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200화 (200/450)

200.

잠시 고민해 봤지만, 역시 소연의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거 같다.

“그래. 그러자.”

“헤헤.”

소연이 밝게 웃으며 안겼고, 나는 곡 작업을 시작했다.

“나 작업할 거니까. 쉬다가 들어가.”

“네.”

세 사람을 뒤로하고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음, 세 명의 개인 곡은 이 정도면 됐다.

그럼 슈가 페어리 곡을 넣어야 하는데.

예전에 선애와 처음 관계했을 때 나온 곡을 편곡했다.

산뜻하고 상큼한 느낌의 댄스곡이라 슈가 페어리와 딱 어울리는 건 아닌데.

또 이런 느낌의 슈가 페어리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파워풀한 곡은 정규 앨범 후속곡으로 있으니 이 곡이 좋겠다.

다시 편곡을 시작한다.

“이제 마스터링만 다 맡기면 되겠네.”

슬슬 가수와 유티버 단체 곡 녹음도 시작하면 되겠다.

앨범에 들어갈 곡이 든 폴더를 열었다.

선유, 윤진, 지인, 시연, 민하, 미리, 초유, 세린, 선애, 아효, 연화, 소연, 수희, 슈가 페어리.

가수 단체, 유티버 단체, 회사 단체 곡까지.

17곡이네?

한 곡 더 해서 9곡씩 두 장으로 내면 되겠다.

마지막 한 곡의 제목은 S.Min으로 정했다.

다른 애들 이름은 다 있는데, 내 앨범에 내 이름이 없으면 안 되지.

이 곡은 현정 누님께 불러 달라고 할까?

현정 누님도 한 곡 챙겨 드리면 좋아하시겠지?

그래. 앨범 윤곽은 이렇게 잡아 두자.

잠깐! 미국에서 세 명 더 오잖아?

그녀들을 뺄 순 없지.

으음, 그럼 네 곡을 추가해서 11곡씩 2장?

셋이 한 곡씩 부르고, 세 명이 함께 부르는 곡 하나 추가할까?

아니! 한나한테 불러달라고 할까?

음, 이건 세 사람 오면 생각해 봐야겠다.

단체 곡들 빼면 완전 여가수 앨범이네.

이런 거로 논란이 생기거나 하진 않겠지?

레돈 활동 시작한 다음 내면 좀 낫겠지?

괜한 걱정이 올라왔다.

뭐, 어쨌든 노래들은 좋으니까.

승철 형님 이후로 남자와 작업한 적이 없다 보니 내게 논란이 스멀스멀 올라오긴 한다.

여자를 엄청 밝힌다던가, 생활이 문란하다던가 하는 의심들.

근데, 사실이라 반박할 수가 없어서 그냥 놔두는 중이다.

그렇게 크게 문제 되지도 않고.

“흐음, 미국 여자들 오면 완성해서 보내자.”

마스터링 일정을 또 미룬다.

어차피 시간은 넉넉하다.

“그럼, 슬슬 가 볼까?”

오늘도 레돈의 연습을 봐 주기로 했다.

딱히 스케쥴을 잡고 레돈을 만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스케쥴이 나는 날 대부분은 레돈에 투자하고 있다.

내게 레돈은 그만큼 큰 도전이다.

곡만 가지고 내 방식대로 만든 남자 아이돌.

레돈이 성공한다면 다음 걸그룹도 분명 성공할 거란 확신을 가질 수 있겠다.

그녀들은 색정과 신앙으로 단단히 무장할 테니까.

아! 오디션에서 뽑히는 애들은 어쩌지?

얘네는 신앙을 쓰기도 안 쓰기도 애매한 거 같은데.

흐음, 일단 방송하면서 상태 봐서 결정해도 되겠지.

어쨌든 밀어줄 애들 윤곽은 거의 잡혀가니까.

아! 생각난 김에 애들 영상이나 더 확인해 보자.

남 팀장님과 김 피디님이 이미 후보군을 뽑아 보내줬지만, 혹시 놓치고 지나갈 원석이 있을 수도 있어 영상을 천천히 시청한다.

레돈 보지 말고 영상이나 쭉 볼까.

땀 냄새나는 남정네들보다야 걸그룹 지망생 영상이 훨씬 즐겁지만,

“할 일은 해야겠지.”

아인이 오기 전까지 적당히 영상을 본다.

“왔어?”

“응, 뭐 봐?”

“이번 오디션 참가자들.”

“와!”

내가 보던 영상을 아인도 옆으로 다가와 같이 시청했다.

“밥 먹고 출발하자.”

“응.”

아인이 알아서 밥을 시켰고 음식이 올 때까지 영상을 시청했다.

“예쁜 애들이 많구나.”

“너도 이뻐.”

“헤헤.”

아인의 허리를 안으며 당겼다.

웃으며 내게 안기는 아인.

음식이 올 때까지 아인과 살짝 야릇한 꽁냥거림을 즐긴다.

밥이 도착하고 식사를 마쳤다.

“갈까?”

“응.”

가는 길에 디저트로 마실 커피를 한잔 사 차에 타는 아인.

내게 커피를 건네며 말을 꺼낸다.

“나도 할 수 있을까?”

“응? 뭘?”

아인이 아니라며 고개를 턴다.

“아이돌이 하고 싶어?”

“아니, 네가 그랬잖아. 나중에 인방으로 데뷔할 거라고.”

아아! 까맣게 잊고 있었네?

“그렇지.”

능청스럽게 대답한다.

잊고 있었다고 하면 상처받겠지?

“나는 게네들처럼 빛나지 않는걸.”

“응? 무슨 소리야?”

“얼굴만 이쁘면 뭐해. 끼가 하나도 없잖아.”

“흐음, 그건 네가 판단할 문제가 아닌데?”

아인이 고개를 돌린다.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끼가 있고 없고는 내가 더 정확할걸?”

“그건 그렇지.”

“근데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

“그냥. 조금 싱숭생숭하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얘는 왜 항상 이런 식인 걸까?

내게 말도 안 하고, 혼자 생각해서 결론을 내린 다음.

나에게 통보조차도 없이 스스로 먼저 행동한다.

뭐, 나쁜 성격이라곤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 여자는 내게 좀 더 의지하고 의논했으면 좋겠는데.

입을 열려다 참는다.

그래. 지금은 너무 감정이 격양됐으니까 나중에 말하자.

“출발할까?”

내 말에 부드럽게 차를 출발시키며 말하는 아인.

“나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인데, 네게는 계속 반짝반짝한 아이들이 다가올 거잖아. 그때도 내 자리가 있을까?”

그게 문제였어?

이 자존감이 바닥인 생물은 내게 계속 젊고 예쁜 아이들이 다가와 언젠가는 자신을 잊는 건 아닐지 걱정하는 거다.

나의 소유욕과 집착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내가 언제까지 이럴지 두려운 거겠지?

그래, 안 봐도 뻔하다.

내가 언제까지고 자신과 함께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거다.

멍청하긴.

신앙의 존재를 모르니 그럴 수 있겠다.

신앙은 만능이다.

신체를 변형하며 느꼈다. 충분한 신앙만 있다면 노화에도 저항할 수 있다.

꾸준히 내 여인들에게 신앙을 둘러주는 데는 그런 이유도 있다.

자신이 언제까지고 아름답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잘못됐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으니 답답하네.

스트레스에 다시 머리에 통증이 온다.

저번에 느꼈던 이상한 감각.

“으음.”

“성민?”

“괜찮아.”

걱정하는 아인의 목소리에 대답한다.

조금 쌀쌀 맞는 대답이 나온 거 같은데.

머리가 아파 더는 생각을 못 하겠다.

왜 이래?

신앙을 사용해 통증을 누른다.

“날카롭게 말해서 미안, 너무 스트레스를 받나 봐. 머리가 좀 아팠어.”

“미안해. 스트레스 주려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괜찮아. 정말. 너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 아니니까.”

가장 큰 원인은 빌리가 아닐까?

흐음, 사실 빌리의 일로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빌리의 일은 조금 짜증 나는 정도지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진 않는다.

방금 아인의 말도 그렇다.

평소라면 장난스러운 말로 아인의 기분을 풀어주며 부드럽게 넘어갔을 만한 일이다.

내가 왜 이러지?

조금 날카로워진 거 같다.

뭔가, 변한 거 같은데 뭐가 변했는지 모르겠다.

신앙으로 몸을 점검해봐도 아무런 이상이 느껴지지 않는다.

무언가가 위험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는 거 같은데.

딱히 위험할 일이 없는데.

이 이상한 감각 때문에 내가 더 날카로워진 거 같다.

흐음, 날 잡고 한번 이 감각을 파헤쳐 봐야겠는데.

“도착했어. 괜찮아? 지금이라도 병원 가 볼래?”

“아니야. 다 나았어. 괜찮아. 갈까?”

“너무 무리하지 말고. 꼭 지금이 아니라도 병원은 가봐.”

신앙은 병원에서 고치지 못 하는 것도 고칠 수 있다.

내 문제는 알아서 해결할 수 있으니 괜찮아.

아인에게 웃어주고 SP로 들어선다.

미리 연락받은 비서님이 나왔고, 레돈의 연습실로 향한다.

“안녕하세요!”

“연습 많이 했어?”

“네!”

“그럼요!”

활기찬 레돈을 보니 조금 기분이 나아지는 거 같네.

“그럼 일단 볼까?”

“네!”

빠르게 움직이는 레돈.

안무도 노래도 꽤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아직 거슬리는 부분이 너무 많다.

“흐음, 저번에 말했던 게 별로 고쳐지지 않았네?”

한 명 한 명 찍어 피드백한다.

“나아진 게 보이지 않아. 연습 많이 했다며?”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내가 아니라 너희 복귀를 기다리는 팬들이겠지. 팬들에게 이따위 무대 보여 줄 생각이야?”

아! 감정이 너무 격해졌다.

거슬리는 부분이 많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하지 않아도 될 말이 나왔다.

“후우, 미안하다. 내가 조금 감정이 격해졌네.”

“아, 아닙니다. 저희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 말고 잘. 아니, 그래. 같이 노력해 보자.”

혼란스럽다.

신앙을 사용해 감정을 억누르며 레돈에게 다음 과제를 내린다.

“다음엔 더 잘하자.”

“네!”

다행히도 결의를 다지며 내 말에 대답하는 레돈.

상처받고 위축될까 봐 걱정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나 보다.

다행이네.

나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좀 필요할 거 같다.

급한 스케쥴 없지?

아인을 집으로 보내고 혼자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혼자 있고 싶은 기분이라서.

“왜 이러지?”

뭐가 문제야?

아침까진 슈가 페어리 애들이랑 즐겁게 보냈잖아?

빌리가 문제는 아닌 거 같은데?

자리에 앉아 정신을 집중한다.

이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내고야 말겠다.

신앙을 사용해 몸 전체를 관조한다.

이상 없음.

가장 문제가 되는 머리 쪽으로 집중한다.

뇌세포 하나하나 점검한다는 마음으로 모든 신앙을 뇌 쪽으로 집중했다.

갑자기 머리에서 신앙이 뭉치기 시작했다.

이거 왜 이래?

얘들아? 내 말 안 듣니?

통제를 벗어난 신앙.

마치 내단을 만드는 것처럼 신앙이 둥글게 뭉쳐 돌기 시작했다.

“크윽.”

송곳으로 머리를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신앙을 다스리기 위해 집중을 더 해 보지만, 미동조차 없다.

“커읍.”

이미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를 키운 신앙이 머릿속에서 부풀어 오른다.

터지는 건 아니겠지?

정말? 진짜? 시, 신앙아?

점점 부풀어 오르는 신앙.

지, 진짜 터질 거 같은데?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런 방법을 모르겠다.

으음, 아! 그래. 이럴 땐 스님을 부르는 게 제일 좋지 않을까?

어떻게 부르지? 지금은 사용할 수 있는 신앙도 없는데.

그냥 부른다고 스님이 나타나진 않을 거 같다.

“크읍, 스, 스님. 도, 도와. 커흑!”

머릿속에서 신앙이 폭발했다.

이,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뭐, 뭐라도 해야.

떨리는 손으로 폰을 잡아보려 하지만 실패했다.

점점 의식이 멀어진다.

“아, 안 돼!”

마지막 말을 끝으로 전기가 나가듯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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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때가 됐구려 시주.”

성민의 방.

바닥에 쓰러진 성민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스님이 함께 있다.

“시주에게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겁니다.”

성민의 윗옷을 벗기는 스님.

승복에서 주섬주섬 무언갈 꺼낸다.

피처럼 검붉은 액체가 든 병과 붓.

기묘한 문양이 그려진 접시.

검붉은 액체를 접시에 따른 스님은 성민을 등이 보이게 눕힌다.

잠시 화장실로 가 젖은 수건과 마른 수건을 가져온 스님.

젖은 수건으로 성민의 등을 깨끗이 닦고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는다.

붓을 사용해 검붉은 액체를 잘 섞는 스님.

붓에 액체를 덜어내고 성민의 등에 가져간다.

-텁!

붓이 성민의 등에 닿기 직전.

몸을 움직인 성민은 스님의 팔목을 잡았다.

“아니!”

당황한 음성.

스님은 손을 빼보려 했지만, 강한 악력에 손이 빠지지 않는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성민.

감았던 눈을 뜬다.

성민의 눈엔 흰자위가 없이 온통 검은색으로 가득했다.

“물러서라.”

“너, 너는!”

성민이라곤 믿을 수 없는 걸걸한 목소리.

마치 칠판을 긁는 듯한 목소리가 나왔고 스님은 놀라 붓을 떨어트린다.

“네가 건드릴 사람이 아니다.”

“무슨! 큭.”

스님과 성민이 서로 가만히 노려 본다.

기운과 기운이 충돌했고, 그 충격파에 주변 기물들이 넘어간다.

“허허, 오늘은 날이 아닌 거 같군.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소, 시주.”

“다시는 오지 마라!”

“허허허.”

스님의 웃음소리를 끝으로 스님이 가져온 기물과 함께 사라졌다.

성민은 가만히 앉아 심호흡했고, 성민의 집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풀석!

다시 쓰러지는 성민.

잠시 시간이 지나고 성민의 몸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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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으응.”

의식이 돌아오는 순간 온몸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허으으.”

일단 똑바로 누워 상태를 점검하자.

“커흑.”

조금 움직이는데도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

겨우겨우 몸을 제대로 눕혔다.

이제 신앙을, 어?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신앙이 없어?

색기는?

없어?

지금까지 날 도와 함께하던 기운들 그 모든 기운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뭐, 뭐지?

“크윽.”

살짝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눈동자만 굴려 방을 확인한다.

시야에 보이는 스마트 폰.

다행히 가까운 곳에 있었구나.

“끄으윽.”

평소 음성인식을 꺼둔 걸 여기서 후회하게 될 줄이야.

고통을 참으며 아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민아?

“크으으.”

-성민아?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전화하는데 너무 많은 심력을 소모했다. 말은 나오지 않았고, 아인의 목소리에 안심이 되며 긴장이 풀렸다.

그대로 다시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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