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165화 (165/450)

165.

수필 대표님은 편한 복장으로 작업실에 들어왔다.

“오셨어요?”

“허허, 시설이 우리보다 좋구만. 잘 지내셨소?”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나와 반갑게 인사를 마친 대표님은 미리와 다정히 인사를 나눴다.

“그럼 바로 녹음 시작할게요.”

“허허, 나 때문에 늦어져서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얼마 차이 안 나는 걸요.”

30분 정도 늦춰진 건데요 뭐, 안 오셨으면 섹스해서 더 늦춰졌을 수도 있답니다.

색정의 힘인지, 미리가 연습을 많이 한 건지 녹음은 쉽게 진행됐다.

“허허, 역시 S.Min이구먼, 대단하네.”

“에이 미리씨가 대단한 거죠.”

“내 앞에서 겸손할 필요 없네. 허허. 너무 고마워.”

“하하, 감사합니다.”

한 번에 녹음이 끝났다.

“피디님, 한 번 다시 할래요. 오늘 컨디션이 좋네요.”

“그래요? 그럼 한 번 더.”

수필 대표는 아직 우리 사이를 모르니까 정중한 투로 녹음을 끝냈다.

“와! 더 좋아졌어요.”

“으음, 나가도 되죠?”

“네. 물론이죠.”

녹음이 끝났고, 미리가 부스에서 나왔다.

“후우, 생각보다 일찍 끝났네요.”

“허허, 정말 대단하단 생각뿐이네.”

“하하, 미리씨도 수고 많았어요.”

녹음을 마치고 수필 대표와 미리가 함께 갈 줄 알았는데, 수필 대표님이 의외의 제안을 해왔다.

“시간 괜찮으면 밥이나 한 끼 하지.”

“네. 좋습니다.”

나야 사주면 감사하지. 오늘은 오후 스케쥴만 있으니까.

“둘이 먹어도 괜찮겠나?”

“그럼요.”

나는 아인에게 미리를 데려다주라고 하고, 수필 대표의 차를 타고 식당으로 향했다.

여기까지 운전해서 오셨구나.

기사나 매니저가 있을 줄 알았는데, 직접 운전해 오셨나 보다.

“흐음, 자네 일식 좋아하나?”

“가리지 않고 잘 먹습니다.”

수필 대표님은 어디로 통화를 거셨고, 식당을 예약하셨다.

도착한 식당은 한적한 동네였고, 한 번에 한 팀만 받는 조용한 식당이었다.

“대화 나누기엔 이만한 데가 없다네.”

“그렇네요.”

나중에 나도 올 일이 있을 거 같아, 식당의 명함을 하나 챙겼다.

이런 좋은 곳이 있다니.

음식을 서빙 한 종업원들은 모두 나가고 가게에는 나와 수필 대표님 둘만 남았다.

“허허, 내가 여기까지 데리고 와서 의아하겠지?”

딱히 그렇진 않았는데, 그 말을 들으니 의아해졌습니다.

가만히 대표님의 말에 주목했다.

“으음, 어제 사건은 인상 깊게 봤네.”

“아, 감사합니다.”

수필 대표가 음식을 천천히 먹으며 말을 이어갔다.

“혹시, 어떻게 밝히게 됐는지 알 수 있겠나?”

“음, 이은석이....”

아효와 있었던 일부터 전문적인 팀을 고용해 자료를 모은 이야기까지만 했다.

내부 회의로 커뮤니티에 올리고 아빠가 아는 검사에게 자료를 전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랬군. 후우우.”

수필 대표님은 크게 한숨을 쉬고 잠시 뜸을 들인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시는 거지?

“과거에 나도 큰 잘못을 하나 했지.”

“네?”

수필 대표님이야 논란 없기로 유명한 사람인데?

사람 좋은 거로 연예계에 정평 난 사람이 이러니까 더 무섭다.

“그대가 밝힌 마약 사건에 나도 조금 연루돼있네.”

“네?”

그런 자료는 없었는데.

“물론 아주 예전 일이라 자료가 남은 것 같진 않네만.”

수필 대표님이 다시 뜸을 들인다.

“흐음, 모두 말하겠네.”

수필 대표님은 천천히 과거 이야기를 꺼냈다.

작곡에 슬럼프가 왔고, 그때 다가온 어둠의 유혹.

약에 손을 댔고 우연히 좋은 곡을 써냈다.

그 때문에 약을 끊을 수 없었고 브로커에게 계속 휘둘릴 순 없다고 생각해서 자신이 독자적인 루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게 지금 마약 카르텔의 시초라고.

최종 보스가 여깄었네?

정신 차리고 약을 끊은 뒤엔 이미 너무 많이 가버렸다고 한다.

마약 카르텔은 너무 커졌고, 자신이 빠진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조직이 됐단다.

자신은 모든 자료를 폐기하고 최선을 다해 카르텔과 맞섰지만, 마약과 돈을 향한 그들의 집념은 집요했고.

결국, 자신은 그들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폐기하고 모르는 척 살아왔다고 한다.

“그렇군요.”

“그들이 협박을 해오고 있네.”

“협박이요?”

수필 대표님은 얼굴을 손으로 쓸며 답했다.

“후우, 자네를 설득해달라더군.”

“이미 검찰에 자료가 다 넘어갔는데, 설득이라뇨?”

수필 대표님은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내게 설득을 부탁한 건 자리를 만들어 달라는 걸세.”

“자리요?”

“자네를 만나보고 싶다는군.”

혹시 여기서?

“오늘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게.”

“아! 네.”

당황스럽네.

그들이 나를? 굳이? 왜?

영문모르겠단 표정을 하니 수필 대표님이 말을 이어간다.

“그들이 자네에게 뭘 제시할지 모르겠지만, 결코 좋은 제안은 아닐 거 같다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나도 상황이 복잡해서 자네에게 말하네만, 당연히 만날 생각 없겠지?”

“그럼요.”

수필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고 목소리를 낮춰 말을 시작한다.

“나는 죗값을 치를 생각이라네.”

“네?”

“대표직에서 사퇴하고 자수할 걸세. 그들이 무슨 짓을 하지 못하도록.”

“그럼 회사는요?”

수필 대표의 눈이 빛난다.

“자네가 내 지분을 사주게.”

“제가요?”

“자본은 충분하단 걸 알고 있네. 나 대신 우리 회사를 이끌어주게.”

으음, 인수야 대표님이 주식을 내게 판다면 가능은 하다.

우리 집안의 재산은 어지간한 엔터 회사 몇 개는 사고도 남으니까.

문제는 운영이다.

작은 기획사에서 소꿉놀이나 하던 내가 대기업 급의 기획사를 운영할 수 있을까?

“사실 아끼는 아이들만 자네 회사로 넘기고 싶네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네. 그래서 경영권을 자네가 가져가 주게.”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지. 금방 익숙해질 게야. 어차피 자네도 회사를 키울 생각 아닌가?”

그건 맞지만, 너무 빨리 너무 높은 자리에 오르는 거 같다.

“으음,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할 거 같습니다.”

“알겠네. 나도 사정이 있어 오래는 힘드네. 3일 뒤까지 말이 없다면 거절한 것으로 알겠네.”

“알겠습니다.”

그 후로 우리는 조용히 식사에 집중했다.

음식은 맛있었지만, 머리가 복잡해 아무런 맛도 느끼지 못했다.

“그럼 가지.”

“네.”

수필 대표님은 날 회사로 데려다주셨고, 그렇게 헤어졌다.

나는 바로 사장실로 가 아빠를 만났다.

“왔어? 무슨 일이야?”

“으음, 할 얘기가 있어서.”

아빠와 커피 한잔하며 대화를 나눈다.

“으음, 넌 뭐가 걱정인데?”

“응? 당연히 걱정되지. 큰 회사를 갑자기 덜컥 맡게 되는데.”

“우리 회사도 언젠간 그렇게 만들 거라며?”

“그렇지?”

아빠가 살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우리 회사가 천천히 발전해서 SP만큼 커지면 그때는 지금이랑 다를 거 같아?”

“아무래도 경험과 노하우가 더 쌓이지 않았을까?”

“경험과 노하우는 SP에 충분해 거기서 배우는 게 훨씬 이득이야.”

“으음.”

내가 고민하고 있자 아빠가 말을 이어간다.

“나중이나 지금이나 할 거라면, 최대한 빠르게 하는 게 좋아.”

“알겠어.”

아빠와 대화를 끝내니 뭔가 복잡한 마음이 정리된다.

어차피 언젠가 할 거라면 일찍 할수록 좋다.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까짓것 해보지 뭐.”

“잘 생각했어. 근데 어떻게 되는 건데?”

나도 아직 정확한 조건은 듣지 못했다.

“으음, 나도 자세한 건 몰라.”

“아마 자수하면 주가가 내려갈 테니 그때 네가 매수하는 방향으로 갈 거 같은데?”

“뭐, 수필 대표님이 생각이 있겠지?”

“하긴,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네니까.”

아빠는 수필 대표가 과거 마약 카르텔의 시초라는 말을 들었는데 눈썹 하나 까딱 안 하네?

그런 마음을 담아 아빠를 보고 있으니 아빠가 씩 웃는다.

“나야 알고 있었어.”

“응?”

“네가 수필 대표님한테 실망할까 봐 알리지 않았지.”

“그랬어?”

아빠와 컴퓨터로 이동해 새로운 자료를 본다.

거기엔 수필 대표님의 과거 행적과 지금 카르텔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잘 나온 자료가 있었다.

“아무래도 그들이 네가 접근할 거 같아서 조사하고 있었지.”

“와, 상상도 못 한 정체!”

나는 장난스럽게 포즈를 취하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수필 대표님이 알아서 자수한다니까 우린 그냥 있으면 될 거 같아.”

아빠는 작은 목소리로 자리를 만들려 했다면 끝장냈을 거란 말을 중얼거렸다.

우리 아빠도 무서운 사람인 게 실감 난다.

“그럼 수필 대표님께 연락할까?”

“그래. 만날 땐 나랑 같이 가자.”

“알겠어.”

복잡했던 일이 부드럽게 풀렸다.

아빠의 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했던 거 같다.

사실 우리 아빠가 세계관 최강자가 아닐까?

실없는 생각을 하며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왔어?”

아인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다.

“응. 가자.”

궁금할 법도 한데 아인은 아무 말 없이 운전에 집중했다.

차 창문에 비친 내 표정은 상당히 심각했다.

다 결정했는데 내 표정이 왜 이렇지?

아무래도 마음의 결정이 끝났다고 해서 복잡한 심상이 나아지진 않나 보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SP의 경영권을 얻게 된다는데, 실감이 안 난다.

근데 SP는 전문 경영인 두고 있지 않나?

뭐, 아빠랑 수필 대표님 만나서 이것저것 물어볼 수밖에.

차 안에서 폰을 들어 연락한다.

“빠르게 전화를 주었군, 그래.”

“네. 마음을 정했습니다.”

“긍정적인가?”

“네. 해보겠습니다.”

수필 대표님의 웃음소리가 지나갔다.

“고맙네. 내일 시간 어떤가?”

“좋습니다.”

바로 약속을 잡았다. 장소는 아까 그 식당이었고, 나는 아빠와 함께 나간다는 이야길 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전화가 끊어졌다.

“하아아.”

“무슨 큰일 났어?”

“아니, 큰일 난 건 아니고.”

“왜 그렇게 죽상인데?”

궁금했는지 아인이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내가 SP로 갈 거 같아.”

“응?”

아인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상황을 대충 전한다.

“와아.”

별로 놀라지도 않네?

“안 놀라?”

“뭐, 놀랍긴 한데, 별로 큰 감흥은 없어.”

“왜?”

“나야 계속 똑같은 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겠지? 나도 생각해보면 계속 방송 활동할 생각이니 크게 바뀌는 건 없지 않을까?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도착했어.”

“응, 들어가.”

“같이 갈까?”

“아니, 괜찮아.”

예로부터 생각이 복잡할 땐 잠이 최고다.

아인과 함께하는 밤도 조금 끌리긴 하는데, 그래도 좀 자면서 충전의 시간을 갖자.

아인이 차를 몰고 떠나갔고, 혼자 집으로 들어왔다.

“후우, 잘 할 수 있겠지?”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아이, 막상 자려니 잠이 안 오네.”

누구나 공감할 말이지만,

수업 시간에 엄청 졸리다가도 쉬는 시간만 오면 잠이 깨고,

일 할 때 엄청 피곤하다가도 퇴근하면 컨디션이 좋아진다.

머리가 복잡해 자려고 누웠는데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진다.

생각이 많아지면 대부분은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 흘러간다.

“후우, 그냥 정비서 데리고 올걸.”

후회는 항상 늦는 법.

아무 생각 없이 보기엔 유티비만한 게 또 없지.

폰을 들어 유티비에 들어간다.

실시간 인기 동영상부터 볼까?

“아, 죄다 이은석 얘기네.”

하여튼 이슈만 있으면 조회수 빨려고 기를 쓰고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너무 많다.

평소 구독하고 있는 채널에 새 영상이 있는 지나 확인하자.

“어? 이 사람이 여기 왜 나와?”

평소 즐겨보는 먹방 유티버, 오물오물 깔끔하게 잘 먹는 엄청난 대식가 유티버다.

엄청 먹는데도 허리가 23인치라는 영상을 보고 처음 알게 됐다.

사실, 먹는 건 잘 모르겠고 이뻐서 본다.

길 가다 마주치면 먹방 유티버 보다는 연예인으로 보이지 않을까?

늘 화려한 음식 모양의 액세서리를 하는데, 그것까지 잘 어울리는 게 보통 미모가 아니다.

“실제로 한번 보고 싶다.”

근데 이 사람이 왜 이 채널에 나왔지?

지금 내가 들어온 채널은 커버송을 부르는 음악 유티버 채널이다.

노래를 잘 하는 건 아니고, 썰 푸는 게 재밌어서 보는 채널.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노래 영상보다 토크 영상이 조회수가 훨씬 높다.

아직 영상을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썸네일 어그로겠지?

유티버 사용자는 모두 알겠지만, 어그로인 줄 알면서도 클릭하게 된다. 그래서 어그로다.

프로 딸잡이 시절에도 표지에 그렇게 사기를 많이 당하면서도 표지를 보면 어쩔 수 없이 영상을 내려받는다.

비슷한 심정으로 영상을 클릭했다.

“구독자 형님덜 안녕하십니까!”

구수한 말투로 인사하며 시작한 영상은 어그로가 아니라 진짜였다.

“오늘은 제가 특별한 손님을 모셨습니다!”

특별한 손님은 안 나오고 카메라가 아래로 내려가며 엄청난 양의 음식이 보였다.

“음식의 양을 보면 감이 좀 잡히시죠? 네! 맞습니다. 오늘은 먹방 유티버이신 짬 먹는 하마님과 함께합니다!”

나도 모르게 영상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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