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213화 (213/450)

213.

아인이 운전하는 차에 지인과 함께 탔다.

내 스케쥴은 아니지만, 지인이 스케쥴을 데려다주는 길.

짧은 시간이지만 이렇게라도 같이 있는 게 어디야.

“헤헤. 선생니임.”

“왜에.”

귀엽게 내게 몸을 비비는 지인.

차에 타면서 옷이 헐거워진 거 같은데 내 착각인가?

“하으응, 하으, 더, 만지시면 저 못 참아요.”

“그럼 안 되지. 촬영 있는데.”

“헤헤. 슬픈 일이에요.”

지인이를 가만히 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잘 하고 와!”

“네. 들어가세요.”

지인이 방송국으로 들어가고 나도 다시 움직인다.

윤진이가 촬영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

대기실로 가 노크를 한다.

-똑똑

“네!”

문을 슬며시 열고 들어왔다.

부산스러운 매니저와 코디가 보이고 의자에 앉아 화장을 받는 윤진이 보였다.

“안녕.”

“앗! 피디님.”

화장 때문에 일어나진 못했지만, 동적인 모습에서 격한 반가움이 느껴진다.

진짜 개였으면 꼬리가 프로펠러처럼 돌았겠다.

“어쩐 일이에요?”

잔뜩 올라간 목소리.

화장을 잠시 멈춘 윤진이 내 앞으로 달리듯 왔다.

주변 시선 때문에 안진 못했지만, 엄청 반가워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보기 좋네. 머리를 쓰다듬을까 하다가 세팅이 망가질 거 같아 참았다.

“그냥. 지나가는 길에 응원차 들렀지.”

“헤헤. 좋아요.”

윤진이 내 팔을 잡고 기분 좋은지 계속 흔든다.

“오늘 촬영도 잘 하고.”

“네!”

거수경례하며 날 배웅하는 윤진.

촬영 전이라 시간이 많이 없어 잠깐 얼굴만 보고 나왔다.

“후우, 그럼 갈까?”

“응.”

조용히 날 따라 다니던 아인과 차에 왔다.

“아으, 운동 가야지?”

“응. 운동 끝나고 스케쥴까지 있어. 오늘 좀 피곤하겠다.”

“으으, 내일은?”

“촬영해야지.”

아아, 내일부터 오디션 시작하지?

“오늘 저녁 스케쥴은 뭔데?”

“아! 민하씨가 게스트 요청해서 하기로 했어.”

“그래? 왜 나한테 직접 말 안 했데?”

“흐으음.”

묘한 웃음을 짓는 아인.

이거 또 무슨 몰래카메라 같은 건가?

몰래카메라라고 하기엔 촬영하는 걸 알고 있으니 뭔가 컨텐츠를 준비한 거겠지?

헬스장에 도착했다.

운동은 끝나면 상쾌하지만, 시작할 때가 제일 힘들다.

“자! 오늘도 오셨습니다.”

오늘은 네 사람이 다 있네.

“드디어 그 날이 왔어요.”

“그 날이요?”

나는 자연스럽게 촬영에 녹아들었다.

“오늘 운동하시고 이틀 쉬시잖아요.”

“그렇죠?”

운동은 주 5일로 이뤄지는데,

5일을 연달아서 하고 2일을 쉰다.

“쉬기 전에 준비한 프로그램이 있어요.”

“아! 지금 도망가면 되나요?”

“헤헤. 잡았다.”

대흉이가 내게 팔짱을 껴 잡는다.

아! 이럼 못 도망가지.

뭉클한 감촉이 팔에 느껴졌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대화를 이어간다.

“으으, 그래서 뭐 하는 건데요?”

“후후, 혹시 크로스핏이라고 아세요?”

“크로스핏이요?”

들어는 봤는데 뭐 하는 거였지?

“저희가 또 정식 등록된 크로스핏 짐이거든요.”

“후후, 준비해 볼까요?”

세 코치가 화면 밖으로 나가 무언가를 가져다 놓는다.

엄청 큰 타이어와 굵고 긴 밧줄.

저건 또 뭐지?

“준비할 동안 우린 몸 풀어요.”

“아, 네.”

대흉이가 날 데리고 움직였다.

“근데 대흉씨는 이름이 뭐예요? 대흉씨라고 부르기 좀 그래서요.”

“아아, 저희가 아직 통성명도 안 했네요.”

“네. 저번에 번호 받았는데, 대흉씨라고 저장하니까 좀.”

“호호, 그렇네요. 저는 민주에요. 정민주.”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오늘 운동하면 잊힐 수도 있으니까 제가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대화하면 천천히 몸 관절을 풀었고, 10분 안 되는 짧은 시간 땀을 내기 위해 유산소를 했다.

“자! 그럼 물 한잔 드시고 가실까요?”

“크로스핏이 뭔지 모르신다고 하셨죠?”

“이름은 들어 봤는데 잘 몰라요.”

이두가 나서서 설명을 시작했다.

“크로스핏은 2000년 미국의 그레그 글래스먼(Greg Glassman)이 만든 운동방법론으로....”

“으으. 노잼.”

중둔이가 이두의 설명 중간에 끼어 말을 끊었다.

“그냥 고강도 운동을 돌아가면서 빡시게 해서 조지는 겁니다요.”

“와아.”

대흉과 광배가 손뼉을 친다.

이런 게 사근사근의 케미지.

“자 설명은 이쯤 하고 운동하는 법 볼게요.”

“가즈아!”

트레이네 셋이 하나하나 설명을 이어간다.

“버피로 시작해서....”

팔굽혀펴기, 턱걸이, 타이어 뒤집기, 밧줄 흔들기, 스쿼트, 점프 뛰기 등.

오만가지 운동이 지나간다.

“이걸 다 해요?”

“에이 그러면 사람 죽어요.”

“그럼?”

“자! 그럼 성민씨의 뽑기 운을 볼까요?”

간단하게 만들어진 룰렛이 들어왔다.

“이 룰렛으로 정할 겁니다.”

“와! 이렇게 보니까 종류가 많네요?”

“후후, 뭘 뽑아도 힘들겠지만, 행운을 빌게요.”

“그럼. 돌려 돌려 돌림빵!”

“예?”

대흉이가 룰렛을 들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왜요?”

“제가 뭘 잘못 들은 거 같아서요?”

“돌려 돌려 돌림판이요?”

“판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묘하게 웃는 대흉이.

“어머, 어떻게 들으셨는데요?”

“어, 음. 이걸 이렇게?”

“호호, 그럼 돌려 볼까요?”

“오늘은 첫날이니까 가볍게 다섯 개만 하죠.”

다섯 개가 가벼운 걸까?

뭐가 쉽고 뭐가 어려운 건지 안 해봐서 모른다.

그냥 다 힘들 거 같은데.

생각 없이 돌림판을 돌린다.

“와, 이건 난이도가 헬인데요?”

“한두 개만 다시 돌릴 기회를 드릴까요?”

“이게 힘든 건가요?”

“여러분 이런 게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거랍니다.”

정말 몰라서 물어본 건데, 뭔가 잘 못 말 한 거 같다.

“그냥 갑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지 알려드릴게요.”

설명을 듣고 운동이 시작됐다.

정해진 숫자만큼 차례로 뽑은 운동을 연속적으로 하면 되는 간단한 방식.

“가볍게 열다섯 개씩 가보죠?”

“자! 시작!”

알려준 대로 하나하나 운동을 시작한다.

“쉬면 안 돼요. 더 빨리. 할 수 있다.”

“허으, 허억, 흑.”

지옥이었다.

30분 정도 쉬지 않고 내가 고른 5가지 동작을 미치듯 한다.

이건 운동이 아니라 고문이다.

30분이 30년 같다.

“자! 끝났어요. 잠깐 쉬고 2세트 갑니다.”

“허그윽.”

그대로 자리에 누웠다.

근데 내가 잘못 들었나? 2세트가 있어?

“호호호, 농담이에요.”

너무 힘들어 대꾸할 기운도 없다.

후, 다행이다.

2세트를 했다면 정말 쓰러졌을 수도 있겠다.

“조금 진정이 됐나요?”

“하아, 하아, 네에. 벌써 근육이 아프긴 하지만요.”

“괜찮아요. 호호. 그럼 스트레칭 살살 할게요.”

중둔과 함께 스트레칭을 끝내고 완전히 퍼졌다.

“으아, 죽겠다.”

“헤헤. 수고하셨어요. 그래도 잘 하시던걸요.”

대흉이가 다가왔다.

“아아, 아무것도 하기 싫네요.”

“호호, 그럼 가볍게 마사지 좀 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가만히 마시지를 받는다.

내가 남자라 그런가?

남자 트레이너 두 명은 운동만 딱 하고 따로 말을 걸거나 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두 여성은 자주 내게 다가와 이런저런 말도 걸고 친해지려는 노력을 보인다.

뭐, 나야 남자보다 여자가 다가오는 게 좋지 뭐.

아! 두 트레이너도 나랑 같은 마음 아닐까?

“어후, 좋네요. 끄응.”

“호호, 시원하죠?”

“네. 후우우.”

마시지를 끝내고 중둔이 건네준 음료를 마신다.

초코 맛이 나는 단백질 음료.

“내일 근육통이 너무 심하시면 가볍게 스트레칭이나 유산소 해 주세요.”

“네.”

음료를 쭉 들이켜고 씻으러 들어왔다.

힘들긴 한데 빨리 끝나서 좋긴 하네.

따듯한 물로 씻고 나오니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만 같다.

“아으으.”

차에 타며 절로 앓는 소리가 난다.

“오늘은 엄청 힘들었나 봐?”

“으응. 크로스핏을 했는데. 죽을 거 같다.”

“호호, 엄살은 일단 작업실로 갈게.”

“응.”

아, 저녁 촬영이 몸 쓰는 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다 왔어. 일어나.”

“응?”

잠든 지도 모르게 잠들었네.

“끄으응! 아으.”

벌써 팔이 아프다.

내일은 근육통으로 고생하겠네.

“피곤해?”

“응. 좀 피곤하다.”

“들어가서 조금 쉬어.”

“그래. 같이 안 갈 거야?”

아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약속 있어. 내일 봐.”

“그래? 잘 들어가.”

아인은 돌아갔고, 나는 작업실로 왔다.

잠깐 올라가 볼까?

민하씨에게 전화를 한다.

-네. 프로듀서님.

“저 언제 올라가면 돼요? 지금 가도 돼요?”

-지금은 안 될 거 같구요. 두 시간 정도 있다가 오세요.

“알겠어요.”

두 시간 알람을 맞추고 침대에 누웠다.

폰을 들어 유티비를 조금 보다가 잠이 와 눈을 감는다.

“흐흥.”

누구지?

내게 얽혀오는 보드라운 살이 느껴져 살짝 깼다.

눈을 떠보니 선유가 알몸으로 내게 파고들고 있다.

“선유 왔어?”

“네. 헤헤.”

“흐으음.”

폰을 들어 시간을 보니 알람 울릴 시간이 5분 남았다.

“이거 어쩌나.”

“왜요?”

“내가 가봐야 하네.”

“히잉.”

선유가 아쉬워했지만, 어쩔 수 없다.

부드럽게 선유의 몸을 쓰다듬어 주고 일어난다.

“더 쉴 거야?”

“네. 한숨도 못 잤어요.”

“왜?”

“공연 루틴 새로 만들었거든요.”

고생했겠다.

-츄르릅, 츄릅.

격려의 마음을 담아 누워있는 선유에게 키스하고 화장실로 들어와 조금 상태를 점검한다.

“으음, 괜찮네.”

적당히 물로 씻고 옷을 깔끔하게 입었다.

올라가 볼까.

“어후, 계단 오르는 거도 힘드냐.”

아직 운동의 여운이 안 가신 거 같다.

뭐, 점점 괜찮아지겠지.

올라가니 스튜디오엔 맛있는 냄새가 났다.

쿡방인가?

“자! 지금 피디님이 오셨습니다.”

“와아아.”

방송하고 있었구나. 미리 좀 볼 걸 그랬나? 아니다, 모르고 하는 게 더 재밌겠지.

두 여인이 손뼉을 치며 날 반겼고, 나는 영문도 모르고 식탁으로 끌려갔다.

“자, 오늘의 컨텐츠!”

“피디님이 얼마 전에 아팠잖아요. 그래서 몸보신 컨텐츠를 준비했어요.”

“와, 감사하네요.”

식탁에는 깍두기와 삼계탕 한 그릇이 올라가 있다.

으음, 방송 컨텐츠 치고는 삼계탕이 많이 부실한데?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드셔 보세요.”

시연이가 기대하는 표정으로 수저를 건넸다.

아! 시연이가 만들었으면 못 먹는 음식 아니냐?

살짝 떨리는 표정으로 깍두기를 집었다.

“깍두기 먼저 먹어 볼게요.”

“아니! 그건 사 온 건데. 삼계탕을 드셔야죠.”

“마음의 준비가 조금 필요해요.”

“히잉, 진짜 제대로 만들었단 말이에요.”

시연이 살짝 시무룩한 표정을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시연의 음식은 조금 무서워서.

“자, 그럼 삼계탕 먹어 볼게요.”

“헤헤. 어때요?”

“아직 뜨지도 않았어.”

“빨리 드셔 보세요오.”

귀엽게 애교를 부리는 시연.

얘가 눈빛이 조금 이상한데?

뭔가 있는 거 같다.

민하씨도 씨익 웃는 게 이거 맛있는 삼계탕 맞아?

국물 먼저 한술 뜬다.

아니 살코기 먼저 먹을까?

국물은 몰라도 고기는 어지간하면 괜찮을 테니까.

숟가락을 그냥 놓고 젓가락을 집는다.

닭살을 한 점 발라 들어 올렸다.

처음은 아무것도 찍지 않고 입으로 가져간다.

“으음.”

처음 닭살이 입에 닿았을 때 느낌은 조금 짜다였다.

그리고 다가오는 퍽퍽함.

“어때요? 어때요? 맛있죠?”

그래도 날 위해 만든 정성이 있으니 고개를 끄덕인다.

“하하, 괜찮네.”

“헤헤.”

밝게 웃는 시연.

너무 퍽퍽해 어쩔 수 없이 국물을 한술 뜬다.

-호로록.

후후 불어 국물을 머금으니 엄청난 맛이 느껴졌다.

짠데. 달아. 그리고 느끼해.

삼계탕이 뭐 이렇게 느끼하지?

감칠맛은 있는 거 같은데 너무 짜서 느끼기 힘들다.

근데 이 단맛은 어디서 나오는 거냐?

“국물에서 단맛이 나네?”

“헤헤. 양파를 버터에 볶아서 넣었어요.”

“그래?”

으음, 양식 삼계탕인가?

어쩐지 달고 느끼하더라고.

손이 더는 안 간다.

그래도 정성을 봐서 조금 더 먹어야겠지?

국물은 못 먹겠고 닭이나 먹자.

살을 천천히 발라 살점을 앞접시에 올린다.

한 조각 들어 천천히 먹는다.

“호호, 괜찮아요?”

“네. 맛있어요. 시연씨 요리 실력이 많이 늘었네요.”

“헤헤. 피디니임.”

시연이 감동한 표정이다.

이게 이렇게 감동할 일인가?

억지로 삼계탕을 조금 더 먹으니 시연과 민하씨가 웃으며 날 막았다.

“그만 드셔도 돼요.”

“네? 정말 괜찮아요.”

먹다 보니 그렇게 못 먹을 맛은 아닌 것도 같고.

국물만 안 마시면 딱히 나쁘지 않다.

닭이 좀 질기고 퍽퍽한 것만 빼면. 시연의 정성이 있으니 방송에선 좀 먹어줘야지.

“피디님 몰래카메라 대성공! 흐으응. 감동이에요.”

시연이 말하며 삼계탕을 치운다.

“네? 몰카였어요?”

“호호, 그거 그냥 파는 삼계탕이에요.”

“아, 그래요?”

내가 어디에 속은 거지?

“사실 일부러 저희가 소금이랑 이것저것 넣었거든요.”

“아아, 그랬어요?”

“과연 피디님은 시연이가 피디님을 위해 만든 요리를 먹을 것인가? 답은 맛있게 먹어준다였습니다!”

“봤지? 형님들? 미션 비 입금해!”

시연이 기세등등해져 카메라에 대고 말한다.

아, 그럼 그렇지 두 사람이 이런 음식 가지고 몸보신 특집을 끝낼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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