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142화 (142/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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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저 괜찮아요?”

“뭐가요?”

“화장품을 안 가지고 나와서, 그냥 다 지웠는데.”

“쌩얼이에요?”

아인이 고개를 저었다.

“에이, 그래도 쌩얼까진 아니죠.”

“미인이셔서, 화장하든 말든 크게 차이가 없으실 거 같은데요?”

“헤헤. 감사해요.”

아인이 활짝 웃었다.

“이제 어떡하실 거예요?”

“뭘요?”

아인이 내게 물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답하자 답답하다는 듯 아인이 말했다.

“이대로 영상 공개만 하고 끝이에요?”

“의혹도 아니고, 확실한 정보 공개를 했는데, 뭐가 더 필요할까요?”

“으음, 그렇겠죠? 바로 수사 들어가겠네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인과 마주 보고 앉았다.

“아인씨는 당분간 숨어 지낼 건가요?”

“으음, 설마 저도 무슨 일 날까요?”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제게 붙어 있어요.”

“네?”

아인이 당황한 음성을 냈다.

“저랑 같이 다녀요. 안전해질 때까지.”

“그, 그래도 돼요? 저 기잔데?”

뭐, 얼마나 오래 가겠냐. 당분간 조심히 지내면 되겠지.

여차하면 아인씨나 꼬셔봐야지.

“뭐, 평소에 책잡힐 일은 하지 않으니 상관없겠죠?”

“오, 대단한 자신감이네요.”

조금 진정된 아인은 내게 다가와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아, 잠시만요.”

이야기하던 아인이 완전히 진정된 모습으로 전화를 받기 시작한다.

“아니! 제가 뭘 잘못한 게 없는데, 무슨 사과예요.”

“정정기사를 왜 내요? 사실인데!”

흥분해서 마구 말을 쏟아내는 아인.

날 한번 보더니 강하게 말을 한다.

“그만둘 테니까, 알아서 하세요.”

아인이 날 보고 씩 웃는다.

“저 잘린 거 같아요.”

“그만둔 거 아니에요?”

“헤헤.”

웃으며 내 곁으로 다가온 아인.

“확인도 안 해보고 기사 냈다고, 뭐라고 하잖아요.”

“제보자가 전 데도요?”

“뭐, 사장님은 JG를 적으로 돌리면 안 되나 봐요.”

그쪽 사장도 접대를 받았었나?

신문사 사장이면 끗발이 좀 딸려서 미리 연락을 못 받았나 보다.

“지금 난리 났네요?”

자신의 폰을 보여주는 아인.

엄청난 수의 댓글과 후속 기사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뭐, 이 정돈 예상했죠.”

“와.”

“놓고, 밥이나 먹죠? 뭐 좋아해요?”

“으음, 지금 밥이 넘어 갈 거 같지 않은데요....”

힘 빠진 얼굴로 말하는 아인.

“잘못한 것도 없는데, 밥은 잘 먹어야죠. 이런 때일수록 맛있는 거 먹어야 해요.”

아인은 대답 없이 피식 웃는다.

나는 알아서 배달 음식을 몇 개 시켰다.

뭐, 음식이 보이면 생각이 또 달라지겠지.

잠시 아인과 후속 기사를 보며 음식이 도착하길 기다렸다.

“으음, 생각보다 진행이 빠른데요?”

“그러게요?”

마치 영상이 올라올 걸 미리 알았던 것처럼 대응하는 경찰.

기사가 올라간 지 몇 시간도 안 됐는데, 검찰에선 벌써 특별 수사팀을 만들었다고 한다.

아빠가 뒤에서 힘 좀 썼나?

“며칠 내로 끝나겠어요.”

“그래도 조금 불안하니까....”

아인이 애처로운 눈으로 날 바라보다가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였다.

이건 무슨 시그널이냐?

이쁜 얼굴로 애처롭게 보니까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뭐라도 말을 하려는 데 벨 소리가 울렸다.

후우, 살았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나도 모르게 고백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색해질 뻔했어.

아인은 가수가 아니다. 민하씨 처럼 오래 보고 호감을 쌓은 사이도 아니고.

이상하게 날 좋아하는 것 같은 느낌은 풍기지만,

연예계에선 뭐든 조심하는 게 상책이다.

오늘의 메뉴는 분식.

스트레스받은 날은 이상하게 분식이 당기더라.

뭐, 딱히 스트레스를 받은 건 아닌데,

아인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거 같아서 분식을 시켜봤다.

떡볶이와 김밥. 돈가스가 식탁에 올라온다.

“안 먹어요?”

“으음, 마, 맛만 봐 볼까요?”

배가 고팠는지, 음식 냄새가 나자 아인의 배는 소리를 냈고.

내 권유에 아인은 살짝 민망해하며 젓가락을 집었다.

잘 먹네.

오물오물 음식을 씹는 모습이 귀엽다.

“아인씨.”

“네?”

“몇 살이에요?”

“나이요?”

아인이 눈을 크게 뜨고 날 본다.

“실례가 됐나요?”

“아하하, 그런 건 아니지만, 숙녀의 나이는....”

“저보다 어리실 거 같아서요. 말 편하게 할까 했죠.”

“헤헤.”

아인이 방실방실 웃으며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작곡가님보다 나이 많아요.”

“정말요?”

아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댔다.

“하, 한 살....”

“아, 올해 28이시구나.”

“하아, 나이 먹기 싫다.”

“어디 가면 20대 초반으로 볼 텐데요 뭐.”

아인이 방긋 웃고는 음식을 먹는다.

민하씨랑 동갑이구나.

민하씨는 뭔가 누나 같은 느낌이 나는데,

아인은 동생 같은 느낌이다.

“누나라고 부를까요?”

“흐으으, 그, 그냥 아인씨가 좋아요.”

“하하, 농담이었어요.”

내 누나라는 말에 힘 빠지는 소리를 내는 아인.

“우리 말 편하게 하자.”

아인이 내 말을 기억했는지, 먼저 말을 놓았다.

“그래.”

당분간 같이 지낼 사이고, 비서로 채용할지도 모르는데,

나는 이런 편한 사이가 좋다.

민하씨랑도 편하게 하고 싶은데,

민하씨는 서로 존칭과 존대가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며 예전의 어투를 고집한다.

뭐, 내가 진짜 직장인도 아니고, 공과 사 구분은 옛날부터 못 했다.

그럼 시연이한테 곡 안 줬지.

“다 먹었어?”

젓가락을 놓고 등을 기댄 아인.

배를 쓰다듬는 모습이 배부른 고양이 같다.

“응, 배부르다.”

“후식 먹을까?”

“후식?”

냉장고에 있던 아이스크림을 꺼낸다.

내 냉장고에는 언제 산지 모르는 음료와 아이스크림이 가득하다.

“먹을래?”

“좋지.”

아인은 아이스크림을 천천히 핥아 먹는다.

와우! 원래 저렇게 먹는 걸까?

뭔가 시그널 같은 움직임.

나는 살짝 고개를 돌리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자꾸 보니까 조금 민망하더라고.

천천히 아이스크림을 녹여 먹으며 말을 꺼냈다.

“어쩌다 기자가 된 거야?”

“흐음, 딱히 뭐가 되겠단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까?”

아까 나쁜 일을 당했던 선배가 떠오르는지, 아인의 표정이 아련해졌다.

“연예부로 온 거 보면, 연예계에 관심 많았을 거 같아.”

“호호, 그런 오해 많이 하더라, 나 기자 시작할 땐 JG랑 SP 소속 연예인 구분도 못 했어. 외우느라 혼났다.”

의외네.

“근데 연예부 기자가 됐어?”

“흐으응, 원래는 정치부로 가고 싶었어.”

“정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네?

정치랑 너무 안 어울리는 비주얼인데?

“사실, 그나마 조금 아는 분야가 정치뿐이라....”

“어릴 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진 거야?”

얘기가 점점 깊어지네. 말을 돌릴까?

“아니, 그냥 취업준비 하다 보니까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잖아. 그러다 보니 제일 잘 아는 부분이 정치더라고.”

취업을 준비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뭐, 대학 면접만 해도 칼럼 같은 거 읽고 정리하고 하니까,

취업준비에도 사회 이슈를 공부하는 게 필요했겠지.

슬슬 말을 돌려보자.

“연예인 제의 받아본 적은 없어?”

“헤헤, 내 노래 들어볼래?”

“들려줄 수 있어?”

“듣고 놀리면 안 된다.”

웃음기 머금은 얼굴로 말하는 아인.

나는 컴퓨터를 켜고, 마이크를 연결했다.

“여기 방음 잘 되니까, 맘껏 불러도 돼.”

“흠흠, 듣고 싶은 노래 있어?”

목소리만 들어서는 감이 잘 안 잡히네.

“잘 부르는 거로 불러줘.”

“으음, 곤란하네.”

“왜?”

“딱히 잘 부르는 게 없어서. 헤헤.”

혀를 내밀고 살짝 웃는 아인.

귀여운 모습에 아빠 미소가 나온다.

진짜 동생 같네.

“그럼 북행 열차 부를래.”

“트로트?”

고개를 끄덕이는 아인.

반주를 찾아 틀었다.

트로트라니 새롭네.

“흠흠.”

목을 푸는 아인. 몸을 흔드는 게 춤은 못 추는 거 같다.

박자감이 너무 없는데?

“눈 내리는 경원선! 북행 열차에!”

소음이다.

저건 노래가 아니다.

국어책을 힘줘서 읽는 듯한 외침.

어떻게 소리 크기랑 음이 일정하지?

AI가 불러도 저 노래보단 음의 높낮이가 있을 거 같은데?

중간에 노래를 끊고 싶었지만, 내가 시켰으니 예의상 끝까지 들었다.

“후우, 힘들다.”

“고생했어, 그렇게 부르면 안 힘든 게 이상한 거지.”

“헤헤.”

소리만 빽빽 질러대고 뭘 잘했다고 해맑게 웃는지 모르겠다.

예쁘니까 봐준다.

“어땠어?”

“적당히 포장해서 말해줄까? 솔직하게 말해줄까?”

“예쁘게 포장해서 말해줘. 후훗.”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일정한 음정에 박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서 노래를 부르네? 200년쯤 후에는 그런 창법이 유행할지도 모르겠어.”

“와! 내가 들어본 평 중에 제일 후한데?”

도대체 어떤 평가를 듣고 살아왔던 걸까?

우리는 눈을 맞추고 서로를 향해 씨익 웃었다.

뭔가 잘 통하는 거 같아서 기분은 좋다.

“그래서 가수는 힘들 거 같지?”

“으음, 도전해보고 싶은 음색이야.”

정말로 딱 하나의 장점을 꼽자면, 목소리는 예쁘다는 점?

말할 때 목소리는 참 좋은데, 음정 박자만 맞추면 괜찮은 노래가 나올 수도 있을 거 같다.

“나도 배우면 잘 할 수 있을까?”

“으음, 배워보게?”

“어차피 당분간 할 일도 없으니까?”

“진짜 그만둔 거야?”

아인이 눈을 빛낸다.

“그만둘 거야. 그런 회사! 진짜 나 받아 줄 거지?”

“흐음.”

바로 예스라고 말할 뻔했지만, 고민하는 척을 좀 했다.

미인 앞에서 있어 보이고 싶은 건 모든 남성의 공통된 특성이니까.

“왜? 곤란해? 흐음.”

아인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력서 정도는 제출해야지.”

“지금 바로 보여줄 수 있어?”

“이력서를 가지고 다녀?”

“메일에 다 정리해놨지.”

아인이 컴퓨터로 몇 가지 파일을 내려받았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간단한 포트폴리오까지.

“포트폴리오는 뭐야?”

“내가 쓴 기사들 모아 놨지.”

“철저하네.”

“기자니까?”

거만한 표정으로 웃는 아인.

얄미운 모습에 살짝 장난기가 동한다.

“면접관한테 보이기엔 안 좋은 표정 같은데?”

“앗! 죄송합니다. 헤헤, 잘 부탁드려요.”

바로 싹싹했던 처음에 모습으로 돌아온다. 귀엽긴.

“연기는 잘 할 거 같은데?”

“으음, 연기는 뭐 도전해 볼 건덕지가 없었으니까, 모르겠다.”

대충 흘린 말에도 진지하게 생각하는 아인.

설마 내가 가수나 배우를 시키려는 줄 아는 걸까?

“데뷔하고 싶어?”

“데뷔시킬 거 아니었어?”

“으음.”

나도 진지하게 아인의 상품 가치를 생각해 본다.

비주얼은 훌륭하다. 나이는 조금 많은데, 딱히 문제 될 정도는 아니다.

노래는 처참해서 훈련을 시킨다고 나아질지 모르겠다.

연기는 해본 적 없어서 판단할 수 없다.

지금부터 배워서 데뷔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겠는데?

차라리 내 전문분야인 노래로 어떻게 해 보는 게 낫겠지?

아무리 그래도 데뷔는 힘들 거 같긴 한데? 신앙으로 음치도 고칠 수 있나?

오! 이건 좀 궁금하네.

음치에는 선천적 음치와 후천적 음치가 있다.

타고 나길 음치로 타고 나는 사람이든, 어떤 이유로 음치가 됐든, 고칠 수 있다고 알고 있다.

대부분 음치는 음감이 없어 음의 높낮이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내고 싶은 음을 내는 법을 모를 뿐이다.

훈련으로 바로잡아 가면 되는데, 신앙이 도와주면 어떻게 될까?

진짜 음색은 좋으니까 도전해볼까?

“원래는 내 비서로 고용할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도전 욕구가 막 생기네.”

“도전 욕구?”

“음치를 고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으음, 그거 힘들지 않을까?”

벌써 겁먹고 한발 뒤로 물러나는 지인.

아까까진 엄청 적극적이었던 거 같은데. 실제로 다가오니 겁이 나는 걸까?

“데뷔하기 싫어?”

“사실, 잘 모르겠어.”

대부분 연예인을 권유받는 사람들은 잘 모른다.

평소에 관심이 많고, 하고 싶어라 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연예인으로서 삶을 생각해 볼 리가 없지.

“일단 비서로 일하면서 생각해 볼까?”

“음....”

고민에 빠진 아인.

“몇 가지 물어봐도 돼?”

아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물론이지, 궁금한 거 다 물어봐.”

“일단, 근무 내용이랑 연봉은 어떻게 돼?”

“흐음, 근무는 나 따라 다니면서 스케쥴 관리만 해주면 될걸? 아! 운전도 하면 좋고, 혹시 면허 있어?”

아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1종 보통입니다! 생각보다 기자들 운전 잘 해!”

“오! 대단한데?”

밝게 웃는 아인에게 연봉 협상을 시도했다.

“연봉은 얼마 받고 싶어?”

“흠, 그렇게 물어보면 딱 말하긴 힘든데.”

“기자일 하면서는 얼마 버는데?”

아인이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취재비 빼면 월급은 250만 원 정도?”

“취재비?”

“응, 회사에서 차비나 식비, 접대비 정도는 나와.”

“얼마 정도?”

연봉 3000에 취재비까지 나오면 나름 꽤 버는구나.

“한 달에 삼십만 원 정도?”

“괜찮게 버네?”

“초봉이 2500이었으니까.”

기자는 박봉일 줄 알았는데, 모아일보가 나름 대형 언론사니까 대우가 꽤 좋은 거 같다.

아니, 대형 언론사 치곤 대우가 안 좋은 거 맞나?

“나도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내가 자랑스럽게 말하자 아인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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