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27)

준우는 은지와 헤어지고 나서도 한동안 서 있었다. 이따금 뒤돌아보는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그는 걸음을 옮기며 망설였다. 장 사장이 없기에 회사에 들어가도 별로 할 일이 없었고 은지 때문에 가슴 한편이 찡하여 술이라도 마시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일단 회사에 들어가 동태를 살핀 후 퇴근하기로 하였다.

회사건물 입구로 향해 층계를 오르던 그가 걸음을 멈추고 망설였다. 사무실에 얼굴을 비추면 퇴근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는 다시 층계를 내려오려고 하다가 우뚝 섰다. 그와 마주보며 계단을 내려오던 여자가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항상 우연히 만나게 되는 장 미라였다.

“어!? 준우 오빠! 또 만나네.”

“넌, 오늘 웬일이냐?”

“헤헤~! 아빠한테 용돈 받으러 왔는데.”

“아빠가 여기 일하고 있니?”

미라가 팔짝팔짝 층계를 뛰어 내려오더니 서슴없이 준우의 팔에 팔짱을 꼈다. 짧은 핫 팬티에 민소매를 걸친 그녀는 역시 발랄하고 당돌했다. 그는 아담하게 솟은 그녀의 앞가슴과 핫 팬티 밑으로 들어난 우윳빛갈의 매끈한 허벅지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래. 용돈은 받았니?”

“아빠가 없어요.”

“안됐구나.”

“오빠! 오빠는 볼 때마다 멋있어진다. 나, 오빠가 좋거든.”

“왜!? 또, 돈 꿔 달라고?”

준우는 층계를 내려오며 피식 웃었다. 그의 팔에 매달린 미라가 보조개를 들어내는 싱그러운 미소를 흘리며 눈웃음을 쳤다.

“정말이라니까. 오빠가 좋다니까. 난, 오빠가 없어.”

“하하~! 어쨌든 듣기는 좋구나.”

“오빠, 내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데, 클럽에 가면 안 돼?”

“그런데 다니지 말고, 집에 일찍 들어가.”

“난 새장에 갇히는 것 같아서 집에 들어가기 싫어. 오빠 같이 가자.”

미라가 준우의 팔을 붙들고 애교를 부렸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있고 우연이라고 해도 그는 그녀의 청을 들어 줄 수 없었다.

“그럴 시간이 없구나. 괜히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들어가.”

“피 잇~! 싫음 관둬요. 우리끼리 가지 뭐. 헤 헷~! 오빠 다음에 또 봐.”

층계를 뛰어 내려가는 미라가 헤픈 웃음을 흘리며 손을 흔들었다. 준우는 뒤로 질끈 묶인 머리를 찰랑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앙증맞고 귀엽게 느껴졌다. 그는 건물 주차장으로 가서 승용차에 올라탔다. 운전석에 올라앉은 그가 잠시 망설이다가 주차장을 빠져 나왔을 때 친구를 만난 미라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며 집으로 향해 운전을 했다.

집에 도착한 준우는 정원에 나와 있는 식구들을 볼 수 있었다. 집사 박 씨는 정원수를 관리하고 있었고 진숙과 가정부 강릉댁은 정원 한구석 텃밭에 가꾼 채소를 광주리에 담고 있었다. 준우는 상의를 벗고 러닝셔츠 차림으로 집사를 돕기 위해 나섰다. 그는 집사와 같이 정원수 가지를 치기 시작했다.

뒤를 힐끔 돌아보는 준우와 진숙의 시선이 마주쳤다. 젊은 열기가 돋보이도록 근육을 들어낸 준우의 균형 잡힌 체격! 진숙은 한동안 준우의 뒷모습을 멀거니 쳐다봤다. 준우를 보고 있는 사람이 또 있었다. 건넌방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고 있는 수진의 눈동자가 햇빛에 반사되었다. 외출준비 중이던 수진은 남성미를 흠씬 느끼게 하는 준우의 매력에 동요되었다. 그녀는 외출을 하려고 걸치고 있던 바지와 셔츠가 마음에 들지 않아 벗어던졌다.

비록 외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지만 수진은 준우의 시선을 끌고 싶었다. 처음부터 자존심을 앞세워 까칠한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그녀의 속마음은 점점 그에게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녀는 짧은 스커트에 민소매의 블라우스를 걸쳤다. 블라우스의 앞가슴이 깊게 패인 그녀의 모습이 거울 속에 선정적으로 들어나 보였다.

정원수에 물주기를 마친 준우가 벗어 놓은 상의를 벗어 들고 현관으로 들어섰다. 마침 현관에서 구두를 신고 일어서던 수진이 준우와 마주치고는 흠칫하였다. 그녀와 코앞에서 시선을 마주친 준우가 쓴웃음과 함께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천박하게 보이지 않아요?”

“뭐가요!?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나름대로 관심을 갖으라고 치장하고 나온 수진은 화가 나서 톡 쏘아붙였다. 비아냥거리듯이 웃음을 흘린 준우가 그녀의 어깨를 향해 손을 뻗쳤다. 눈동자를 크게 뜬 그녀가 뒷걸음쳤다. 그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녀의 어깨에 묻은 머리카락을 떼어 내 주었다.

“숙녀가 칠칠맞게........”

준우를 피해 뒷걸음치던 수진이 다리를 삐끗하며 균형을 잃고 앞으로 갸우뚱하였다. 준우가 얼른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넘어지려는 그녀의 어깨를 붙들고 안았다. 입술이라도 닿을 듯 가까워진 그들은 서로 당황하였다. 얼굴이 빨개진 그녀가 공연히 눈을 하얗게 흘겼다.

“남이야!? 웬 걱정이에요........댁 때문에 넘어질 뻔 했잖아요.”

“하하~! 꼭 싸우러 덤비는 사람 같네. 상냥하게 말해도 될 걸!”

어의가 없다는 표정을 지은 준우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수진은 자존심 때문에 그의 호감을 받아 드리지 못한 것이었다. 외출을 하려고 현관문을 나서는 그녀는 상냥하게 대하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그녀는 자상한 그의 행동에 다시 한 번 깊은 호감을 느꼈다. 그녀는 그동안 그에게 까칠했던 자신을 은연중에 후회했다.-

준우는 수진이 아직도 마음의 벽을 허물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성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준우는 막상 할 일이 없어 무료함을 느꼈다. 한 시간 가량 책을 보다가 지루함을 느낀 그가 아래층 거실로 내려갔다. 집사 부부는 별채로 쉬러 갔는지 보이지 않고 고 진숙 혼자 소파에 앉아 TV를 켜놓고 있었다. 진숙이 준우를 흘깃 쳐다보더니 말했다.

“음료수 한잔 할래요!”

“네.........”

그렇지 않아도 갈증을 느끼던 준우가 소파에 가서 앉았다. 진숙이 주방에서 유리컵과 음료수를 들고 왔다. 그리고 그의 앞에 유리컵을 놓고 음료수를 따라 주었다. 그는 음료수를 마시면서 텔레비전 화면을 주시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연예계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 남편이 있는 중견 여배우가 외도를 해서 이혼 위기에 놓였다는 것을 전하고 있었다. 그녀가 준우에게 넌지시 물었다.

“민 비서는 연애도 안 해?”

“왜요......!?”

“여자를 만나는 것 같지도 않고. 쉬는 날도 집에만 있기에.”

“아직 그럴 여유가 없어서요. 변변치 못하니까 여자가 없나 봐요.”

“민 비서 같은 사람이 어때서!? 인물 훤하고 체격도 좋을뿐더러 능력도 있잖아.”

“글쎄요~! 여자 복이 없나보죠.”

준우는 자신을 칭찬하는 진숙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그는 진숙을 장 사장에게 고통을 안겨줄 첫 번째 타깃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원피스 앞가슴이 벌어져 있어도 그녀는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는 어렵지 않게 그녀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녀는 오히려 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원피스 앞섶을 벌리며 손바람을 일으켰다.

“민 비서! 안 더워? 왜 이렇게 날씨가 덥지........!?”

“비라도 오려는 모양입니다.”

“민 비서는 어떤 여자를 좋아해?”

“저는 평범한 여자가 좋아요. 가식적이지 않고 솔직한 여자이고 나를 이해해주는 여자면 좋겠지요.”

진숙은 준우의 시선을 의식하며 이것저것 캐묻기 시작했다. 예전에도 애인이 없었느냐, 대학 생활은 어떠했느냐. 여교수들이 예뻤느냐. 결혼한 친구들은 없느냐. 그녀는 틈을 주지 않고 계속 질문을 던지면서 자신의 처녀시절 얘기를 곁들였다. 준우는 그녀의 얘기를 통해 많은 남자들과 교제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모님, 젊은 시절에 많은 남자들 시선을 받았겠습니다!”

“그런데 난, 한 남자와 오래 사귀질 못했어.”

“그만큼 사모님 미모가 뛰어났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면도 있지.”

준우는 그녀가 더 흥을 돋우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음료수 잔을 들어서 목을 축이는 그녀의 얼굴이 맥주를 마신 것처럼 다소 발그스름해져 있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중견 여배우가 남자와 모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모자이크 처리되어 나오고 있었다. 화면을 빤히 주시하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젊은 남자들이 유부녀를 좋아하나?”

“글쎄요! 그것도 인연이 아닌 가요!”

“하기야, 요즘 유부녀들이 젊은 애인 한 명 정도 없으면 바보 취급당한다던데.”

“여자들끼리는 그런 얘기도 하나요?”

“호호~! 솔직히 친구들끼리는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말해. 난 그럴 주제도 못되지만.”

“왜 어때서요? 사모님은 아직 처녀 같고 여자로서 한창 성숙하게 보이는 나이잖아요.”

“민 비서는 그렇게 보여?”

“네. 아름다우십니다.”

“난 젊은 남자라고 다 좋아하진 못할 것 같아. 민비서 같은 타입이면 몰라도........”

그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배시시 눈웃음치며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은 어찌 보면 무료함을 채우려는 유혹이 깃들어 있었다. 준우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적당한 시기가 되면 그가 바라는 대로 그녀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다가 올 것 같았다. 그는 그녀를 이용해서 창식이라는 의문의 남자에 대해 알고 싶었다.

“혹시 창식이라는 분을 알고 계시나요?”

“아! 조 창식! 그 사람은 왜?”

진숙의 입에서 조 창식이라는 아름과 성이 튀어 나옴에 준수는 다소 흥분했다. 그러나 그녀가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준수는 심호흡을 하며 머리를 굴렸다.

“회장님이 창식이라는 분에게 심부름을 시켰는데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요.”

“나도 자세히는 몰라. 오 년 전인가! 아내가 죽고 결혼한 아들 외에 딸 하나를 데리고 사는데 재혼했다고 하지....... 돈으로 젊은 여자를 데려다 사는 거지. 아마 지금 성남에서 살고 있을 걸.......사장님하고는 무척 절친한 사이였는데 요즘은 왕래가 없었던 걸로 알아. 무슨 심부름인데?”

“그건 말씀 드릴 수 없고. 뭐하는 사람인데요?”

“그것도 안 가르쳐 주고 심부름하래?”

“사무실 위치만 알고 있습니다.”

당황한 준수는 얼버무려 말했다. 물론 그가 조 창식의 사무실을 알고 있다는 것도 거짓말이었다. 조 창식에 대해서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진숙에게 방금 들은 것이 전부였다. 그녀가 조 창식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사항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 사람 집에서 가까운 곳에 모텔과 대형마트를 하고 있잖아.”

“아! 사무실에 없으면 모텔을 찾아가라는 말은 들었어요.”

준수는 모르고 있었던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능청을 떨었다. 그런데 진숙이 갑자기 폭소를 터트리며 밀을 잇지 못했다.

“호호호.......! 그런데, 이런 말해도 되나 몰라. 호호~!”

“뭔데요........!?”

“그 사람, 월남 파병 갔다가 하반신을 다쳐서 다리를 절고 부부관계도 어렵다더군. 호호호.......”

“월남 요........!?”

“그래서, 항상 발기부전치료제를 먹고 부부관계를 한다는군. 젊은 여자를 아내로 데려다 사니 잠자리는 해야겠지. 호호호.........”

“하하하.........”

간드러지게 웃는 진숙은 서슴없이 남녀관계를 말하면서 공연히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붉혔다. 준우도 덩달아 마른 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어깨너머로 손을 뻗쳤다. 그녀는 조금도 그를 경계하지 않았다. 참지 못하고 웃음을 흘리는 그녀의 젖가슴이 농염하게 흔들렸다. 그는 손바닥으로 그녀의 어깨를 슬며시 감싸 안으며 물었다.

“하하~! 아무리 돈도 좋지만, 여자가 그걸 알고 가만있나요?”

“어쩌겠어! 젊은 몸이지만 돈에 팔려온 신세이니.”

진숙은 어깨를 감싸는 준우의 손을 전혀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깨와 어깨가 맞닿고 그녀는 처녀시절로 돌아가 남자를 대하는 것처럼 마음이 살레였다. 준우는 그녀가 어렵지 않게 이끌려 올수 있음을 감지하였다. 그에 대한 그녀의 호감은 깊어가고 그들 사이의 분위기는 무르 익어갔다. 그는 관심이 없는 척하면서도 그녀의 동태를 살폈고, 그녀는 은근히 그의 일거일동을 주시하며 과일을 깎아 오기도 하면서 수다를 떨었다.

준우는 다음날도 회사에 잠시 다녀온 후에 집에서 머물러 있었다. 가정부와 집사가 없는 한가한 시간이었고 집안에는 진숙과 준우 둘 뿐이었다. 준우가 거실에서 텔레비전 리모컨을 들고 방송국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안방에서 나온 진숙이 준우를 잠시 바라보더니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주와 맥주병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민 비서! 날씨가 무더워, 갈증 나는데 우리 맥주 한잔 할까?”

“네. 그러시죠.”

어디선가 매미 우는 소리가 들렸다. 진숙의 이마에는 조금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녀는 맥주병과 안주를 탁자위에 내려놓고 얼굴에 손바람을 일으켰다. 그리고 준우 앞에 유리잔을 내려놓고 맥주를 따랐다. 준우가 얼른 맥주병을 받아 그녀의 잔을 채워주었다. 그들은 맥주잔을 들어 한 모금씩 마시면서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회장님 심부름은 다녀온 거야?”

“아! 조 창식 씨!? 다녀왔습니다.”

준우는 엉겁결에 거짓말을 했다. 텔레비전에서는 사랑과 전쟁이라는 부부클리닉 프로그램이 재방송 중이었다. 특별히 이야기할 수재거리가 없는 그들의 시선은 텔레비전 화면을 향했다. 병든 남편을 등한시하는 아내가 젊은 남자와 외도를 하는 불륜 현장이 화면에 나타났다. 텔레비전화면과 준우를 곁눈질해서 보던 그녀가 불쑥 말했다.

“요즘 젊은 남자들은 유부녀를 좋아한다면서?”

“그런 가요! 저는 그런데 관심이 없어서.”

“친구들을 만나면 그런 애기들을 하는데, 대부분 젊은 남자 하나씩은 애인으로 사귀고 있는 모양이야.”

“그게 부러우세요?”

“부럽다기보다는! 남편만으로 만족 못하는 게 요즘 여자들 심리인가 봐. 난 그럴 재주도 없고 처지도 못 되고.......”

“왜요! 어제도 말했지만 사모님은 아직도 젊고 미인이십니다.”

“호호호~!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

“정말에요. 치장하고 나가면 처녀인줄 알겠어요.”

준우는 어제의 분위기를 이어가며 진숙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들은 들고 있는 맥주잔을 들고 마셨다.

진숙은 준우의 말을 돼 새기고 있었다. 분명히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하는 그의 표현이었다. 빈 잔에 맥주를 따르던 진숙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떠졌다.

“정말......!?”

“그럼요. 저는 사모님을 처음 봤을 때 따님인줄 알았어요. 저는 사모님 같은 여자가 좋아요.”

“그냥 인사치례로 하는 말이지?”

“아뇨! 적당한 키에 통통한 몸매와 서글서글한 사모님의 눈동자가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주책없이 웬만한 남자들은 별로야! 훤칠한 외모에 믿음직스런 민비서는 여자들이 많이 따를 거 같아.”

“그런데 여자 복이 없는지, 아직 여자가 없네요.”

“내가 소개시켜줄까. 처녀 아니면 유부녀?”

진숙은 준우의 외모로 봐서 여자들에게 꽤 인기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는 없었다. 반듯해 보이기는 해도 그도 여자를 싫어하는 하지 않을 곳이라는 생각에 그녀가 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준우는 그녀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거리낌 없는 그녀의 성격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준우는 진숙이 자신에 대한 관심이 깊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은 그녀가 그의 마음을 시험해 보는 말이었다. 그는 드디어 계획대로 그녀가 올가미에 걸려들었다는 것에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그는 능청스럽게도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하~! 웬 유부녀!?”

“남자들은 다 똑같잖아!”

“저는 별로 생각 없어요. 사모님 같은 여자면 몰라도.”

“농담하지 마.”

진숙이 하얗게 눈을 흘겼다. 그녀는 준우의 말이 싫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가 바라던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창문을 열어 놓았으나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았다. 더위를 느낀 그녀는 블라우스 앞섶을 흔들어 바람을 일으키기도 하고 스커트를 걷어 올리기도 했다. 스커트 밑으로 들어난 그녀의 허벅지가 유난히 선정적으로 느끼게 보였다.

진숙이 다시 얼굴에 손바람을 일으키더니 일어나서 거실 창문을 닫고 에어컨 스위치를 눌렀다. 에어컨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금방 땀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불륜관계가 된 유부녀와 젊은 남자가 침대위에 반 나신으로 포옹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화면을 주시하는 진숙이 준우를 의식하며 힐끔 쳐다봤다. 맥주 몇 잔을 마신 진숙의 눈빛이 흔들렸다.

“호호~! 사람은 다분히 동물적인 본능을 갖고 있는 거 같아.”

“신이 아니고 인간이니까요. 본능에 열중하는 것이 인간이구요. 외람된 말이지만, 사모님도 다른 남자를 생각해 본적이 있어요?”

“호호~! 아니라면 거짓말이지. 난 아직도 그 이에게 만족해보지 않았으니.........”

“회장님이 첫 남자는 아니지요?”

“그걸 물어 봐? 내 나이가 몇인데! 바보같이........”

술기운이 오른 진숙은 서슴없이 대답을 하며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준우는 더 이상 체면 따위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본격적으로 그녀를 유혹하기로 작정하였다. 그가 그녀에게 그윽한 눈빛을 보냈다. 그의 눈빛을 의식한 그녀는 그때서야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내가 만약 사모님을 좋아한다면 어떡하겠어요?”

“무슨 말........!?”

“이를테면 말입니다. 내가 사모님 같은 스타일을 좋아한다면 어쩌겠느냐고요?”

“호 홋~! 좋아한다는 것, 기분 나쁘지는 안잖아.......!?”

준우의 그윽한 눈빛을 의식하는 진숙은 가슴 속이 뭉클하며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젊은 남자의 혈기를 느끼는 그녀는 새삼스럽게 여자가 된 심정이었다. 그를 의식하는 그녀의 눈빛이 가늘게 떨렸다. 그녀는 공연히 그의 시선이 앞가슴을 향하는 것 같아서 블라우스 옷깃을 여미었다.

그들의 시선은 텔레비전을 향하고 있으나 마음은 교감의 공간 속에 머물러 있었다. 진숙은 자신에게 관심 있는 눈빛으로 이따금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서 짜릿함을 느꼈다. 침묵의 시간이 흘러가지만 그들 사이에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교감의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부부클리닉 단막극이 끝나고 전문가들의 토론이 이어지고 있었다. 여성 전문가가 대학 교수에게 물었다.

“선생님의 저서에서는 프로이드의 성 심리학 내지는 정신분석학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는데요. 너무 파격적인 것이 아닌가요?”

“부부간의 현실에 있어서 인간은 생리적 생체적으로 실존적인 불안에서 탈피하려고 합니다. 이상의 오감도에서 제일의 아해, 제이의 아해 등의 문구는 정자로 보았습니다. 정자란 아해들의 원형이지 않습니까. 정자란 자궁이라는 막다른 골목에서 살아 남아야하는 운명을 지니고 있지요. 질주하는 정자들의 공포는 곧 우리 인생의 실존적인 불안을 상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부부간의 불만은 우리 인생의 실존적인 불안이고 자궁 속에 질주하던 정자 시절부터 우리라는 존재와 연관성을 가졌다는 말 아닙니까.”

“그리고 말이지요. 13이라는 숫자를 해석하면 1은 남성의 성기를 가리키고 3은 여자의 젖가슴이나 둔부를 가리킨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1과 3이 합해진 형태는 곧 성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는 말이죠. 인간의 성은 자유롭게 존중 받아야 합니다. 남자의 정자는 살기위한 무서운 질주입니다.”

난해한 문학의 해설을 듣는 준우와 진숙은 묘한 흥분을 일으켰다. 진숙에게 남편의 정자라는 것은 사실 무서운 질주가 아니고, 죽은 액체나 다름없었다. 때로는 그 죽은 액체마저 뿜어내지 못하는 고장 난 기계였다. 방송을 의식해서인지 교수는 여성전문가의 질문을 묘하게 피해 나갔고 질의와 대답을 하던 사랑과 전쟁 프로그램의 토론은 스텝자막과 함께 끝이 나고 있었다.

진숙이 준우를 의식하고 힐끔 쳐다보았다. 소파 등받이에 얹혀있던 준우의 팔이 스르르 밑으로 미끄러졌다. 그리고 진숙의 어깨를 끌어 당겼다.

“사모님이 아름답습니다.”

“민비서..........”

준우와 시선이 마주친 진숙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술기운 탓인지 그녀의 입술이 유난히 붉게 들어나 보였다. 입술이 마주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그녀의 마음속은 혼란해졌다. 민비서가 키스를 하려는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반응해야하는가. 그녀는 그의 키스를 가다렸다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 할 수 없었다. 그를 거부하기는 너무 늦은 것이다. 정말 그의 입술을 받아드려도 되는 것인가. 그러나 그녀는 망설일 틈도 없이 눈을 사르르 감고 있었다.

준우가 진숙의 턱을 받쳐 들었다. 그녀는 남편이 아닌 나이어린 남자 앞에서 소녀처럼 가슴이 떨렸다. 입술이 맞닿고 그녀는 뜨거운 젊은 남자의 혈기를 느꼈다. 아! 얼마 만에 느껴보는 남자다운 젊은 남자의 향기인가. 그녀는 감탄하고 있었다. 입술이 그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그녀는 온 몸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진숙의 어깨를 당겨 가슴에 안은 준우는 그녀를 소파에 비스듬히 눕게 하였다. 그는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혀를 밀어 넣었다. 잠시 주춤하던 그녀는 그의 혀를 받아 드렸다. 입안에 있는 감각의 돌기들이 남자의 혀끝의 움직임에 의해 예민하게 반응했다. 나른한 감정 속에 빠졌던 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켰다. 그가 혀를 깊이 빨아 당겼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온 몸이 빨려 들어가는 아찔함 속에 자신도 모르게 그의 목덜미에 팔을 두르고 매달렸다.

“민비서........”

“사모님.........”

준우는 진숙이 흥분하여 변화하는 표정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자신의 스킨십으로 그녀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에 그는 쾌재를 불렀다. 여자는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이성의 문을 열고나면 육체적인 반응에 민감해지기 마련이다. 혀와 혀가 엉키어 욕구의 불씨를 퍼트리기 시작했다. 준우의 손이 피아노 건반 위를 미끄러지듯이 진숙의 블라우스 자락을 들치고 들어갔다. 브래지어를 밀고 올라가는 그의 손을 그녀가 붙잡았다.

“아, 안 돼.......”

“사모님. 사랑하고 싶어요.”

거부하는 말을 하는 진숙의 눈빛이 흔들렸다. 다시 입술을 벌리고 들어온 준우가 그녀의 혀를 강하게 빨아 당겼다. 그녀는 전류에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 브래지어를 밀고 들어간 그의 손이 그녀의 젖가슴을 보듬었다. 그녀는 그때서야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아! 안 돼! 정말 어쩌지! 내가 왜 이러지?’ 하지만 그녀의 모든 감각들은 황홀한 늪 속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진숙은 거부할 수 없는 감정의 회오리 속에 빠져 허둥거렸다. 더 이상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맡긴다는 무언의 표현이었다. 준우의 손가락 사이에서 젖꼭지가 애무를 당하고 그녀는 몸속에서 불꽃이 활활 타 올랐다. 전위도 없이 남편의 성기가 몸속을 파고드는 순간의 좌절감과는 거리가 먼 짜릿함이었다.

남자의 손가락 사이에서 돌기를 일으킨 진숙의 젖꼭지가 구슬처럼 굴려지며 뜨겁게 달구어졌다. 준우는 결국 그녀의 블라우스를 헤치고 브래지어를 밀어 올리더니 젖가슴에 머리를 묻었다. 아! 젊은 남자의 입에서 불어나오는 뜨거운 열기! 그녀는 젖가슴이 그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현기증마저 느꼈다.

“미, 민비서.........”

“..........아름다워요.”

아름답다는 준우의 한마디는 열기를 느끼는 진숙의 가슴에 휘발유 같은 역할이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머리를 보듬어 안으며 파르르 떨었다. 그녀의 젖꼭지가 그의 혀끝에서 농락을 당했다. 그녀는 온 몸의 신경이 한군데로 몰리는 희열에 빠져 들었다. ‘아! 어떡해. 난 몰라.........’ 그녀는 아우성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혀와 손끝으로 그녀를 뜨겁게 흥분시킨 준우는 소리 없는 희소를 흘렸다. 파도위에 배를 띠워 놓았으니 이제 배를 저어서 바다로 나가 환희의 항구로 떠나가면 되는 것이다. 거실 안에는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만이 들렸다. 이제 제법 서늘함을 느끼게 하는 거실에서 그들은 점점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준우는 한쪽 젖가슴을 주무르며 다른 쪽의 젖꼭지를 혀끝으로 돌돌 말아 세우며 마찰하였다. 그리고 다른 손을 밑으로 뻗어 스커트 자락을 움켜쥐었다. 스커트 자락을 밀어 올리고 매끄러운 허벅지 살갗을 더듬었다. 점점 위로 올라간 그의 손바닥이 둔덕을 감싸고 있는 저각만한 팬티 위를 문질렀다.

촉촉하게 습기로 젖은 듯이 전해오는 팬티 위의 감촉! 그녀를 정복하기 보다는 준우 자신이 흥분할 지경이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 그녀의 팬티 줄이 걸렸다. 그는 손가락에 걸린 팬티 줄을 끌어 내렸다. 그리고 더듬는 그의 손바닥에 둔덕을 감싸고 있는 음모가 잡혔다. 순간 그녀는 성적인 욕구를 느끼면서도 두려웠다. 더욱이나 가정부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그의 손을 움켜쥐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 안 돼. 강, 강릉댁이........”

“아름다워요. 못 견디겠어요.”

말을 잇지 못하는 진숙에게 준우는 사정하듯이 말했다. 블라우스가 벌어지고 브래지어가 말려 올라가 젖가슴이 들어나 있었다. 그리고 치켜 올라간 스커트 자락 밑으로 들어가 팬티를 끌어내리려는 그의 손을 잡은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했다. 끓어오르는 욕구에 달아오른 그녀는 가정부 박 씨가 저녁 일을 끝내고 숙소로 들어가면 다시 나오는 경우가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변명하듯이 읊조렸다.

“두, 두려워........”

“염려 말아요. 사모님과 나만이........”

준우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그는 진숙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아끌며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제 갈림길에선 그녀가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손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거부할 생각도 못하고 그에게 이끌려 안방으로 들어갔다. 준우는 순간적으로 긴장하였다. 그녀가 거부했더라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오직 자신의 감정과 성적인 유혹에 휘말린 진숙은 이성적인 윤리에서 멀어져 있었다. 그녀는 점점 가슴 속에 타오른 불길에 휘말리고 있었다. 방안으로 들어가 그의 가슴에 안긴 그녀는 젊은 남자의 체취 속에 흐느적거렸다. 그녀 스스로 육체적인 희열의 늪 속으로 빠져들고 잇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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