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
호텔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가고 아침을 맞았다.
“하으으, 그, 그만, 더 하면 나 오늘 못 나가.”
“호텔에서 쉬어도 되는데.”
“흐으응, 어떻게 그래.”
밤새 아인과 열심히 운동했다.
호텔 이불이 너무 포근해서 섹스가 땡겼지 뭐야.
“잠은 좀 자야 하니까. 나 두 시간 있다 깨워줘.”
“그래.”
음, 오늘은 아인이 재워두고 몰래 나가야겠다.
너무 기분 내서 피곤하게 만들어 버렸네.
두 시간쯤 지나, 옷을 챙겨 입고 나가려는데 알람이 울렸다.
“으음, 왜 안 깨웠어?”
“두고 나가려고 했는데.”
“괜찮아.”
-츄르릅, 츄릅.
피곤해하는 아인에게 키스를 해주고 잠시 기다렸다 함께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기다리고 있는 통역사 선생님.
옆에 어제 본 직원도 함께 있다.
“제가 매니저 일을 겸하게 됐습니다.”
“아! 잘 부탁드려요.”
허허 웃은 그가 안내하는 곳으로 이동하니 차가 한 대 있었다.
리무진이네?
“레돈 애들은 어제 잘 했나요?”
“물론이죠.”
으음, 뭔가 대답이 바로 나오는 게 미리 준비된 답 같지만, 진짜 잘 했겠지.
사실 레돈과 나는 비슷한 스케쥴을 소화해야 할 뻔했는데.
내가 최소한만 나가겠다고 못을 박았다.
그렇지 않으면 레돈만 보내고 난 안 가겠다고 배짱을 부렸는데, 처음엔 중국 진출이 무산되는가 싶다가 갑자기 중국 방송국 측에서 조건 없는 수용을 알려왔다.
아무래도 날 보자고 한 중국 갑부가 뭔 짓을 한 모양.
뭐, 나야 고마우니까.
그래서 잡힌 스케쥴이 일주일간 딱 세 개.
두 번은 레돈과 함께하는 토크쇼 형식의 인터뷰 프로그램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에도 비슷하게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거기 나오는 고정 패널 중에 여자 한 명의 실물이 엄청 이쁘다는 소문을 듣고 나가고 싶다고 했는데 오토콜의 답변이 왔다.
그 스케쥴이 가장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촬영 다음 날, 날 불러준 갑부랑 식사 스케쥴이 마지막이다.
그러고 깔끔하게 한국으로 가서 오디션과 콘서트 스케쥴을 준비하면 된다.
도착한 중국 방송국.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뭔가 언어의 장벽이 느껴져 시끄러웠다.
중국인들은 그냥 말하는 게 싸우는 거 같단 말이지.
“형!”
“그래. 왔어?”
“저희 어제 있잖아요....”
나갔던 프로그램에서 중국인 여배우에게 대쉬 받은 내용을 내게 하나하나 말해주는 애들.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그냥 웃으면서 거절했죠.”
“번호교환 한 건 아니지?”
레돈 애들이 일제히 고개를 젓는다.
으음, 너무 단합돼 보이니까 조금 의심스러운데?
뭐, 나도 문란하게 사는 처지라 뭐라 할 처지는 아니지만.
나는 마기로 꼭꼭 숨길 수 있지만, 얘네는 아니니까.
“솔직히 말해서 너네도 한창 시기의 남잔데, 어느 정도는 해도 좋아. 대신 사고 치지 말고, 들키지만 마라. 콘돔은 꼭 쓰고.”
“에이, 형. 우린 괜찮아요. 이제 막 제대로 활동하고 있는데.”
“욕망이란 게 무서운 거거든.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그러니까 철저히 숨기고 콘돔은 꼭 써라.”
장난식으로 말했지만, 진심이다. 물론, 얘네는 다들 성실한 애들인 거 같아서 걱정이 덜하긴 하지만.
호르몬이란 게 무서워서 사람을 순식간이 미치게 하거든.
그럴 때 내가 장난식으로 한 말을 조금이라도 기억한다면 철저히 숨기려고 하겠지.
콘돔도 꼭 쓸 테고.
“자! 그럼 슬슬 들어가자.”
중국어로 열심히 인사하며 들어가는 아이들.
나도 그 속에 섞여서 인사를 나눴다.
얘들은 중국어를 준비해 왔지만, 나는 중국어가 하나도 안 되니까.
니하오, 워쓰한구어런. 띵부동!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인입니다.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세 단어만 알고 있다.
뭐, 통역사가 항상 같이 있고 딱히 뭘 할 건 아니니까.
“후우, 중국 방송이라 그런가? 조금 떨리네.”
“와! 형이 긴장도 해요?”
“나도 사람이다. 임마.”
레돈애들과 함께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엠씨를 보는 남녀 진행자 둘과 레돈과 나만 나오는 프로그램이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진행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토크쇼가 시작됐다.
질문은 미리 알려준 내용이라 답하는 데 문제는 없었고, 생각보다 빠르고 부드럽게 촬영이 끝났다.
중국이라고 해서 조금 힘들 줄 알았는데, 한국보다 뭔가 철저한 느낌도 있네.
질문도 딱 준비한 것만 하고, 따로 뭘 시키지도 않는 걸 보면 뭔가 신사적인 느낌의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중국을 오해하고 있었나?
아니면, 내 뒤를 봐주는 사람이 엄청난 거물인 거겠지?
누군지나 물어볼걸.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다고 합니다.”
“아! 씨에씨에”
진행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지만 알아듣지 못해 양미 선생님을 바라봤고, 양미 통역사가 통역해 준다.
통역을 끼고 인터뷰하니까 뭔가 흐름이 자꾸 끊겨서 재미가 별로 없던데.
이런 기본적인 대화도 안 되니까 좀 어색한 거 같다.
진행자와 헤어지고 아인이 있는 차에 탔다.
“촬영은 어떠셨어요?”
“으음, 아무래도 중국어 공부를 해야 할까 고민되는 촬영이었어요.”
“하하하. 중국어 배워두면 써먹을 데가 있지 않겠습니까?”
넉살 좋은 매니저와 함께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같이 중국어 공부할래?”
“갑자기? 중국 진출 제대로 해보려고?”
“응. 생각보다 괜찮을 거 같아서.”
“뭐, 나야 공부를 싫어하진 않으니까.”
아인과 중국어 공부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아효가 지금 선생님에게 배우고 있으니 나도 같이 배울 수 있겠지?
다음 날도 비슷한 스케쥴이었다.
이번 토크쇼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연예인도 꽤 나왔는데, 덕분에 흐름이 많이 끊기지 않아 꽤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
무대 밖에서 이어폰으로 양미 선생님이 계속 동시통역을 해줘 더 편했던 거 같다.
내가 하는 말은 레돈 애들이 대신 말해줬는데, 얘네는 언제 중국어 공부를 이렇게 했는지 기특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마지막 촬영은 향왕적생활 이라는 중국 예능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프로가 있는데 어디 시골 마을에 들어가서 자급자족하는 이야기다.
중국은 남 배우 두 명과 여배우 두 명이 함께 생활한다.
매화마다 게스트가 나오는 건 아니었지만, 이번 시즌은 거의 매화마다 게스트를 부르고 있는 거 같다.
으음, 중국은 음악방송이 없어서 레돈이 딱히 무대를 가질 방송이 많지 않네.
몰랐는데 우리나라에 있는 음악방송이 중국엔 없다.
정말 하나도 없다.
물론, 워낙 방송사도 다양하고 계속해서 포멧이 바뀌니까 있을 수도 있긴 한데.
중국에 메이저한 방송국에선 음악 프로를 내보내고 있지 않다.
그래서 예능에 나가 무대를 대신 하는 게 레돈의 주 활동.
아무래도 음악이 주가 되는 방송이 아니니 장기자랑이나 토크쇼를 더 많이 하고 무대는 맛보기로 보여주는 정도다.
조금 아쉽지만, 중국 문화가 이러니 어쩔 수 없지.
“아으, 너무 기대돼요.”
“뭐가 그렇게 기대돼?”
중국은 땅이 너무 넓어서 차 대신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다.
레돈 애들과 다 같이 탄 비행기.
벌써 촬영에 들어가서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있다.
“한국도 아니라 중국에서 자급자족이잖아요. 우리나라랑은 식재료나 생활 방식이 아주 다르지 않겠어요?”
“으음, 나는 힘 쓸 일이 많을 거 같아서 걱정인데.”
비행은 약 한 시간 걸렸고, 내리니 기자가 꽤 많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빠져서 아인과 양미 선생님과 함께 걸었고, 레돈은 알아서 인터뷰를 좀 하고 빠져나온다.
“저쪽 차에 타시랍니다.”
“아, 네.”
양미 선생님이 스테프 차를 알려줘 거기에 탔다.
조금 지나니 레돈 애들도 왔고, 차가 출발했다.
여기선 촬영하진 않네.
비행기에서 내려 바로 도착하는 거처럼 하나?
“내리셔서부터는 바로 촬영 시작되니까 자연스럽게 해달랍니다.”
“아! 알겠어요.”
양미 선생님이 이어폰을 건네줬다.
촬영 감독과 함께 영상을 보며 또 내게 동시통역을 해주려는 모양.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차에서 내렸다.
“오늘은 누가 많이 온다던데?”
“그래?”
“외국 사람이래.”
“어? 말 안 통하는 거 아니야?”
미리 대화하는 네 사람의 목소리가 조금 멀리서 들렸다.
“설마, 여기까지 왔는데 말은 통하겠지.”
“으음, 외국인 일꾼 일은 잘 할까?”
“일꾼이라니. 손님이지.”
고정 패널 네 사람이 시야에 잡히기 시작했고, 그들도 우리를 봤다.
“오! 왔다.”
“꺄! 나 레돈 엄청 좋아하는데!”
“뒤에는 매니전가?”
“너 몰라? 레돈을 만든 프로듀서 S.Min 이잖아.”
어우, 양미 선생님 고생하시네.
네 명이 하는 말을 다 번역해 주고 계셔서 거의 랩 하는 수준이다.
“와! 알지! 빌보드에서도 유명하다며? 미국에서 1등 한 아시안이니까. 정말 대단하다.”
사실, 여기는 미리 짜인 대본이다.
나는 리얼일 줄 알았는데, 행동의 80%는 대본으로 이뤄져 있어서 놀랐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인사를 나누고 모두가 평상에 둘러앉았다.
간단히 자기소개하는 시간.
내가 이 프로에 출연하고 싶다 얘기한 여배우를 유심히 본다.
으음, 꽤 이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실제로 보니 생각만큼은 아니었다.
그래도 어딜 가나 돋보일 만한 미모긴 했다.
너무 기대하고 왔나 봐.
“형이 먼저 하시나요?”
“그럴까?”
나는 일어나며 목을 풀었다.
“흠흠, 워쓰 라이즈 한구어 더 성민. (저는 한국에서 온 성민입니다.)”
여기까지가 내가 어제 준비한 중국어 전부다.
“중국어는 여기까지 밖에 준비를 못 했어요. 하하.”
내가 말하는 걸 레돈의 리더가 대신 번역해 준다.
“작곡가로 일하고 있고, 만나서 반갑습니다.”
“와아아!”
손뼉을 쳐주는 사람들.
레돈도 한 명씩 차례로 소개를 끝냈다.
그러자 피디가 손뼉을 쳐 우리를 주목시켰다.
“자! 오늘은 우리 방송 처음으로 대규모 게스트가 왔습니다. 한국에서 오신 손님이니 대접을 해 드려야겠죠?”
피디가 뭔가 미션판 같은 걸 꺼냈다.
양미 선생님이 읽어 주셨고, 그건 일감이었다.
일은 두 종류로 나뉘었는데, 바다낚시 조와. 농사 조로 나뉜다.
농사 조는 감자와 여러 작물을 캐서 몇 킬로그램 이상 캐면 얼마를 주는 식이다.
낚시는 물고기를 낚으면 우리가 쓸 수도 있고, 아니면 현지 시가로 계산해 돈을 준다는 내용.
“우리 쳐놓은 통발 보러 가자.”
“맞아. 거기에 뭔가 잡혔을 거야!”
통발을 미리 쳐놨나 보네.
나는 농사보다는 낚시가 쉬울 거 같아서 낚시에 지원했다.
낚시는 고정 멤버 남자 한 명과 내가 눈여겨본 여배우 한 명.
레돈의 막내. 마지막으로 나.
총 넷이서 가기로 했고, 나머지는 다들 농사를 하러 간다.
고생하라고 격려해주고 우리는 함께 이동했다.
“중국은 어떤 거 같아요?”
“으음. 일단 음식이 맛있어요!”
내 옆에서 수줍게 질문을 던지는 여자.
이름이 뭐였더라?
아까 들었는데 중국어 발음이라 까먹었다.
나는 양미 선생님에게 보일 수 있도록 카메라를 보며 여배우의 이름을 물어봤다.
“심월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심월은 한국에 와 본 적 있어요?”
내가 하는 말을 레돈의 막내가 옆에서 번역해 준다.
“아뇨. 해외는 한 번도 못 가봤어요.”
“아쉽네요. 언제 한국에 한 번 놀러 오세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정말요? 엄청 바쁘시지 않아요?”
“아! 맞다.”
내 너스레에 세 사람이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도착한 방파제.
미리 심어둔 통발을 건져 올렸는데, 게가 몇 마리 잡혔지만 크기가 너무 작았다.
“아기들은 놓아 주자.”
“그래야지.”
통발이 비어있어 실망한 우리는 낚시 장비를 펴고 낚시를 준비했다.
“으음, 뭐가 있으려나?”
“여기는 많은 물고기가 잡히는 포인트에요.”
“그래요?”
심월이 다정하게 내게 설명하며 낚시채비를 대신 해준다.
내가 뭘 알아야 하지.
심월이 중국어로 물고기 이름을 말했지만, 양미 선생님이 번역을 못 해줬다.
“으음, 돔 종류인 거 같은데요. 제가 물고기 이름은 잘 몰라서 죄송합니다.”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씨익 웃어줬고. 심월에게 일러바쳤다.
“통역사 선생님이 물고기 이름을 모르시네요. 그래도 열심히 잡아 볼게요.”
“호호. 네! 화이팅!”
그녀가 낚시 방법을 알려줬고, 레돈 막내와 남자 출연자는 이미 낚시를 시작했다.
“오오!”
레돈 막내가 처음으로 물고기를 잡았다.
우럭이네? 크기가 꽤 괜찮았다.
“이건 튀겨 먹거나, 탕 요리도 괜찮겠다.”
“중국에선 우럭으로 찜 요리를 해 먹습니다. 이따 해드릴게요.”
“와! 기대해 볼게요.”
그렇게 꽤 오랜 시간 낚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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