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194화 (194/450)

194.

정정한 모습으로 바르게 앉아있는 선희 선생님.

몸 관리를 얼마나 하시는지 나이에 맞지 않는 동안과 다부진 몸이 보인다.

뭐, 할머니라 생긴 주름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정말 정정하단 느낌이 풍기는 모습.

대가답게 압도적인 분위기가 있다.

선생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씀하셨다.

“어서 와요. 음식은 미리 주문했어요.”

“아! 감사합니다. 여기 앉으면 될까요?”

“네. 앉아요.”

평소에 목 관리를 위해 크게 말하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정말인가 보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호호, 저도 반가워요.”

선생님이 손을 뻗어 내게 악수를 권하셨고 나는 바로 양손으로 선생님의 손을 잡았다.

“부담 갖지 말고 들어요.”

“네. 잘 먹겠습니다.”

음식이 나왔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천천히 음식을 먹지만 살짝 선희 선생님의 눈치를 안 볼 수는 없다.

평소 건강을 위해 소식한다는 얘긴 들었는데, 확실히 아주 천천히 꼭꼭 씹어 드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식사 동안에는 어떤 얘기를 하는 게 좀 그래서 조용히 밥을 먹었다.

“흐음, 앨범에 가수 단체 곡을 만든다고요?”

“네. 선생님이 관심을 두신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호호, 영광까지야. 일개 딴따라에 불과한데요.”

“아효, 선생님이 딴따라라뇨.”

선희 선생님이 고개를 젓는다.

“가수는 그냥 가수일 뿐이죠. 호호, 노래가 좋아서 저도 참여하고 싶을 뿐이에요.”

“저야 참여만 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죠.”

“호호, 희성이한테 들은 대로 예의가 있으신 분이시네요.”

“네? 아! 박희성 선배요?”

둘이 친했나? 뭐, 선희 선생님이 희성 선배 노래를 꽤 부르긴 했지?

“네. 사실 이번에도 희성이가 얘길 해줘서 저도 알 수 있었어요.”

“아! 그랬군요.”

감사 인사라도 드려야겠네.

식사 자리는 별일 없이 끝났다.

조선희 선생님이 참여한다는 확답을 받은 것만으로 지금의 식사는 의미가 있었다.

와! 내 앨범에!! 선희 선생님이?

우선 희성 선배님께 감사 전화를 드려야겠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선배님 성민입니다.”

-아아, 요즘 바쁘지?

“하하, 조금 바쁘네요. 오늘 조선희 선생님 만났습니다.”

웃음소리가 들리고 희성 선배의 말이 들렸다.

-얘기는 들었네. 자네 앨범에 기대가 크다는 말만 했는데, 연락까지 하셨을 줄은 몰랐네.

“정말,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맛있는 밥에 술이나 한잔 사게.

“아휴, 당연히 그래야죠. 날짜 잡을까요?”

지금이라면 선배님께 뭐라도 해 드릴 수 있을 거 같다.

국내 최고라고 해도 손색없는 선생님께 내 앨범 얘기도 해 주시고.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저번에 문자 보내고 밥 먹자는 약속도 못 지켰는데.

이런 못난 후배는 반성합니다.

-흐음, 오늘 일 없으면 오늘 보는 게 어떻겠나?

“오늘이요? 잠시만요.”

오늘 뭐 있었나?

아인에게 묻는다.

“오늘 나 스케쥴 없지?”

“흐음, 중요한 건 없어. 미뤄도 되고.”

“오케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오늘 가능합니다.”

-흠, 그럼 저녁에 보는 게 어떤가?

“좋습니다.”

약속을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누구야?”

“박희성 선배님.”

“아, 그 아저씨 알아.”

“그분 보기로 했어. 저녁에.”

아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몰아 작업실로 간다.

선배님 작업실도 멀지 않은 곳이라 우린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뭐라도 사가야 하나.”

“뭘 사가?”

“선희 선생님이랑 연결해 주신 분이 희성 선배님이시거든.”

“그래? 흐음, 뭐 좋아하시는지 알아?”

그럴 땐 꺼라위키가 최고 아닐까?

정보 좀 찾아봐야겠다.

바로 구할 수 있는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해 가야지.

잠시 자료를 찾아보니 평소 빈티지한 걸 좋아한다는 사실 뿐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무난하게 좋은 술 한 병 사 가자.

술 좋아하시는 거 같으니까.

“정비서. 잠깐 나가서 좋은 술 한 병 사다 줘.”

“응? 술? 알았어.”

카드를 주며 아인을 시켰다.

나는 살짝 끝내야 하는 일이 있어서.

작업실에 혼자 들어온 나는 컴퓨터를 켜고 작업을 시작한다.

슬슬 드림 스테이지 두 번째 곡을 보내야 하기 때문.

깜박하고 있었다.

우연이 데뷔만 생각했지, 다음 방송을 생각 못 했네.

방송에 나오려면 당연히 노래가 먼저 공개되고 참가자를 모집해야 하는 건데.

나는 우연이 데뷔 이후에 그 작업을 할 생각을 했다.

우연이 데뷔가 얼마 안 남은 만큼 다음 방송이 나가려면 최대한 빨리 곡을 보내줘야 했는데,

나는 데뷔만 신경 썼지 다음 곡은 까맣게 잊고있었다.

급했더 김 피디님이 발을 동동 구르다 내게 말을 하셨다.

진작 말 하시지.

내가 어련히 보낼 줄 아셨나 보다.

그래서 급하게 곡을 보내기로 했다.

“흠, 이 곡이 적당하겠네.”

예전에 현정 누님과 처음 섹스 했을 때 얻었던 곡이다.

클래식을 접목한 곡으로 곡이 좀 길다.

약 8분이 되는 연주곡 분위기의 곡.

제목은 ‘장마’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분위기긴 한데,

연주곡만으로 내기엔 뭔가 조금 부족하다.

나 스스로는 아직 채울 방법을 찾지 못해서 놔둔 곡.

이번에도 짬 처리 느낌으로 곡을 넘겨야겠다.

김 피디님께 곡이 좀 길다고 했는데, 괜찮다고 하셨으니까.

뭐, 알아서 하시겠지?

훌륭한 연주곡이지만, 연주곡으로 남기엔 부족한 곡.

과연 어떤 참가자가 어떤 모습으로 노래할지 상상이 잘 안 된다.

곡을 드림 스테이지에 맞게 약간 편곡해 보내고 일어났다.

“왔어?”

“응. 다 했어?”

“응.”

“여기.”

언제 와있었는지 내 작업을 지켜보던 아인이 종이 상자에 담긴 술을 건넨다.

“이게 뭐야?”

“나도 추천받아서 샀어.”

글렌피딕 30이라고 적혀있다.

“얼마 줬어?”

“백 삼십만 원쯤?”

“그래?”

좋은 건가 보다.

그래 선물은 이 정도면 됐겠지.

위스키를 챙겨 두고 잠시 쉰다.

아인은 날 약속장소로 데려다주고 퇴근할 예정.

“피곤해?”

“으응? 아니, 그냥 조금.”

생각할 일이 좀 있다.

“무슨 고민 있어?”

“고민까진 아니고 선택의 문제지.”

“뭔데 말해봐.”

지인이에게 연기 제안이 들어왔다.

아직 지인이한테 말은 안 했는데, 고민된다.

지인이는 지금 예능도 음악도 활발히 활동하는 만큼 연기를 배울 시간이 부족하다.

연기를 잘 하는지, 못 하는지 아직 모르는데.

갑자기 연기를 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어지간한 연기 제안은 다 거절하는데,

이번에 온 제안은 조금 특별했다.

한국 최고의 감독.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상을 휩쓴 감독.

나온 영화 세 편이 연속으로 아카데미 상을 받은 전설적인 감독.

정필상 감독.

아직 나이도 그리 많지 않아.

미래가 가장 기대되는 감독으로 꼽히고 있다.

그 정필상 감독이 지인이의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연락을 해왔다.

다음 작품에서 비중이 크진 않지만, 꽤 중요한 역할로 등장한다고 한다.

여기에 지인을 출연시키는 게 맞을까?

엄청난 기회긴 한데.

양날의 검이다.

조금만 못 해도 지인이 멘탈도 갈리고, 욕은 있는 대로 먹을 수 있다.

“흐음, 일단 지인이한테 말 해봐야겠지?”

나중에 얘기하자.

아직 영화 제작 초기 단계라 시간은 충분하다.

근데 영화 촬영을 해외에서 한다고 들었다.

그동안 지인이 스케쥴이 모두 중지될 텐데.

그게 가장 걸린다.

“흐음, 슬슬 갈까?”

“응?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고민하다 보니 약속 시각이 가까워 왔다.

아인이 알려줘 일어나 준비한다.

“가자.”

“응.”

아인과 함께 차를 타고 출발했다.

“그럼 들어가.”

“그래.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하하, 별걱정을 다 하네. 너도 운전 조심히 가.”

아인과 다정히 인사를 마치고 내렸다.

잠시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안으로 들어선다.

조용한 술집.

룸으로 이뤄진 고급 술집이라 들어서니 직원이 안내를 나온다.

“안녕하세요. 안내 도와드릴게요.”

“아. 네.”

뭘 묻지도 않고 바로 안내를 한다.

내 얼굴을 보고 알아본 거겠지?

그래도 보통은 물어보지 않나?

뭐, 희성 선배님이 미리 말 해뒀나 보다.

“여깁니다.”

“네. 감사합니다.”

점원이 문을 열어줬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안 오셨네?

잠시 앉아 기다린다. 얼마 가지 않아 문이 열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왔나? 오래 기다리진 않았지?”

“네. 저도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그래. 앉지.”

희성 선배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고, 나는 종이 상자를 건넨다.

“너무 감사해서 약소하지만 준비했습니다.”

“어우, 뭐, 이런 걸다. 그냥 밥이나 사면 되는걸.”

“하하, 별거 아닙니다.”

희성 선배가 상자를 꺼내 보신다.

“허허, 이게 별것이 아니라니. 좋은 위스키 잘 마시겠네.”

“하하. 받아주셔서 감사하죠.”

분위기 좋게 자리가 이어졌다.

음식은 나쁘지 않았고, 술도 적당히 들어갔다.

“흐음, 자네 앨범은 잘 진행 중인가?”

“네. 그렇죠. 이제 섭외는 마무리 단계예요. 그런데 소식은 어떻게 들으셨어요?”

“하하, 나랑 친한 친구들이 섭외돼서 알았지.”

“아, 그러시군요.”

희성 선배가 술을 한 잔 따라 준다.

“흐음, 이런 좋은 선물도 받았는데, 이대로 보내긴 아쉽구먼, 내 집에서 한잔 더 할 생각 있는가?”

“저야 영광이죠.”

신앙이 있어 술에 취하지 않아 술자리가 부담되지 않는다.

오늘 스케쥴도 없고, 내일 스케쥴에 방해도 되지 않으니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지.

운이 좋다면 희성 선배의 영업 비밀도 알 수 있고.

“그럼, 우리 집으로 가지.”

“네.”

그렇게 자리를 마무리했다.

아직 매니저가 대기하고 있는 선배의 차 안.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선배의 집에 왔다.

“들어 오게.”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들어간 집은 고요했다.

“여기로 앉게.”

“네. 그럼.”

선배님이 안내해 준 자리에 앉아 집을 조금 둘러 봤다.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풍기는 고풍스러운 느낌의 인테리어.

확실히 성공한 중년 느낌이 나는 집이다.

흐음, 나도 나중에 이런 집에 살까?

저택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집.

언젠가 만들어서 내 여자들 다 데리고 살아야지.

“흐음, 자네가 준 술도 좋지만, 오늘은 내가 한잔 대접하지.”

“아휴, 대접이라뇨. 술맛도 잘 모릅니다. 하하.”

“허허, 그럼 자주 불러서 술맛 좀 알려줘야겠구먼.”

“영광이죠.”

희성 선배를 도와 이런저런 세팅을 도왔다.

집에 제빙기도 있네.

와! 냉장고도 술 냉장고가 따로 있구나.

선배의 주방을 구경하니 신이 났다.

“허허, 신기해 보이는군.”

“하하. 뭐가 많네요.”

“술에 취미를 붙이니 자꾸 이것저것 사게 되더라고.”

“아아, 그렇군요.”

술잔과 얼음을 세팅하니, 선배가 술을 꺼내 왔다.

그 사이 매니저가 과일을 사 왔다.

아니, 이렇게 깎아 둔 과일은 어디서 사 오는 거지?

“그래, 퇴근해 봐.”

“네.”

희성 선배가 오만원권 한 장을 매니저에게 주며 말한다.

흐음, 매니저 대하는 게 무슨 웨이터 대하는 거 같아서 조금 이상하네.

뭐, 내가 신경 쓸 부분은 아니니까.

“그래. 들지.”

“네.”

간단하게 술을 마시며 음악에 관한 얘기가 시작됐다.

“자네는 어떤 식으로 영감을 얻나?”

“으음, 딱히 루틴은 없는데요. 불현듯 떠오르기도 하고, 뭔가 상황이 있을 때 얻기도 하죠.”

섹스요 섹스! 라고 할 순 없어 대충 둘러댄다.

“허허, 진짜 천재였군.”

“에이, 천재라뇨. 저는 아직 멀었죠.”

“아무것도 없이 영감을 얻는 건 천재의 영역이지.”

“하하, 그런가요?”

희성 선배가 묘한 눈빛을 한다.

“나도 예전엔 자네같이 영감이 떠오르던 시절이 있었지.”

“아, 지금도 여전히 좋은 곡을 쓰시면서요.”

“허허,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사실인 걸요.”

희성 선배의 곡은 여전히 나오고 있고, 항상 트렌디하다며 극찬을 받는다.

많은 가수가 선배의 곡을 받고 싶어라 하고, 많은 작곡가가 선배를 롤 모델 삼는다.

어찌 보면 나와 참 비슷한 면이 많은 사람이다.

딱히 스타일이 정해져 있지도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느낌의 좋은 곡을 만드는.

설마 나와 비슷하게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건 아닐까?

“자네는 슬럼프가 없었지?”

“하하, 활동 시작한 게 얼마 안 되니까요.”

사실 따져보면 첫 섹스를 해서 마기의 존재를 알 게 되기 전까지가 슬럼프 아니었을까?

아니, 그때는 그냥 실력이 부족했던 거 같기도 하고.

딱히 이때가 슬럼프다 하는 건 없다.

“나는 많이 봐왔다네.”

선배가 술로 목을 축인다. 나도 따라 술을 조금 입에 머금는다.

“슬럼프에 빠져 안 좋은 길로 빠지는 후배를 너무 많이 봤어.”

“그렇군요.”

내 얘기하는 건 아니겠지?

내가 슬럼프에 빠지는 걸 걱정해 주시는 거겠지?

지금까지 잘 대해 줬는데 갑자기 비꼬는 건 아니겠지?

뭔가 생각이 있어서 하는 이야기 같다.

“이걸 본 적 있나?”

희성 선배가 품에서 하얀 가루가 든 지퍼백을 꺼냈다.

저건 설마 마약?

어? 마기? 마기가 저기서 왜 느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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