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작은 체구로 무대를 꽉 채우는 댄스 가수죠.”
“네. 요즘엔 예능도 잘 하는 거 같더라구요.”
“오프닝 무대를 장식해주셨던! 축하합니다. 신인상 이지인!”
방송에서 지인이 이름이 불렸다.
“어?”
“아?”
“응?”
우리 셋 모두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화면만 봤다.
-얼음임? 누가 땡 좀 해줘. ㅋㅋㅋㅋ
-정지화면 아닙니다.
-와! 이걸 받네.
축하하는 채팅이 막 올라왔다.
“아! 여러분 감사합니다. 일단 소감부터 듣고 얘기 나누죠.”
“그래요.”
“피디님 이름 나오겠죠? 헤헤.”
지인이가 감격한 표정으로 무대에 나와 트로피를 받는다.
와! 이건 예상 못 했다 정말.
“아! 제가 이렇게 상을 받을 줄 몰라서, 흑, 흐윽.”
눈물을 흘리는 지인.
“제가 데뷔한 곡이 원래는 저희 언니가 부를 곡이었거든요. 흑.”
지애 누나 얘기는 안 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한 거 축하나 해주자.
“곡을 양보해준 언니와 흑, 성민 선생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기서 선생님이라고 하네.
“하하.”
내 이름이 나와서 그냥 한 번 웃어 봤다.
“좋으세요?”
질투하듯 말하는 민하씨.
“그럼요. 지인이가 상 받아서 너무 좋죠.”
“헤헤. 저도 상 받게 해주세요.”
시연이 말했다.
“그게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닌데?”
“피디님은 할 수 있어요!”
시연이 나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드러냈다.
-인정.
-가능할 거 같아서 무섭 ㅋㅋㅋ
-레알 능력자자너.
“아니! 님들 제가 심사위원도 아니고, 무슨 상을 줘요.”
지인의 소감이 끝나고 잠시 소통을 하니 예능 부분 신인상 시상이 진행됐다.
“이렇게 된 거 윤진이도 받았으면 좋겠네요.”
“저도 윤진씨가 받았으면 좋겠어요.”
“헤헤. 받을 거예요.”
시연의 말이 예언이라도 된 것처럼 윤진이 상을 받았다.
“엄청난 미모와 밀리지 않는 입담을 자랑하는 신인 가수로 노래보다 예능을 많아하고 있는 성윤진씨.”
“신인상 수상 축하드립니다!”
진행자와 같은 프로에 출연 중인 지인. 친한 사이라 진행자가 농담을 건넸다.
“하하, 오빠 고마워요.”
윤진이 드레스 장난 아니네.
윤진이는 몸매가 좋은 건 아니라 노출이 거의 없는데, 미모가 엄청나서 뭔가 노출한 드레스보다 자극적으로 보인다.
타이트한 드레스라서 그런가? 저거 다 보정속옷이 만든 라인이지?
“아, 감사합니다. 제가 이렇게 상을 받을 수 있게 된 건 모두 저희 주, 아니, 프로듀서님 덕분입니다.”
식겁했네.
-주?
-주가 뭘까?
-주인님 아니냐고.
주인님 발언을 빠르게 강제퇴장시키는 매니저들.
주인님 맞지만, 어쩔 수 없다. 미안하다 친구들.
“윤진씨는 제일 먼저 프로듀서님을 말하네요.”
“헤에. 저도 상 받아서 말하고 싶어요. 피디님 감사합니다.”
“너는 지금 여기서 해봐.”
“헤헤.”
내가 시키니 시연이 넙죽 받아 일어난다.
“유티비 활동하던 제게 곡을 주시고, 여기까지 활동할 수 있도록 키워주신 피디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냥 피디님 말고, 이름도 넣어 주라.”
“성민! 피디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나는 안 말할 거야?”
민하씨가 시연을 보고 말한다.
“음, 언니도 고마워요.”
“칫.”
시연이 대충 말하자 민하씨가 삐진 표정을 지었다.
“시연이도 한 김에 민하씨도 해 보세요.”
“음음, 우선 제게 이런 영광스러운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늦게 다시 데뷔해서 이런 상을 받다니.”
민하씨가 잠시 말을 멈춘다. 눈에는 살짝 눈물이 고였다.
“직원이던 절 발굴해서 데뷔시켜주신 성민 프로듀서님께 정말 감사드리고....”
나는 민하씨를 빤히 보다 말했다.
“울어요?”
“풋, 연기였어요. 아 눈물 한 방울만 흘리려고 했는데, 안 되네.”
“와! 민하씨 연기 해 볼래요?”
“으으, 힘들 거 같아요.”
연기 제안을 거절하는 민하씨.
“그럼 시상식이나 마저 보죠.”
인기상 수상이 진행됐다.
인기상은 유일하게 시청자 투표로 결정되는 상인데,
며칠 전부터 홈페이지에서 투표를 받았다.
슈가 페어리도 후보에 있지만,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다.
슈가 페어리가 아무리 대단해도, 투표로 남돌은 못 이기지.
예상대로 인기상은 남자 아이돌 그룹이 받았다.
“투표로 남돌은 못 이기죠.”
민하씨가 나와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하하, 기대도 안 했어요.”
“헤헤. 애들 슬프겠다.”
“아쉽긴 해도 슬프진 않겠지.”
시연의 말을 반박하며 방송 각을 잡는다.
이대로만 하면 재미가 좀 떨어지지.
역시 시상식은 내기해야 제맛.
“애들은 우수상 받을 거야.”
“에이, 그건 힘들 거 같은데요?”
민하씨가 내 의도를 눈치채고 말을 받는다.
“피디님이 받는다면 받겠죠오?”
내 말에 조건 없이 동의를 표하는 시연이.
아! 시연이랑은 내기가 안 되겠구나.
“그럼 민하씨 내기 하나 할까요?”
“좋아요! 벌칙 정하죠.”
민하씨가 기세 좋게 말했다.
음, 아무리 생각해도 슈가 페어리가 받을 거 같은데?
민하씨가 방송을 위해 희생하는 건가?
“그럼, 그거 어때요?”
“뭐?”
시연이 의견을 낸다.
“저희가 콘텐츠 하려고 사뒀던 게 있거든요.”
“뭔데?”
“불지옥 라면이요.”
“아! 그거.”
엄청 맵다고 하던데.
“불지옥 라면 한 그릇 다 먹기 어때요?”
“아! 나 매운 거 잘 못 먹는데.”
“후후, 프로듀서님도 본인이 질 거로 생각하시는 거죠?”
“아니! 제가 이길 거니까 뭘 해도 되겠네요.”
민하씨 도발에 넘어가 줬다.
“그럼 슈가 페어리가 우수상을 받으면 제가, 못 받으면 프로듀서님인 불지옥 라면 먹방 하는 거예요?”
“그렇죠. 근데 시연이는 쏙 빠졌네?”
“저는 피디님 편이니까 도와드릴게요.”
“시연이 매운 거 잘 먹어요?”
민하씨에게 묻자 고개를 젓는다.
음, 내가 다 먹어야 하겠구나.
“오케이! 콜!”
“콜!”
우리는 콜을 외치고 시상식을 시청했다.
“자, 드디어 우수상 시상이 시작했습니다.”
배우 부분과 예능 부분이 넘어가고 가수 부분 시상이 시작된다.
우리 방송을 돕는 것처럼 가수 부분이 제일 마지막이었다.
“두근두근.”
시연이만 신나서 리액션을 한다.
후보 영상이 나온다.
“쟁쟁하네요.”
“그러게요.”
살짝 불안하긴 하다.
우수상, 최우수상, 대상은 같은 후보군에서 한 명씩 수상한다.
그래서 우수상을 받으면 다른 상은 못 받고, 최우수상을 받으면 대상을 못 받아,
가끔 아쉬워하는 연예인이 있었고, 그 때문에 논란을 만든 적도 있다.
뭐 우리 애들이야 우수상에도 감격할 테지만.
“그럼, 발표합니다!”
“달콤함을 전하는 세 명의 요정!”
“슈가 페어리! 축하합니다!”
시상자의 발표가 이어졌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이스!”
“아!”
“와아아!”
시연도 나와 함께 축하했고, 민하씨만 울상을 한다.
“으으, 묻고 더블로 가요!”
“허허, 일단 소감 좀 들어보죠.”
세 명의 멤버가 무대로 올라와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을 훔친다.
“흐윽, 저희가 정말 흑, 어렵게 데뷔했는데요.”
“저희를 발굴해서 키워주신 성민 피디님 정말 감사합니다.”
발굴했다기보단, 그냥 헌팅했던 거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거다.
“으아앙!”
막내 연화는 마이크를 잡자마자 울음이 터졌다.
망했던 그룹이 재정비해서 데뷔한 만큼 셋 모두 마음고생이 많았었지.
나도 살짝 눈물이 고였다.
-야! 우냐?
-울면 레전드.
-클립각이다. 울 땐 풀캠 국룰 아시죠?
“아, 안 웁니다. 여러분.”
“헤헤. 피디님 뚝!”
시연이만 해맑게 날 위로한다.
민하씨는 벌써 불지옥 라면에 대한 생각 때문인지 리액션이 없다.
“민하씨.”
“네?”
“매운 거 잘 드시죠?”
“아니! 그냥 매운 게 아니잖아요!”
민하씨를 놀린다.
“그럼 대상 내기 함 더 고?”
“콜!”
후보 중에 아효가 남긴 했지만, 아효는 포기하고 있다.
내 곡으로 다시 떡상하긴 했지만, 그 전에 경고도 받았고, 논란도 많았으니 심사위원들도 피해갈 거 같다.
“음, 아효씨 최우수상은 힘들겠죠?”
“아무래도 그렇죠.”
아효가 화면에 잡혀서 아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포기하자 채팅창에서 응원이 많이 올라오긴 했는데,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지.
역시 최우수상은 다른 가수에게 돌아갔다.
“으음, 대상은 승철 형님이 받겠지?”
“으음, 힘들지 않을까요? 요즘엔 아이돌이 받을 확률이 높죠.”
“오케이 그럼 전 승철 형님께 걸게요.”
“저는 아니다에 거는 거죠?”
아, 맞추는 게 아니었지.
살짝 쫄렸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내가 잠시 고민하자 채팅창이 ‘쫄’로 도배됐거든.
“갑시다. 승철 형님 믿습니다!”
“헤헤. 믿습니다!”
시연이 귀엽게 내 말을 따라 했고 민하씨가 주먹을 쥐고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최우수상 수상이 끝나고, 무대에 슈가 페어리가 나왔다.
“자! 축하 무대 같이 즐기시죠!”
중간중간 축하 무대가 있었지만, 다 나와 관련 없는 사람들이었고,
대상 시상 전 축하 무대를 슈가 페어리가 한다.
“크으, 내 새끼들이 저기 나오다니 영광입니다.”
내가 소감을 말했고, 채팅창에서도 우수상 수상을 다시 축하하는 채팅이 많이 올라왔다.
무대를 보자 열심히 춤추는 셋이 보인다.
“크으, 울어서 걱정했는데, 잘한다.”
뽕에 취한 듯 애들을 응원하는데 수희가 좀 이상하다.
얼굴이 붉어지고 아주 잘게 몸을 떠는 게 저거 완전 발정 난 거 아니냐?
아니겠지? 설마. 어디 아픈가?
“수희가 어디 아픈가?”
민하씨가 그 점을 꼽는다.
말하지 않는 게 더 좋았을 수도 있겠지만, 말했으니 어쩔 수 없지.
“음, 요즘 연말이라 스케쥴이 좀 많았나?”
-악덕 사장 아웃!
-해명해!
-해
-명
-해!
“아니! 여러분!”
우선 해명으로 도배되는 채팅창을 멈추고 말을 이어가려는데 사고가 터졌다.
“어익후!”
“헐.”
“엇!”
수희의 무대 의상에 어깨 부분이 살짝 흘러내리며 수희의 가슴이 조금 보였다.
크게 문제 될 만큼 보인 건 아닌데, 수희는 그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격렬한 춤을 이어갔다.
“아, 안 되는데?”
수희 분명 알고 있는 거 같은데?
재 표정이 왜 저래?
“아아, 빨리 올려야 하는데요.”
시연도 수희를 걱정한다.
저거 노출증 도진 건가?
일부러 저러는 거지?
테이프로 고정해 둔 거 같지?
나는 혼자서 상황을 파악하며 표정관리를 했다.
저! 변태가! 기어코 일을 내는구나.
수희 얼굴은 점점 발정 난 암캐가 되어갔다.
-크으, 수희 오늘 표정 장난 아니다.
-옷아 조금만 더 힘을 내.
-중력아 화이팅!
“아! 여러분 선 넘는 채팅 바로 강툅니다.”
-흠흠.
-아니 뭐 응원한다고...
“후, 다행이다.”
더 큰 문제는 없이 무대가 끝났다.
수희는 무대가 끝나자 그제야 알았다는 듯 놀라는 척을 하며 옷을 정리한다.
나는 딱 봐도 연기로 보이긴 하는데,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
“후, 다행이에요.”
시연이가 가슴을 쓸며 안심한다.
“앗!”
“헉!”
“쟤 왜 저래!”
우리가 안심한 그때 수희는 무대에서 엎어졌다.
카메라가 바로 돌아갔지만, 볼 수 있었다.
속바지를 안 입었어?
-까만색. 흠흠.
-속바지 아님?
-흠흠, 아닌, 흠, 것 같, 흠흠.
채팅창도 난리가 났다.
기사도 많이 뜨겠지?
뭐, 이걸로 이슈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수희는 나름 섹시를 밀고 있기도 하고.
저거 일부러 속바지 안 입고 저런 거 같다.
“후우, 그래도 뭐 이 정도면 다행이지.”
“으음, 그런가요?”
“수희가 많이 긴장했었나 보네요.”
“그러게요.”
우리가 잘 말해서 넘겼고, 노련한 진행자들도 수희의 실수를 잘 포장해 웃으며 넘어갔다.
“후우, 그럼 대상 수상만 남았네요.”
“으으, 피디님 화이팅!”
시연의 응원을 받으며 민하씨와 눈을 맞춘다.
불꽃이 튀진 않지만, 결연한 민하씨의 눈에서 꼭 이기겠단 다짐이 보였다.
“후후, 승철 형님 믿습니다.”
“저도 신승철님 팬이지만, 이번만큼은 죄송합니다.”
민하씨가 기 싸움에서 지지 않는다.
“두근두근.”
시연이만 신나서 리액션한다.
후우, 얘가 어떻게 보면 제일 영악한 거 같다니까.
“자! 그럼 올해의 대상을 발표해 볼까요?”
“시상에는 전년도 수상자들이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전년도 대상 수상자 세 명이 나온다.
배우와 가수, 예능인이 나란히 선 모습은 특별했다.
“와아.”
“작년에 신명석씨가 받았구나.”
“그러게요.”
그래도 한 번 봤다고 아는 척 해봤다.
대상은 배우 부분이 먼저 시상을 했다.
이번 한 해 동안 인기 있던 드라마 대사들을 시상자들이 장난스럽게 패러디한 후.
전년도 배우 부분 수상자가, 수상자가 적힌 종이를 펼친다.
“와! 제가 좋아하는 후밴데요. 최근 종영한 드라마에서도 그 매력을 잘 보여줬죠? 축하합니다. 배우 부분 대상은!”
“대상은!”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시상자의 멘트를 따라 했다.
방송인 다 됐네.
“차선애씨!”
“억!”
너무 놀라서 반응해버렸다.
아! 선애가 있었구나.
축하 문자라도 보내놔야겠다.
선애도 한 번 보러 가야겠네.
예능 부분 수상까지 끝나고 가수 부분만을 남겨둔 채 시상자들이 마이크를 잡았다.
“올해는 유난히 치열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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