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27)

진숙을 껴안은 준우는 그녀의 입술에 가벼운 키스를 했다. 그리고 그녀를 번쩍 안아 침대 위에 눕혔다. 그의 체취 속에 현기증마저 느끼는 그녀는 눈을 감고 꼼짝하지 않았다. 남자를 대하는 여자는 앙큼한 자기변명을 갖고 있다. 성욕에 눈이 먼 여자는 남자의 힘에 어쩔 수 없이 정조를 버렸다는 의미를 부각하고 싶어 한다. 그가 다시 키스를 하며 그녀의 걸친 옷을 하나씩 벗겨냈다.

준우는 결코 서두르지 않고 다음 행위를 연결하여 부드럽게 진행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지연시키거나 서툴게 행동하여 그녀가 거부감을 느끼게 하면 모든 것이 낭패였다. 그는 그녀가 느끼지 못하도록 우선 자신의 옷을 벗고 그녀를 발가벗겼다. 어느 사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섬세한 그의 손놀림이었다.

준우가 진숙의 가슴 위로 올라가 끌어안으며 진한 키스를 했다. 그녀는 강렬한 그의 포옹에 자신을 맡기고 싶었고 아늑하고 편안한 침대에서 다시 그의 키스를 음미하고 싶었다. 결코 그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키스의 쾌락이 그녀의 존재를 씻어 버렸고 두려움마저 뿌리째 뽑아 버렸다. 그녀는 많은 비가 온 뒤의 불어난 강물처럼 자신의 몸에 흘러넘치는 감정을 느끼고 싶었다.

준우의 가슴에 닿은 그녀의 젖가슴은 탐스럽게 솟아올라 있었다. 농도 깊은 키스 뒤에 준우는 진숙의 젖가슴을 둥글게 쓰다듬으면서 젖꼭지를 입속으로 빨아 당겼다. 그녀는 짜릿한 충격에 들이 마신 숨을 급하게 내뿜었다. 되도록 반응의 표시를 하지 않으려 했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머리와 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녀의 모든 손가락이 근육으로 들어난 그의 피부를 쓰다듬고 내려갔다.

“아..........!”

“음.............”

말이 필요 없는 그들은 오직 육감적인 모든 감각에 몰두하였다. 그녀의 젖가슴이 그의 타액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녀의 젖꼭지를 탐닉하는 그의 손길이 점점 밑으로 뻗어 내려갔다. 보드랍게 음모가 솟아난 그녀의 둔덕이 그의 손바닥 안에 들어왔다. 밑으로 뻗어 내려간 그의 손끝이 보지를 문지르고 내려가 항문까지 잇닿았다.

“아 으........”

진숙은 진절머리 칠 것 같은 충격에 둔부를 꿈틀거렸다. 허벅지 사이를 더듬는 준우는 손 끝에 묻어나는 촉촉한 액체를 의식했다. 이미 흥분한 그녀의 몸속에서 흘러나온 샘물이었다.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으려 하지만 그 자신도 흥분하여 못 견딜 입장이었다. 그가 손바닥으로 보지를 문지르자, 그녀가 허리를 들어 올리며 신음을 흘렸다.

“아 흐 으! 난 몰라.”

연한 해면체 같은 감촉을 느끼게 하는 진숙의 보지 살이 준우의 손바닥 안에서 꼼틀거렸다. 그의 손바닥 안에 보지 살이 마찰 될 때마다 그녀는 둔부를 비틀며 매달렸다. 그동안 장 인호를 향한 복수의 칼날을 갈며 노리고 있던 그에게 그녀는 첫 번째 희생양이었다. 정신 이상으로 자폐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여동생 정아를 떠올리는 그는 진숙이 스스로 무너져 고통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들고 싶었다.--

진숙의 젖꼭지를 잘근거리며 씹는 준우는 음모사이에 돋아난 음순을 두 손가락 사이에 끼고 마찰을 했다. 그녀는 들이 마시던 숨을 멈추고 둔부를 들어 올리며 바동거렸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음순이 젖꼭지처럼 발기되었다. 그녀는 온 몸의 감각기관이 한군데로 몰리는 쾌감에 진절머리를 쳤다.

“아 으 흐! 미, 미치겠어. 하 우.........”

“좋아? 그러면 사랑한다고 말해!”

“미, 민비서! 사, 사랑.......해.”

“그래야지. 사모님은 사랑스러워.”

준우의 숨결도 높아가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진숙의 보지 속에서 흘러나온 샘물로 적셔져 끈적거렸다. 그는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음순을 조몰락거리며 엄지손가락을 보지 구멍에 넣었다. 미끄덩하고 손가락이 보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그녀는 자지러지는 신음을 흘렸다.

“하 으~! 아, 안 돼. 미, 미 치, 겠,...... 어.”

진숙은 욕망으로 이글거리는 준우의 눈빛을 느끼며 숨넘어가는 신음을 흘렸다. 이제 그를 밀쳐내기보다는 오히려 그녀가 그의 손가락을 깊이 받아드리려고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쾌감으로 일그러진 눈빛으로 준우를 올려다보던 그녀가 밑으로 시선을 향했다. 아! 우람하게 발기한 그의 페니스가 그녀의 허벅지를 쿡쿡 찌르고 있었다, 남편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거대한 페니스에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준우는 고지를 점령한 전사처럼 희소를 흘렸다. 이제 그녀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그를 받아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집게와 중지 두 손가락을 한꺼번에 보지 구멍으로 집어넣었다. 그녀의 보지는 허기진 암사슴처럼 그의 두 손가락을 삼켰다. 그는 보지 속으로 들어간 두 손가락을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진퇴를 시켰다. 몇 번인가 보지 구멍 속으로 손가락이 거칠게 움직이고 그녀가 숨을 몰아쉬며 애원했다.

“그, 그만.......아 하. 으 으.......”

여자가 육체의 문을 활짝 열고 있을 때 여자의 심정은 남성을 받아드리고 싶은 욕구뿐이었다. 준우는 방망이처럼 발기한 페니스를 쥐고 그녀의 보지 입구에 대고 문질렀다. 연하고 부드러운 보지 살이 페니스의 귀두에 마찰 되었다. 그녀는 그의 등을 움켜쥐며 남자의 성기를 받아드리고 싶어서 둔부를 들어 올렸다.

준우는 거칠어진 숨을 흘리며 진숙의 온 몸을 더듬었다. 그는 그녀의 허리를 당기며 그녀의 사타구니 사이에 자신의 하복부를 가져다댔다. 그리고 늪으로 변한 그녀의 보지 속으로 자지를 돌진시켰다. 화들짝 놀란 그녀가 눈동자를 홉뜨며 매달렸다.

“자, 자기야........아 항. 하 윽.......”

“헉~!”

페니스가 열탕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에 준우는 숨을 몰아쉬었다. 준우 역시 흥분으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불타오르던 그의 분노는 몽롱한 욕정으로 녹아 버렸다. 이제 이 세상의 어떤 힘으로도 그들을 떼어 낼 수는 없으리라.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억제했던 모든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터질듯이 보지 속으로 자지를 밀어 넣었다가 빼내기를 반복했다. 그녀는 몸속이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것을 느꼈다.

“하 윽! 하 우, 아 하, 으 으, 하 아.........”

“사, 사모님은 대단.......해.”

준우는 헐떡거리면서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진숙을 칭송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녀는 보지 속을 헤집는 자지가 진퇴할 때마다 반복적인 신음을 터트렸다. 너무나 긴 시간동안의 전위를 받은 탓인지 그녀는 격렬한 엑스터시의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그는 보지 속에 박힌 자지를 급히 뽑아냈다가 다시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리고 때로는 좌우로 회전을 하며 보지 속의 예민한 피부들을 마찰시켰다.

“핫, 음, 읏, 하, 음, 핫, 읏, 헛.........”

“흠. 헉, 하, 헉........”

진숙은 짧고 반복적인 심음을 터트리며 준우의 등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자지가 빠져 나가면 그녀의 둔부가 따랄 올라오고 보지 속을 헤집으면 그녀의 나신이 출렁거렸다. 그녀는 자궁 속 깊은 곳의 뼈끝까지 자지가 잇닿는 쾌감에 기절할 것만 같았다. 머리를 침대 쿠션에 집어넣고 허리를 활처럼 들어 올린 그녀의 입에서 자지러지는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하 우! 난 몰라. 자기야.”

“헉.......!”

바들바들 떠는 진숙은 준우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허우적거렸다. 준우는 보지 속에 틀어박힌 자지가 뜨거운 열탕에 휘감기는 것을 느꼈다. 섹스에 민감하고 강한 그녀는 진액마저도 많은 량을 흘려냈다. 그녀는 드디어 남편에게서 간혹 느끼려던 오르가즘의 절정에 도달한 것이었다.

온 몸의 피가 머리끝까지 역류하는 엑스터시 속에 헐떡이는 준우도 사정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인내를 했다. 힘줄까지 돋아난 자지가 열탕으로 변한 보지 속을 드나들고 있었다. 페니스가 빠져 나올 때마다 그녀 몸속에서 흘러나온 흥건한 진액이 보지 밖으로 밀려 나왔다. 그녀는 연달아 느껴지려는 쾌감에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핫, 난 몰라, 하우, 핫, 흠, 아하........”

“헉, 흠, 흣, 헉........”

그들의 끈적끈적한 신음과 헐떡이는 숨소리가 방안에 가득했다. 진숙은 남편과는 다르게 보지 속을 헤집는 정력에 감동하고 있었다. 아! 지칠 줄 모르는 젊음의 혈기! 그녀는 이제 세상의 끝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황홀함에 빠져 있었다. 그의 자지가 보지 속을 헤집을 때마다 흐느끼는 신음, 끈적이는 땀방울과 정액이 으깨지는 소리가 어우러져 흘러 나왔다.

“하우, 헉. 아 흐 으. 찌 거덕. 찌걱. 헉, 찌걱. 하우, 하 앙. 아 하.......

준우의 가슴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진숙의 젖가슴을 적셨다. 그는 땀에 젖은 그녀의 젖가슴을 둥글게 마찰을 하며 이따금 젖꼭지를 이빨로 깨물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자지러지는 신음을 흘리며 몸을 뒤틀었다. 그녀는 몇 번이었던가, 연이어 느끼는 오르가즘의 황홀한 늪 속에 빠져 몸부림쳤다. 처음으로 빠져 보는 희열에 그녀는 치를 떨었다.

“하 앙! 그, 그만. 미치겠어. 하 흐 으. 아하.......”

“허 억~! 나, 나도 못 참겠어..........”

진숙은 애원하는 눈빛으로 준우를 올려다보았다. 더 오랜 시간 관계를 하고 싶은 욕구와 맥이 빠지도록 지친 그녀는 자신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이었다. 헐떡거리던 숨을 몰아쉬던 준우가 그녀의 엉덩이를 들어 올리며 경직되었다. 그녀는 자궁까지 솟구쳐 들어올 듯이 그의 자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움을 느꼈다.

“핫~! 안에다 사정을........? 난 몰라. 너, 너무 좋아.”

진숙은 혼잣말처럼 종알거렸다. 정말 긴 시간동안의 정사였다. 나른함에 빠져든 그녀는 아직도 보지 속에서 꿈틀거리는 자지의 움직임을 느꼈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커튼을 흔들었다. 그녀의 가슴위에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는 준우는 등에 맺힌 땀이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그녀가 독백처럼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제 나 어떡하지.......!?”

“어떡하기는! 그냥 변한 것은 하나도 없는 걸.”

준우가 진숙을 위로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는 그녀가 두려움으로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고 기다려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한동안 그녀의 보지 속에 자지를 박아 넣고 있던 그가 부스스 일어났다. 특별히 해야 할 말도 없었다. 사랑이나 애정 따위의 겉치레도 없었다. 단지 서로 만족할 수 있는 육체의 시간을 가졌을 뿐이었다. 그것은 준우가 다음 계획을 위해 그녀를 희생양으로 이용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장 사장은 약속대로 다음날 새벽에 KTX 열차 편으로 서울에 도착했다. 진숙은 아침 일찍 집에 들어온 남편을 보고 준우와 가졌던 정사를 떠올리며 자책감에 잠시 당황했으나 다른 날보다 반갑게 맞이했다. 장 사장은 아내가 웬일인지 생기 있는 모습으로 마지해주는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웬일이지! 기분이 좋아 보이니. 내가 출장을 자주 가야겠구먼.”

“당신도 참! 이틀이나 외박을 하고 미안해서 그러지요?”

“하하하~! 외박은!? 회사일로 바쁜 사람인데.”

“누가 알아요! 다른 여자 만났는지.”

“오래간만에 여편네한테 질투 받는 것도 괜찮은데. 하하하.........”

진숙은 공연히 투정까지 했다. 그녀는 내심 준우와의 관계를 의식하는 죄책감을 무마하려고 했던 질투하는 척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침 식탁에 식구들과 마주한 준우의 표정은 변하지 않고 평상시나 다름없었다. 장 사장은 속이 안 좋다면서 식사를 하는 도중에 먼저 식탁에서 일어섰다.

수진도 장 사장을 뒤따라 일어나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진숙과 마주앉은 준우는 태연하게 식사를 하고 일어섰다. 방으로 들어갔던 장 사장이 거실로 나오는 모습을 보고 식사를 하던 진숙이 식탁에서 일어나며 준우에게 시선을 향했다. 지난밤의 격한 정사를 떠올리는 그녀는 그가 눈길을 주지 않는 것이 서운했다.

식사를 끝낸 준우가 거실로 나섰다. 진숙이 남편의 서류가방을 들고 그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그녀가 하는 일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남편의 출근을 돕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직도 그의 체취와 분비물이 몸속에 남아 있는 것 같아 그를 흘깃 쳐다보았다. 잠시 그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하지만 준우는 담담한 표정으로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을 나서려던 준우가 걸음을 멈추고 흠칫하였다. 현관문이 열리고 낯익은 어린 여자가 들어온 것이다. 짧게 커트를 친 머리에 짧은 핫팬티와 티셔츠를 걸친 생기발랄한 어린여자였다. 준우는 주춤하며 놀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식구들의 시선도 갑자기 나타난 그녀를 향해 있었다.

준우는 이내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가 여동생 정아를 만나러 갔던 정신병원에서 그에게 돈을 꾸었고 몇 번인가 길에서 마주친 여고생이었다. 장 사장의 집에서 그녀를 만날 줄은 전혀 예기치 못해 준우는 당황하여 식구들의 눈치를 살폈다. 준우를 마주한 그녀도 당황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아저씨! 여긴 웬일예요?”

“미라, 넌 웬일이니?”

“내 집인 걸요.”

“집이라고.........!?”

미라의 말이 믿기지 않는 준우는 장 사장과 진숙, 그리고 가정부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녀를 엉뚱한 곳에서 만난 줄은 꿈에도 몰랐던 준우는 황당하기만 했다. 그가 어안이 벙벙하여 서있는데 식구들은 별로 놀라지 않는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를 빤히 쳐다본 장 사장이 발끈해서 그녀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수정이! 넌 어떻게 되먹은 계집애야?”

“왜 그래요? 집에 들어오는 게 잘못예요?”

“터진 입이라고 말을 해! 못 된 계집애. 나이도 어린 것이, 말도 없이 어디를 돌아다녀! 당장 나가서 다시는 들어오지 마!”

“내가 왜 집을 나가요!”

그녀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장 사장에게 대들었다. 준우는 그녀의 아버지가 장 사장이라는 사실에 넋을 잃었다. 그리고 분명히 장 미라라고 했던 그녀의 집에서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 수정이라는 사실이었다. 세상에는 우연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일들로 놀라게 한다.

아버지 장 사장을 잔뜩 노려본 수정은 거실로 들어서더니 퉁탕거리는 발걸음으로 수진의 방 옆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준우는 무언가 자신이 모르는 비밀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그 비밀의 존재가 의아스러웠으나 출근하는 장 사장보다 먼저 서둘러야 했다.

미라가 분명히 정신병원에 어머니가 입원해 있다고 준우에게 말했다. 그녀의 당돌한 거짓말이었던가. 아니면 어떤 말 못할 사실이 숨겨 있는 건가. 그녀는 왜 집에 머물지 못하고 밖으로 떠도는 것인가. 준우는 궁금하기 짝이 없었으나 누구에게 물어 볼 수도 없었다. 당사자인 그녀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궁금증을 풀어줄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날 늦게 장 사장과 함께 퇴근한 준우는 자신의 방에서 신축 아파트의 모델하우스를 공개하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가져온 계획서를 노트북에 옮기고 있는데 그의 방문이 살며시 열렸다. 한창 노트북 내용에 집중한 그는 방문이 열리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키들거리는 웃음소리에 그가 고개를 돌렸다. 전혀 예기치 않은 미라가 방문 앞에 뒷짐을 짚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그들 가족이 부르는 그녀의 이름은 수정이었다.

“너, 이 밤중에 웬일이니?”

“크크~! 들어오면 안 돼나요?”

“안 될 건 없지만, 밤늦게 어디 돌아다니는 거야?”

“마치 우리 집 식구처럼, 그렇게 묻지 말아요.”

“걱정 되니 그렇지!”

수정이 거리낌 없이 준우의 침대위에 탈싹 주저앉았다. 그녀는 껌을 짝짝 씹으며 다리를 꼬고 앉아 흔들었다. 힐끔 바라 본 준우의 시야에 그녀의 짧은 미니스커트는 팬티가 보일 정도로 치켜 올려져 있었다. 스커트 밑으로 들어난 허벅지는 실핏줄까지 보일 정도로 투명한 피부였다.

“오빠가 왜, 나를 걱정해요?”

“나뿐만 아니라, 식구들 모두가.......”

“식구들은 싫어도 오빠걱정은 접수하지. 헤헤.......! 그렇지 않아도 오빠 생각나서 들어왔는데.”

“내 생각을.......!?”

“응! 오늘 오빠를 집에서 보니 무척 반갑더라. 오빠가 우리 아빠 비서라는 걸 미리 알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난, 사실! 오빠가 좋아지거든.”

수정의 말에 선웃음을 짓지만 준우는 사실 그녀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녀가 왜 밖으로 떠도는지,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있다는 말은 사실인지를 알고 싶었다. 그렇다면 장 사장이 아내를 사별한 것이 아니고 생이별했다는 말인가. 그는 짐짓 의아스러운 표정을 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수정아! 너, 엄마가 정신병원에 있다고 했잖아?”

“수정이라고 부르지 마요. 난, 아빠가 새로 지어준 그 이름 싫어. 그리고 엄마가 정신병원에 있다는 말이 거짓말 같아요?”

“그럼, 너의 생모라고!?”

“응. 우리 엄마 불쌍해요.”

갑자기 수정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다면 장 인호와 이혼한 전처가 수진과 수정의 어머니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엄마를 그리워하는 그녀가 집밖으로 떠돌며 불량스러운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의 까맣고 큰 눈동자에서는 눈물까지 흘렀다. 그녀는 주먹으로 흐르는 눈물을 문지르며 울먹였다.

“우리 아빠 나빠. 으 흑~! 엄마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것도 아빠 때문이에요. 엄마가 빗 보증을 서준 외삼촌이 망하고, 아빠가 이혼하자면서 엄마를 내쫓았어요. 그 충격으로 고통스러웠던 엄마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으 흑....... !”

“그럼 엄마는 누구 도움으로 병원에 있니?”

“으흐흑~! 그건 엄마가 이혼할 때 받은 위자료에서 외할머니가........”

훌쩍거리며 우는 수정의 모습에 준우는 가슴이 아팠다. 그는 어머니 때문에 아빠를 미워하는 수정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준우는 그녀에게 동료의식 같은 것을 느꼈다. 그것은 무언가 반발하고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노 의식이었다. 책상 앞 의자에서 일어선 준우는 그녀 옆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랬구나! 그래서 미라가 집에 정을 못 붙이는구나. 그럴수록 방황하지 말고 꿋꿋하게 살아야 엄마도 좋아 할 거야.”

“흐흑~! 그러려고 해도 엄마가 떠올라서 아무것도 못하겠어요. 엄마는 혼자 외롭잖아. 엄마를 돌보지 않는 집안 식구들이 전부 미워요. 새엄마는 더욱 보기도 싫고.........”

“미라도 이제 학교를 졸업하잖아. 세상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란다. 때로는 싫은 사람들도 내편으로 만들고 살아야하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야.”

“..........”

훌쩍이는 수정이 준우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눈물로 얼룩진 그녀의 까만 눈동자가 무척 사랑스러웠다. 발랄하면서도 청순한 이미지의 그녀의 모습에는 이슬을 머금고 피어나는 꽃망울 같은 여자의 연약함이 가득했다. 이를테면 꺾어서 간직하고 싶은 장미 꽃송이 같았다. 아담한 그녀에게서 청초한 여자의 향기가 흘러나왔다.

준우는 여동생 같이 귀엽게만 생각하던 수정에게서 풍기는 여자의 체취가 느껴졌다. 그는 공연한 생각을 한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가 그녀에게 느껴서는 안 될 감정이었다. 그의 감정을 헤아리듯이 그녀가 눈물이 맺힌 큰 눈망울로 그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그녀가 흐느꼈다.

“난, 믿을 사람이 없어. 난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어. 오빠는 친 오빠 같고, 나를 이해할 것 같아.”

“이해하고말고.........! 다만 힘들수록, 미라! 마음을 굳게 가져야 돼.”

준우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느냐고 자신을 탓하였다. 그녀는 결코 위로를 하거나 정을 주어서는 안 될 대상이었다. 그녀는 그가 장 사장에 대한 원한을 갚을 목표 대상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적개심을 느낄 수 없었다. 그것은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정신병원에 갇혀있는 여동생 정아를 생각해서였다.

수정과 준우는 우연한 만남으로 인연이 된 사이였다. 서로 같은 방향으로 걸어갈 인연이 아니고 언젠가는 악연이 될 수밖에 없는 인연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들을 모르는 그녀는 짧은 시간에 그에게 마음을 열고 의지하려 했다. 그도 그녀의 푸념을 들어 주고 위로를 해 줄 수밖에 없었다. 아무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그녀는 한동안 자신의 감정을 하소연을 하고 돌아갔다.

다음날 신축 아파트의 모델하우스를 공개행사가 성황리에 시작되었다. 행사장에는 많은 건축 회사 관계자와 공무원들이 참석하였다. 참석한 사람들은 유럽풍의 건축 기법을 도입한 건축 모델에 깊은 관심을 표시했다. 건축 관련 인사들 외에도 장 인호사장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 보습도 보였다. 참석인사들을 안내하던 준우의 눈빛이 반짝였다.

준우가 예상하지 못한 여인의 모습이 행사장에 나타나 것이었다. 연미색 투피스를 걸친 여인은 다름이 아닌 준우의 첫사랑이었던 황 은지였다. 그녀는 지팡이를 짚고 다리를 저는 중년남자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 준우가 반가움에 다가갔으나 그녀는 달랐다. 그가 인사를 하자, 남편을 의식한 그녀는 무표정하게 의례적인 표정으로 고개만을 까닥거렸다.

스스로 전화를 해서 만나 울울한 감정을 들어내던 은지의 모습이 아니기에 준우는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이내 그는 자신의 판단이 잘못 되었음을 알았다. 그녀는 같이 들어온 중년남자를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은지와 나란히 다리를 절며 걸어가는 중년남자! 중년남자가 지팡이를 잡고 있는 손등의 뱀 형상의 문신! 준우는 가슴에 갇혀있던 분노가 치솟았다.

틀림없이 중년남자는 준우가 찾고 있던 조 창식이었다. 여동생 정아의 순결을 짓밟고 겁탈한 놈! 준우는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그는 전혀 조 창식이 올 것이라는 것을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로 들어가 초청장을 발송한 참석인사 명단을 살펴보았다. 거기에 참석인사 명단과 주소가 적혀 있었다.

자신의 목표에 너무나 소홀하게 대처했던 준우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는 행사가 끝나고 좀 더 적극적으로 조 창식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였다. 그리고 그가 또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은 황 은지가 조 창식의 후처로 들어갔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조 창식은 나이가 두 살 아래인 장 인호를 폭력배 조직에서 형님으로 모시던 사이였다. 조 창식은 스마트라는 대형마트를 운영하면서 장 인호의 대진 유통에서 많은 지원을 받고 있었다.

준우는 조 창식의 마트 운영에 관한 정보를 알아내려고 장 사장에게 올라오는 대진 유통에 관련된 서류들도 면밀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다른 업체 같으면 선불을 받거나 물품 인도 시에 대금을 회수하지만 창식의 스마트 마트만큼은 삼 개월 후불로 대금을 회수하는 여유를 주고 있었다. 준우는 조 창식에게 접근하려고 하지만 황 은지가 마음에 걸렸다.

황 은지는 조 창식의 모텔을 맡아서 운영하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 그리고 남편의 딸 혜림과 아침 식사를 하고 집을 나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모텔로 나온 그녀는 지난밤의 수입을 하고 남편의 통장에 입금시킨다. 그녀가 집안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었다. 대부분 정오가 되기 전에 모텔 손님들은 룸을 비웠다. 청소를 담당하고 있는 아줌마들이 청소를 끝냈다는 보고를 듣고 그녀는 그때서야 욕실로 들어가 씻었다. 타월로 머리의 물기를 닦아내며 욕실을 나오던 그녀는 휴대폰의 벨소리를 들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뜻밖에도 민 준우였다. 

“황 은지.......!? 나, 준우야.”

“아! 은지에요. 오래간만이네.”

“오래간만은......!? 며칠 전에도 봤잖아?”

“미안해요. 그날은 남편이 기다리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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