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디 아이 Bloody eye - 1 -
"자...주문하셨던 것입니다....녹색 중화제와 적색 배양제...그리고, 검은 부식제...부식제의
경우 취급에 주의를 기울려 주세요...에...또..."
늙으수레한 노인이 흘러내리는 안경을 다시 바로하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노인은 힐끔힐금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 주문하셨던 시약중에 빛나는 이끼와 무색 마정석...은 재고가 바닥이라...들여오지 못했..."
순간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손이 탁자를 세게 내리쳤다.
노인은 올것이 왔다는듯 눈을 질끈 내리감았다.
" 도데체..."
탁자를 내리친 손...가녀리고 곱기 이를데 없는 손이었다.
흡사 하얀 대리석으로 정성들여 조각한 듯한...
하지만 그 가녀린 손이 내려쳐진 탁자는 움푹 패어져 흉측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 언제 주문한 것인데...아직도 소식이 없는거죠? 벌써 이게 몇번째인지 아시나요?"
홱 후드를 걷어붙이고 드러난 얼굴은 아름다운 미모의 여성이었다.
비록 풍성한 금발을 아무렇게나 대충 빗어 정리한 머리스타일 이었지만...
" 죄...죄송합니다...하지만, 저희들로서도 최선을 다했습니다만...근래 구하기가 힘들어
졌는지라..."
노인은 식은땀을 송글 거리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결국 금발의 여성은 하아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할수 없다는 듯 주섬주섬 들고온 배낭에
가죽 꾸러미와 시약병을 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하는수 없군요...그래 얼마 드리면 되죠?"
노인은 얼른 반색하며 대꾸했다.
" 아...예예! 4골드 6실버만 내시면..."
노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툭 작은 가죽 꾸러미 하나를 집어 던졌다.
얼른 열어보자 안에 반짝반짝 빛을 내는 사금이 가득 들어 있었다.
" 그 정도면 되겠지요? 더 드려야 하나요?"
노인은 황송하다는듯 고개를 저었다.
" 아...아닙니다...이 정도면 충분 하고도 남습..."
노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스르르 로브 여인의 모습은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노인은 쯧 하고 혀를 차며 다시 흘러내린 안경을 걸쳐 올렸다.
" 젠장...성질머리 하고는...쯧쯧...저러니 여지껏 시집도 못 간 게지...에잉..."
그는 움푹 패인 탁자를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보다가 결국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여자가
내던진 가죽 주머니를 갈무리 했다.
" 에볼린! 에볼린!"
살짝 짜증이 배인 여성의 목소리가 낡은 저택 안을 뒤흔들었다.
한적한 숲 가장자리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저택이었다.
비교적 잘 정돈된 모습이었지만 이곳 저곳 엉성하게 덧댄 판자와 부서진 탁자의 다리를
괴어 놓은 나무토막 등에서 왠지 검소함이 지나쳐 무신경한 듯한 느낌을 자아내게 하고
있었다.
" 도데체 이 애가?"
한쪽에 놓인 큰 가마솥 앞의 삐걱 거리는 탁자에 가져온 배낭을 올려놓고 가볍게 씨근
거리던 여자가 신경질 적으로 허공에 대고 손을 휘저었다.
순간...
" 빠지직!"
" 까앗!"
무언가 가벼운 벼락치는 소리와 함께 덜럭 거리는 덧문이 달린 옆방문이 열리며 폭탄맞은
형상이 된 소녀하나가 빼꼼이 고개를 내밀었다.
"... 사부님...오셨어요? 헤헤..."
까맣게 그을린 머리를 득득 긁으며 헤실 거리는 소녀를 바라보는 여자의 눈초리가 더욱
매서워 졌다.
소녀는 전신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피워 올리면서도 묘하게 헤롱대는 모습이었다.
여자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 도데체가! 너 쓸데없이 약한 동물들 괴롭히지 말라고 했지! 거기에...구하기 힘든 시약은
아껴 써야지! 쓸데없는 실험에 낭비할 양이 남아 있는줄 알아? 앙?"
하지만 나타난 소녀는 한 손에 축 늘어진 박쥐 날개가 달린 토끼를 얼른 뒤로 감추며 여전히
헤실 거렸다.
" 사...사부님...헤헤...죄...죄송해요오..."
상당히 큰 키에 왠지 불에 그을린 허수아비를 연상 시키는 모습 이었다.
결국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허공에다 대고 손을 휘저었다.
순간 부드러운 빛과 함께 투명한 몸을 지닌 작은 여성 하나와 곤충의 날개가 달린 소녀
하나가 허공에 떠 올랐다.
" 후우우....재 좀 깨끗이 씻겨줄래요? 몸도 말려주고..."
투명한 여성과 날개달린 소녀...즉, 물과 바람의 정령이 까딱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반짝이는 빛으로 화해 까맣게 그을린 소녀 주위를 휘 돌았다.
소녀는 차가운 느낌과 따사로운 느낌이 겹쳐지며 전신을 맴돌자 몸을 움찔했지만 꾹 참으며
가만히 서 있었다.
잠시 후 순식간에 까맣게 그을렸던 소녀가 그런대로 말끔한 형상이 되었다.
붉게 타오르는 듯 빨간 머리를 양쪽으로 대충 묶어 늘어트리고 거의 넝마나 다름없는 빛바랜
검은 로브를 걸친 소녀였다.
크고 둥근 눈망울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졌지만 왜인지 나사 하나가 빠진 듯 헤롱 거리는
모양새에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 서있는 허수아비를 보는 듯 멀거니 서 있는 폼이
왠지 한심스러워 보이는 소녀였다.
어쨋거나 둘 다 멋이나 아름다움 우아함 등은 찾아 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사제(師弟)였다.
" 에볼린...너 그렇게 멍청한 모습으로 있지 말라고 했지? 거기에 그 넝마같은 로브는 왜
계속 입고 있는거니? 내가 전에 쓸만한 옷을 사 줬쟎아! 응?"
에볼린이란 소녀는 자신의 스승인 여 마도사의 질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헤헤거리며
비칠비칠 뒷머리를 긁적였다.
" 그...그옷...스승님이 사주신...옷...더러워 지면 안되쟎아요...그래서...옷장에..."
여 마도사는 이마를 짚으며 몸을 휘청였다.
" 말을 말아야지...후우우...알았어...알았어...어쨋거나 가져온 시약들을 정리해 놓도록 하고
오늘은 일단 너 먼저 저녁을 먹고 일찍 자도록 해...또 엉뚱한 실험 한답시고 늦게까지 불
켜놓고 있지 말고..."
약간 신경질 적인 그녀의 말에 소녀의 눈이 동그래 졌다.
" 혼...혼자요? 스승님...어디...가시게요오~?"
여 마도사는 싸늘하게 대꾸했하며 한쪽에 달린 벽장의 문을 열러 이것저것 챙기기 시작했다.
" 그래...주문한 시약중에서 몇가지가 오지 않으니...별수 없이 직접 찻으러 가야겠지...
에이! 신경질 나!...금방 떠날거니까 마른 고기랑 요기할거 챙겨주고..."
" 네에..."
에볼린 역시 스승이 탁자위에 놓아둔 배낭에서 시약병과 가죽 주머니를 꺼내 한쪽의 약장에
정갈하게 챙겨 넣기 시작했다.
잠시후, 여 마도사는 갈색이 감도는 가죽재질의 로브와 마녀모자...거기에 길다란 지팡이를 들고
간단한 배낭을 짊어진 모습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제자의 전송을 받으며 저택을 나서다가 몇마디 잔소리를 잊지 않는다.
" 에볼린! 내가 없다고 이것저것 이상한 실험 같은것 하지 말고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도록 해!
뭐 나름대로 마법실험 하는것은 좋지만 밤을 새우거나 하면 미용에도 안좋은 거니까...그리고
약한 동물 잡아다 합성 시키는 짓좀 이제 그만둘수 없니? 아뭍은 무슨 일이 있으면 수정구로
연락 하도록 하고..."
에볼린은 스승의 잔소리에도 연신 헤실헤실 웃었다.
" 네에...알겠어요오..."
여 마도사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어리숙한 제자를 쏘아보았지만 이내 긴 한숨을
쉬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아뭍은 돌아올때까지 집 잘부탁한다...그럼..."
말을 마친 마도사가 빛무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스르르 사라져 갔다.
에볼린은 우두커니 서 있다가 무언가 열망에 찬 눈으로 스승이 사라진 자취를 쫒고 있었다.
" 스승님..."
아까까지 무언가 헤실 거리는 모습은 간데 없고 무언가 끈적이면 서도 집요한 시선...그리고
잔인할 정도의 집착과 열망에 찬 그런 모습이었다.
정령술과 원소마법 그리고, 연금술에 밝았던 세기의 대 마도사 카이닝 데 아시타오스...
루운 반도에서 태어나 자신의 조국을 부흥시키고 대공의 자리에 올라 막강한 권력과 힘을
과시하던 그가 어느날 갑자기 칩거에 들었다.
바로 그의 존재를 부담스러워한 국왕의 음모로 그의 자식과 며느리가 죽고 단 하나
손녀만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만약 마음만 먹었다면 그의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물러난 전 국왕이 스스로의 목숨으로 사죄를 하고 나서자 그 역시 하나뿐인 손녀를
데리고 왕국의 후미진 이곳에 낡은 저택을 사들여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지금 터벅터벅 짜증스런 얼굴로 손에 들린 지도를 바라보며 길을 걷는 그녀가 바로 대마도사
카이닝의 손녀 로 휘리나 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나이는 이미 서른을 넘긴 노처녀 였지만 특유의 깐깐한 성격과 결벽으로 인해 아직껏
남자라고는 모르는 상태였다.
할아버지인 카이닝은 이 점을 우려했지만 어느날 잠을 자다 조용히 세상을 떠나 버렸고...
결국 혼자 남겨진 그녀는 세상과 격리된채 오직 마도술의 연마와 연구에 미치다시피 매일
매일을 보내온 것이다.
" 에이! 역시 싸구려 지도는 믿을게 못된다니까...좌표가 전혀 맞지를 않으니..."
결국 그녀는 손에든 지도를 화르륵 불을 일으켜 태우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가만히 서서 주위를 둘러보다 마침 넓적한 바위가 평상처럼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 일단 배도 출출하니...요기나 좀 하고 생각하기로 할까..."
이윽고 모닥불이 지펴지고 배낭에서 꺼낸 말린 고기가 불에 그슬려 지고 꾸러미에 싼
간단한 먹을거리가 펼쳐졌다.
휘리나의 얼굴에 탄성이 흘렀다.
" 하아...맛있겠는데?"
입자가 굵은 통밀과 귀리 등으로 만들어진 빵 사이에 닭고기와 감자 그리고, 달걀등으로
속을 채워넣은 샌드위치와 뜨거운 물을 붓기만 하면 바로 먹을수 있게 만든 고체 스프...
냉동 보존 마법이 걸려진 상태로 싸여진 베이컨과 야채 등이었다.
" 후후...역시 요리하나는 잘 하는애야...하지만 요리하는것의 반 정도라도 똑똑하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긴...이상하게 가르쳐 주는것은 잘따라오는 애니 괜찮긴 하지만서두..."
살짝 고개를 갸웃 거리면서도 입 안에서 씹히는 먹을거리의 감촉에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점차 어둑어둑해지는 주변을 바라보며 황동잔에 담겨진 뜨거운 스프를 후후 불며 조금씩
마셨다.
" 하는수 없이 오늘은 노숙을 해야겠군...빛나는 이끼나 마정석은 천상 드워프의 폐광산 에나
가야 있을테니..."
살짝 고개를 쳐들어 올려다 본 하늘에는 하나 둘 반짝이는 별들이 나타나 보이고 있었다.
" 우후! 괜찮은 수확이야...이만하면 한참 쓸수 있겠는걸?"
살짝 배어나온 땀을 닦아내는 그녀의 표정에는 만족감이 어려 있었다.
가죽 주머니가 불룩 하도록 담긴 투명한 돌 조각과 반짝반짝 빛을 내는 기묘한 이끼들이
그녀의 눈을 즐겁게 한다.
수평으로 파여진 갱도는 치밀하게 버팀목으로 지탱되어 있었고 오랜전에 버려진듯 했으나
꽤 깜끔하게 정리된 상태였다.
한쪽에 버려졌던 램프에 켜진 불이 그럭저럭 주위를 밝혀주었지만 바람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깊은 지하에 파여진 갱도 한가운데라 멀리 검게 보이는 통로가 을씨년 스럽게 보이고
있었다.
이곳에는 조금 위험하긴 했지만, 드워프들이 미처 캐지못한 광석이나 버섯, 약초 등이 제법
있어 아는사람들 사이에선 꽤 이름높은 장소로 유명한 곳이었다.
하지만, 거의 미로나 다름없을 정도로 길이 얽혀있고 군데군데 위험한 장소가 있어 함부로
드나들기는 꺼려지는 곳이기도 했다.
" 뭐 어쨋든 이만하면 됐다고 보고...이제 가도록 할까? 이 곳은 왠지 오래 있기는 그런
데니까 말이야..."
그녀는 주섬주섬 불룩한 가죽 주머니의 주둥이를 봉하고 배낭에 집어넣었다.
슬쩍 묵직해진 느낌이 그녀를 뿌듯하게 한다.
살짝 웃어보이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 고오오오오..."
" 후우웅..."
탄식인듯 혹은 긴 신음인듯 어디선지 들려오는 알수없는 소리...
그리고, 휘리릭 비릿한 내음의 바람까지 불어왔다.
드워프가 만든 듯한 광산용 램프의 불이 살짝 흔들리다가 꺼졌다.
" 이런...!"
낭패한 휘리나의 탄성이 들렸다.
그러나, 잠시 후...어디선가 환한 빛을 내는 빛 덩어리가 춤을 추듯 솟아나 주위를 밝혔다.
바로 휘리나가 소환한 빛의 정령 이었다.
" 가보자...조난이라면...서둘러야해..."
휘리나는 소리가 난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 이런 곳이 있을줄은...여지껏 꽤 많이 와봤지만..."
휘리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전면을 바라 보았다.
거의 무너져 가는 통로를 빠젼 나온후 드러난 넓은 광장...환한 빛을 내는 마정석이 지천으로
깔린 곳이었다.
그리고, 한쪽 벽면에 커다랗게 돌로 다듬어진 문이 세워져 있었다.
망치와 모루, 화염의 신 발카누스가 새겨진 문은 양 옆으로 무언가 알수 없는 문자가
정교하게 음각 되어 있었다.
타박 휘리나의 발걸음이 문 쪽으로 향했다.
" 이건...신성문자? 드워프들이 쓰는 불꽃문자도 같이...A...TRO...P&A...?"
휘리나는 천천히 문자를 해석하기 시작했다.
- 위대한 수호신 발칸의 이름으로 부정한 것을 봉인 하노니...이 글을 보는 자여...돌아설
지어다...천년의 저주와 악몽의 존재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거든...-
휘리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 거렸다.
" 이상한 일인걸? 드워프는 드래곤을 제외하고 어지간한 마물이나 몬스터들도 두려워 하지
않는것으로 알고 있는데...어쨋든 이곳에 오래있을 필요는 없겠지?"
휘리나는 슬쩍 고개를 도리질 치며 뒤로 슬금슬금 물러섰다.
어지되었든 이 옷에온 목적은 이미 달성된 터였다.
거기에 이런 곳에는 오래 있을 필요는 전혀 없는것이다.
그러나, 그때였다.
" 으흐흐흠....으흐흠...라랄랄라...랄라..."
신음처럼...아니면 흡사 노래처럼 들리는 요사스런 목소리...거기에 이상한 열기와 비릿한
느낌이 들정도의 훈훈한 바람이 몰아쳤다.
" 아...아악!"
휘리나는 순간적으로 양쪽 귀를 막은채 바닥에 주저 앉았다.
" 라라라...랄랄라...으흐흐흠..."
무언가 애절하면서도 호소력있는...그러면서도 아련히 누군가 부르는 듯한 목소리...
온 몸이 저릿저릿했다.
머리 속이 마구 헝클어지는듯한 느낌이었다.
이를 악물고 견디려고 했다.
하지만 점차 흐릿해져 가는 의식너머로 누군가 자꾸 자신을 부르는듯한 소리...또한, 그리운
엄마의 목소리인양 아련한 음성...휘리나는 어느새 눈 앞이 흐릿해져가는 것을 느꼈다.
"......."
휘리나는 결국 의식의 끝 자락을 놓으며 바닥에 푹 쓰러지고 말았다.
투툭 차가운 물방울이 얼굴에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힘들게 눈을 떳다.
눈 앞이 부옇게 흐려져 있었고 머리속이 지끈지끈 쑤셔 왔다.
엉금엉금 기듯 일어나 지끈거리는 이마에 살짝 손을 가져다 댔다.
" 우우...머리야..."
점차 부옇게 흐려졌던 시야가 밝아져 왔다.
"...!"
휘리나는 눈앞의 정경을 보고 퍼뜩 정신이 드는 것을 느꼇다.
" 여...여기 어디지? 대체?"
아까까지 있었던 곳이 아니다.
흡사 수정궁을 방불케하는 이곳...주위는 온통 갖가지 색의 마정석과 자수정 원석으로
가득한 곳이다.
살며시 한쪽 벽으로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 마정석...그 것도 가장 귀하다는 골드펄...이럴 수가..."
으슬으슬 몸이 떨렸다.
단 한조각만 있어도 천금과 맞먹는 가치를 지닌 것이다.
거기에 마도사들에게는 그야말로 부르는게 값일 정도로 진귀한 물건 이기도 하다.
주위를 둘러보던 휘리나는 자신이 들어온 곳이 아까 경고문이 새겨져 있던 돌 문의 안쪽인
것을 깨달았다.
" 어떻게 된거지?"
뒤쪽으로 역시 돌 문이 보였다.
하지만 돌문에는 어떤 장식도 없이 그저 정교한 마법진이 여러겹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 마법적 반발력...대단한걸? 고위급의 마법이 아니면 빠져나올수 없는 항마력이 흘러 나오고
있어...어쩌지?"
휘리나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 라라라라...흐흐흠...라라랄라..."
쭈뼛 머리털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아까 그녀를 끌어들였던 그 목소리다.
그러나, 이상하게 이쪽에서는 단순히 조금 요사스러운 데가 있지만, 그럭저럭 들어줄만 한
느낌의 콧노래 정도로 들릴뿐 아까처럼 머리속이 울릴 정도로 크게 들리지는 않았다.
정신을 몽롱하게 했던 그 가공한 위력 역시 없었다.
잠시 염두를 굴리던 휘리나가 무언가 생각난듯 놀라움을 표했다.
" 설마...증폭 가창마법? 그럴리가...세이렌족 사이에서도 거의 전승이 끊겼다는 것인데...
누가?..."
휘리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 결국...방법은 저쪽인가...이렇게 된 이상...하는수 없지...돌파하는수 밖에...드워프의
돌문 쪽은 아직 내 마력이 못미치니 할수 없고..."
휘리나는 결국 결심한듯 눈을 빛내며 콧노래가 들려온 쪽을 바라 보았다.
" 가볼까?..."
휘리나의 몸 주위로 하나 둘 작은 마나의 구체가 형성되며 맴돌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며 조심스레 전진해 나가던 휘리나가 멈칫 했다.
상당히 많은 수의 드워프들...그 것도 돌처럼 딱딱해진 시체들이 보였다.
" 이건...일종의 독기운에 씌인 결과야...드워프들은 체력이 강하고 독과 정신계마법 등에
상당한 저항력이 있는데..."
몇몇 드워프는 뼈와 가죽만 남은 모습을 한채로 널부러져 있기도 했다.
그런 드워프들은 예외없이 머리나 가슴 부위가 무언가에 위해 엉망이 되어 있었다.
" 흡사...야수의 손에 움켜쥐어진것 같은 느낌인걸? 이거 잘못하면 상당히 위험 하겠는데?"
휘리나는 슬쩍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오랜만에 마음껏 마력을 발산할수 있을수 있다는 흥분이 공포감을 사라지게 했다.
조심스레 마법으로 기척을 지운채로 전진했다.
손 안에 들린 정령수의 가지로 된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 흐흐흐흥...라라랄라..."
멀리 희미하게 축축한 느낌이 드는 공기가 느껴지며 잔잔한 물 소리가 들리기 사작했다.
영혼의 충격...휘리나는 이 순간이 흡사 꿈인것 같았다.
잔잔한 물 보라를 내며 떨어지는 작은 폭포와 맑은 물이 찰랑대는 동굴호수...그리고, 조금
어스름 하기는 하지만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동굴 내부...
역시 마정석과 자수정 그리고, 군데군데 반짝이는 광석들이 곳곳의 벽에 박혀있었다.
수정궁을 방불케 하는 맑은 석주와 석순...통통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물방울...
그 한가운데 허리께 까지 물을 찰랑이며 긴 녹색 머릿결을 드리운채 서 있는 여인...
꿈을 꾸는듯 양 손에 물을 떠 주르르 장난처럼 흘러내리게 하던 그녀가 낯선 인기척에 살짝
놀라며 휘리나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순간...
' 아아...'
휘리나는 정신이 아득해 지는 것을 느끼며 휘청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 했다.
순수한 녹색...그러면서도 맑고 영롱한 빛을 띄고 있는 어찌보면 요사스럽기 까지 한 두 눈...
순도 높은 초록색 보석같은...그러면서 맑은느낌과 끈적이는 요기로움이 조화된 눈망울
이었다.
거기에 시원하게 뻗은 콧날과 상큼한 입술...조금 창백한 상아빛 피부와 어울려 물기어린
여체의 풍만함...
특히 팽팽히 부풀어 오른 가슴과 극도로 가는 허리 부분은 도데체 두 눈을 뗄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조금 놀란 얼굴을 하던 녹색머리 여인...하지만 그 것도 잠시였다.
흡사 흰 도화지에 밝은색 물감이 번져가듯 환한 미소를 짓는다.
" 아아..."
자신도 모르게 호흡이 급격해지며 가슴이 진탕되는 것을 느낀다.
이상한 일이다.
이런 느낌은 그녀로서는 전혀 처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한번도 이런 느낌을 가진 적이 없는데...
사실 그녀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을 해 왔던 셈이다.
주변에 변변하게 사람도 없는 호젖하고 한가로운 속에서 오직 마도학에만 정진해온
지난날 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더욱 그 것이 심해졌다.
오랜만에 도회지에 나가도 그저 마법길드나 도서관 혹은 식료품점 등 자신이 볼일만 볼
뿐이었다.
언젠가 길에서 죽은 자신의 아버지의 시체를 붙들고 울고있는 에볼린을 데리고 온 것을
제외하면 어떤 사람과도 깊은 관계를 맺어 보거나 사귄 적은 전혀 없었다.
같은 여자였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특히 허공에 우뚝 솟을 정도로 부푼 풍만한 가슴에 자꾸 시선이 갔다.
" 카릉?"
녹색머리 여인이 기성을 발하며 자신의 가슴을 양 팔로 가릴 정도로 그녀의 시선은
집요했다.
휘리나는 녹색머리 여인이 자신의 가슴을 가리며 기성을 발하자 퍼뜩 정신이 드는 것을
느꼈다.
" 아앗...이..이런...미 미안해요..."
휘리나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 하아아...내 내가 무슨 생각을?..."
그녀는 자신의 이마를 살짝 짚으며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살짝 어리둥절한듯 자신의 가슴을 양 팔로 가리고 휘리나를 바라보던 녹색머리 여인이 그
모양새를 가만히 지켜보다 갑자기 배시시 미소를 흘린다.
그녀가 차르르 물살을 헤치며 다가왔다.
그 것도 휘리나가 자신을 탓하며 이마를 짚고 고개를 흔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
휘리나는 갑자기 무언가 촉촉하면서도 미끈하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덮쳐드는 것을 느끼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
바로 눈앞에 풍염하기 그지없는 두개의 젖무덤이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 카르릉..."
기묘한 신음을 내며 녹색머리 여인이 휘리나를 감싸 안았다.
비릿하면서도 달콤한 살 내음이 풍겼다.
" 으으...이건..."
엉겹결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쓰러진 휘리나가 자신도 모르게 뚝뚝 물방울을 떨어뜨리는
녹색머리 여인을 마주 안았다.
부드러웠지만 이상하게 서늘한 여인의 살결이 부비어 왔다.
" 하아아..."
살짝 단내가 풍기는 입김이 얼굴에 훅 느껴졌다.
" 아아...안돼...으응!"
휘리나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녹색머리 여인의 얼굴이 자신에게 부딛쳤다.
촉촉한 느낌과 함께 입술이 비집고 열려지며 꿈틀꿈틀 기묘한 감촉을 내는 혀가 파고
들었다.
"...!"
휘리나는 경악한 얼굴로 몸을 뻣뻣하게 경직 시켰다.
머리 속에서 요란하게 무언가 와장창 깨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입 안에서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혀와 기묘한 맛을 내며 흘러드는 타액...
등줄기가 짜릿 짜릿해지며 머리 속이 온통 텅 비는듯 했다.
잠시후 만족한듯 웃음을 지으며 녹색머리 여인의 얼굴이 떨어졌다.
입 가에서 살며시 타액이 서로의 입술 사이로 끈적이며 흘러내렸다.
휘리나를 올라타듯 안겨든 여인은 상 당히 큰키에 무르녹은 듯한 늘씬한 글래머 였다.
다소 아담한 몸매의 휘리나보다 머리 하나 이상 큰키에 이목구비도 시원스럽기 이를데 없는
여인이었다.
하지만...어버버 거리며 녹색머리 여인에 밀려 바동거리던 휘리나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부릅떠 졌다.
모골이 송연한 느낌에 퍼뜩 찬물을 뒤집어 쓴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녹색머리 여인...그녀의 허리 아래 부분은 끔찍하게도 꿈틀거리는 뱀의 그것 이었기 때문
이었다.
" 이...이건? 라...라미아?"
‘Lamia’...고대 신화시대부터 등장하는 몬스터로 상반신은 아름다운 여성...하반신은 뱀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며 독과 환술에 능하고 가리지 않고 인간이나 동물의 피를 빨고 잡아
먹는다고 알려진 까다로운 몬스터 이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 텔레키네시스 !"
휘리나가 앙칼지게 시동어를 외치며 양 손을 밀쳤다.
" 캬악?"
녹색머리여인...하체가 뱀으로 되어있는 마물이 밀쳐져 멀리 나가 떨어졌다.
멀리 동굴호수에 물보라가 생기며 첨벙 하는 소리가 들렸다.
휘리나는 빠르게 몸을 벌떡 일으켰다.
왜인지 모르지만 무언가 울컥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 아이스 쉴드! 매직 바리어!"
휘리나의 몸 주위로 반짝이는 얼음 결정이 맺히며 일렁였다.
그리고, 뒤이어 그녀의 몸 주위에 희미한 막 같은것이 생성되는듯 했다.
휘리나는 이빨을 바득 갈아 붙였다.
" 저주받을 마물 주제에...감히!"
휘리나는 분기탱천 했다.
한편 휘리나의 마법에 말려 멀리 나가 떨어진 녹색 머리여인...마물 라미아는 조금
기묘한 표정으로 스르르 몸을 일으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라미아가 나가 떨어진 곳은 아까 찰박거리며 놀고있던 물속이었다.
그녀는 살짝 웃음띈 표정으로 여유있게 일어서서 휘리나쪽을 바라 보았다.
주르르 물방울이 흘러 내리며 젖어든 모습이 더욱 자극적으로 보였다.
휘리나는 그 모습에 더욱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꼇다.
" 이 요물이! 죽어랏! 플레임 바스터! 아이스 란스!"
주변의 공기가 뭉쳐지며 강렬한 열기를 띄었다.
화르르 불덩이가 생성되며 허공에 떠오른다.
그리고, 불덩이는 점차 압축되며 붉은빛에서 노란빛 다시금 푸른빛으로 백열 한다.
순간 치이익 거리는 소리와 함게 주위의 습기들이 맹렬히 증발되며 소름기치는 비명을
토해 낸다.
그뿐 아니다...차갑게 엉긴 서릿발과 냉기가 뭉쳐 허공중에 떠올랐다.
그리고, 서릿발이 탁탁 튕기며 가공한 예기를 발한다.
어느 순간 두 차갑고 뜨거운 냉기와 열기가 라미아를 향해 폭사된다.
" 죽어라 요물! 뼈 한조각 남지 않을 것이다..."
휘리나의 눈동자는 새파랗게 타오르고 있었다.
" 콰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자욱한 수증기가 피어 올랐다.
동굴 전체가 무너질 듯 흔들거렸다.
휘리나 역시 조금 움찔한 표정으로 슬쩍 뒤로 물러섰다.
대 마도사의 후에답게 굉장한 위력이었다.
비록 긍극의 경지에는 못미치지만 나이에 비해 월등히 앞선 마도의 힘이다.
아마 불쌍한 저 마물은 가공한 냉기와 열기에 전신이 가루로 변해 흩어질 것이다.
시체 한조각도 찻지 못할 정도로...
점차 수증기가 가라 앉았다.
그런데...
" 마...말도 안돼! 저 저럴 수가!"
그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살짝 눈을 내리감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양 손을 기도하듯 모으고 있는 녹색머리 여인...
아니, 마물 라미아는 더 없이 평온한 모습이었다.
일반적으로 라미아가 상급 마물로 취급되기는 하지만 상당한 등급인 휘리나의 강력한
주문을 그대로 별 피해 없이 막아낸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천천히 라미아가 눈을 떳다.
그리고, 휘리나를 바라 보았다.
살짝 미소띈 얼굴...그러나 비웃음 이라기 보다 감탄한 표정이 역력하다.
" 이이익!"
휘리나가 다시금 손을 모으며 수인을 맺었다.
다시금 휘리나 주변에 뜨거운 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라미아 역시 그냥 보고있지만 않았다.
순간적으로 라미아의 전신이 흐릿해지더니 팟 하고 사라졌다.
"...!"
그리고, 휘리나의 바로 코 앞에 나타난 그녀...
"&%%$$#@#@"
휘리나가 경악할 새도 없이 잔잔하게 무어라 알수 없는 언어로 속삭이듯 말을하며 라미아의
한 손이 휘리나의 복부에 깊숙히 들이 박혔다.
" 꺼...으...!"
마법 바리어도 소용이 없었다.
눈 앞이 부옇게 흐려지며 휘리나는 다시금 정신을 잃고 말았다.
휘리나가 캐스팅 하려던 마법 역시 허무하게 허공에서 픽 꺼졌다.
축 늘어지는 휘리나의 몸을 라미아는 소중하게 받쳐들었다.
나긋나긋하며 늘씬한 휘리나의 몸을 받아들며 라미아 여인의 눈에는 스르르 묘한 열기가
퍼져가기 시작했다.
싸악 혀가 내밀어져 자신의 입 가를 핱았다.
휘리나를 안아든 라미아 여인이 어디론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동굴 내부에는 간간히 들리는 물 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는 정적 속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