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을 뜬 진명이 맨 먼저 느낀 것은 고요한 적막이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텐트 안이라 그제야 모든 상황을 파악한 진명은 휴대폰을 열어 시계를 보았다.
‘7시. 아직 시간이 이른데...’
하지만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빛이 밝은 데다 더 이상 잠도 오지 않을 것 같아 진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승욱과 정수는 아직 깨어나지 않은 듯 깊은 숨을 쉬며 잠에 빠져있었다.
진명은 두 사람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텐트 밖으로 나왔다.
이미 날은 밝았고 아침 공기는 상쾌해 진명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바다로 향했다.
수영복 팬티만 입고 있는 상태라 아침 공기가 제법 쌀쌀하게 느껴져 진명은 팔다리를 움직이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어느 정도 몸이 풀리자 진명은 갑자기 태권도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진명은 자세를 잡고 옛날 태권도에 처음 입문했을 때 보라가 가르쳐준 품새 태극 1장부터 시연해 나갔다.
그렇게 기본적인 품새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어려운 것까지 모두 마치고 나니 진명의 온 몸엔 구슬 같은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렸다.
“후우!”
진명이 깊은 숨을 내 쉬며 텐트를 향해 돌아서는데 박수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짝짝짝-
“어?”
그와 불과 1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에서 현서가 그를 보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진명이 얼른 다가가 그녀에게 말했다.
“언제 나왔어?”
“선배 나온 다음에 바로 나왔는데 운동에 열중해서 전혀 모르던 데요?”
“그랬어? 조금 더 자지 않고.”
“낯 선 곳이라 많이 잘 수가 없었어요.”
현서가 진명의 몸을 바라보며 손에 들고 있던 수건을 내밀었다.
“땀 좀 닦아요.”
“어. 고마워.”
진명이 수건으로 땀을 닦다가 그녀에게 웃으며 말한다.
“현서는 수건에서도 좋은 향기가 나네.”
“참. 선배는 나만 보면 그러네. 그러지 마요. 민정이하고 깊은 사이면서.”
현서가 눈을 흘기자 진명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민정이하고 깊은 사이 아니야.”
“깊은 사이 아니면서 어제...”
현서가 말을 하다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얼른 입을 다물었다.
‘이거. 어젯밤 일이 실수였구나.’
진명은 어젯밤 현서 보는 앞에서 민정과 섹스를 한 것을 후회했다.
“음. 남자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하고도 섹스를 할 수 있는 동물이야. 하지만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서로 사귄다면 그 여자 말고 다른 여잔 돌아보지 않겠지.”
진명이 변명하듯 말하자 현서가 그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아무튼 지금 하는 동작 참 멋졌어요. 그게 태권도예요?”
“응. 태권도에서 품새라고 하는 거지. 올림픽 같은 데서는 겨루기만 해서 승부를 가리는데 태권도에는 겨루기 말고도 품새나 격파 같은 걸로 승부를 가리는 것도 있어.”
“여행 오니까 이런 좋은 점도 있네요. 아침에 눈을 떠 나와 보니 우리나라 태권도 최고수가 이렇게 아름다운 동작으로 춤을 다 추고. 아! 미안해요. 내 눈에는 선배 하는 동작이 꼭 절묘한 춤사위로 보였어요.”
“하하. 현서가 좋게만 봐주면 난 뭐든 좋아.”
“다른 사람들은 아직 안 일어났죠?”
“응. 정수는 일찍 일어날 줄 알았는데 좀 의외네.”
“그러게요. 나도 옆 텐트에서 누가 나오길래 정수 선밴줄 알았는데.”
“내가 나와서 실망했어?”
진명이 웃으며 묻자 현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런 좋은 구경을 할 수 있어서 오히려 선배가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 그뿐만 아니라 아침식사도 내가 만들 거니까 기대해줘.”
현서가 그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일찍 일어났더니 좀 시장하긴 한데. 아침 메뉴는 뭐예요?”
“음. 김치찌개를 할까 생각했는데 현서는 뭐 다른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아니요. 김치찌개 좋아요. 아. 먹고 싶다.”
진명은 현서가 자신을 점점 더 편하게 대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잠깐만 기다려. 내가 맛있게 끓여줄게.”
“아니. 나도 도울 게요. 재미있을 거 같아.”
진명은 그녀를 보며 활짝 웃었다.
“좋아. 우리 둘이서 작품 한 번 만들어보자.”
“호호. 그래요.”
찌개가 끓어 구수한 냄새를 풍기자 사람들이 하나둘 텐트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아우. 이게 무슨 냄새야?”
민정이 텐트에서 나오다 진명과 현서를 발견하고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 두 사람이 끓인 거야?”
현서가 대답한다.
“아니. 진명 선배가 끓였지. 난 조금 도왔을 뿐이고.”
“나 좀 깨우지.”
“곤히 자는 사람을 어떻게 깨우니?”
그때 정수가 텐트에서 나왔다.
“선배. 잘 잤어요?”
현서가 인사하자 정수가 그녀를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낯설어서 늦게까지 못자다가 새벽에야 잠이 들었어. 그래서 늦잠을 잤네.”
“이런 데서는 다 그래요. 아무래도 이젠 텐트 안에 있는 사람 깨워야할 것 같은데.”
현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텐트에서 승욱과 초희 두 사람이 동시에 나왔다.
“아우. 냄새 죽인다.”
승욱이 손으로 눈꼽을 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한창 끓고 있는 찌개를 발견하고 탄성을 발한다.
“야. 언제 이런 것까지. 누구야? 이런 귀여운 짓을 한 사람이.”
민정이 대답했다.
“여기서 이런 거 할 사람이 누구겠어요?”
“진명이?”
“당연하지.”
진명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아. 나 혼자 한 거 아니야. 현서도 일찍 일어나서 같이 만들어봤지. 그리고 김치찌개란 게 별거 있냐? 김치만 맛있으면 만사 오케이지. 자자. 자리에들 앉아라. 찌개 퍼서 얼른 밥 좀 먹자. 나 배고파 돌아가시겠다.”
진명의 말에 현서가 훗, 하고 웃었다. 그녀는 진명이 아침부터 운동을 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행동을 다 이해했던 것이다.
“어째. 두 사람 분위기가 묘한데?”
승욱이 진명과 현서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묘한 표정으로 보자 현서가 그에게 말했다.
“승욱 선배는 밥이나 들어요. 궁금한 거 있으면 식사하면서 다 말해 줄 테니까.”
“그, 그래.”
현서의 말에 승욱이 꼼짝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일행은 김치찌개로 맛있게 아침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면서 현서가 아침에 일어나 진명이 운동했던 것을 간단하게 요약해서 말하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하하. 우리 선수께서 아침부터 그렇게 힘을 썼으니 배가 고플 수밖에. 자자. 남은 밥 다 먹어라.”
승욱이 웃으며 진명에게 자신의 그릇에 있는 밥까지 퍼주자 진명은 사양 않고 그것까지 다 먹어치웠다.
아침식사가 끝나자 물건들을 정리하고 일행은 요트에 올랐다.
“이제 남해로 출발이다. 거기는 이곳보다 훨씬 더 좋은 곳이니까 기대해도 된다. 자. 가 볼까?”
승욱이 말과 함께 요트를 출발시키자 일행은 소리를 지르며 다음 여행지에 대한 기대를 표현했다.
“야호!”
“남해야, 기다려라.”
요트가 물살을 가르며 빠르게 달리자 진명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내일부터는 제주도로 가니까 오늘까지가 아니면 더 이상 기회가 없을 텐데...’
진명은 고개를 돌려 눈으로 현서를 찾았다.
‘......!’
다른 두 여자는 아침이라 눈도 조금 붓고 평소보다 얼굴이 덜 예뻐 보이는데 유독 현서만 얼굴에 빛이 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후우.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되겠지.’
자신감을 잃은 진명의 입에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점심은 요트에서 진명이 준비한 걸로 먹고 그 뒤로도 한참을 달려서 일행은 남해에 도착했다.
무인도에 어제와 같이 요트를 정박시키자 일행은 같이 짐을 옮겼고 백사장 가장 좋은 위치를 골라 텐트를 쳤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일행은 각자 자유롭게 시간을 보냈는데 낚시에 빠진 초희를 빼고 나머지 다섯 사람은 모두 물속으로 들어가 수영을 즐겼다.
“야. 여긴 남해라서 그런지 확실히 어제 그 섬보다 물이 맑다.”
진명의 말에 승욱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렇지? 여긴 고기도 잘 잡혀서 낚시터로도 제법 이름 있는 섬이야.”
“그럼 여기서 다른 사람들 만나는 거 아니야?”
“아니. 내일 제주도 가기 편하라고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섬으로 왔거든. 가까운 곳 놔두고 이렇게 멀리 올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 안심해도 돼.”
“응. 승욱이 네가 어련히 알아서 했겠지.”
진명이 어제 현서에게 배운 폼으로 수영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요트 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악!”
초희가 내 지르는 소리가 분명해 진명은 깜짝 놀라 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진명이 앞서고 나머지 네 사람이 모두 그의 뒤를 따랐다.
요트에 황급히 들어선 진명이 초희의 모습을 찾는데 배 후미에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진명이 재빠르게 다가가자 초희가 그를 보며 활짝 웃는다.
“오빠! 이 고기 좀 봐라. 월척이다.”
진명이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물고기를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초희 너. 사람 간 떨어지게 무슨 비명을 그렇게 크게 지르는 거니?”
뒤따라온 사람들도 초희가 무사하자 모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호호. 이거 좀 보라니까. 내가 잡은 거야.”
초희가 물고기의 입에서 낚시 바늘을 빼내고 물통에 고기를 놔주자 그게 꼬리를 흔들며 헤엄쳐 다녔다.
“야. 크긴 크다. 이거 이름이 뭐냐?”
승욱이 묻자 초희가 말했다.
“이게 아마 우럭이란 걸 거야. 머리가 되게 크잖아? 책에서 봤는데 회도 맛있고 매운탕으로 끓여도 맛있다고 했으니까 모두들 기대하시라.”
흥분한 초희의 얼굴을 보고 진명도 갑자기 낚시가 하고 싶어졌다.
“야! 나도 낚시해야겠다. 도구는 충분하지?”
“그럼. 다들 같이 하자.”
초희가 혼자서만 하다가 일행이 관심을 보이자 적극 권했다.
“좋아. 지금 이 시간부터 주제는 바다낚시다. 가장 큰 거 잡은 사람은 포상을 주기로 하고 모두 참여하는 거야. 어때?”
승욱의 말에 모두 찬성을 했다.
초희에게 간단한 교습을 받은 다음 일행 모두는 각자 요트 가장자리에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고 낚시에 들어갔다.
‘......!’
손끝에 묵직한 감각을 느끼고 진명이 릴을 감아올리는데 한참 감다보니 끝에 물고기가 파닥거리며 따라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야! 잡았다.”
진명이 큰 소리로 외치며 물고기를 손으로 잡는데 아까 초희가 왜 그렇게 비명을 질렀는지 알 것 같았다. 물고기가 올라오는 순간 손끝에 그야말로 짜릿한 쾌감을 느꼈던 것이다.
“어머! 꽤 크다. 초희가 잡은 것과 비슷해.”
가까이 있던 민정이 다가와 고기를 보고 탄성을 발한다.
진명은 물통에 고기를 놓고 다시 낚시를 드리웠다.
‘낚시란 게 생각보다 재미있는 것이로구나.’
그가 생각하고 있을 때 여기저기서 탄성소리가 들려왔다.
“아. 잡았다.”
“나도 잡았어.”
일행 모두 고기를 잡자 신이 나서 더욱 열심히 낚시에 매달렸다.
얼추 두 시간 정도가 흘렀을까?
슬슬 지루해지려고 하는 찰나에 갑자기 진명의 바로 가까이 있던 현서가 비명을 지르며 그를 불렀다.
“악. 진명 선배!”
“왜? 왜 그래?”
진명이 황급히 다가가자 현서가 팽팽하게 당겨진 낚싯줄을 손으로 잡고 그에게 말했다.
“이거 이상해요. 상어라도 물린 건지 이게 계속 줄을 잡아당겨요.”
진명이 자세히 보니 작은 릴대가 밑으로 축 처져있고 줄은 끊어질 듯 위태하게 흔들거렸다.
진명이 얼른 그녀의 등 뒤로 다가가 그녀의 몸을 안고 릴을 잡고 있는 그녀의 두 손을 자신의 손으로 감쌌다.
“현서야. 이거 놓지 마. 큰 게 물린 거 같으니까 끝까지 버텨봐.”
“응.”
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힘을 주자 진명도 같이 힘을 주며 릴을 잡아당겨보았다.
툭- 툭툭-
저 끝에서 뭔가 강하게 잡아당기는 힘을 느끼고 진명은 놀라 탄성을 발했다.
“야아. 이거 힘이 진짜로 센 고기다. 아까 잡은 것들하고는 비교가 안 돼.”
“후우!”
현서가 심호흡을 하며 릴을 잡고 버텼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르자 당기는 힘이 약해졌고 그때 진명이 현서에게 말했다.
“현서야. 이제 줄을 당겨봐.”
“응.”
현서가 긴장했는지 아까부터 계속 진명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진명은 그게 더 다정하게 들려 급박한 상황 중에도 달콤한 기분을 느꼈다.
현서가 릴을 감다 손을 멈췄다.
“왜?”
“물속에서 또 잡아 당겨.”
“그래? 그럼 무리하지 말고 잠시만 기다려.”
현서가 이제 조금 안정이 되는지 말소리에 여유가 흘렀다.
“진명 선배. 이렇게 있으니까 옛날 읽었던 노인과 바다가 생각나네.”
“그래?”
진명은 그 책을 잃어보지 않아서 그냥 맞장구만 쳐주었다.
“응. 내가 꼭 그 책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아요.”
“설마 그 주인공이 현서처럼 아름다웠을라고.”
진명은 현서한테 점수를 따려고 그렇게 말했지만 그의 말을 듣고 현서가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보았다.
“선배. 그 책 안 읽었어요?”
“으응.”
진명이 속으로 당황했지만 얼른 대책을 강구했다.
“그게. 난 쪽수가 많은 책은 잘 안 읽는 버릇이 있어서.”
“그 책은 쪽수도 얼마 안 되는데.”
“아. 그래?”
진명이 더 이상 할 말이 없자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래. 나 무식하다. 됐냐?’
“아. 이제 조금 풀린다.”
현서가 말을 하면서 릴을 감았다. 감는 속도가 빨라지더니 어느 순간 바다 위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내다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야! 크다.”
진명이 보고 소리를 치는데 어느새 두 사람 주위로 일행 모두가 모여들었다.
“현서야. 힘들면 나한테 맡겨라. 내가 해볼까?”
승욱이 참견하고 나서자 현서가 그를 한 번 쏘아 본 뒤 툭 말을 던졌다.
“내가 할 거예요.”
진명에 그녀의 손을 잡은 채 격려를 했다.
“그래. 현서는 할 수 있어. 끝까지 해 봐.”
현서가 진명의 얼굴을 본 뒤 웃으며 릴대를 잡고 릴을 힘차게 감아 당겼다.
끼릭-
릴이 돌아가며 이젠 고기가 확실하게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자 초희가 그것을 보고 소리쳤다.
“돔이다.”
“그 횟감으로 유명한 돔이야?”
승욱의 말에 초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저 등에 칼처럼 돋아난 지느러미를 봐. 굉장히 큰 돔인 것 같아.”
현서가 릴을 계속 잡아당기는데 그 곁에서 정수가 그녀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며 말했다.
“현서야. 조금만 더 힘을 내 봐.”
현서의 뒤에 있던 진명이 몸을 풀고 그녀의 곁에 서서 고기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고기가 거의 다 올라오자 초희에게 뜰채를 넘겨받아 고기를 그 안으로 담았다.
“와아아.”
“진짜로 크다.”
사람들이 구경하는 가운데 뜰채 안에서 물고기가 거센 몸부림을 치며 파닥거렸다.
“야. 이 놈 진짜로 힘 좋네. 이거 회 뜨면 진짜로 끝내 주겠네. 술생각이 절로 난다 야아. 얼른 물통에 넣어라.”
승욱이 소리치자 진명이 고기를 물통에 넣었다.
파다닥-
고기가 물에 들어가 꼬리를 한 번 흔들자 다른 물고기들이 황급히 놀라 주변으로 흩어졌다.
“자. 오늘의 장원은 현서다. 장원이 결정됐으니까 낚시는 여기까지 하고 접도록 하자.”
승욱의 말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진명이 회를 뜨는 동안 사람들은 조를 둘로 나누어 한 조는 식사를 하기 위한 자리를 준비했고 다른 조는 캠프파이어를 위해 나뭇가지를 모으러 다녔다.
진명은 회를 뜨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검증이 된 고기들만 모아서 살을 대충 삼겹살처럼 굵직하게 썰었는데 현서가 잡은 고기만큼은 신중하게 잘 썰어서 따로 용기에 담았다.
회를 뜨고 남은 머리와 뼈를 큰 그릇에 담아 매운탕 거리로 놔두고 진명은 그것을 모두 텐트 앞으로 옮겼다.
놀 준비가 모두 끝나자 사람들은 백사장에 나뭇가지를 쌓아놓고 그 주위로 둘러앉았다.
사람들이 다 모이자 승욱이 일어나서 말했다.
“자. 이제부터 단체로 모여 먹고 놀 텐데 오늘은 어제처럼 평범하게 놀고 마칠 수가 없거든? 게임도 하고 여러 가지를 할 텐데 우선 사회를 보는 내 말에 절대적인 권위가 있어야하기 때문에 내 말을 거역할 사람은 지금부터 이 모임에서 빠져주기 바란다. 내 말에 이의 있는 사람은 지금 손 들어라.”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아아. 이거 뭔가 분위기가 될 것 같은데? 하하. 아무튼 오늘 뜻하지 않게 낚시바람이 불어서 고기를 많이 잡았는데 그 중에서 특히 장원을 한 현서 양에게는 나중에 특별 포상이 있을 예정이니까 기대하도록.”
“하하.”
짝짝-
현서를 향해 모두 박수를 치자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자자. 여기 주목하시고. 모두들 음식을 먹기 전에 먼저 폭탄주를 한 잔씩 돌리겠는데 이건 공식적인 잔이니까 절대로 거절불가라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좋아. 오늘은 한 번 마셔보자.”
진명이 호기 있게 외치자 그 옆에 있던 민정도 동조했고 초희도 좋다고 박수를 치자 현서와 정수도 거절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돼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승욱이 폭탄주를 제조해 각자 한 사람씩 돌리고 회접시를 그들 앞에 놓았다.
“여기 중앙에 있는 것이 현서가 잡은 돔이라는 고기다. 고기가 워낙 커서 양이 많긴 하지만 이것만 집중적으로 먹지 말고 다른 회도 먹기 바란다. 회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밖에 다른 안주도 많으니까 먹고 싶은 대로 골라서 먹도록 하시고 자. 이제 건배 한 번 할까? 우리의 영원한 우정을 위하여.”
승욱이 잔을 들자 나머지 사람들도 일제히 잔을 들어 건배를 했다.
“원샷이다.”
승욱이 단숨에 잔을 비우고 말하자 모두 그의 말에 따랐다.
“으음.”
빈 속에 폭탄주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자 진명은 뱃속이 아릿해지며 기분이 좋아졌다.
“이거 맛이 괜찮네.”
진명의 말에 승욱이 웃으며 대꾸했다.
“맥주는 평범하지만 양주가 발렌타인 30년산이다. 당연히 마실 만 해야지.”
진명은 술에 대해 잘 몰라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젓가락으로 현서가 잡은 도미회를 한 점 초장에 찍어먹었다.
“야. 이거 진짜로 맛있는데? 현서 덕분에 이런 별미를 다 먹어보네.”
진명이 크게 감탄하자 사람들의 젓가락이 일제히 그리로 쏠렸다.
“진짜네.”
“이거 정말 쫄깃하고 고소하다. 무슨 회가 이렇게 고소하지?”
사람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하며 회를 집어먹자 현서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하는 가운데 어느 정도 배가 차자 승욱이 중앙에 모아둔 나무에 불을 붙였다.
불길이 순식간에 나무 전체로 번지자 이제 막 어두워져 가는 백사장이 다시 환하게 밝아졌다.
“자. 이제부터 게임을 시작할 건데, 벌칙은 내가 미리 정해두고 게임을 한 다음 패배자는 그 벌칙에 따르는 방식으로 할 거야. 공평한 게임이니까 다들 불만은 없으리라고 본다.”
승욱의 말에 민정이 콧대를 세우고 대꾸했다.
“좋아. 난 머리가 영리하니까 좀처럼 걸리지 않을 걸?”
승욱이 그녀를 보며 웃었다.
“흐흐. 그래. 어디 그렇게 되나 두고 보자.”
승욱이 중얼거리다 모두에게 말했다.
“자. 이제 첫 번 게임은... 사실 이건 게임이 아니라 신고식이지. 모두 수영복 차림으로 사람들 앞에 나와서 자기 소개를 하는 거야. 성과 이름을 사람들에게 말하는 건데 입으로 하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글씨를 써서 소개를 하는 거지. 못하면 벌칙은 폭탄주 한 잔이다. 자 어떻게 하는지 내가 시범을 먼저 보여주마.”
승욱이 모두 볼 수 있는 곳으로 나와 등을 돌리더니 엉덩이를 돌려가며 자기 이름을 쓴다.
“자. 정확하게 성과 이름을 썼지? 이렇게 하는 거야.”
승욱이 들어오자 초희가 나갔다.
“승욱 오빠가 소개를 먼저 했으니까 그 다음은 파트너인 내가 해야겠지?”
초희가 비키니 차림으로 등을 돌리더니 엉덩이를 섹시한 포즈로 돌리며 자기 이름을 허공에 그렸다.
그녀가 임무를 마치자 승욱이 크게 박수를 쳤다.
“그렇게 하는 거야. 자. 다음 사람.”
그 다음에는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술이 고픈 거야? 소개할 사람 없어? 아니. 자기 이름도 못 쓰는 사람이 있냐?”
승욱이 계속 놀리자 진명이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그가 등을 돌리고 엉덩이를 돌리자 초희가 소리쳤다.
“오빠. 엉덩이 섹시하다.”
진명이 서투르지만 분명하게 이름을 그리고 들어오자 다음은 민정이 나갈 차례가 되었다.
잠시 고민하던 민정이 투덜거리며 승욱에게 말했다.
“에이 씨. 난 안 할래. 술이나 줘.”
“하하. 민정이가 이렇게 부끄러움 타는 여잔 줄 몰랐는걸?”
승욱이 폭탄주를 주자 그녀가 잔을 단숨에 마셨다.
“아우. 알딸딸하네.”
민정이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리더니 다음 차례인 정수를 쳐다보았다.
“정수 선배. 선배도 해야지.”
정수가 고개를 흔들며 승욱에게 말했다.
“나도 술 마실게.”
“어휴. 샌님.”
정수가 승욱에게 잔을 받아 마시자 이제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현서에게 쏠렸다.
“이거 신고식도 제대로 안 하면 사회자가 재미없어서 맥이 빠지는데.”
승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현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하는 거야?”
현서가 중앙으로 나가자 승욱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야. 좋아.”
현서가 등을 돌리고 천천히 엉덩이를 돌리는데 그 아찔한 모습에 진명은 자지가 불끈 서며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이 두근거렸다. 날씬한 허리와 정반대로 탄력 있게 솟은 그녀의 엉덩이는 신이 내린 걸작품이란 생각까지 들고 오늘 그녀를 안을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서가 엉덩이로 성과 이름을 다 쓰자 승욱이 손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크게 박수를 쳤다.
짝짝짝-
“와우. 오늘 현서, 낚시만 장원이 아니라 호탕한 것도 장원이다.”
현서가 들어오자 진명이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
그녀 역시 남자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부끄러웠는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냥 술로 해결하지 그랬어?”
정수가 그녀 옆에서 나직하게 말하자 현서가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부터 시작인데 술로 전부 해결하려면 몸이 배겨나지 못할 것 같아서요.”
“음. 그 말도 맞긴 한데...”
정수가 뭔가 더 말을 하려다 그만 두었다.
승욱이 모두에게 말했다.
“게임이 끝날 때마다 벌칙이 있는데 술을 마셔야하는 벌칙에 여자가 걸리면 그 파트너가 세 번까지는 기사 노릇을 해 줄 수 있는 걸로 하지.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술이 약할 테니까 말이야.”
그러자 현서가 말했다.
“정수 선배는 술이 약한 편인데 불공평하지 않나요?”
승욱이 대답했다.
“그럼 안 걸리면 되지. 그리고 현서가 걸리면 그냥 본인이 마시면 되고. 어려울 게 있나? 그리고 게임이란 게 어제 대강 해봐서 알겠지만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거라 정수와 현서가 많이 유리할 거야. 그렇게 따지면 진명이나 나 같이 머리가 나쁜 사람은 또 불공평하다고 말 할 수 있는 거지.”
“흠. 일리가 있네.”
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그럼 먼저 어제 한 번 해 봤던 고전적인 게임 삼육구부터 해 볼까?”
승욱의 말에 민정이 대번에 찬성하고 나섰다.
“좋아요. 삼육구 해요.”
진명은 민정이 어제 게임을 하면서 한 번도 걸리지 않았던 것을 기억하고 쓴 웃음을 지었다. 어제 벌칙은 없었지만 삼육구게임을 20회 정도 했을 때 자신이 무려 15번이나 걸렸던 것이다.
게임을 시작하고 진명이 내리 두 번을 걸려 폭탄주 두 잔을 마셨다.
그 다음에 초희가 또 내리 두 번을 걸려 한 번을 마시고 승욱이 한 번 기사 노릇을 했다. 의외로 승욱은 이런 게임하는 머리는 뛰어난 지 삼육구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그 뒤로도 현서가 한 번, 진명이 두 번, 초희가 두 번 더 걸리고 게임은 끝이 났다.
진명은 이번 게임에서 폭탄주를 네 잔이나 마셨지만 술이 센 편이고 취하지 않겠다고 긴장해서인지 정신은 아주 말짱했다.
초희를 보니 얼굴이 약간 달아올랐지만 술이 센 편인 그녀도 아직은 충분히 버티고 있었다.
“자 다음은 춤 솜씨를 한 번 보도록 하지.”
승욱이 어느새 준비한 노트북을 열며 모두에게 말했다
“여기 노트북에 동영상이 몇 개 있는데 전부 춤에 관한 거야. 가장 기본적인 거라 처음 보는 사람도 따라할 수 있는 건데 이 중에서 몇 개를 골라 동영상을 보고 그대로 따라서 하는 게임이거든? 여기서 가장 춤을 못 추는 몸치선생께서 벌칙주를 마시면 되는 게임이고 사람 수가 여섯 명이니까 각자 한 번씩 동영상을 고르고 그대로 따라하면 되겠습니다.”
춤을 추는 게임은 모두에게 꽤나 흥미를 안겨주었다.
게임에 지지 않기 위해 여섯 번 동안 각자 최선을 다해 몸을 흔드는데 그 원초적인 모습들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음과 탄성을 자아내게 하였고 분위기를 급속도로 달구어갔다.
게임의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이 된 것이었는데 연예계 물을 먹은 초희가 압도적인 춤 솜씨를 보였고 진명도 운동신경이 뛰어나 무난하게 벌칙을 받지 않았다. 이 게임에서 꼴찌는 정수와 민정이 사이 좋게 세 번 씩을 하여 그들 모두 각자 폭탄주를 세 잔이나 마셨다. 진명이 기사 노릇을 하고 싶어도 자신은 전에 네 잔이나 마셨기 때문에 민정이 사양하고 자신이 직접 해결했다.
게임은 계속 진행이 되었는데 지는 사람은 술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벌칙을 받았다. 승욱이 적절하게 조절을 하여 술이 어느 정도 되면 다른 벌칙을 준비해 그들은 세 시간이 넘도록 다양하게 게임을 즐겼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마치는 시간이 있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