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
아빠에게 받은 자료에는 마약 공급처를 조사한 내용이 요약돼 있었다.
희성에게 마약을 전달하는 건 매니저였고.
그 매니저도 누군가에게 마약을 전달받는 모양.
매니저에게 마약을 전달했던 사람은 특정 위치에서 마약을 가져왔고.
마약을 어디 숨겨두고 위치를 문자로 보내 가져가게 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연락처를 해킹해 위치 조사를 하니 사무실 하나가 나왔고.
사무실 직원이 문자를 보내는 모양이었다.
그 직원에 연락처를 해킹해 장소를 보내는 사람을 알아냈고, 그 사람을 찾으니 하나의 단체가 나왔다.
예술인 후원 단체라는 화이트 더스트.
하얀 먼지라니 마약 만드는 단체에 딱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 단체를 지금 조사 중이라고 한다.
아직 내가 찾아갈 수 있는 단계는 아닌 거 같다.
꽤 위험해 보이기도 하고.
점조직화돼 철저하게 움직이는 단체인 만큼.
내부에 어떤 장치가 있을지 모르니까.
일단 확실하게 제조자가 밝혀지기 전까진 기다려 봐야겠다.
혹시라도 도망가면 안 되니까.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마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여자였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그게 제일 확실할 거 같다.
내 안에 있는 마기가 마기 사용자를 중독시킬 수 있을까?
-이미 중독된 것과 다름없다.
그래? 마기를 사용하지만 나와 같은 관계가 아니라 중독된 상태라는 건가?
흐음,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일단 만나보면 알겠지.
아빠에게 문자로 마약을 만드는 사람을 중점적으로 알아봐 달라고 했다.
“후우, 이건 여기까지 하고.”
조금 자고 내일 스케쥴 가야지.
요즘 생각이 많아져 오늘 밤은 혼자 자려고 했는데.
막상 혼자 있으니 딱히 생각할 게 없다.
조금 심심하기도 하고.
그냥 자자.
눈을 감고 잠을 청하니 금방 잠들 수 있었다.
“끄으응!”
커다란 침대에서 혼자 일어나니까 기분이 좀 이상하다.
“으음, 시간이 꽤 있네?”
우선 씻었다.
오늘 오전은 녹음 스케쥴이라 아인을 부르지 않았다.
드림 스테이지 우승자와 미리의 녹음이 있는 날.
촬영할 테니 혼자서 작업실을 잘 정리한다.
이 방까진 들어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피디니임.”
“미리 왔어?”
미리가 엄청 일찍 도착했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헤헤. 같이 숍으로 가려구요오.”
“그래? 잘 했네.”
택시 타고 갈 생각이었는데.
미리가 와 주면 나야 좋지.
“그럼 슬슬 다녀오자.”
“네에에.”
녹음 스케쥴이지만, 방송에 나오는 만큼 메이크업을 빼먹을 순 없다.
늘 하던 곳이 아니라 작업실 근처 숍을 다녀왔다.
으음, 조금 다른 느낌의 화장인데 괜찮은 거 같네.
“헤헤. 저 어때요오?”
“당연히 이쁘지.”
“헤에.”
미리도 평소라 좀 다른 느낌이네.
방송 세팅까진 아니고 약간 편한 모습인 거 같은데.
그렇다고 아예 안 꾸민 모습은 아니다.
이게 꾸안꾸의 정석이지.
“아유, 이뻐.”
“헤헤.”
차에 타기 전에 미리에게 칭찬하며 몸을 토닥였다.
기쁜 표정으로 차에 오르는 미리.
미리의 매니저가 우릴 살짝 의심의 눈초리로 봤지만 친해서 그런다고 생각할 정도의 스킨쉽이니 문제없겠지.
“피디님 작업실로 가요오.”
“네!”
매니저가 답하고 운전을 시작했다.
나와 미리는 뒷좌석에서 시답잖은 사담을 나눴고, 금방 작업실에 도착했다.
“촬영팀 미리 와 있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미리랑 조금 꽁냥대려고 했는데 아쉽네.
촬영팀이 꽤 일찍 왔구나.
“안녕하세요!”
작업실에 들어서며 인사를 했다.
오늘 김 피디님은 오지 않으셔서 아는 스태프가 별로 없다.
촬영준비가 끝나 갈 때쯤 한 여성이 들어온다.
“와!”
미리의 감탄.
확실히 꽤 예쁘다.
옷도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어서 청순해 보인다.
“보민 씨. 이렇게 입으니까 몰라 보겠어요오.”
“호호, 감사합니다.”
무대에서와는 180도 다른 모습.
무대는 강렬한 록 여전사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청순한 여신이 따로 없다.
대학교 교정을 거닐면 딱 그 학교 여신 같은 느낌일 거 같은 복장.
스태프들도 꽤 놀라는 거 같네.
이 모습이 카메라에 잘 담겼겠지?
음, 나만 너무 안 놀랐나?
“안녕하세요.”
“네. 익숙한 모습으로 오셨네요.”
“호호, 이 모습이 더 익숙해요?”
“이 모습으로 더 오래 봤죠, 아마?”
보민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네요. 전자마트에서 제일 오래 봤으니까.”
“맞다아! 피디님 두 분은 어떤 인연이 있었던 거예요?”
“하하, 별거 아니야.”
미리 준비한 대본이다.
나와 우승자. 도보민이 만났던 이야기를 방송에 맞춰 조금 각색해 말했다.
공기청정기를 사러 갔다가 만났는데.
팬이라며 다가왔다.
자신을 기억 못 하냐며 뭐라고 했는데.
나중에 무대 보고 알았다.
“이렇게 다른데 어떻게 알아보겠어! 하하.”
“흐음, 옷이랑 화장만 조금 바꾼 건데요?”
“조금이 아닌데요?”
“호호. 눈썰미가 없으시네.”
“아니! 제가 없는 건가요? 미리야 어떻게 생각해?”
그렇게 썰을 풀며 촬영 분량을 만들고 녹음에 들어갔다.
“보민씨 먼저 갈게요.”
“네!”
곡을 조금 만져서 보민과 미리의 느낌이 확실히 대비 되도록 편곡했다.
보민은 좀 더 강렬한 악기 사운드를 넣었고.
미리는 부드러운 선율을 강조했다.
“흠, 좋은데 조금 더 소리가 지르고 나왔으면 좋겠어요.”
“아! 다시 해 볼게요.”
보민의 프로듀싱은 꽤 쉽게 진행됐다.
내가 추상적으로 말해도 잘 알아듣고 원하는 목소리를 낸다.
“자! 나오셔도 됩니다. 잘 하셨어요.”
“하아, 감사합니다. 녹음은 매번 참 힘드네요.”
“하하, 조금만 기다려요. 미리씨 들어가요.”
“네에에!”
미리도 물을 마시며 목을 가다듬고 부스로 들어갔다.
미리의 녹음은 더 쉽고 빠르게 끝났다.
미리가 내 취향을 잘 아는 건지 바로 부르는데 흠잡을 곳이 없더라.
음정 박자도 원하는 대로 완벽했다.
“와! 노래하는 기계가 따로 없네.”
“헤헤. 기계 아니에요오.”
미리를 칭찬하니 보민이 살짝 뚱한 표정을 지었다.
“하하, 보민씨도 잘 했어요. 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어요.”
“호호, 그런 게 아니라 조금 아쉬워서요.”
“네? 뭐가 아쉬워요?”
“으음, 국내 최고 작곡가랑 작업이 끝난 게요?”
조금 어색한 공기가 흐른다.
아! 살짝 민망하네.
“하하, 그렇게 말해주시니 감사해요. 다음에 또 같이하면 되죠.”
“호호, 저도 회사에 받아 주실 건가요?”
“아? 보민씨 회사 없어요?”
당연히 있을 줄 알았는데.
“어? 모르셨어요? 저 신인인데? 계약한 회사 없어요.”
“우와! 이런 보석이 굴러 들어올 줄은 몰랐네요. 오늘 계약하죠.”
“저, 정말요?”
이런 원석을 놓칠 순 없지.
회사에 전화해 계약서와 담당자를 호출했다.
심 이사님이 오신다고 한다. 이제 짬이 좀 되시는 만큼 부하 직원 보내도 되는데.
내 계약은 자신이 계속 챙기고 싶단다.
확실히 좋은 사람이다.
“으음, 그럼 촬영은 여기서 끊을까요? 계약하는 건 방송할 수 없으니까요.”
“아! 네. 알겠습니다.”
촬영팀이 철수를 준비한다.
“보민씨는 계약하고 같이 밥이나 먹죠?”
“호호, 좋아요. 이제 사장님인가요?”
“저, 부사장인데요?”
“에이, 그거나 그거나죠.”
보민은 텐션이 참 좋네.
뭔가 록을 해서 그런지 씩씩하고 강한 이미지가 있다.
으음, 지금은 청순한 화장에 하늘하늘한 복장인데도 확실히 강인한 느낌이 조금 있네.
그 간극 때문에 사람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거 같다.
촬영팀의 철수를 기다리며 셋이 소파에 앉아 떠들었다.
음, 근데 아까부터 저 사람은 왜 자꾸 방으로 들락날락하는 거지?
살짝 느낌이 이상한 거 같다.
“저기요.”
“네?”
그 사람에게 다가가 불렀다.
“이 방에서도 뭘 촬영했나요?”
“아, 아뇨! 장비를 둘 데가 마땅치 않아서 잠깐 놔뒀었어요. 아, 안 되나요?”
“아, 괜찮습니다.”
그랬구나. 뭐, 내가 좀 예민했다.
으음, 장비도 많은 거 같지 않은데.
뭐, 신입이라 어리바리 까면서 일하는 거 같다.
그럴 수 있지 뭐.
촬영팀이 철수하는 시간과 비슷한 시간에 심 이사님이 도착했다.
“하하, 안녕하셨어요?”
“네. 부사장님. 몸은 괜찮으시죠?”
“물론이죠. 계약부터 할까요?”
“아! 네. 도보민씨 방송 잘 봤습니다.”
심 이사님이 정중하게 인사하고 계약을 이끌어 갔다.
“와! 신인한테도 이 정도로 해 주는 거예요?”
“부 사장님 안목은 믿을 수 있으니까요. 성공이 보장된 사람인데 이 정도는 드려야죠.”
“와! 역시 이 회사를 선택하길 잘 한 거 같네요.”
하긴 기획사가 없었다면 방송 끝나고 엄청 연락 왔겠네.
“자! 여기 계약서입니다. 저희 식구가 되신 걸 환영합니다.”
“호호, 감사해요.”
두 사람이 계약을 진행하는 동안 미리와 뒤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계약이 끝나고 심 이사님을 배웅했다.
“식사하고 가시지.”
“허허, 저도 일이 많습니다.”
“쉬엄쉬엄하셔요.”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다시 올라오니 미리와 보민이 그새 친해졌는지 재잘재잘 떠들고 있다.
“두 사람 언제 그렇게 친해졌대?”
“호호, 미리 언니 너무 귀여워요.”
“헤헤. 귀여우면 안 되는데에. 무서운 선배 할 건데에.”
“꺄아!”
아까 보니까 보민이 23살이던데. 미리가 3살 더 많지 않나?
아무리 봐도 미리가 동생 같은 느낌이다.
미리도 일찍이 연예인 생활하면서 사화의 단맛 쓴맛 다 본 사람인데.
저렇게 밝고 순수함을 유지했다는 사실이 대단한 거 같다.
수필 대표님이 대단하긴 대단했던 거 같다.
으음, 수필 대표님은 언제 나오시려나.
자수 한데다가 뉘우치고 있어서 형이 크게 나오진 않았다.
징역 3년이었던가?
나는 집유가 나올 줄 알았는데, 마약 범죄라 쉽게 집행 유예를 주지 않은 거 같다.
뭐, 몇 달 지나면 보석으로 풀려나겠지만.
일단은 기다리는 수밖에.
수필 대표님이 빨리 나와야 하는데.
어쨌든 내 편인 사람이 한 명 더 있는 게 좋으니까.
“밥은 뭐 먹을까?”
“으음, 고기 좋아하세요?”
“고기 좋지이이.”
미리는 보민과 친해져서 그런지 보민에게 쓰는 말투도 느릿한 늘어지는 말투가 됐다.
“그럼 고기 먹자. 소? 돼지? 닭?”
“오늘은 돼지가 당기네요. 돼지 어때요?”
“돼지 좋지이. 삼쏘오오.”
“소주는 안 돼.”
“히이잉.”
미리가 소주를 말해서 내가 말렸다.
나는 스케쥴이 더 있기 때문.
오전부터 이뤄진 녹음과 녹화가 끝나고 오후엔 레돈을 보러 간다.
레돈은 오늘 저녁 드디어 복귀 쇼케이스를 갖는다.
녹음이 워낙 빨리 끝난 탓에 그 전까지 시간이 꽤 남아서 셋이서 놀 시간은 충분하지만,
술은 그래도 좀 그렇지.
“나 빼고 둘이 마시던가.”
“흐으음, 피디님 안 마시면 됐어요오.”
“호호, 부 사장님 앞에서 어떻게 그래요.”
“괜찮은데.”
두 여인을 데리고 식당으로 가 삼겹살에 콜라를 마셨다.
미리는 그냥 잘 먹는 거 같은데, 보민은 조금 아쉬운 눈치.
“보민씨 아쉬우면 한잔해도 된다니까요.”
“아아, 고기를 보니까 또....”
“헤헤. 이모오 여기 소주 한 병이요오.”
그런 보민의 모습을 본 미리가 소주를 시켰다.
하긴, 보민이 아무리 당찬 성격이라도 지금은 내 눈치를 안 볼 수 없겠지.
“잘했어.”
“헤헤.”
“감사합니다.”
술이 나오고 보민과 미리가 주거니 받거니 잘 마신다.
“어? 벌써 취하면 안 되는데에.”
“아으, 전 괜차나여어.”
보민은 술이 약하구나. 취해서 벌써 혀가 꼬인다.
아직 둘이서 한 병 비웠는데, 벌써 취할 거면 술을 왜 시키자고 한 거야?
으음, 긴장해서 더 취한 건가?
“아으, 좋아요.”
“괜찮아아?”
“호호. 멀정해여어.”
하나도 안 멀쩡해 보인다.
“보민씨 취했네. 그만 들어가야겠다.”
“저, 겐타나여어.”
“안 괜찮아요. 가죠.”
“제가 부축 할게요오.”
미리가 보민을 부축해 작업실로 왔다.
“아으, 머리 아파.”
으으, 이런 진상.
금방 취하는 만큼 금방 깨는 건지 보민이 두통을 호소하며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좀 괜찮아요?”
“아으, 죄송해요. 제가 빨리 마시면 확 취하는 편이라.”
“으음, 엄청 빨리 깨네요?”
“호호, 빨리 취하고 빨리 깨는 편이에요. 숙취도 별로 없고.”
으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네.
“조금 쉴래요?”
침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는 갈래요오.”
“가려고?”
“네에. 피곤해요오.”
게으른 미리는 술도 한잔 들어가니 많이 졸린 가보다.
여기서 자고 가도 되지만, 보민이 이상하게 볼 수도 있어서 그런지 간다고 하는 미리.
으음, 이참에 보민을 호로록해 버릴까?
“그래 들어가.”
“헤헤. 피디니임.”
보민이 방으로 들어갔고, 미리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살짝 내게 안겼다.
“다음엔 제 차례에요오.”
“양보하는 거야?”
“헤헤. 처음은 소중한 거니까요오.”
보민이가 처년가?
돌아가는 미리를 배웅하고 다시 작업실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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