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아인과 함께 작업실을 나와 회사로 향한다.
사장실로 들어서니 아빠가 반갑게 날 반긴다.
“안녕하십니까.”
“아, 비서님 안녕하세요.”
아빠와 아인도 인사를 나눴고 우린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른 게 더 나왔어.”
시간이 좀 더 지났다고 아빠가 새로운 자료를 가져왔다.
“와! 진짜 상종 못 할 놈이네?”
“그렇지?”
자료엔 이은석이 여자에게 마약을 먹이고 강제로 찍은 영상도 있었다.
한 둘이 아니네? 연예인까지 있고.
동의 없이 찍은 영상만 수십 편 당연히 공개되면 난리가 날 거다.
“이런 건 어떻게 구한 거래?”
“전문가한테 맡겼지.”
“그 전문가들도 대단하다.”
아빠가 무슨 첩보 영화 이야기하듯 자료를 구하는 조직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은석이 쓰는 모든 기기를 해킹하고 몰래 잠입해 집에 있는 물품을 뒤져봤단다.
나는 컴퓨터에 약점이 될만한 자료를 안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아! 선애랑 시연이 영상 있지?
지우라고 할까?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시연이는 영상 어떻게 했으려나?
선애 영상이야 나만 가지고 있는 거니까. 가서 지워야겠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일단 이은석만 집어넣을 방법이 있을까?”
아빠는 생각에 잠겼다.
“없을걸? 너무 많은 일을 벌여놔서 조사하면 다른 사람도 다 드러나게 돼 있어.”
“다른 사람들한테 괜히 미안하네.”
“미안하긴 뭘, 범죄자들인데.”
“그건 그래.”
내가 정의를 외치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은 한다. 물론 내로남불은 당연하지.
“그럼 공개할 자료 좀 선별해 볼까?”
최대한 무고한 피해자는 만들지 않는 방향으로 가자.
약 먹고 영상 찍힌 연예인들은 불쌍하잖아.
대중들이야 손가락질하면서도 알음알음 찾아보며 피해자를 조리돌림 할 게 뻔하다.
“공개는 어떻게 하시려구요?”
“으음, 유티비는 좀 그렇고 그냥 검찰에 자료를 넘길까?”
“그러면 내가 아는 사람 있으니 그렇게 해도 돼.”
우리가 자료를 정리하면 아빠가 아는 검찰에게 넘기기로 이야기는 끝났다.
사장실 컴퓨터로 넘길 자료를 정리하는 아인.
“대중에 공개는 안 하고?”
“그건 고민 중.”
“근데 어차피 알려지지 않겠어?”
지금 가장 고민스러운 문제는 내가 밝혔다는 사실을 알릴지 말지다.
JG사건도 있고 해서 내 이미지는 꽤 좋긴 한데, 여기에 마약 사건까지 밝혀내면 확실히 좋은 이미지를 굳힐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행동에 제약도 많아지고, 적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어차피 난 노래로 인기를 끌 수 있으니 여기선 그냥 익명으로 제보하는 게 좋을 거 같다.
“아무래도 네 이름을 쓰는 게 수사나 처리에 더 빠르긴 하겠지, 이슈야 어차피 될 거지만, 더 큰 이슈가 될 수도 있고.”
“그게 리스크를 감수할만한 건 아닌 거 같아.”
“으음, 근데 어차피 알려면 다 알 수 있어서 그냥 이미지나 챙기는 게 좋을 수도 있어.”
아빠와 내가 의견이 갈렸다.
이럴 땐 항상 아빠 의견을 따라가는 게 좋다.
나는 경험이 일천하니, 곱게 자란 나보다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해본 아빠의 판단이 더 정확할 때가 많다.
“그럼 어떻게 공개할까?”
공개를 결정할 때쯤 아인이 자료 정리를 끝냈다.
“으음, 검찰에 전하고 그 정보를 그냥 회사 홈페이지에 올릴까?”
“그건 여러 가지 법적 문제를 가져올 수 있어.”
“뭐, 사실적시 명예훼손 이런 거?”
“그렇지?”
아빠와 의논을 하며 의견을 나누던 때 아인이 말을 시작했다.
“제가 방법이 있을 거 같아요.”
“뭔데?”
“음, 기자들이 쓰는 방법이긴 한데.”
아인의 설명은 익명으로 커뮤니티에 올리자는 내용.
우리 회사 내부자라고 하면서 나와 은석의 사이가 안 좋아 조사한 내용인데, 너무 큰 사건이라 내가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거 같아, 충성심에 자기가 폭로한다고 쓴다는 내용이었다.
“나쁘지 않은데? 나는 벗어나면서 이미지도 챙기고.”
“근데 회사에 총대 멜 사람 한 명은 필요해.”
“완전히 익명은 힘든가?”
“아무래도 그렇지?”
회사가 꽤 커진 만큼 직원도 많아졌지만, 이 정도의 정보에 접근할만한 고위직은 많지 않다.
따져본다면, 아빠와 날 제외하고 아인이나 남 팀장님, 심 이사님, 영하 매니저 실장님 정도?
누구 하나 회사에 없으면 일에 많은 차질이 생긴다.
“으음, 임원 회의라도 해 볼까?”
아빠가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임원급 직원을 모두 회의실로 호출했다.
남 팀장님과 심 이사님이 함께 들어왔고 영하 매니저 실장님만 조금 늦게 들어왔다.
“다행히 회사에 계셨네요?”
“하하, 이젠 저도 사무직입니다.”
“아! 그랬죠.”
영하 실장과 잠시 사적인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자 마지막 임원급 직원인 이진영 실장이 들어왔다.
이진영 실장은 시연의 예전 편집자로 지금은 회사 미디어 부분을 총괄하는 자리까지 올라왔다.
이 여자 생각보다 능력 있더라고.
외모가 딱히 대단치 않아서 추파는 안 던졌지만, 회사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회사 유티비 관리뿐만 아니라 인방을 하는 시연과 민하씨의 영상 편집물 관리도 하고 있다.
그냥 우리 회사에서 제작되는 모든 영상을 총괄하고 있다.
나도 도움을 받아 공식 유티비 채널을 다시 만들 생각인데, 요즘은 조금 바빠서 못 하고 있다.
회사 공식 채널로 모든 영상을 올리고 있기도 하고.
“모두 모이셨네요. 우선 자료 먼저 보여드릴게요.”
회의실에 있는 컴퓨터로 자료들을 띄운다.
아인이 잘 정리한 자료를 빠르고 간단하게 설명하며 보여줬다.
사진까지 모두 본 임원들은 잠시 조용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듯 보였다.
“허허, 대단하네.”
남 팀장님이 가장 먼저 입을 뗐다.
“이걸 어쩌시려고요?”
“음, 공개해야죠.”
“너무 위험하지 않나요? 연루된 연예인이 엄청 많은데요?”
영하 실장님이 걱정하는 목소릴 낸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나는 모두에게 아효가 이은석에게 당한 일을 말했다.
“와! 그 친구 양아치인 건 알았는데, 부 사장님 앞에서도 그럴 줄은 몰랐네.”
은석을 조금 알고 있는 남 팀장님부터 모두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뭐, 그런 사람이랑 어울리는 사람은 다 똑같은 사람들이죠. 이참에 싹 쓸어버리는 게 연예계에 더 좋을 거예요.”
가장 어린 임원답게 시원하게 말하는 진영 실장.
일 처리도 항상 시원시원하게 하는데, 성격도 조금 있는 거 같다.
“그래서 정비서의 의견은....”
아인이 말했던 계획까지 모두 전달이 끝나자 진영 실장이 손을 들었다.
“제가 하죠, 뭐.”
“괜찮겠어요?”
“회사에서 확실히 금전과 안전의 문제만 해결해 주시면 상관없어요.”
회사에 꽤 이르게 입사했지만, 가장 나중에 임원이 된 만큼 나서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내 예상이 빗나갔네.
진영 실장이 손을 든 후로는 모든 계획이 착착 완성됐다.
“그럼 난 먼저 일어나야겠네.”
아빠가 먼저 회의실을 나섰다.
바로 검찰에 아는 사람에게 자료를 넘긴다고 하신다.
“저도 준비해서 자료 올릴게요.”
“네. 여기 정비서가 도와줄 거예요.”
기자 출신 비서는 이럴 때 써먹어야지.
“그럼 저희는 이만.”
나머지 사람들도 자리를 나선다.
나와 영하 매니저 실장님만 남았다.
“오랜만에 제가 모시겠네요.”
“하하, 잘 부탁드려요.”
아인이 생각보다 일을 빨리 배우고 잘 해서 영하 실장님이 딱히 나설 일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함께 다니게 됐다.
오늘 스케쥴은 라디오 녹음 하나가 전부.
혼자 나가는 건 아니고 미리와 함께 나간다.
보이는 라디오라서 풀 메이크업 까진 아니어도 어느 정도 회사 내 직원의 도움을 받아 메이크업했다.
“가시죠.”
“네.”
차를 타고 도착한 방송국.
라디오 부스 안으로 들어서니 먼저 도착한 미리가 있었다.
“안녕.”
“오셨어요오.”
미리도 빡세게 꾸미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치장했다.
“오랜만인데 떨리지 않아?”
“괜찮아요오.”
복귀가 얼마 남지 않은 미리.
안무는 거의 완성단계라는 말만 들었다.
안무만 완성된 다음 녹음을 하고 뮤비는 SP에서 알아서 할 예정.
그 전에 슬슬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활동을 조금 할 생각이다.
나와 함께 나오는 스케쥴은 이 라디오가 유일했지만,
미리 혼자 몇 개 방송을 더 나갈 거 같다.
뭐, 미리도 꽤 많은 활동을 한 연예인이니까 알아서 잘 하겠지.
라디오의 1부가 끝나고 자리로 안내되어 앉았다.
“안녕하세요.”
“네. 잘 부탁드려요.”
라디오 진행자와 인사를 나누고 2부가 시작됐다.
진행자의 멘트가 끝나고 우리를 소개하는 시간.
“요즘 이분 대단하죠? 노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만드는 빌보드가 인정한 작곡가. S.Min씨 모셨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S.Min으로 활동하는 성민입니다.”
몇 가지 근황 질문이 오간 뒤 진행자가 미리를 소개하기 시작한다.
“와! 이분 얼마 만에 나오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마지막 10대 가수 하면 다들 누군지 아시겠죠? 춤과 노래가 정말 완벽에 가까웠던 가수죠? 정미리씨 나와주셨습니다.”
“호호, 안녕하세요. 20대 중반인데도 마지막 10대 가수로 불리니까 좋네요.”
미리의 소개도 끝나고 근황 질문이 길게 이어졌다.
아무래도 최근 몇 년간 활동이 없었으니 할 얘기도 많겠지.
“아! 미리씨가 너무 오랜만이다 보니 말이 길어졌네요. 오늘 노래 듣지 말죠?”
“에이, 그래도 미리씨를 모셨는데 노래는 들어봐야죠.”
“그렇네요? 하하. 그럼 이쯤에서 미리씨 히트곡 메들리로 듣고 가시죠.”
나와 진행자가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미리에게 노래를 시켰다.
미리가 준비해온 자신의 히트곡 메들리를 불렀고, 다시 토크가 진행됐다.
미리의 복귀 떡밥을 던지기 위한 라디오다 보니 미리 위주로 진행됐는데,
그러다 보니 내가 말을 많이 안 해도 돼서 좋았다.
날로 먹는 기분이네.
미리의 복귀 첫 스케쥴이라 떨린다고 해서 함께 나왔는데, 없었어도 잘 했을 거 같다.
“와! 오늘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어요. 벌써 보내드릴 시간이에요.”
“아아, 아쉬워요.”
그렇게 라디오 녹음을 마치고 미리와 함께 방송국을 나왔다.
“오늘 잘 하던데?”
“으으, 엄청 떨었다구요오.”
“그래? 하나도 몰랐어.”
“헤헤. 잘 했으면 상 주실 건가요오?”
미리의 음흉한 눈빛을 웃어넘기며 말한다.
“안무까지 보고 결정할게.”
“치이.”
미리가 안무 연습을 하는 연습장으로 이동했다.
각자의 차를 타고 이동하려다 미리의 차를 얻어 타고 가기로 했고, 바쁜 영하 실장님은 다시 회사로 보냈다.
미리의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도착한 연습실.
안에는 네 명의 여성이 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아! 우리 댄서들.”
“안녕하세요.”
미리의 소개로 인사를 나눴고, 댄서들은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날 보고 있다.
눈빛들이 왜 이래?
“우리 회사 연습생들이야.”
“아아.”
미리가 살짝 귀띔해줬고 눈빛이 강렬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 눈에 들면 자기 미래가 변한다는 걸 아는 모양이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내 눈에 들어오는 외모는 없었다.
SP소속이니 실력은 뭐 확실하겠지.
“자! 그럼 준비한 거 해볼까?”
미리가 댄서들을 격려하며 말했고, 난 노래를 틀었다.
반주만 나오는 노래에 미리가 직접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역시는 역시라고 할까? 미리는 정말 완벽히 춤과 노래를 소화했다.
“하아, 하아.”
끝나고 엔딩 포즈까지 완벽.
“와! 좋네.”
원체 춤을 잘 추는 미리라서 조금 파워풀한 안무 뒤에도 회복이 빠르다.
이런 춤을 계속 춰왔으니 집에선 그렇게 게으른 것도 이해가 간달까?
“모두 수고했어요.”
우리 회사 소속이라면 회식이라도 하라고 카드를 건네주겠지만, SP 소속이라 그럴 순 없었고 격려만 해줬다.
“어땠어요오?”
“진짜 좋았어. 초유 누님은 뭐라고 하셨어?”
“좋다고 하셨죠오.”
초유 누님까지 오케이 했으면 뭐 내가 더 지적할 건 없어 보인다.
“그럼 녹음하면 되겠다.”
“헤헤. 내일 할까요오?”
“그러자.”
마침 내일은 오전에 스케쥴이 없어서 오늘 미리와 함께 보내고 같이 가면 딱 맞겠다.
미리는 알아서 댄서들을 내보냈고, 매니저까지 먼저 퇴근시켰다.
“집엔 어떻게 가려고?”
“차 놓고 가라고 했죠오.”
미리가 운전하는 차를 탔다.
“위험해.”
“헤헤. 괜찮아요오.”
미리는 한 손으로 내 손을 꼭 잡고 운전하고 있다.
아마 내가 운전 중이었으면 더 심한 짓을 했겠지?
내 손을 쓰다듬는 미리의 손길을 느끼며 미리의 집에 도착했다.
“운전 잘 하네.”
“헤헤. 많이 했었어요오.”
연예인이 된 후 외국에 혼자 놀러 간 적이 많다고 한다.
알아보는 사람 없는 곳에서 자유를 느끼며 돌아다니기 위해 운전도 배웠단다.
“고생했겠어.”
“헤헤. 제가 정한 일인 걸요.”
갑자기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졌네.
미리도 같은 걸 느꼈는지 묘하게 웃으며 내게 안긴다.
“바로 해 주세요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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