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모녀
- 사고 -
사고였다.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있다. 누구의 잘못이라 할 수도 없는 사고....
누군가 원망하고 싶은 마음도 일지 않았다. 다만 민국의 머릿속에는 온통
두 사람 생각 뿐이었다. 연희와 수정....
오랜 방황의 끝에 연희의 표현에 의하면 하늘에서 내려 준 사람의 도움으로
이제야 자리를 잡고 사람답게 사나 했더니 하늘은 결국 민국의 인생에 행복과
안정을 허락지 않기로 한 모양이었다.
구급차에서 내린지 한참이나 지났다고 생각되던 때 계속 눈을 때리는 형광등
빛 사이로 간절히 듣고 싶던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여보...여보 이게 무슨 일이야. 괜찮아? 응?"
"아빠! 아빠! 엉엉엉"
침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마도 수술실로 들어가려는 모양이다.
그 두사람을 위해서. 내세울 것 하나 없고 누가봐도 실패한
민국의 인생에 유일한 낙인 아름다운 아내 연희와 그 연희를 빼닮았으면서도
스무살의 생기가 넘쳐흘러 보기만 해도 꿀이 떨어질 것 같은 예쁜 딸 수정이....
그 두사람을 위해서 반드시 살겠다고. 무슨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겠다고
민국은 결심을 다졌다. 그러나 점점 희미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어둡고 두려운 기운 하나가
불쑥 올라왔다....
'수술비는 어떻하지.....보험도 제대로 없는데 내가 누워있는 동안 연희가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구나....어떻하지.....'
"죄송합니다. 저희로서도 후원회장님의 특별한 부탁도 있고해서 최선을 다했지만
워낙 상처가 깊고 넓어서......죄송하게 됐습니다...."
민국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채 숨죽여 울고 있는 연희와 아예 돌아선 채
몸을 떨며 역시 속으로 울고 있는 수정......그리고 무언 가 있어야 할 곳에 아무 것도
없는 자신의 하체를 바라보았다. 무릎 위로 양 쪽 다리 전부가 절단되어 있었다....
자신의 장애에 대해, 그것이 가져올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이 미치기도 전에 민국은
돈에 대한 걱정이 떠올랐다.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죄송 하실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외람되지만 비용은....
그리고 경황이 없어 생각을 못했는데 지금 제가 있는 곳이 일인실 맞죠? 이게 하루에
수십만원 이라고 들었는데....."
의사에게 할 말이 아니었지만 다급한 마음에 두서없이 질문을 던지는 민국이었다.
"걱정마 여보. 상훈씨가 전부 해결해주셨어....."
"아빠. 그리고 여기 그냥 일인실 아니고 특실이야"
머뭇거리는 의사를 선수쳐 두 여자가 대답을 해주었다. 상훈이가......
또 다시 신세를 졌구나 도저히 갚을 길이 없는데....민국은 고마운 마음보다 무거운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나가고 방에는 가족만이 남았다.
"여보...사고처리는 어떻게 됐어?..."
"당신은 억울하겠지만 우리가 80 나왔어.....상훈씨가 제일 비싼 변호사에게 문의했는데
도저히 바꿀 수가 없데...앞에서 아무리 급정거를 했어도 뒤에서 받은 사람 잘못이라네...
법이 그렇데...."
"근데 아빠 상훈 삼촌이 그 변호사한테 물어보는데만 해도 잠깐인데 200만원이었데
근데 아무 망설임 없이 그냥 하더라고, 도대체 상훈 삼촌 돈이 얼마나 많은 거야?"
"너는 지금 아빠한테 그게 물어볼 일이니?"
"뭐....그냥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엄마도 상훈 삼촌 아니었으면 어떻했겠냐고
계속 고맙다고 그랬잖아. 삼촌이 안아 줬을 때도 안겨서 한참을 울어 놓고선...."
"수정아!"
연희는 그렇게 수정이의 입을 막고 곤란하다는 듯 민국을 쳐다봤다. 그는 괜찮다는 표시로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서 스물스물 피어나는 불안을 민국은 분명히 인식했다.
대학시절 스치듯 연희의 허벅지를 바라보던 상훈의 눈길...대학 졸업후 15년 넘게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연락해와 상식밖의 좋은 일자리를 제안했을 때 기쁨 한 구석에
분명히 존재했던 검은 감정....그러나 단순히 껴안은 것 만이 아니라 더한 일을 했더라도
지금의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상훈을 보자마자 불편한 몸으로 연신 고개를 숙이여
고맙다고 할 수밖에.....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의사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상훈이 들어왔다.
멋들어진 코트에 빛나는 롤렉스 수제가 분명한 날렵한 구두가 아니더라도 자신만만한
그 표정에서 성공의 분위기가 상훈을 감싸고 있었다.
대학 시절에는 그저 머리가 좀 좋은 괴상한 녀석이었다. 평소에 언제나 책만 읽고 말은
별로 없는 녀석이었는데 새로운 기술이 나오거나 어떤 사회적인 이슈가 있을 때
구석자리에서 조용히 있다가 한 마디씩 툭 던지면 몇 년이 지나 꼭 녀석의 말대로
세상이 굴러가곤 했다. 그 때만해도 술도 안 먹고 여자도 없이 책만 읽는 가끔 쓸모있는
소리를 하는 존재감 없는 녀석일 뿐이었다.
군대를 다녀와 대학을 자퇴하고 인디 게임회사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런가보다 했을 뿐 막 사귀기 시작한 연희에게 빠져 몸도 마음도 녹아내리던 당시의
민국에게 중요한 소식은 아니었다.
그런데 10년도 더 지나 초등학교에 다니던 수정이를 키우며 세상 살이라는 것이 정말로
만만치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때 쯤 상훈이 자신의 게임 회사를 중국 기업에
3000억에 넘겼다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이 들려왔다... 삼천억이라니.....
그 당시 작은 전기제품 유통 업체에 다니던 상훈의 연봉이 삼천만원이 조금 넘었다.
정말 어른들 말씀 하시던 것처럼 한 달 벌어 한 달 쓰면 끝나는 생활이었고
연희는 몸도 약하고 마음은 더 여려서 사회 생활을 하기 어려운 여자였다.
웃으며 걸어와 의자에 걸터 앉는 상훈을 보며 민국은 당시에 돌리던 엑셀 한 귀퉁이에서
자신이 삼천억을 벌려면 몇 년이 걸리는지 계산하다 그만뒀던 기억을 떠올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친구. 좀...어때? 괜찮아?....아니다 뭐 어떻게 물어봐야 할 지 모르겠네...."
"괜찮아 임마. 그리고.....연희한테 들었어 진짜 고맙다. 지금까지만 해도 너무 고마웠는데
이렇게까지....내가 뭐라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
"걱정마. 나 돈 많잖아. 미안. 농담이다. 당연히 도와야지. 앞으로도 내가 니
고통을 대신해 줄 수는 없지만 금전적인 부분은 걱정하지마. 그리고 홍보팀에
독일 쪽 인공지능 의족 알아보라고 해놨어. 그 양발 다 없는데 단거리 육상선수
하는 애 있지? 그런 최신 의족이 지금은 독일께 제일 좋다더라고. 육상선수도 하는데
일상생활 하는데 아무 지장 없어. 너 아무렇지도 않은거야. 걱정마 임마"
순간 왈칵 울음이 나려는 것을 민국은 간신히 참아 눌렀다. 도대체 자신이 뭐라고....
아무리 돈이 많기로서니 자신은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이렇게 많은 것을 받아도
되는가 하는 의문과 함께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의 감사하는 마음이 솟구쳤다.
"상훈씨 정말 감사해요. 도대체 저희가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삼촌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엉엉..."
"하하 아닙니다. 제수씨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걸요. 그리고 제가 민국이 한테 도움 받은지
두달도 안돼서 이런일이 일어나가지고 저도 큰 책임감을 느낍니다. 이 자식 넌 왜그렇게
울어 임마. 이쁜 얼굴 다 버리게"
"엉엉. 고마워요 삼촌"
"저희는 매일 이렇게 받기만 해서 상훈씨게 뭐하나 해드리지도 못하고...."
"하하. 저 돈 많잖아요. 저한테 뭐 해주실 것 없어요. 세 사람 한테 제가 도움이 되고
이렇게 고맙다고 해주시는 것이 저에겐 기쁨입니다. 그래도 정 뭘 주시고 싶으시면.....
사랑을 주세요. 하하하"
"예?"
"사랑이 넘치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 사랑해 주실 꺼죠? 아 뭐
그런 이상한 게 아니라 사람 사이에 그런 거 있잖아요."
"아....네....물론이죠. 보잘 것 없는 제 것이라도 상훈씨께 의미가 있다면
제.....사랑을....드릴께요....."
"수정이 너는? 넌 삼촌 사랑해 줄 거야?"
"난 원래부터 완전 사랑해요"
"하하하하 좋았어 좋았어"
민국은 자신이 누워있는 침대의 양쪽에서 두 여인이 마치 상훈에게
사랑의 서약을 하는 듯한 상황을 보며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리고 세사람이라면서 왜 민국에게는 물어보지 않았을까? 남녀간의
사랑이 아니라 사람간의 사랑이라면 민국에게 묻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상훈에대한 고마움과 질투인지 분노인지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뒤섞여
정신이 없는 와중에 갑자기 상훈이 몸을 일으켰다.
"아 근데 제수씨. 식사는 좀 하셨어요?"
"아...아니요. 아직 못먹었어요. 경황이 없어서...."
"그러네 우리 어제 저녁부터 군것질만 했네..."
"제가 박닥한테 물어보니까 민국이 이제 급한 건 거의 지난 간 듯해요. 그리고
지금까지 두 분이 계셔서 제가 못 들어가게 했는데 여기 특실이라 전담 헬퍼가
있거든요. 어떠냐 민국아 내가 두 분 모시고 가서 밥한끼 사드려도 될까?"
"어? 어. 그럼그럼. 여보. 수정아 난 괜찮으니까 얼른가서 밥 먹어"
"여보 진짜 괜찮겠어요?"
"근데 나 배고프긴 해"
"괜찮다니까 수정이 배고프다잖아. 얼른 가서 밥 먹어"
"그럼...알겠어요."
"민국아 거기 빨간 버튼 언제든 누르면 헬퍼 바로 들어오니까. 그리고 내가
팁 두둑하게 줘놔서 빠릿빠릿 할 거야. 내가 너한테 물어보고 잘한다 소리
나오면 훨씬 더 많이 준다 했거든. 조금만 불편해도 무조건 불러 알았지?"
"아. 그렇게까지...알았다 고마워. 수정이 맛있는 거 사줘"
"걱정마 임마. 우리 수정이 일식 좋아하지? 삼촌이 어어엄청 맛있는데 데리고 가 줄께"
"진짜요? 아싸 개이득!"
"수정아!"
친구들 끼리나 쓰는 말을 어려운 은인 앞에서 쓰는 수정이에게 눈을 흘기면서도
연희도 기분 나쁘지 않은 표정이었다. 계속되는 경제적 어려움과 나아지지 않는 생활.
거기에 가장의 큰 사고까지 겹치며 안그래도 여린 신경이 끝간 데 없이 팽팽해져 있을
연희에게도 상훈의 밝고 자신만만한 태도와 해결 할 수 없는 일이 없을 것 같은
유능함이 숨쉴 공간을 마련해 준 듯했다.
양 다리가 절단된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에 매몰 되어있다가 상훈에게 기대어 웃음
짓는 두 여인을 보며 민국의 마음 속에는 알듯말듯한 묘함 감정이 피어올랐지만
애써 무시하며 병실을 나가려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연희는 162의 크지 않은 키에 전체적으로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이는 어쩔 수 없는지 허리에는 약간의 지방층이 보이고 있었고 팔뚝은 탄력을
잃고 찰랑거렸다. 젊었을 때 당당히 앞으로 치켜 세워졌던 유방은 유두의 방향이
아래를 가리킬 만큼 쳐졌으나 그 대신으로 부드러움은 그 어느때보다 강해져
한 번의 터치로 거대한 유방 전체에 물결이 일 정도가 되었으며 부드러워진 만큼
민감해졌는지 이따금 유두를 쥐고 강하게 흔들기만 해도 살짝 가버릴 만큼이 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살들이 탄력을 잃어 옷을 입었을 때는 마이너스가 되었으나 떡감은
배의 배가 되어 수도 없이 가졌던 몸인데도 아직도 민국의 아랫도리에 힘을
불어넣는 색스러운 육체가 되어 있었다.
특히 20대 때부터 유난히 컸던 둔부는 살이 연해지고 지방이 더해져 길을 다닐 때
하도 남자들이 쳐다보는 바람에 여린 성격 의 연희에게 큰 고민이 될 정도였다.
허나 뒷치기를 할 때 아랫도리에 와 부딪히며 출렁이는 거대한 엉덩이의 포스에
이따금 두어번 만에 사정해 핀잔을 들을 만큼 섹스에는 최적화 된 엉덩이였다.
한 마디로 20대의 생기는 잃었으나 남성을 발기시키는 여자로써의 마지막 40대
중반의 불꽃을 온 몸으로 뿜어내고 있는 연희의 몸이었다.
한 편 그 옆의 수정이는 엄마를 닮아 평균 이상의 유방과 둔부를 가지긴 했지만
막 스무 살이 된 처녀 답게 전체적으로는 매우 날씬했고 살의 탱글탱글함이
눈으로만 봐도 느껴질만큼 생기가 흘러넘쳤다.
민국은 딸을 사랑하는 아빠로써 도저히 가져서는 안 되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샤워를 하고 티셔츠만 입고 나온 딸의 반쯤 보이는 탄력적인 엉덩이와
그 밑으로 쭉 뻗어있는 날씬한 다리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가
적잖이 당황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보수적인 엄마가 아무리 주의를 주어도 왈가닥 수정이는 엄마 아빠 밖에 없는데
어떠냐며 헐벗은 채로 집안을 돌아 다니곤 했다.
이제 그 두 여인이 가족의 은인인 상훈과 함께 병실을 나가려고 한다.
나란히 뒤 돌아선 모녀의 뒷태에 민국은 새삼 그녀들의 아름다움을 깨닫는다.
그 때
모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상훈이 이야기 했다.
"걱정마 브라더. 내가 이 두사람 책임진다. 아. 책임지고 식사 대접한다고. 하하하"
민국이 병원에 있은지도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 모녀는 반전세이던 기존의 집에서 상훈의 고급 맨션으로 이사를 와 있었다.
그런 외진 동네에 둘만 있으면 위험하다는 상훈의 설득에 수정이는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넘어갔지만 연희는 염치없이 이 이상 폐를 끼칠 수 없다며 거절했다.
그러나 상훈의 계속되는 설득과 구경이나 한 번 해보라는 제안에 둘러본 맨션은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아니 거절하기 싫은 곳이었다.
입구에서부터 정복을 차려입은 보안업체 직원들이 몇 명인지 세아려야 할 만큼
여럿이서 경비를 서고 하나부터 열까지 카톡으로 관리실에 연락하면
해결 안되는 것이 없는 생활은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세탁비가 말도 안되게
비싸서 그렇지 돈을 신경쓰지만 않으면 관리실에서 메이드를 보내 세탁물을 수거해 가서
세탁과 드라이클리닝을 말끔하게 해 얇은 천으로 포장까지 해 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맨션 전체에서 풍기는 분위기. 그 분위기가 연희의 가슴을 방망이질 치게 했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상류층의 향기.....일단 맨션 안에 들어서면 귀찮을 정도로
자신에게 웃으며 고개 숙여 인사하는 스탭들.....아직 연희는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수정이는 어린 나이 탓인지 금새 적응하여 제대로 고개숙이지 않는 직원들에 대한 불쾌함을
연희에게 토로하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 때마다 연희는 수정을 나무랐지만 서서히 몸에
스며드는 사치와 향락의 쾌감을 그녀 역시 마냥 뿌리칠 수는 없었다.
통유리 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야경...빛 나는 한강....도대체 얼마가 들어 있는지 모를
무한으로 사용될 것 같은 상훈의 카드까지...단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상류층의 삶에
연희는 천천히 그러나 다시 반전세 구축 빌라로는 돌아갈 수 없을만큼 분명히 젖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