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14)

블러디 아이 Bloody eye - 7 -

"...!"

반짝 소녀의 눈이 떠졌다.

거의 습관처럼 어지간한 일이 있지 않고는 이른 아침에 눈을 뜨고 정리정돈부터 시작하는게

그녀의 하루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달랐다.

몸 어딘가 찌뿌드 하고 불편한 느낌이 단 한점도 없었다.

온몸 가득 상쾌한 느낌...가볍게 땀을 흘리고 찬 음료를 먹은 다음처럼 약간은 나른하지만

몸에 쌓였던 불쾌한 느낌이 싹 씻겨진 느낌이다.

"...?"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던 그녀는 어제 스승 휘리나가 7서클을 돌파한 기념으로

조촐한 잔치를 벌였던 것을 기억해 냈다.

"......"

분명 아직 어질러져 있을 것이다...

에볼린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 으응...흠냐..."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과 함께 뭉클한 촉감이 손에 느껴졌다.

누군가 자신의 품 안에 파고드는것 역시 느껴졌다.

"...!"

화들짝 놀라 옆을 바라 보았다.

에볼린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시원한 녹음이 우거진 숲을 보는듯한 녹색 머릿결...요사스러우면서 성숙한 아름다움을

물씬 풍기는 얼굴...눈 앞이 캄캄했다.

덜덜 떨리는 얼굴로 시선이 향한곳...무르익은 여체...가슴에서 가는허리 그리고, 늘씬한

다리...파들파들 지켜보던 에볼린의 눈이 어느 순간 경악으로 커졌다.

침대 시트에 흠뻑 묻어있는 검붉은 얼룩...그 흔적은 카나엘의 허벅지 께에도 있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자신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알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대로라면 최소한 가벼운 잠옷 정도는 걸쳤을 터였다.

주위를 둘러보자 침대 아래 아무렇게나 팽개쳐진 카나엘의 가운과 자신의 옷가지들이

보였다.

에볼린은 결국 전날 있었던 일을 기억해낼수 있었다.

잠결에 목마름에 눈을 떠 물을 마시고 화장실 까지 다녀오다 열려진 문틈으로 보게된 스승과

카나엘의 관계...자신도 모르게 하게된 자위행위...그리고...이어 벌어진 카나엘과의 관계...

둘은 달이 지고 멀리 닭 울음이 들릴때 까지 침대에서 뒤엉켰었다.

처음엔 카나엘의 주도였지만 나중에는 에볼린이 카나엘을 마구 유린하는 식으로 진행

되었다.

침대에서 도망치려는 카나엘을 붙잡고 짐승이 교미하듯 뒤쪽에서 카나엘을 범했었다.

격정적 관계의 증거로 따끔따끔 에볼린의 어깨와 등 언저리 허리께에 손톱 자국과 이빨

자국이 아직 남아 있었다.

카나엘 역시 전신에 멍 자국과 키스마크가 군데군데 보였다.

흡사 벼락을 맞은듯한 절망감과 충격이 느껴졌다.

눈 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묘한 죄책감과 절망감...에볼린은 숨조차 재대로 쉬기 힘들었다.

파들파들 전신이 두려움으로 떨렸다.

" 으음..."

가벼운 웅얼거림과 함께 먹이를 잔뜩먹고 늘어진 암코양이 같은 표정의 카나엘이 몸을 뒤척였다.

"...!"

에볼린의 눈이 찟어질듯 커졌다.

머리끝이 쭈뼛 서는듯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묘한 떨림과 충만감...이 아름다운 여성과 관계한 일이 주마등처럼 머리속에 떠올랐다.

슬쩍 손을 내밀어 카나엘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에볼린은 어렸을 때에 부모님으로 부터 선물받은 인형을 안았을 때의 그 진한 충만감이

되살아나는 기분을 맛보았다.

하지만 그만큼 두려움도 컷다.

혼돈의 존재와 합일된 양성체의 몸으로 카나엘을 범하고 말았다는 것...혼돈의 존재는

악마는 아니었지만 그에 버금가는 두려움을 주는 존재였다.

그런 존재와 합일한 이상 에볼린 자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경원시 되는 존재이며 아마도

카나엘이나 자신의 스승 역시 그러 하리라...

자신도 모르게 툭툭 눈가에 고인 눈물이 흘러 카나엘의 얼굴에 떨어졌다.

흠칫 놀라 얼굴을 만져보니 온통 눈물 투성이다.

" 으응..."

그리고...작은 신음소리와 함께 살짝 뒤척이던 카나엘의 긴 속눈썹이 스르르 열리며 마치

초록색 보석같은 그 눈망울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것은 놀람이었고 경의였다.

깊고 푸른 바다물을 보는듯한...흡사 전설에 나오는 요정이 가진다는 아름다운 눈동자 였다.

" 아..."

에볼린은 나직히 탄성을 질렀다.

에볼린의 스승인 휘리나도 이런 깊고 그윽한 눈동자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물론 휘리나는 사악한 마력을 꿰뚫어 본다는 아름다운 황금안(黃金眼)을 소유하고 있었다.

거기에 짙은색 금발...흡사 순도높은 금을 녹여 빚은듯한 머릿결과 눈동자 거기에 어울리는

화사한 피부를 지녔지만 다소 접근하기 어려운 쌀쌀맞은데가 있었는데, 그에비해 카나엘은

비교적 부담감 없는 덜렁거리는 성격에 요사스러운 느낌이긴 하지만 훨씬 친근한데가

있었다.

때문에 에볼린은 어떤때는 스승을 독점하는 그녀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면서도 남몰래

카나엘을 훔쳐보며 가슴을 두근거리기도 했다.

더구나 카나엘은 늘씬하고 큰 키에 몸매마저도 따라올수 없는 글래머가 아니던가...

휘리나와 더불어 에볼린의 또 다른 마도학의 스승이기도 한 그녀는 거리감있게 자신을

대하는 휘리나와는 달리 마음이 흡족해지면 와락 에볼린을 안아주기도 하는등 좀더 친밀한

느낌을 주는 존재였다.

특히 스킨쉽 을즐기는 카나엘에게 안겨질때 마다 에볼린은 따스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지금은 안계시는 그녀의 엄마를 떠올리고는 했다.

투툭 또 한방울의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 으응?"

순간 흡사 환상처럼 길고 아름다운 속눈썹이 조용히 열리고 푸른 바다와 같은 눈동자가 반짝이며 드러났다.

"......!"

에볼린은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한채로 그 몸서리쳐지게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며 몸을

떨어야 했다.

호기심 많은 고양이 같은 인상을 한 카나엘이 눈동자를 데구르 굴리며 에볼린을 올려다

보다가 빙긋 미소를 짓는다.

" 후훗...잘잤니? 어쨋든 좋은아침? 어머...눈물? 왜 우니?"

에볼린은 그런 그녀를 부르르 몸을 가늘게 떨며 내려보다가 눈 가를 훔치며 주춤주춤 일어나

뒷걸음질 쳤다.

" 카...카나엘님..."

심장이 싸늘하게 식는 듯한 느낌이었다.

무언가 두려운 느낌과 죄책감이 와락 밀려 들었다

카나엘은 그런 에볼린에게 손을 뻗으며 상체를 약간 일으키다가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아앗!

하는 신음을 내며 주저 앉았다.

아랫배에 손을 가져다 대며 상당히 고통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었다.

" 카...카나엘...님?"

에볼린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안절부절 했다.

" 나쁜...계집애...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도망칠 생각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에볼린은 멍 하니 정신이 나간 표정이 되었다.

아무 생각조차 할수 없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며 가슴의 고동이 빨라지는 느낌이었다.

카나엘은 한참 아랫배를 문지르며 괴로워하다 앙칼지게 쏘아 붙였다.

" 이리 못와? 아파서 움직일수도 없쟎아! 치유주문이라도 걸어주고 가서 따뜻한 허브차

라도 내 와야 할거 아니야!"

그제서야 퍼뜩 정신을 차리는 에볼린 이었다.

" 아..아앗!...네...네네!"

뿌연 안개속에 홀로 서 있는듯 촛점 잡히지 않는 눈으로 멍하니 서 있던 그녀가 허둥지둥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정신을 덜 차린듯 허둥대는것은 여전했다.

통증을 줄여주고 내상을 먿게하는 주문을 써야하는 상태에서 해독이나 상태이상에 쓰는

주문을 외우는 바람에 몇차례나 카나엘에게 꾸지람을 받아야 했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멍한 느낌은 이후에도 몇차례나 에볼린에게 실수를 연발하게

했다.

그릇을 떨어뜨려 깨거나 주전자에 허브가 아닌 다른것을 집어넣는등 엉망진창이었다.

한참을 허둥대고 나서야 에볼린은 재대로 된 허브티를 카나엘에게 내 올수 있었다.

몇차례나 팔이 덜덜 떨려 받침 접시를 떨어뜨릴뻔 하며 간신히 가지고온 찻찬에 연초록빛

액체가 쪼르르 따라졌다.

덜덜 떨리는 손길로 카나엘에게 내밀었다.

" 흐음..."

카나엘은 조용히 향을 음미하며 조금씩 차를 들이켰다.

생리통 등을 진정시키고 정신안정 효과가 있는 종류의 허브를 넣은 것이어선지 씁쓰레 한

맛이 났지만 몸이 개운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고 탁하고 찻잔 놓는 소리가 들렸다.

에볼린은 움찔 몸을 떨었다.

" 한잔 더..."

" 네?...네!..."

에볼린은 카나엘이 당당하게 내미는 찻잔에 얼른 차를 따랐다.

" 후아...좀 살것 같네...아까는 아파서 몸을 움직이기가...아앗!"

부르르 몸을 떨며 기지개를 펴는 카나엘이 다시 아랫배를 감싸며 얼굴을 찡그렸다.

에볼린은 안절부절하며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때 갑자기 찡그린 얼굴로 아랫배를 문지르던 카나엘의 눈이 그녀를 향했다.

새끼를 가진 어미 고양이를 보는듯 앙칼진 시선이었다.

" 에볼린..."

" 네...네네?"

에볼린은 화들짝 놀라며 바짝 얼어붙었다.

카나엘은 그런 소녀를 조금 못미덥다는듯 노려보다 하아 하고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 저런 둔하고 얼띵한 애를 믿어야 하나...하는수 없쟎아...하아아..."

카나엘은 가볍게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잔잔한 눈으로 다시 에볼린을 응시했다.

" 에볼린!...너!...나...책임져!..."

"...... 네...네에?"

무심결에 대답하던 에볼린의 눈이 부릅떠졌다.

흡사 뒷머리를 커다란 해머로 얻어맞은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멀리 밝아오는 창가로 희미한 아침놀이 새어들고 있었다.

" 짹...짹짹..."

밝은 햇빛과 함께 지저귀는 새 소리가 함께 들렸다.

에볼린의 얼굴에서 싸아악 핏기 가시는 소리가 들리는것 같았다.

' 책임져...책임져...책임져...'

메아리처럼 카나엘의 목소리가 머리 속에서 환청처럼 울려 퍼졌다.

하지만 정작 카나엘은 침대에 앉은채 자신에게서 빼앗듯 차주전자를 낚아챈 후, 한잔을

손수 따라 홀짝이고 있는 중이다.

두어잔을 연속해서 쭈욱 들이킨 카나엘이 조금 살겠다는 표정으로 하아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수수하긴 하지만 소뼈와 백토를 같이 배합해 심혈을 기해 구워낸 다기 셋트가 서로 부딛치며

딸깍 거리는 소리를 냈다.

" 카...카나엘...님?"

에볼린이 벙 찐 얼굴로 카나엘에게 버벅 거렸다.

카나엘의 눈초리가 조금 사나워졌다.

" 에볼린...감히 이 나를...아무리 새로 얻은 몸이지만 내 순결을 가져가놓고 거기다 네게

마법을 전수한 스승이기도 한 나를...내팽겨치겠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 카나엘...님..."

에볼린의 얼굴이 화륵 붉어졌다.

드러난 침대 시트에 남겨진 검붉은 얼룩...거기다 시작이 어찌되었든 분명 그녀의 순결을

빼앗은것은 에볼린 자신 이었다.

주저하는 카나엘의 처녀지를 꿰뚫은 그 야릇한 기억과 감촉이 떠 오른다.

무언가 파들거리며 저항하는 그 애처로운 신천지를 살짝 힘주어 터뜨리며 돌파할때의

짜릿한 느낌과 이어 느껴지는 카나엘의 그 촉촉하고 쫀득거리는 속살이 휘감아 조여들어

쥐어짜는 진한 쾌감...거기에 무르녹은 여체의 감각과 특히나 인상적인 커다랗고 탄력 넘치는

가슴...

에볼린은 자기도 모르게 꼴깍 침을 삼키며 카나엘의 드러난 목덜미 부분을 주시했다.

카나엘의 눈초리가 날카롭게 빛나기 시작했다.

“어머나? 얘좀봐...나참 기가 막혀서...어제 그렇게 뒹굴고도 모자란다는 거니? 쿡쿡...

참으렴...지금은 안돼...난 지금 몸이 엉망이야...며칠 지난 뒤 몸이 회복되면 원하는 대로

하게 해 줄테니 지금은 참도록 하고...그보다...“

카나엘은 침대에서 일어나기 위해 살짝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아찔한 통증과 함께 와당탕 바닥을 구르듯 주저앉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에볼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흐으윽...아파...젠장!...너무해...걸을수도 없쟎아! 그건 그렇고...에볼린! 그렇게

얼빠진 모습으로 있을래? 띨방한 휘리나 고 계집애한테 이번 일을 몽땅 알리고

싶은거니?...이리와서 얼른 부축하지 못해?"

" 앗! 네! "

에볼린은 화들짝 놀라며 카나엘에게 다가섰다.

카나엘은 발을 땅에 조금이라도 디디면 매우 괴로워하며 금방이라도 무너질듯 위태위태

하게 일어섰다.

결국 에볼린은 카나엘을 안아 들어야했다.

투덜대면서도 살며시 안겨든 카나엘의 몸은 매우 부드럽고 가벼웠다.

에볼린은 묘한 느낌과 함께 아랫도리에서 야릇한 열기를 느껴야 했다.

꿀꺽 침을 삼키며 에볼린은 카나엘의 방까지 그녀를 안아들고 가서는 문을 열었다.

"......"

스승 휘리나와는 다른 적당히 즐길줄 아는 그녀였다.

때문에 카나엘의 방은 기품이 있으면서 자신이나 휘리나의 방과는 달리 화사한 느낌으로

꾸며져 있었다.

잘 시들지 않게 보존마법이 걸린 물그릇에 화사한 꽃들이 솜씨있게 배열되어 꼿혀있었다.

" 너 뭐하고 있는거야? 빨랑 침대에 내려놓고 입을거 안가져와?"

" 네..."

카나엘의 칭얼거림에 에볼린은 그녀를 조심스레 화사한 분위기의 침대에 내려놓았다.

"..."

화사한 침대 시트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여체가 눈 앞에서 출렁 거렸다.

꼴각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탐나는 풍만한 여체였다.

거기다 어젯밤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뜨거우면서도 부드럽게 휘감기는 여체...길고 치근거리는 저 다리에 허리가 휘감기자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쾌감이 느껴지며 뼈가 없는듯한 나신이 안겨왔었다.

숨막힐듯 부드러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얼굴을 부비며 정신없이 몸을 움직이다 보면 하늘에

높이 솟았다 떨어지는듯 아득한 절정감을 느끼며 터져나오는 아랫도리의 느낌...

자꾸만 시선이 그녀의 아름다운 여체...특히 그 커다란 가슴에 향했다.

카나엘이 에볼린의 시선을 느끼며 자신의 두 팔로 가슴을 가렸다.

" 에.볼.린! 너 지난밤에 날 그렇게 괴롭혀 놓고도...하여간 곤란한 애라니까...몸이 좀 회복

되면 원하는 대로 해 주겠지만 지금은 안돼! 나 지금 엉망이라구! 옷장에서 입을 옷이나

내와!"

에볼린은 덜덜 떨리는 몸을 억지로 가누며 카나엘의 옷장으로 가서 이것저것 옷들을 챙겨

내왔다.

" 에.볼.린! 너 정말! 속옷이 색깔이 안맞잖아! 재대로 못해! 그리고, 이건 소환식을 치를때나

입는 칙칙한 로브쟎아! 내가 넌줄아니? 일상적으로 입는걸로 다시 가져왓!"

풀썩 에볼린에게 다시 옷가지들이 내던져졌다.

" 아앗! 죄...죄송합니다..."

에볼린은 허둥지둥 카나엘이 던진 옷을 챙겨들고 몸을 움직였다.

헐레벌떡 옷장을 뒤지는 에볼린을 보며 카나엘이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 훗훗...저애...귀여워..."

화사한 수선화가 피어있는 화분이 놓여진 창가에는 어느새 아침해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웃고 있었다.

도무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바빳다.

카나엘의 옷가지를 챙겨준 후, 지난밤의 흔적을 말끔히 치웠다.

카나엘과 관계한 증거가 적나라하게 남아있는 시트며 옷가지들은 카나엘의 지시에 따라

뒤뜰의 소각장에서 모두 태워 없앴다.

그리고, 조촐하게 파티를 벌인 뒤처리 역시 에볼린의 몫이었다.

다행인지 에볼린의 스승 휘리나는 해가 중천에 뜨도록 일어나지 않았다.

몇차례 깨울까도 생각했지만 바쁘게 이것저것 일하다 보니 어느덧 점심때가 다 되도록

그러지 못했다.

카나엘은 에볼린이 가져다 준 옷가지들을 걸치고 잠시 침대에서 휴식을 취한 후에 거실에

내려와 소파에 앉아 두꺼운 마도서를 읽으며 손수 끓인 허브차를 연신 홀짝이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산뜻한 모습이었다.

카나엘은 바람과 물의 정령을 불러 몸을 깨끗이 닦고 물기를 말린 후, 어느틈에 평상시처럼

약간의 화장까지 한 뒤였다.

에볼린은 작게 고개를 도리질치며 감탄의 표정을 지어야 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휘리나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대충 가운을 걸친채 거실로 내려온 것은 해가

중천에 뜰 무렵에서 였다.

휘리나 걸을 때 마다 어딘가 불편한듯 조심스레 다리를 움직이며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

했다.

" 지금 일어났어? 불편하면 좀더 누워있지 그래?"

"......"

카나엘은 능청스레 휘리나에게 인사를 했고 휘리나는 건성으로 그녀의 인사를 받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잠시 후, 에볼린이 커다란 나무쟁반에 음식을 차려왔다.

카나엘이 눈을 반짝이며 탄성을 지른다.

" 와우!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네...맛있겠는데?"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조금은 화려한 식탁이었다.

주방의 한켠에 마련해둔 마법으로 조절되는 냉동창고에 보관했던 꿩과 사슴고기를 꺼내

스프를 끓였고 계란과 호밀빵을 곁들였다.

따로 요리용으로 보관했던 신선한 허브를 드레싱해 곁들였고, 송어에 소스를 얹어 오븐에

구워 뼈까지 부드럽게 만든 요리가 올려졌다.

" 후후후...행복해...냠냠..."

"......"

식사가 끝나고 에볼린은 다 먹은 식기를 챙겨 설겆이 통에 담고는 가볍게 한숨을 내 쉬었다.

한결 가뿐해진 느낌이었지만 머리속이 온통 헝클어진 느낌이었다.

한참 멍하니 설겆이통을 바라보고 있던 에볼린은 고개를 저으며 팔을 걷어 부쳤다.

어쨋든 할 일은 해야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변함없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언제 그런일이 있었냐는듯 평온하면서 소란스러운 일상...

두 스승의 지도로 마도학을 연구하고 스승들의 시중을 들면서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카나엘은 '그랜드 마스터' 카이닝 데 아시타오스의 저서를 연구하며 시간을 보냈고,

휘리나는 카이닝이 남긴 마도학 체계대로 7서클의 마도력을 완성하는데 주력했다.

간혹 카나엘이 휘리나를 집적거리고 어떤때는 카나엘과 휘리나가 전처럼 한 침대에서 뒹굴

기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아아...싫어...하지마!"

" 후후후...싫다면서 이것좀 봐...축축해...엄청 젖었는걸? 예쁜이..."

" 아하악...그만!..."

에볼린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방에 음파차단 마법을 걸고는 이불을 푹 뒤집어

썻다.

둘 사이에 뛰어들어 말릴 엄두가 나지 않게된 것이다.

전처럼 야릇한 마음이 들거나 욕망이 솟구치지는 않았지만 자칫 욕망을 참지못하게 될 경우

어떤 결과가 있을지 모르니까...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간혹 야릇한 꿈같은것을 꾸긴 했지만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그럴때마다 퍼뜩 자리에서 일어나 보면 양 허벅지 사이 야릇한 감각과 함께 불끈

고개를 내민 양성체의 증거를 볼수 있었다.

가벼운 한숨과 함께 와락 후회가 밀려 왔다.

그럴때 마다 천천히 마음을 진정시키며 가볍게 명상에 들었다.

점차 마음이 안정되며 하체의 그녀석도 다시 사라졌다.

한동안 에볼린은 이렇게 그럭저럭 일상과 욕망의 경계를 오가며 평안하게 지낼수 있었다.

그러나...

창가에 환한 달빛이 새어들어 오고 있었다.

수수하고 단순한 실내...조금 낡은듯한 침대위에 붉은 머리칼을 베일처럼 늘어뜨린 소녀가

누워 있었다.

" 헉...헉헉...나...나좀..."

늘씬한 키에 평범함 이상의 아름다움을 지닌 소녀였다.

하지만 소녀는 괴로운 얼굴로 몸부림 치고 있었다.

땀에젖어 번들거리는 육체가 달빛에 드러나 꿈틀 거렸다.

한 손으로 자신의 젖가슴을 마구 주무르며 다른 손을 하체로 뻗어 여성의 부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앉는 흉측하게 꿈틀거리는 살덩어리를 움켜쥐고 일렁인다.

" 흐흑...시...싫어..."

에볼린의 양 볼에서 반짝이는 은빛 선을 그리며 눈물이 흘러내렸다.

" 바보같은 아이...참을성이 많은건지...미련한건지..."

" 카...카나엘....님..."

어느틈에 나타난 것일까...그렇게 그녀는 마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나타나 있었다.

에볼린의 뿌연 시야 너머로 녹색 머리결을 길게 늘어뜨린 요염한 얼굴의 여인이 혀를 차며

머리를 저었다.

" 문 스트럭...달빛은 여성을 미치게 한다는 말이 있지...혼돈의 존재...그 것도 최고위급을

받아들인 너로서는 만월이 뜨는 요즈음이 가장 견디기 힘들걸로 생각했는데...역시나..."

카나엘은 자박자박 에볼린의 침대 곁에 다가와 걸터 앉았다.

에볼린은 헉헉 거친 숨결을 내쉬면서도 몸을 움츠렸다.

그 모습을 본 카나엘이 눈초리를 날카롭게 하며 삐죽였다.

" 뭐니? 그 태도가...내가 싫은거니? 흥!..."

" 카...카나엘님..."

에볼린은 움찔 몸을 움츠리며 당황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겨우 얇은 가운 하나만 걸친탓에 그녀의 풍만한 여체가 그대로 노출되었다.

바싹 카나엘의 부드러운 여체가 다가 들었다.

조금 진한 향기와 풍만한 여체의 감촉이 느껴졌다.

에볼린은 부들부들 떨면서도 어떻게든 이성을 잃지 않기위해 정신을 가다듬었다.

" 아니면...그래...이 모습은 어때? 후후후..."

갑자기 에볼린의 얼굴에 놀람이 가득했다.

쳐들린 손길이 녹색 머릿결을 매만지자 순식간에 출렁이는 금발로 변했다.

몸집역시 단아하고 아담하게 변했고 다른 손길이 얼굴을 스치자 조금 싸늘하면서도

무섭도록 아름다운 금빛 눈동자의 여 마법사...휘리나의 모습으로 변했다.

에볼린은 턱을 덜덜 떨며 몸을 잘 가누지 못했다.

" 에볼린..."

화사하게 웃음을 띈 스승의 얼굴이 다가왔다.

꽃잎이 맞물린듯한 입술이 벌어지며 화사한 입김이 후욱 느껴진다.

" 아...아..."

" 에볼린...으응..."

카나엘...휘리나의 모습으로 변한 그녀의 얼굴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살짝 입술과 입술이 맟닿으며 부드러운 설육이 입술을 가르고 파고 들었다.

그러나, 질끈 눈을 감은 에볼린이 왈칵 카나엘을 밀어내며 도리질 쳤다.

" 안...안돼!"

엉겹결에 밀려난 카나엘이 와당탕 바닥을 굴렀다.

" 아...!"

에볼린은 깜짝놀라 침대 위에서 벌떡 일어섰다가 추욱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뜨거우면서도 아찔한 기분이 아랫도리에서 왈칵 밀려와 현기증을 느낀 것이다.

약간 고통스런 표정으로 일어선 카나엘...아직 그녀는 스승 휘리나의 모습 그대로 였다.

" 이상하구나...꽤나 굶주렸을텐데...어째서일까...?"

조금 충격을 받은듯 한쪽 머리를 문지르며 일어선 그녀가 흡사 늘씬한 고양이과 육식동물

처럼 바들바들 떠는 에볼린에게 바싹 다가와 몸을 밀착 시켰다.

"... 아아..."

에볼린은 금방이라도 와락 카나엘의 품속에 얼굴을 묻고 싶었다.

한조각 팽팽히 당겨진 이성이 끊기면 아마 전날 그랬던것 처럼 카나엘과 광란의 밤을 보내게

될것이다.

그것도 동경하는 스승 휘리나의 모습을한 그녀...당장이라도 당장이라도 와락 그녀에게

달려들어 걸친 가운을 찟듯이 벗겨버린후 아름다운 여체를 마구 유린하고픈 욕망...

하지만 에볼린은 피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카나엘의 몸을 밀쳐내려 하였다.

" 제발...카나엘님...그런 모습으로...싫어요...제발..."

휘리나의 모습으로 한 카나엘이 고개를 갸웃 거린다.

" 흐음? 마음에 안드니? 너...휘리나 좋아하는게 아니었나?"

"......"

메볼린은 가슴이 두근거리며 호흡이 급격히 빨라지는것을 느껴야했다.

동그랗게 눈을 뜨고 호기심많은 새끼 고양이처럼 가르릉 거리는 표정...그것도 항상

엄격하고 단정한 모습을 보이는 휘리나의 얼굴로...에볼린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가로 저었다.

" 저...전...스승님을....예! 좋아해요...하지만 이런 식으론 아니예요...제발...제발 제 마음을

가지고 노...놀지 말아 주세요...제발!..."

다시금 에볼린에게 밀려난 카나엘...하지만 이번엔 힘이 약해서 침대 가장자리에 주저앉듯

나동그리진 정도로 그칠수 있었다.

" 쿡쿡쿡...재미있어...하하하..."

카나엘...휘리나의 모습에서 스르르 다시 초록 머릿결의 글래머 여인으로 돌아온 그녀가

까르르 웃음을 터 뜨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