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16)

12장. 각성의 시작

주희와의 섹스는 진우로 하여금 그동안의 쌓인 욕구를 해소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덕분에 최근 들어 자주 꾸게되던 지현이의 몸을 범하는 꿈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한 번 다시 맛을 보기 시작한 여체에 대한 감각은 그에게 또 다른 갈등요소로 등장한 것이었다.

그동안 쌓였던 욕구도 문제였지만, 한 번 둑이 무너지자 욕구를 더욱 참기 힘들게 되어 버렸다.

이전에는 아내의 몸이 현재 어리다는 핑계로, 그리고 외도를 할 수 없다는 핑계로 어쩔 수 없이 금욕을 하였지만, 이미 한 번 외도를 하게 된 그에게는 주희가 아니더라도 또 다른 여성들을 취하고자 하는 욕망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물론, 그는 지현이에게 충실하고자 두 번의 외도를 애써 자제하려 하였다.

그리고 촬영기간 내내 진우는 주희를 어떻게 대하여야 할 지 솔직히 난감했다.

주희도 그 기간 동안은 특별히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촬영이 끝난 후에도 지속적으로 만나는 관계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주희는 또 다른 프로젝트에도 배역을 얻어 출연하게 되었다.

진우는 그녀를 왠지 그대로 보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였을까?

그것은 현재 그가 모자라하는 부분을 그녀가 채워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수진은 딸아이의 몸에 살아있다고 하지만, 딸아이의 몸에 든 아내는 이미 예전의 아내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내로부터 채워지지 못하는 부분을 주희를 통해 얻고자 하였다.

아내와 지현이의 인상을 닮은 주희는 그런 의미에서 대역으로는 적격이었다.

어쨌든 주희는 회사 사람들도 눈치를 챌 정도로 진우와 깊은 관계가 되어갔고, 그녀도 진우에게 나름대로의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진우의 인간적인 따듯함이었다.

솔직히 이 바닥에서 활동하기에는 그다지 처세가 좋은 편이 아닌 주희로서는 든든하게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날 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진우에게 다가갔던 것이었지만, 막상 진우와 계속 만나게 되면서 그녀는 진우를 단순히 후원자가 아닌 그 이상의 존재로 여기게 되었다.

이제 21살인 주희에게 39살인 진우는 꽤 높은 연배였고, 혼자 서울에 올라와 생활하는 그녀에게는 기댈 수 있는 자상한 어른이었다.

그러나 주희를 만나는 내내 진우의 마음 한편에서는 아내 몰래 외도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비록 당분간 지현이의 몸을 지켜주기 위해서라고 스스로 합리화시키고 있었지만, 점점 주희에게 마음도 끌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기말 고사가 끝이 나서 일찍 집에 들어와 있던 지현이는 낮선 여자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거기 서진우 사장님 댁이지요. 사장님 지금 계시나요?"

"누구신데요?"

"예.. 일 관계로 아는 사람인데요. 핸드폰도 안 받으시고.. 회사에서도 일찍 들어가셨다 길래.. 저 집에도 안 계시나요?"

"예.. 아직 안 들어오셨거든요.. 어느 분이라고 전해드릴까요?"

"예.. 민주희..라고 하시면 아실 거예요. 사장님 들어오시면 꼭 연락 바란다고.."

"예..."

지현은 그 전화가 왠지 신경이 쓰였다.

일 관계의 전화라고는 하지만 지현이 알기로는 회사 직원은 아닌 것 같았다.

목소리도 어려 보이는 것이 20대 초반 정도가 되었을 것 같은데, 아빠한테 일 관계로 직접 전화를 할 만한 사람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의 말투에서 흐르는 묘한 뉘앙스가 신경이 쓰였다.

지현이가 아무래도 찜찜한 생각에 고민중일 때 마침 진우가 집안으로 들어섰다.

"어..! 오늘은 일찍 왔구나..

"예.. 오늘이 기말고사 마지막 날이거든요.."

"그래..!"

"예..  아 참.. 방금 전에 전화가 왔었어요.."

"전화..?  누구..?"

"누구더라.. 아 민주희라고..."

"......!"

진우가 그 이름을 듣자 약간 움찔하는 반응을 보였다.

지현이는 본능적으로 이상하다 느끼며 물었다.

"저.. 누구예요..?  그 사람..  좀 젊은 사람 같던데..."

"아.. 으응..  일 관계로 아는 사람..  이번에 제작하는 거에 출연할 연기자..."

진우가 약간 어색한 태도로 대답을 하고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가만히 들어보니 안방에서 전화를 하는 것 같았는데, 거실의 전화를 나두고 핸드폰으로 거는 것도 왠지 이상했다.

지현이는 직감적으로 아빠가 무언가 숨기고 있음을 느꼈다.

'그 여자는 누굴까?  혹시.. 아빠에게 여자가..?  아냐.. 아빠가 그럴 리가...'

지현이의 그 궁금증은 겨울방학에 들어간 며칠 뒤에 우연히 풀렸다.

아빠 심부름으로 집에 있는 서류를 회사에 가져다주러 갔다가 우연히 직원끼리 하는 이야기에서 '주희씨..'라는 단어를 들었던 것이다.

'응..? 주희씨..라고..?'

"저 아저씨... 뭐 좀 물어볼 것이 있는데요.."

지현은 사장실에 있는 아빠의 눈치를 보며 그 대화중인 직원들 사이로 끼어 들었다.

"뭔데..? 지현아..."

"저어.. 민주희.. 라는 여자가 누구예요..?"

"켁.."

그 말을 듣자마자 옆에 있던 여직원이 놀라며 마시던 커피를 토해내었다.

놀라기는 지현이가 물어본 그 직원도 마찬가지여서 피우던 담배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너.. 네가 그 이름을 어떻게 아니..?"

"아..! 그 그냥요..."

지현이는 이들의 반응이 너무 크자 오히려 놀랐다.

두 사람도 그것을 뒤늦게 깨달은 듯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죄..죄송해요.. 제가 괜한 것을 물어봤나 봐요.."

지현이는 자신을 부르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도망치듯이 회사를 빠져 나왔다.

버스를 타기 위해 신사역 사거리 부근까지 걸어가면서 지현이는 내내 복잡한 심경이었다.

아빠의 태도나 직원들의 태도로 보아 명백했다.

'아빠에게 여자가 생겼어..'

지현이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어떻게.. 어떻게 아빠가 그러실 수가 있어.. 다른 여자가 생기다니...'

지현이는 아빠에게 배신감을 느끼고는 화가 났다.

'어떻게 다른 여자가 생길 수가 있지..?  나와 엄마를 나두고...  그것도.. 지금 아빠가 나를 엄마라고 알고 있으니까.. 결국은..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우는 격이잖아...'

지현이는 집에 돌아와서 자기 방에 틀어 밖인 채 한동안 울었다.

'실망했어.. 아빠한테...  그것도 무척 젊은 여자 같던데..'

그러나 한동안 시간이 지나고 진정이 되자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문득 생각이 났다.

아빠는 평생 재혼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빠는 지금 자신을 아내로 아니까.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현이 자신은 진짜 아내의 역할을 해줄 수가 없었다.

결국 아빠는 지현이의 거짓말 때문에 평생 홀아비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엄마 대신으로 잘해준다고 시작한 일이지만.. 결국 그건 불가능한 일이잖아..'

이렇게까지 생각이 미치자 지현이는 아빠에게 다시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주희라는 여자의 일을 내색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다 내 탓일지도 몰라...'

지현이는 아빠한테 솔직히 물어볼까 말까? 고민도 했지만 결국 그럴 수 없었다.

진우는 회사에서 직원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크게 당황했다.

'아내가 눈치를 채었다..'

진우는 그 때문에 일손이 잡히지를 않았다.

집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를 않았다.

결국 직원들에게 잠시 이야기를 하고, 지현이가 집에 있기를 바라며 집으로 들어왔다.

다행히도 지현이는 집에 있었다.

진우는 문을 열어주는 지현이를 보며 슬쩍 눈치를 살폈다.

지현이는 조용히 아무 말도 없었다.

하지만 눈가가 붉어진 것이 많이 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 퇴근하시는 거예요..?"

"아니야.. 다시 나가야 돼.."

진우는 차마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이리 저리 쓸데없는 것들을 뒤지며 그녀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지만, 결국 지현이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나.. 아마도 좀 늦을 거야.."

"네..."

문을 닫고 집을 나서면서 진우는 속으로 서글픈 감정이 들었다.

분명히 아내도 자신이 무엇 때문에 들어왔는지 알고 있으리라.

하지만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주희의 일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기로 한 것 같았다.

아마도 지현이는 제대로 아내 노릇을 못하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상처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진우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또 아내에게 상처를 입혔다.. 작년에도 그랬는데 올해도... 이젠 그러지 않기로 했으면서... 내가 또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들을 했는지...'

진우는 주희와의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미정이는 지현이의 부탁에 무척 의외라는 듯 깜짝 놀랐다.

"지현아... 너.. 방금 포르노 테이프를 구해 달라고 했니..?"

"쉿.. 조용히 이야기 해..  으응.. 좀 구해 줘..."

지현이가 미정이의 입을 막으며 누가 들을세라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패스트푸드점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없어 보였다.

"정말..  1999년이라고 하더니.. 세기말은 세기말인가 봐.. 네가 그런 부탁을 할 줄은..."

"얘.. 나 농담 아냐.."

"으응.. 하지만 내가 어떻게 그런 걸 구해..?"

"지난번에 그거 있잖아..."

"아 안돼.. 그거 우리 엄마 아빠가 몰래 숨겨놓으신 거야... 그거 없어진 것 아시면 큰일나.."

"후... 어떻게 하지..."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게 보고 싶어진 거야..? 저번에는 조금 보고 질겁했잖아..."

"응... 좀 그런 사정이 있어..."

"그래..? 사정이라..."

미정이가 이해를 한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지현이는 그런 미정이를 보며 새아빠에 대한 그녀의 마음이 어떻게 되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미정이도 그동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고, 단지 많이 명랑해 진 것으로 봐서 잘 극복해 내었으리라 희망할 뿐이었다.

"저어기... 지현아.. 이런 것은 어때..?"

"응?  뭐..?"

"그런 것들.. 인터넷에서 구해 볼 수 있다던데.. 공짜로.."

"인터넷..?"

"응.. 내가 아는 언니한테 부탁해서 무료로 자료를 볼 수 있는 곳 몇 개 알아봐 줄게.. 그게 나을지도 몰라.."

지현이는 며칠 뒤 미정이를 통해 몇 개의 도메인 주소를 메일로 받았다.

지현이가 갑자기 어린 마음에 포르노를 봐야겠다고 결심을 한 것은 아빠에게 새 여자가 생겼다는 것을 안 며칠 뒤였다.

며칠 동안 우울해 있었던 지현이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어린애 일 뿐이야... 그런 내가 어른들의 일을 대신할 수는 없어...'

'성에 대해서도 그래..  그동안 이것저것 주어 듣기는 했지만.. 솔직히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아는 것이 없어..  그저.. 막연히.. 알고만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몰라..  반 아이들 중에는 이미 그런 테잎을 보고.. 하는 걸 모두 본 아이들도 있는데...'

'어쩌면 나는 무서웠던 거야..  나이가 어려서 무섭기도 했지만..  만약에 아빠와 나 사이에.. 그런 일이 정말로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서웠던 거야...'

'이렇게 어린애면서..  내가 엄마를 대신할 수 있을 리가 없어.. 아빠가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리도 없어..'

'적어도.. 난 아빠와 그 여자가 만나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제대로 모르잖아..  적어도 그런 것 정도는 알고 싶어..  나도 이제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데.. 내 몸도 점점 커 가는데...'

그래서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새해가 되자 외가댁에 다녀온 미정이를 불러서 부탁을 하게 된 것이다.

아빠한테 늦는다고 전화가 온 어느 날, 며칠 동안 눈치를 보던 지현이는 마침내 떨리는 마음으로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미정이한테 받은 도메인으로 한 성인 무료사이트에 접속을 했다.

그곳은 그녀가 작년 초에 조금 돌아보았던 그런 곳들과는 다른 진짜 성인사이트였다.

지현이에게는 솔직히 문화적인 충격이었다.

연이어 뜨는 노골적인 화면과 배너에 어린 소녀는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할지 몰랐다.

지현이는 야설이나 사진이 올라온 자료실 등을 뒤적이다가 동영상이 있는 자료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그리 길지는 않지만 여러 종류의 동영상들이 있었다.

일본 등에서 만든 포르노들도 있었고, 작년에 떠들썩했던 'O양 비디오'와 '몰카'라는 것들도 올라와 있었다.

지현이는 3개 정도의 동영상을 받아 플레이시켜 보았다.

하나는 몰카였는데 화질이 안 좋았고, 일본 것들 2개는 화질은 좋았지만 샘플이라 모자이크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 영상들은 지현이가 태어나서 처음 본 완전한 섹스장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동안 말로만 들으면서 여자아이가 어렴풋이 상상했던 것과는 분명히 달랐다.

그리고 작년 초에 조금 보다 말았던 것과도 느낌이 크게 달랐다.

지현이는 그 적나라한 모습들에 정말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아.. 저것이 정말 섹스라는 것이구나...'

지금 지현이의 눈앞에 펼쳐지는 영상과 함께 스피커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끈적끈적한 신음소리, 젖은 살들이 부딪치는 소리들이 지현이의 온몸을 휘감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소녀의 작은 몸을 녹여나가고 있었다.

지현이는 온몸이 뜨겁게 열기에 휩싸이는 것을 느꼈다.

'아빠와 엄마도 저러셨을까..?'

넋을 잃고 모니터를 바라보던 지현이가 문득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

'혹시 아빠는 지금쯤 그 여자와 저러고 계신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니 더욱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아....  아 아..."

지현이의 입안은 갈증으로 바싹 바싹 타 들어갔다.

이대로 있다가는 무언가 일이 생길 것 같은 위기감이 들자, 지현이는 마침내 실행 중이던 동영상을 끄고 말았다.

그리고는 작은 어깨를 떨며 겨우 겨우 가는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하 아... "

겨우 정신을 가다듬은 지현이가 문득 아랫배에 축축함을 느끼고 치마 밑으로 그녀의 작은 손을 하나 집어넣어 보았다.

여자아이의 작은 팬티와 그 밑의 어린 계곡도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아...."

비로소 섹스라는 것을 본 지현이의 어린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나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난 아빠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진우는 저녁에 주희를 만나러 가면서 결심을 하였다.

오늘에야말로 관계를 정리하자고 이야기를 하겠다.

그동안 수 차례나 결심을 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못한 이야기였다.

요즘 들어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을 진우는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마음으로부터 기대는, 그런 눈빛이었다.

또한 주희의 마음이 그에게 열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때문에 진우는 점점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워졌고 부담이 커져갔다.

약속한 커피숍에 들어가자 그녀가 반가운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많이 기다렸어..?"

"아니에요...  ..... "

"응?  왜.. 무슨 할 말 있어..?"

"저어.. 사장님 오늘 무슨 날인 줄 아세요..?"

"오늘..?  글쎄...  혹시 네 생일이니..?"

"아 아니요.. 그런 것은..  그냥... 오늘은 우리가 만난 지 100일 째 되는 날이거든요.."

"아...!"

진우는 속으로 '그렇군..' 하고 생각했다.

'100일이라.. 이 아이와 만난 지가 그것밖에 안 되었구나.. 3개월 남짓...'

"그리고요..  오늘.. 할 말이 있어서 뵙자고 했어요..."

"무슨..?"

자꾸 이야기할 선수를 빼앗긴다고 생각하며 진우가 되물었다.

그러자 약간 망설이는 듯 뜸을 들이고는 그녀가 대답했다.

"아주 기쁜 소식이에요.. 사장님한테 처음 알려드리는 거예요.. 그러니 축하해 주셔야 해요.."

주희가 한 매니지먼트 사의 눈에 들어 그 회사에 소속하게 되었다고 했다.

물론, 그다지 큰 회사는 아니었고 회사도 아직은 그녀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단계이지만, 도우미 출신으로 이전까지 홍보영상의 배역이나 작은 카달로그의 모델 같은 것만 해오던 그녀로서는 큰 도약의 기회였다.

일단 일이 잘되면 다음 달부터라도 아침방송의 리포터 자리라도 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사소한 일이라도 중요한 것은 매체에 얼굴을 낸다는 것이다.

일단은 업계 관계자들의 눈에 자주 띌 필요가 있으니까.

하지만 진우는 짐작할 수 있었다.

주희처럼 힘없는 어린 여자가 그나마 이런 기회라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그러나 진우는 무어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솔직히 그가 그럴 자격이나 있기는 한 것일까?

진우가 그녀에게 무엇이며, 아니 그 자신도 결국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주희도 이것을 알기에 "축하해 주세요"라고 말을 하면서도 약간 망설이는 듯 했다.

진우 역시 잠시 머뭇거리다 이야기를 했다.

"그 그래.. 축하해...  잘 되었구나..."

진우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주희는 안도가 되는 듯한 표정으로, 그러나 약간은 서운한 표정 또한 보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결국 진우는 오늘도 차마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녀에게 그다지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주희를 만나고 새벽 늦게 들어온 진우는 지현이가 아직도 안 자고 소파에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올랐다.

지현이는 그때까지도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고민 중이었다.

"아직 안 자고 있었어..?  왜.. ......."

진우는 뭐라 지현이에게 말을 하려다 멈추었다.

지현의 눈가에서 물기를 봤다고 느꼈을 때, 진우는 다시 주희와의 결별을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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