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
초유 누님도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 잘 하는 사람 나온다면서요?”
“으음, 초반에 나오는 거지 처음부터 나오진 않을 거야. 그래야 더 극적이지.”
“아아, 그렇네요.”
역시 초유 누님이 나보다 한 수 위다.
다음 참가자도 이렇다 할 특징이 없었다.
“2점이요.”
“저도 2점.”
“저도 2점이요.”
아까 영미는 선애가 1점 더 줬는데 이번엔 가차 없네.
“아까 1점은 왜 더 준 거예요?”
“흐음, 그냥 제가 느끼는 대로 준 건데요?”
“그래요?”
선애가 내가 못 본 무언가를 본 걸까?
나도 잘 모르겠다.
세 번째 참가자. 익숙한 얼굴이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안녕하세요. 선우연입니다.”
“네. 우연씨. 준비한 거 보여주세요.”
“네!”
드림스테이지 1회 우승자 선우연.
내 권유로 참가한 그녀가 세 번째 순서로 나왔다.
뭐, 우연이는 무조건 잘 하겠지.
춤을 추고 타이트 한 랩을 한 우연.
춤은 초유 누님이 보는데, 힙합 쪽은 심사할 사람이 없네?
그나마 선애가 흑인 음악을 좋아하니 좀 잘 알겠지?
나도 힙합을 잘 모르는 건 아니고, 힙합곡도 좀 썼으니 심사는 가능했지만.
힙합 전문가가 한 명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디 카디같은 래퍼 없나?
없겠지. 세계 최고 여성 래퍼가 둘일 순 없을 테니까.
뭐, 필요하면 나중에 누구라도 섭외하면 되니까 일단은 넘어가자.
“우연씨 오랜만이네요.”
“네. 피디님.”
“기대했는데, 기대만큼 좋은 무대였어요. 10점입니다.”
뭐, 편애 논란이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누가 봐도 진짜 잘하긴 했다.
우연이 10점이 아니라면 10점 받을 수 있는 참가자는 없을걸?
“감사합니다!”
“저도 10점이요. 어쩐 그렇게 춤이 많이 늘었지?”
“다, 선생님 덕분이죠.”
“어머. 호호호.”
초유 누님도 10점을 줬다.
“으음, 저는 9점이요. 랩은 잘 했지만, 노래를 못 봐서 좀 아쉽네요.”
“다음엔 노래도 준비해 보겠습니다.”
“기대할게요.”
밀어주는 참가자인 만큼 심사평도 꽤 오래 갔다.
우연이 들어가고 다음 참가자가 나온다.
골고루 점수를 주는 심사위원 셋.
보는 눈이 비슷해서 그런지 점수가 비슷비슷하다.
뭐, 가끔 의견이 확 갈리기도 하지만.
“전 10점이에요. 저런 춤은 연습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2점이요. 노래가 아직 아마추어 수준입니다.”
“7점 드리겠습니다. 으음, 노래는 부족했지만 충분한 끼가 보이네요. 매력 있어요. 그럼 다음에 더 좋은 모습으로 뵙길 바랍니다.”
이렇게. 춤을 중점으로 보는 초유 누님과 노래를 중점으로 보는 선애.
나야 외모와 분위기를 본다.
노래랑 춤은 두 사람이 알아서 점수를 줄 테니까.
꽤 많은 참가자가 지나갔다.
특별히 눈에 띄는 애들도 있었고,
보통 그런 애들이 점수를 잘 받았다.
그리고 가끔.
“1점이요. 춤은 아예 기본기도 없네요.”
“1점이요. 노래도 마찬가지예요. 가수가 되고 싶어서 온 게 맞는지 모르겠네요.”
“전 9점입니다. 춤도 노래도 부족했지만, 스타성 있어요.”
그만큼 예쁘단 소리다.
예쁘지만 실력 없는 애들.
그런 애들을 유심히 보며 호감작을 한다.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비주얼 걸그룹의 꿈을 아직 버리지 못했다.
방금처럼 트레이닝으로 될 수준이 아닌 참가자도 있었지만,
방법을 찾을 것이다.
내가 노래를 더 잘 만들면 되지 않을까?
아인에게 내가 8점 이상을 준 참가자를 적어두라고 했다.
7점까지는 실력을 고려해서 주는 거지만, 8점부터는 오로지 외모로 평가하는 중이다.
뭐, 나중에 실력보다는 비주얼을 본다는 논란이 생길 수 있지만, 괜찮다.
스타성이라는 포장은 모든 걸 가능케 하니까.
“오! 춤 잘 추는데요? 누구한테 배웠는지 기본기가 훌륭해요. 10점.”
“노래도 잘 합니다. 노력의 흔적이 보여요. 9점이요.”
“으음, 실력은 좋은데 딱히 매력을 못 느끼겠네요. 스타성이 있을지 고민됩니다. 2점 드리겠습니다.”
가끔 반대로 실력이 엄청 좋은데 외모가 부족한 친구도 있다.
그런 친구는 내가 가차 없이 등급을 낮추고 있다.
9등급 이상부터는 진짜 모든 걸 갖춘 애들이 올라가는 자리고.
8등급도 외모가 좋은 애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실력 없고 이쁜 애들이나 실력은 좋지만, 외모가 망한 애들은 4~7등급에 포진했다.
1, 2, 3등급은 그냥 답이 없는 애들.
뭐, 개천에서 용 난다고 갑자기 올라올 애들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솔직히 조금 힘들겠지.
그나마 3등급은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겠지만.
정말 1, 2등급은 답이 없다.
어떻게 예선을 통과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너무 긴장해서 제 실력을 못 보인 거겠지?
좋게 생각하자.
그래도 나와 우리 회사 이미지를 보고 지원한 아이들이니까.
내가 외모를 보고 8점을 주면 두 사람이 1점을 줘도 3등급이다.
그래서 3등급엔 딱 두 명 꽤 이쁘지만 다른 부분에서 1점을 받은 참가자가 들어갔다.
그들이 갑자기 각성해서 잘 했으면 좋겠지만, 힘든 일이겠지?
나중에 탈락시켜서 회사가 접근하면 딱이다.
내가 원했던 게 그런 애들이었으니까.
후우, 신앙 없이 될지 모르겠네.
“어?”
“다람이네.”
“얘가 여길 어떻게 나왔데?”
초유 누님이 다람이를 보고 놀란다.
다람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와 인사했다.
“다람아! 잘 지냈어.”
“네. 잘 지냈습니다.”
초유 누님과 같이 댄스댄스 레볼루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력이 있기에.
초유 누님은 반가운 티를 냈다.
다람이 보니까 또 가슴이 땡기네.
젖꼭지 꼬집으면 바로 귀엽게 변할 텐데.
계속 무뚝뚝한 모습만 보여주기엔 다람이가 웃을 때 표정이 정말 예술이라 아깝다.
나중에 가슴 집게 선물로 줘야지. 무대에서 차라고 하면 실수하려나?
뭐, 일단은 의상 밖으로 안 보일 만한 거로 잘 골라야겠다.
“다람씨. 여긴 어떻게 왔어요?”
“걸마뎀이 끝나도 딱히 스케쥴이 없어서 회사에 말했더니 회사가 편의를 좀 봐줬습니다.”
“아, 좋은 일이네요. 회사 담당자분께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어요. 아! 그전에 실력 먼저 볼까요?”
“네!”
다람이 무대 중앙에 서며 힘차게 대답했다.
춤추며 노래까지 같이하는 다람.
얼마나 노력했는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춤과 노래를 끝냈다.
“와, 정말 열심히 하셨네요.”
선애가 처음 마이크를 잡고 감탄한다.
초유 누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뼉 쳤고.
나도 손뼉을 쳤다.
“10점. 더 말할 것도 없네요. 정말 좋았어요.”
“저도 10점이에요. 앞으로도 열심히 해 주세요.”
초유 누님과 선애가 점수를 매겼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이크를 잡는다.
“모든 게 완벽한 무대가 이런 걸까요? 재능과 스타성 그리고 노력이 합쳐져 정말, 당장 음악 프로에 나와도 되는 훌륭한 무대가 나왔네요. 앞으로가 더 기대됩니다. 잘 했어요. 다람씨. 10점입니다.”
편애 논란을 피하고자 사설이 길었다.
뭐, 사람들도 눈과 귀가 있다면 다 인정할 무대였으니까.
뭔가 있어 보이는 말이 하고 싶었을 뿐이다.
다람이와 우연이 둘이 10등급에 들어갔고, 아직 10등급은 둘 뿐이다.
하긴, 우리 중 둘 이상에게 10점을 받는 게 쉽지 않지.
외모를 보는 나와, 노래를 보는 선애. 춤을 보는 초유 누님까지.
이 중 두 개를 완벽히 갖춘 애는 이미 데뷔했거나, 어디 연습생 데뷔조겠지.
오디션에 나오기엔 너무 불안하니까.
안전을 추구한다면 그냥 회사에 붙어있을 거다.
데뷔가 거의 확실할 테니.
우리 회사가 지금 주가를 쭉쭉 올리고 있지만, 사실 따져보면 신생 회사다.
검증된 아이돌 명가에 비하면 부족한 건 사실.
10점 참가자는 많이 나올 수가 없는 구조.
“감사합니다!”
다람이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로 인사하고 내려갔다.
으음, 빨리 가슴 집게 구해야겠다.
그래야 더 인기몰이하지.
“안녕하세요.”
다음 참가자가 올라온다.
후우, 피곤하네. 뭔가 다람이의 공연을 보니 살짝 진이 빠진 느낌이다.
너무 집중해서 본 거지.
그만큼 잘했다는 뜻이고.
두 여인의 상태도 나와 다르지 않은지 그다지 참가자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으음, 외모는 봐줄 만하네. 8점 이상은 아니지만.
“준비한 거 해보시겠어요?”
“네.”
목을 가다듬고 노래를 시작하는 소녀.
음색이 참 좋네.
조금씩 움직이는 율동 같은 느낌의 안무도 나름 스타일이 산다.
꽤 귀엽잖아?
슈가 페어리로 따지면 연화 같은 포지션이 잘 어울리겠다.
다른 말로 씹덕 몰이상이라는 뜻.
취향만 맞으면 이런 애가 엄청 충성스러운 팬들을 거느린다.
“잘 봤어요. 음, 저는 7점 드릴게요. 매니악한 팬이 많이 생길 거 같아요.”
“헤헤. 그냥 팬도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말하는 거도 살짝 4차원 끼가 보인다.
심사평 하는 자리에 저렇게 헤실거리며 답을 할 수 있는 게 여간 강심장이 아니네.
“흐음, 노래는 음색이 독특해서 좋았어요. 그래도 조금 더 갈고 닦아야겠지만요. 저도 7점 드릴게요.”
“춤은 뭐 한 게 없지만, 짧게 보여준 움직임이 나쁘지 않은 거 같네요. 5점.”
꽤 높은 등급을 받았다.
흐음, 잘만 하면 얘도 데뷔조 들어가겠다.
지금까지 이 정도의 임팩트 있는 참가자가 많지 않았으니까.
내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김 피디님 눈이 빛난다.
몇 명 하지 않은 심사 인터뷰까지 진행하는 김 피디님.
다음 참가자가 올라와 시선을 거뒀다.
생각해보니 대단하네. 다람이가 그렇게 무대를 찢어놨는데, 그다음에 나와서 저 정도 한 거면 꽤 한 거잖아?
점수 더 줄 걸 그랬나? 아니지. 그래도 8점 넘길 외모는 아니다.
“자. 준비한 거 보여주세요.”
계속 반복하는 멘트. 아휴 목이 탄다.
이번 참가자는 앞선 두 무대 때문에 얼었는지 제 실력을 보이지 못했다.
“으음, 너무 긴장했어요. 노래가 너무 떨려서 평가할 수가 없네요. 그래도 와중에 음정 박자는 정확했으니 5점 드릴게요.”
“춤도 몸이 너무 굳어서 볼 게 없었어요. 전 3점.”
“무대에서 긴장하는 건 스타의 자질이라고 할 수 없죠. 저는 3점 드리겠습니다.”
참가자의 눈에서 눈물이 터진다.
“다음엔 더 좋은 무대로 저희 생각을 바꿔 주세요.”
울며 내려가는 참가자.
미안하다. 한 5~6점 주려고 했는데, 울먹이는 얼굴이 너무 못 생겨서 순간적으로 점수가 깎였다.
지금도 울면서 내려가는 얼굴이 가관이다.
저 얼굴까지 봤다면 2점이 될 뻔했다.
“후우, 조금 쉴까요?”
“네.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네. 10분 쉬고 시작하겠습니다.”
김 피디님의 말이 끝나고 의자에 등을 기댄다.
“어후, 눈이야.”
“호호, 이제 삼 분의 일은 끝난 거 같네.”
“네. 세 시간 지났으니까. 촬영이 열 시간 채울 거 같네요.”
“뭐, 오디션에선 기본이지.”
한숨을 크게 쉬고 잠시 눈을 감는다.
선애가 돌아와 메이크업을 수정받는다.
“힘들죠?”
“호호. 괜찮아요. 자라나는 새싹을 보는 기분이라 즐겁네요.”
“어머, 너 오디션 체질이다. 얘.”
두 사람 다 즐겁게 하는 거 같아 다행이다.
나만 좀 힘을 내면 되겠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저 참가자를 따먹을지 고민하며 즐거운 오디션을 했겠지만.
지금은 정말 말 그대로 오디션에 집중한 상태라 피로감이 올라온다.
후우, 신앙이 그립다.
그래도 스님이 나쁜 사람인 걸 알았으니 없어진 게 다행이지.
다시 특별한 능력을 얻을 순 없을까?
“자! 스탠바이 갑니다.”
“네!”
김 피디님 말에 쉬던 스텝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또 참가자가 올라온다.
“후우. 준비한 거 보여주세요.”
아! 방송에 너무 지친 모습 보이면 안 되는데.
벌써 이렇게 텐션 관리가 힘드네.
아인에게 에너지 드링크랑 커피를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이따가 마시면 좀 나아지겠지.
“으음, 무난한 무대여서 딱히 매력을 찾기 힘드네요. 4점이요.”
“춤도 무난했어요. 5점.”
“노래도요. 5점.”
두 여인도 점점 심사평이 짧아지는 게 꽤 피곤한 거 같다.
참가자가 나가고 들어오는 중간중간 몸을 비틀며 스트레칭한다.
“오!”
“아!”
초유 누님이 낸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송예진이 나와 있다.
걸그룹 바니하트의 리더.
아, 이제는 전 리더라고 해야 하나?
그룹을 탈퇴하고 회사를 나왔다고 들었다.
사정은 모르겠지만, 나야 나와주면 땡큐다.
섹시하고 이쁘게 생긴데다 노래도 잘 하니까.
춤도 기본기가 확실하고.
“반가워요. 우리 인연이 있죠?”
“헤헤. 네. 복면 쓴 절 알아봐 주셨었죠.”
그 외에도 사고가 난 내가 데려다준 스토리가 있지만, 그건 비밀이니까.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고 씩 웃은 후. 준비한 무대를 부탁했다.
으음, 춤이 더 늘었네.
노래는 여전히 잘하고. 외모야 말할 것도 없지. 일단 섹시한 여자는 드물다.
그것도 아이돌 지망생 중에서는 더 없다.
섹시하고 실력 좋은 소녀가 들어와 준다면 아주 고마운 일이지.
나이가 좀 있지만. 예쁘면 다 용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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