라면 딱 해인 선배가 활동할 때 좋아했을 수밖에 없는 나이네.
“그럼 문제 나갑니다.”
“오! 과연.”
나는 살짝 기대하는 리액션을 했고, 그에 맞춰 해인이 뜸을 들였다.
“1세대 걸그룹!”
“하나! 둘! 셋!”
“아아! 얘들아?”
결과는 실패였다.
해인이 살짝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아이들에게 다가간다.
“그 동작은 내 파트가 아니잖아! 너 걸그룹 한다는 애가 내 노래로 공부도 안 했어?”
혜민을 추궁하는 해인.
혜민이는 걸그룹 하려던 애가 아니라 모를 수도 있겠네.
물론, 혜민이만 틀린 건 아니지만.
“그리고 너는 우리 그룹 동작이 아니잖아!”
“하하. 선배님 조금 고정하시죠.”
“아니! 내가 특별히 엠씨까지 봐주는데 이건 맞춰야! 읍!”
해인의 입을 막는다.
“자. 시청자 여러분 잠시 음향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럼 바로 다음. 악!”
해인이 내 옆구리를 꼬집었다.
“후우, 제가 조금 흥분했네요. 호호, 자라나는 새싹은 오랜만이라.”
“미리 밝아서 제거한다 이런 거 아니죠?”
“어머? 밝아서 강하게 키우는 거죠! 호호!”
너스레 떠는 해인을 뒤로 다음 문제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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