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유티버 짬 먹는 하마. 본명은 마하연. 이름을 거꾸로 하면 연하마라서 별명이 하마라고 한다.
그래서 유티버 채널명도 하마로 지었다는 얘기를 본 적 있다.
나이는 30대 초반으로 알고 있는데, 워낙 잘 꾸미고 다녀서 그 나이로 안 보인다.
댓글만 봐도 10살은 어려 보인다는 댓글이 엄청 많다.
“자! 오늘 찍을 영상은 먹을 때 듣기 좋은 노래입니다!”
컨텐츠가 시작했다.
아쉽게도 마하연이 노래하는 건 아니었고, 채널 주인이 노래하는 데 옆에서 먹는 역할.
채널 주인이 음식을 먹으며 듣기 좋은 노래를 추천하고 마하연은 실제로 그런지 검증하는 컨텐츠다.
영상의 재생 시간을 확인하니까 영상 길이가 100분이 넘어간다.
꽤 긴 영상이네?
풀 영상이었나보다. 어쩐지 자막이 없더라.
어차피 잠도 안 오고 할 일도 없는데 영상이나 보자는 심정으로 계속 시청한다.
하연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채널 주인은 노래를 부른다.
디너쇼 같은 컨셉.
노래가 한 곡 끝날 때마다 하연이 이 곡은 음식과 조화가 어쩌구 이야기하는데,
아무리 들어도 개소리다.
“어이없네. 크크크.”
진행자도 그렇고 마하연도 그렇고 말빨이 좋아서 영상이 재미는 있다.
“나도 합방이나 한 번 해볼까?”
너무 회사 연예인들이랑만 하니까 조금 질리는 거도 있다.
요즘은 변화가 빠른 세상이니 계속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인기에 도움이 되겠지.
하연이 음식을 거의 다 먹었고, 준비한 노래도 끝난 거 같다.
“하마님도 한 곡 하실래요?”
“아이, 전 노래 못 해요.”
“에이, 그냥 즐기는 거죠.”
방송 말미 채널 주인이 하연에게 노래를 시켰고, 하연은 마지못해 노래를 한 곡 하기로 한다.
기대되는 마음으로 하연의 노래를 기다렸다.
“흠흠, 못 불러도 이해해 주세요.”
말을 끝낸 하연이 노래를 시작했다.
“오! 꽤 하잖아?”
가수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일반인치곤 꽤 하는 편.
노래방에서 인기 좀 있을 정도?
저 외모면 딱히 노래로 누굴 꼬실 필욘 없을 거 같지만, 분위기 잡고 부르면 남자 몇은 넘어갈 노래 실력이다.
“음, 연락이나 해볼까?”
아니지, 내가 연락하긴 좀 그래.
이젠 곡을 아무한테나 줄 수가 없다.
작곡가도 이미지가 있다. 곡을 막 퍼주면 아무리 좋고 대단한 곡을 써도, 좀 저급한 작곡가로 인식될 수 있다.
내 곡은 내 가수나 오디션 우승자에게 주어진다는 인식을 가져가야 한다.
명품 마케팅과 비슷하다.
어디 명품 가방 만드는 회사는 고객의 구매 금액에 따라 보여주는 가방이 다르다고 한다.
판매자가 배짱부리는 장사.
고객이 사고 싶어 매달리는 기현상을 만드는 게 명품 마케팅이다.
내가 곡이 많고 지금까진 조금 쉽게 곡을 줬지만,
이제는 함부로 곡을 줘선 안 된다.
앞으론 우리 회사 소속 가수들 아니면 곡을 좀 아낄 생각이다.
그렇다고 마하연을 회사로 데려오기엔 딱히 매력이 없다.
우리가 MCN회사도 아니고 연예 기획사니까.
나중에 영역을 넓힌다면 모를까 지금은 아니지.
“으음, 방법이 없으려나?”
SP엔터는 MCN도 하지 않나?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만,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 괜찮겠는데?”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자고 일어나서 계획을 세워보자.
영상을 다 보니 슬슬 잠이 와서 다시 눈을 감았다.
-띠띠띠띠 띠릭! 스르륵!
누군가 문을 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일어나!”
“으음, 정비서?”
아인이 벌써 왔어? 시계를 보니 벌써는 아니구나.
내가 꽤 잔 거 같다.
확실히 머리가 복잡했나 보네.
영상 보다가 늦게 잔 것도 있지만.
“나 좀 씻을게.”
“응!”
아인이 소파에 앉아 기다렸고, 나는 씻고 나왔다.
“준비 다 했어?”
내가 뭉그적대자 아인이 재촉한다.
오늘은 오후에 스케쥴이 있어서, 오전에 수필 대표님과 약속을 잡았다.
“가야지. 가자 정비서!”
“회사로 먼저 가는 거지?”
“응.”
아빠랑 같이 가기로 했으니까.
회사에 도착하자 아빠는 미리 나와계셨다.
“좋은 아침!”
“네. 좋은 아침입니다. 사장님.”
“날도 추운데 왜 나와 있어.”
“허허, 괜찮아. 괜찮아.”
차에 아빠를 모시고 약속 장소로 출발했다.
피곤한 건 아니었지만, 조금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워 가만히 창밖을 봤다.
아빠도 따로 가져온 자료를 보고 계신다.
차에서 글 읽으면 어지럽지 않나?
아빠는 아주 익숙하게 자료를 살핀다.
“다 뭐야?”
“별거 없어. SP 엔터 조사한 내용.”
나도 볼까 하다가 머리가 더 아파질 거 같아서 다시 눈을 감았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고, 아직 수필 대표님은 도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인은 차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아빠와 둘이 식당으로 들어갔다.
수필 대표님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 음식이 서빙됐다.
조금 이따가 달라고 하려다 그냥 놔뒀다.
약속 시간도 몇 분 안 남았으니까.
음식이 모두 서빙될 때쯤 해서 수필 대표님이 들어오셨다.
“허허, 안녕하십니까.”
“먼 걸음 오셨습니다.”
아빠와 대표님이 인사를 나눴고, 나도 고갤 숙여 인사했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네.”
전체적인 대화는 아빠와 수필 대표님 간에 이뤄졌고, 나는 중간중간 궁금한 걸 물었다.
“전문 경영인이 있는데 제가 할 역할이 따로....”
수필 대표님은 내 역할을 총괄 프로듀서 정도로 생각하라고 하셨다.
여러 가질 따지면 대표 이사 격의 지위를 갖겠지만, 경영은 회사 사람들이 알아서 하고 음악 관련된 부분만 맡으면 된다고 한다.
물론, 우리 회사랑 다르게 대기업인 만큼 내 맘대로 하기보단 회의를 통해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이야기가 계속 진행되며 처음과 조금 조건이 달라졌다.
내가 개인으로 지분을 사는 게 아니라 우리 회사가 SP를 사게 됐다.
회사 크기만 보자면 SP가 우리 회사를 먹는 느낌.
물론 당연히 우리 회사가 SP엔터를 흡수합병한다.
“이름은 유지할 생각입니다.”
“좋군요.”
흡수 합병이라고 했지만, 하나로 합치진 않는다고 한다.
우리 회사의 자회사로 SP엔터가 있는 느낌?
우리 회사도 SP도 지금과 똑같이 운영될 예정이다.
그게 잡음은 제일 적을 테니까.
뭐 복잡한 얘기는 아빠가 알아서 다 끝냈고, 나는 그냥 SP엔터 에서도 우리 회사처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총괄 프로듀서 역할은 하고 싶을 때만 하면 되겠지.
뭐, 따지자면 A&R팀 팀장인 남 팀장님 위치 정도가 되는 건가?
SP에는 우수한 작곡가들도 많은데 굳이 내가 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상징적인 자리로 있으면 좋다고 해서 하기로 했다.
“그럼 저는 오늘 자수하겠습니다.”
“네. 고생하시겠어요.”
“허허, 다 업보죠 뭐.”
아빠와 수필 대표가 악수를 끝내고 식사를 시작했다.
나도 적당히 배를 채우고 밖으로 나왔다.
수필 대표님은 혼자 운전을 해 어딘가로 갔고, 나와 아빠는 차에 올랐다.
아빠가 수필 대표님과 거래는 다 끝낸 거 같은데,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일단 SP는 내가 알아서 할게.”
“응. 아빠만 믿어.”
뭐가 어떻게 돌아간 건지 모르겠지만 아빠의 말대로면 며칠 지나면 SP가 우리 회사 아래로 들어오게 된다고 한다.
SP에서도 아빠가 사장이고 내가 부사장이 될 거 같다곤 하는데, 상장기업이기 때문에 주주총회에서 결정된다고 한다.
아빠와 함께 회사로 돌아왔다.
아빠는 사장실로 들어갔고, 아마 앞으로 좀 바빠지실 거 같다.
나는 남 팀장님에게 향했다.
“팀장님.”
“네. 부사장님.”
남 팀장님과 아인을 데리고 회의실로 들어왔다.
“제가 한 가지 계획이 있는데요.”
어젯밤에 생각했던 내용을 천천히 말한다.
“제 앨범을 하나 내보려고 해요.”
어제저녁에 작곡가 앨범을 기획했다.
내가 만든 노래들로 채운 뒤 곡에 맞는 가수를 객원 보컬로 써서 앨범을 완성할 생각.
그중 타이틀 격의 곡으로 두 곡 정도 단체 곡을 넣을 생각이다.
꽤 예전이지만,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노래가 있다.
유명가수가 단체로 참여해 부른 ‘우리 지금 하나 되자.’라는 노래.
그런 곡을 두 곡 정도 기획했다.
하나는 유명가수들을 대거 참여시킬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유명 유티버들과 작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제가 유티버로 시작한 거나 다름없다 보니, 유티버들과도 작업을....”
예쁜 유티버 몇 명 보겠다고 일을 너무 크게 벌인 거 같지만,
작곡을 처음 시작할 때 가졌던 꿈 같은 거다.
“오! 좋네요!”
남 팀장님도 긍정적인 반응이다.
곡이야 내가 만들겠지만, 기획은 남 팀장님께 맡겼다.
내 머리보다야 이쪽 전문가의 머리가 더 좋으니까.
“그리고 유티버는 꼭 음악 유티버가 아니어도 유명 유티버면 섭외 제의해봤으면 좋겠어요.”
살짝 밑밥도 깔았고, 이젠 남 팀장님을 믿어보는 수밖에.
의미가 있는 노래다 보니 여자만 쓸 순 없고, 성별 비율을 똑같이 가져가자는 얘기도 했다.
“아직 기획단계니까 섭외는 나중에 곡 나온 다음에 하기로 하고 기획안 짜 보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마치고 회사를 나왔다.
“대단하다.”
“응? 뭐가?”
“작곡가가 자기 이름으로 앨범 내는 거. 쉬운 일 아니잖아.”
“뭐, 국내엔 몇 없긴 한데, 해외에선 흔한 일이야.”
아인이 뭔가 날 인정해 준 거 같아 괜스레 어깨가 올라갔다.
아인과 함께 간단히 점심을 먹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방송 녹화긴 한데, 공연장에서 녹화가 있다.
바로 드림 스테이지의 결승전이 벌어진다.
관객이 들어오는 녹화기 때문에 살짝 긴장된다.
무대 뒤 대기실엔 초유 누님과 효정 누님이 미리 와 계셨다.
“누님들 안녕하세요?”
“자기 왔어?”
“안녕!”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피디의 설명을 듣는다.
우리가 먼저 나가서 자리를 잡고, 인터뷰 형식의 토크 후에 무대가 진행된다.
관객 투표가 있긴 하지만, 결과에 영향을 주진 않고 선택은 오로지 내 몫이다.
잘못했다간 욕 좀 먹겠는데?
다섯 팀이 똑같은 곡으로 무대를 하니, 계속 연속해서 하면 관객들이 질릴 거 같아 한 곡 끝날 때마다 평가한단다.
그래도 질리긴 할 거 같은데.
내 노래니까 조금 덜 질리겠지?
매번 사람도 구성도 달라지니까.
“그럼 잠시 후에 관객 입장 할 겁니다.”
“네. 수고해 주세요.”
피디와 대화를 마치고 두 누님과 대화를 나눴다.
사실 이미 우승자는 정해졌다.
여성 솔로 참가자 선우연. 원래는 이름을 몰라야 하는데, 초유 누님이 알려줬다.
저번 중간 점검 때와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면 그녀가 우승할 수밖에 없다.
관객과 시청자 모두 인정할 무대니까.
실수만 하지 않길 바랄 뿐이고, 우승자를 더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 나도 하나의 방법을 사용했다.
예전과 다르게 색기를 이용할 수 있고, 곡의 색기도 다룰 수 있다.
격려 차원으로 참여자들과 만나서 색기를 조정했다.
모두에게 나뉘어 있던 색기를 우연에게 몰아줬다.
색기의 양이 많아져서 그런지 예전에 독기 있던 우연의 눈빛이 내게 좀 더 부드럽게 변했다.
관객도 시청자도 색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
이렇게 해 두면 확실히 우연의 무대만 기억에 남을 거다.
다른 참가자들에겐 미안하지만, 색기가 없다고 해도 그녀가 제일 잘 하는데 뭐.
관객 입장이 끝나고 사전 엠씨가 나와 주의사항을 이야기하며 분위기를 띄운다.
모든 사전 작업이 끝나고 원래의 진행자가 나왔다.
“안녕하세요. 꿈의 무대 드림 스테이지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준비된 멘트 다음으로 진행자가 우릴 한 명씩 소개했다.
“댄스계의 대모! 대모라고 하긴 너무 젊고 아름다운 분 아닙니까? 작가님? 하하, 소개합니다. 안무가 박 초유님!”
“안녕하세요!”
초유 누님이 먼저 나갔고, 다음으로 효정 누님이 소개되어 나간다.
마지막으로 내 소개가 나왔고 나도 걸어나갔다.
인사를 하고 심사석에 앉아 앞을 본다.
“자, 세 분의 심사위원분들이 모두 나오셨는데, 오늘 심사는 어떤 걸 중점으로....”
“아! 저는 안무가니까 당연히 퍼포먼스....”
“저는 곡과 무대의 조화를....”
두 누님의 심사 기준이 지나고 진행자는 내게 따로 물었다.
“여러분 어차피 최종 결정은 이분이 하는 거 다 아시죠?”
“하하, 너무 부담 주시는데요?”
“곡 주인이신데 부담 가질 게 있나요. 성민씨는 뭘 중점적으로 보실 예정이신가요?”
“저야 당연히 곡이 가진 느낌을 가장 잘....”
그렇게 인터뷰 형식의 토크가 끝나고 첫 무대가 시작됐다.
무대 순서는 나는 못 봤는데, 중간 평가 후에 미니 게임 같은 걸 해서 정했다고 한다.
운이 좋은 건지 우연은 마지막 무대를 배정받았고, 나는 느긋하게 그녀의 무대만 기다렸다.
한 번의 무대가 끝나고 심사를 하는데, 나는 단점 위주로 말했다.
이게 심사평이 생각보다 영향이 크거든.
독설은 초유 누님의 담당이니까 나는 살짝 돌려서 어떤 부분이 아쉽다. 이런저런 부분은 좀 보완이 필요할 거 같다 정도의 심사를 했다.
드디어 마지막 무대. 우연이 나왔고 나는 좆됐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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