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박으면 악상이 떠올라-141화 (141/450)

141.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나는 연락처 하나를 찾았다.

“준비야 예전에 끝났으니까. 잘 퍼트리기만 하면 되겠지?”

내 손에는 과거 공항에서 만났던 모아일보 기자의 명함이 들려있다.

“정아인 기자라.”

기억나는 건 예쁘고 몸매가 좋았다는 정도?

인터뷰를 길게 했고, 나름 내 기사도 좋게 써줬지?

믿을 수 있는 사람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얘기해 볼 다른 기자가 마땅치 않다.

언론과 친하게 지내진 않았으니까.

내 행동이 문제 될 여지가 많아, 언론은 최대한 피했다.

내 여자 하나라도 걸리면 큰일이니까.

적당히 우호적인 척하지만, 사실은 최선을 다해 피하고 있던 언론에 처음으로 보도자료가 아닌 직접 연락을 취한다.

“여보세요?”

고운 목소리. 그녀의 미모가 떠올라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안녕하세요. 작곡가 성민입니다.”

“아! 프로듀서님!”

너무 반가워하는데?

“너무 늦게 연락 주신 거 아니에요?”

“하하, 기자님한테 연락드릴 일이 많이 없어서요.”

“에이, 너무 딱딱하시다.”

음, 내가 좀 딱딱하긴, 아니, 이 여자가 왜 이래?

살가운 말투에 기분은 좋은데, 살짝 의심이 들기도 한다.

어디 스파이는 아니겠지?

생각해보면, 다가간 것도 내가 먼저 다가갔고, 전화도 내가 먼저 했는데 괜한 걱정이다.

“한번 보죠.”

“좋아요! 언제 어디로 가면 될까요?”

엄청난 적극성이다.

괜히 불안했지만, 일단은 만나기로 한다.

마침 오늘까진 스케쥴이 여유로워서 바로 만나기로 했다.

여자인 걸 고려해 넉넉하게 시간을 주고 장소를 정했다.

“미리 가 있자.”

프라이빗 룸이 제공되는 카페.

무슨 커피 한잔에 2만 원이나 하냐?

이게 자릿센가?

“시설은 좋네. 맛은 모르겠지만.”

커피믹스에 익숙한 입이라, 딱히 맛있는 커피는 모른다.

단지 개운한 느낌이 드는 거 같아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가끔 먹을 뿐.

너무 아저씨 같은가?

오늘 처음 왔는데, 날 알아보고 VIP 회원권 까지 만들어 줘서 카페에 대해 나쁜 생각은 접기로 했다.

“흐음, 언제 오려나.”

약속 시간이 10분쯤 남았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네!”

“일행분 오셨습니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아인 기자가 들어왔다.

손에는 미리 시켰는지 커피를 들고 있다.

“아! 커피는 제가 사려고 했는데.”

“헤헷, 괜찮아요. 대신 밥 사주세요.”

멋쩍게 웃으며 넘겼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친화력 하난 정말 좋은 거 같다.

내 앞에 앉는 아인.

외모는 정말 연예인 같다.

왜 기자가 됐을까? 그것도 연예부 기자.

기자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연예부 기자가 된 거면 연예계에 관심이 많을 거 같은데,

기자 말고 연예인이 되고 싶진 않았을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물어나 봐야지.

오늘은 무거운 얘기를 꺼내야 하니까 호기심은 참자.

“무슨 일로 연락을 다 주셨어요?”

간단한 안부를 묻는 대화가 끝나니 그녀가 바로 본론을 꺼냈다.

“으음, 조금 위험한 얘긴데 괜찮으시겠어요?”

“위험한 얘기요?”

아인의 표정엔 두려움보단 호기심과 기대감이 보였다.

기자라서 그런가?

뭐, 호기심 많은 사람은 대부분 위험한 얘기를 위험하게 생각하지 않겠지.

“괜찮겠어요?”

“으음, 들어보기 전까진 모르죠?”

그녀가 고개를 갸웃한 상태로 말하고 씨익 웃었다.

하아, 미인계에 약한 나로서는 마음 약해지는 미모다.

근데, 문제는 이 정보를 그녀에게 알려주는 게 좋을지 안 알려주는 게 좋을지 나도 모르겠다.

살짝 떠볼까?

“JG엔터 어떻게 생각하세요?”

“JG요?”

그녀는 놀란 듯 큰 반응을 보였다.

“왜요? 뭐 아시는 거 있어요?”

내가 아인에게 물었고, 아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런 건 아닌데, 으음, 뭐랄까요.”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저만 알고 있을게요.”

분위기를 풀 목적으로 조금 가볍게 말했다.

“그 JG 소문이 좀 안 좋아서요.”

“소문이요?”

“접대에 관한 루머가 퍼진 적이 있어요. 지금은 너무 수상하게 싹 사라졌지만요.”

“수상하게 사라졌다고요?”

아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차가운 커피를 하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아무리 소문이라지만, 너무 얼토당토않은 얘기는 그렇게 많이 퍼지지 못하거든요. 그런데....”

아인의 말을 간단히 줄이면,

기자들 사이에 소문이 퍼졌다면, 정말 뭔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소문이 어느 기점에 완전히 사라졌다.

무언가 혹은 누군가의 개입이 없다면 불가능한 얘기다.

이제 JG 관련 소문을 아무도 언급하지 않지만,

대부분 기자가 의문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떤 소문이었는데요?”

“연습생한테 접대를 시킨다는 루머였죠.”

“그렇군요.”

생각보다 아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아무도 증거는 찾지 못했는데, 수상쩍은 이야기가 돌았었어요.”

“어떤?”

“JG연습생 중 일부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진다는 괴담 같은 이야기였죠.”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네.

사실이라고 생각을 못 할 뿐이지.

“헤헤, 뭐 JG가 그럴 리가 없지만요.”

“흐음, JG 좋아하세요?”

“으음, 딱히 좋아하는 거 같진 않아요.”

그래, 어차피 더 구할 기자도 마땅치 않다.

아인에게 정보를 넘기자.

“으음, 자리를 옮기죠.”

“네.”

아인은 의문도 표하지 않고 바로 답했다.

마음의 준비가 끝난 걸까?

아니면 그만큼 날 믿는 건가? 아니겠지? 뭘 보고 믿겠어?

아인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호오, 이런 곳에서 사시는구나.”

“이런 곳이라뇨?”

여자가 남자 사는 집에 왔으니 살짝 긴장할 만도 한데 너무 태연한 아인.

분위기나 풀어주려고 농담을 던졌다.

“더 좋은 곳에서 사실 줄 알았죠.”

“하하, 옛날부터 살던 집이에요.”

“그렇구나.”

아인에게 마실 걸 내주고 앉아서 무게를 잡았다.

“뜸 들이지 않을게요.”

“네.”

나는 폰을 꺼내 바로 편집한 영상을 재생했다.

“엇, 와! 음, 하아.”

영상이 끝나고 깊은 한숨을 쉬는 아인.

“제게 이걸 보여주신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기사화해 달라는 거죠.”

“하아, 이게 가능할까요?”

“어차피 제 유티비를 통해 공개할 수도 있으니까요.”

아인은 고민에 빠진 표정이다.

사실 처음은 유티비로 공개할 생각이었는데, 뭔가 내 유티비가 오염되는 거 같아서 참았다.

아인을 만나 영상을 보여준 것도 그런 이유.

어지간하면 내 유티비에 올리고 싶지 않다.

“아으, 정말. 이 정도로 위험한 얘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어떤 얘긴 줄 알았어요?”

“가십 정돈 줄 알았죠.”

“하하, 가십 하나 때문에 이렇게 부르진 않죠.”

아인은 고개를 저었다.

“대부분 누구 연예설 정도를 퍼트려 달라고 부르지, 이렇게 위험한 일에 절 부르진 않았다구요.”

“그래요?”

아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여자라서 그런지, 경력이 그리 길지 않아서 그런지, 이런 일은 보통 더 나이 많은 남자 기자들한테 많이 가죠.”

나야 아인이 이뻐서 좋은 거니까.

나 같은 생각 한 사람이 없었나?

“이런 말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얼토당토않은 기삿거리 하나 주면서 몸까지 요구하는 사람도 정말 많았어요.”

아인이 소름 끼친 듯 몸을 떨며 문지른다.

“으으, 벌레 같은 사람들. 죄송해요. 사실 프로듀서님도 여기로 부르신 게 그런 이윤 줄 알았는데, 정말 위험한 자료였네요.”

“하하, 제가 그럴 사람으로 보였나요?”

“남자는 다 똑같다니까요.”

“저도 남잔데요?”

아인이 살짝 웃었다.

“으음, 사실 프로듀서님 정도면 한 번....헤헤.”

“농담이 나올 정도면 기사 퍼트려 줄 수 있겠네요.”

“농담 아닌데.... 일단 영상, 제 메일로 보내주세요.”

바로 컴퓨터를 켜고 영상을 보냈다.

“아니! 여기서 작업 해도 되죠?”

“바로 올리시게요?”

“으음, 이런 건 괜히 위에 보고하고 올리면 컷 당할 수도 있어요.”

아인이 팔을 걷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후우, 떨려라.”

“긴장 풀어요. 여긴 안전해요.”

“저 짤리면 어떡하죠?”

“저한테 오세요. 자리 만들어 드릴게요.”

아인이 웃으며 날 쳐다봤다.

“그 약속 기억해 둘게요. 저 내치시면 안 돼요.”

“그럼요.”

아인은 내게 질문해가며 열심히 기사를 작성했고, 영상과 함께 바로 업로드 했다.

기사 안에 내 인터뷰까지 넣어서 구색을 갖추고 기사가 올라갔다.

“이렇게 바로 올라가요?”

“으음, 따로 위에 확인이 없어도 올라는 가요. 단지 메인에 실리지 않을 수도 있어서 그렇죠.”

“기사 주소 좀 보내주세요.”

나는 기사 주소를 SNS에 올렸다.

다른 연예인에게도 올리라고 하려다 이미지 문제가 있을지도 몰라 나만 올렸다.

“흠,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네요.”

“하아, 저 프로듀서님.”

“네?”

아인의 호흡이 가쁘다.

흥분한 거 같은데?

“죄, 죄송한데요.”

“왜 그래요?”

“저, 잠깐만 안아 주시면 안 될까요? 너무 떨려서.”

“네?”

아인이 눈을 감고 말한다.

“이, 이런 일이 처음이라 진정이 안 되네요.”

“하하, 알겠어요.”

나야 땡큐지.

아인을 살며시 끌어안고 등을 다독였다.

“하아, 저 괜찮겠죠?”

“제가 책임 진다니까요?”

“믿을게요....”

부끄러운 듯 작은 목소리로 말한 아인은 그대로 내 품에 안겨 꽤 오래 있었다.

“후우, 이제 좀 괜찮네요.”

아인을 품에서 떼어내며 말했다.

“어떻게 댁까지 모셔다드릴까요?”

“으음, 조금만 더 여기 있을래요. 저 해코지 당하면 어떡해요?”

으음? 해코지당할 수도 있나? 위험할 수도 있지?

그것까진 생각 못 했네.

그냥 여기 쓰라고 할까?

“아까부터 전화가 계속 오는 거 같은데, 안 받아요?”

“으으, 무서워서 못 받겠어요.”

프로패셔널한 기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겁이 많구나.

“일단, 이 집에 계속 계셔도 돼요. 어차피 저는 다른 데 가도 되니까요.”

“가, 가면 안 되죠.”

“네?”

아인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우, 우린 동룐데 저 혼자 두고 가시면 안 돼요.”

“그, 그래요.”

영화를 많이 봤나?

“제가 좀 유난스럽게 느껴지죠?”

“아뇨. 그럴 수 있죠. 제가 부탁한 일이니 책임져야죠.”

“헤헤. 사실 제 선배 중에 이런 거 폭로했다가 큰일 치른 선배가 있어서요.”

아인이 전화를 받지 않아 나도 마구 울리는 폰을 잠시 무음으로 바꿨다.

“우리 괜찮겠죠?”

진짜 겁 많네. 확 덮쳐서 잊게 만들어 줄까?

“걱정하지 말아요.”

아인을 다시 안고 다독였다.

아인은 내 품이 싫지 않은 듯 강하게 끌어안는다.

아인이 아는 선배가 엄청 큰일을 당했었나 보다.

반응이 내 예상보다 너무 심각하다.

물어나 볼까?

“선배가 무슨 일을 당했었는데요?”

“그, 그게.”

아인은 내 품에서 당황한 듯 흠칫 놀라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절 기자의 길로 이끌어준 여선배가 한 분 있었어요.”

아인은 자조적인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배가 기획사 비리를 터트렸었는데요.”

아인의 몸이 떨린다.

“갑자기 납치를 당했어요. 그리고 돌아온 선배는 폐인이 돼 있었죠.”

“정말요?”

“몇 년 전 일이에요.”

“그 선배 지금은 어떤 데요?”

아인이 눈물을 흘린다.

“흑, 그렇게 돌아온 선배가 집에서 혼자, 흐끅, 욕조에서 손목을, 흑.”

“아, 그, 그만 말해도 돼요. 미안해요.”

“아니에요. 흑, 제가 곁에 있어야 했는데, 다 제 잘못이에요.”

아인을 꼭 끌어안는다.

“아인씨 잘못이 아니에요. 그놈들이 나쁜 거죠.”

“흑, 으아아아앙.”

울음이 터진 아인.

가슴팍이 젖어 가는 게 느껴졌다.

조금 시간이 지나 아인의 울음이 잦아들었고,

아인이 고개를 들어 날 봤다.

“조금 진정이 됐어요?”

“네? 네.”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볼을 붉힌다.

“저, 화, 화장 다 번졌죠?”

검은 물이 흐르는 얼굴.

내 옷도 완전히 얼룩졌네.

“조금요?”

“엇, 죄, 죄송해요.”

아인이 내 옷을 보고 사과를 남겼다.

“괜찮아요.”

“저, 화, 화장실 좀.”

“다녀오세요.”

화장실을 안내하고 젖어서 찝찝한 옷을 갈아입었다.

또 화장 묻을 일은 없겠지?

폰을 들어 아인이 올린 기사에 들어가 봤다.

접속하는 사람이 많은지 조금 느리게 떠오르는 기사.

=[단독] JG엔터 성 접대 증거 자료 입수!

연예 기획사 중 가장 큰 회사라고 할 수 있는 JG엔터테인먼트가 성 접대를 하는 영상을 입수했다.

본 영상은 작곡가 S.Min이 직접 촬영하고 편집한 영상이다.

-영상

S.Min은 JG의 만행을 밝혀.... 중략

더는 피해받는 연습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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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기사는 훌륭하네.

댓글 상황도 난리가 났다.

폰을 확인해 보니, 부재중 전화가 100통을 넘었다.

“어우, 누가 이렇게 전화를 했지?”

목록을 보니, 아버지와 심 이사님, 남 팀장님이 제일 먼저 전화가 왔었고, 민하씨를 비롯한 연예인들의 전화가 다음으로 왔었다.

나머지는 대부분 모르는 번호.

내 번호를 어디서 이렇게 알고 전화를 했을까?

아는 사람들만 선택해 단체 문자로 연락을 보내니 아인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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