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152화 (152/450)

152.

“으으, 정말 너무해요.”

“왜요? 좋았으면서.”

아침에 일어난 선애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칭얼댄다.

-츄르릅, 츕. 츄릅.

키스로 칭얼거림을 잠재우고 지쳐 쓰러져 아직 일어나지 못하는 아인을 깨운다.

그렇게 당하고도 잘 일어나는 걸 보면 선애도 체력이 참 대단하다.

몸매관리를 위해 꾸준히 운동하기 때문이겠지?

아인도 운동을 시켜야겠다. 어제 보니까 신앙을 안 써주면 너무 빨리 다운되는 거 같다.

“정비서?”

“끄으응.”

“일어나.”

“흐응, 오 분마안.”

-츄릅, 츄르릅. 츕, 핥짝.

칭얼거리는 아인에게 키스를 시작으로 얼굴을 마구 핥았다.

내가 당해보니까 잠 깨는 덴 이게 최고다.

“오늘 스케쥴 있어.”

“아으, 맞다.”

일 얘기에 정신을 차리는 아인. 이래 봬도 일은 프로패셔널하게 잘 한다.

“끄으, 온몸이 쑤신다아.”

기지개를 켜는 아인에게 신앙을 살짝 둘러줬고,

세 사람이 차례로 씻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셋이 함께 아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회사로 향했다.

어제 연습생을 보여준다고 해서 그냥 오늘 바로 불렀다.

도착한 회의실.

아버지를 제외하고 심 이사님, 남 팀장님, 나, 선애까지 넷이서 간단한 오디션을 준비했다.

이력서 정도는 뽑아 두고 보는 게 맞겠지만, 급하게 정한 오디션이라 아무것도 없었다.

다들 빈 종이에 펜 하나만 들고 기다린다.

“이력서는 알아서 각자 가져오라고 했어요.”

“연습생이 무슨 이력서예요. 실력으로 보여주면 되죠.”

남 팀장님은 역시 연습생들에게도 호의적이다.

“하하, 기대가 됩니다.”

태어나서 오디션은 처음 해본다는 심 이사님이 은근한 기대감을 비췄고,

나도 어떤 아이들이 올지 기대가 되긴 했다.

“기대돼요?”

“조금요?”

선애와 조용히 대화를 나누며 연습생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선애가 갑자기 불렀는데, 연습생들도 회사가 갑자기 풍비박산 나 할 일이 없던 차여서 다들 온다고 했단다.

아! 그리고 JG 대표 정효군은 모든 걸 자백하고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어떤 외압이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다 자백해 버릴 줄은 몰랐다.

그 아저씨 제정신 아니던데, 어떻게 구슬렸나 모르겠다.

그 때문에 소속 연예인들의 계약은 모두 무효가 됐고, 지금 엔터 계는 FA 대란으로 많은 기획사가 JG에서 나온 연예인과 연습생을 잡기 위해 혈안이다.

대부분 양대산맥이었던 SP로 들어가는 거 같던데, 우리는 중간에 선애만 빼 왔다.

어제 선애가 와서 하려던 얘기가 연습생이랑 계약 얘기였는데,

아인이가 와서, 대충 듣고 넘어가 버렸잖아.

아무튼, 선애도 이제 정식으로 우리 회사 식구가 됐다.

연예인들은 꼭 SP가 아니더라도 어떤 회사든 계약해서 잘 들어갈 거 같긴 한데,

연습생들은 아무리 JG 출신이라고 해도, 약간의 위험부담이 있는 만큼 자신들의 위치를 엄청 불안해하는 거 같다.

실제로 SP에서는 한 명도 안 받았다고 하더라.

하긴 접대부 이미지 있는 아이돌 연습생을 어떤 회사가 받고 싶겠어.

물론, 그 아이들이 실제로 그런 일을 한 건 아니지만, 연예인에게 특히 걸그룹에게 이미지는 생명과도 같은데.

시작부터 긁어 부스럼 만들 회사는 없다.

그나마 우리 회사야 이익을 위해 움직이지 않으니까 오디션 봐주는 거고, 그래서 연습생들도 만사 제쳐두고 온다고 한 거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선애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연습생들이 속속 도착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한 명씩 보는 게 좋겠죠?”

“그렇죠.”

“네.”

내 말에 두 임원이 답했고, 선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늦었네요.”

“아! 오셨어요.”

마지막 심사위원인 초유 누님이 들어왔다.

아무래도 댄스는 우리 셋 모두 잘 모르고,

선애는 연습생 편이다 보니 정확한 판단을 못 할지도 몰라서 불렀다.

“갑자기 오디션이야?”

“네. 선애씨가 연습생들 좀 데려온다고 해서요.”

“흐음, 뭐, 나야 춤만 봐주면 되지?”

“그럼요.”

초유 누님까지 자리에 앉고 아인이 연습생들이 도착한 순으로 데려오기로 한다.

“으음, 그냥 한 번에 들이는 게 좋지 않아?”

초유 누님이 앉자마자 말했다.

“그래요?”

“응, 전체 다 한 번 보고 그다음에 개별로 보는 게 비교하기도 좋잖아?”

“그렇네요.”

역시 우리와 다르게 경험이 많아서 의견을 낼 수 있는 초유 누님.

부르길 잘했다.

우리 모두 회사 면접경험이나 있지, 연습생 오디션은 감도 못 잡고 있었으니까.

남 팀장님은 경험이 있을 줄 알았는데, 오디션보다는 다른 회사 연습생을 데려오기만 해서 오디션 경험이 없다고 하신다.

“그럼 그렇게 할까요?”

“생각해보니 그게 좋겠네요.”

“찬성입니다.”

남 팀장님과 심 이사님도 찬성해 모든 연습생을 들였다.

나름대로 정성을 들여 꾸민 열 명이 들어왔다.

“열 명 맞아요?”

“으음, 전 일곱 명만 불렀는데.”

그때 한 연습생이 손을 든다.

“말해봐요.”

내 말에 그녀가 호흡을 가다듬고 말한다.

“제, 제가 불렀습니다. 기회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만, 이 친구들도 정말 재능있는 친구들입니다. 이들에게도 기회를 한 번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으음, 그러니까 자기 친구 데리고 왔다는 거지?

의리 있는 친구긴 한데, 이게 득일지 실일지는 데려온 친구들을 봐봐야겠다.

“그러죠. 그럼 우선 선애씨가 데려온 친구들부터 볼까요?”

나는 간단히 상황을 정리하고 오디션을 시작했다.

“방금 손든 친구와 친구가 부른 세 사람은 마지막에 보겠습니다.”

남 팀장님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느낌으로 말을 남겼다.

눈에 띄게 네 명이 긴장하는 모습이 보였고, 그 네 명이 뒤로 빠진다.

들어오면서 유심히 봤는데, 비주얼은 모두 괜찮은 편이다.

물론, 내가 원하는 엄청난 비주얼의 친구는 한 명뿐이지만.

대부분 어디 나가도 예쁘단 말은 듣고 다니겠다.

역시 JG라고 해야 하나? 실력도 보기 전인데 외모로는 다들 합격 수준이네.

“그럼 첫 번째 연습생?”

아인이 연습생들이 직접 가져온 이력서를 복사해 왔다.

급하게 준비한 친구도 있고, 나름 잘 정리된 친구도 있는데,

처음 온 친구는 인적사항만 자필로 쓴 이력서를 가져왔다.

“나이가 좀 있네요?”

“네. 연습생 생활을 조금 오래 했습니다. 그만큼 실력에 자신 있어요.”

나이는 25살. 청소년 데뷔 금지법이 발의한 이후로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데뷔하긴 늦은 나이긴 하다.

“그래요. 준비한 거 해봐요.”

MR을 직접 준비해 오라고 했지만, 급하게 부른 만큼 없다면 노래방 기계로 대신한다고 말했다.

이력서도 자필로 써온 만큼, MR도 준비 못 한 이 친구는, 노래방 기계의 검색기능을 이용해 곡을 하나 골랐다.

노래는 무난하네.

노래가 끝나고 친구는 곡을 다시 찾는다.

이번엔 댄스곡이구나.

노래 부르면서 춤추는 건 못 하겠는지,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왜 데뷔 못 했는지 알겠다.

노래도 춤도 모두 아마추어치고는 수준급, 프로 무대에 세워도 나쁘지 않은 정도지만,

딱히 매력이 없다.

그냥 잘하는 정도로 끝나는 아이는 걸그룹으론 뜨기 힘들지.

대체로 다음 아이들도 비슷했다.

역시 JG는 JG긴 한데.

뭔가 아쉽네.

정말 실력은 출중하다. 잘하는데, 딱 그 정도.

마치 기계로 찍어낸 것 같다.

“흐음, 이제 여섯 분은 끝이네요.”

“네. 잘 부탁드립니다.”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섯 명의 연습생이 인사를 하고 뒤로 빠진다.

아마도 이 자리를 끝으로 다시 보긴 힘들 거 같다.

“자, 그럼 네 분 앞으로 와 주세요.”

처음에 손을 들었던 연습생부터 한 명씩 앞으로 나왔다.

확실히 눈에 띄는 비주얼.

열 명 모두 이쁜 편이지만, 이쁜 애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미모를 보이는 한 명의 연습생.

만약 친구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바로 합격했을 연습생이다.

이제 이 연습생의 처우는 본인보다는 친구들에게 달렸다.

별 볼 일 없는 애까지 의리로 끌고 가려는 애는 필요 없으니까.

“한 가지만 물어도 될까요?”

나는 그 연습생을 보고 말했다.

“네!”

무언가 결의에 찬 눈으로 날 보며 말하는 그녀.

음, 이쁘긴 진짜 예쁘네. 옆에 미모라면 대한민국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선애가 있는데도 눈이 가는 걸 보면, 확실히 진짜 이쁜 얼굴이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경험을 쌓아 자신만의 아우라를 만들면 선애에게도 밀리지 않겠다.

“만약에 친구들을 데려왔기 때문에 오디션에 떨어진다면 어떨 거 같아요?”

“어, 그, 잠시 생각할 시간 좀 주시겠습니까?”

“네. 천천히 생각해 봐요. 그동안 친구들 실력 좀 보죠.”

내 말에 세 명의 연습생이 앞으로 나왔다.

이 친구들도 MR은 없었고, 노래방 반주에 노래를 한 곡씩 부른다.

으음, 선애가 부르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다.

확실히 좀 전에 불렀던 애들보다 조금 모자란 실력이다.

“춤은 한 번에 보죠. 곡은 제가 선택해도 되겠죠?”

“물론이죠.”

초유 누님의 말에 노래가 나왔고, 셋이 춤을 춘다.

당황한 듯한 모습이 잠시 보였지만, 그래도 무난히 춤을 끝냈다.

으음, 춤도 확실히 방금 여섯과 비교하면 모자라다.

“흐음.”

심 이사님의 침음성. 남 팀장님 표정도 좋지 않다.

물론, 꼭 누군가를 뽑아야 한다면 나는 아까 여섯보단 얘네를 뽑을 거 같긴 하다.

확실히 실력은 부족하지만, 각자의 매력은 있으니까.

“생각 정리는 좀 됐나요?”

“네.”

친구가 천천히 말을 시작한다.

“후회할 거 같습니다만, 어쩔 수 없죠. 제가 연습생 생활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르지만, 정말 제게 많은 도움을 줬던 친구들입니다. 그래서 은혜 갚았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으음, 정에 약한 타입인가?

연예계에서 살아남기 힘들 거 같긴 하다.

“흐음, 그럼 준비해 온 거 해 봐요.”

그녀가 뽑은 이력서를 먼저 봤다.

가장 이력서 다운 이력서.

이름은 황나정 올해로 20살이 됐다.

이제 데뷔할 수 있는데, 회사가 없어져서 심란하겠다.

19살에 들어와서 육 개월 연습생 생활을 했다고 한다.

“MR 준비했네요?”

“네. 항상 가지고 다닙니다.”

준비성은 참 좋네. 성실하고 의리 있고, 좋은 사람 같다.

성실함과 반대로 노래와 춤은 지금 여기 있는 열 명 중에서 제일 못했다.

아무래도 제일 연습 기간이 짧아서 그렇겠지.

선애도 내가 실력보단 비주얼을 우선순위에 두고 걸그룹을 만들 거라는 걸 알아서,

이 친구를 추천한 거 같다.

마지막으로 나정의 얼굴을 본다.

여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차가운 인상의 미녀.

새하얀 피부가 돋보인다. 음, 여우보다는 뱀상에 가까운 거 같기도 하고?

찢어진 눈매와 입꼬리가 확실히 뱀상이긴 하다.

눈이 커서 뱀보다 여우가 먼저 떠올랐나?

확실히 유니크한 얼굴을 가진 미녀다.

저런 얼굴이 이쁘기 힘든데, 이쁘면 엄청 이쁘지.

아깝긴 하지만, 우선 보류.

“모두 가보셔도 좋아요. 합격했다면 일주일 안으로 연락 갈 겁니다.”

“감사합니다!”

“네!”

열 명의 오디션 참가자가 밖으로 나가고 우린 모여서 회의를 시작했다.

“너무 JG스타일로 만들어진 애들이라 딱히 탐나지 않네요.”

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저희가 대형 기획사라서 연습생을 여럿 둘 거 아니라면, 딱히 뽑고 싶은 사람은 한 명뿐이에요.”

남 팀장님이 내 의견에 동조했다.

아마 그 한 명이 나정이겠지?

“흐음, 친구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몰라도, 뽑기 어렵네요. 말 안 들을 거 같은데.”

“말을 안 듣기보다, 그런 애들은 관리가 힘들죠.”

“그렇죠.”

초유 누님과 남 팀장님이 서로 의견을 교환했다. 경험이 풍부한 만큼 나름의 생각이 있는 거 같다. 조금 풀어서 말해주길 바랐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간단히 끝났다.

심 이사님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있다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긴다.

“저도 딱히 꼭 뽑아야겠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는 이만 빠지도록 하겠습니다. 일정이 있어서.”

“네. 들어가세요, 이사님.”

나는 남 팀장님을 보며 말했다.

“이렇게 된 거 아예 공개 오디션 바로 열어 버리죠.”

“으음, 그래도 공고를 올린 다음 한 달은 지나야 하지 않을까요?”

남 팀장님의 경험을 빌려 오디션을 열기로 했다.

아빠한테 간단히 보고하고 바로 공지를 올렸다.

오디션 날짜도 정하지 않았지만, 단순히 다음 달쯤 진행한다고 올리고,

지원 자격만 간단히 적어 공식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아는 기자들한테 연락을 돌렸고,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아 오디션 소식이 빠르게 기사화됐다.

“으음, 날짜는 최대한 빠르게 확정하죠.”

“네. 내부 회의 후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회의를 끝내고 선애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선애씨 고마웠어요.”

“으음, 다 괜찮은 애들이었는데, 아쉬워라.”

“하하, 뭐 좋은 기회가 또 있겠죠?”

선애를 집으로 데려다주고, 아인과 작업실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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