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
얘기는 많이 하지 않았다.
주로 애들이 말하고 나는 들어줬다.
활기찬 애들이라 재밌게 맥주를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후우, 잘 자라.”
“네! 형.”
짝을 지어 방으로 가는 애들.
나만 혼자 방을 쓰니 좀 미안하긴 했지만, 쟤네도 나랑 같이 있는 게 더 불편하겠지.
대충 씻고 밖으로 나온다.
부자 사장님을 만나러 가는 자리라고 메이크업까지 받으란다.
까라면 까야 하는 처지는 아니지만, 예의라고 생각하고 하기로 했다.
굉장히 좋은 조건으로 중국에 놀러 올 수 있게 해줬으니까.
점심때 만나 먹을 메뉴는 베이징 덕.
한 번도 안 먹어 봐서 먹어보고 싶다고 했더니 대접한다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정비서. 매니저 직원 아저씨는?”
“아직 안 왔어.”
“양미 선생님은?”
“저기.”
통역사인 양미 선생님이 호텔 로비에 앉아 책을 보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아! 나오셨어요. 호호.”
“어제는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먼저 가셔서 감사 인사도 못 했네요.”
“아니에요. 제 일인걸요.”
양미 선생님은 촬영이 너무 늦어져 끝나고 바로 사라지셨다.
레돈 애들이 중국어를 웬만큼 하니까 그냥 보냈지.
딱히 불편한 건 없었다. 바로 숙소로 가서 맥주 마시고 잤으니까.
오늘까지 양미 선생님이 통역을 해주기로 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네. 딱 맞춰서 오셨네요.”
“하하. 저도 일을 하다 오기 때문에 시간이 여유롭지 못하네요.”
“고생 많으십니다. 이동할까요?”
매니저 직원의 차를 타고 조금 멀리 이동했다.
“꽤 멀리 가네요?”
“공항과는 오히려 가까워서 더 좋습니다.”
“아! 그러면 괜찮죠.”
뭐, 비행기 시간이 따로 정해진 건 아니니까.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식당에 도착했다.
“와! 진짜 좋다.”
“파인 다이닝 같은데 베이징 덕을 해주나?”
“그러게.”
아인과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니 몇 사람이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나는 일어나 양복을 입은 사내에게 인사했다.
“호호. 안녕하세요. 송조아 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옆에 서 있던 여성이 내게 인사를 했다.
살짝 어눌한 한국어 한국말은 못 하지만 준비해 온 거 같지?
“처음 뵙겠어요. 제가 당신을 불렀답니다.”
역시, 중국어로 말했고 양미 선생님이 통역해 줬다.
음, 배불뚝이 중국 부호가 나올 줄 알았는데, 꽤 아름다운 여성이 나와서 조금 놀랐다.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호호, 그럼 준비한 음식 먼저 먹을까요?”
“네. 잘 먹겠습니다.”
인사가 지나가고 조아가 자리에 앉았다.
으음, 뒤에 서 있는 양복 입은 아저씨.
경호원이었나 보네.
룸으로 된 식당은 아니라서 경호원을 대동했나 보다.
차례차례 음식이 나왔다.
코스 요리처럼 하나씩 나오지 않고 푸짐하게 상을 채워 나가는 요리들.
“호호, 이건 메인이 아니니까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돼요.”
“하나씩만 집어 먹어도 배가 부르겠어요.”
적당히 대화하며 둘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아! 아인이는 조아가 들어오고 일어나서 내 뒤에 서 있다.
아무래도 예의상 단둘이 먹는 게 맞는 거 같다나?
양미 선생님은 같이 먹자고 하니까 손사래를 치며 내 뒤로 가 섰다.
으음, 앞에 있는 이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중국에서 꽤 대단한 사람인가보다.
“주요리 나갑니다.”
셰프가 꽤 커다란 트레드밀을 밀며 우리 쪽으로 왔다.
갈색으로 잘 익은 오리. 윤기 좔좔 흐르네!
셰프는 인사를 하고 칼을 들어 오리를 썰기 시작했다.
오! 뭔가 고수의 손길이 느껴지는 칼질이다.
단번에 쓱쓱 그어 한 점씩 만들어 나가는데 총 세 접시가 나온다.
서버가 음식을 테이블에 올리고 설명해준다.
물론, 나는 양미 선생님에게 설명을 들었고.
“하나는 바삭한 껍질이고 하나는 살코기입니다. 마지막은 껍질과 살코기가 함께 있는 부위죠. 여기 있는 밀전병에 오이와 파채를 놓고, 취향에 맞는 소스를 넣어 싸 먹으시면 됩니다.”
“씨에씨에!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가장 기대했던 껍질부터 입에 넣었다.
와! 바삭한 껍질을 씹어 부수면 입안에서 녹아내린다.
오리 기름 특유의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진짜 맛있네.”
-꿀꺽!
아인이 뒤에서 침 삼키는 소리를 냈다.
나는 웃으며 아인을 봤고, 아인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무슨 말 할 줄 알았나 보네.
먹어보라고 하려고 했는데.
격식 있는 자리라 조금 그렇지?
“호호, 음식은 입에 맞으시나요?”
“네! 너무 맛있어요.”
내가 먹는 모습을 뿌듯하게 보는 그녀.
나보다 누나겠지?
나이가 그렇게 많아 보이진 않는데 확실히 모르겠다.
“안 드세요?”
“호호. 관리하는 몸이라 적당히 먹었어요.”
“아! 그럼 신경 쓰지 않고 배 좀 채울게요.”
“호호. 네. 마음껏 드세요.”
원래라면 음식을 두고 얘기를 시작할 텐데.
여기 음식은 그럴 수가 없었다.
열심히 이것저것 소스를 바꿔가며 밀전병에 베이징 덕을 찍어 먹고 슬슬 배가 불렀다.
“후우, 잘 먹었다.”
“호호. 다 드셨어요?”
“아! 네. 제가 너무 오래 먹었죠?”
“괜찮아요. 잘 드셔서 보는 맛이 있었네요.”
나는 씽긋 웃고 자세를 고쳤다.
“하실 말씀이 있는 거 같은데요?”
“호호. 커피 한잔하시죠?”
“아! 커피 좋죠.”
디저트는 언제나 환영이다.
“자리를 좀 옮길까요?”
“아! 그러죠.”
그녀가 경호원에게 눈짓했다.
“거기선 둘이 얘기하고 싶네요.”
“알겠습니다.”
독대한다고?
나한테 뭔가 비밀스러운 부탁을 할 게 있나?
일단 가보자.
근데 우리 말이 안 통할 거 같은데?
“둘이 보고 싶다네.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송조아를 좀 알아봐 줘.”
“알겠어. 조심하고.”
아인에게 조아의 정보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혹시 몰라서. 도대체 누구지?
식당을 나서 경호원이 안내한 차에 탔다.
으음, 납치당하는 건 아니겠지?
여긴 중국이라 조금 불안하다.
이동한 곳은 웬 호텔이었다.
호텔 라운지 카페라도 가나?
으음, 방으로 들어가네.
“오해는 하지 말아요. 여기만큼 안전한 곳이 없어서 그러니까.”
“아! 네. 어?”
능숙한 한국말이 나온다.
“제가 한국어를 하는 건 비밀입니다.”
“네.”
아까는 어눌한 한국말이었는데, 지금은 엄청 능숙하다.
“한국어를 정말 잘하시네요?”
“엄마가 한국인이거든요.”
“아! 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어투.
자세한 건 아인이 알아서 조사하겠지.
“제 꿈은 가수예요.”
“아! 그래요?”
“네. 노래 한 번 들어 보실래요?”
“좋죠!”
조아가 목을 가다듬고 노래를 한다.
“흠흠, 아아!”
날 위해서인지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는 조아.
으음, 꽤 부르는데 가수 할 정도는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재능이 없다.
“어땠나요?”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네요.”
“호호. 그렇죠?”
슬픈 표정으로 말하는 그녀.
“그 때문에 작곡가님을 불렀어요.”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되죠?”
노래 실력을 늘게 해줄 순 있지만, 그녀가 그건 모를 텐데?
“곡을 부탁드리고 싶어요.”
“제 곡이요?”
“네. 좀 무례한 부탁이겠죠? 정말 뭐든지 해 드릴 수 있어요. 부탁드릴게요.”
“으음. 곡은 왜 필요하신 건가요?”
내 예상에는 노래가 부족하니 좋은 곡이라도 받아 보자는 마음 같은데.
“그, 곧 기회가 한 번 있어요.”
“무슨 기회요?”
“꽤 괜찮은 오디션 프로에 노래를 부를 기회가 생겼어요.”
“거기에서 부를 노래군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한 곡 부른다고 해도 오디션 우승은 힘들 거고.
가수 생활을 오래 할 수도 없을 텐데?
“무슨 생각 하시는지 알아요.”
“그런데도 필요하세요?”
“사실, 마지막으로 절 위한 노래를 한 곡 가지고 싶었어요.”
“아!”
이미 포기한 상태구나.
마지막을 위해 무대까지 준비한 거고.
“으음.”
“안 될까요?”
간절한 음성.
“생각할 시간을 잠시만 주시겠어요?”
“네. 얼마든지 생각하셔도 좋아요.”
그녀를 내 여자로 만들면 좋을까?
확실한 정보가 없으니 조금 어렵다.
음, 내일 딱히 스케쥴 없으니 한국에 하루 늦게 가도 되지?
“잠시 전화 통화 좀 할게요.”
“네. 그러세요.”
아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성민아.”
“응. 우리 내일 한국에 가도 문제없지?”
“그렇지?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내가 말한 건 했어?”
한숨 소리가 들린다.
“아직, 중국인이라 잘 못 찾겠어.”
“알겠어.”
전화를 끊고 그녀에게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네!”
긴장한 조아.
“저는 당신이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당신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도 모르죠. 판단이 서지 않아서 그런데 본인 얘기를 좀 해줄 수 있을까요?”
“으음. 거래인가요?”
그녀의 표정이 변했다.
변명은 좀 해둬야겠지?
“당신을 위한 곡을 만들어 달라고 하셨죠? 더 알아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아! 그럼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생각 좀 해봐야겠네요.”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녀가 커피를 홀짝인다.
“음, 제 아버지는 중국에서 꽤 대단한 권력 자에요.”
대단한 권력자면 어느 정도지?
중국은 정부의 힘이 꽤 큰 나라니까.
“중국의 정치 구조는 잘 모르시겠죠?”
“네. 정확히는 모릅니다.”
“으음, 서열 7위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와! 중국에서 서열 7위?
“한국으로 치면 부총리 정도 되겠네요.”
“와. 엄청 높은 분이셨군요.”
“뭐, 저는 혼외자식이지만요.”
“아.”
그래서 아까 사연 있는 목소리를 냈구나.
“제 어머니는 중국 여행 왔다가 아버지와 사랑에 빠졌어요. 둘은 꽤 잘 지냈다고 해요.”
음, 그런데 왜? 다른 사람이랑 결혼했데?
“하지만 아버지는 대대로 권력자 가문이었죠. 사랑으로 결혼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어요.”
아! 알만하다. 중국은 아직도 정략결혼이 많은가 보네.
“집안에서 정해준 사람과 결혼했지만, 아버지는 어머니를 버리지 않았어요. 물론 저에게도 꽤 많은 지원을 해주셨죠.”
본처가 뭐 해코지 안 했나 본데?
“근데 결혼한 여자가 어머니를 질투했나 봐요.”
했구나. 내가 너무 앞서 나갔다.
“그래서 아버지는 선택했죠.”
그녀가 살짝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어머니와 다시는 안 만나는 대신 절 인정하기로 했어요.”
“입양한 건가요?”
“아뇨. 저는 법적으로 아버지 딸이 아니에요.”
“그럼?”
그녀가 슬픈 얼굴로 말했다.
“그냥 사랑받는 혼외자식인 거죠.”
“으음.”
여기까지가 그녀의 성장 스토리.
뭐, 중국 7등 권력자의 사랑받는 자식이면 권력은 확실하겠네.
물론, 혼외자식이라 조금 애매하지만.
“아버지는 어디서든 절 딸이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그 때문에 뭘 해도 쉽게 할 수 있죠. 중국은 한국과 비교하면 정치권 권력이 훨씬 막강한 거 아시죠?”
“물론이죠.”
그녀가 씽긋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 아니라, 중국에서 원하시는 모든 걸 해 드릴 수 있어요.”
확실히 그렇겠네.
“제 나이 서른셋. 아버지는 괜찮은 회사 하나 차려서 운영해 보라고 하셨지만, 마지막으로 제 꿈을 응원해 준다 하시며 공연 기회를 잡아 주셨어요. 마지막 무대에서 정말 제대로 된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부탁드릴게요. 제게 곡을 써 주세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요?”
“네. 그 전에 더 알아야 할 게 있어요.”
“뭔가요?”
그녀를 내 여자로 만들기로 했다.
레돈뿐 아니라 아효의 중국 진출도 있고 이번 오디션에서 데뷔할 거 같은 용월이 사고 쳤을 때도 좋은 도움이 될 테니까.
그냥 엔터 사업 쪽은 중국의 도움을 받는다면 무조건 좋다.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나이에 맞지 않게 꽤 어려 보이는 얼굴.
솔직히 심월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미모다.
얼굴에 돈을 많이 썼으려나?
자연스러워서 수술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뭐, 내가 그런 걸 신경 쓰는 편은 아니니까.
“무, 무슨 짓을?”
“저는 곡의 영감을 얻는 특별한 방법이 있어요.”
“그게 지금 이 짓과 상관이 있나요?”
내가 뭘 했다고.
턱을 잡고 얼굴 자세히 본 것밖에 없다.
누가 뜬금없이 내 턱을 잡아 얼굴을 돌리며 빤히 본다면?
음, 좀 무례하긴 하네.
그녀에게 마기를 넣었다.
“그리고 노래 실력도 제가 만져드릴 수 있을 거 같네요.”
“저, 정말요?”
눈을 크게 뜨고 놀라 날 보는 조아.
“네. 대신 조건이 있어요.”
“뭔가요? 뭐든 해드릴게요.”
“정말로 뭐든! 이죠?”
뭐든을 강조해 말했다.
“네. 뭐든!”
다부진 표정으로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한 그녀.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주세요.”
“네? 뭘?”
“당신을 주세요.”
“흐익?”
조아의 몸을 확 안았다. 크게 당황하는 조아.
뭐야? 남자 많이 안 만나봤나?
뭐 이렇게 긴장하고 굳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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