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148화 (148/450)

148.

“소, 소리가 들렸어?”

그럴 리가 없는데? 우리 집 방음에 내가 얼마를 썼는데.

“풋, 이게 되네?”

“떠본 거야?”

“무슨 짓 했어? 바른대로 말해.”

“영하 매니저님은?”

아인이 눈을 흘긴다.

“말 돌리지 말고.”

“아침에 너무 건강하더라고.”

“으응?”

“그래. 혼자서 했다. 왜? 신체 건강한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이어폰 끼고 야동 보느라 전화 못 받았다!”

아인의 표정이 벙찐 표정으로 변했다가 점점 웃음이 퍼져 나간다.

“부 사장님. 그런 걸 복도에서 크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아, 여, 영하 매니저님?”

“하하, 너무 안 와서 와봤는데, 민망하네요. 두 분 사이가 좋으신가 봅니다.”

아인은 영하 매니저님이 오자마자 차렷 자세를 하고 각 잡힌 모습으로 변했다.

“왜 이래?”

“서, 선배님 앞이니까?”

“영하 매니저님이 군기 잡는 스타일은 아닌 줄 알았는데.”

“허허, 전 아무것도 안 했는데, 혼자서 저러시더라구요.”

아인이 좀 오바스러운 성격이긴 하다.

“일단 가시죠.”

“네.”

영하 매니저가 앞서 나갔고, 나와 아인이 천천히 따라간다.

다행히 조금 민망해졌지만, 잘 넘긴 거 같다.

“정비서 때문에 내 이미지 다 망가졌잖아.”

“풋, 아, 그만 좀 웃겨. 웃음 참기 힘들잖아.”

“후우, 진짜 이제 영하 매니저님 어떻게 보냐.”

“헤헤, 대신 내가 아침에 더 일찍 와 줄게.”

“응?”

아인이 혀로 입술을 훑으며 날 본다.

경험도 얼마 없는 사람이 유혹하려고 입술을 쓰는데, 내가 보기엔 귀엽기만 하다.

문란해 본적 없는 사람은 문란한 생각을 별로 못 한다.

몸을 막 굴리던 여자라면 아까 내 변명을 안 믿었을 확률이 높다.

자신과 자고 바로 다음 날 스케쥴도 있는데 집에 여자를 들일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아인. 때문에 임기응변으로 한 대응이 잘 먹혀들어 갔다.

사실대로 밝히려고 했는데, 영하 매니저가 어딨는지 파악하기 위해 시간을 끄느라 변명도 생각났고, 영하 매니저님이 들어 버리는 혹시 모를 사태도 방지할 수 있었다.

사실 아인에겐 들켜도 되지만, 조금 더 제대로 말하는 게 후폭풍이 적을 거 같아서.

오늘은 운이 좋구나.

좋은 무대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방송국에 도착하니 작가님과 피디님이 열심히 호통을 치며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다.

“피디님.”

“아! 오셨어요!”

“안녕하십니까.”

내가 부르자 다가와 반갑게 인사하는 김 피디님. 아인이 피디님께 인사를 한다.

“누구시죠?”

“아! 제 비서예요. 아인씨 여긴 김영민 피디님 알죠?”

“네! 만드시는 프로마다 대박이시잖아요. 저도 재밌게 봤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인사가 끝나고 김 피디님이 살짝 우쭐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기대하셔도 좋아요.”

“정말요?”

김 피디님은 이미 예선 무대를 봤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

“이따 무대 보시면 놀라실 거예요. 하하. 저는 준비가 남아서 이만.”

“네. 수고하셔요.”

김 피디님과 헤어져 무대를 한 번 보고 대기실로 향했다.

“자기 왔어어?”

초유 누님이 반갑게 날 보고 반겼다.

“누님 일찍 오셨네요?”

“안녕하십니까.”

아인이 초유 누님에게도 박력 넘치게 인사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인사를 받고 날 보며 설명을 원하는 눈빛을 보내는 초유 누님.

“오늘부터 출근한 제 비서예요. 저도 스케쥴이 바빠질 테니까요.”

“아! 호호. 잘 부탁해요.”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회사에는 내가 비서를 구했단 사실을 알렸지만,

연예인들은 아직 모른다.

매번 만나서 소개하기도 그런데 자리 한 번 만들어봐?

아니다, 또 잡아 먹힐 거 같다. 그냥 한 명씩 만날 때마다 소개하지 뭐.

초유 누님이 내게 눈을 흘긴다.

“뭐야? 다 알고 들어온 거야?”

초유 누님이 내 귓가에 작게 속삭였고,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조금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그래?”

초유 누님이 야릇한 얼굴로 아인을 훑었다.

“흐으.”

아인이 기백에 눌려 신음을 냈다.

“환영해요.”

“가, 감사합니다.”

와! 이렇게 서열정리가 끝난 건가?

초유 누님이야 우리들 사이에 최상위 포식자니까.

“그럼 전 잠시.”

초유 누님을 두고 거울 앞에 가 앉았다.

그동안은 헤어숍을 다니며 머리와 메이크업을 했는데, 초유 누님 스타일리스트가 있어서 그냥 왔다.

딱히 많이 꾸밀 필요도 없으니까.

“와! 실물이 훨씬 더 미남이세요.”

“하하, 감사합니다.”

초유 누님의 스타일리스트와 메이크업을 하며 대화를 나눴고, 머리 세팅까지 끝나자 누군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아! 형님!”

오늘 1회 특별 심사위원으로 내가 도움 요청한 승철 형님이다.

바쁘실 텐데 흔쾌히 와 주셨다.

“오늘 감사드려요.”

“에이, 동생 일인데 무조건 와야지. 고정도 할 수 있어.”

고정은 좀. 김 피디님이 만드는 프로그램이라, 승철 형님이 고정이면 약간 옛 오디션 프로와 겹칠 거 같아서 피했다.

“하하, 슬슬 시작할 거 같네요.”

“응, 나도 준비 좀 할게.”

승철 형님이 본인의 대기실로 갔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또 남자 한 명이 들어왔다.

진행자를 두 명 두려고 했는데, 김 피디님이 한 명이 더 좋을 거 같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오랜만이네요.”

“네. 하하, 그때 토크쇼에서 보고 처음이죠?”

“네. 잘 부탁합니다.”

“아휴, 불러주셔서 감사하죠.”

예전에 승철 형님께 곡 줬을 때 처음 나간 토크쇼 엠씨.

그때 좋게 봤는데, 국민엠씨인 신명석씨는 섭외할 수 없어서 조창민씨에게 말만 해봤는데 흔쾌히 요청을 받아 줬다.

단독 엠씨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건 처음이지만, 딱히 어려운 프로가 아니니 잘 할 거라고 생각한다.

아나운서 출신 진행자를 구하면 자꾸 다른 프로랑 비슷해 보일 것 같아서, 여러 가지 변화를 줬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예인과 모두 인사했고, 잠시 대기하니 촬영이 시작됐다.

“바로 들어갑니다. 큐!”

김 피디님의 말에 음악이 흘러나오고 무대로 창민씨가 걸어 나왔다.

“가수라면 누구나 원하는 S.Min의 곡을 잡아라! 꿈의 무대! 드림 스테이지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사람이 아닌데, 연습을 많이 했는지 생각보다 진행이 매끄러웠다.

“그럼 심사위원을 소개합니다!”

창민이 말을 끝내자 초유 누님 앞에 조명이 켜진다.

“춤신춤왕! 대한민국 댄스 여제. 춤을 논하는 자리에 빠지지 않는 춤에 살고 춤에 죽는 댄서! 안무가 박초유 씨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초유 누님이 가볍게 인사를 했고, 창민이 마이크를 잡는다.

“어떤 기준으로 심사하실 생각이신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우선 저는 안무가인 만큼 퍼포먼스에 집중할 예정입니다. 노래와 얼마나 어울리게, 얼마나 멋지게 무대를 꾸몄는지 보겠습니다.”

초유 누님도 이런 자리가 처음이 아니다 보니 말이 술술 나왔다.

“자! 그럼 다음으로 우리 주인공을 소개하기 전에!”

창민이 잠시 뜸을 들이고 말을 이었다.

“오늘만 특별히 객원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주신 분이 계십니다.”

승철 형님 앞에 조명이 켜진다.

“후배들을 아끼는 부드러운 카리스마! 따듯한 독설로 후배를 양성하는 가수 신! 승! 철 씨 모셨습니다.”

“하하, 안녕하세요. 가수 신승철입니다.”

“승철 심사위원님은 워낙 많은 오디션에 심사하셨던 분인 만큼 이번엔 어떤 기준으로 심사하실지 궁금한데요. 한 말씀 해 주시죠.”

승철 형님이 일어나 강한 어조로 말했다.

“저도 S.Min님의 곡은 한 곡 밖에 못 받았습니다. 엄청난 가치가 있는 곡인 만큼, 곡의 가치를 최대한 이끌어 내준 사람에게 후한 점수를 줄 예정입니다.”

“말씀 감사드립니다.”

조명이 꺼지고 다시 창민의 멘트가 시작됐다.

“이제 이 분을 소개할 때가 왔군요. 저희 프로그램 드림 스테이지. 이 분이 없다면 만들어질 수 없는 프로그램이죠.”

내 앞에 조명이 켜졌다.

“다른 말은 필요 없다. 천재! 프로듀서 S.Min!”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며 인사했다.

“하하, 안녕하세요. 작곡가 S.Min입니다.”

내 인사에 창민이 앞에서와 같은 질문을 했다.

“제 자식 같은 곡을 보내는 만큼, 딸아이 시집보내는 심정으로 모든 면을 볼 생각입니다.”

“와! 어떻게 보면 가장 쉽고, 또 다르게 생각하면 가장 어려운 심사가 되겠습니다.”

창민이 내 말을 받고 조명이 꺼진 뒤 나는 자리에 앉았다.

“자! 그럼 지금부터 꿈의 무대. 드림 스테이지! 시자악! 합니다!”

무대에 불이 꺼지고 잠깐 시간이 났다.

지금 방송 화면에는 진행되는 룰 설명이 나가고 있을 것 같다.

무대 선정 기준도 기존의 오디션과 많은 차별을 뒀다.

김 피디님이 와서 우리에게 한 번 더 설명했다.

시청자 투표를 하지만, 심사위원이 참고만 할 뿐,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똑같은 곡으로 계속 무대를 하는 만큼 심사위원 둘 이상이 버튼을 누르면 바로 무대가 끝나고 탈락한다.

기회는 한 번뿐이며, 한 번의 심사로 모든 게 결정된다.

촬영은 한 번에 하지만, 방송에는 한주에 몇 팀 공개되지 않으며,

프로그램은 지인이의 여행 프로그램 뒤에 짧게 방영한다.

주 2회 방송에 5주간 진행되는 오디션이다.

김 피디님의 메인 프로가 계속되는 한 나도 계속할 생각이다.

한 달에 두 번만 촬영하면 되니까.

비밀유지를 위해 참가자들에게도 결과를 말해주지 않는다.

여러 가지 말이 끝나고 무대 준비가 끝났는지, 진행자가 무대로 나왔다.

“그럼 바로 시작합니다. 큐!”

피디님의 말이 끝나고 조명이 다 꺼진다.

“첫 번째 무대. 가수의 꿈을 안고 야심차게....”

잠깐의 소개가 끝나고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니 DJ 부스 앞에 한 명이 서 있고, 두 사람이 더 무대에 있었다.

바로 음악이 나오고 무대가 시작된다.

무대가 시작하고 30초도 지나지 않아 나와 승철 형님의 버튼이 눌려 빨간 불이 들어왔다.

참가자들은 어벙한 표정으로 심사위원석을 본다.

진행자가 나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스탑 버튼이 두 개 나와서 아쉽게 탈락하게 되었습니다. 심사위원 말씀 들어 볼까요?”

승철 형님이 먼저 마이크를 집었다.

“아무리 곡이 EDM이라고 하지만 보컬을 그렇게....”

나도 같은 생각이다.

신나는 곡이라고 노래를 막 부르면 안 되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내 짧은 말을 끝으로 그들은 무대를 내려갔다.

“첫 무대부터 바로 탈락자가 생겼는데요. 이게 다음 분에게 독이 될지 득이 될지는 지켜봐야겠죠? 소개합니다....”

그렇게 몇 개의 무대가 지나갔다.

음악 장르가 EDM이라 가수보단 DJ나 댄서가 많이 나왔고.

노래를 너무 대충 해서 떨어지는 팀이 많았다.

래퍼가 제일 많을 줄 알았는데, 생각 보다 별로 없네?

아니면 아직 안 나온 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데 다음 무대는 래퍼였다.

나름 인지도 있는 래퍼라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예아! 으! 아!”

신나게 무대를 휩쓸며 랩을 시작한다.

으음, 너무 묵직한 랩이다. 싱잉랩이면 더 어울렸을 거 같은데.

내가 알기로 저 래퍼는 싱잉랩은 안 하니까.

무대가 끝나고 적당히 심사평을 말했다.

“잠시 쉴까요?”

내가 말하니 김 피디님이 잠깐 촬영을 멈추고 휴식 시간을 줬다.

“20분 뒤에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외침을 뒤로하고 심사를 위해 앉아 있던 셋은 의자에 몸을 묻었다.

“후, 힘드네.”

“그러게요. 노래는 좋은데 뭔가 딱 알맞은 느낌이 드는 사람이 없어요.”

나와 승철 형님이 대화를 나누고 있고, 초유 누님이 껴 들어왔다.

“퍼포먼스는 그냥 그런 애들이 많은 거 같아. 뭔가 전문 댄서가 춤만 추기엔 좀 약하고 그렇다고 가만히 서서 듣기엔 너무 신나는 노래라 어려운 거 같아.”

“저도 만들고 고민 많이 했어요. 하하.”

내가 적당한 사람을 찾지 못해 짬 처리 한 곡인 만큼 심사도 어려워졌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시간이 지나자 다시 촬영이 시작됐다.

“이번엔 여성 솔로 참가잡니다....”

오! 여성 솔로는 처음이다.

그동안은 계속 팀이나, 남자 솔로만 나왔는데.

여성이 혼자 이 곡을 어떻게 소화할지 궁금하다.

“어?”

참가자가 보이고 초유 누님이 살짝 놀란 소리를 냈다.

내가 고개를 돌려 아는 사람이냐고 물었고, 초유 누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댄서?”

고개를 젓는 누님.

나중에 물어봐야지.

음악이 나오고 참가자는 박력 넘치는 춤을 선보였다.

오우! 춤은 멋진데 저렇게 추면서 어떻게 노래하려고 그러나?

초유 누님이 댄서는 아니라고 했지만, 춤은 수준급인 거 같다. 제발 랩이든 노래든 하나라도 잘 했으면 좋겠다.

반주가 끝나고 멜로디 비슷한 구간이 나올 타이밍.

참가자의 입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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