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Temptation ~ 니 아내는 그런 여자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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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진, 우도혁, 그리고 수철은 한자리에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사실 수철은 상진과 단 둘이서 술을 마시겠다고 말을 했었지만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상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고, 반드시 우사장의 배려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였기에 이 자리에 우도혁이 함께 있는 것이였다.
"음... 아무튼 말은 잘 들었네. 그런 일이라면 내가 적극 도와야지."
"... 감사합니다..."
"어차피 최과장, 당분간 한가하니 앞으로 그 일을 좀 해결해봐. 나는 자네가 외부에서 일을 하는거라고 그렇게 말을 해놓겠네."
"그래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지금 인사과 한가하잖나. 게다가 벌써 자네 아래 직원들도 장악도 했겠다... 안될거야 없지."
그렇게 그들의 모의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모의의 내용은 이러했다. 수철에 주장에 의하면 수철의 아내인 희진의 바람끼가 상당하기 때문에 다른 남자들, 특히나 같은 시험에 참가하고 있는 남자들이 희진을 타겟으로 했을 경우 너무나도 속절없이 그들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것... 예전에 수철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때 상진은 그럴리 없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상진이 희진에 대해 아는 것은 과거에 그와 관계를 가지던 시절의 희진이고, 그 이후 어떻게 변했을지는 모르긴 했지만 최소한 그때 상진이 느꼈던 희진의 성격이라면 수철의 말처럼 아무 남자에게나 몸을 허락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수철은 자신의 아내가 바람을 피고 있는 것이라고 확신을 했었고, 이 자리에 증거를 가지고 오자 상진도 말문이 막힐 수 밖에 없었다. 어떤 남자와 함께 러브호텔에서 나오고 있는 장면... 여자가 남자와 함께 러브호텔에서 나오고 있다면 그것은 거의 확실했다. 수철을 위로해주기 위해 상진이 꼭 러브호텔에서 같이 나왔다고 해서 그 남자와 관계를 가진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라고 말을 하긴 했지만... 그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의 생각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을 했었다.
우사장의 허락을 얻어 상진이 희진에게 접근해서 더욱 결정적인 증거를 잡고, 희진을 잘 타이르기로 했다. 상진은 사실 과거의 여자였던 희진과 그런 식으로 마주하는걸 원하진 않았지만 수철의 간곡한 부탁에 어쩔 수 없다고 수긍하고는 앞으로 어떻게해서 희진을 다시 수철에게 돌려놓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선 자연적인 만남을 가지는 것이 중요했다. 마침 상진의 회사에서 새로 나온 제품이 있었고, 자체적인 유통로를 가지고 있었지만 더욱 많은 매출을 위해 다른 유통사와도 계약을 맺는 중이였다. 인터넷 쇼핑몰로는 최대 규모를 가지고 있었던 희진의 쇼핑몰 또한 목표로 하는 거래대상 중 하나였기 때문에 우사장의 주도 하에 상진이 희진과의 계약을 맡기로 했다. 웬 인사과에서 그런 영업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상진의 과거 실적 중 다른 회사와의 거래가 주를 이루는 것을 보자 다른 사람들은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하긴, 수긍하지 않았어도 사장의 지시였다. 만약 그들이 반발한다고 해서 달라지는것 따위는 애시당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거래를 명목으로 희진을 만나러 가는 길. 아직 희진은 자신과 거래를 하기 위해 나가는 사람이 상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상진의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목적은 그런 것이 아니였지만 어쨋든 희진과 그는 과거에 서로 몸을 섞었던 사이였다. 그리고 그 이별 또한 자신쪽에서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웠다. 군대에 있을때부터 전역한 후까지 그녀가 상진에게 연락을 하려고 시도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외면을 한 것도 상진이였다. 공적인 만남이라고 할지라도 단 둘의 만남에서 상진은 그녀를 서스럼없이 대할 수 있을까. 그녀는 상진을 서스럼없이 대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지며 상진은 그녀와 만나기로 한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안내원에게 예약을 했다는 것을 말을 하고 희진의 이름을 말하자 종업원 한명이 그를 2층의 룸으로 안내했다. 종업원에게 그녀가 먼저 도착해있다는 것을 들은 상진은 크게 한숨을 쉬고 노크를 했다.
"최과장입니다."
"들어오세요."
밖에 온 사람이 상진이라고는 꿈에도 모르는 희진은, 그녀가 앉아있던 방으로 들어온 상진을 보고 깜짝놀랐다.
"어머, 최과장이라고 했길래 설마 했는데, 정말 오빠였네?"
"응... 하하... 오랫만이다..."
"오랫만이긴~ 전에 모임에서 봤잖아. 호호... 일단 앉아."
"응..."
막상 그녀의 얼굴을 보자 상진은 무안해졌다. 자신은 희진을 생각하면 과거에 대한 미안한 감정과 함께, 순수한 목적으로 그녀의 회사와 거래를 달성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내연남이 존재하는지를 확인하러 왔는데 그런 그를 향해 희진이 너무나도 반갑게 맞이해주는것을 보자 마음이 복잡해질 수 밖에 없었다.
"오빠~ 표정이 그게 뭐야~ 난 오빠랑 오랫만에 단 둘이 있으니까 좋은데. 흥...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알았어. 그럼 우리 일부터 해보자. 그럼 우선..."
상진의 표정이 굳어있는것을 그녀의 생각대로 오해한 희진은 곧바로 상진에게 거래에 대해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번에 새롭게 판매를 시작하는 상진의 신상품을 희진의 쇼핑몰에서 판매했을때의 가격, 마진, 수량, 기타 등등에 대해 희진은 전문가답게 상진과 이것저것 타협을 보기 시작했다. 상진은 막상 공적인 대화가 시작되자 희진의 치밀함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하긴, 이정도로 치밀하고 꼼꼼하지 않았다면 희진의 쇼핑몰이 이렇게까지 크게 성장하지도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쪽에서 보내준 메일 검토해보고 우리쪽에서 나름 타협안을 내봤는데 한번 읽어보세요. 최.과.장.님."
상진을 향해 말을 할때는 그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그의 성과 직책을 한 글자씩 일부로 또박또박 말하는 것에 상진은 괜시리 뜨끔해지는 것을 느끼며 희진으로부터 서류를 건네받았다. 확실히 그 서류에 적혀있는 내용들은 그녀의 회사에도, 상진의 회사에도 크게 나쁘지 않을만한 것들이였다. 굳이 따지자면 희진이 더 이득을 볼 수 밖에 없는 내용들이였지만 그것을 그대로 수용해도 괜찮은 이유는 상진의 회사가 대기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에 대한 대화가 마무리되자 타이밍좋게 그와 그녀가 있던 방으로 음식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마 희진이 앞서서 음식을 들일 타이밍을 지시해 두었던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정확한 타이밍에 들어올 수 없었다. 그리고 식사가 시작됨과 함께 사무적인 표정을 짓던 희진의 표정도 원래의 얼굴로 돌아갔다.
"아, 맞다. 축하 인사 늦었네. 과장으로 승진한거 축하해 오빠. 되게 빨리 승진한거라지? 오빠 상사들이 질투 많이하겠네."
"아 뭐... 그렇지... 운이 좋았어."
"운이라니, 회사에 운으로 그렇게 승진하는 사람이 어디있어. 오빠 능력이 좋은거야. 능력이."
"그렇다면야 뭐... 그런가? 하하..."
"오빠, 이것도 먹어봐. 여기 이거 되게 잘한다? 이것두 이것두..."
사적인 대화가 시작하자 희진은 마치 자신이 상진의 안사람이라도 된것처럼 밑반찬 이것저것을 챙겨주고 있었다. 결혼한 남자로써 어찌 결혼한 여자의 챙겨줌을 받는것이 마음이 편하겠냐만은, 그렇다고 그녀가 챙겨주는 것을 거절하면 오히려 희진이 그가 그녀를 의식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할것 같아서 그대로 둘 수 밖에 없었다.
"오빠, 우리 술 한잔 할래?"
"... 술...? 뭐 상관은 없는데... 잠깐 아내한테 술마시고 들어가겠다고 전화좀 해야겠네."
"호호... 의외네 오빠. 그런거 하나하나 언니한테 말할줄은 몰랐는데."
"... 그럼 그냥 안마신다?"
"에이~ 그럼 안되지. 오빠, 접대하는 자리에 술이 빠질 수 있겠어? 잊었어? 분명 오늘은 내가 갑이고 오빠가 을일텐데~"
"... 알았어 알았어. 마시면 되잖아 마시면. 아무튼 전화좀 하고 올게."
희진이 어떻게 그를 놀리더라도 상관없었다. 술을 마시게 되면 자연히 집에 늦게 들어가게 되고, 그 소식을 알려주는 것은 남편의 당연한 의무다, 라고 상진은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희진이 벨을 눌러 종업원을 불러서 술을 시키는 사이 상진은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미애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일 끝났어?"
-... 아니... 아직... 왜?
"오늘 다른 회사랑 거래하는 일때문에 술을 좀 마시게 되서... 늦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려고."
-그래...? 나도 오늘은 조금 늦을거같은데...
"그래? 많이 늦어?"
-글쎄... 모르겠어...
"알았어. 집에 들어가서 연락해. 나도 만약 내가 먼저 들어가면 연락할테니까. 알았지?"
-응... 여보... 미안...
전화를 끊으며 미안하다는 미애의 말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은 그걸 신경쓸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수철을 위해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 자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상진은 화장실 밖으로 향했다. 수철을 위한 길이, 결과적으론 자신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며...
"훗... 그나저나 오빠 많이 달라진거 알아?"
"응? 뭐가?"
"언니 말이야. 오빠가 언니 보는 눈빛보면... 많이 달라진거같아."
양주를 많이 마신것 같진 않은데 희진은 조금 취한듯 얼굴에 홍조를 띠고 있었다. 아까 전까지만해도 상진은 희진의 눈치를 보면서 그냥 평범한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희진의 페이스에 말려있었다. 비록 직접적인 말은 하지 않았지만, 희진의 얼굴에는 미애에 대한 부러움이 잔뜩 묻어있었다.
"아니면... 그땐 아니였거나..."
"희진아, 너 취했다. 그만 가자."
"아니야... 나 안취했거든! 더 마실거야!"
"취했다니까..."
"치... 오빠는 나한테 그것밖에 못해? 예전에도 그랬잖아! 항상 오빠 하고 싶은대로... 나한테는 단 한번도 그런 눈빛 보여주지 않았으면서... 지금도..."
"... 그때 얘기할거면 나 그냥 갈게."
"알았어 알았어... 미안... 그 얘기는 안할테니까 술 더줘... 응?"
"수철이가 기다리겠다."
"... 그 사람... 오늘 늦는댔어... 정 뭐하면 오빠가 나 책임지면 되지. 안그래?"
"누...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 하지마! 알았어... 어휴... 난 모른다."
순순히 자리에 앉는 상진, 하지만 희진에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면 곧바로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했다. 계속해서 자신의 술잔에 술을 채우려는 희진의 손을 잡고 양주잔 바닥만을 살짝 메울정도의 양만 따르고는 자신의 잔을 채운 후 희진과 건배를 했다. 그 조금의 술을 마시자 별안한 희진의 눈빛이 슬픔에 가득해졌다. 또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려는 것이라고 생각한 상진은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오빠... 오빤 남자잖아... 그러니까 오빠한테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
"... 뭔데? 쓸데없는거 물어볼 생각이라면..."
"쓸데없는거 아니야... 음... 그러니까... 수철씨 말이야..."
"응? 수철이??"
희진이 꺼내려는 이야기가 자신과 있었던 이야기인줄만 알았던 상진은 뜻밖에도 그녀의 입에서 수철의 이름이 나오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했다. 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수철의 부탁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자리에서 그녀에게서 나오는 이야기는, 그녀가 수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것이였다.
"... 나 요즘 수철씨가 날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
"그게 무슨 말이야."
"오빠는 알지 모르지만... 여자들한테는 직감이란게 있거든...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도... 그 남자랑 몸을 섞어도... 그게 진심인지... 그 사람이 날 진짜로 사랑하는지... 대충 알아... 예전에도... 그랬고... 후훗... 그땐 진짜 바보같았지... 아무튼... 요즘 수철씨... 이상해..."
"무... 무슨 말이야?"
"수철씨가 나랑 사는거 별로 안좋아하는거같아..."
"뭐? 그럴리가."
"아니... 확실해..."
상진은 어이가 없었다. 적어도 자신이 알고 있는 수철이라는 남자는 희진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거나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 좋아해서 문제였다. 부부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수철의 아내이기도 한 희진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기가 망설여지는것도 사실이였다. 망설이는 상진의 눈빛에서 하려는 말이 뭔지를 눈치챘는지 희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거 아니야... 난 수철씨랑 하면... 좋아... 좋은데... 수철씨는 그렇지 않은거같아..."
"... 너가 그걸 어떻게 알아? 확신해?"
"... 응..."
"기분탓이겠지."
"기분탓이 아니야... 오빠는 예전부터 그래. 여자들이 그런거 하나 눈치 못챌줄 알아?"
"....."
상진은 말문이 막혔다. 애시당초에 다짜고짜 자신의 말이 맞다고 주장하는 희진, 아니 여자를 상대로 말싸움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였다. 물론 과거에 희진이 자신의 애인... 아니, 거의 노예나 다름없던 시절이라면 말싸움으로 얼마든지 이길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런 관계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이것이 기회다 싶었다. 어?든 자신의 목적은 희진에게 내연남이 있는것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 생각해보면 그녀가 이런 말을 꺼내는 것도 그녀가 숨겨놓은 내연남과 아주 관계가 없지는 않을것 같았다. 상진은 머리속에서 퍼즐을 끼워맞추기 시작했다. 희진에게 내연남이 있다, 그것을 수철에게 들킬까봐 조마조마해하고 있다, 그래서 불안하다, 수철이 그 사실을 눈치챈것 같다, 수철이 희진에게 내색을 하진 않지만 완전히 그 기색을 숨길 수 없었고 그렇기때문에 희진은 수철에게 이질감을 느끼며 그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라고 생각한다. 상진의 머릿속에선 이런 일련의 퍼즐조각이 맞춰지고 있었다.
"희진아... 너 혹시... 다른 남자 있는거 아니야?"
"뭐? 내가? 오빠... 말 다했어?"
"아니... 그러니까 드라마 같은데에서 보면 그런거 있잖아... 왜..."
희진의 정색한 표정에 당황한 나머지 상진은 궁색한 변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유야 어쨋건간에, 관계가 어떻게 되건간에 여자에게 그런 말을 꺼내는 것이 굉장히 실례라는 것이 상식이였기 때문이였다. 한창 화를 내던 희진은 술을 벌컥 들이키고서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한숨을 쉬면서 말을 했다.
"그래... 오빠가 그런 얘기 꺼내니까 나도 솔직히 얘기하는데... 일단은 지금 다른 남자 만나는건 없어. 그건 사실이야..."
"진짜지?"
"... 오빠 표정보니까 내가 진짜라고 말해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할거같은데... 그건 뭐 알아서 생각해..."
"... 미안하다... 그런 얘기 해서..."
"근데.. 사실은... 수철씨랑 결혼하고나서까지도 나 한동안은 오빠 못잊었어..."
"... 희... 희진아..."
"알아! 안다고!! 나도... 나도... 그러기 싫었단말이야... 수철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도 잘 알아. 나도 수철씨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었어. 하지만 생각나는걸 어떻게해..."
"... 그렇다고..."
"나도 그렇게 바보는 아니야... 수철씨한테 티낸적은 없어... 그리고 그건 이미 예전 일이야... 그때... 잠깐 길가다가 오빠랑 언니 같이 있는거 마주쳤을때 있지? 그날만이였어. 그날만은 진짜 오빠 생각 많이 나더라... 오빠 옆에 있던 언니한테도 질투 많이 느꼇고... 그래도.. 그래도!! 그거 알아? 나 그래도 그날 이후로 완전히 오빠에 대한 미련 접을 수 있었단말이야!"
"... 미안하다..."
"흑흑... 내가 왜 다른 남자를 생각하겠어... 다른 남자를 생각해도... 오빠가 생각나지 다른 남자를 생각하진 않아..."
상진은 괜한걸 물어봤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에게 너무나도 서럽게 눈물을 흘리는 희진을 보자 가슴이 아파왔다. 결국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것은 상진, 자신이였다.
미애는 불안했다. 오늘따라 장현우는 그녀에게 어떠한 것도 요구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의 복장도 그녀가 입고 온 그대로였다. 장현우가 그녀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너무나도 정상적인 회사의 일, 간단한 서류정리 같은 것들과 이메일로 받은 파일들을 정리하는 것들을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녀의 불안감은 더더욱 커저면 갔다.
하던 작업을 마무리짓고 미애는 살금살금 자신의 개인실 문에 귀를 대고 장현우가 뭘 하는지를 들으려고 했다. 하지만 들려오는건 너무나도 평범한 업무소리, 주로 회사의 다른 임원들에게 업무에 대한 보고를 받는 것이나 지시사항 같은 아주 평범한 것들뿐이였다. 그렇게 귀를 대고있어봤자 딱히 달라질건 없을것이라는 생각에 미애는 한숨을 쉬고 다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장현우가 그녀를 가만히 냅두고 있다고 해도 그가 그녀에게 지사한 것, 그의 앞에서 자위를 하는 모습을 보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것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미애는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자위라는 것을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방법론같은 것때문에 고민하는 것이 아니였다. 차라리 장현우의 정액을 받아마시는것이 낫다고 생각될 정도로, 자위를 하는 모습을 그에게 보이는 것은 치욕적인 일이였다.
게다가 그녀의 개인실 구석에 놓여있는 박스에 담겨진 이상한 물건들... 그 물건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그 물건들이 무엇을 하는데에 쓰는 물건인지는 알고 있었다. 바로 장현우가 보여준 영상속에서 그의 아내이기도 한 이은영의 자위영상에서 나온 물건이였기 때문이였다. 게다가 아직 장현우는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하고 있진 않지만, 그가 그녀에게 보여준 수많은 파일들중에는 이은영의 언니이자 성찬현 교수의 아내이기도 한 이은주, 그 두 자매의 레즈영상까지 있었기에 그가 결국은 그녀에게도 그 자매들과의 관계를 가질 것을 요구하리라는 것을 짐작은 하고 있었다. 아니, 짐작이라기보다는 그녀 스스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봤을때의 일이였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갑작스럽게 그녀가 있는 방문이 열렸고, 잠깐 생각에 잠겨있던 미애는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장현우에게 들킨거처럼 화들짝놀라며 그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비서, 뭐해?"
"네? 아... 그게..."
"싱겁긴, 오늘 일 끝나고 저녁이나 같이 먹지."
"... 그건... 제안인가요? 아니면 명령인가요?"
"허허, 섭섭하구만. 나는 다른 뜻이 없는데말이야...."
그녀의 걱정과는 달리 불순한 의도는 없어보이는 장현우의 말투였지만, 그래도 방심은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에게는 장현우와 함께 저녁을 먹어야 할 이유같은건 없었다. 애시당초에 출근을 해서 그의 명령에 따르는 것도 회사 안에서의 사장과 직원 관계로써의 계약이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물론, 그가 끝까지 명령조로 그녀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말을 했다면 그녀는 따를 수 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을 그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였다.
"... 집에 가서 남편 저녁해줘야해요..."
"그래? 음... 이거 아쉬운데... 혹시라도 연락해보지그래? 응? 그리고말이야... 출근한지 얼마가됬는데 회식 한번 없다는것도 말이 안되지않나."
"... 일단 연락은 해볼게요..."
미애는 상진을 구실삼아 장현우와의 저녁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시간을 보니 상진도 슬슬 퇴근준비를 할 시간인것 같았기에 전하를 해도 괜찮을것 같았다. 저장된 전화번호 목록에서 상진의 이름을 누른 후 통화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통화르 하려고 했던 상진으로부터의 연락이였다...
"이집이 이걸 참 잘해. 이것도 먹어봐."
"... 저 애 아니에요. 제가 알아서 먹을게요."
"사람 하고는, 이런데에서까지 쌀쌀맞게 대할 필요는 없잖아? 안그래?"
"... 사장님께서 저한테 지금까지 한 짓을..."
"어이어이, 그런 말을 여기서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미애는 기가막힐 노릇이였다. 상진이 밖에서 저녁을 먹고 온다는 말을 한 탓에 장현우의 저녁을 함께 먹자는 제안을 거절할 명분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따라왔을 뿐이였다. 하지만 마치 자신이 남편이라도 되는듯 이것저것 챙겨주는 그의 모습은 정말 파렴치하다는 생각 말고는 들지 않을 정도였다.
"술 한잔 하겠나?"
"...... 저 술 못해요..."
"그래도 모처럼 이렇게 자리를 만들었는데 술 한잔정도는 괜찮겠지. 안그래?"
"... 또 무슨 이상한 짓을..."
"뭐, 싫다면 굳이 안마셔도 되. 잔만 부딪쳐주는걸로 충분하지. 그럼 보자... 뭘 시킬까..."
장현우는 잠깐 고민을 하더니 종업원을 불러 뭔가를 주문했다. 처음에 이곳에 들어왔을때부터 너무나도 친근하게 종업원에게 말을 걸었던 것과 메뉴판을 볼 필요도 없이 주문을 하는 것을 본 미애는 장현우가 모르긴 몰라도 이곳을 꽤나 자주 왔다고 생각했다. 아마 지금 시키는 술도 평소에 자주 마셨던 술일 것이다.
다행인 것은 그가 그녀에게 강제로 술을 권하지 않는다고 말을 했다는 것이였다. 미애는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지만, 술이 나오고 난 후에도 진짜로 그는 그녀에게 술을 권하지 않았다.
"음... 좋군... 술맛이 참 좋아."
"..."
"정비서는 술 안좋아해?"
"... 좋아하질 않으니까 안마시고, 안마시다보니까 못마시는거죠..."
"그렇군... 하긴... 그런 사람들 있지. 술이 좋아서 술을 마시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
"사회생활이란게 그런거지. 하고 싶은것만 하면서 살 수 없는거란말이야 이게... 사장이라는 직책도 그래.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사장이니까 우리 회사의 일을 내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뭐 하려고 하면 이건 이렇다느니... 불만만 가진 놈들만 가득하고, 그렇다고 서로 자기들이 맞다고 싸우기나 하고... 술도 마찬가지지. 내가 술을 마시기 싫다고 해서 마실 수 없는게 아니란거야. 어쩔 수 없이 마셔야하는 자리가 있고, 취하지도 않았는데 취한척 해줘야 할 때도 있는거고... 아 참참... 하하. 내가 정비서를 앞에 두고 헛소리를 했군... 자, 짠이나 해줘."
자신의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장현우의 모습이 어딘지모르게 측은해보인 것도 사실이였다. 하지만 갑작스레 이런 말을 꺼내는 것도 그녀의 마음을 약하게 하려는 수작일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미애는 더욱 긴장하며 장현우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나저나, 부부생활은 어때? 최과장은 집에서 잘해줘?"
"갑자기 그건 왜..."
"아니, 그렇잖아. 자네는 아는지 모르지만 최과장이 밖에서는 꽤 잘 노는 타입이라서 말이지. 왜, 얼굴도 잘생겼잫아. 모르긴 몰라도 최과장 좋다는 여자들 수두룩할거야 아마. 게다가 술도 잘마시지, 술자리에서 분위기도 잘 이끌지... 그러다보니 최과장이 그런 실수를 저지른거일지도 모르지..."
"그 얘긴..."
"어때? 솔직히 말해봐. 최과장을 원망해본적 단 한번도 없어? 최과장이 그러지만 않았다면 자네가 굳이 이렇게 나한테 시달릴 필요도 없는 일이였잖아? 안그래?"
"... 원망해본적 없어요..."
"후후... 부럽구만... 그토록 자신을 믿어주는 아내가 있는 최과장도 부럽고, 그렇게 최과장을 믿을 수 있는 정비서도 부럽고..."
"......"
"궁금하지 않아? 왜 가정이 있는 내가, 아내가 있는 내가, 정비서한테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하는건지?"
"......"
"내 아내는 말이야... 불임이야..."
갑작스러운 고백에 가까운 장현우의 말들에 미애는 갑자기 그가 왜 그런 말을 꺼내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굳이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장현우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불임이 된 이유는... 젊을때 사귄 어떤 남자 때문이지. 물론 그 남자의 잘못이라고만은 할 수 없어. 미련할만큼 그 남자를 좋아했던 내 아내의 잘못이지. 관계를 가지다가 자궁 입구쪽에 살짝 상처가 생겼는데, 그걸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보니까 그 상처때문에 자궁벽에 손상을 입혔고, 그래서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이 되버렸어."
"... 그 남자분이 밉겠네요..."
"처음엔, 처음에 그랬지. 하지만 뭐... 지내다보니 이거도 나름 괜찮더군. 다른 남자랑 섹스를 하더라도 그 남자의 애를 가질 일은 없으니까. 하하... 예를들어 우리 형님이라든가."
"... 설마..."
"후후... 그래. 스와핑이라고 들어봤어? 형님, 성교수님과 나는 서로의 아내를 바꿔서 관계를 가지는 그런 관계야. 몰랐지?"
충격이였다. 스와핑이라는 것을 말로는 들어봤지만 그것을 실제로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미애였기에 그 충격은 클 수 밖에 없었다.
"뭐, 아내도 그런 식으로 나에 대한 미안함을 표시하는것일지도 모르지. 그러다보니 그런 생각을 하게됐어. 어차피 섹스란건 그냥 행위일 뿐이잖아? 최과장이 실수를 한 것 말이야... 뭐 그럴 수 있어. 사회생활하다보면 다른 여자랑 잘수도 있는거고, 왜 그런말 있잖아.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다고. 가끔 간식도 먹고 해야지. 최과장의 경우는 단지 간식을 먹은것 뿐이야. 대신, 먹고나서 뒷정리가 깔끔하지 않았던거지. 그래서 내가 큰 피해를 본게 사실이고. 난 그 피해에 대한 보상을 어떤 식으로든 받아야 하는거고. 이해해?"
"... 미쳤군요..."
"하하하하. 뭐 그래. 미쳤을지도 몰라. 정비서, 자네가 보기에는 난 미친놈일지도 몰라. 뭐, 하지만 내가 정비서한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내 제안을 받아들인건 다름아닌 정비서, 자네야. 최과장이 감옥을 가는 것... 뭐 어떻게보면 그게 순리대로, 겠지. 그게 싫어서 자네가 내 제안을 받아들인것 뿐이잖아? 안그래?"
"....."
"왜? 후회되나? 언제든지 말해. 뭐... 후후... 그나저나 오늘 최과장 밖에서 거래처 사람 만났다고 했지? 또 접대를 하겠군. 접대를 하다보면 다른 여자를 만나겠지. 뭐... 나도 최과장이 그 여자와 바람이 난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 비지니스의 일종이지. 비니지스."
"... 도대체 하고 싶은 얘기가 뭐죠?"
"쉽게 생각하라고. 하하... 게다가... 솔직히 말해봐. 그 이후로 최과장과의 잠자리가 더욱 뜨거워진것도 사실이잖아? 안그래?"
미애는 화가 나서 더이상 장현우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장현우가 먼저 몸을 일으켰다.
"아~ 오늘은 덕분에 술을 참 맛있게 마셨어. 고마워. 후후... 회사에서 보자구. 참, 공부는 잘 해뒀겠지? 하하하... 그럼 이만."
그랬다. 아무리 자신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안쓰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던 장현우라고 할지라도, 결국은 그 비열한 웃음이 장현우의 본질에 가까웠던 것이였다. 홀로 방에 남겨진 미애는 한번도 마시지 않은 자신의 술잔을 바라보고는 단숨에 들이켰다. 평소대로라면 그 독한 술을 마시면 온갖 인상을 지푸리는 미애였지만, 오늘따라 술을 마시는 느낌이 나질 않았다...
먼저 계산하고 홀연이 떠나버린 장현우... 미애는 시간도 늦고 해서 택시를 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큰길쪽으로 걷고 있었다.
바람이 적당히 불어오며 그녀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장현우의 이야기, 정말로 섹스는 단순히 행위일 뿐일까. 실제로 그녀가 장현우에게 그런 애무를 했고, 그에게 자신의 몸을 허락하며 이곳저곳을 만져진다고 할지라도 단언코 말할 수 있는것은,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남편인 최상진 단 하나라는 것이였다. 장현우, 그리고 성찬현 같은 사람에게 사랑 비슷한 감정도 느끼질 못했다. 그렇다면 이대로 괜찮은 걸까...
게다가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남자는 다른 여자를 푸을 때도 많다는 말... 그것이 사실일까? 그렇다면 그의 남편인 상진은 다른 여자에게 다른 감정을 가져본 적이 단 한번도 없을까? 없을 것이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미애, 단 한 사람 뿐일 것이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바람일뿐, 실제는 어떨지 몰랐다.
그리고 한번도 상진을 원망해본 적이 없냐는 장현우의 말... 그것이 계속해서 그녀의 귓가에 맴돌았다. 정말로 그녀는 상진을 원망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상진만 아니였다면 그런 치욕스러운 일들을 당할 필요도 없었을텐데... 정말로 그녀는 상진을 원망하지 않는 것일까? 왠지모르게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하아... 내가 이러면 안되는데... 미쳤지... 그냥 집으로 간다고 할걸 그랬어...'
그녀는 장현우와 저녁을 먹은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장현우와 저녁을 먹지 않았다면 이런 혼란을 겪지도 않을 것이 분명했다. 드디어 큰 길에 도착한 미애는 택시가 잘 잡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익숙한 외모를 가진 남자와 여자를 만났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남편인 상진과 희진이였다.
"여... 여보...!"
"미애야..."
잔뜩 취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희진을 부축하고 있는 상진의 모습은 여과없이 그대로 미애의 눈에 비쳐졌다... 그 모습은 단순한 부축이였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희진이 상진의 품에 안겨있는 모양새였다....
~
"하악... 하악... 엉덩이가... 엉덩이가 뜨거워요... 하악... 하악... 죽여주세요... 하악..."
"크으... 씨발년... 이년 항문 진짜 죽여주네. 개보지년. 시발년아. 너 몇명한테 항문 대주고 다녔어? 엉?"
"하악... 하악... 몰라요... 몰라요... 하악... 하악..."
어두운 공간에서 한 남자가 장현우의 아내인 이은영과 질펀한 정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것도 정상적인 앞이 아닌, 뒷구멍을 이용해서... 그리고 그 두 남녀의 모습을 성찬현이 지켜보고 있었다.
"크크... 어떤가? 마음에 드는가?"
"큭... 죽이는군... 그러니까 내가 원할때마다 이년 좆물받이로 써도 된다 이거지?"
"그 말대로네. 후후... 대신 그 약속만 지켜준다면...."
"아? 그거? 뭐... 나쁘진 않은데... 뭐 내 쪽에서도 보험을 들어뒀고 말이야. 그나저나 그 물건은 구해왔어?"
"물론. 그리고 이 여자네."
그 남자와 이은주는 자세를 바꿔서 여성상위로 이은주가 그 남자의 몸 위에 올라타고는 다시 그 남자의 물건을 그녀의 항문에 쑤셔넣고 스스로 허리를 흔들어댔다. 그 모습을 감상하면서 동시에 그 남자는 성찬현 교수에게서 투명한 액이 담긴 통과 함께 한장의 사진을 확인했다. 그 사진속의 여자는... 희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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