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206화 (206/450)

206.

애국가라도 부를까? 안 보이겠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아닌가?

하연의 모습을 계속 보면 안 죽을 거 같기도 하다.

-치이익!

“하으음, 이 소리만큼 절 흥분시키는 게 없다니까요. 하으.”

“진짜 너무 흥분하셨는데요?”

“어때요. 보는 사람도 없는데. 후후.”

하연은 묘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눈빛을 보냈다. 제가 보고 있는데요?

이거 또 신호 보내는 거 같은데? 그린라이트?

신앙이 없어서 조심스럽다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온다면 나도 소극적으로 대응할 순 없지.

“자꾸 그러니까 저도 흥분되네요.”

“그렇죠? 고기는 이렇게 야성적으로 먹어야 맛있어요.”

“하하, 어서 드셔요.”

“네. 하암. 흐으음, 이 육즙! 하으.”

진짜 야하게 먹네. 유티비가 오히려 절제한 거였어.

아니면 나한테 어필하는 걸까?

하연은 시킨 소고기를 끊임없이 구우며 맛있게 먹었다.

소고기가 모두 사라질 때쯤 다시 주문하는 하연.

“이제 돼지의 시간이에요. 호호. 제가 너무 먹나요?”

“하하. 너무 맛있게 드셔서 많이 드셨는지도 몰랐네요. 저도 모르게 계속 젓가락이 움직여요.”

“호호, 그렇게 말해 주시니 감사해요. 그럼 돼지도 제가 맛있게 구워 드릴게요.”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의 주문을 지켜본다.

삼겹살 목살 갈매기살까지.

아까 시켜둔 항정살을 먼저 올린다.

“기름이 적은 거부터 먹는 게 좋지만, 얘는 너무 오래 두면 안 되니까요.”

“하하, 그래요.”

한쪽에 항정살을 구우면 나온 목살을 함께 굽는다.

“흐음, 고기만 먹으니까 조금 마실 게 필요할 거 같네요.”

“아! 콜라 시킬까요?”

“으으응! 이런 분위기엔 소주죠!”

“아! 소주 좋죠.”

이렇게 먼저 술을 권하면 나야 땡큐지.

직원을 불러 살짝 도수가 있는 증류 소주를 시켰다.

“어머 술 좋아하시나 봐요?”

“적당히 마시는 편입니다.”

“호호,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얼음통에 얼음과 증류식 소주가 함께 나왔다.

도수는 40도지만, 부드러워서 먹을 만하더라고.

“자! 받으시죠.”

“감사해요.”

술은 남녀 사이를 급격하게 가깝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술을 시키자고 한 걸 보면, 역시 하연도 마음이 없진 않은 거 같다.

술이 들어가니 하연의 얼굴이 살짝 붉게 올라온다.

“주량이 어떻게 돼요?”

“흐으응, 저 한 병? 한 병 반? 정도요. 헤헤.”

살짝 취하니까 조금 귀여운 모습도 보이네.

저렇게 말하는 거 보니 최소 3병은 먹을 거 같다.

이거 한 병 정도는 괜찮겠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 술을 마셨다.

딱히 대화는 많이 오가지 않았지만, 눈짓과 몸짓으로 충분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술도 먹었겠다 살짝 떠볼까?

“하연씨.”

“네에?”

아까보다 취기가 많이 올랐는지 하연의 말꼬리가 늘어지기 시작했다.

“남자한테 인기 많으실 거 같은데 어때요?”

“아휴, 인기 없어요.”

“에이, 거짓말.”

“호호.”

웃으며 고개를 젓던 하연이 말을 꺼낸다.

“제가 술버릇이 좀 안 좋아서. 다 도망갔어요.”

“술버릇이 안 좋아요?”

“네. 막 안고 깨물고 그래요.”

그건 좋은 거 아니야?

내가 씨익 웃자 하연이 따라 웃는다.

“왜 웃어요?”

“하하, 그냥 하연씨가 안고 깨물면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어머, 농담도 잘 하세요. 호호호.”

하연이 손사래 치지만, 입꼬리가 올라가 내려오지 않았다.

“농담 아닌데요? 하연씨 빨리 취해 봐요.”

“아이, 어떻게 그래요. 처음 본 사이에.”

여우 같은 면이 있긴 하네.

물론, 여우 같은 면이 있다고 해서 몸을 막 굴리는 건 아니겠지만,

확실히 남자에 익숙한 느낌이 드는 거 같다.

어떻게 유혹해야 하는지도 잘 아는 거 같고.

복스럽게 고기를 먹던 하연은 어느 순간부터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다.

“다 드신 거예요?”

“네?”

“아까부터 안 드시는 거 같아서요?”

“아! 제가 술 마실 땐 잘 안 먹어요.”

그렇구나.

어쩐지 방송에선 술 마시는 모습이 거의 나오지 않던데, 이런 이유도 있는 거 같다.

“그럼 자리를 옮길까요?”

“어머! 2차도 가는 거예요?”

“이대로 헤어지면 아쉽잖아요.”

“호호, 어떻게 제 마음을 딱 아셨네요.”

나는 가만히 씩 웃어줬고, 하연도 따라 웃었다.

반응 하나하나가 확실히 남자가 푹 빠질만한 느낌이다.

나도 소문을 미리 듣지 않았다면 그냥 좋다고 헤벌레하고 있었겠지?

하연은 확실히 머리가 좋은 거 같다.

자기 미모를 알고 이용할 줄 안다.

지금도 취한 척, 얼굴에 열이 오른 척 손을 올리고 볼을 꾹 눌러 귀여운 표정을 만드는 게 예사 솜씨가 아니다.

어려서부터 남자한테 많이 시달렸겠지?

그래서 여우같이 행동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했을 테고.

그러다 보니 남자들이 오해하는 때도 많았을 거 같다.

그래서 소문이 나쁘게 나는 거고.

아마 그녀에게 고백했다가 차였거나, 고백은 하지 않았지만 들이대다 차인 남자들이 나쁘게 소문을 내고 다녔겠지.

이쁜 여자는 처신을 잘 해야 한다.

조금만 잘못해도 이미지 망치는 건 한순간이거든.

연예계에 있으면서 확실히 느끼고 있다.

하연도 어떤 질 나쁜 남자와 엮여서 소문이 안 좋게 난 게 아닐까?

내가 미인에 약해서 하연에게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는 거 같긴 한데.

그렇게 말이 안 되는 얘기는 아니지 않나?

주변에 그런 여자들 한두 명씩은 보이잖아.

여자들한테 정치질 당하고, 남자들이랑 친하게 지내다 소문 안 좋게 나고 그런 여자들.

보통 그런 애들이 정말 이쁘거나 몸매가 좋은데.

물론, 여자들과도 잘 어울리며 무리를 만드는 여자도 있지만, 그걸 잘 하는 애들은 드물다.

그리고 그런 애들은 조금 덜 이쁠 확률이 높다.

넘사로 이쁜 애들은 다른 여자의 질투 때문에 그렇게 무리를 만들지 못하거든.

“잘 안 드시면 이차는 과일 같은 거 어때요? 후식으로도 먹을 겸.”

“아! 과일 좋아요.”

“음, 밖에서 계속 먹기엔 저희 둘 다 인지도가 좀 있으니까. 술 사서 작업실로 가시죠?”

“네. 그게 좋겠어요.”

하연이 살짝 걱정하는 눈치인 거 같아서 그렇게 말했더니 표정이 환하게 핀다.

“밖에서 먹는 건 좀 부담스럽나 봐요?”

“아무래도 좀 그렇죠?”

“하하, 저도 그래요.”

이렇게 또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자연스럽게 작업실로 부른다.

작업실로 천천히 걸어가며 배달 어플로 과일 빙수와 모둠 계절과일을 시켰다.

세상 참 좋아졌어. 과일도 이렇게 배달이 되네.

빙수는 내가 먹고 싶기도 했고, 하연도 좋아할 거 같아서 시켰다.

술은 뭘 사 가는 게 좋으려나?

독주를 마셨으니 독주를 이어 마시는 게 좋겠다.

위스키나 몇 병 사 가야겠네.

편의점에 잠시 들러 위스키 여러 병을 산다.

“위스키 괜찮죠?”

“못 마셔요.”

“아! 그래요? 그럼 소주나 맥주 마실까요?”

“아뇨. 없어서 못 마신다고요. 호호호.”

아! 하연은 확실히 나보다 누나였지?

옛날 개그에 멋쩍게 웃었다.

“아휴, 술 취하고 기분 좋아서 제가 주책이네요.”

“하하. 재밌었어요. 주책이라뇨.”

“헤헤. 좋게 봐주시면 감사하구요.”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새초롬하게 웃는 하연.

외모가 화려하게 이뻐서 그렇지 딱히 동안은 아니니까.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하연은 30대 초반이지?

정확한 나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보다 누나인 건 알고 있다.

“그럼 들어갈까요?”

“네. 호호 음악 하시는 분 스튜디오에서 술 마시긴 또 처음이네요.”

“아! 첫 경험이에요?”

“어머, 호호, 네 처음이니까 상냥하게 부탁드려요?”

섹드립도 잘 받아 쳐 주는 게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처음이라니 영광이네요.”

“호호, 영광까지야.”

“그럼 잠시만요.”

작업실 테이블에 술을 올려두고 얼음을 챙겨온다.

나도 희성 선배처럼 위스키를 즐겨 보려고 좀 사둔 게 있다.

제빙기까진 아니어도 얼음 나오는 정수기를 설치했고.

아이스 버킷과 얼음 집게도 사 뒀다.

아직 술을 사서 채워두진 않았는데, 술은 작업실이 아니라 이사할 집에 채워 두려고.

뭔가 위스키 진열해 두면 성공한 남자 같고 멋있을 거 같다.

“흐음, 술 자주 드시나 봐요?”

“하하, 요즘 위스키를 좀 마시기 시작했어요.”

“아! 그래요? 어쩌다 마시게 된 거예요?”

“작곡가 중에 희성 선배님 아세요?”

내가 말을 시작하자 하연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집중한다.

이런 자세 하나하나가 남자를 홀리는 거 같다.

“아! 알죠! 엄청 유명하신 분이잖아요.”

“하하. 그렇죠. 그 선배님이랑 만났었는데요....”

희성 선배님과 만나서 느꼈던 감정을 재밌게 털어놨다.

하연이 리액션 좋게 받아주니 말하는 맛이 난다.

신앙이 없어서 나도 취기가 좀 올랐나 보다.

뭐, 성공한 남자의 생활이니 하는 좀 낯부끄러운 얘기까지 나와 버렸다.

“호호, 귀여운 면이 있으시네요.”

“아! 귀여웠나요?”

이런! 너무 연하남 포지션이면 안 되는데.

“이미 성공하신 분인데, 그런 걸 신경 쓰실 줄 몰랐어요.”

“뭐, 좋아하는 선배님에 대한 동경이죠?”

아마도 그런 거 같다.

나도 희성 선배 같은 사람이 되는 걸 꿈꿨던 때가 있으니까.

한창 작곡을 시작할 무렵엔 정말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하연씨는 롤모델이 있어요?”

“흐으음, 이쪽 업계는 롤모델이랄게 따로 없죠.”

“하긴, 먹방 자체가 생긴 지 얼마 안 됐죠.”

“그래서, 힘들어요. 컨텐츠 만드는 거도....”

분위기 좋게 하연이 대화를 이어간다.

조용한 분위기에 술이 돌고 대화가 이어지니 확실히 가까워지는 기분이다.

“우리 말 놓을까요?”

“어머, 그럴까? 호호, 누나라고 불러 봐.”

하연이 살짝 눈웃음을 흘리며 말한다.

여기서 누나라고 부르면 안 되겠지?

“누나는 싫은데요?”

살짝 강한 눈으로 하연에게 다가갔다.

“어머, 박력 있네?”

하연도 고단수는 고단수네.

“그럼 어떻게 부르고 싶어?”

하연이 은근한 말투로 말한다.

“뭐가 좋을까?”

“호호, 그건 자기가 결정해야지.”

은근슬쩍 자기라고 불렀네?

“자기?”

“어머, 내가 자기라 했나? 호호호.”

살짝 눈을 피하는 것까지.

연기는 아니겠지만, 몸에 밴 여우 짓이 확실히 매혹적이다.

나도 자꾸 슬금슬금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제대로 통하고 있네.

“자기 한잔할까?”

“호호, 듣기 좋네. 짠!”

내가 자기라 부르자 얼굴을 조금 붉혔지만, 싫지는 않은지 잔을 들며 기분 좋게 짠을 외치는 하연.

“우리 자기는 주량이 어떻게 돼?”

“나? 으음, 적당히 마시는 편이지.”

취해본 적 없으니까. 주량은 잘 모른다.

과거에 취하지 않았던 게 마기 덕분 아니었을까?

설마? 이제는 취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몇 번 술을 마시긴 했지만, 편한 자리에서 제대로 마신 적은 없다.

다음에 한 번 실험해 봐야겠는데?

내가 원래 주량이 강한 건지 아니면, 주량도 평범해졌는지.

비지니스 하는데 주량은 꽤 중요한 요소니까.

물론, 내가 말하는 비지니스는 새로운 여자 만날 때겠지만.

“하으, 나는 조금 취하는 거 같아.”

말하며 술잔을 볼에 가져가는 하연.

확실히 붉게 달아오른 게 취기가 많이 오른 모습이다.

“그럼 그만 마실까?”

“하으, 아니이! 이렇게 마신 김에 먹고 죽어야지! 술을 중간에 끊는 게 어딨어!”

“취하면 남자들 도망간다면서? 나도 도망가면 어떡해?”

“아이잉, 자기는 도망가면 안 돼!”

장난스럽게 말을 이었더니 하연이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헤헤. 이제 도망 못 가지.”

“어후, 오히려 좋아?”

“호호호.”

날 끌어안고 말하는 하연.

살짝 취가가 올라서 이러는 거 같기도 한데, 그보단 좀 더 강한 호감 표시와 여우 짓 같다.

날 안고 눈치 보는 거 다 봤다.

“근데 이러면 술을 어떻게 마셔.”

“먹여줘어.”

술 취하니 아까의 교양있고 부드러운 모습보다는 좀 더 애교 있는 모습이 됐다.

나한테만 이러는지 원래 술 취하면 이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술 취해서 매번 이렇게 달려들면 소문은 안 좋게 날만 하다.

“이렇게?”

잔을 들어 하연의 입가로 가져간다.

“으으응!”

하연이 고개를 저으며 술잔을 밀어냈다.

종잡을 수가 없네.

취한 사람 대하는 건 언제나 어색하다.

나는 취기가 올라도 갑자기 텐션이 오른다거나 뭔가 많이 바뀌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가 취한지 잘 모르기도 하지만,

내가 취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어려워하기도 한다.

“하으응, 있잖아아.”

“뭐가 있어?”

“으으응, 정말 몰라?”

내가 뭘 모른다는 거냐?

하연의 입이 삐죽 나온다.

안으면서 눈치 본 거까진 생각하면 엄청 취한 건 아닌 거 같은데?

여기 와서 다시 앉으니 취기가 확 올랐나?

눈이 맛이 갔는데?

하연이 살짝 눈을 흘기며 말했다.

“으이, 자기는 숙맥이구나.”

“내가 숙맥 같아?”

“이럴 땐 이렇게 주는 거라고!”

하연이 테이블에 있던 과일 중 방울토마토를 입에 문다.

점점 다가오는 하연의 얼굴.

“어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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