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확실히 정박에 딱딱 들어맞는 랩.
중간중간 고난도의 안무가 화려함을 더한다.
그러나 세 심사위원 모두 버튼을 눌렀다.
“아! 처음으로 세 심사위원 모두 버튼을 눌렀습니다. 이유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초유 누님이 가장 먼저 마이크를 들었다.
“으음, 너무 잘하신 게 독이 된 거 같습니다.”
나 또한 같은 생각.
아마 승철 형님도 다르지 않을 거 같다.
“잘하면 좋은 거 아닌가요?”
창민씨의 질문에 내가 나서서 마이크를 잡았다.
“잘하면 좋죠. 하지만 곡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최대한 돌려 말했는데 승철 형님이 마이크를 잡고 말을 시작했다.
“춤, 랩 모두 뛰어났습니다만, 이 노래에 과연 맞을까? 그런 고민이 없었던 무대 같네요. 주변에서 잘한다고 칭찬 많이 받죠?”
참가자가 살짝 화난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으음, 그게 오히려 독이 된 거 같네요. 곡에 대한 분석이 너무 부족해요. 그냥 난 잘하니까 대충 맞춰서 하면 되겠지. 그런 생각으로 성민씨의 곡을 받을 생각을 했다면 정말 오만한 생각입니다. 다음엔....”
역시 독설로 유명한 형님답게 조곤조곤 팩트로 때리는데 듣는 내가 다 아프다.
초유 누님이 마이크를 들고 마지막 말을 이어간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여전히 잘 하네. 다음엔 더 좋은 기회로 봤으면 좋겠어.”
진행자가 마이크를 잡고 두 사람의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김 피디님이 나서서 제지했다.
감성팔이 같은 건 하지 않기로 했기에, 인터뷰는 최소화할 생각이다.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하는 컨셉.
방송의 재미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한 편이 그리 길게 나가지 않으니까.
“자! 그럼 다음 참가자 모시겠습니다.”
피디님의 제지에 살짝 시무룩해진 창민이었지만, 빠르게 힘을 찾고 진행을 시작했다.
무대가 진행될수록 점점 지쳤고,
피곤해진 우리의 심사는 더욱 까다로워졌다.
“자, 이번 참가자는....”
창민도 힘든지 목소리에 힘이 많이 빠졌다.
무대가 끝나고 심사를 마친 나는 일어나 피디님을 보며 말했다.
“밥 먹고 하시죠?”
“네! 그럼 지금 준비할게요.”
여러 곳에서 협찬을 받았는데, 그중 도시락도 있다.
오디션 중간에 식사가 예정돼 있었고.
밥 먹는 모습도 모두 방송에 나갈 예정이다.
먹는 건 좀 눈치 안 보고 먹고 싶지만, 어쩌겠어, 연예인의 삶이 다 그렇지 뭐.
심사 테이블을 좀 정리하니 스텝이 도시락과 음료를 가져왔다.
식사하며 준비된 멘트를 한다.
“오! 도시락인데 꽤 맛있네요.”
“응. 나도 여기 가끔 먹는데 괜찮아.”
다 준비된 대본이다.
도시락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시킨 대사를 모두 하고 무대 얘기를 하면서 밥을 먹었다.
“아! 아까 누구였어요?”
“으응. 그냥 알고 지내던 동생인데. 나랑 잘 안 맞아서....”
“왜요? 방송에서 말하기 좀 그런 얘기에요?”
“아니, 별거 없어 진짜. 내 밑에서 배우던 앤데 너무 잘해서 본격적으로 키워 보려고 했는데, 어느 날 기획사 들어갔다더니 소식이 없어졌어.”
초유 누님의 말이 계속 이어졌는데, 요약하자면 그냥 지 잘난 줄 알고 나대다 망한 케이스라는 얘기다.
방송인지라 최대한 돌려 말한 거 같은데, 대부분 비슷하게 이해했을 거 같다.
“무대에서 딱 느껴졌지 뭐.”
승철 형님이 말을 받았고,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아깝네요.”
“맞아. 그만한 인제도 드문데.”
“하여간 남자 들이란.”
여기서 남자가 왜 나오는지 묻고 싶었지만, 초유 누님의 눈빛에 쫄아 우리 둘은 그냥 멋쩍게 웃었다.
실력만 봐선 연습을 소홀히 한 건 아닌 거 같은데.
성격만 좀 고치면 확 떡상할 거 같은 사람이었다.
물론, 저 성격이 고쳐지려면 나이를 좀 먹거나, 큰 사건이 필요할 테니 지금은 그냥 넘어가자.
식사를 마치고 재개된 오디션.
참가자들도 밥을 다 먹었기 때문에 잠깐의 쉬는 시간을 갖고 바로 시작했다.
“자! 식사 맛있게 하셨나요?”
“네!”
진행자와 잠시 소통하고 무대가 진행된다.
배가 부르니 조금 졸리네.
더 최악인 건 지금 세 팀이 연달아 최악의 지루한 무대를 보여줬단 점이다.
아니 이 신나는 곡을 지루하게 부르는 것도 재능이다, 정말.
“하아, 피곤하네.”
“힘들지?”
초유 누님이 내 어깨를 살짝 주물렀고, 나는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이 누나도 지금 지루해서 야한 생각 하는 거 같은데?
살짝 붉어진 볼과 약간 거친 숨. 자꾸 비비는 다리가 증명하고 있다.
방송 중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카메라도 많은데 애먼 짓 할까 봐 누님의 손을 내리며 눈짓을 한 번 했다.
“후훗.”
연륜에 당할 순 없지. 누님은 살짝 웃음 지으며 자세를 바로 했다.
“오! 이번 무대는 좋은데요?”
“그러게.”
두 남성이 춤을 추며 랩과 노래를 번갈아 가며 한다.
지금까지 나왔던 팀 중엔 제일 완성도가 높은 무대.
춤은 조금 부족했지만, 초유 누님의 말로는 조금만 다듬으면 훨씬 좋아질 거 같다고 한다.
우리는 높은 점수를 줬고, 또 무대가 계속 지나갔다.
나름 인지도 있는 연예인도 꽤 나왔고 DJ나 클럽 음악 계열에 유명한 사람도 많이 나왔다.
그렇지만 유명세와 실력은 별개의 문제라 대부분 탈락했다.
진짜 실력 있는 유명 연예인은 여기 나오기보다 따로 회사로 연락하겠지.
그게 더 확률이 높으니까.
“자, 이제 마지막 무댑니다.”
피디님의 소리와 함께 진행자가 참가자를 소개했다.
드디어 마지막 무대구나.
우리 세 심사위원은 벌써 끝난 것처럼 후련한 표정으로 무대를 기다렸다.
이번 참가자는 남녀 혼성 듀오.
남성은 꽤 춤을 잘 췄고, 랩도 나쁘지 않았다.
여성은 보컬이었는데, 춤은 리듬 타는 정도만 보여주며 노래만 했다.
몽환적인 보컬이 인상적이었고, 유니크한 목소리를 내 곡에 잘 녹여냈다.
“잘하네.”
“그렇지? 괜찮네?”
“남자애 춤도 수준급인데?”
초유 누님은 여자 참가자가 춤을 안 춘 걸 조금 아쉬워하긴 했지만, 그래도 좋게 평가했다.
결과적으로 두 팀이 마지막 리스트에 올랐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피디의 말을 끝으로 촬영이 끝났고, 몇 주 뒤에 촬영을 재개한다.
그때는 우승자를 발표하고 축하 무대를 하는 만큼, 우승자는 오늘 미리 뽑아야 한다.
“후우, 어렵다.”
“밸런스가 잘 맞는 팀이냐. 맡은 바 임무를 완벽히 한 팀이냐 싸움이네요.”
남성 듀오는 정말 호흡도 좋았고, 곡 소화도 딱 적당했다.
반면의 혼성 듀오는 호흡이 좋은 것 보다, 둘 다 제 역할을 완벽히 해냈다.
회의하다 좋은 생각이 나서 김 피디님께 말했다.
“피디님. 포멧 조금 바꾸죠.”
“어떻게요?”
다음 촬영에 다시 두 팀을 무대에 올려 우승팀을 결정하기로 하자고 했다.
중간에 나나 승철 형님, 초유 누님이 그 팀을 만나 약간의 도움을 주는 것도 좋겠다고 했다.
“그거 좋은데?”
“찬성입니다. 한 번 알아볼게요.”
승철 형님이 내 의견에 반색했고, 피디님이 스케쥴을 알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한 명 더 올렸으면 좋겠어요.”
“응? 누구?”
초유 누님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고, 나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 여성 솔로로 나왔던....”
너무 아쉽다. 조금만 누가 조언해 주면 확실히 나아질 거 같은데.
“으음.”
“그건 저희가 회의를 좀 해봐야겠는데요?”
일단 나와 승철 형님, 초유 누님은 내 의견에 찬성했다.
스텝들이 논의를 거쳐 내게 말했다.
“그게 좋겠습니다. 어차피 한 명 더 붙인다고 문제는 없으니까요. 근데 룰을 어긴 게 되는 데 문제가 좀 있지 않을까요?”
“룰이야 아직 방송에 안 나갔으니 바꾸면 되죠.”
그렇게 스탑 버튼이 눌려 탈락한 참가자도 다시 무대에 세울 수 있다는 룰을 추가했다.
물론, 심사위원 당 한 팀만 가능하다는 제약을 넣었다.
“두 분도 생각나는 팀 있으면 말해 주세요.”
김 피디님이 말했지만, 내가 느끼기엔 지금 세 팀 외에 딱히 눈이 가던 참가자는 없었다.
승철 형님과 초유 누님은 나름 눈여겨본 참가자가 있었는지, 한 팀씩을 더했다.
즉흥으로 포멧이 변경됐다.
무대를 보고 뽑힌 사람들을 심사위원들이 직접 조언해 준 다음 무대를 한 번 더 보고 우승자를 결정하기로.
촬영은 조금 늘어나겠지만, 프로그램은 더 재밌겠는데?
나도 조금 더 좋고 다양한 무대를 보여줄 수 있을 거 같다.
음, 곡 소모 속도는 더 줄겠네. 다행인 거겠지?
“그럼 오늘은 이만 가시죠.”
“회식이라도 해야 하는데, 죄송해요.”
내가 회식은 다음에 하자고 해서 방송 끝나고 바로 일정이 끝났다.
아침 일찍 나왔는데, 벌써 캄캄한 밤이다.
“후우, 힘들었다.”
“고생했어.”
초유 누님과 한 차를 타고 가며 아인의 안마를 받았다.
진짜 촬영하는 걸 처음 본 아인은 정말 고된 일인 거 같다면 자진해서 내 어깨를 주무르고 있다.
“호호, 비서님은 잘 구한 거 같네.”
“그렇죠?”
가볍게 대화를 마치고 집에 도착해 내렸다.
초유 누님이 함께하려고 했지만, 아인이 있어 아무런 추파도 던지지 못하고 갔다.
물론, 아인이도 아무런 일 없이 집으로 갔다.
선애씨도 집에 갔겠지?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내 예상이 무색하게 선애씨가 날 반겼다.
“들어왔어요?”
“안 갔어요?”
“헤헤.”
신혼부부 느낌이 난다.
일 끝내고 집에 왔을 때 반겨주는 사람이 있는 건, 기쁜 일이지.
아인이 데리고 들어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
“연락이라도 하지.”
“그냥 기다렸죠. 이렇게 늦을 줄 몰랐어요.”
“밥은 먹었어요?”
“아직요.”
나도 아직 저녁 전이라 함께 저녁 겸 야식을 먹기로 한다.
어차피 둘 다 신앙으로 숙취가 깨끗이 사라졌기 때문에 술도 한잔할 수 있다.
“오늘도 마실 거예요?”
술을 들고 내가 물었고, 선애가 새초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 줄 알았는데, 멀쩡하네요. 오늘도 살짝만? 헤헤.”
저런 귀여운 모습이면 뭐든 들어줄 수 있지.
안주와 식사가 함께 될 만한 음식을 시켰다.
시킨 음식은 낙곱새. 빨간 국물의 전골 비슷한 요리다.
곱창 대신 대창이 들어갔다는데, 그럼 낙대새아닌가?
어제와는 다르게 독한 술이 아닌 소주를 깐다.
“크으, 좋다.”
“으유, 아저씨 같아.”
“하하, 소주는 아저씨처럼 마셔야 맛있죠.”
피식 웃은 선애가 내 잔을 채워준다.
“어제는 고마웠어요.”
“뭐가요?”
“헤헤. 알면서.”
“하하. 오늘도 필요해요?”
선애가 격렬하게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고민할 일인가?
“그, 너, 너무 좋긴 한데. 조, 조금 무서워서.”
“무섭다뇨?”
“으으, 아, 아니에요.”
볼을 붉히고 고개를 젓는 선애.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에 살짝 장난기가 동한다.
“그럼 오늘은 식사 끝나고 가실 거죠?”
“아, 아니. 가, 가요?”
당황한 선애. 귀여운 반응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고 장난인 걸 들켜버렸다.
“히잉, 놀리지 마세요.”
“귀여워서 그랬죠. 오늘은 살살 할게요.”
“치이.”
적당히 밥을 다 먹고 소화 시킬 겸 선애와 조금 부드러운 스킨십을 나누며 대화했다.
“일 처리는 어떻게 됐어요?”
“뭐, 똑같죠?”
“엎드려 봐요. 오늘도 안마해 줄게요.”
“아뇨. 오늘은 제가 할래요.”
갑자기 선애가 날 침대에 엎드리게 했다.
어디서 찾았는지, 오일을 가져왔고, 내 눈에 안대를 씌우진 않았다.
딱히 마사지 스킬은 없지만, 내 전신에 오일을 바르고 올라타서 몸을 비비는 선애.
“마사지해본 적 없죠?”
“헤헤.”
귀여운 웃음소리에 나는 몸을 돌렸다.
“앞쪽도 해줘요.”
“네에.”
기쁜 목소리로 마사지 젤을 짜 내 몸에 들이붓는 선애.
선애가 바로 위로 올라와 몸을 비빈다.
적당히 커다란 가슴이 미끄럽게 비벼지는 감촉이 좋다.
“흐으으, 하으.”
“왜 선애씨가 느끼는 거죠?”
“자꾸 비벼지니까아. 흐으, 좋아요.”
“하하. 이거 안 되겠네요.”
선애는 이미 충분히 젖어 있었고, 내 자지도 충분히 발기돼 있다.
“바로 갑니다.”
“흐잇!”
엎드린 선애의 하체를 들어 그대로 자지에 꽂았다.
“흐읏, 좋아욧! 흐잇, 끄읏, 하앙!”
선애가 알아서 몸을 흔들었고, 나도 적당히 박자에 맞춰 허릴 튕겼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 정사를 나누고 함께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선애를 깨워 조금 일찍 보낸다.
조금 있으면 아인이가 와서 마주칠 수도 있거든.
오늘은 딱히 스케쥴은 없지만, 아인을 불렀다.
선애가 가고 잠시 후 아인이 도착했다.
“왔어?”
“응. 무슨 일이야?”
딱히 일은 없지만, 서비스 멘트 좀 날려주기로 한다.
“보고 싶어서 불렀지.”
“피이. 거짓말.”
말은 저리 해도 기분이 좋은지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맞다. 여권 있어?”
“응? 여권은 있지. 해외 갈 일 있어?”
“아마도.”
적당히 대화를 끝내고 씻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간다.
“응? 왜 따라 들어와?”
“헤헤. 씻겨줄게. 해보고 싶어.”
아인이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따라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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