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7화 〉여덟 번째 영감 (2) (37/450)



〈 37화 〉여덟 번째 영감 (2)

37. 박민하

“짜잔!”
“뭐에요?”

민하씨가 열쇠를 꺼냈다.

“뒷문 열쇠를 받아 왔어요.”
“와! 대박.사랑해요, 민하씨.”

나는 그녀를 살며시 안았다.

민하씨는 살짝 날 밀치며 웃음을 흘린다.

“후훗, 고백은 좀 더 근사하게 해주시고, 가 볼까요?”
“네.”

민하씨는 직장 생황을 오래 해서 그런지 능글맞은 멘트가 종종 나온다.

다행히 건물 뒤편엔 사람이 많이 없었고, 우린 급하게 회사로 들어올  있었다.

“기자들이 언제까지 있을까요?”
“음, 며칠은 있지 않을까요?”
“집에  때도 곤란하겠어요.”
“열쇠 일단 가지고 계셔 보세요.”
“아! 고마워요.”

나는 웃으며 열쇠를 받았다.

“하아, 골치가 아프네요.”
“전 조금 부럽네요.”

민하씨가 갑자기 우울한 톤으로 말한다.

“네?”
“아, 잠깐 옛날 생각이 나서.”
“아, 아이돌 하실 때요?”
“네. 호호, 제대로  기사 하나 없이 쫄딱 망했었죠.”

민하의 자조 섞인 웃음이 안쓰러웠다.

“다시 노래하고 싶어요?”

민하씨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머리를 휘젓는다.

“아아, 모르겠어요.”

민하씨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대화가 끊겼다.

무슨 말을 하겠어. 2층으로 올라선 우리를 아빠가 반겼다.

“아들. 대박이야!”

2층에 올라가니 아빠가 제일 흥분해있다.

“왜요?”

화면을 돌려 보여준다.

[미국 힙합 여제 카디 미나즈 신곡 작곡가 S.Min은 한국인?]
[카디 미나즈의 남자 S.Min은 누구?]
[S.Min의 정체는 작곡가 성민?]

아직 우리  보도자료는 나가지 않았지만,

미국에서 먼저 뜬 기사로 연예계 소식이 들끓고 있었다.

“오 벌써 제 이름도 나오네요.”
“응. 미국에서 난 기사 때문에 난리가 났어.”
“전 모니터링하러 가요.”
“네. 민하씨 수고해요.”

기사를 하나 클릭해봤다.

-카디 미나즈가 신곡 작곡가를 한국인 남성으로 밝혀 화제다.
S.Min이라는 예명을 쓰는 작곡가는 국내엔 아직 없지만.
이름으로 유추해 보면, 작곡가 성민일 확률이 높다.

뭐, 줄리 때문에 미국에 갔었고, 어쩌고 하는 추측이 이어진다.

댓글 좀 볼까?

-와 신인 같은데, 빌보드로 바로 진입했네.
-카디가 남자가 만든 곡에 랩을 했다고? 구라 아님?
ㄴ카디도 동양인은 남자로 안 보나 보네.
ㄴ설마, 본인도 엄청 고생했는데, 인종차별 하겠냐?
ㄴ고생이랑 인종차별이 뭔 상관?
-카디가 미친 거냐? 작곡가가 미친 거냐?.
ㄴ둘 다.

대체로 좋은 이야기가 많았다.

미국에선 카디가 남자 작곡가와 작업을 했다는 게 더  이슈가 됐는데,

우리나라는 역시, S. Min이 누군지가 더  이슈다.

국뽕은 언제나 먹히니까.

내가 국뽕에 대상이라니!

“뿌듯하네.”
“장하다. 우리 아들.”

아빠가 내 어깨를 토닥인다. 아빠를 바라보며 밝게 웃었다.

“이제 우리 보도자료 나올 때 됐지?”
“점심에 터트리기로 했어.”

미리 나와 카디의 스토리를 모두 보내놨다.

기자들 참느라 입이 간질간질하겠다.

“그럼 저는 작업실로 갑니다.”
“후속 기사 같이  보게?”
“뭐, 민하씨가 어련히  했겠지.”
“하하. 내가 아니라 민하씨가? 뭐 나였어도 나보다 민하씨를 믿겠지만 섭섭하네.”
“에이, 아빠는 당연히 믿지.”

웃으며 작업실로 왔다.

앞으로 활동명을 S.Min으로 통일해야지.

그리고, 할 일이 딱히 없네? 그냥 후속 기사나 같이  걸 그랬나?

“끄으으으.”

기지개를 켰다.

아직도 몸이 뻐근한 게 진짜 운동을 하던지, 섹스를 줄이든지 해야지 원.

섹스는 못 줄일 것 같으니, 운동해야겠다.

생각난 김에 몸도 풀 겸 운동이나 가 볼까?

회사에 만들려던 헬스장은 너무 낭비라는 사내 의견이 있어 무산됐다.

“아쉽다.”

자고로 헬스장은 가까운  제일인데.

우리 회사는 여성 전용 헬스장에 여성 트레이너만 있는 곳을 계약했다.

내가 강력하게 주장했지.

딴 놈팡이가 트레이닝 한다고 애들 몸을 만지는 건 참을 수 없다.

“여기 괜찮나?”

좋은 동네라 좋아 보이는 헬스장이 너무 많았다.

직접 움직여 볼까?

컴퓨터를 끄고, 잠시창밖 상황을 봤다.

“으, 지금은나갈 수 없겠는걸?”

여전히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

곧 후속 기사가 터질 텐데.

“엇, 간다?”

기자들이 흩어졌다.

시간을 보니 딱 후속 기사가 나왔구나.

더 몰릴 줄 알았는데, 왜 가는 거지?

뭐, 상관없다. 나야 좋지. 웃으며 몸을 움직였다.

“후, 너무 떨리니까 저녁까지 기사  보고 참아야지.”

회사를 나와 주변 헬스장을 둘러봤다.

“저기가 제일 좋네.”

오 분 정도 걸어야 나오는 헬스장인데, 여러 가지 편의성이 제일 좋았다.

탈의실과 샤워실이 개인으로 돼 있는 게 제일 마음에 든다.

트레이너도 유명한 사람이 많았다.

기획사가 모여있는 곳이라 그런가?

회원제로 운영되는데, 엄청 비싸긴 하다.

연예인들 쓰라고 만들어 둔 거겠지?

“연예인도 만날 수 있겠네.”

고민을 끝내고 헬스장으로 들어간다.

“어서오세요.”

여직원이 반겨준다.

오, 예쁘게 생겼네.

연예인 지망생인가? 요 근처에 그런 알바들 많던데.

“회원증 주시겠어요?”
“아, 처음 왔어요.”
“저희는 회원제로 운영돼서, 회원가입 하신 분만 들어오실 수 있어요.”

그녀가 종이를 한 장 꺼냈다.

“작성해 주시겠어요? 엇!”
“왜?  그러세요?”

갑자기 놀라는 여성.

“혹시, 성민 프로듀서님 아니세요?”
“어? 절 아세요?”
“지금 인터넷에 완전 난리니까요.”
“그래요?”

그녀가모니터 화면을 살짝 돌려 보여준다.

“와.”

검색 사이트 메인이 온통  얘기네?

반응이 심한데. 무슨 일 있나?

“빌보드 1위 축하드려요?”
“네? 1위요?”
“헐. 모르셨어요?”

바로 폰을 꺼냈다.

귀찮아서 무음으로 해놨는데,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엄청 와있다.

“잠시만요.”

나는 의자에 앉아 폰을 봤다.

“천천히 하세요. 마실  좀 드릴까요?”
“아, 커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녀에게 커피를 받고 문자부터 확인했다.

민하씨 – 프로듀서님! 지금 빌보드 1위 했어요. 국내 음악 차트도 올킬!대박이에요.
아빠 – 장하다 아들.

 외로도 축하 문자가 많이 왔다.

일일이 답장을 해주고 기사를 봤다.

[한국이 낳은 빌보드 1위 작곡가 S.Min 그는 누구인가?]
[국내 최초 빌보드 1위 프로듀서! 노래 전격 해부!]
[S.Min 카디 미나즈와 열애설?]

응? 마지막은 뭐지? 나도 모르게 기사를 눌렀다.

-작곡가 S.Min이 이성민으로 밝혀진 가운데.
과연 카디가 그의 곡을 부른 이유는 무엇일까?
합리적 의심이 필요할 때다.

“미친.”
“호호, 작곡가님도 그런 기사 누르시는구나.”
“앗, 보고 계셨어요?”
“아, 일부러  건 아닌데. 그, 보여서....”
“괜찮아요.”

아, 내가 여기 너무 오래 있었네.

“지금은 가봐야 할 거 같아서, 다음에 올게요.”
“저, 싸, 싸인  장만 해 주세요.”
“네? 싸인이요?”

아직 싸인 없는데.

“싸인이 아직 없어서, 대신 사진 찍을까요?”
“핫, 네! 좋아요!”

그녀와 사진을 찍고 밖으로 나왔다.

다시 기자들이 회사로 몰리진 않았겠지?

시간도 얼마  지났으니까.

다행히 회사 근처엔 사람이 별로 없었고,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다.

바로 2층으로 향했다.

“이게 머선 일입니까!”

들어가면서부터 호들갑 떠는 직원을 만났다.

“하하. 감사합니다.”
“프로듀서님! 이거 보세요.”

민하씨가 화면을 보여줬다.

음악 차트에 나란히 세 곡이 올라왔다.

카디의 곡과 슈가 페어리, 시연의 곡까지.

내 곡으로 1, 2, 3위를 모두 채웠다.

“우와.”
“대박이에요!”

너무 기뻐서 나도 모르게 민하씨를 얼싸안았다.

“앗, 여, 여기선.”
“아, 죄송해요. 너무 좋아서 저도 모르게.”

민하가 얼굴을 붉히며  밀친다.

직원들 앞에선 좀 부끄러운가?

다른 데선 안아도 별 반응 없으면서.

연기 아니야?

진짜 연기면 민하씨 연기자 해도 되겠는데?

“오늘 회식합시다!”
“좋아요!”
“와아아!”

아버지가 외쳤고, 모든 직원이 함성을 질렀다.

“제가 쏩니다!”

나도 기분 좋아소리쳤다.

어차피 회삿돈이 내 돈이니까.

혹시 모를사태에 대비할 직원 둘만 남기고 회식하러 출발했다.

처음엔 다들 누가 남을지 눈치를 봤는데, 아빠가 격려금을 두당 오십만 원씩 걸었더니, 자기가 남겠다고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가위바위보로 결정했다.

“자 다들 잔 채우시고.”

아빠가 또 나서서 축사를 읊으신다.

너무 길다. 준비해 오셨나? 아빠 말을 끊고 일어났다.

“주인공이 등장하기 전에 사설이 길었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위하여!”
“위하여!!”

-차안!

간단히 한 마디하고 건배했다.

아빠와 함께 직원들을 격려하며 한 바퀴 돌며 술을 마셨다.

아직, 회사가 크지 않아서 직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금방 자리로 돌아왔다.

“민하씨도 한잔해야죠. 정말 고생 많아요.”
“아니에요, 대표님.”

우리 테이블은 아빠와 나, 민하씨, 심 실장님 이렇게 넷이었다.

내 옆에 민하씨가 앉았는데,

우리는 몰래몰래 옆구리를 찌르는 등의 장난을 하면서 회식을 즐겼다.

“앗.”
“후훗.”
“에잇.”
“흐응.”

민하씨는 의도적인 건지 모르겠지만,

작게 신음을 내는 반응을 해서 자꾸 날 꼴리게 만든다.

“자자, 요즘은 1차만 하는 게 문화라고 하죠?  드실 분은 알아서들 하시고, 이만 파합시다.”
“와아! 대표님! 대표님!”
“허허, 그럼 모두 내일 봐요.”

아빠와 심 실장님이 계산하고 밖으로 나가셨다.

직원들 대부분도 집으로 갔고, 몇 명 남은 직원들은 자리를 옮긴다고 한다.

나도 그만 집으로  생각이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내일 출근이니까 적당히 드시고 들어가세요.”

술을 더 마시는 사람 중, 제일 고참 직원에게 금일봉을 쥐여 주고 나왔다.

“프로듀서님. 헥헥.”
“어? 민하씨.”

민하씨가 날 따라 왔다.

“무슨 일이에요?”
“우리 저번에 못 마신 한잔 오늘 할래요?”
“음, 좋죠.”

적극적이네.

이미 술이 올라 볼이 붉게 달아오른 민하씨는 거침없이 팔짱을 끼고  끌고 갔다.

“제가 아는 데가 있어요.”
“네. 가요.”

민하씨에게 끌려가다시피 술집에 도착했다.

방으로 이루어진 조용한 일본식 술집.

민하는 간단한 안주와 맥주를 주문했다.

“여기 안주 맛있어요, 드셔 보세요.”
“네. 잘 먹을게요.”

술을 마시며 대화가 오갔다.

민하씨는 점점 취했고, 좌우로 몸이 흔들렸다.

“많이 취했어요, 민하씨.”
“아이, 아직 게아나요(괜찮아요). 프로듀서니임.”
“집에 가요.”
“조그만. 조그만 더 마셔여.”

술 취한 사람 챙기는 건 많이 해봤지만, 좋아하진 않는다.

에효. 민하씨가 이쁘니까 내가 참아야지.

“알았어요. 술은 그만 먹고 정신  차려요.”
“헤헤. 프로듀서니임.”
“네.”
“아까 무러보셧자나여(물어보셨잖아요).”

뭐였지? 생각이   되물었다.

“뭘요?”
“푸후우, 다시 노래하고 싶냐면서여.”

아, 그랬다. 물어봤었지.

“네. 맞아요.”
“헤헤. 하고 싶져어. 하고는! 싶은데에....”

민하가 앞에 있던 술을 집고 한 번에 들이켰다.

“엇, 민하씨.”
“게아나여, 게아나여(괜찮아요, 괜찮아요).”

-탕!

술잔을 세게 내려친 민하씨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무도오, 아무도 안 시켜주자나여. 노래하고 시픈데. 흑, 흐윽.”

민하씨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아, 짠하긴 한데.  별로 안 취해서 그냥술버릇 고약하단 생각만 든다.

“울지마요, 민하씨.”
“흐에엥. 프로듀서니임.”

자리를 민하씨 옆으로 옮겨 살며시 안고 토닥였다.

“민하씨?”
“흑, 게아나요(괜찮아요). 일도  하고 이꼬(잘 하고 있고), 대표님이랑 프로듀서니임이 인정해주자나여. 헤헤.”
“그럼요. 항상 감사하죠.”
“끅!”

-쿵!

딸꾹질한 민하씨는 그대로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민하씨?”

민하씨를 부르며 흔들어 보지만, 일어날 기미가보이지 않았다.

“아....”

탄식이 나왔고, 어쩔 수 없이 민하씨를 데리고 갈 수밖에 없겠다.

“후우.”

계산한  직원의 도움으로 민하씨를 등에 업었다.

“집이 어딘지 모르니까, 일단.”

제일 가까운 모텔을 찾아 들어왔다.

“끄응차!”

민하씨를 침대에 눕히고 신발을 벗겼다.

“후우.”
“음냐. 우움.”

 자네? 후우, 허리가 쑤신다.

“민하씨? 자요?”

눈앞에 손을 흔들며 불러보지만, 미동도 없다.

“후, 어쩔 수 없지.”

업고 오느라 몸에서 땀이 많이 났다.

일단 좀 씻어야지.

민하를 눕혀둔 채로 화장실로 들어와 몸을 씻었다.

“하아. 민하씨한테 멜로디가 들릴까? 그럼 조금 범위를 특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몸을 닦았다.

씻고 나와 옷을 걸쳤다.

“민하씨, 일어나 봐요.”
“으으음. 음냐.”

꿈쩍도  하네?

일단 옷을 벗길까?

민하씨의 겉옷을 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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