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
“흐음, 잘 봤습니다. 역시 전직 걸그룹 리더다운 훌륭한 무대였어요. 10점.”
“춤이 많이 늘었네요? 전 9점.”
“노래야 원래도 잘 하시던 분이었죠? 10점입니다.”
세 번째 10등급 멤버가 나왔다.
오늘 데뷔조 윤곽이 대충 보일 수도 있겠다.
웃으며 인사하고 들어가는 예진.
나랑 동갑인데 쟤는 어쩜 저렇게 풋풋한 느낌을 유지한 거지? 섹시하면서도 풋풋하니까 진짜 매력적이다.
정말 한 번은 따먹고 싶다. 어떻게 잘 꼬셔볼까?
아서라. 지금은 위험하니까.
예전에 내가 아니라 꼬셔질 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성희롱으로 신고당하면 나만 손해지.
내가 권력을 이용해 성 상납받았다고 우기면 따로 방법이 없으니까.
“흐음, 그 아이네요.”
“네? 아!”
선애의 말에 무대를 보니 예진의 다음으로 나정이 나왔다.
전 JG연습생.
친구들을 오디션장에 데려오지만 않았다면 지금쯤 내 아래서 데뷔 준비하지 않았을까?
얼굴은 정말 1티어 연습생인데.
아쉬웠던 아이를 이렇게 다시 만났다.
이제는 주제 파악을 좀 했으려나?
아이돌은 회사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시키는 것만 잘하는 애들이 최고의 아이돌이다.
물론, 회사 말을 안 들어도 되는 애들이 있다.
실력이 엄청나거나, 부모님이 권력이나 금력을 가진 아이.
또는 외모가 엄청난 아이라면 어느 정도 반항도 괜찮다.
하지만, 나정은 아무것도 없다.
외모가 꽤 이쁘긴 하지만, 절대로 잡아야 할 외모까진 아니다.
없으면 조금 아쉬울 정도?
그런 애가 오디션장에 친구를 데려오는 선 넘는 짓을 한 게 떨어진 주된 원인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자기가 뭐라고 친구한테 오디션 기회를 줘?
뭐, 그때의 앙금이 남아있는 건 아니지만, 딱히 뽑고 싶은 마음은 안 든다.
오늘 보여줄 모습이 그때보다 엄청 뛰어나다면 모를까.
뭐 그래도, 떨어지고 세상 물정 모르던 이 아이도 정신을 좀 차리지 않았을까?
이제는 이런 오디션 아니면 다른 쪽 일을 찾아봐야 할 테니까.
성 접대하던 기획사 출신 연습생을 어느 회사가 아이돌로 키우고 싶겠어.
방송에서 인기 얻어서 데뷔하는 거 말곤 방법이 없겠지.
나정을 보니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얼굴에서 비장함이 느껴진다.
본인도 그 사실을 아는 거겠지?
“자, 준비한 무대 보여주세요.”
“네!”
잔뜩 힘이 들어간 목소리.
흐음, 불안한데.
보통 무대에서 너무 힘이 들어가면 실수하는데.
대부분 노래나 춤은 힘 빼고 하는 게 더 좋다.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간 채로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면 좋은 무대가 나오기 힘들다.
그래서 긴장하지 않는 게 중요한 거도 있다.
“으음.”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너무 힘이 들어갔네요. 잘 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조금 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겠어요. 오늘 무대는 뭐 볼 게 없었어요. 1점.”
“춤춘 거 맞죠? 너무 삐걱대서 춤이 맞나 싶네요. 1점.”
“음정 박자가 엄청 나간 거 본인도 알죠? 노래가 아니라 소음이에요. 1점.”
엄청난 혹평.
사실 1점 줄 무대는 아니었다.
단지 내가 무대 시작 전에 두 여인에게 미리 신호를 줬다.
5점 이하 점수가 나올 거 같으면 차라리 1점을 주라고.
나정이야 이해하지 못 해겠지만, 나름대로 그녀를 도와주려는 행동이다.
울음을 터트리는 나정.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니까. 너무 상심하지 말고. 다음에 다시 잘 했으면 좋겠네요.”
“끄흐응, 가, 감사, 하, 합니다. 흑.”
인사하고 내려간다.
서럽겠지. 내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러나 싶고, 예전 일을 또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정에게 1점을 준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에게 스토리를 만들어 주기 위함.
시련을 딛고 정신 차려서 회사 말 잘 들으라는 의미도 있지만,
어느 정도 성 접대 논란을 잠재우고 성공적인 데뷔를 하려면 다른 걸 덮을만한 스토리가 필요했다.
잘 먹히는 스토리 중 하나는 성장물이지.
바닥에 있던 아이가 노력에 운을 더해 성공하는 스토리.
누구나 좋아하는 이야기다.
거기다 주인공이 이쁘기까지 하잖아.
그럼 다들 빠져들겠지.
나정은 앞으로 아슬아슬 줄타기하면 힘들게 버티게 될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그러다 데뷔하면 정말 꿈같겠지.
처음부터 제작진의 푸쉬를 받으며 팬을 모아가는 아이들과 다르게.
동정표로 연명하다 점점 실력을 쌓고 당당히 데뷔하는 모습.
그 정도면 과거는 넘어가고 스타가 될 수 있겠지.
뭐, 정말 떨어진다면 어쩔 수 없고.
우리 회사에서 받아 주던가 하지 뭐.
이제는 그런 바보 같은 짓 안 할 테니까.
다음 참가자가 올라온다.
계속되는 오디션에 점점 지친다.
“후, 이제 얼마 안 남았네요.”
“그러게요.”
50명은 남았지만, 지금까지 250명을 봐서 그런지 얼마 안 남은 느낌이다.
“다음 올라와 주세요.”
“네!”
익숙한 얼굴이네 SP 연습생이구나.
참가한 몇몇 SP 연습생의 무대를 이미 봤었다.
딱히 눈에 띄는 활약은 못 했지만, SP 연습생들은 준수한 실력을 보여줘 7, 8등급에 포진했다.
아마, 연습생 중에선 얘가 마지막인 거 같네.
SP 연습생에게 꽤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기대보다 못한 활약에 살짝 아쉬운 마음이다.
더 잘 할 줄 알았는데.
중간 평가에서 본 모습에서 딱히 발전한 게 보이지도 않고.
오히려 퇴보한 애들이 더 많았다.
아마도, 여기 출연하라고 했던 내 말이 뭔가 선택받은 거처럼 느껴졌나?
나태해진 거지.
내가 나오라고 했으니 당연히 된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큰일인데.
그냥 예쁘고 열심히 하는 거 같아 기회를 준 건데.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실망이 크다.
이번엔 제발 잘 했으면 좋겠다.
오! 이번 연습생은 좀 잘 하는 거 같다.
춤도 깔끔했고, 노래도 꽤 했다.
그래. 내가 원한 게 이런 모습이라고.
기회를 주면 잡기 위해 미친 듯 노력해야지.
얘는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한 지 알 거 같다.
춤도 노래도 내 기대보다 잘했다.
선애씨가 마이크를 잡는다.
“와! 사실, 10점 줄 실력이 아닌데, 엄청난 노력과 연습의 흔적이 보여서 점수를 깎을 수가 없네요. 10점 드릴게요. 지금처럼 열심히 해야 해요? 알았죠?”
“네! 감사합니다!”
환하게 웃는 소녀. 이름이 뭐지? 오아람? 기억해 둬야겠다.
SP 출신답게 꽤 예쁘장하고, 실력도 이 정도면 꽤 잘한다.
기회를 잡기 위해 독기를 가지고 연습한 걸 보면 머리도 좋은 거 같고.
인성이야 SP에서 나왔으면 별 탈 없겠지.
연습생 뒷조사 깔끔하게 하는 곳이니까.
“춤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네요. 음, 열심히 했나 봐요. 저도 선애씨와 같은 의미에서 10점. 다음에도 기대할게요.”
“감사합니다! 저, 정말 열심히 할게요.”
소녀가 살짝 울먹인다.
나는 마이크를 들었다.
“음, 노력은 배신하지 않나요? 사실 배신하기도 하죠? 그렇지만 오늘 아람씨의 노력은 상을 받기 충분했어요. 10점 드립니다.”
“아. 흣, 감사, 끄흐응.”
울음을 터트리는 아람.
귀엽게 우는 모습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더 열심히 하란 말이 필요 없는 참가자네요. 지금처럼만 해요.”
“네헷! 흣, 감사합니다핫!”
울먹이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내려간다.
“아휴, 저런 애들 보면 얼마나 이뻐.”
“하하. 이를 갈고 온 거 같은데. 저야 고맙죠.”
“호호, 옛날 생각나네요.”
“어머, 재능충이 기만한다.”
확실히 좋은 무대를 봐서 그런지 우리 모두 텐션이 조금 오른다.
선애씨와 초유 누님의 투덕거림을 들으며 다음 참가자를 불렀다.
“안녕하세요!”
“네. 준비한 거 보여주세요.”
방금 좋은 무대를 봐서 그런지 다시 무대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또 어떤 무대를 보여줄까 하는 기대감.
여기서 잘 하면 최고지만, 부담감에 무너지거나 못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확률이 높다.
이번 참가자가 그랬다.
우리가 너무 기대해서 그럴까?
딱히 부담을 준 거 같진 않은데 무대를 망쳤다.
원래 실력은 모르겠지만, 확실히 이 실력은 아닐 거 같은데.
“후우, 1점이요. 이유는 말 안 해도 본인이 잘 알겠죠?”
“네. 저도 1점.”
“음, 다음에 잘 해봐요. 1점.”
그렇게 무너진 참가자 후로 잠시 쉬는 시간을 갖는다.
“자자! 10분 쉬고 갑니다!”
김 피디님의 외침에 나는 바로 테이블에 엎드렸다.
“아으, 피곤해.”
“호호, 어깨 좀 주물러 드릴까요?”
“괜찮아요.”
괜찮다 했지만, 선애씨의 손이 어깨로 올라왔다.
목과 어깨를 부드럽게 주무르는 손길.
몸이 풀리는 느낌은 없는데 자지가 서는 느낌이 난다.
아, 나 오늘 발정 났나? 아침부터 이상하네. 운동을 안 해서 그런가?
이런 손길에도 얘가 왜 서냐?
“후후, 자기?”
“네?”
“좋아?”
“하하. 좋네요.”
하여간 연륜이 있어서 그런지, 이런 눈치는 엄청 빠른 초유 누님이다.
“이제 한 시간 안에 끝나겠죠?”
“그렇겠지?”
“그랬으면 좋겠네요.”
다시 촬영이 재개됐다.
딱히 볼만한 참가자는 더 나오지 않았다.
외모가 괜찮지만, 실력이 망해서 낮은 등급이 된 참가자와 그 반대의 참가자가 총 두 명 더 나왔다.
“그럼 마지막 참가잡니다!”
스태프의 말에 셋이 정신을 차린다.
후, 드디어 끝이구나.
이번 참가자는 점수를 좀 후하게 줘야겠다.
마지막까지 오래 기다린 거도 있고, 우리가 다 마음이 다른 데 가버린 거 같으니까.
오! 엄청 이쁘네?
나만 놀란 게 아닌 거 같다.
선애씨와 초유 누님도 살짝 눈을 빛냈다.
길쭉길쭉하게 쭉 뻗은 체형에 그다지 몸매를 드러내는 옷도 아닌데 몸매가 좋아 보인다.
얼굴은 참가자 300명 중에 단연 1등.
아마 김 피디님도 이 외모를 보고 마지막 참가자로 남겨둔 거 아닐까?
“엄청 예쁘네.”
“그러게요.”
초유 누님의 혼잣말에 대답했다.
선애씨도 고개를 끄덕인다.
이렇게 보니까 확실히 알겠네.
내가 실물로 본 사람 중에 단연코 외모 1등은 선애다.
2등이 윤진과 소연이고.
둘은 너무 달라서 그날그날 그녀의 컨디션과 내 기분에 따라 순위가 변할 수도 있으니 우위를 정할 순 없다.
이번 참가자는 따져 보자면 선애 씨보단 아래. 윤진, 소연보단 살짝 위다.
미리 영상 체크 할 때 이런 애를 왜 모르고 지나쳤지?
으음, 영상이 실물을 다 담지 못한 거 같다.
“자, 준비한 무대 보여주세요.”
“네!”
음, 목소리 톤도 좋네.
제발 잘 해라. 그럼 무조건 어떻게든 데뷔시켜준다.
노래가 시작됐다.
그리고 우리 세 사람의 표정이 굳었다.
“허어.”
참가자가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 초유 누님의 탄식이 나왔다.
와, 이건 좀 심한데?
외모 때문에 기대한 게 없지 않아 있겠지만, 무대는 심각했다.
노래도 춤도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으음, 하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선애씨가 마이크를 잡고 한숨을 쉰다.
“1점이요. 노래를 배워본 적이 없죠?”
“네. 배워본 적은 없습니다.”
“춤은요?”
답을 듣고 질문하는 초유 누님.
“춤도 없습니다.”
“으음, 가수가 하고 싶어서 온 거 맞죠? 왜 참가했어요?”
“그, 사실.”
머뭇거리는 참가자.
뭐야? 다른 이유가 있어서 참가한 거야?
“서, 성민님 팬입니다. 하, 한 번쯤 보고 싶어서....”
헐. 이런 감사한 일이.
“허허. 이거 참. 감사합니다. 절 보러 이런 어려운 곳까지. 제가 뭐라고 하하.”
“어머. 입꼬리 올라가는 거 좀 봐.”
“좋아요?”
초유 누님과 선애 씨가 공격한다.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기!
“저런 아름다운 소녀가 절 좋다고 찾아 왔는데, 당연히 기뻐야죠. 아니! 팬을 보면 누구나 다 기뻐하는 거 아닙니까?”
촬영 막바지에 재밌는 모습이 조금 나오겠네.
“저는 10점이에요. 춤과 노래는 많이 부족했지만, 확실히 스타성 있어요. 처음 들어올 때 두 분도 감탄했잖아요. 그게 외모만 가지고 가능한 게 아니거든요.”
개소리다. 그냥 이뻐서 감탄한 거다.
다른 이유가 뭐 있겠어.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되니 포장을 한다.
“저희는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이쁜 사람 수도 없이 봤습니다. 그들이 모두 성공했을까요? 아니죠. 외모는 분명 플러스 요인이지만, 더욱 중요한 스타성, 끼가 필요합니다. 방금 저는 봤어요. 이 참가자의 스타성을.”
나름 열심히 포장했지만, 두 여성의 눈이 짜게 식었다.
“아몰랑! 10점.”
“춤은 뭐. 1점이죠.”
내 덕에 총점 12점. 4등급이다.
열심히 배워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뭐, 떨어져도 내 팬이라고 하니 우리 회사에서 데려오면 딱이네.
실력으로 봤을 땐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내가 꼭 데뷔시켜 줘야지.
내 열성 팬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저런 외모는 널리 알려야 한다.
그게 신사이자 프로듀서인 나의 임무다.
“자! 오늘 촬영은 여기서 바로 끝내겠습니다!”
참가자가 내려가면서 촬영이 끝났다.
“후우, 끄으응!”
“둘 다 고생했어. 후우, 바로 갈까?”
“흐음, 가서 쉬는 게 낫겠죠?”
“호호, 그럼 저희 집으로 가요.”
아인의 차를 타고 선애의 집으로 함께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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