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두 번째 영감 (4)
9. 해피 엔딩
“피디님. 일어나세요.”
“으으음.”
시연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일어났어?”
“네.”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확실히 무리하긴 했지.
눈을 떠 시연을바라봤는데, 얘 피부가 엄청 광이 나네?
그새 씻었나? 홍조 낀 볼에 활기마저 넘쳐 보인다.
아이고 허리야.
몸을 일으키는데 허리가 아려온다.
“후우.”
“헤헤. 피디니임.”
“왜 불러?”
“안아주세요.”
시연이 일어나는 내 몸에 달라붙었다.
기 빨리는 느낌이다.
“그래그래.”
“저 임신하면 어떡해요? 음, 피디님 아이를 가지고 싶기도 한데. 헤헤.”
“나 불임이야.”
“헉! 정말요?”
진단서 사진을 보여줬다.
“안심되면서도, 아쉽네요.”
말없이 시연의 머리를 쓰다듬고 작업실 컴퓨터로 향했다.
“편곡을 다시 해야겠어.”
“왜요? 어제 곡 좋았는데.”
네 노래 실력이 부족해서라고 솔직히 말하긴 미안한데.
“일단 기다려봐.”
“네에.”
시연은 착한 아이가 된 듯 내 말을 듣고 해맑게 대답하며 침대에 앉았다.
“거기 축축하지 않아?”
“조금요? 그래도 피디님 냄새가 나서 좋아요.”
“그, 그래?”
역시 시연은 조금 무섭다.
집중해서 곡을 수정하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응?”
시연이 컴퓨터화면을 노려보고 있다.
“피디님.”
“왜?”
“제가 노래를 못 불러서 그렇죠?”
“으응?”
뒤로 다가온 시연이 날 안았다.
도를 넘은 몰캉함이 뒤통수에서 느껴진다.
“노래 더 쉽게 바꾸고 계시잖아요.”
“볼 줄 알아?”
“저, 자작곡 영상도 꽤 있는데.”
아아, 작곡을 할 수 있었구나.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시연을 봤다.
“그, 그랬구나.”
“어쩔 수 없겠죠?”
“노래가 갑자기 늘 순 없으니까.”
“그래도 너무 좋은 노랜데, 아깝네요.”
시연은 생각에 잠겼다.
뭐, 나도 아쉽긴 하다. 하지만 더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저, 정말열심히 부를게요.”
“그래.”
열심히 보다는 잘 불러 줬으면 좋겠는데.
아쉬운 마음을 속으로 삭이고 편곡을 마무리했다.
“들어볼래?”
“네.”
편곡된 곡은 여전히 좋았다.
“피디님은 천잰가 봐요오!”
시연이 방방 뛰며 날 강하게 안는다.
“사랑해요, 피디님.”
“그, 그래.”
묵직한 가슴에 몸이 눌리는 느낌을 계속 느끼고 싶다.
그래도 일은 열심히 해야지.
시연을 진정시키고 설명을 시작했다.
“이 부분은 좀 강하게 부르고, 여기서 힘을 조금 빼야 해, …….”
시연은 집중해서 들었고, 설명을 모두 마쳤을 땐 빼곡하게 메모 된 시연의 악보가 보였다.
“할 수 있겠어?”
“해 볼게요.”
바로 녹음에 들어가려 했지만, 시연이 연습할 시간을 달래서 녹음은 다음에 하기로 했다.
연습한다고 많이 달라질 것 같진 않았지만. 나아지긴 하겠지?
시연은 결심한듯 다부진 얼굴로 악보를 바라본다.
이쁘네.
그래 이렇게 이쁜 애들은 노래 좀 못해야지. 그게 공평한 거지.
박자를 타며 고개를 끄덕이는 시연. 브라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가슴도 따라서 끄덕인다.
그래. 아무렴 어때.
“옷은 다음에 빨아서 줄게.”
“네.”
시연은 내 옷 중에 입을 만한 걸 알아서 골랐다.
“그러고 가도 괜찮겠어?”
“어쩔 수 없죠.”
“누가 알아보면 어떡해?”
“흐음, 택시 타고 빨리 가면 돼요.”
안 되겠다. 옷이나 한 벌 사줘야지.
“같이 나가자.”
“네?”
“옷 사줄게.”
“앗! 정말요?”
함께 작업실 밖으로 나섰다.
“헤헷.”
한껏 들뜬 시연은 내게 팔짱을 껴왔는데, 내가 팔짱을 풀었다.
“피디님?”
“누가 알아보면 어떡해.”
“힝, 그래도.”
단호하게 고개를 젓고, 가까운 옷 가게에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시연은 점원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더니 옷을 골라서 피팅룸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옷을 갈아입고 나온 시연.
“피디님 저 어때요?”
“이뻐.”
진심이다. 회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매우 아름다웠다.
인터넷에 미시 원피스로 돌아다니는 사진의 주인공 같다.
시연이 내게 몸을 붙여왔고, 옷의 감촉이 너무 좋아 발기해버렸다.
“후훗, 섰어요?”
“응?”
내 바지춤이 튀어나온걸 봤나?
엄청 꼴리긴 한다. 뒤에서 안은 다음 가슴을 막 주무르고 싶은 의상이다.
이 옷 입고 가슴에 고추 비비면 느낌 엄청 좋을 것 같네.
잠시 고민하던 시연은 옷 위로 커다란 재킷을 걸쳤다.
“피디님만 보여줘야지.”
재킷을 바바리맨처럼 열어 보여주는 시연. 순간 코피를 뿜을 뻔했다.
“호호, 사이가 좋으시네요.”
“계산이요.”
나도 모르게 카드를 꺼냈다.
꽃뱀한테 당하는 게 이런 느낌일까?
“감사해요, 피디님. 다음에 제가 꼭 보답할게요.”
“노래 연습이나 많이 해, 그게 보답이야.”
“히잉.”
시연을 살짝 안아 준 뒤 택시를 잡아 태워줬다.
“잘 들어가고.”
“네. 연락드릴게요.”
집으로 향했다.
작업실에 다시 가서 정리해야 하는데, 너무 피곤하다.
“정말 운동 좀 해야겠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이미 집에 도착해서 침대에서 뒹굴고 있지만, 열정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더 격하게 쉬고 싶다.
그렇게 한 이틀을 뒹굴거렸다.
“슬슬 뭘 좀 해볼까.”
배달 음식으로 배를 채우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틀 쉬는 동안 몇 가지 계획을 세웠는데, 하나씩 해봐야지.
소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응, 뭐해?”
“그냥 집에서 쉬고 있죠.”
“잠깐 볼까?”
“네.”
약속을 잡고 소연을 만났다.
“오빠!”
“잘 지냈어?”
“딱히 잘 지내진 못했어요.”
소연의 표정이 우울하다.
하긴, 하루아침에 그룹이 와해되고 백수가 됐으니 잘 지내긴 힘들겠지.
“앞으론 뭐 하려고?”
“아직은 모르겠어요.”
소연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와, 슬픈 표정 짓는 와중에도 엄청 이쁘다.
쉬는 동안 집에서 소연을 찾아봤다.
그룹명은 달링하트. 귀여운 컨셉과 섹시한 컨셉으로 활동했는데, 곡도 별로였고, 컨셉도 안 맞았다.
영상 몇 개 보니까 왜 망했는지 알겠더라.
“셋이서 아직 연락은 하고?”
“그렇죠? 근데 아까부터 뭘 그리 궁금해해요?”
소연이 시크하게 말한다.
나쁜 기억이라 말하기 좀 그런가?
가만히 폰에 이어폰을 연결해 소연에게 건넸다.
“뭐에요?”
“일단 들어봐.”
완성된 ‘설레는 느낌’을 틀었다.
시연과 섹스해서 만든 곡이지만, 아이돌이 불러야 어울리는 곡이다.
“오빠?”
“어때?”
“어, 엄청 좋아요.”
소연의 눈이 떨린다.
“이걸 왜 들려주신 거죠?”
시크하게 말한다고 한 거 같은데, 엄청 설레하는 게 목소리에서 느껴진다.
“같이 해볼래?”
“저, 저희가요?”
“응, 셋이서 나랑 다시 해보자.”
“멤버들이랑 얘기해 봐야 해요.”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하고 싶어?”
“네? 그, 네.”
말을 하고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힌다.
“예쁘네, 키스하고 싶게.”
“핫! 그, 그런 말은.”
소연의 머리를 귀 뒤로 살짝넘겨줬다.
“흐읏.”
소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몸을 뒤로 뺐다.
“저, 그,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어서.”
“응? 무슨 말이야?”
“여, 연인도아닌데 이런 행동은.”
소연은 다시 얼굴을 붉혔고, 나는 가볍게 웃었다.
사귀자는 뜻인가? 모르는 척 넘어가자.
“그럼 곡은 보내줄 테니까 멤버들이랑 들어보고.”
“네.”
“나도 일이 있으니까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알려줘.”
소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이제 데이트나 좀 해볼까?
소연을 이끌고 이곳저곳 다녔다.
맛있는 밥을 먹고, 예쁜 디저트도 먹고, 재밌는 영화도 봤다.
“저녁은 제가 사겠습니다.”
“백수한테 얻어먹을정도로 염치없진 않아.”
“읏.”
소연이 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귀여워서 볼을 한 번 꼬집어 줬다.
“앗.”
“귀엽긴.”
“으으.”
저녁은 갑자기 고기가 먹고 싶어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삼겹살 괜찮지?”
“좋아해요.”
“나도 너 좋아해.”
“아, 아니!”
소연이 얼굴을 붉혔다. 내 덕에 혈액순환은 문제가 없겠네.
“들어가자.”
“네에.”
금세 시크한 표정을 되찾았지만, 여전히 얼굴은 붉었다.
저 표정이 무너질 때마다 카타르시스가 있다. 자꾸 장난치고 싶다.
“술은 마실 거지?”
“삼겹살에 소주가 없으면 아쉽죠.”
“역시.”
우리는 술과 고기를 시켰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제가 술 마셨다고 저번처럼 할 생각은 말아요.”
소연이 취기가 올랐는지 말이 많아졌고.
귀여운 모습에 자꾸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
손을 올려 머리에 대었다.
“아읏, 그, 그만.”
“왜? 싫어?”
“시, 싫은 건 아니지만. 좀. 흐읏.”
며칠 쉬었더니 내 분신은 다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며 내 욕구를 마구 높였다.
술도 좀 들어가니 섹스하고 싶긴 하다.
“그럼 됐네.”
“그, 그래도 그만해 주세요.”
손을 떼고 소연을 바라봤다.
“저, 저기.”
“왜?”
“사, 상처받으신 건 아니죠?”
조심스럽게 묻는 소연.
얘 연애는 해봤나 몰라?
얼굴에 생각이 전부 보인다. 상처받은 척해볼까? 아니다. 괜히 오해할라.
술 마셔서 그런가? 평소엔 시크한 표정 잘 유지하면서, 술만 마시면 애가 풀어진다.
“그만 집에 갈까?”
“네?”
“이제 집에 가야지?”
소연은 살짝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그렇죠. 가야죠.”
“더 같이 있고 싶어?”
답이 없다. 무언은 긍정이지.
하지만 확실히 해야 하는 게 있다.
“음, 일단 나가자.”
소연은 조용히 따라 왔다.
길을 걸어가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말할 게 있어.”
“네.”
소연이 갑자기 엄청 긴장했다. 설마 내가 고백이라도 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마, 말하세요.”
잠시 뜸을 들이자 소연은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날 격려한다.
이 분위기에서 말하면 완전 나쁜 놈 될 거 같은데.
그래도 말해야겠지?
“나는 연애할 생각 없어.”
“좋아, 네? 뭐라고요?”
“아직 연애할 생각 없다고.”
“어, 어떻게 그런.”
얘 좋다고 말하려다 놀란 거 맞지? 고백한다고 착각한 거 맞네.
후, 죄 많은인생이여. 이렇게 한 여성에게 상처를 주는 건가.
소연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고개를 돌린다. 뛰어갈 거 같은데? 소연이 뛰지 못하게 팔을 잡았다.
“놓아 주세요.”
“싫어.”
“흑,노, 놓아 주세요. 흐윽.”
눈물을 흘린다. 소연을 꼭 안았다.
“흑흑, 으아앙.”
내 품에서 가슴을 마구 때리며 우는 소연.
길거리에서 좀 민망한데.
조금 쪽팔리긴 하지만 누가 소연의 얼굴을 찍거나 하면 안 되니까 소연을 안으며얼굴을 가렸다.
“나쁜 사람.”
소연이 내가슴팍에서 얼굴을 뗀다.
“조금 진정이 됐어?”
“후우,저 갈래요.”
“그래. 곡은 여전히 유효하니까, 멤버들이랑 잘 말해보고.”
“몰라요.”
소연이 몸을 돌려 택시 타는 곳으로 간다.
조금 걱정되네. 소연이 택시를 타기 전에 말했다.
“도착하면 연락하고.”
“안 할 거예요.”
떠나는 택시를 바라보며 폰을 꺼내 차 번호를 적었다.
“조금 씁쓸하네.”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음, 힐링이필요하다.
힐링하면 역시 커다란 가슴이지.
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피디님!”
“응, 노래 연습은 잘 하고 있어?”
“저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요!”
녹음일시는 따로 정해두지 않았지만, 빠를수록 좋다.
“한 번 들어볼까?”
“지금요?”
“왜? 힘들어?”
시연은 고민하는 듯 말이 없다.
“헤헤, 피디님 저 그냥 작업실로 가면 안 돼요?”
음? 이걸 바란 건 아니지만, 무조건 가능. 쌉가능.
“나 지금 밖이라 가는 데 좀 걸려.”
“먼저 가 있을게요.”
“그래. 비번 알려줄게.”
“네. 히힛.”
시연과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 아랫도리가 묵직해진다.
여기서 커지면 안 된단다 똘똘아 자중하렴.
택시를 잡고 작업실로 향했다.
작업실 청소 안 했는데.
저번에 정사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그대로 있을 텐데?
작업실에 들어가자 청소하는 시연이 보인다.
“내가 해도 되는데.”
“일찍 온 김에 겸사겸사하는 거죠.”
시연이 활기차게 웃으며 정리를 마저 했다.
“피디님! 뭐하고 계셨어요?”
정리를 끝낸 시연이 내게 다가와 안긴다.
“앗! 고기 냄새. 술도 마셨죠?”
“응. 냄새 많이나?”
“피디님 냄새가 가려졌어요. 히잉.”
가끔, 시연은 무서운 얘기를 한다.
얘 냄새 성애잔가? 뭐, 나쁜 건 아니니까. 나중에 입던 팬티라도 줄까?
“헤헤, 피디님술 마셨으니까 노래는 다음에 부를까요?”
“아니, 괜찮아 많이 안 마셨어.”
시연은 노골적인 표정으로 몸을 비비며 유혹했지만, 넘어가 줄 생각이 없다.
“노래 들어볼까?”
“힝.”
시연은 긴장되는지 심호흡을 하며 부스로 향한다.
“연습이니까 긴장 풀고.”
“네.”
반주를 틀었다. 연습이라고 말했지만, 혹시 몰라서 녹음도 시작했다.
시연의 노래가 시작됐고 정말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