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
“그래. 조금 일찍 왔어.”
“하하. 감사하네요. 일단 녹음 먼저 할까요?”
“그럴까?”
컴퓨터를 켜고 세팅한다.
그동안 아인이 마실 걸 승철형님에게 드렸다.
작업실이 꽤 넓은 편이지만, 많은 사람이 오면 조금 좁게 느껴질 수도 있어 아래 연습실에 의자와 테이블을 놓고 대기실로 사용한다.
“흐음, 촬영팀은 언제 온대?”
“곧 올 거 같아요.”
“그래?”
개인 녹음은 어차피 촬영에 안 들어가니까 미리 해도 상관없다.
차례로 오는 가수들과 녹음하고 마지막에 다 같이 모여서 촬영할 예정.
촬영은 작업실에서 하진 않고 위에 스튜디오를 조금 개조했다.
미안하지만 민하씨와 시연은 오늘만 다른 곳에서 묵기로 했다.
“좋네요. 형님 나오셔도 돼요.”
“금방이네.”
“하하. 보컬이 좋으니 녹음이 금방 끝나죠.”
승철형님 다음으로 한 명씩 가수가 도착했다.
대부분 초면이 많아서 어색하게 인사하고 녹음에 들어간다.
“지금 좋은데, 힘을 조금만 빼 볼까요?”
“네.”
“와! 좋아요. 나오셔도 돼요.”
“감사합니다.”
부스에서 나오는 가수와 눈인사를 나누고 다음 가수를 본다.
“준비 끝나셨어요?”
“네. 하하.”
어색하게 웃는 그.
부스에서 나온 가수가 아인의 안내에 따라 아래로 내려간다.
짬 순으로 가수들을 불러서 짬이 안 되는 가수는 좀 오래 기다려야 하는데,
다행히도 승철형님이 나름 먼저 오셔서 군기반장 역할 비슷한 걸 해 주셨다.
뭐, 아래 상황을 들어보니 재밌게 놀고 있는 거 같다.
내가 보드게임을 엄청 놔뒀거든.
음료랑 과자, 보드게임.
뭐, 이것만 있으면 몇 시간은 버틸 수 있겠지?
“좋습니다. 나오셔도 돼요.”
“하하, 수고 많으십니다.”
“에이, 수고는요. 제 앨범인데요. 아래 내려가서 잠시만 계셔 주시겠어요?”
“네. 이따 봬요.”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 녹음이 거의 끝나간다.
“피디니이임.”
“아! 왔어?”
미리가 컴퓨터를 만지는 날 뒤에서 확 안았다.
“사람들 많은데 누가 보면 어떡해?”
“그럼 확 결혼 발표 해야죠오.”
“결혼?”
“헤헤.”
귀엽게 웃는 미리의 머리를 쓰다듬고 부스로 들여 보냈다.
미리는 내가 편의를 좀 봐줘서 늦게 불렀다.
이 게으른 생명체는 괜히 먼저 와서 기다리게 하면, 대기자 전체의 텐션을 쭉쭉 깎을 거 같거든.
“와! 잘했다.”
“정말요?”
“응. 나와도 돼.”
뭐, 단체 곡은 다들 개인 파트가 많지 않아 금방 끝냈다.
화음 쌓는 파트도 따로 녹음해서 내가 붙일 거기 때문에 크게 녹음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다.
“내려갈까?”
“네에에.”
미리와 도란도란 얘기하며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점심 드셔야죠?”
“네.”
“아, 슬슬 배가 고플 참이긴 했는데 잘됐네요.”
선희 선생님만 빼고 모든 가수가 모였다.
어디 식당을 예약하기보단 그냥 배달음식을 먹는 게 여러모로 편할 거 같아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못 먹는 음식 있으신 분은 따로 말씀해 주시고. 메뉴는 중국집에서 시킬 예정입니다. 왼쪽부터 차례로 드실 거 말해주세요.”
“짜장면이요.”
“전 짬뽕.”
“볶음밥이요.”
메뉴를 받아 적는 아인.
“전 짜장 곱빼기.”
“잡채밥 먹어도 괜찮죠?”
“물론이죠.”
메뉴를 다 받아 적고 주문을 넣는다.
이 아저씨들 아주 게임에 푹 빠졌네.
메뉴만 말하고 빨리 진행하라는 가수 아재들.
여가수들은 뒤에서 구경하면서 누굴 응원하고 있고,
남자들이 게임을 진행 중이다.
내가 끼면 양학이니까 참아야지.
뒤에서 구경하며 미리와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요즘 레돈이 엄청 열심이던데요오?”
“그래야지. 내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니까.”
“호호, 레돈 애들 성실하죠오?”
미리도 SP 소속이고 레돈이 후배라고 좀 챙기는 거 같다.
“촬영팀 도착했어요.”
직원의 안내에 따라 촬영팀을 맞이했다.
3층 스튜디오를 알려주고 세팅을 기다린다.
어차피 연습실에서 밥 먹는 모습부터 촬영이 될 거니까.
촬영팀이 연습실로 들어오고 딱히 세팅은 하지 않는다.
뭔가, 친구들이 놀면서 찍는 느낌으로 카메라맨이 카메라만 들고 찍을 거거든.
“배달 왔습니다.”
“아! 네.”
경비 아저씨와 함께 배달된 음식을 가지고 내려온다.
미리가 알아서 눈치껏 도와주러 왔고, 승철형님도 나오셨다.
“형님은 그냥 계셔도 되는데요. 하하.”
“에이, 뭐 힘든 일이라고.”
“자! 각자 주문한 음식 받아 가세요.”
화기애애한 식사 시간.
“드시면서 들어 주세요. 촬영 순서랑 컨셉 알려드릴게요.”
아인이 종이를 들고 읽는다.
미안한 일이지만 아인은 지금 밥을 먹을 수가 없다.
위에 촬영팀이랑 여기랑 다 아인이가 통솔하는 거라서.
아까 충전을 조금 해주긴 했지만, 저녁에 확실히 상을 줘야겠다.
으음, 요즘은 상이 조금 부족할 수도 있겠네.
질질 짜게 만들어 줘야 하는데, 그건 힘드니까.
“조금 이따가 선희 선생님 오시면, 스튜디오 촬영을 시작할 건데요.”
아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시킨 자장면을 비빈다.
“선희 선생님은 또 어떻게 섭외했어?”
“하하, 희성 선배가 연결해 줬어요.”
“박희성 작곡가?”
“네. 선배님이 감사하게도 많이 도와주셨어요.”
승철형님의 질문에 답하니 표정이 살짝 안 좋아지신다.
희성 선배랑 사이가 안 좋나?
둘이 뭐 한 적 없는 거 같은데.
“흐음, 그렇구나.”
“사이 안 좋으세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승철형님이 생각에 잠기셨다.
“그 양반 소문이 조금 안 좋아.”
“그래요?”
뭐, 워낙 괴짜 같은 사람이라 소문은 안 좋을 수 있지.
“성격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
“그럼요?”
내게 조용히 속삭이는 승철형님.
말하려는 데 다른 가수가 다가와서 말을 멈췄다.
“호호, 선배님 잘 지내셨죠?”
“하하. 그럼, 넌 어때? 요즘 잘 나간다?”
“에이. 한 철 장사죠.”
승철형님도 데뷔가 30년이 넘었으니 여기서 짬이 꽤 높은 편이라.
계속 어린 가수들이 인사를 온다.
물론, 어린 친구들이라고 해도 나보다 10살은 많은 사람들이지만.
자꾸 말이 끊기네.
어떤 소문인지 궁금한데,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아인의 설명이 끝나고 촬영이 시작됐다.
물론, 아인이 설명할 때부터 찍고 있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카메라맨이 돌아다니며 우리가 밥 먹는 모습을 찍는다.
먹는데 카메라를 들이밀면 조금 부담스럽겠지만.
어쩔 수 없지.
사전에 다 공지한 내용이라 불만은 없겠지만, 확실히 카메라맨이 움직이니 먹는 모습들이 깔끔해졌다.
연습실에 뭐 많이 흘리면 나중에 치우기 힘든데 잘 됐지 뭐.
다 같이 식사와 촬영을 마치고 빠르게 뒷정리를 한다.
물론, 뒷정리도 촬영하기 때문에 뺑끼치는 사람 없이 다 같이 빠르게 해치웠다.
“그럼 조금 쉬었다가 2층으로 올라가실게요.”
아인이 촬영팀으로부터 무언가 언질을 받고 공지한다.
흐음, 세팅이 끝났나 보네.
미리 올라가서 함 봐야지.
혼자서 2층으로 가는데 미리가 따라 왔다.
“쉬지 왜 따라와?”
“헤헤. 피디님이랑 있는 게 쉬는 거예요오오.”
“귀엽긴.”
미리의 엉덩이를 살짝 토닥이고 위로 올라왔다.
“흐음, 이 정도면 잘 나오겠다.”
“와아. 뭐가 많이 생겼어요.”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를 싹 비우고 이런저런 소품을 넣어 뒀다.
“성민아.”
“응?”
아인이 뛰어와 날 부른다.
“선희 선생님 오셨어. 마중 가자.”
“그래. 미리도 갈래?”
“그래요오.”
미리와 아인을 데리고 아래로 내려간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호호. 그래요. 오랜만이네요.”
“네. 하하. 조금 쉬었다 시작하실까요?”
“바로 해도 괜찮답니다. 가시죠.”
선희 선생님과 작업실로 들어왔다.
“호오, 꽤 깔끔하구려.”
“하하, 일하는 장소니까요.”
“그렇죠. 일은 깔끔한 데서 하는 게 좋죠.”
선희 선생님이 작업실을 둘러 보신다.
“여기서 잠도 자나 봐요?”
“네? 아! 네. 작업하다가 조금 쉬는 공간이에요.”
“좋구려. 허허.”
선생님이 작업실을 쭉 둘러 보시고 아인이 주는 미지근한 물을 들고 부스로 들어가셨다.
“정비서는 촬영하는 곳으로 가 있어.”
“응. 무슨 일 있으면 부르고.”
“무슨 일이 있겠어.”
아인이 웃으며 작업실 밖으로 나갔다.
아인은 사람들 통솔해야지 여기 있으면 안 되지.
미리는 선희 선생님을 보고 인사한 후로 쭈구리가 돼서 조용히 있다.
“왜? 선생님이 무서워?”
부스엔 안 들리니까 조용히 물었다.
“대선배님이니까요오. 조금 조심스럽죠오?”
“그렇겠네. 너도 위로 올라가 있어.”
“네. 이따 봐요오.”
미리가 위로 올라갔고, 준비를 마친 선희 선생님과 녹음을 시작한다.
“흐음, 다시 한번 가죠.”
“네.”
내가 뭘 말하기 전에 알아서 프로듀싱을 하는 선생님.
역시, 그간의 연륜은 무시 못 하지.
데뷔 50년이 넘은 대선배님인데 내가 뭐 프로듀싱 할 게 있겠어?
“흐음, 지금 어땠나요?”
“좋았습니다. 선생님.”
“호호, 너무 어려워 말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가감 없이 말해요.”
“네. 알겠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없어서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녹음이 끝났다.
“나오셔도 됩니다. 선생님.”
“허허, 이제 촬영하는 건가요?”
“네. 위층 스튜디오에서 촬영할 거예요. 제가 모실게요.”
“그래요. 가죠.”
선희 선생님과 함께 천천히 이동한다.
이 층에 들어서니 모든 가수가 일어나 인사한다.
와우, 조금 쩐다.
이 장면이 고스란히 나가면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겠네. 무슨 조폭들 같잖아.
뭐, 영상은 알아서 잘 만들어 주시겠지.
“다들, 반가워요. 너무 예의 차릴 필요 없어요. 앉아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인사도 짬 순으로 돌아가며, 선희 선생님과 간단히 대화를 나눈다.
나와 촬영팀은 어떤 의식 같은 인사 릴레이가 끝나길 기다렸다 촬영을 시작한다.
선희 선생님을 필두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
완성된 노래는 아니지만, 내가 녹음한 가이드 버전을 틀어 두고 가수들이 립싱크한다.
“자! 촬영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어지러운 촬영이 끝났다.
아직 노래가 완성도 되지 않아서 자기 순서를 모르는 사람도 있었고,
가사를 외우지 못해 립싱크를 못 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여곡절을 다 넘기고 촬영을 끝내니 우르르 다들 함께 흩어진다.
“다 가셨어?”
“응. 고생했어.”
선희 선생님을 배웅하고 조금 이따 들어오니 아인이 상황을 말해준다.
선희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대부분 가수가 우르르 나갔고, 몇몇 가수는 뒤풀이를 하자며 연락처를 남겼다고 한다.
뒤풀이도 좋지만, 난 따로 일행이 있으니 갈 수 없다.
작업실 안으로 들어서니 미리와 승철형님만 남아 있었다.
“형님.”
“응, 그래. 고생했어.”
“하하. 형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녁에 뭐 있으세요?”
요번 녹음에 꽤 많은 도움을 주신 승철형님이라 저녁이라도 대접하려고 한다.
“흐음, 난 약속 있어.”
“그래요? 저녁이라도 대접하려고 했는데.”
“하하, 괜찮아. 다음에 우리 집에나 들러. 좋은 와인 한 병 있으니까.”
“네. 그렇게 할게요.”
승철 형님은 그렇게 인사하고 가셨다.
남아 계셔서 저녁에 뭐라도 하자고 하실 줄 알았는데.
“후우, 이제 좀 쉬자.”
“헤헤.”
“아으으.”
미리가 웃으며 내가 다가왔고, 아인은 신음하며 소파에 앉는다.
“정비서. 오늘 정말 고생했어. 내일은 쉴래?”
“아니야. 그렇게 안 힘들었어.”
아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실, 쉬게 해줄 생각 없었지롱.
내일도 해야 하는 일이 있으니까.
“내일은 아침에 레돈 보러 가야겠다.”
“그래.”
미리 비서님께 문자를 보내고 소파에 몸을 묻는다.
“헤헤. 피디니임.”
“그래그래.”
막상 녹음을 다 끝내니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든다.
같이 심사하던 효정 누님이나, 내 거친 섹스를 온몸으로 받아주는 현정 누님을 부르고 싶었는데 둘 다 스케쥴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 외에도 섭외하고 싶었던 가수가 몇 더 있지만.
노래 길이를 무한정 늘릴 수도 없고.
다들 난다 긴다 하는 가수들인데 분량을 너무 조금 줄 수도 없어서.
결국, 고심 끝에 포기한 가수가 꽤 많다.
흐음, 재밌었는데, 다음에 단체 곡을 또 만들까?
뭐, 그건 이번 곡 반응 보고 결정하자.
단체 곡은 자주 만들기엔 조금 부담되니까.
으음, 작업실에서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갑자기 뭐지? 미리와 아인을 소파에 두고 쪽방으로 간다.
“흐음.”
“왜요오?”
쪼르르 따라온 미리.
“아냐. 그냥 좀 이상해서.”
오늘 사람이 많이 왔다 가서 그렇겠지?
침대로 온 김에 조금 놀아볼까?
미리를 껴안고 그대로 침대로 쓰러졌다.
“꺄아.”
“하하, 오늘 어땠어?”
“하으응, 재밌었어요오.”
미리의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침대에서 뒹구니 아인도 들어왔다.
“나도 누울래.”
“그래. 일루와.”
아인까지 끼고 누우니 양손에 꽃이라 피곤이 조금 가시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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