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8화 〉여덟 번째 영감 (3) (38/450)



〈 38화 〉여덟 번째 영감 (3)

38. 방송 효과.

“민하씨? 민하씨?”

조금 강하게 흔들어 봤는데 여전히 미동도 없다.

“저 갑니다?”

자는 여자 따먹는 취미는 없어서 민하씨를 편하게 눕히고 밖으로 나왔다.

아쉽네, 실험해 볼 좋은 기회였는데.

내일 민하씨는 이불 좀 걷어차겠지?

집에 와 피곤한 몸을 눕혔다.

후우, 하루 사이 엄청 많은 일이 있었던  같다.

오늘은 기자들이 있을  같아서, 회사에 안 나가기로 했다.

아빠가 다른데 작업실 하나 더 얻자고 했는데,

일단 알아보기로 했다.

아빠도 내가작업실에서 어떤 짓을 하는지 아니까.

이런 말이 나온 거 같다.

직원들이 늘어나는 만큼 나도 불안하긴 하다.

이번에 곡비도 충분히 받았고, 저작권료도 많이 들어올  같은데.

뭐, 아니어도 돈은 충분하고.

“후으, 작업실이나 알아보러 다닐까?”

카디처럼 방 딸린 작업실로 구해서 자는 방도 따로 만들고?

컴퓨터를 켜고 작업실로 사용할 만한 매물을 알아봤다.

어차피 이 동네면, 계속 가격이 오를 텐데 월세보단 매매가 낫지?

-띵동!

응? 누구지?

열심히 매물을 둘러 보는 와중에 벨이 울렸다.

“누구세요.”
“저에요, 프로듀서님.”

민하씨? 회사안 갔나?

우선 문을 열었다.

“민하씨 무슨 일이에요?”
“그, 저, 어제 제가.”
“네?”
“그, 기억이 안 나요.”
“푸훗.”

웃음이 나왔다.

“어디까지 기억나는데요?”
“술집에서 안주시켰던 거?”
“거의  기억하네요.”
“그래요?”

조금 놀려 주고 싶었다.

“울었던 건 기억  나죠?”
“네? 제가 울었어요?”
“네. 저한테 안겨서 아주 통곡을 하셨어요.”
“으으. 저, 정말요?”

고개를 끄덕였다.

“왜 울었는지는 말  해야지.”
“앗, 그런  어딨어요.”
“근데 회사는요?”
“오늘 휴가 썼어요. 너무 늦게 일어나서.”

우리 회사가 그런 데에 좀 프리하긴 한데,

“직원들 고생하겠어요.”
“에이, 다들 휴가 쓰면 똑같이 해주는 데요, 뭐.”
“일단 같이 밥 먹을래요?”
“좋아요.”

어차피 나갈 생각이었으니까, 민하씨를 집에 잠시 앉혀 두고 나갈 준비를 했다.

“와, 남자는 정말 준비가 빠르구나.”
“그래요?”
“네. 남자가 준비하는 거 처음 봤는데, 차원이 다르네요.”

처음? 설마 민하씨도?

“무슨 차원이요?”
“여자는 이것저것  일이 많거든요.”

내가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민하씨가 이런저런 얘기를 해줬다.

“가요.”
“네.”
“속이나 머리는 괜찮아요?”
“제가 숙취가 적은 편이에요.”
“와, 축복받았네요.”

물론, 나는 경험해 본 적 없다. 취하는 것도 숙취도.

“헤헤. 뭐 먹게요?”
“음, 먹고 싶은 거 있어요? 해장국 먹을까요?”
“음, 국물 있는 거면 다 좋아요.”
“그럼 가죠.”

 해장국 집으로 왔다.

“여기가 맛집이에요.”
“우와.  먹을게요.”

해장국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어제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요?”
“있었던 게 좋아요? 없었던 게 좋아요?”
“아아, 그렇게 물어보시면 당황스러운데. 헤헤.”

어제 일을 찬찬히 복기하며 말했다.

“제가 그랬어요?”
“네.”

취해서 울면서 노래하고 싶다고 했다는 얘기에 민하씨는 손을 떨었다.

“죄송해요. 취해서 민폐를 끼쳤네요.”
“괜찮아요, 귀여웠어요.”
“앗. 헤헤.”

그냥 예의상 해준 말인데, 민하씨는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모텔에서는요?”
“야심한 시간에 술 취한 남녀 둘이 모텔에 가면,  할까요?”
“하앗, 그럼? 정말? 아닌데?”
“푸훗.”

당황해서 몸을 점검하는 민하씨.

“그냥 침대에 눕히고, 먼저 나왔어요.”
“아아, 놀랐잖아요.”
“아쉬운 눈친데요?”
“에이, 아니에요.”

능글맞게 대화를 나누다 작업실 얘기가 나왔다.

“그래서 새로 알아보려고 오늘좀 돌아다닐 계획이에요.”
“아, 저도 같이 다닐까요?”
“괜찮겠어요?”
“어차피 할 것도 없는데요 뭐.”

밥을 모두 먹고 커피도 한잔  다음 부동산에 들러 작업실을 알아봤다.

“꼭 이 동네일 필요가 있을까요?”
“딱히 회사랑 가깝지 않아도 되겠죠?”
“아마도요?”

 가지 매물을 다녀봤지만, 딱 마음에 드는 곳은 없었다.

지역을 옮길까 하다가 줄리의 작업실이 생각났다.

나도 건물 한 채 사버려?

“음, 오늘은 이만 가죠.”
“네. 아이고 다리야.”
“많이 걷긴 했네요.”

민하씨와  주변 벤치에 앉아 잠시 쉬기로 했다.

“작업실 새로 얻으면, 만나기 힘들겠어요.”
“하하, 민하씨가 자주 놀러 오면 되죠.”
“엇! 저 진짜 놀러 가도 돼요?”
“그럼요.”

적당히  것 같다.

“오늘 함께 다녀줘서 고마워요.”
“저도 즐거웠어요.”
“저녁 드시고 갈래요?”

아직 시간이 좀 일렀지만, 민하씨의 의견을 물어봤다.

“음, 시간이 좀 이른데요?”
“뭐 조금 놀다 먹으면 되지 않겠어요?”
“헤헤. 좋아요.”

민하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프로듀서님, 제가 요리해 드릴까요?”
“와! 진짜요?”
“가는 길에 장 봐서 가요.”
“좋아요.”

민하씨와 마트에 들러 식재료를 샀다.

신혼부부가 데이트하는 기분이네.

“신혼이에요? 선남선녀네. 보기 좋아요.”
“앗. 헤헤.”
“아이고, 어머니, 아니에요. 하하.”

마트 직원분도 오해해 말을 거셨고, 우린 민망해하며 웃어넘겼다.

“우리 신혼부부 같았나 봐요.”

내가 슬슬 운을 띄웠다.

“그러게요.”
“그만큼 잘 어울린단 소리겠죠?”
“어머!”
“하하, 가요.”
“네.”

민하씨가 소심하게 답했다.

능글맞다가 귀엽다가 아주 휙휙 변하는  요물이 따로 없다.

“안 피곤해요?”
“괜찮아요.”

민하씨와 집에 도착했고, 재료 손질을 도왔다.

준비하는 음식은 양식이었다.

“파스타만 쌂아지면....”
“와, 멋있다. 어디 쉐프같아요.”
“헤헤. 자주 해 먹거든요.”

양식을 좋아하나 보다.

시간이 지나, 파스타 한 접시와 스테이크, 감바스  아히요와 미리 사 둔 빵이 식탁에 올라왔다.

“피클이라도  올 걸 그랬어요.”
“김치로 만족하죠, 뭐.”

민하씨는 피클이 없는 걸 아쉬워했지만, 나는 이미 상차림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집에서 이렇게 차려 먹는 게 얼마 만인지.”
“요리  안 하세요?”
“보통  먹죠.”
“아, 몸 버려요. 가끔은 집밥도 먹어야죠.”

웃으며 식탁을 둘러봤다.

“집밥이요?”
“앗? 이태리 가정식이라구요. 호호.”
“아 이태리 집밥이였구나. 하하하.”

감바스는 스페인 요린데, 뭐, 넘어가자.

즐겁게 얘기하며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와! 엄청 맛있어요.”
“다행이네요.”

음식은 정말 괜찮았다.

민하씨 요리 좀 하네.

“배부르다.”
“잘 먹었어요, 민하씨.”
“맛있게 드셔 주셔서 감사해요.”

민하가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고, 나도 식사를 끝내고 정리를 시작했다.

“이대로 보내드리기 아쉬우니까 소화할  게임 한 판 어떠세요?”
“게임이요?”

저번에 사 둔 썸타는 사이를 위한 러브 젠가를 가져왔다.

이럴 때를 대비한 건 아니지만, 보드게임을  사뒀다.

남자들의 로망 이자너. 벗기기 그런 거 후후.

“젠가 어때요?”
“오! 재밌겠어요.”

민하씨는 의심 없이 즐겁게 말했다.

“젠가 뽑으면 안에 미션 있어요.”
“어머! 이거 야한 거 아니에요?”
“설마요? 제가 민하씨한테 그런  가져오겠어요?”
“헤헤. 그럼 먼저  봐요.”

떨리는마음으로 중간 블록 하나를 꺼냈다.

“오!”
“왜요? 뭔데요?”

민하씨에게 다가갔다.

“읏, 프, 프로듀서님?”

민하씨의 귓가에 귓속말로 속삭였다.

“사랑해.”
“핫!”

민하씨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웃는다.

“미션이에요?”
“네.하하.”

젠가에는 상대방에게 귓속말로 ‘사랑해’ 말하기라 적혀있었다.

“재밌겠네요.”
“질문도 있더라구요.”
“제 차례죠?”
“네!”

민하씨가 블록을 하나 뽑았다.

“앗!”
“왜요?”
“히잉.”

민하씨가 블록을보여준다.

-10초간 춤추기.

“와! 민하씨 노래 틀어 들릴까요?”
“어떤  보고 싶으세요?”

민하씨가 요염하게 웃는다.

맞다. 아이돌 출신이지?

“음, 미션이니까 무반주 댄스?”
“핫! 그런  어딨어요?”
“하하, 그럼 섹시 댄스요.”
“어머, 응큼해.”

민하씨가 살짝 웃었다.

폰을 들어 음악을 틀었다. 대충 끈적한 팝송으로.

“훗.”

민하씨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리듬을 타며 걸어온다.

“오오!”

앞에서 섹시하게 웨이브를 추고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 몸을 쓸면서 앉듯이 몸을 흔드는 민하씨.

역시, 춤을 춰봤던 사람이라 다르구나.

“10초 지났죠?”
“아직 안 지났을 거 같은데요?”
“후훗, 춤은 여기까지.”

민하씨가 살짝 몸을흔들며 돌아갔다.

아쉽네.

“쩝. 저 뽑을게요.”
“네.”

조심히 블록 하나를 뽑았다.

“질문이네요.”
“뭔데요?”

민하씨가 블록을 가져갔다.

“마지막 연애?”
“제가 뽑았으니, 민하씨가 답하는 거죠?”
“그래요?”
“뽑은 사람이 미션했으니까, 뽑은 사람이 질문 하는 거죠.”

민하씨가 고개를 갸웃했다가 끄덕인다.

사실, 내가 하나 민하씨가 하나 상관없지만, 민하씨 과거, 궁금하잖아.

“그렇게 해요. 후후, 근데 술도 없이 하려니까 조금 부끄럽네요.”
“오늘도 마시게요?”
“아뇨. 너무 힘들 것 같아요.”
“그럼 그냥 해요. 마지막 연애 언제에요?”

고민에 잠긴 표정으로 입을 여는 민하씨.

“음, 아이돌 준비 땐 못 해봤고, 그만두고 나서 하긴 했는데, 다들 너무 짧게 만났어서....”

주절주절 이어지는 변명 같은 말들. 결론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였다.

“혹시, 모쏠?”
“아, 아니에요! 많이 만나봤어요!”
“짧게 짧게요? 제일  게 얼마나 만났는데요?”
“하, 한 달?”
“에이, 한 달은 사귄 거 아니죠.”

민하씨가 분한 표정을 지었다.

“넘어가요, 그냥 좀.”
“네네. 하하.”

블록을 뽑는 민하씨.

“오!”
“왜요?”

씨익 웃은 민하씨가 입을 연다.

“이상형이 어떻게 돼? 라고 쓰여 있네요.”
“아! 제 이상형이요?”
“네.”

민하씨가 기대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음, 뭐 말은 해줄 수 있지.

“단발이 어울렸으면 좋겠어요.  귀여웠으면 좋겠고, 또....”

민하씨를 바라보며 민하씨의 특징을 읊었다.

“에이, 재미없어요.”
“사실인데.”
“흣, 계속해봐요, 그럼.”
“블록 뽑을게요.”
“피이, 치사해.”

웃으며 블록을 뽑았다.

“엇!”
“왜요?”
“이번엔  야한데요?”
“어머? 그런  없다면서요.”
“하하, 그러게요.”

나는 웃으며 블록을 보여줬다.

“어머! 어머!”

민하씨가 호들갑을 떨며 볼을 붉힌다.

블록을 보며 적혀있는 글자를 읽었다.

“어디까지 만져도 돼?”
“꺄아!”

민하씨가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내가 말을 하지 않고 빤히 바라보자 민하씨는 생각에 잠겨 말했다.

“음, 프로듀서님은.아이, 부끄러워, 말 못 하겠어요. 헤헤.”
“에이. 그냥 넘어가게요?”
“프로듀서님은 답할 수 있어요?”
“그럼요.”

민하씨가 눈을 크게 뜨고 묻는다.

“어디까지 만져도 되는데요?”
“다요.”
“네?허업. 꺄아아.”

얼굴을 가리고 시선을 내리는 민하.

“지금 어딜 보시는 거죠?”
“히익. 아, 아니에요.”

 똘똘이를  거 같은데?

“하하, 제가 답했으니까 뽑아요, 민하씨.”
“히잉. 그래요.”

상기된 볼로 더운지 연신 손 부채질을 하는 민하씨가 블록을뽑았다.

“앗!”
“왜요?”

민하씨가 뽑은 블록엔 손깍지 10초라고 적혀있었다.

“후후.”
“헤헤.”

우리는 말 없이 웃으며 손깍지를 꼈다.

“저 뽑을게요.”
“이대로요?”
“한 손이면 충분하죠.”

10초는 진작에 지났지만, 깎지를 풀지 않고 블록을 뽑았다.

“오, 이거 해도 돼요?”
“뭔데요? 엇, 음. 네, 네에. 하, 하세요.”

블록엔 ‘상대의 제일 매력적인 부분에 뽀뽀’라 적혀있다.

“아으으.”

다가가니 붉어진 얼굴로 어쩔  몰라 한다.

-쪽.
“하읏.”

민하씨의 머리에 쪽 하고 뽀뽀를 했다.

“민하씨는 단발이 정말 잘 어울리는  같아요.”
“헤헤. 고마워요.”

살짝 아쉬워하는  같은데?

웃으며 민하씨에게 젠가를 가리켰고,민하씨가 블록을 뽑는다.

“으으.”
“왜요? 또 이상한 거예요?”
“아뇨. 그냥. 부끄러워서....”

민하씨가 블록의 글자를 읽었다.

“첫 만남에 진도 어디까지 나갈 수 있어? 흐으으.”

민하씨는 다 말하고 부끄러워 고개를 젓는다.

“후후, 상대가중요할 거 같은데, 민하씨라고 가정해도 돼요?”
“엇, 네에. 헤헤.”

민하씨를 지그시 보며 몸을 앞으로기울여 얼굴을 가까이했다.

“다요.”
“네?”
“민하씨라면.”

잠시 뜸을 들였고, 민하씨가 침을 꿀꺽 삼켰다.

“뭐든지.”
“하읏.”

터질 듯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피한다.

“저 뽑아요.”
“네, 네에.”

민하씨의 열이 식도록 기다려주지 않고 바로 블록을 뽑았다.

“오!”

내가 탄성을 흘리자 민하씨가 긴장된 표정으로 바라본다.

민하씨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프, 프로듀서님?”

한 손으로 어깨를 잡고, 나머지 손을 올린다.

민하씨가 소심하게 손을 꼼지락대며 눈을 꼭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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