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1화 〉첫 번째 악상 (1) (101/450)



〈 101화 〉첫 번째 악상 (1)

101.

지애 누나와 지인, 둘과 함께 밥을 먹었다.

점심이라기엔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래서 더 맛있었다.

역시 최고의 요리는 공복이다.

“가볼게, 누나 방송 잘 하고. 지인이는 슬슬 연습실로 나올 생각 하고.”
“네.”
“들어가.”

지애 누나네 집을 나서며 폰을 꺼냈다.

“네, 지금 사무실입니다.”
“알겠습니다.”

새로 들어온 매니저와 통화하고 회사로 향했다.

윤진이 보고 스케쥴 마치고 잠시 회사에 들르라고 했다.

회의실에 앉아있는 윤진.

가수지만 예능 스케쥴로  바쁜 윤진이다.

“안녕.”
“헤헤, 주인님.”

윤진이 헤실헤실 웃으며 다가왔다.

“보고 싶었어요.”
“그래, 나도.”

보는 눈이 많아 다가오지 않는 윤진이지만, 행동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

오랜만에 날 봐서 너무 좋은 모양.

윤진이 진짜 개였다면 마구 꼬리를 흔들고 있을 거 같다.

“왜 보자고 하신 거예요?”
“그냥, 오랜만에 보고 싶었어.”
“근데 왜 회사에서?”

묘한 표정으로 말하는 윤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으휴 너도 변태 다 됐다.”
“히잉, 끼이잉, 꺙!”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도 물을 겸 보자고 한 거지.”
“끄응.”

윤진이 아쉬움에 앓는 소리를 냈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신곡 발표  하면  줄게, 우쭈쭈.”

윤진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하자 윤진이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고생했고, 푹 쉬어.”
“네. 히잉.”

짧은 만남이 아쉬운지 서운한 표정의 윤진이었지만,

약속이 있어 어쩔 수 없었다.

“후우, 정말 모르겠네.”

모두가 예전과 같이 날 대한다.

근데 예전 같지 않다.

묘한 위화감이 신경 쓰이지만, 거북한 느낌은 아니다.

“뭐, 익숙해지겠지.”

고개를 털며 걱정을 털어버렸다.

나쁜 변화는 생기지 않은 것 같으니까.

현정을 만나러 가려고 했지만, 마음이 변했다.

뭔가 두려운 기분.

“현정은 어떨지 모르겠네. 통화 내용으론 분명 아직도 내게 감정이 있는 것 같은데.”

혼잣말하며 폰을 꺼냈다.

“응.”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뭐, 뭐라고?”

노기 서린 목소리가 들린다.

“후후, 제가 인내를 가지라고 말씀드렸는데, 지금 화내시는 건가요?”
“아, 아니. 화가 건 아니고,당황해서 그렇지.”

여전히 저자세로 나오는 현정.

“아무튼, 오늘은그냥 쉬세요. 제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니!”

현정이 뭐라고 말하는  같지만 전화를 끊었다.

위화감의 정체를 알게  때까지 현정을 보지 말까싶은 마음이다.

“후우, 이상해.”

작업실로 향한다.

다들 그대로인 확인했는데, 왜 이런 기분이지?

슬픈 건 아니지만, 기쁘지도 않다. 아니, 기쁘고 슬픈 문제가 아니다.

뭐가 문제인 거냐 도대체.

“어? 피디님.”
“아직 누워 있었어?”
“히잉, 아직도 몸을 못 움직이겠어요.”

시간을 보니 방송 시작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다.

“나 때문이니까, 내가 해결해 줄게.”

시연을 업고 스튜디오로 향했다.

시연을 눕히고 카메라 세팅을 침대 쪽으로 바꾼다.

근처 마트에 들러 이것저것 사 왔다.

“후우, 정말 저 없이 하시게요?”
“민하씨 휴일이잖아요.”
“헤에, 프로듀서님이 곁에 없는데 휴일이 무슨 소용인가요?”

민하씨가 요염하게 웃으며 안겼다.

“하하, 그래도  쉬어요. 제가 해보고 싶어서 그래요.”
“알았어요. 후훗, 아래에 있을 테니까 언제든 필요하면 불러요.”

민하씨가 내려가고 시간에 맞춰 방송을 켠다.

대기 화면을 열고 노래를 튼 뒤 조금 기다린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아직 화면이 나오기 전 인사를 먼저 했다.

-?
-??
-누구?

무수히 쏟아지는 물음표.

바로 화면을 켠다.

“제가 왔습니다. 여러분!”

-형이 왜 거기서 나와?
-작곡가 양반?

호의적인 채팅창. 다행히도 내 이미지가 좋은  같다.

“여러분 오늘 제가 이렇게 방송을 켜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큰  온다.
-ㄷㄱㄷㄱ
-ㅋㄱㅇㄷ

“큰  오진 했고, 아프다고 합니다.”

카메라 세팅을 만져 시연의 모습을 송출했다.

-시연이 아픔?
-ㅠㅠ
-아프지 마.

오우, 랜선 남친들 엄청 많네?

크크 사실은 내가 시연이 남친이나 다름없지.

“그래서 오늘의 컨텐츠!”

-오컨무?
-ㅇㅋㅁ?

“바로 시연씨 간호 방송입니다!”

-오히려 좋아.
-기대된다.

“자자, 그럼 제가 준비한 것 좀 보시죠.”

화면을 돌리고 일어난다.

간이 테이블에 식재료와 조리도구가 올라와 있다.

“아플 땐 뭐니 뭐니 해도 잘 먹는 게 최고죠.”

-오! 쿡방.
-요리 좀 하시나?

“제가 또 유티비에 많은 요리 스승을 두고 있습니다.”

-만인의 스승이자너.
-진짜 박대표 티비 덕분에 자취의 질이 올라감.

“와! 박대표 요리방송 아시는구나.”

-모르는 사람 있음?
-구독자 500만 ㄷㄷㄷ

“흠흠, 그럼 요리를 시작해 볼까요.”

도마에 재료를 올리고 칼을 잡는다.

-칼질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아직 칼질 안 했는데요?”

-잡는 자세가 잘못됐네.

역시 이런 방송의 묘미는 훈수하는 청자와 티키타카지.

일부러 텐션을 올려 억울하다는 반응을 한다.

“아니이! 칼을 어떻게 잡던 잘 썰기만 하면 되죠!”

키읔으로 도배되는 채팅창.

이렇게 호응이 좋으니 재미가 있다.

“근데, 무슨 시청자가 이렇게 많지?”

-삼만 따리 신입.
-신생 대기업인가?

“아니, 이걸 왜 삼만 명이 보고 있어요? 일  해요 님들? 오늘 평일인데?”

-아! 팩트도 폭력이다.
-이걸 때리네.

소통하며 재료 손질을 끝냈다.

“그럼 요리를 해 볼까요.”

-근데 메뉴가 뭐임?
-맞아 뭐 만듦?

“아 제가 메뉴도 말씀  드렸구나.”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니, 아까 훈수 두던 사람들 다 어디 갔어? 재료 딱 보면 무슨 요린지 알아야지.”

-재료가 너무 없는데?

사실 대부분 재료가 테이블 아래에 있다.

“크크, 훈수 충들 쫄?”

-부들부들.
-맞히고 만다.

시간을주면 안 된다. 맞추면 또 기고만장 해지겠지.

“알려드릴게요, 아플 땐 죽이죠! 죽 중에서도 원기 회복에 좋은 닭죽이 오늘의 메뉴입니다!”

-와.(대충 기대한다는 의미)
-근데 닭이 없는데?
-닭 안 사왔쥬? ㅋㅋㅋ

“닭은 여기 있어요.”

아래에서 닭 한 마리를 꺼냈다.

-이걸 숨기네?
-방장이 닭을 숨김.
-닭을 안 보여 줬는데 어케 맞춤?

“자 그럼 닭부터 삶아야겠죠?”

무수히 올라오는 채팅을 무시하며 요리를 이어간다.

-이 꽉 물고 무시하는 거 보소.
-작곡 가양반 인성 논란.
-인성 보소.

“아니, 여기서 인성이 왜 나와? 아픈 직원 간호하러 왔는데, 인성 좋은 거 아니냐고!”

-아, 그건 맞지.
-인정.

역시 시연이를 파는  이 방에선 치트키다.

“자, 이렇게 닭살을 바르고.”

-안 익었쥬?
-익은  맞음?

“아니,  분을 끓였는데 안 익어 봐봐,  익었지?”

-ㅋㅋㅋㅋ 뻘건데?
-안 익었네 ㅋㅋㅋㅋ

“어차피 죽에 넣고 더 끓일 거야.”

-조금 유능한 수의사 부르면 다시 살아날 것 같다.
-ㅋㅋㅋㅋ ㄹㅇ

“아니! 죽은 닭인데 뭘 살아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닭죽은 무사히 완성됐다.

“님덜 그래도  만들고 나니깐 좀 그럴듯하지 않음?”

-응, 쪽파빨.
-응, 깨빨.

“맛있겠지?”

-먹어보면 되잖아.

“환자  음식인데, 내가 먹으면 안 되지.”

-이분 간도 안 봤음.
-암살 스프.
-시연이 암살 가나요.

“암살이라니, 여러분 내 정성으로 만든 요리라고!”

닭죽을 놔두고 시연이가 보이는 캠을 다시 켰다.

예쁜 자세로 다소곳이 자는 시연.

-와 자는 모습 여신이네.
-크으, 잠옷 지렸다.
-뒤척이지도 않네.

이쁘다는 칭찬이 채팅창을 가득채웠고, 그 사이 인스턴트 닭죽을 꺼냈다.

 걸 먹이기는  그래서 어쩔 수 없다.

내가 요리를못 하는 건 아닌데, 방송하면서 하느라 실수가 잦았다.

-엌 레토르트식품 ㅋㅋㅋㅋ
-그저 빛.
-결국, 꺼냈음 ㅋㅋㅋㅋㅋ

“생각해 보니까 정성으로 만든 건 내가 먹어야겠다.”

-크으, 착한 간호 인정.
-이 집 장사 잘 하네.

간단하게레토르트 닭죽을 완성한 나는 미리 발라둔 살코기를 얹는다.

“와, 이건 진짜 맛있겠다.”

-저건?
-정성으로 만든 건?
-레알 밥도둑이잖아.

“그럼 밥을 먹여주러 가볼까요?”

-포상이네.
-부럽.

시연이 자는 침대로 내가 만든 죽과 즉석 죽을 가져간다.

“시연씨 잠시 일어나 보세요.”
“하으, 피디님?”

잠결에 내게 안기려는 시연을 티 나지 않게 피한 뒤 빠르게 말했다.

“방송 중이에요, 시연씨.”
“아! 안녕하세요?”

정신을 차린 시연. 후, 큰일 날 뻔했다.

“제가 닭죽을 만들어 왔어요.”
“와, 감사합니다.”

테이블을 펴고 닭죽을 올린  시연을 부축해 앉힌다.

시연의 얇은 잠옷이 살짝 흘러내린다.

-오우야.
-퍄퍄퍄.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시연의 옷을 걷어 올려 줬다.

-아니!
-이걸 막네.

“아프면 몸을 따뜻하게 해야죠. 시연씨 패딩 입히기 전에 도배 금지.”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판사님.
-맞지 맞지.

그래도 방송을 계속하니까 시청자들과 티키타카가 자연스레 된다.

“자 시연씨 먹어 봐요.”
“잘 먹을게요.”

시연이 닭죽을 맛있게 먹는다.

“와! 너무 맛있어요. 이걸직접 하신 거예요?”
“후후, 다행이네요.”

-이제 저거 먹자.
-작곡가 양반도   들어.

“그럼 저도 먹겠습니다.”

그래도 맛은 있겠지 싶어 내가 만든 닭죽을 숟갈로 뜬다.

“제거랑 좀 다르네요?”
“비밀이 있어요.”

-크크, 망친 요리자너.
-시연아 니꺼 인스턴, 읍읍.

“이거 인스턴트에요?”
“아니! 그걸 말하면 어떡해요. 흠흠, 내가 만들었다니까.”

-전자레인지가 만들었쥬?
-만들어진걸 완성하긴 했지 ㅋㅋㅋ
-눈 떨리는 거 보소 ㅋㅋㅋ

“아, 그럼 저도 피디님이 만든 거 먹어볼래요.”
“자, 잠깐만.”

말릴 새도 없이 시연이 내가 만든 닭죽을 퍼먹었다.

“와! 맛, 있, 네, 요.”

굳어버린 시연.

“그치? 맛있지?”
“네. 하하, 드셔 보세요 피디님.”

-암살 스프.
-암살 가나요.
-이걸 참네?

시연이 표정만 봐도 맛이 느껴지는데?

억지로 한술  닭죽을 입에 넣는다.

쌀의 고소한 풍미와 닭의 감칠맛이 채소와 함께 잘 어우러진 맛은 개뿔.

“엄청 짜잖아!”
“푸훗.”

소금 먹는 줄 알았다.

“소금도 많이 안 넣었는데?”

-아까 쏟았쥬?
-레알 소금 스프
-맛소금 맛있다고 왕창 넣었자너.

“맛소금은 MSG 들어가서 덜  거 아닌가?”

-ㅋㅋㅋ 더 짬.
-요알못 인증.
-ㅋㅋㅋㅋㅋ

알고 있었지만, 방송의 재미를 위해 희생했다.

정말이다.

“흠흠, 그럼 이건 나중에 먹기로 하고 시연씨 몸은 좀 어때요?”
“그래도 밥을 먹으니까  나아졌어요.”

뜨거운 죽을먹어서 그런지 얼굴이 발그레하게 물든 시연은 묘한 색기를 풍겼다.

-오우, 야.
-아, 못 참겠다.

“야! 너  걸렸어, 뭘  참는지 3초 안에 말 안 하면 강퇴.”

-시연이가 너무 이뻐서 칭찬을 못 참는다고.
-마구니가 꼈어.
-음란마귀여 물렀거라.
-일생가?

“흠흠, 봐줬다.”

시청자와 살짝 야한 농담을 나눈다.

시연은 다 알아듣는 거 같은데, 모르는  다소곳이 있다.

“시연씨 그럼 더 쉴래요?”
“죄송해요, 여러분 내일은 꼭 회복해서 방송할게요.”

-아프면 푹 쉬어.
-ㅇㅇ  쉬어도 됨.
-몸이 먼저지.

“와! 챗창 나랑은 완전 다른 거 보소?”

-작곡가 양반도 시연이랑 우리 대할 때 다르자너.
-그건 맞지.

“당연하지. 고추에 베풀 온정 따윈 없다.”

-우리도!
-어? 너도? 야! 나도!
-역지사지 지렸다.

“흠흠,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할게요.”
“여러분 내일 봐요.”

시연이 손을 흔든다.

-오뱅알.
-시연아 아프지 마.
-ㅃ2

방송을 끈다.

“후우, 방송도 생각보다 신경 쓸 게 많구나.”
“헤헤, 그래도 저보다 잘 하시던 걸요?”
“넌 노잼이니까.”
“히잉. 너무해, 하읏.”

칭얼거리는 시연을 안아준다.

“그래도 이쁘면 됐지.”
“이쁘면 됐죠, 헤헤.”

시연을 껴안고 그대로 침대에 엎어졌다.

말캉한 가슴을 만지며 손을 움직이는데 시연이  손을 잡는다.

“으으응, 안 돼요.내일 방송해야죠.”
“아! 그, 그래.”
“다음에 또 찐하게 해요. 헤헤.”

맑게 웃는 시연.

정말인가? 시연이가 나와의 섹스를 거부해?

그것도 방송 때문에?

정신이 멍하다.

“왜 그러세요? 피디님?”
“아, 아니야. 그럼 더 쉬어.”
“네. 헤헤.”

안겨 오는 시연을 살살 쓰다듬어 주고 밖으로 나온다.

“뭐지? 이 기분은?”

여자가 먼저내 손길을 거부한 게 처음인 거 같은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시연이가?

곤히 쉬고 있는 시연을 한  돌아보고 작업실로 내려왔다.

“피디님!”
“어! 선유야  쓰고 있었어?”
“네! 들어 보실래요?”
“그래.”

선유가 곡을 튼다. 오 좋네.

“좋다. 이제 앨범만 내면 되겠다.”
“헤헤. 그죠? 좋죠?”
“응, 왜?”

선유가 빤히 날 쳐다본다.

“해주신다면서요.”
“뭐, 뭘?”

잔뜩 실망한 표정의 선유가 조용히 말했다.

“곡 뽑으면 섹스해 준다고 했으면서, 남자들은 다 똑같아. 맨날 기억도 못 하고.”
“아! 그래, 이리 와.”
“치이.”

선유가 토라진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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