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복면 씽어는 복면을 쓰고 노래하는 사람이 한 명 나와서 노래를 하는데,
사람들은 그에게 투표한다.
관객은 총 300명.
총 다섯 명의 가수가 출연하며, 득표수에 따라 2라운드는 두 명만 진출한다.
결승 라운드에선 두 사람이 듀엣곡과 개인 곡을 하나씩 부르고, 투표로 승자를 정한다.
승자는 복면 가왕과 대결할 수 있는 권리를 얻고, 복면 가왕이 무대를 한다.
거기서 이긴 사람이 또 다음 주 복면 가왕이 되는 식.
“자! 오늘은 귀한 손님이 한 분 오셨는데요. 시청자 여러분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아! 안녕하세요. 작곡가 S.Min으로 활동하는 성민입니다.”
“오늘 출연 소감이 어떠신가요?”
“아! 너무 떨리네요. 잘 맞출 수 있겠죠?”
옆에 있던 김국신이 마이크를 잡는다.
“프로듀서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우리 프로에 나오시다니 자신감이 대단하신데요?”
“하하, 누가 꼭 한 번만 나와달라고 부탁해서요.”
“아이, 공과 사는 구분 해야지. 그래요, 몇 명이나 맞추실 수 있으실 거 같아요?”
“으음, 무조건 한 명은 맞추겠습니다.”
김국신이 웃음을 터트린다.
내게 시비를 거는 것처럼 느껴져도, 이게 그만의 게스트를 띄워주는 방식이다.
이러면 분량도 나오고, 스토리도 생겨 방송에 많이 나올 수 있다.
으음, 이런 식의 챙김은 조금 부담스럽지만,
방송에 오래 나오면 신앙 쌓기도 더 좋으니까.
“저번에도 그랬던 전설적인 작곡가 양반이 한 명 있었지요.”
“하하, 저는 다를 겁니다.”
이미 한 명 알거든. 후후.
“그럼 믿어보죠. 부디 제가 작곡가에 대해 불신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하하,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나고 무대가 시작됐다.
벌써 세 번째 무대가 끝났다.
“자! 이번엔 무슨 말이라도 하시겠죠?”
“하하.”
멋쩍은 웃음을 흘린다.
전혀 모르겠다.
앞선 두 무대도 어버버하다가 내 인터뷰가 지나갔다.
“작곡가님?”
“네?”
“누군지 알 거 같나요?”
“하하, 어렵네요.”
나는 항복선언을 하듯 말했다.
김국신은 신나서 참가자를 추리한다.
“제가 보기엔 끝 음이....”
“저도 비슷한 생각인데, 발음이....”
패널들은 열심히 추리했다. 미리 누군지 알고 나오나?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생각해보면, 나는 노래를 많이 듣는 편이 아니구나.
이상하게 가수와 노래에 관한 분석이 빠르다.
노래 한 두 번만 들어보면, 그 가수의 특징과 어울리는 편곡이 가능했다.
이거 일반적인 능력이 아니지?
사실, 지금 무대를 한 사람들도 특징을 금세 캐치했고, 곡을 잘 어울리도록 편곡해 줄 수 있다.
단지, 자주 들어본 목소리가 아니라 누군지 특정하지 못했을 뿐.
생각에 잠겨있는데, 네 번째 무대가 시작됐다.
아, 드디어 나왔구나.
송예진이 차에서 말해준 곡이 나왔다.
와! 노래 잘 하네.
대기실에서 미리 바니하트를 검색하고 무대도 봤다.
어울리지 않는 곡을 불러서 노래 실력이 그냥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아니었다.
으음, 애들 이쁘던데.
다섯 명이 섹시한 안무를 하던 모습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무대가 끝나고 국신이 마이크를 잡았다.
국신은 이번에는 내 인터뷰를 그냥 넘길 생각인 거 같다.
지금까지 추측을 좀 못하긴 했지.
내 이미지를 챙겨주기 위해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가려고 하는 거 같다.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지.
나는 마이크를 잡았다.
“음, 제가 보기엔 말이죠.”
“와! 작곡가님이 처음으로 먼저 말을 시작하셨습니다. 모두 경청하시죠.”
“하하, 부담스럽네요.”
차분히 예진의 보컬적 특징을 읊었다.
“비음이 섞인 발성에, 발음에....”
“우와.”
내 말에 과장된 리액션을 하는 패널들.
“사실, 아까부터 특징은 잘 잡을 수 있었는데, 도통 누군지 알 수 없어서. 하하. 이번만큼은 확실히 알겠네요.”
“그래서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걸그룹 바니하트의 리더 송예진씹니다.”
관객석이 술렁거린다.
그래, 내가 밝혀도 누군지 모르겠지.
바니하트는 인지도가 거의 없는 망한 그룹이니까.
“바니하트요?”
국신이 질문했다.
“네, 5인조 섹시컨셉 걸그룹으로, 준수한 노래와 안무 실력을 갖춘.....”
“하하, 잘 들었습니다. 누가 보면 작곡가님이 키운 그룹인 줄 알겠어요.”
“아하하, 관심 있게 보던 그룹 리더를 만나서 흥분했네요. 섹시는 언제나 옳으니까요.”
“네?”
국신이 당황했다.
나는 자신 있게 마이크를 쥐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신체 건강한 20대 남성이! 섹시한 걸그룹 좋아하는 건 본능입니다! 바니하트 흥해라!”
예진이 아까 차에서 울던 모습도 그렇고,
무대 영상을 보니까, 진짜 춤도 잘 추던데, 노래도 이만하면 잘하는 편이고,
정말로 흥했으면 좋겠단 마음이 들었다.
예진이 잘 되길 빌며 살짝 오버해서 반응했다.
“하하, 우리 작곡가님이 섹시에 진심이었네요. 생각해보니까 최근에 아효씨도....”
국신과 이런저런 대화가 오갔다.
방송에 너무 노골적으로 나갈 수 있어, 경험이 많은 국신이 날 잘 포장해 줬다.
“그럼 투표 시작하겠습니다!”
내 어필이 힘을 발휘했는지 예진은 꽤 높은 득표수를 기록했다.
“와! 오늘 나온 최고 득표수! 토끼 가면이 2라운드 진출을 확정했습니다. 자, 이쯤에서 성민씨의 감상을 안 들어볼 수가 없겠죠?”
진행자가 살짝 웃으며 내게 마이크를 돌린다.
“아, 역시 제가 알아본 가수답군요. 만약 우승하신다면 제가 힘써서 곡을 한 번 써보겠습니다. 제 곡 받아 주실 거죠?”
“와! S.Min이 곡을 써준다고 합니다. 토끼 가면님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
“흐윽, 흑, 너, 너뭇, 감사해서엇.”
음성 변조된 목소리에 흐느끼는 소리가 합쳐지니, 상대는 울고 있는데 너무 우스운 소리가 나왔다.
간신히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는다.
아! 웃참 레벨 너무 높자너.
“푸큭, 아, 아니! 작곡가님은 왜 애를 울리고 그래요.”
국신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살짝 흘린 다음, 날 타겟으로 잡고 말을 이었다.
“아! 저도 우실 줄 몰랐네요. 곡 준다는 말 취소할까요?”
“아, 안돼요!”
토끼 가면이 놀라서 말한다.
“하하, 농담이에요. 울면 다음 무대 못 할 수도 있으니까, 뚝!”
“뚝!”
“하하, 다음 무대 잘 해서 꼭 제 곡 받아가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예진이 마이크를 움켜쥐며 말했다.
덜덜 떨리는 손을 보고 있으니, 저 마이크가 내 잦....
아니다. 더 생각하지 말자. 방송 중에 발기하면 일 난다.
“자! 분위기 좀 환기하고 마지막 무대 들어보겠습니다.”
진행자가 토끼 가면을 퇴장시켰고, 잠시 농담을 하며 시간을 끌었다.
조금 분위기가 나아지자, 다섯 번째 무대가 시작됐다.
이번엔 나도 가수의 특징을 줄줄 말해봐야지.
“작곡가님 이번엔 어떠십니까?”
국신이 슬며시 질문했다.
“으음, 박자를 살짝 밀어 부르는 게 팝송에 영향을 많이 받....”
내가 분석을 끝내자 국신이 궁금하단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누구라고 예상하신 거죠?”
“그걸 모르겠네요?”
“네?”
“하하.”
여러 군데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아, 이분 예능감 있으시네. 하하하.”
“우, 웃기려고 한 건 아닌데.”
“네? 하하하하.”
즐겁게 인터뷰를 끝냈다.
그래도 마지막에 하나 터져서 다행이네.
바니하트를 맞추고 마지막에 웃음 분량까지 뽑았으니, 내 할 일은 다 했다.
이젠 예진이나 진심으로 응원해야지.
결승 무대가 끝났다.
득표수가 공개됐고, 예진은 아쉽게 열 몇 표 차이로 패배했다.
“자, 그럼 토끼 가면의 정체를 공개합니다!”
1라운드 탈락자들은 결승 시작 전에 단체 곡을 부르며 얼굴을 공개하는데,
여기서부터는 패배하면 노래도 없이 그냥 바로 얼굴을 공개한다.
가면이 벗겨졌고, 눈물과 땀에 젖은 예진의 얼굴이 드러났다.
와! 화장도 조금 번지고, 울어서 살짝 부은 모습인데도, 꽤 예쁘다.
“바니하트의 송예진씨였습니다!”
진행자가 예진의 이름을 불렀고, 관객이 박수를 친다.
국신이 마이크를 잡고 내게 말했다.
“섹시 컨셉에 진심인 우리 작곡가님이 정말 한 분은 맞췄네요?”
“하하, 다행입니다.”
“흑, 자, 작곡가님.”
내가 말을 하려 하는데, 눈물을 흘리며 날 부르는 예진이 보인다.
“예, 예진씨?”
“죄, 죄송해요. 으앙, 고, 곡은.”
아, 내가 결승 이기면 준다고 했지.
“주, 줄게요. 그만 울어요.”
“저, 정말요?”
“전 곡으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으아아아앙!”
“아, 아니! 왜 더 우는 건데?”
내 반응에 좌중이 폭소한다.
물론 의도하고 한 말이다.
“정말, 흐긋, 너무 감사합니다앗. 히잉.”
진행자가 예진을 토닥여 퇴장시켰다.
“하하, 정말 귀여운 소녀네요. 저 소녀의 섹시 컨셉이라니 상상도 가지 않습니다. 오늘 무대 영상이라도 찾아봐야 할까요?”
나는 또 마이크를 잡고 내가 아까 찾아본 것 중에 좋았던 곡을 말한다.
“지지난번 주에 올라온 청양고추 축제 레전드 직캠영상을 추천 드립니다.”
“오! 이번에도 역시 섹시에 진심인 작곡가님이십니다.”
웃음소리가 들렸고, 나는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하하, 그럼 가왕전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녹화는 즐겁게 마무리됐다.
내 이미지도 약간은 더 친근해졌겠지?
회사에서 정한 컨셉이다.
신비주의 천재도 좋지만, 내가 원하는 건 높은 인지도와 아주 많은 열성적인 팬이다.
그러기 위해선 신비주의보단 친근한 이미지가 좋다고 한다.
내가 방송에서 무언갈 보여줄 수 있는 가수나 배우가 아니므로,
신비주의로는 큰 인기를 오래도록 얻기는 힘들단 판단.
나도 비슷하게 생각해 예능인처럼 나가기로 했다.
그래야 방송도 많이 하고, 인지도 올려서 신앙을 쌓지.
촬영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국신 형님이 다가왔다.
“오늘 녹화 좋았어!”
“다행이네요. 하하.”
“이렇게 재밌는 친구였는데, 그땐 왜 몰랐지?”
“그때요? 아! 그때는 다른 애들 홍보가 목적이었으니까요.”
저번 토크쇼 말하는 거겠지?
“허허, 스텐스가 확실하네. 오늘 시상식 참석하나?”
“아뇨. 그런 자리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그럼 할 수 없지. 다음에 보자고.”
“네.”
국신 형님과 인사하고 다른 패널과도 인사를 나눴다.
저녁에 시상식 리액션 방송이나 해야지.
얘기를 들어보니 시상식 때문에 오늘은 녹화가 일찍 끝난 모양이다.
평소에는 인터뷰를 더 길게 해서 분량을 확실히 뽑고 간다고 한다.
이런 날 출연해서 다행이네.
대기실로 가자 문 앞에 기다리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감사합니다. 작곡가님.”
예진이 옆에 남성이 인사했다.
“아, 네.”
“정말 감사합니다.”
예진도 따라 인사한다.
“음, 일단 들어 오시겠어요?”
“네!”
대기실 문을 열며 말했고, 두 사람이 들어왔다.
“촬영은 잘 하셨, 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아까도 정말 감사했는데, 방송에서도 정말 너무 감사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영하 매니저가 다가왔다.
“제가 예전에 매니저일 시작할 때 우연히 친해진 사인데, 많은 도움을 받았었습니다.”
예진의 매니저를 칭찬하며 소개하는 영하 매니저.
영하 매니저가 도움 많이 받았으면, 내게도 고마운 사람이지.
슈가 페어리한테 도움 된 사람이니까.
“하하, 감사하네요.”
“아휴, 아닙니다. 저희가 더 감사하죠.”
예진은 계속 옆에서 조용히 앉아있다.
아무래도 또 나올 거 같은 울음을 참는 모양.
“예진씨?”
“네? 네에?”
“잠시 얘기 좀 하시죠?”
“아! 네.”
두 매니저가 알아서 자리를 비켜줬다.
“저는 곡으로 거짓말 안 한다고 말씀드렸죠.”
“네. 가, 감사합니다.”
“선택은 예진씨가 해요.”
“네? 뭘요?”
나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솔로로 할래요? 그룹으로 할래요?”
“앗, 다, 당연히.”
예진의 말을 자른다.
“잘 생각하고 말해요. 일생일대의 기회일지도 모르잖아요?”
바니하트는 계약 기간도 거의 끝나가고, 찾아보니 팀 내 불화설도 좀 있었다.
다른 애들도 괜찮았지만, 솔직히 예진이 제일 눈에 띈다.
외모, 춤, 노래 모두 예진이 그룹에서 월등히 잘 한다.
다른 멤버들과 맞춰주려고 노력하지만, 내 눈엔 예진이 멤버들 때문에 날아오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아, 저,”
“그룹으로 한다면, 한 곡으로 끝이겠지만, 혼자 한다고 하면, 예진씨를 저희 회사로 데리고 올 용의가 있습니다.”
“아, 그, 그런.”
예진의 눈이 떨리고, 입이 다물어진다.
“고민해봐요. 여기 내 연락처.”
“아, 아.”
예진은 무언가 말을 하려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 것 같다.
멋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에 살짝 웃어주고 밖으로 나선다.
“부 사장님?”
“가죠.”
“네.”
“저, 저희 예진이가 무슨 실수라도?”
“아! 그런 건 아니에요. 걱정하지 마시고 데리고 가셔요.”
걱정하는 예진의 매니저에게 말하고, 영하 매니저와 밖으로 나왔다.
“작업실로 가죠.”
“네!”
이제, 시상식 리액션 방송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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