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211화 (211/450)

211.

운동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운동 잘 했어?”

“응, 힘들다. 근데 정비서.”

“응?”

“데뷔할 생각 있어?”

아인이 몸을 돌려, 날 본다.

“데뷔? 아직 잘 모르겠어, 근데 나 데뷔하면 비서 일은 누가 하고?”

“으음, 운전할 사람만 구하면 되지 않을까?”

“스케쥴 관리도 내가 하는데?”

“아! 맞다. 그 정도 할 사람은 많을 거 같은데.”

아인이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래도 아무나 구하면 좀 위험할 거 같은데? 네가 보통 사람처럼 살진 않으니까.”

“흐음, 그래서 정비서를 꼬셨기도 한데, 또 누굴 꼬셔봐야 하려나?”

“에효. 가지가지 한다 정말. 일단 고민 좀 해볼게.”

“그래.”

흐음, 아인이는 노래 연습도 잘 안 하는 거 같고, 딱히 데뷔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거 같기도 한데?

예전이라면 내가 신앙으로 어떻게든 만들어서 내보이겠지만, 지금은 좀 힘들지?

“그냥 데뷔하지 말고 계속 내 비서로 다닐래?”

“그래도 돼? 괜찮겠어? 하는 일 없이 돈 엄청 받고 있는데?”

“나 그 정도는 버니까 괜찮아. 아니 지금부터 한 푼도 안 벌어도 평생 지금 정도 월급은 줄 수 있을걸?”

아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아인이 말고 데뷔를 원하고, 끼도 있는 사람으로 찾아보지 뭐.

아니면 대흉이가 혼자 알아서 하게 둬도 되고.

근데 자꾸 대흉이라고 부르니까 조금 이상한데? 다음엔 이름이라도 물어봐야겠다.

“흐음, 집들이 선물은 뭐가 좋을까?”

“음, 휴지나 물티슈?”

“너무 대충 가져온 거 같잖아.”

“뭐, 그럼 가전이 제일 좋지 않을까?”

가전이라. 이사한 집을 가 본 적이 없어서 뭐가 없을지 모르겠네.

“그럼 일단 전자제품 판매장에 들리자.”

“그래.”

케이크는 뭐 근처에서 사면 되니까.

아이스크림 케익으로 할까?

빵 케이크는 잘 안 먹는 거 같던데.

아이스크림 케이크나 일반 케이크나 한 판당 칼로리는 비슷비슷한데.

많은 여자가 일반 케익을 먹을 때 더 죄책감 같은 걸 느낀다.

알다가도 모르겠는 여자들의 마음.

“도착했어.”

“아! 그래. 케익은 아이스크림이 좋겠지?”

“빵보다는 아이스크림이 낫지.”

“그렇지?”

아인과 함께 내리며 폰으로 아이스크림 가게를 검색한다.

가깝네?

“정비서.”

“응?”

“아이스크림 케이크 아무거나 맛있어 보이는 거로 사다 줘. 저쪽에 판매점 있는 거 같아.”

“그래? 알았어. 내가 좋아하는 거로 산다?”

뭐, 민초라던지 레인보우 샤베트라든지 하는 호불호가 갈리는 아이스크림도 잘 먹는 편이라 정말 아무거나 사도 상관없다.

어차피 지애 누나는 맛만 보고 내가 많이 먹을 테니까.

“응. 다녀와.”

아인을 보내고 전자제품 판매장으로 들어간다.

“어서 오세요!”

들어가자마자 붙는 직원.

“안녕하세요.”

“네. 고객님. 찾으시는 제품 있으신가요?”

“으음, 딱히 생각한 건 없는데 집들이 선물로 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해서 와봤어요.”

“아! 그러시군요. 집들이 선물이면 금액대는 어느 정도 생각하고 계신가요?”

금액대라. 그러고 보니 돈 생각 안 하고 물건을 사는 게 당연했었네.

“금액은 상관 없구. 좋은 거로 추천해 주시겠어요?”

“그럼 요즘 잘 나가는 공기 청정기나 청소기는 어떠신가요?”

“한 번 보죠.”

지애 누나가 청소는 자주 하는 거 같던데.

청소기는 있겠지? 아마 이미 좋은 거로 사 뒀을 거 같다.

근데 공기 청정기까지는 신경 안 썼을 거 같은데?

전에 살던 집에도 공기 청정기는 없었던 거 같고.

뭐, 누나가 담배를 피우는 거도 아니니 굳이 들일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거겠지?

미세먼지도 심하니까 공기 청정기로 해야겠다.

“바로 가져갈 수 있는 공기 청정기 중에 제일 좋고 적당히 이쁜 거로 보여주시겠어요?”

“네. 그럼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대기업 제품을 비롯해 꽤 많은 수의 제품이 진열돼 있었다.

“요즘 제일 인기 있는 상품이....”

직원이 해주는 설명을 들으며 하나하나 따져본다.

사실 성능이야 다 좋을 거 같아서 디자인과 크기만 생각하고 있는데.

아직 집을 안 가봐서 어떤 크기가 좋을지 모르겠다.

그냥 작은 게 제일 무난하겠지?

“얘가 좋아 보이네요. 주시겠어요?”

“네. 저희가 댁까지 배송도 해드리는데요.”

“아뇨, 그냥 가져갈게요.”

“그럼 제품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직원이 제품을 가지러 갔고, 나는 카운터에서 잠시 기다렸다.

“어머, 작곡가님?”

“안녕하세요?”

갑자기 옆에서 아는 척을 해 오는 여성.

“와! 팬이에요.”

“감사합니다.”

“이 동네 사세요? 여긴 어쩐 일로?”

“그냥 선물 사러 왔어요.”

나이는 꽤 젊어 보이는 데 오지랖이 아줌마 같다?

입고 있는 원피스를 봐도 나이가 많아 보이진 않는다.

그나저나 몸매가 꽤 좋네?

“호호, 선물로 가전이라니 역시 클라스가 다르시네요.”

“아휴, 클라스랄 게 있나요. 하하.”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가까이 다가와 말하는 여성.

조금 부담스러운데.

“고객님 여기 제품 가져왔습니다.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아! 네.”

다행히 타이밍 좋게 직원이 돌아왔다.

내가 완전히 연예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연예인이라고 하기도 모호해서.

팬이라고 다가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어색한 감이 있다.

인기 있는 스타는 아니라 어딜 가도 딱히 사람이 몰리는 건 아닌데.

인지도는 꽤 높아서 알아보는 사람은 많다.

그러다 보니 행동거지만 조심하면 이곳저곳 맘대로 편하게 다닐 수 있는 편이다.

다만, 오늘처럼 팬이라고 다가오는 사람을 만나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어머! 공기 청정기 사시는 거예요?”

“네. 하하. 무난한 거 같아서요.”

“그렇죠. 내가 사긴 좀 아깝고 누가 주면 엄청 좋은 물건이죠. 호호, 역시 센스도 있으시네요.”

“아이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시종일관 내 옆에서 날 지켜봤다.

으음, 조금 유별난 팬이네.

내가 잘생긴 것도, 딱히 뭔가 반할만한 이미지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좋아해 주는 팬을 만난 건 처음이다.

다들 악수 한 번이나, 사진 한 장이면 가던데.

이 사람은 원하는 거도 없이 그냥 옆에서 날 보고 있다.

“흐으음, 작곡가님.”

“네?”

“혹시, 저 모르세요?”

아? 설마 내가 본 적 있는 사람이야?

아니면, 조금 인지도 있는 사람인가?

이거 말실수하면 큰일인데.

뭐라고 답하는 게 제일 좋을까?

“으음, 기억 못 하시는구나.”

“하하, 저희가 어디서 봤죠?”

“저, 드림 스테이지 2번째 곡 참가잔데.”

“아!”

참가자가 한 둘이어야지.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딱히 인상 깊은 참가자는 아니었던 거 같다.

물론, 두 번째 곡 참가자는 전부 인상 깊지 않았긴 한데.

이 정도로 몰라보겠으면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나 본데?

“기억 못 하시는 거 보니 제가 별로였나 보네요.”

“하하, 워낙 많은 참가자 무대를 보다 보니까 다 기억할 순 없어서요.”

“호호, 괜찮아요.”

어쩐지 너무 들이댄다 싶었다.

팬은 무슨, 또 뭔가 콩고물이라도 원해서 다가온 거구만?

“저 정말 열심히 준비할 테니까 다음 무대 때는 꼭 기억해 주세요.”

“하하, 저는 공정하게 볼 뿐입니다.”

“호호, 그거면 충분해요.”

오! 자신감은 좋은데?

어디 내정자 있는 오디션 프로 같은 데에 데인 적 있나?

공정하게 본다는 말에 그녀의 표정이 확실히 폈다.

드림 스테이지 특성상 내가 신분을 알면 안 되기 때문에 다른 정보는 묻지 못하겠다.

“호호,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네. 다음 무대 기대하고 있을게요.”

“호호, 감사해요.”

그녀가 떠나갔고, 나는 공기 청정기를 들고 차로갔다.

아인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뭐 샀어?”

“공기 청정기.”

“오! 생각 잘 했네. 좋다.”

“그지? 너무 크지 않은 거로 샀어.”

아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시동을 걸었다.

바로 지애 누나 집으로 이동한다.

주차장에 들어가기 위해 누나에게 전화한다.

-어. 왔어?

“응. 주차장인데 누나 몇 호야?”

-아! 106동 403호. 샾 01060403 누르면 돼.

“지금 누를게.”

아인을 보며 말한다.

“샾 공일공육 공사공삼 눌러 봐.”

“공일공육 공사공삼.”

숫자를 말하며 누르는 아인.

통화 연결음 비슷한 소리가 지나고 차단기가 열린다.

“됐다. 바로 갈게.”

-응. 보고 싶어. 빨리 와.

“알겠어.”

전화를 끊었다.

이 누나가 칭얼거림이 늘었네.

확실히 요즘 외로움을 좀 타는 거 같지?

전직도 있고, 여러 이유로 신분을 노출하기 쉽지 않은 상태라 따로 친구를 만들지 못하는 거 같다.

방송하면서 친구도 사귀고 하면 좋을 텐데.

랜선 친구는 몇 있는 거 같지만, 실제로 만나 친하게 지내는 건 아닌 거 같다고 지인에게 들었다.

집에 올라가니 문을 열어두고 기다리는 지애 누나.

“벌레 들어가겠다. 왜 나와 있어?”

“헤헤. 빨리 보고 싶어서?”

“아이구, 들어가자.”

“으으.”

아인과 함께 지애 누나 집으로 들어왔다.

신식 아파트라 그런지 공간이 넓어 보이네.

진짜 넓은 건가?

“이건 집들이 선물.”

“어머, 뭐 이런 걸 다 사 왔어? 공기 청정기? 이거 비싼 거 아니야?”

“에이, 누나 줄 선물인데 가격 생각을 왜 해.”

“호호, 고마워. 일단 밥 먹자. 내가 맛있는 거 많이 했어.”

아인과 눈인사를 하는 지애 누나.

온통 관심사가 나에게 꽂혀 있어 아인이 살짝 민망해하는 거 같다.

근데, 이 누나가 왜 이래?

예전이라면 색정이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제는 색정도 따로 없는데 뭔가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

외로워서 그런가?

“와아!”

“어우, 뭘 이렇게 많이 했어? 셋이 먹을 건데.”

“호호,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됐지 뭐야.”

“하하. 못 말린다니까.”

메인만 몇 개냐?

저번에 못 먹은 갈비찜에 김치찜도 있네? 잡채랑 불고기에 제육 볶음도 했네.

가운데 있는 건 부대찌갠가?

그 외 밑반찬도 종류가 몇 개냐?

“온종일 고생했겠어?”

“요리는 재밌어서 괜찮아.”

“다행이네.”

혼자 살면 챙겨 먹기 힘든데 요리가 재밌으면 그나마 잘 챙겨 먹겠지.

“뭐부터 먹어야 할지 모르겠네.”

“헤헤. 나도 만들고 보니까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

“어우, 너무 잘 먹고 가겠어요. 잘 먹겠습니다.”

아인이 인사를 하고 먼저 먹기 시작한다.

“갈비찜이랑 장어 먼저 먹어봐.”

“장어도 구웠어?”

“이건 구워진 걸 사뒀어. 덮밥 해 먹으려고 했었는데 그냥 너 오는 김에 구웠지.”

누나? 말하면서 왜 얼굴을 붉히는데?

“호호, 오늘 성민이 쭉쭉 빨리겠네.”

“어머, 비서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부끄러워요.”

여자 둘이 죽이 잘 맞는다.

음? 둘이 동갑이네? 친하게 지내면 좋겠는데?

“둘이 동갑이니까 친하게 지내면 좋겠다.”

“어머? 그랬어요? 비서님 엄청 동안이세요.”

“호호, 지애 씨도 엄청 이쁘시면서.”

여자어에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그렇게 칭찬 릴레이가 이어지다 둘이 알아서 말도 놨다.

“그래서 얘가 있잖아.”

“어머어머. 진짜 나빴네.”

“당사자가 옆에 있는데 나빴다니.”

-찰싹.

지애 누나가 내 팔을 때렸다.

“넌 좀 맞아도 싸.”

“아니, 갑자기 둘이 편먹고 이게 뭐야?”

“헤헤, 업보지. 업보야.”

내가 아인이한테 조금 나쁜 남자로 다가가긴 했지.

꽤 많이 울리기도 했고.

이렇게 친해진 김에 더 친하게 만들어 볼까?

“자! 케익이 왔습니다.”

“오오! 아이스크림 케익 좋아하는 건 또 어떻게 알고.”

상을 정리한 지애 누나가 케이크를 반긴다.

“정리는 대충 끝났으니까 디저트로 먹자.”

“응. 그래.”

“촛불 불까? 생일은 아니라 좀 그런가?”

“그래. 촛불은 하지 말자.”

지애 누나가 딱히 축하를 원하는 거 같지도 않아서 안 하기로 했다.

서운해하진 않겠지?

“곡 대박 난 거 축하해!”

“누나 고생 많았어. 활동은 못 하지만 곡 너무 잘 나온 거 같아.”

“호호, 다 성민이 덕분이지.”

지금 지애 누나의 노래는.

씹덕 중2병 감성에 딱히 대단한 곡이 아니라는 부류와.

철학적이면서 생각하게 하는 듣기 좋은 대단한 노래라는 부류가 싸우고 있다.

내가 준 곡이라고 한다면 후자의 의견이 힘을 얻겠지만,

지애 누나가 나라고 말할 생각이 없으니 계속 싸우겠지?

뭐, 언젠가 밝혀질 수도 있고.

곡은 아빠 이름으로 등록했지만, 제작자가 내 아빠인 걸 알면 다들 내 곡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아니면 부전자전이라고 하려나?

뭐, 어쨌든 그만큼 논란이 되는 건 곡이 인기 있다는 얘기니까.

“이런 날엔 술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술 좀 사 올까?”

“흐음, 누나 괜찮겠어?”

지애 누나는 술을 적당히 마시는 편이지만, 그리 즐기지 않아서 집에 술이 없었다.

아인이가 나가서 술을 사 온다고 했지만, 지애 누나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맨정신으로 느끼고 싶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말한 지애 누나.

너무 귀여운 모습이라 바로 자지가 껄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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