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241화 (241/450)

241.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꿈에서 도와달라는 말을 들었어요.”

“아! 그게 꿈이 아니었군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내가 준 물을 한 잔 마시고 말을 잊는 그녀.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기운이 제게 들어왔어요.”

그녀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마기가 들어왔고, 자신을 보호해 주던 사람에게 말했단다.

그는 믿지 않았지만, 그녀가 만드는 마기가 깃든 물건을 보고 그녀가 엄청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거 같단다.

그래서 그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 이런저런 물건을 만들어보던 중.

그녀가 마약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숨기려 했지만, 가난한 그들에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마약은 엄청난 유혹이었다.

결국, 딱 한 번만 만들어 큰돈을 벌고 도망치려 했으나 그 한 번이 모든 걸 망쳤다.

보호자는 사라졌고, 모르는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마약을 만들지 않으면 때렸고, 최소한의 음식만 주며 마약을 만들게 시켰단다.

그렇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꿈에서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고 느꼈고, 도와달라고 했단다.

“그게 끝?”

“네. 이게 전부예요.”

“눈은 원래 안 보였던 건가요?”

“아, 네. 태어날 때부터요.”

으음, 그녀와 마기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녀의 몸에서 마기가 느껴지긴 하지만, 내게서 나간 마기랑은 좀 다른데?

내 안의 마기가 잠들어서 물어볼 수도 없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빨리 경호 세력을 만들어야겠다. 마기가 자고 있지만 그건 가능하겠지?

마기를 사용하지 못 하는 건 아니니까.

“그럼 좀 쉬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그녀에게 방을 하나 내어주고 여인들에게 알렸다.

“저녁까진 시간 좀 있지?”

“응. 아직은 여유 있어.”

다른 갈 곳이 있다.

아인의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한 경호 업체.

이곳은 특이하게도 모든 경호 인력이 여성으로 이루어진 여성 전문 경호 단체였다.

우리 회사도 이곳에 경호를 꽤 많이 맡기고 있고 그간의 평이 나쁘지 않다.

“어서 오세요.”

“네. 안녕하세요. 대표님이랑 약속이 있는데요.”

“아! 3층으로 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아인을 차에 두고 혼자 건물로 들어왔다.

5층짜리 건물 한 채를 통째로 이용하는 경호 업체.

돈을 많이 번 건 아니고 대표가 돈이 많다고 알고 있다.

경호 업체를 차린 것도 자신을 경호하기 위함인데 어쩌다 보니 커져서 이런저런 일을 시작한 게 시작이었다고 한다.

“안녕하세요.”

“아! 반갑습니다.”

노크하고 들어가니 정장을 차려입은 여인이 날 반긴다.

“대표님은?”

“오고 계십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그러죠.”

갑자기 잡은 약속이니 조금 늦어도 이해해야지.

지금 있는 사람이 사장이긴 하지만, 이 회사를 가지고 있는 대표는 다른 사람이다.

몸이 약하다는 말만 들었지, 정확한 병명이나 증상은 모른다.

단지, 아프지 않았으면 엄청난 미인이었을 거라는 소문만 들었다.

그녀가 유명해진 이유는 그녀의 아버지 때문이다.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스폰하던 20대 여자와 얻은 늦둥이 딸.

문란하게 살던 싱글 부자가 아이를 갖고 완전히 변했다.

애지중지 아이를 키우며 건실한 삶을 살았지만, 슬프게도 아이가 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여러 의료 기관에 치료를 의뢰했지만, 원인도 밝혀내지 못했고, 그녀는 점점 더 몸이 약해졌다.

결국,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치료한 의료 기관에 어마어마한 후원을 하겠다는 광고를 냈지만, 치료는 실패했다.

오히려 여러 검사를 하느라 그녀의 건강이 더 악화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죽었지만, 아직도 그 광고는 유효하다.

그녀도 물려받은 재산이 많지만, 몸이 건강하지 않아 딱히 돈을 쓸 일이 없다더라.

치료도 포기했는지 거의 돈이 들지 않아 어느 커뮤니티에선 그녀를 잡으면 팔자가 편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도착하셨다네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편안한 소파에 앉아 가져다준 커피를 마시며 그녀에 관한 생각을 하니 시간이 금방 지난 거 같다.

사장은 그녀가 도착했다는 말을 남기고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문이 열리고 휠체어에 탄 여성이 보였다.

그를 보필하는 사장과 몇몇 여인들.

다들 경호 전문인이라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그런지 몸매들이 나쁘지 않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그녀.

여성 전문 경호 회사 레이디 가디언의 대표 정소담.

소담의 첫인상은 병약 미소녀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여인이었다.

병으로 몸이 잘 자라지 못했는지 꽤 어려 보이는 얼굴이지만,

알기론 나이가 30이라고 들었다.

“저희와 정식 계약을 맺고 싶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리고 따로 드릴 말씀도 있구요.”

“흐음, 어떤 말이죠?”

“그건 독대를 요청해도 될까요?”

뒤에 서 있던 사장과 직원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저도 나름 인지도 있는 사람이라 허튼짓은 안 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죠.”

“흠흠.”

내 말에 사장이 헛기침하며 살짝 고개를 돌린다.

“흐음, 독대라 오랜만의 요청이네요. 일단 들어나 보죠.”

소담의 말이 끝나니 여성들이 밖으로 나간다.

“자! 이제 됐죠? 말씀하시죠.”

“건강을 되찾고 싶지는 않으신가요?”

“호호, 돈이면 뭐든지 가능한 세상에서 돈으로 별짓을 다 해봤지만, 하지 못한 일입니다.”

분노도 느껴지지 않는 체념 조의 말.

완전히 포기했다는 느낌이 어투에서 바로 느껴졌다.

“사실 저도 확실하진 않습니다. 그래도 가능성에 걸어볼 생각은 없나요?”

“호호, 절 다시 절망하게 하려는 건가요?”

“저도 돈이 많은 사람 중 한 명인 건 아시죠?”

“흐음, 돈이 아닌 다른 걸 원한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이 회사가 탐나십니까?”

고개를 저었다.

“물론, 회사도 탐나지만, 으음!”

잠시 말을 멈추고 뜸을 들인다.

“절 믿어 줄 확실한 우군이 필요합니다.”

“호호, 제가 무슨 도움이 될까요?”

“뭐, 저와 독대한 순간부터 이미 선택권은 사라진 거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최대한 존중해 드리고 있습니다.”

별다른 말 없이 마기로 지배한다면 그녀는 바로 내게 호의적인 생각을 품을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는 이유는 소담에 대한 존중도 있지만, 내 변덕이 가장 큰 이유다.

지금까진 마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진 않았다.

이제부턴 내 안위를 위해 마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생각.

그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작업이랄까?

조금 도덕적으로 꺼림칙한 느낌이 드니까.

나쁜 짓 하기 전에 머뭇거림.

딱 그 정도의 느낌으로 소담에게 말을 주절주절 떠들 뿐이다.

뭐, 그래도 해야겠지.

“이걸 드셔보시겠어요?”

“이게?”

나는 액체가 담긴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액체의 정체는 그냥 물이다.

나름 신경 써서 비싼 생수를 담았다.

마기로 마약을 만드는 방법을 전해 듣고 내 나름대로 마기를 이용해 만든 액체다.

비관적인 표정으로 내가 꺼낸 병을 보는 소담.

“제가 작곡가님을 어떻게 믿고 이걸 먹죠?”

“믿고 안 믿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럼요?”

“대표님은 이걸 마실 수밖에 없으니까요.”

의문스런 표정을 짓는 소담. 천천히 다가갔다.

그녀의 손을 잡아 손바닥이 하늘을 보도록 뒤집은 후 약병을 올렸다.

사실 이런 과정은 다 보여주기 위한 거라 없어도 된다.

내가 직접 마기를 사용해도 되니까.

단지, 물에 마기를 넣어 사용하는 건 실험의 성격이 강하다.

나도 할 수 있나 싶어서.

그리고 소담이 직접 선택했다는 위안으로 내 도덕적 장벽을 허무는 느낌도 있다.

뚫어져라, 약병을 보는 소담.

말없이 뚜껑을 열어줬다.

“제가 정말 이걸 마실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물론이죠.”

“후우, 자꾸 절 시험에 들게 하시는군요.”

내 확신에 찬 눈빛에 소담의 눈빛이 흔들린다.

“어디서 뭘 가져오신 건지 모르겠지만.”

소담이 물을 단번에 들이켰다.

무슨 결심이 서서 마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 자신감 있는 모습이 소담의 무언가를 건드린 거 같다.

“으음.”

내 눈에는 보인다.

소담의 몸에 마기가 퍼지는 모습이.

뭐, 지금 당장에야 어떤 변화가 있진 않겠지만, 곧 효과가 나타나겠지.

“제 앞에서 작곡가님 같은 얼굴을 했던 사람들이 아주 많았어요.”

“특별한 일이군요.”

“그들 모두 결국엔 처참한 표정으로 돌아갔죠.”

“전 다를 겁니다.”

소담이 살짝 미소짓는다.

“지켜보죠.”

“그럼 계약 얘기를 할까요?”

“그러죠. 정확히 원하시는 계약은 어떤 거죠?”

미리 준비한 조건을 적은 종이를 꺼냈다.

“제가 원하는 조항은 여기 모두 적혀있습니다.”

종이를 가져가 읽기 시작하는 소담.

뭐, 이런 일은 아까 봤던 사장이 담당하겠지만, 큰 계약은 소담이 직접 한다고 알고 있다.

“흐음, 조금 이상한 조건이네요.”

“어디가 이상하죠?”

“비밀 보장이야 특별한 조건도 아닌데, 모든 경호 인력을 직접 뽑으시겠다고요?”

정확히는 모두와 한 번은 면접을 본다고 적어뒀다.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좀 좋거든요.”

“호호, 저도 모자라진 않는데 말이죠.”

사실 내가 면접으로 사람을 뽑겠다는 건 그녀의 회사에 대한 도전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마기를 넣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니, 그녀를 믿지 못해서 모두 만나보고 뽑는다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24시간 거주 경호에 인원도 매우 많군요.”

“그런가요?”

내가 요구한 상시 경호 인원은 총 30명.

24시간 경호를 하려면 최소 3교대는 돌아가야 하니, 총 90명은 필요하단 소리다.

“제가 드린 약을 드셨으니 슬슬 본론을 꺼내야겠네요.”

“뭔가요?”

조용히 말을 꺼냈다.

“저는 지금 위협을 받고 있어요.”

작은 목소리로 상황을 각색해 말한다.

마약 카르텔을 고발하고 그 후로 어디에선가 노려지고 있다.

얼마 전에 작업실에서 카메라가 발견됐다.

나와 함께 일하는 여성 뮤지션들도 위험할 거 같아 같이 살 집을 구했다.

경호뿐 아니라 비상시엔 전력이 될 수 있는 인원이 필요하다.

나는 그녀들을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대충 이런 말을 했다.

정확한 얘기를 하자면 너무 판타지라 믿기 힘들 테니까.

말을 마치고 생각에 잠긴 소담에게 넌지시 말을 꺼낸다.

“몸은 좀 어떠세요?”

“음? 어? 아!”

“효과가 있죠?”

“이, 이건 뭐죠? 마약이라도 되는 건가요? 갑자기 이런!”

소담이 휠체어에서 일어나 몇 걸음 걷는다.

“미, 믿을 수 없는 일이네요.”

“절 믿어 보시죠.”

“무, 무슨.”

소담에게 다가가 팔목을 잡아 날 보게 돌렸다.

-츕, 츄릅.

역시 마기 중독의 끝은 섹스지.

물론, 여기서 할 생각은 없다.

내 키스에 놀라 굳은 소담.

개의치 않고 키스를 이어가니 점점 몸이 풀린다.

-츄르릅, 파하.

“무, 뭐하시는.”

“신뢰의 도장이라고 할까요?”

얼굴이 붉어진 소담.

확실히 아까의 병약한 느낌이 조금 사라지니 꽤 미인으로 보였다.

지금이 딱 보기 좋은 병약 미소녀 느낌이네.

“당신의 건강을 담보로 절 전적으로 믿어 보는 거 어때요?”

“마, 말도 안 되는.”

“이미 말도 안 되는 일은 겪어 보셨으니까요.”

소담의 말을 끊고 눈을 마주친 후 말했다.

말을 끝내고 지그시 바라보니 자연스럽게 눈을 감는 소담.

음, 이건 생각한 반응이 아닌데.

그래도 좋다.

“긍정으로 알죠.”

-츕, 츄릅.

이번엔 소담도 내게 적극적인 키스를 해왔다.

상당히 어설픈 움직임.

“이렇게 첫 키스를 할 줄은 몰랐네요.”

“처음이었다니 영광이네요.”

하긴, 지금까지 쭉 몸이 안 좋았을 그녀니 남자를 만났을 리가 없지.

“후우, 아프지 않은 건 이런 느낌이군요.”

“제일 해보고 싶은 건 뭐였어요?”

“걷는 거요.”

“방금 걸으셨는데 소감은?”

말없이 소담이 몇 발자국 더 걸었다.

“별거 아니네.”

“하하하. 그렇죠. 그 별거 아닌 일이 그렇게 힘들었던 거예요.”

소담이 날 보며 씽긋 웃었다.

“하나 더 해보고 싶은 게 생겼어요.”

“뭔가요?”

소담이 내게 다가와 안겼다.

“후훗, 이 정도 했으면 아시겠죠?”

“으음, 모르겠는걸요?”

“피이, 하여간 남자들은 이런 말 듣는 걸 엄청 좋아하죠?”

“어떤 말인데요?”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한다.

“섹스요. 섹스.”

“와, 진짜 말씀하실 줄은 몰랐는데요?”

“작곡가님도 30년간 강제로 처녀로 살아봐요. 얼마나 궁금할지.”

하긴, 몸이 약해서 함부로 자위도 못 했겠지?

엄청 궁금하긴 하겠다.

당연히 모쏠 아다가 아다폭격기 보다 훨씬 해보고 싶겠지. 욕망도 더 음침할 테고.

이거 소담과 잠자리가 조금 기대되기 시작했다.

“제가 천국을 보여드리죠.”

“푸훗, 하여간 남자들의 자신감이란.”

그간 많은 남자한테 실망했겠지.

고쳐준다고 와서 다들 패배해 돌아갔을 테니까.

“전 좀 다를 걸요?”

“믿어 보죠. 몸도 고쳐주셨는데, 뭘 못 믿겠어요.”

소담의 마음이 완전히 내게 돌아선 거 같다.

이젠 그녀의 회사원들만 마기로 중독시키면 되겠네.

“오늘은 제가 일이 있어서.”

“빠른 시일 내로 연락 드릴게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문을 열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장이 보였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아! 네.”

내 말뜻을 모르고 그냥 답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앞으로 레이디 가디언엔 어떤 변화가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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