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27)

“응! 연주회 중 아냐?”

“준우 씨, 목소리 듣고 싶어서.”

“음, 그래! 시간이 있는 모양이지?”

“지금 들어가야 돼. 어디예요?”

“지금 회사에서 퇴근하려고.”

“나, 늦게 끝나는데, 피곤해요. 어디 갈 건데요?”

“글쎄! 친구들과 술 한 잔 하고 들어가든지........”

“딴 데 가면 안 돼. 내 생각만 할 거지요?”

“하하하.......!”

준우가 웃는 동안 수진이 쪽 소리가 나는 입맞춤 소리를 내고 전화를 끊었다. 피식 웃음을 흘린 그는 문득 외롭다고 느꼈다. 장 인호에 대한 보복에 그녀를 가식적으로 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술이라도 취해서 집에 들어가고 싶었다. 휴대폰을 들어 친구의 전화번호를 누르려는데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수정에게서 걸려온 전화이기에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가 통화버튼을 누르니 톡톡 튀는 수정의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오빠! 아직도 회사야?”

“지금 퇴근하려고. 어디니?”

“나, 지금 친구들하고 ‘써든’ 클럽에 있어. 오빠! 이리로 와.”

“술 마셨구나! 그만 집에 들어와.”

“싫어. 친구들은 파트너가 있는데, 난 혼자야. 오빠가 데리러 와. 알았지! 기다릴게.”

“미라야! 너.........”

준우가 말을 끝내기도전에 수정이 전화를 끊었다. 어차피 진숙이 있는 집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는 그는 수정이 걱정스러웠다. 그의 눈에는 술에 취한 그녀의 당돌한 모습이 선하게 떠올랐다. 그는 결국 수정이 있는 클럽으로 차를 몰았다. 혼잡한 자동차의 물결을 헤치고 클럽에 도착한 그는 굽실거리며 맞이하는 종업원에게 승용차 키를 맡겼다.----------

클럽 안으로 들어가니 많은 젊은이들이 스테이지 앞 플로어에 몰려 있었다. 현기증을 일으키는 조명등과 밴드의 사이키 음악 속에 묻힌 젊은이들은 광란에 가까운 몸짓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준우는 입구에 서서 수정의 모습을 찾았다. 그때 좌석사이의 통로로 나오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그의 손을 잡고 끌었다.

“헤헤~! 오빠! 이리와.”

“그만 집에 가야지.”

“조금만 놀다가.”

“.........”

준우는 수정의 손에 이끌려 좌석사이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멈추어 선 곳은 벽 쪽에 놓인 좌석이었다. 소파에는 그녀의 여자친구 두 명이 앉았다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들의 옆에는 각각 젊은 남자 파트너가 앉아 있었다. 그녀들의 눈빛은 이미 취해 있었고 걸치고 있는 옷들은 흐트러져 있었다. 그녀들 중 한 명이 그에게 꾸벅 인사를 하며 헤픈 웃음을 흘렸다.

“또 보네. 오빠!”

“많이 마신 모양이구나.”

준우에게 인사를 하는 여자친구는 예전에 준우가 수정에 이끌려 클럽을 찾았던 날에 만났었던 영미였다. 그녀들의 남자 파트너들이 마지못해 조금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남자 파트너들은 준우보다 나이가 어려 보였다. 수정이 그를 밀어 소파에 앉혔다. 그리고 그녀는 서슴없이 그의 무릎을 깔고 앉았다.

“난 혼자, 외로웠단 말이야.”

보조개를 드리운 미소와 함께 눈웃음이 가득한 그녀의 까만 눈동자가 서치라이트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녀의 수정의 말을 듣는 친구들이 까르륵하고 폭소를 터트렸다. 영미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수정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야~! 네가 싫다면서 파트너를 보냈잖아.”

“비린내 나는 걸, 어떡해!”

벌떡 일어선 수정이 허리에 손을 짚고 눈을 흘겼다. 준우는 무릎에 앉았던 그녀의 뒷모습을 올려다보았다. 앙증맞은 엉덩이가 톡 튀어 나온 그녀의 허리 살결이 뽀얗게 들어났다. 수정 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앞가슴이나 허리, 그리고 허벅지가 들어나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수정을 쳐다보던 영미가 피식 웃으며 준우에게 말했다.

“오빠! 수정인 원래 그래! 항상 파트너를 쫓아 버려. 파트너 갈아 치우는 것이 재미있나봐.”

“내가 언제 그랬어!? 오빠 술이나 마시자.”

수정은 다시 준우의 무릎에 털썩 주저앉아 빈 잔에 맥주를 따랐다. 그리고 몸을 돌려 그에게 잔을 내밀었다. 갈증을 느끼고 있던 준우는 단숨에 잔을 비우고 내려놓았다. 여자 친구들과 파트너, 그리고 준우와 수정은 번갈아 술잔을 권하고 술을 마셨다. 록밴드의 연주 소리와 젊은이들의 열기는 시간이 갈수록 뜨거워졌다.

준우가 도착하기 전부터 술을 마신 수정은 꽤 취한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맥주를 입에 물어서 그의 입속에 불어 넣고 키들거리기도 했다. 보고 있던 영미가 파트너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종알거렸다.

“야! 못 봐주겠다. 우리 춤이나 추자.”

술에 취한 수정은 준우가 온 것이 마냥 즐거웠다. 그녀는 어떤 행동도 받아주는 그가 만만하기도 하지만, 어느 남자 못지않은 외모와 자상한 그가 듬직했다. 친구들과 파트너들이 광란하고 있는 플로어로 나가고 수정의 주정은 더욱 심해졌다. 그녀는 그의 뺨을 쥐고 입술을 마주치기도 하면서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그러다가도 그녀는 새삼스럽게 자신이 여자임을 느끼고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오빠. 우리도 나가자!”

“그만 집에 가야지.”

“그러면 난, 다른 클럽에 가서 밤 샌다.”

“하하하.......! 협박 야?”

연거푸 술잔을 받아 마신 준우도 술기운이 돌았다. 그는 마지못해 그녀가 이끄는 데로 스테이지 앞에 몸을 흔들고 있는 사람들 속에 묻혔다. 그들이 스테이지 앞으로 나가자마자 밴드의 연주곡이 발라드로 바뀌었다. 생글생글 미소를 띤 그녀가 그의 손을 잡고 다가섰다. 그의 가슴에 머리를 묻었다. 그가 음악에 따라 리드를 하지만 그녀는 매달리다시피 착 달라붙었다.

준우의 가슴을 파고드는 수정은 더 이상 어린 여고생이 아니었다. 그녀에게서는 상큼함과 함께 여인의 체취가 풍겨 나왔다. 리듬에 따라 움직이던 그는 하복부로 전해오는 그녀의 체온을 느꼈다. 하복부의 마찰을 피해 그가 피하면 그녀가 더욱 하복부를 밀착하고 매달렸다. 그가 의도하지 않아도 허벅지 사이의 페니스가 불끈불끈 발기를 했다.

수정은 남자와 깊은 육체관계를 모르지만 클럽에서 만난 파트너들을 상대해봐서 남자들을 다분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장난스럽게 하복부를 밀착하며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남자에게서 느끼지 못한 짜릿함을 느꼈다. 짓궂게 그의 표정을 살피던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외면을 했다.

수정은 허벅지 사이에 잇닿는 그의 남성을 의식하고 시선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다른 남자들과 달리 그녀는 온 몸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아찔했다. 허벅지 사이를 파고들듯이 우람하게 발기한 남성으로부터 전해오는 뜨거운 열기에 그녀는 비로소 자신이 여자임을 느꼈다. 그는 더 이상 그녀와 춤을 출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슴에 매달린 그녀가 앙증맞고 사랑스러워 꼭 껴안아 터트리고 싶은 충동 때문이었다.

“이제, 그만 가자.”

“싫어.”

“수정이 많이 취했어. 그럼 다음부터 같이 안 있을 거다!?”

“피 잇~!”

잠시 음악이 멈추고 춤을 추던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고 좌석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준우는 매달리는 수정의 손을 잡고 플로어 밖으로 이끌었다. 눈을 흘긴 그녀는 발걸음을 통통거리며 좌석으로 가서 앉았다. 그녀는 술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가슴에 매달려 있던 순간, 심장이 두근거리고 몽롱한 환각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그녀는 밤이 새도록 그의 가슴에 안겨 있고 싶었다.

그들이 좌석으로 돌아오니 친구들과 파트너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수정이 준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축 늘어졌다. 그는 잔에 남은 맥주를 마시고 그녀의 어깨를 부축해서 일으켰다. 카운터에서 술값을 계산한 그는 종업원에게 대리운전을 불러 달라고 하였다.

대리운전사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그들이 집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 술에 취한 수정은 그의 어깨에 기대 잠들어 있었다. 그는 수정을 등에 들쳐 업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식구들은 모두 잠이 들었는지 집안은 적막에 쌓여 있었다. 그는 발소리를 죽여 그녀를 업고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준우는 정신을 못 차리고 늘어진 수정을 침대 위에 눕혔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도는 그녀이지만 잠든 모습은 해맑은 미소가 담겨 있었다. 그는 그녀의 앵두처럼 도톰한 입술, 앳되어 보이는 귀여운 얼굴, 한창 피어나는 아담한 몸매를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유리 상자 속에 장식하고 싶은 인형 같았다. 그가 그녀의 뺨에 입맞춤을 하고 돌아서려는데 잠든 줄 알았던 그녀가 눈을 반짝 떴다.

“나, 안아 줘.”

“이런........!?”

눈가에 미소가 가득한 수정이 준우의 목을 껴안으며 잡아 당겼다. 그는 균형을 잃고 그녀의 몸 위에 쓰러졌다. 미소가 가득한 눈빛으로 올려다보는 그녀에게서 여자의 체취가 물씬 풍겼다. 충동을 느낀 그는 그녀의 입술에 입술을 포갰다. 오늘따라 여자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그녀의 입술은 상큼하고 달콤했다. 그는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혀를 빨아 당겼다. 그녀가 파르르 떨며 꼼지락거렸다.

준우는 가슴 밑에서 옅은 호흡을 쌔근거리는 수정의 봉긋한 앞가슴을 의식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젖가슴을 움켜쥐고 내려다보았다. 몽롱한 눈동자로 올려다보는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순간 그는 심호흡을 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여동생 정아를 떠올린 그는 결코 그녀만은 지켜주고 싶었던 마음에 자신을 향한 채찍질이었다. 슬며시 상체를 일으킨 그는 그녀의 뺨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잘 자!”

“.........”

준우는 수정에게서 벗어나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큰 눈망울을 굴리며 말똥말똥 쳐다보고 있었다. 방문을 열고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녀는 자신을 어리다고 여기는 그가 원망스러웠다. 그의 짧은 스킨십이지만 심장이 두근거리는 그녀는 그의 가슴에 안겨 잠들고 싶은 욕구를 느꼈었다. 그녀는 그의 가슴에 안겨 있는 동안 구름 위를 떠도는 것처럼 아찔하였다.

가족보다 친구들을 좋아하는 수정이지만 생모를 그리워할 만큼 정에 굶주린 여자였다. 그녀는 준우에게서 남다른 정을 느끼고 있었다. 친구들에 이끌려 젊은이들의 공간을 돌아다닌 그녀는 남자들의 유혹을 받기도 했다. 그녀는 어떤 남자의 스킨십에도 거부감을 느꼈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에게는 아련한 정과 함께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허전함을 느낀 그녀는 베개를 끌어안았다. 취기로 현기증을 느낀 그녀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한해가 저물어가고 벽에는 마지막 하루를 남겨둔 12월 달력이 걸려 있었다. 마지막 연주회를 끝낸 대기실은 혼잡하였다. 연말을 맞이한 단원들은 가족이나 연인을 만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뒤늦게 대기실로 들어와 바이올린을 케이스에 집어넣은 진숙은 서둘러 외투를 걸쳤다. 대기실을 빠져나가는 단원들끼리 인사를 주고받았다.

“수고했어!”

“내일 봐.”

“잠간만! 같이 가.”

“빨리 와.”

“수진아!”

“미안! 시간 없어.”

수진은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손을 흔들어 보이며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그녀는 준우와 만나기로 약속했기에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 나갔다. 얼마동안 데이트를 하지 못한 그가 기다릴 것 같은 그녀는 문예회관 층계를 뛰어 내렸다. 그녀는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람들 속에 서서 안절부절 했다.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들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건너편 위를 바라보며 비명을 질렀다. 사람들의 시선을 향해 바라보던 수진은 입을 가리며 외마디를 질렀다. 고층 빌딩위에서 사람이 순식간에 추락하여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사람은 스커트를 걸친 여자였다. 신호등이 바뀌고 사람들이 우르르 건너가 여자가 쓰러져 있는 곳을 에워쌌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교통정리를 하던 경찰의 호각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사람들이 제각기 한마디씩 했다.

“젊은 여자 같은데, 왜 그러지?”

“뛰어 내린 것 같은데.”

“쯧쯧! 젊은 나이에 안됐구먼.”

“무슨 일인지 몰라도 악착같이 살지.........”

길을 건너간 수진도 사람들 틈에 끼어 쓰러져 있는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보도블록에 머리를 부딪고 쓰러진 여자의 주변에 선혈이 낭자하였다. 엎드린 자세여서 자세히 볼 수 없지만 차림새를 보아 상류층 여자로 보였다. 너무 끔찍하여 그녀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얼른 자리를 피한 그녀는 준우가 기다리고 있을 일식전문점으로 들어갔다.

수진이 모르고 있었지만 고층 건물에서 뛰어내린 여자는 혜림이었다. 번민 속에 빠졌던 혜림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충고와 위로를 받고 어떻게든지 결혼하여 새 삶을 시작하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약혼 파기 통보를 받은 그녀는 더 이상 살아갈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녀가 누군가의 아기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약혼자 이 정민이 알게 된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정민의 아버지는 조 창식에게 어떻게 불결한 딸을 시집보내려고 했느냐고 하면서 노발대발하였다.

고통스러워도 결혼을 통해 새 삶을 살려던 혜림은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 하는 것 같아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혼자만의 고통 속에 세상을 하직하고 싶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에게 목숨을 버릴 수밖에 없는 자신을 알림과 동시에 자신을 강간했던 남자에게 원망과 저주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일식전문점 안으로 들어간 수진은 두리번거렸다. 홀 안에는 준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층 계단을 올라간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칸막이 너머 좌석에 앉아있는 그를 발견한 것이다. 그녀는 살금살금 뒤편으로 걸어가 그의 등 뒤에 다가섰다. 그는 신문을 보고 있어서 그녀가 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바이올린 케이스를 소리 없이 내려놓은 그녀는 양손으로 그의 눈을 가렸다.

“누구 게?”

“글쎄! 모르는 여자 손인데.”

“못 됐어! 피 잇!”

입술을 삐죽 내민 수진은 준우를 마주보고 앉았다. 준우는 담담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신문을 접어놓았다. 그녀는 바닥에 놓았던 바이올린 케이스를 옆의 의자위로 옮겨 놓으며 그의 표정을 살폈다. 탁자에 양손으로 턱을 괴고 그를 바라본 그녀가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요. 오래 기다렸어요?”

“아니! 온지 얼마 안 돼.”

“오래간만에 같이 외식하네요.”

“서로 바쁘니까.”

준우가 미리 주문했던 식사들을 종업원이 가져왔다. 수진은 종업원이 차려놓는 음식들을 그가 먹기 편하도록 옮겨 놓았다. 준우가 돌아서려는 종업원에게 소주를 추가로 주문했다. 곧 이어 종업원이 술을 가져오고 준우가 병마개를 따며 그녀에게 물었다.

“한잔 할 거야?”

“그래요!”

수진은 흔쾌히 탁자위의 잔을 집어 준우 앞에 내밀었다. 그들은 서로의 잔을 채워주고 술잔을 마주쳤다. 술을 과히 좋아하지 않는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잔을 비웠다. 식사를 하다가 초밥을 집어든 그녀는 일식집에 들어올 때 봤던 추락사한 여인을 떠올렸다. 초밥의 붉은 생선이 머리에서 선혈을 뿜어내던 여인을 떠올리게 했다. 눈살을 찌푸린 그녀가 말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뭐가.......!?”

“여기 들어오기 전에 빌딩위에서 추락한 여자를 봤어요. 머리가 터져 시뻘건 피가 뿜어져 나오더라고요. 아마 자살을 한 모양인데, 너무 끔찍했어요.”

“여자가 자살을.......!?”

“네.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평범한 여자는 아닌 것 같던데.”

수진의 말에 준우는 왠지 돌아가신 어머니와 이모의 처참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세상은 불공평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고통에서 벗어나는 사람도 있지만, 그의 식구들은 원하지 않는 죽음으로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은 버젓이 행복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것에 준우는 분개를 했다.

수진은 눈으로 본 처참한 광경에 몸서리치지만, 준우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상황에 치를 떨었다. 그녀는 그가 어떤 감정인지 모르는 체 보았던 느낌을 표현했다. 간단한 술과 함께 식사를 마친 그들은 거리로 나갔다. 성탄절이 지났지만 연말을 보내기 아쉬운 연인들이 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그의 팔짱을 끼고 걷던 그녀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대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요.”

“어디가고 싶어?”

“응, 홍콩도 가고 싶고 유럽, 그리고 바다만 보이는 해변에서 모든 걸 잊어버리고 싶어요.”

“그러나 현실이 그럴 수만은 없잖아.”

수진은 미래를 향한 꿈들을 짚어 보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술을 조금 마셨지만 그녀의 뺨은 다홍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젊은 남녀들로 혼잡한 거리를 걸어가며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한 시간 가량을 그녀와 거리를 걷던 준우는 조금은 지루해졌다. 걸음을 멈춘 그가 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넌지시 말했다.

“맥주 한잔 할까.......!?”

“또 마셔요?”

“왜 싫어?”

“준우 씨가 마신다면........”

주위를 살피던 준우의 시선이 번쩍이며 돌아가는 클럽 간판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수정과 같이 들어갔던 클럽을 떠올렸다. 그는 말없이 클럽 입구로 들어섰다. 잠시 주춤하던 수진은 빠른 걸음으로 그의 옆으로 다가가 걸었다. 미소를 띤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 본 그녀가 물었다.

“이런데 좋아해요?”

“아니! 사람들 속에 묻혀 보고 싶어서.”

그들은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이키 조명이 번쩍이는 실내는 감각을 마비시킬듯한 음악소리 속에 술에 취한 사람들로 혼잡하였다. 종업원이 그들을 좌석으로 안내하고 주문을 받아갔다. 클럽의 분위기에 익숙지 못한 수진은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 두리번거렸다. 그녀는 종업원이 가져온 맥주를 준우의 잔에 따르며 말했다.

“정신이 없어요.”

“뭐라고?”

요란한 사운드 음악과 소음으로 준우는 수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녀와 별다른 대화가 필요치 않았기에 그가 의도적으로 클럽을 선택한 것이다. 답답한 표정을 지은 그녀가 그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소곤거렸다

.

“음악 소리가 커서 정신이 없다고요!”

“하하~! 그냥 보고 들고 즐겨.”

웃음을 흘린 준우가 수진 앞에 맥주잔을 들어보였다. 그녀가 잔을 들어 그의 잔에 부딪고 맥주를 마셨다. 스테이지 앞의 플로어에서는 많은 쌍을 이룬 남녀들이 몸을 흔들며 젊음을 만끽하고 있었다. 클럽의 분위기에 다소 익숙해진 그녀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흥에 겨운 사람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준우는 수시로 술잔을 들어 마시며 수진의 잔을 채워 주었다. 그녀는 따라주는 술을 곧잘 마셨다. 빠른 템포로 연주하던 밴드의 연주곡이 잔잔한 발라드 음악으로 바뀌었다. 플로어에서 몸을 흔들던 남녀들이 각각 손을 붙잡고 블루스를 추기 시작했다. 준우가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

“우리도 춤출까?”

“나 춤 못 춰요.”

“그냥 리듬에 맡기면 돼.”

빙그레 미소를 진 준우가 일어서며 수진의 팔을 잡았다. 그녀는 마지못해 일어섰다. 그는 플로어의 구석진 곳으로 그녀를 끌고 갔다. 특별히 춤을 출줄 모르는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조금씩 발자국을 옮겼다. 클럽에 생소해서 긴장했다가 리듬에 익숙해진 그녀는 그의 가슴에 머리를 묻었다.

수진의 허리를 끌어안은 준우의 손은 점점 밑으로 내려갔다. 알코올은 사람의 마음을 승화시키며 달아오르게 한다. 그의 손은 그녀의 탐스런 엉덩이를 빠짝 당겨 밀착시켰다. 그녀에게서 전달되는 체취를 음미하는 그의 허벅지 사이에 발기하기 시작한 페니스가 불끈불끈 솟아올랐다. 그녀는 하복부에 잇닿아 꿈틀거리는 불기둥을 의식하고 쌔근거리는 호흡을 흘렸다.

부끄러움을 느낀 수진은 주위에서 포옹을 하고 있는 남녀들을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그들에게 시선을 사람들은 없었다. 아니 주위의 남녀는 그들보다 더 진한 스킨십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어두운 스테이지 구석진 곳에 있었기에 다소 안심을 했다. 그가 그녀의 엉덩이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어 들어 올렸다.

발끝으로 몸을 지탱하고 그에게 의지한 그녀는 허벅지 사이에 잇닿는 뜨거움을 의식했다. 그것은 마치 스커트와 팬티를 뚫고 들어 올 기세로 우람하게 발기한 그의 페니스였다. 온 몸의 신경이 전율하는 짜릿함에 그녀는 촉촉이 젖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 잉! 남들이 봐요.”

“왜! 두려워?”

수진은 대답대신 준우의 가슴에 묻은 머리를 좌우로 까닥거렸다. 그녀는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녀를 부둥켜안은 그의 손끝은 점점 엉덩이 사이를 파고들었다. 순결을 받친 그에게 단련되어가는 그녀의 성감은 시간이 갈수록 예민해지고 있었다. 엉덩이 사이를 파고 든 그의 손끝이 보지 입구를 더듬었다. 온 몸의 신경이 한군데로 몰리는 현기증에 그녀는 급히 숨을 들이켰다.

“주, 준우 씨.........!”

수진은 몸을 지탱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다리에 힘이 풀렸다. 발라드의 음악소리가 멈추고 다시 빠른 록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준우는 그녀를 이끌어 플로어를 나왔다. 그들이 클럽을 나온 시각은 이미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는 승용차를 세워 놓은 주차장을 향해 걸어갔다. 그를 따라온 그녀가 주차장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그의 손을 잡아 당겼다.

“나, 오늘 집에 들어가기 싫어.”

“...........!?”

아무 말 없이 돌아선 준우는 시선을 외면하는 수진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고 오던 길을 되돌아 걸어갔다. 그가 가고 있는 도로변에는 고층 빌딩이 즐비하였다. 그는 빌딩 사이의 호텔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그를 따라 호텔로 들어갔다. 그가 데스크로 가서 룸 열쇠를 받는 동안 그녀는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진은 마치 신혼여행을 온 신부처럼 자연스럽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룸으로 들어갔다. 룸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준우의 목을 껴안고 입술을 찾았다. 술기운과 분위기에 젖은 그녀의 가슴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가벼운 키스를 한 그가 그녀를 번쩍 안아서 침대위에 눕혔다.

준우는 수진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다시 입술을 찾았다. 입술과 입술이 잇닿아 습한 열기를 뿜어냈다. 그리고 그의 혀가 그녀의 입술을 헤집고 들어갔다. 그의 손에 의해 그녀의 코트가 벗겨지고 블라우스 단추가 풀어졌다.

수진은 그의 혀가 입속으로 들어와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는 쾌감에 몸서리쳤다. 브래지어를 밀고 들어온 그의 손이 젖가슴을 움켜쥐는 순간 그녀는 촉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샤워하고 싶어요.”

“..........”

준우는 말없이 수진을 풀어 주었다. 침대에서 나온 그녀는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벗어 걸었다. 이미 여려 차례 그의 여자가 되었던 그녀는 전혀 수줍어하지 않았다. 브래지어와 팬티 차림인 그녀는 몸을 사리지 않고 욕실로 들어갔다. 준우는 욕실에서 들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팬티 차림이 되어 소파에 앉았다. 텔레비전을 켜니 자동으로 설정된 채널에서 애로 영화사 상영되는 화면이 나타났다.

욕실에서 나온 수진은 준우와 텔레비전 화면을 번갈아 보았다. 그의 시선이 타월로 젖가슴을 감싸고 나오는 그녀에게 향했다. 그녀는 텔레비전 화면에 발가벗은 남녀의 정사장면이 그대로 들어나 보이는 애로 영화의 한 장면이기에 얼굴을 붉히며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빙긋이 미소를 지은 그가 욕실로 들어갔다.

준우가 욕실에서 나왔을 때 수진은 화장대 앞에 앉아 타월로 머리의 물기를 말리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등 뒤로 다가가 끌어안았다. 그녀의 앞가슴으로 뻗은 그의 손아귀에 탐스러운 젖가슴이 쥐어졌다. 그는 가벼운 키스와 함께 그녀를 번쩍 안아서 침대위에 눕혔다. 그가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는 타월을 벗겨내니 발가벗은 알몸이 들어났다.

매끈한 알몸을 들어낸 수진은 준우의 목에 팔을 감고 매달렸다. 그는 그녀의 몸 위에 체중을 실었다. 그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그녀는 다가오는 그의 입술을 쳐다보며 사르르 눈을 감았다. 입술과 입술이 부딪어 열기를 불러 일으켰다. 그녀는 입술을 헤집고 들어오는 그의 혀를 받아드려 타액을 들이마셨다. 그녀는 능동적으로 혀로 그의 혀를 마찰하며 파르르 떨었다. 그녀의 젖가슴은 그의 손아귀에서 농락을 당하고, 그의 손길에 숙련 되가는 그녀는 이내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의 분노에 찬 복수의 희생양으로 사육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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